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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 (요15:5-6)

본문

요한복음 15장 1-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 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 시느니라" 이 말씀을 우리가 잘못 생각하면, 열매 맺는 나무와 맺지 않는 나무를 각각 구별 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만 사실은 그렇지 않음을 알 수있습니다. 다시말해서 포도나무 가지가 열매를 생산해야한다는데 강조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의 의미는 그 가지가 나무 둥치에 잘 붙어 있어야 할 것을 요구하는 말씀이지,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열매 맺는 것은 가지가 하는 것이 아니라, 포도나무 원둥치에 잘 붙어 있기만 하면 자연적으로 맺 히는 법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가지가 열매를 맺힐 것이냐 말것이냐 가 아니라, 가지가 원둥치에 제대로 잘 붙어 있느냐 않느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해 방식은 우리의 신앙 생활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차이점을 가져오게 만듭니다. 종종 신자들을 만나보게 되면, 신앙 생활이란 하나님께 무엇 을 해드리는 것이고 무었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참다운 봉사란 무엇을 하자는 싸움이 아니라, 오히려 그 이전에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 연합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라고 지적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일 그리스도 안에 연합되어서 포도나무 되신 그 분께 제대로 붙어 있기만 하면 그 다음에는 필연적으로 그 열매가 맺혀지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는 그같은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요15:4-5절 을 보십시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 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따라서 신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신앙의 싸움거리는 포도나무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굳게 붙어 있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삶을 살므로 그리스도를 더 깊이 깊이 배워나가는 작업이 신자들에게 있어서 일생에 걸쳐 가장 중요한 훈련거리요, 목표인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때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요점이란 우리의 선행도 아니요, 우리의 열심도 아니요, 우리가 갖다 바치는 어떤 봉사도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되어 그리스도를 얼마나 많이 배울 것이냐인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역시 신자들이 구원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도 많이 오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구원이란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주고 말씀을 순종해 주고 내가 선택하는 것이요 지키는 것이라고 오해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예수님을 선택하여 믿거나 말씀 과 계명을 지킬 능력이 전혀 없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구원이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주님께서 다 해주시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기 에 요15:8절에서 아버지께 어떻게 영광이 되느냐 하는 문제로서 구원이 무엇인가 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 가 되리라" 과실은 가지가 원둥치 나무에 잘 붙어 있어서 영양분을 잘 공급받을 때에 맺혀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가지 스스로는 열매를 맺힐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가지가 열 매를 많이 맺힘으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문제는 곧 가지가 나무에 잘 붙어 있느냐에 관한 문제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가지 스스로의 힘으로 열매를 얼마를 만 들어 낼 것이냐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지가 나무에 잘 붙어 있으면 결국 이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8절 하반절의 "내 제자가 되리라"는 말씀에 이어 계속해서 9-10절에서 이 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 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결국 우리는 이 말씀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신자들을 인도하고 싶은 목적지를 향 하여 가되 몇가지 숨겨진 원리들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내 제자가 된다' `사랑하라' `계명을 지키라'하는 말씀들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 말씀 들을 중심으로 신자의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무엇이며, 신자의 신앙의 삶이란 무엇 인지를 추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론' 요한복음 13장부터 시작해서 17장까지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커다란 하나의 말씀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곧 떠나시게 되었기 때문에 이제껏 예수님께서 하신 일의 목적과 의미들을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더 잘 정리해 주시고 분명히 하시기 위하여 주신 말씀들이었습니다. 요13:1절을 보시겠습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 시고" 여기서 이제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일을 마치시고 떠나실 것을 염두에 두 고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요15:1절 하반절을 또 보시면;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13장에서 시작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시고자 하는 예수님의 그 의도된 중심과 말씀들이 17장에 와서는 결국 사랑에 관한 이야기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언급하는 이 사랑이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가장 아름다 운 것으로서 말하는 그런 식의 사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랑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좀더 깊이 살펴 보아야 합니다. 요13:31절을 보십시다. "저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지금 인자가 영광을 얻었고"라고 말씀합니다. 지금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러 나갔습니다. 즉 죽음을 전제해 놓으시고는 "예수 께서 가라사대 지금 인자가 영광을 얻었고"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죽음심 을 통하여 영광을 얻으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오늘 본문인 요15 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아버지께서 영광을 얻으실 것이요"라고 말씀하시면서 동시에 "인자도 영광을 얻었고 인자를 인하여 아버지도 영광을 얻는다"고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으신다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인해 영광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은 요 15장에서 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요15:9절에는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한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고 말씀하시며, 이어 10절에서는 "내 아버지의 계명 을 지켜 그의 사랑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 리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다시말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신 것은 그의 계명을 지킴으로써 였 으며,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방법도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에게도 예수님께서 요구하시기를 우리가 예수님의 계명을 지켜서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무엇을 이루는지 아십니까 15 장11-15절을 다시 보십시다. "내가 이것을 나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케 하 려 함이니라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종이라는 관계로 계명을 지키라고 요구받는 것이 아니라 친구의 관계로 대접하고 있다고 말씀합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한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고 아버지 께서 나에게 요구하신 일인 그의 계명을 내가 지킴으로써 그의 사랑 안에 거하듯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켜 내 사랑 안에 거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셨으니까 보답을 한다는 정도가 아니라, 친구와 같은 밀접한 관계로 지킨다는 것입니다. 즉, 이 사랑이 요구하는 계명을 지키는 문제는 주인이 종에게 내린 어떤 명령을 지키듯 이 지키는 성질의 수준이 아니라, 그 보다 훨씬 높은 사랑과 신뢰가 바탕이된 밀접 한 친구의 관계로 지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7장에서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구원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우리가 박집사를 알고 김집사를 알 듯이 그런 식으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부부가 서로를 속속들이 잘 아는 것과 같은 듯입니다. 그러니까 깊이 안다는 것을 말합니다. 가장 가가운 관계, 가장 밀접한 친구의 관계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믿고 그 안에 함께 거함으로써 제자가 되고, 그 사랑 안에 있고, 계명을 지키는 것들 등등을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것처럼 이것 하면 안 되고 저것 하면 안된다는 식으로 제한적이고 좁은 곳으로 몰고 가려는 것이 본 의도가 아니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쉽게말해, `예수 믿으시오'그러면 사람들이 보통 `예수 믿으면 술도 못하고 담배 도 못피고 주일날 놀러도 못 간다'는 식으로 우선 생각해 버립니다. 말하자면 소극 적이고 부정적인 의미에서 속박을 당하며 하나님의 명령대로만 살아야 된다는 것으 로 하나님의 계명과 명령을 생각 하므로 구원과 신앙을 제대로 파악 못하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수준에 관한 문제요, 차원에 관한 문제요, 시각에 관한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콜라를 대단히 좋아하는 어떤 사람이 있었는데 매일마다 콜라를 한 병을 먹지 않으면 속이 느끼할 정도로 좋아하는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의 성격은 항상 정 반대였습니다. 한 사람은 언제나 콜라를 마시 면서 `아 이 맛있는 콜라가 이제 반 밖에 안 남았구나! 아 이 아까운 것이 1/3밖에 안 남았어'하면서 부정적이고 제한적인 자세를 소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또한 사람은 언제나 `아직도 반 병이나 남아있어. 그래도 1/3씩이나 남아있군'하면서 적극적이고도 희망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예수 믿는 것이란 늘 적극적이고 희망적 이어도 오히려 부족합니다. 왜냐면 우리가 주님께 받은 것이 우리에겐 너무도 큰것 이기 때문입니다. 이 엄청나고 놀라운 축복을 언제나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이것도 저것도 못하게 되겠구나를 계산만 하면서 제한적이고도 일시적인 이 세상 것으로 영원한 보화를 비교하려 하니 도대체 내가 받은 구원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길이 요 원한 것입니다. 그것도 초신자라면 이해가 가는 일이겠지만 이미 10년 20년된 신자 들 초차 이 문제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처음 믿을 때나 별 큰 진전이 없이 늘 의무감에 허우적거리는 신앙으로 가고 있지 않는가를 검토해 보셔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만일 사귀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사귀는 데는 제 한이 따릅니다. 초대한 집에 가기 위해서는 어떤 집에는 안 가야합니다. 우리는 동 시에 두 장소에 있을 수 없습니다. 같은 시간을 쪼개어 쓸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제한이라고 합니까 도리어 사귀고 싶었던 사람에게 초대받은 것을 영광으 로 생각할 따름입니다. 그것이 손해이기는 커녕 기쁨입니다. 그 분을 만나 교제하 기 위하여 좋은 옷을 입고, 단정하게 하여 시간을 맞춰 나가는 것을 귀챦다고 생각 하거나 손해라고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사귀는 대상 인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가장 흠모하고 가까이 하고픈 분이신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과 교제하는 것이 싫고 귀 챦고 손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우리의 어리석음 때문이지 주님편의 실수로 인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과의 교제가 무엇이며 그 사랑의 관계가 어떤 성질의 것인지를 말씀과 은혜로 새롭게 깨닫지 않으면 희망 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끊임없이 말씀으로 배우고 깨우치고 영안이 밝아져야 하는 것입니다 요13:34-35절을 보면 하나님의 영광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 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 라" 여기서도 분명히 요구하고 권면하는 말씀이 사랑, 제자, 거하는 것, 영광등의 말씀들입니다. 그리고 이 권면이 14장으로 넘어 와서는 이 이야기를 이렇게 연결되 고 있습니다. 요14:12절을 보시겠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라" 여러분 주님께서 하신 일을 우리도 할 것이라는 말씀보다 의미심장한 말씀이 어디 있습니까 어떤 귄한 분을 사귀었는데 그 분에게는 거대하고 아름다운 정원이 있었 습니다. 그런데 그 정원은 그 주인되는 그분과 같이 가면 들어갈 수 있으나 혼자서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 분은 나를 친구로 대접해서 그 정원을 지키는 사람에게 `이 친구가 오면 내가 온 것과 같이 대접하라'고 해서 그 분이 없 이도 나 혼자서도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내 친구들도 데리고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방금 읽은 말씀은 바로 이런 이야기입니다. 결국 `너희가 나를 믿으면 내가 한 것을 너희도 하리라'하는 이 말씀은 지금 우리 가 받은 이 구원이 하나님께서 의도하시는 궁극적이고 아름다운 자리에 우리를 초 대하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마치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가 되신 것같이 또한 서로 사랑하시며, 일치되어 존재하시는 것같이 우리를 그런 자리로 부르고 계신 다는 것을 성경은 조심스럽게 펼쳐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요15:15절에서는 우리를 친구로 대접하신다는 말씀을 보게 되는 것 입니다. 그러나 이 구절을 보기 전에 먼저 요14:13절의 말씀을 더 봐야 합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영광을 얻 으시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기도하여 그 구한 바를 얻게 될 때에 왜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습니까 놀라운 말씀이 아닙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신 길을 걸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한다는 것이 성경에 서는 이렇게도 신비로운 내용인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란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나온 족속입니다. 하나님을 외면 했고 하나님 아래 사는 것을 거부하는 족속입니다. 아담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죄를 짓고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쳐 나온 시조입니다. 그러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 미암아 하나님 안에 들어오며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에 동참하여 마음으로부터 그 일에 항복하는 자리에 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으로부터 돌아온 그 자리에는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는 것' 그것까지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란 내 욕심을 이루어 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아버지의 성품과 아버지의 뜻과 아버지의 기뻐하시는 일에 대하여 하나님과 동일한 마음과 동일한 열심과 동일한 성품으로 일치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 중의 하나입니다. 옛날 에는 남을 다 잡아먹어서라도 내 배를 채워야 했던 성품으로부터 이제는, 주님처럼 나를 죽여서 남을 살리는 자로서 가기 위하여 기도하는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이제 우리 자신이라는 종자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강력한 증거가 그렇게 나타나는 것 입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어 이루시고자 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인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마침내 죄악과 멸망의 자리에 있던 우리를 뽑아 내시어 하나님의 자녀되는 권세와 영광의 자리에 앉게 하시는 일을 이 루시는 것입니다. 이제 마침내 요15:15절의 우리가 주님의 친구되는 일이 무엇인가 하는 의미를 분 명히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고 친구라 하리라"는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대접하시며 어느 자리에서 어느 자리로 불 러 내셨는가를 이보다 더 잘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15:17절에서 똑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로다" 이것은 요13:34절에서 주었던 계명입니다. "새 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너희 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그렇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이 그렇게 시작된 것입니다. 그래서 13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된 표가 왜 사랑인가 하는 것을 말하고, 14장으로 넘어와서는 주의 이름으로 구하면 왜 아버지께 영광이 되는가를 말하고, 15장에서는 그 사랑과 기도가 왜 주 님과 연합되어 하나되는 것으로 요구받고 있는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으로 무엇을 만들어 하나님께 바치기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존재와 본질이 바뀌어서 하나님 앞에 서게 하려는데 구원의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전에는 하나님을 싫어하고 미워하여 하나님께 시선을 돌리지 않던 자리에서, 이제는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를 소원하며 함께 있는 것이 유일한 기쁨이 되는 자로 돌아온 자로 서게 하시는 것입니다. 마치 포도나무가 그 열매를 맺음과 같이 우리는 주님과 하나 되었을 때에 정당한 우리의 영광과 생명의 열매들을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가지는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열매가 달리는 장소일 뿐입니다. 이렇게 이해되 어질 때에 비로소 포도나무의 가치를 바로 보게 될 것입니다. 다시말해 우리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소중성이 우리에게 열매를 있게 하는 원인자로서 그 소중 함을 새롭게 깨닫고 인식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포도나무란 신기하게도 열매 외에는 그 무엇으로도 쓸모가 없어 보입니다. 그것으로는 지팡이도 못 만듭니다. 그런데 포도만큼 그 풍성함을 가장 잘 나타내는 열매도 없습니다. 그 포도송이가 붙어 있는 것 때문에 포도나무만큼 풍성을 잘 설 명하는 나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가난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올 때에도 포도송이를 따 가지고 왔던 것입니다. 포도나무는 열매가 없으면 아무 쓸모가 없는 나무인 것 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열매가 우리에게 맺혀질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 께 영광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가 요17:10절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저희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우리는 앞에서도, 아버지께서 인자를 인하여 영광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내가 저희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는다고 말씀합니다. 즉, 예수님께서 우리 신자들로 말미암아 받으신다는 말씀입니다.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십니다. 우리는 앞에서 또한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한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한다"고 이야기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고 나는 아버지의 계명을 지키고 그 사랑 안에 거한다'고 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제 우리는 서로 사랑 하는 것과 주의 계명 안에 거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동시에 마지막으로 유일하게 하나 남아 있던 이 영광이라는 것 마저도 아버지가 인자를 인하여 영광을 받으신 것같이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인하여 영광 을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우리가 모든 이야기가 하나의 아름다운 설 계로 구성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즉, 구원이란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인 것같이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을 목표로 설계되고, 의도 되어, 지금 진행되고 성취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계속해서 요17:11절을 보시겠습니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 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를 하나로 부르고 있습니다.
21절에 그 결정적인 결론이 나옵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와 목적을 가장 잘 증명해 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마침내 하나님과 하나됨으로써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예수님은 하나이십니다. 그분들은 한 마음을 갖고 계시며, 한 뜻을 갖고 계시며, 거기에는 시기도 분쟁도 비난도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랑으로 묶여 있는 한 편이십니다. 우리는 거기로부터 도망 왔던 자들입니다. 그런 우리를 하나 되 게 하기 위하여 이제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그로 말미암아 하나되 게 하신 것입니다. 인간이 원래부터 선하지 못했던 자였습니다. 첫 인간인 아담이 자신 위에 누가 있 다는 사실을 참아내지 못하고 교만의 자리로 나가고 말았습니다. 즉 자존심에 빠졌 던 것입니다. 그래서 죄에 빠졌고, 드디어 하나님과 분리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과 분리된 우리 인생들은 그 누구와도 분리될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가장 가까 와야 할 부부 관계가 부패되며, 서로 도와야 할 인간 관계가 살육과 전쟁으로 이어 짐으로 정상이 아님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수많은 전쟁 이야기와 성적 타락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입니다. 타락하자마자 아담과 하와가 낳은
첫째 아 들 가인이 살인을 저지릅니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쳐죽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 인간의 현 상태가 무엇인지를 증명해 보이고 싶어합니다. 지금 우리가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가만히 놔두면, 친해지기 보다 욕부터 하는 법입니다. 교회에 나와도 신앙심이 어지간해지기 전에는 자기 외에의 모든 사람들이 우스워 보이는 법입니다. 저 사람은 새벽부터 저렇게 졸 것을 왜 오나 저 사람은 저렇게 멍청하게 있을 것을 왜 오나 남을 보아도 마음이 들지 않는 법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악독이 가득한 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비유하시기를 열린 무 덤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무덤은 우리나라 무덤과는 달라서 우리는 밑으로 땅을 파고 뭍습니다마는 그들은 옆으로 굴을 파고 뭍습니다. 굴문을 돌로 막아 놓 았기 때문에 열렸다는 말입니다. 열렸으니까 거기서 썩은 냄새가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더러운 것 밖에 나올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죄인들의 모든 행위는 열린 무덤 같아서 썩은 것, 악취밖에 풍길 것이 없습니다. 인간의 실체가 그러하다는 것입니다.갈5:19-21절에 가면 이것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같은 것들이라" 여기서 죄의 열매인 육체의 열매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절반 이상이 분리에 관한 것입니다. 그러니 죄의 특징 중의 하나가 더럽고 부패된 것뿐만 아니라 분리 입니다. 나누임이며 싸움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열매들을 보십시오. `오직 성령님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연합에 필요한 내용들입니다. 이렇게 죄의 열매들은 모두 나 누이는 것이라면 성령님의 열매는 붙잡아 매는 것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로 하여금 신자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두가 연합되게 하려는 것임을 아셔야 합니다. 세상 재물이 아니요, 헛된 명예가 아니요, 여러분의 마음 속에 세상 허영을 따라 가지려는 어떤 목적물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연합입니다. 마침내 여러분들이 마음으로부터 `내가 가장 기뻐하며 사모 하는 일은 아버지를 뵈옵는 것이요, 그 안에 있는 것입니다'라는 고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수준입니다. 그러므로 요17:21절 의 말씀을 언제나 명심해야 됩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신앙을 고백함으로 이 자리에 모여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사랑할 줄 모른다면 참 신앙인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죄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며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첫번째 요구가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서 로 사랑하라는 이 말씀은 조건과 자격을 따지지 않고 서로 대접하라는 말씀입니다. 상대방을 대접할 만큼 대접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사랑 받을 자격이 모자라더라도 사랑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사랑할만 할 때까지 기다리거나,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생각과 기분을 뛰어넘는 명령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하나 명심해야 할 사실이 있는데, 여러분이 이 사랑을 명령으로써 지키고 실천하려고 애쓴다면 결코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사랑의 깊은 자리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명령이니까 할 수 없이 지켜야 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주님께서 날 사랑하셨듯이 우리도 서로에 대하여 속에서 흘러 넘쳐 나오는 것으로 사랑하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결론' 예수믿고 기독교 신자가 된다는 것은 능력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우리가 영원토록 축복받은 하늘나라에서 산다는 것도, 황금 보석으로 꾸민 열 두 대문을 들어서는 것들도 모두 다 부수적인 축복들입니다. 우리에게 일 차적으로 중요한 약속과 축복은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며, 예수그리스도를 만나서 그와함께 영원토록 함께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으로 이제 여러분의 신앙을 정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기도 제목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그 교제에 따르는 평안과 만족 그리고 기쁨이 있기를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나와 동행하시므로 내 모 든 삶이 보호받고 있으며, 그 사랑으로 충만하여 항상 그 주님의 사랑이 나를 밀어 내어서 주를 위해 섬기며 봉사하며 예배하며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음을 느끼며 살 아가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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