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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보낸 사람 요한 (요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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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국가적 위기를 경제위기시대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이러한 일은 우리 나라만 겪는 것도 아니고 국가나 기업 경영을 잘못하거나 분수를 잊 은 국민들이 있는 나라는 누구도 예외없이 겪는 경제위기인 것입니다. 우리는 맥시코만 경제위기 사대를 겪은 것으로 알고 잇는데, 실제로 세계 선진국이라는 영 국도 경제위기시대를 지낸 경력이 있습니다. 우리 나라 경제위기는 엄격히 따지고 보면 외환위기입니다. 즉 우리나라 가용 외환보유고가 바닥나 몰려오는 단기외 채의 결제를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결국 국가부도사태에 직면하게 되고, 이 위기를 넘기기 위하여 정부나 관계기관이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노력 가운데 우리나라가 뉴욕과 채권국가들에 파견한 외채협상단의 활 동을 인상적으로 보아왔습니다. 외채협상단의 활동으로 단기외채를 중장기 외채 로 전환하는 일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냄으로써 시간을 벌고, 외환시장의 안정과 국가부도를 피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물론 외환 위기는 끝나지 않았지만, 우리에게 시간을 벌었고, 파탄직전의 국가경제를 회생시킬 수 있는 발판을 확보했 다는 측면에서 보면 다행한 일입니다. 요즈음 안기부의 정치공작이 연일 언론에 보도되고 있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것 도 독자들에 대한 신문의 인기를 얻기 위해서 마구잡이로 보도되는 것 같은 느 낌을 받기도 합니다. 이러한 것들을 선정적 보도라고 합니다. 우리 나라 언론도 거듭나서 이러한 철학없는 행동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할 것입니다. 어느 나라나 서로 적대관계에 있는 상황에도 국가간에는 비선이 있게 마련이고, 이러한 라인 을 통해서 공식적으로 거론할 수 없는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것이 국가 간에는 상례화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비선의 정보망을 운용했다는 것은 전혀 잘못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번 문제는 국가 안보와 보위만을 위해서 존재해야 할 국가 비밀 정보라인을 정권유지와 정적을 죽이는데, 즉 국내정치를 왜곡시키는데 사용했다는데 문제가 있고,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막강한 권력기관이 사실 무근한 내용을 사실인 것처럼 공표함으로써 국민의 신성한 주권을 왜곡시킬려 고 했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국가 간에 어떤 어려운 문제나 오해의 문제가 생기면 나라에서는 공식 비공식적으로 사람을 보내서 문제해결을 시도하는 것입니다. 외채협상단이 뉴욕 이나 채권국으로 나아가서 우리의 실정을 설명하고 협상을 잘 마무리한 일이나, 남과 북이 적대관계에 있을 때 전 중앙정보부장이었던 이후락씨가 평양으로 비 밀리에 날아가서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기 까지 활동한 것이나 모두 국가 에서 부여한 임무를 띠고 나간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일들은 국가로부터 부여된 임무를 띤 사람들이 나아가서 일들을 성사시키고, 마무리하는 것을 우리는 보아왔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사람을 보내셨습니다. 오늘 본문 6절은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 고 합니다. 여기의 요한은 요한복음서를 기록한 예수님의 제자 사도 요한이 아니라 요단강에서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었 던 세례 요한입니다. 세례 요한은 하나님께서 보낸 사람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께서 왜 세례 요한을 보내셨습니까 그 이유를 5절은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고 합니다. 즉 생명의 빛이 세상에 오셨는데도 세상 이 그 빛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세례 요한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세례 요한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저를 빛의 증거자로 세우 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생명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세상이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세례 요한을 보내시고, 저로 하여금 "그 빛에 대하여 증거 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그 생명의 빛을 믿도록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은 그 자신이 "빛이 아닙니다. 그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사람"일 뿐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대변인이요,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한 도구요, 예수님을 세상에 분명하게 설명하고 알게 하고, 믿게 하기 위한 종일 뿐입니다. 세례 요 한은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요1:27) 고 공개적으로 선 언함으로써 자신이 예수님의 대변인이요, 예수님의 도구요, 예수님의 종인 것을 분명히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이 이 사실을 인정한다는 것은 당 시 세례 요한과 예수님을 비교해 보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1, 신분을 보면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세례 요한은 현직 제사장 집안 출신입니다. 아버지는 제사장이었던 사가랴였고, 그의 어머니는 엘리사벳이었는데 아론 의 후손이었습니다(눅1:5). 따라서 세례 요한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존경받는 제사장 가문 출신으로서 현직 제사장인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제사장이 될 사람이 었습니다. 반면 예수님은 나사렛의 가난한 목수 아들입니다. 따라서 정규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가문도 다윗의 후손이라고는 하나 그것을 내세울만한 아무 것도 갖추지 못한 별볼일 없는 가문 출신입니다. 이 말은 전주 이씨 집안 에서 태어났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전주 이씨는 조선의 왕족입니다. 그러나 별볼 일 없는 전주 이씨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므로 출생한 가문을 비교해 보아도 감히 비교할 수 없이 세례 요한이 명문가 출신었습니다.
2, 세례 요한은 제사장이 되어야 했기 때문에 제사장 후보로서 철저한 교육을 받았습니다. 세례 요한은 모태에서부터 성령님이 충만한 가운데 태교를 받았고(눅 1:15,41),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않는 경건한 훈련을 받았고(눅1:15), 낙타털옷 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마3:4) 경건하고 금욕적 으로 생활을 할만큼 철저한 신앙교육을 받으며 어린시절을 보내며 성장했습니다. 장차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인 제사장이 되기 위한 엘리트 코스의 교육을 받았습니다. 반면 예수님은 아버지의 직업을 물려받아 목수가 될 것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목수가 되기 위한 직업훈련을 받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짐작하는 것은 복음서 어디에도 예수님이 정규 교육을 받으셨다는 흔적을 발견 할 수 없고, 고대 사회에서는 직업이라는 것이 신분과 마찬가지로 거의 세습되 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은 제사장이 될 엘리트 코스를 거 친 사람이요, 예수님은 당시 사회의 천한 직업인 목수를 물려받기 위해서 직업 훈련을 받았던 분입니다.
3, 예수님과 세례 요한이 만나던 때인 청년기를 비교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세례 요한은 당대에 최고 인기있고 권위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요단 강변에서 세례를 베풀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기 시작하자 그에게 세례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고(눅3:7), 그의 입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한마디라도 들으려는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습니다.(눅3:10이하) 그의 모습은 너무 경건하고, 그 의 말씀은 권위있었습니다. 이 권위 앞에 당시 권력자인 헤롯도 세례 요한을 두 려워 하고 있었습니다.(막6:20) 그래서 사람들은 세례 요한을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마14:5), 또는 메시야(눅3:15, 마11:3)로 생각하였고, 저에게 말씀듣기를 하나님 말씀 듣는 것처럼 즐거워 하였습니다. 그 결과 세례 요한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군중들 틈에 끼어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받기 위해 나온 평범 한 시골 청년, 가난한 나사렛 목수인 요셉의 아들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나다 나엘은 예수님에 대한 얘기를 듣고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 냐"(요1:46) 고 비아냥거리기 까지 한 것입니다. 이 처럼 가문이나 혈통으로나, 학벌로나, 사회적 지위나, 출신지역으로나 무엇으 로 비교하여도 세례 요한이 예수님의 대변인이요, 예수님의 종이라는 사실을 인 정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이런 것에 전혀 개 의치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보내신 뜻에 철저하게 복종할 뿐이었습니다. 그가 지금 가진 힘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인기가 문제 가 아니었습니다. 가문의 체면이 문제가 안되었고, 배운 학벌이 문제가 아니었 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 앞에 복종할 뿐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자신이 배우고 준비했던 모든 것은 바로 이 일을 위한 것이었다는 것 을 그는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갈릴리의 이름없는 청년 예수,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러 나와 서 있는 목수 예수, 세례 요한은 그 앞에 겸손히 무릎 꿇고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마3:14) 했습니다. 자기를 선지자이며 메시야인줄 알고 따르는 제자들에게 "이 분이 바 로 내가 말한 그 분이요, 이분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 다"(요1:29) 라고 말했습니다. 이 얼마나 멋진 장면이며 숙연한 장면입니까 요한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 자신을 세상에 보 내셨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5절은 요한을 소개하기를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보내심을 받은"이라는 말이 헬라어로 "apostello"입니다. 이 말에서 "apostolos" 즉 사도 라는 말이 왔습니다. 사도란 "보냄을 받은 자부르심을 받은 자사명을 받은 자"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보냄을 받은 사람이란 소명자라는 말이요 사명자라는 말입니다. 소명이란 말은 하나님이 부르셨다는 말인데, 이를 바꾸어 말하면 내가 이 일을 위해 보냄받았다는 말입니다. 소명감이 없이는 그리스도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대변인이 될 수 없으며, 그리스도의 종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수 없습니다. 아무나 종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명감 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 를 그 일을 위해 보내셨다는 소명감이 없이는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종종 소명감없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교만입니다. 소명감없이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나서기 때문에 종종 교회 안에서 불 미스런 일이 생기고, 일을 많이 한 사람이 교회에 시험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소명감 없이 직분을 맡기 때문에 직분 때문에 시험들고, 소명감없이 물질을 가 지기 때문에 그 물질로 인하여 타락하고, 소명감없이 세상의 지위를 가지기 때문에 그 지위를 이용하여 불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고, 보내시는 것은 나로 인하여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알게 하고, 그리스도를 믿어 생명의 빛을 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 사실을 잊어버리면 우리는 실패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물질은 유한합니다. 권력은 유한합니다. 인기는 순간적입니다. 학벌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출신지역이 나를 인격자 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나를 고상하게 하고, 나를 영원히 살게 하고, 나를 행복하게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이 발견되기 위하여 모든 것을 배설물과 같이 버리지 않았습니까(빌3:8-9) 세례 요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자신이 지금 가지고 있는 것 안에 만족할려고 했 다면 그는 바리새인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가진 것이 아닌 하나님의 소명의 빛 안에서 자기 를 보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를 보았기 때문에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위대한 사람"(마11:11) 이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기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을 포기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입니까 자신이 지금까지 쌓아올린 것을 버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사람에게 올라가는 일은 쉬어도 내려오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의 신분, 약속된 장래, 배운 학벌, 그리고 지금 누리고 있는 최 고의 존경, 이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여긴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이었겠습니까 그러나 소명자의 자리에 서면 이것도 감사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서면 이런 것들이 작아보이는 것입니다. 내 친구 가운데는 서울 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는 자신이 지금까지 준비한 의사로서의 길을 주님의 부르심을 위해 아낌없 이 바쳤습니다. 그가 목사의 길로 갈려고 하니 그를 가로막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습니다. 가족들로부터 시작하여 부모 형제까지 모두 막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길이 주님이 부르신 길이라 믿고 그것을 주님을 위해 아낌없이 바쳤습니다. 잠실에서 주사랑교회라는 개척교회를 하면서 전국 방방곡곡, 아니 세계 각처에 의사의 손길이 기다리는 곳으로 무료진료를 다닙니다. 얼마나 뛰어다녔 던지 의사가 간이 나빠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항상 감사하고 찬송합니다. 그의 기도의 제목은 의사로서 돈 많이 버는 것이 아니라 그로 말미암아 주님이 증거 되고, 주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주님을 설명하고, 진료받는 사람들이 주 님을 믿어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그는 지금도 뛰어나디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 한한 찬양과 기쁨으로 행복해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보내기 위하여 부르셨습니다. 아직도 생명의 빛으로 오신 예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주님을 증거 하기 위하여 부르셨습니다. 우리에게 이를 위하여 사업도 주셨습니다. 직업도 주셨습니다. 공부도 하게 하셨습니다. 돈도 가지게 하셨습니다. 이것들을 하나님 의 소명의 빛 안에서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그것들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증거되 고, 그것들을 통하여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알게 되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 로 나아올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기쁨이 있고, 행복이 있으며, 감사와 찬송으 로 가득한 풍성한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례 요한과 같이 여자가 낳 은 자 가운데 가장 위대한 사람이 되는 축복을 누리시고, 사도 바울과 같이 위 로부터 부르시는 상급을 향하여 달려갈 길 다 달리고 생명의 면류관을 얻는 승 리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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