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삼위의 동역 (요16:12-15)
본문
삼위일체 주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으로 하여금 화평을 누리도록 하는 평화의 사역을 감당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인간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만 인간은 하나님과의 막힌 담을 무너뜨릴 수 있고 둘로 찢어진 휘장 한가운데로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 우리는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나아온 인간을 향하여 그의 사랑을 베푸십니다. 그분은 우리 인간에게 소망이 부끄럽지 않도록 성령님을 주시어 우리 마음에 사랑을 부어주십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선물로 인간에게 부어주신 바 되어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은혜 가운데서 담대히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살펴볼 때 우리는 죄인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깨닫게 됩니다. 삼위는 단순히 동일한 위격으로 묘사될 수 없습니다. 삼위는 서로를 향해 연관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단순히 자신이 다 가르칠 수 없음을 인정하시고 성령님의 사역으로 그 일을 맡기셨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아버지의 말씀을 듣는 그대로만 인간들에게 전달하십니다. 그러나 그 아버지께 있는 것은 모두 다 예수님의 소유입니다. 본문 말씀에 “(요16:15) 무릇 아버지께(하나님) 있는 것은 다 내(예수)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성령님)가 내(예수)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리라 하였노라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아직도 제자들에게 이를 것이 많은데 제자들이 감당할 수 없기에 하실 수 없는 말씀이 많으셨습니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님이 오시면 그가 제자들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자의로 말씀하시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삼위 하나님의 사역이 세밀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즉 삼위일체 하나님이 함께 동역하심으로 일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영웅적인 목회자의 시대는 이미 지나갔습니다. 이젠 한국 교회에도 동역의 의미가 중요시되고 있습니다. 목회 현장에서의 동역은 서로의 성숙함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리고 각자가 자신의 목회 전문성을 최상으로 개발해야 합니다. 선교 현장도 이젠 단독 선교사의 힘만으로는 어렵게 되고 있습니다. 서로 도우면서 함께 주의 일을 아름답게 이루어자가는 동역의 모습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동역의 아름다움을 고양할 수 있을지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동역의 아름다움이란 어떤 것일까요! 우리는 부정적인 사례들보다 긍정적인 사례들, 특별히 가장 이상적인 동역의 아름다운 본을 찾아야 합니다. 가장 이상적인 동역은 바로 삼위일체의 사역과 각각의 성품입니다. 삼위는 언제나 함께 사역에 동참합니다. 창조 시에 삼위는 함께 그 사역에 동참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사역에 삼위는 함께 동참했습니다. 지금도 삼위는 아름답게 동역하고 계십니다. 많은 교회들이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양한 형태로 하나됨이 깨어지는 데 연유합니다. 한국 땅의 정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됨이 깨어지고 있습니다. 남북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됨이 깨어진 지 벌써 오래 전입니다. 선교 현장에서의 심각한 문제는 바로 선교사들의 분열입니다. 작게는 가정들도 깨어지고 있습니다. 수많은 이혼과 가정 파탄이 그 사실을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또한 개개인의 마음이 무너져내리고 있습니다. 자아 안에서의 여러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분열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인 것입니다. 동역하는 조화를 모든 분야에서 되찾는 사명이 이 시대 기독교인의 사명입니다. 어떻게 하면 아름다움 동역의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요
1. 자신의 한계성을 인정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요16:12)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 예수님은 겸손한 분이십니다. 내가 모든 것을 다할 수 있다는 교만과 자기 과시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후에 오실 성령님이 하실 일을 남겨두셨습니다. 질적으로 시간적으로 자신의 한계와 분명한 구별을 하신 분이시기에 삼위의 아름다운 동역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강림하심은 성도들을 도우시기 위한 것입니다. 성령님은 모든면에서 성도들을 돕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말하기를 “(롬8:26) 이와 같이 성령님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님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돕는 중에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교회 공동체에 새로운 사명을 위임하셨습니다. 영혼 구원의 사역은 사람을 도구로하여 이루어지는 일이지만 이것은 오직 삼위 하나님을 통하여 완성되는 사역입니다. 우리가 이 사역을 감당하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는 주체가 아니라 도구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이 사역을 행하는 도구들은 삼위 하나님을 늘 의뢰할 수밖에 없으며, 그 분 앞에 늘 무릎 꿇는 자세로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자신의 한계성을 인정할 때에만이 우리의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연약함을 깨닫고,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바를 모를 때, 우리가 죄인임을 고백할 때, 우리가 모두 무지한 자임을 깨달을 때에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며 깨닫게 하시고, 생각나게 하시며, 가르쳐 주십니다. 보게하시고 알게하시고 느끼게 하시며 체험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2. 자신의 뜻보다 다른 이의 뜻을 먼저 생각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요16: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님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하였습니다. 항상 자신의 주장만을 내세우는 동역은 쉽게 무너질 것입니다. 국회의 여당과 야당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가정의 남편과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의 의사를 존중할 때 그 동역은 아름답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비빔밥) 자의로 말하지 않게 하시고 오직 성령님께서 택한 백성들은 불러서 예수를 알게 하시고 믿을 마음이 생기게 하셔서 그를 예수 앞으로 인도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전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님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하였습니다. 또한 베드로 사도는 “(마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16: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하였습니다. 이처럼 성령님이 임하시면 예수를 믿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신의 뜻보다 예수님께서 인도하시기를 먼저 기도하십시오. 자신의 주장을 내 세우기에 앞서 상대방의 말과 의견을 정중히 들어주는 마음의 자세를 가집시다. 완고함은 망할 징조이지만 겸손함은 흥함의 길조입니다. “(사55:8)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사55:9)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하였습니다. 좋은 아이디어는 발전을 가져오며 생산성을 높이고 평안을 끼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여 돈 안드는 선거를 하자고하는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 함께 생각해 보고 그에 대한 대안을 찾자고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내 뜻대로 하면 실패할 확률이 많지만 주님 뜻대로 하면 성공할 확률이 100%라는 것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사55:10)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사55:11)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고 하였습니다. 형통하시기를 원하십니까 자신의 뜻보다 다른 이의 뜻을 먼저 생각하시기를 기원합니다.
3. 자신보다 다른 이를 영화롭게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요16: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하였습니다. 함께 동역하면서 자신의 영광과 명예만을 생각하고 있다면 그 동역은 쉽게 무너질 것입니다. 그러나 상대를 높이고 상대의 영광을 위해서 서로 봉사할 때 그 동역은 아름답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되게 하십시다. 성령님은 구속 받은 성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도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는데 있습니다. “(사43:7)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사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하였습니다. 구속하여 주시는 이유도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는데 있습니다. “(엡1:11)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엡1:12)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엡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 속의 성령님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엡1:14)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고전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마5:16)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하였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성령님을 받고 방언이나 하고 병이나 고치며 이적이나 행하며 자기 만족에 도취되는 것이 아니고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고 주께로 인도를 받으며 하나님께 영광되는 일만 하게 됩니다. 그래서 “(고전12:7) 각 사람에게 성령님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유익을 주며 영화롭게 삽시다.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말고 수고를 알아줍시다. 주님께서는 다섯 달란트나 두 달란트를 받은 종들에게 똑 같이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찬하셨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았던 자는 (마25:24)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마25: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마25: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하셨습니다. 나의 수고를 주인의 영광으로 돌릴 때 주님은 “(마25:31)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마25: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하였습니다.
상대를 높이고 상대의 영광을 위해서 서로 봉사할 때 그 동역은 아름답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동역하는 아름다운 소식이 이곳 저곳에서 들려오기를 기다리십니다. 마치 삼위일체의 아름다운 동역하심같이, 이렇게 아름다운 일이 이루어진다면 깨어지고 무너진 모든 관계와 공동체들이 다시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 동역의 아름다움이 회복되어야 할 것이다. 자식들의 영광을 위하여 당신의 일생을 다 바쳐 희생한 어버이들처럼 가이없는 사랑만이, 동역의 아름다움만이 나라의 기둥이 되고 그 가문의 기업이 될 것입니다. 동역하는 사역을 위해 뛰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약속을 주십니다. 그 사명을 위해, 애쓰고, 손해보고, 핍박당하고, 건강을 상하기도 하고, 자녀를 잃기도 하고, 재물을 없애기도 하지만 “세상 끝 날까지 ” 주님께서는 “항상”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주님은 세상을 이기셨다고 하셨습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구속하시기 위해 구속 사역의 계획을 세우시고 갈보리의 십자가르 통해 성취하신 후, 부족한 우리에게 이 땅의 모든 족속 구원의 대사역을 위임해 주셨습니다. 이 사역의 주체가 성부, 성자, 성령님, 삼위 하나님이심을 늘 고백하며 우리들이 종의 자리에서 이 사명을 감당해 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와 같이 우리도 서로 조화를 이루며 살 수 있도록 주님께 기도하면서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성령님)가 내(예수)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리라 하였노라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아직도 제자들에게 이를 것이 많은데 제자들이 감당할 수 없기에 하실 수 없는 말씀이 많으셨습니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님이 오시면 그가 제자들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자의로 말씀하시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삼위 하나님의 사역이 세밀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즉 삼위일체 하나님이 함께 동역하심으로 일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영웅적인 목회자의 시대는 이미 지나갔습니다. 이젠 한국 교회에도 동역의 의미가 중요시되고 있습니다. 목회 현장에서의 동역은 서로의 성숙함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리고 각자가 자신의 목회 전문성을 최상으로 개발해야 합니다. 선교 현장도 이젠 단독 선교사의 힘만으로는 어렵게 되고 있습니다. 서로 도우면서 함께 주의 일을 아름답게 이루어자가는 동역의 모습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동역의 아름다움을 고양할 수 있을지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동역의 아름다움이란 어떤 것일까요! 우리는 부정적인 사례들보다 긍정적인 사례들, 특별히 가장 이상적인 동역의 아름다운 본을 찾아야 합니다. 가장 이상적인 동역은 바로 삼위일체의 사역과 각각의 성품입니다. 삼위는 언제나 함께 사역에 동참합니다. 창조 시에 삼위는 함께 그 사역에 동참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사역에 삼위는 함께 동참했습니다. 지금도 삼위는 아름답게 동역하고 계십니다. 많은 교회들이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양한 형태로 하나됨이 깨어지는 데 연유합니다. 한국 땅의 정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됨이 깨어지고 있습니다. 남북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됨이 깨어진 지 벌써 오래 전입니다. 선교 현장에서의 심각한 문제는 바로 선교사들의 분열입니다. 작게는 가정들도 깨어지고 있습니다. 수많은 이혼과 가정 파탄이 그 사실을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또한 개개인의 마음이 무너져내리고 있습니다. 자아 안에서의 여러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분열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인 것입니다. 동역하는 조화를 모든 분야에서 되찾는 사명이 이 시대 기독교인의 사명입니다. 어떻게 하면 아름다움 동역의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요
1. 자신의 한계성을 인정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요16:12)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 예수님은 겸손한 분이십니다. 내가 모든 것을 다할 수 있다는 교만과 자기 과시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후에 오실 성령님이 하실 일을 남겨두셨습니다. 질적으로 시간적으로 자신의 한계와 분명한 구별을 하신 분이시기에 삼위의 아름다운 동역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강림하심은 성도들을 도우시기 위한 것입니다. 성령님은 모든면에서 성도들을 돕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말하기를 “(롬8:26) 이와 같이 성령님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님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돕는 중에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교회 공동체에 새로운 사명을 위임하셨습니다. 영혼 구원의 사역은 사람을 도구로하여 이루어지는 일이지만 이것은 오직 삼위 하나님을 통하여 완성되는 사역입니다. 우리가 이 사역을 감당하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는 주체가 아니라 도구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이 사역을 행하는 도구들은 삼위 하나님을 늘 의뢰할 수밖에 없으며, 그 분 앞에 늘 무릎 꿇는 자세로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자신의 한계성을 인정할 때에만이 우리의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연약함을 깨닫고,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바를 모를 때, 우리가 죄인임을 고백할 때, 우리가 모두 무지한 자임을 깨달을 때에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며 깨닫게 하시고, 생각나게 하시며, 가르쳐 주십니다. 보게하시고 알게하시고 느끼게 하시며 체험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2. 자신의 뜻보다 다른 이의 뜻을 먼저 생각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요16: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님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하였습니다. 항상 자신의 주장만을 내세우는 동역은 쉽게 무너질 것입니다. 국회의 여당과 야당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가정의 남편과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의 의사를 존중할 때 그 동역은 아름답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비빔밥) 자의로 말하지 않게 하시고 오직 성령님께서 택한 백성들은 불러서 예수를 알게 하시고 믿을 마음이 생기게 하셔서 그를 예수 앞으로 인도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전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님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하였습니다. 또한 베드로 사도는 “(마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16: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하였습니다. 이처럼 성령님이 임하시면 예수를 믿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신의 뜻보다 예수님께서 인도하시기를 먼저 기도하십시오. 자신의 주장을 내 세우기에 앞서 상대방의 말과 의견을 정중히 들어주는 마음의 자세를 가집시다. 완고함은 망할 징조이지만 겸손함은 흥함의 길조입니다. “(사55:8)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사55:9)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하였습니다. 좋은 아이디어는 발전을 가져오며 생산성을 높이고 평안을 끼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여 돈 안드는 선거를 하자고하는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 함께 생각해 보고 그에 대한 대안을 찾자고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내 뜻대로 하면 실패할 확률이 많지만 주님 뜻대로 하면 성공할 확률이 100%라는 것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사55:10)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사55:11)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고 하였습니다. 형통하시기를 원하십니까 자신의 뜻보다 다른 이의 뜻을 먼저 생각하시기를 기원합니다.
3. 자신보다 다른 이를 영화롭게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요16: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하였습니다. 함께 동역하면서 자신의 영광과 명예만을 생각하고 있다면 그 동역은 쉽게 무너질 것입니다. 그러나 상대를 높이고 상대의 영광을 위해서 서로 봉사할 때 그 동역은 아름답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되게 하십시다. 성령님은 구속 받은 성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도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는데 있습니다. “(사43:7)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사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하였습니다. 구속하여 주시는 이유도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는데 있습니다. “(엡1:11)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엡1:12)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엡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 속의 성령님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엡1:14)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고전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마5:16)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하였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성령님을 받고 방언이나 하고 병이나 고치며 이적이나 행하며 자기 만족에 도취되는 것이 아니고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고 주께로 인도를 받으며 하나님께 영광되는 일만 하게 됩니다. 그래서 “(고전12:7) 각 사람에게 성령님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유익을 주며 영화롭게 삽시다.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말고 수고를 알아줍시다. 주님께서는 다섯 달란트나 두 달란트를 받은 종들에게 똑 같이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찬하셨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았던 자는 (마25:24)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마25: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마25: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하셨습니다. 나의 수고를 주인의 영광으로 돌릴 때 주님은 “(마25:31)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마25: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하였습니다.
상대를 높이고 상대의 영광을 위해서 서로 봉사할 때 그 동역은 아름답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동역하는 아름다운 소식이 이곳 저곳에서 들려오기를 기다리십니다. 마치 삼위일체의 아름다운 동역하심같이, 이렇게 아름다운 일이 이루어진다면 깨어지고 무너진 모든 관계와 공동체들이 다시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 동역의 아름다움이 회복되어야 할 것이다. 자식들의 영광을 위하여 당신의 일생을 다 바쳐 희생한 어버이들처럼 가이없는 사랑만이, 동역의 아름다움만이 나라의 기둥이 되고 그 가문의 기업이 될 것입니다. 동역하는 사역을 위해 뛰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약속을 주십니다. 그 사명을 위해, 애쓰고, 손해보고, 핍박당하고, 건강을 상하기도 하고, 자녀를 잃기도 하고, 재물을 없애기도 하지만 “세상 끝 날까지 ” 주님께서는 “항상”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주님은 세상을 이기셨다고 하셨습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구속하시기 위해 구속 사역의 계획을 세우시고 갈보리의 십자가르 통해 성취하신 후, 부족한 우리에게 이 땅의 모든 족속 구원의 대사역을 위임해 주셨습니다. 이 사역의 주체가 성부, 성자, 성령님, 삼위 하나님이심을 늘 고백하며 우리들이 종의 자리에서 이 사명을 감당해 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와 같이 우리도 서로 조화를 이루며 살 수 있도록 주님께 기도하면서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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