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로 인도하시는 성령님 (시25:1-10,요16:12-15)
본문
오늘은 성령님 강림 주일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예루살렘 마 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던 제자들과 함께 있었던 사람들에게 성령님 이 임하여 오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 사람 가운데 오셨 다는 사실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막혔던 대화의 통로가 열리고 하나님과의 사귐이 회복됨과 동시에 하나님의 충만하심과 은총이 우리 속에 들어올 수 있게 되었음을 뜻합니다. 따라서 성령님 강림은 우리에 게 있어 은총이며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전에는 우리의 죄악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막고 있어서 그 통로가 막혀 성령님이 우리 가운 데 오실 수 없었으나,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 여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므로 막혔던 길이 열리고 성령님이 우리 가운 데 오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닦아 놓으신 길로 성령님께서 오신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오순절에 제자들에게 임하여 오시면서 그들의 스승이셨 던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그의 십자가의 구 속과 부활의 그 모든 진리를 분명하게 깨달아 알게 된 것입니다. 이 진리를 깨닫게 되면서 전에 자신이 매여 있던 율법주의가 잘못된 것 이며, 유대인들이 잘못된 선민 의식에 사로 잡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이 성령님의 임재를 통하여 이런 진리를 깨닫게 되자 그들 속 에 그 진리에 대한 열정과 용기가 솟아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 은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그 진리인 복음을 전하였던 것입니다. 그러자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났는데, 하나는 많은 사람들이 그 복음을 듣고 회개하면서 예수를 믿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율법주의를 고수하 고자 하는 사람들이 제자들을 위협하면서 그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역사는 제자들로 하여금 이런 위협과 반대와 핍박 에 굴하지 않고 더욱 열심히, 더욱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저들의 반대에도 계속 전파되어 세계 속으 로 퍼져 나갔던 것입니다.
성령님 강림은 세계 역사를 바꾸는 놀라운 사건이 되었고, 성령님은 오늘도 우리 가운데 역사 하시면서 계속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고 계신 것입니다. 길을 잃은 현대인 성령님이 오셔서 변화된 제자들의 모습에서 우리가 먼저 배울 것은 성령님은 우리를 진리 가운데 인도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인간은 길을 잃은 사람과 같습니다. 우리 인간은 이 땅에 태 어나면서 자기의 길을 출발하였는데, 막상 어디로 가야할지 알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는 부모의 돌봄과 가르침 속에서 자라면 서 부모가 인도하는 대로 따랐지만, 성장하여 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하면서부터는 자기 의식이 생기고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기 시 작을 합니다. 그러나 대체로 학교를 다니면서 그 학교에서 가르치는 대로 자기의 삶을 보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현대 교육이 분명한 가치 관을 가지고 있지 못한 채 무조건 대학입시만을 위한 교육에 초점을 마치다 보니 인생이 무엇이며, 그 인생의 길을 어디로 향하여 가야할 지를 가르쳐 주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대학에 들어가면 좀더 깊은 학문의 연구를 통해 인생을 배울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요즈음 대학은 돈이 되지 않는 학문 즉 인문학이나 인문교육은 인기가 없어 학과를 폐지하는 경우가 많고 오직 돈이 되는 과학기술과 관련된 학문만이 인기가 있어서 이 대학 을 거쳐 나오는 사람들은 대체로 기능인간으로 역할을 하게 되는 것 입니다. 사실상 우리 나라 대학들은 종합적으로 학문하는 대학교는 없어지고 기능만 익히는 전문대학으로 전락하여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인생이 무엇이며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알 턱 이 없는 것입니다. 철학을 공부하면서 인간의 문제를 깊이 연구해도 알 수 없는데, 그런 문제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은 채 오로지 과학 기술만을 익힌 인간이 자신을 깊이 있게 통찰하지도 못할 것이며, 자 기가 익힌 과학기술이 만들어내는 것들이 결과적으로 인간을 파멸로 이끌며, 하나님의 세계를 어지럽히는 무서운 독소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거기에 파묻혀 자기의 삶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총체적으로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우리를 교육 시키고 우리 의식을 지배하는 언론이 개혁되지 않은 채 자기 배만을 위하여 동분서주(東奔西走)하고 있고, 교육계는 이미 오래 전부터 갈 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으며, 이 사회를 이끌어 갈 지도적 지 식인들도 주관(主觀)과 신념을 갖지 못한 채 보따리 장사꾼처럼 이리 저리 팔려 다니고 있으며, 심지어는 진정한 인생관과 가치관을 제시 하여야 할 종교들마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정치인들이 신념과 주관 없이 이합집산(離合集散)을 반 복하면서 밥그릇을 위해 더럽게 싸우는 모습은 우리를 더욱 절망케 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말살하고 인권을 탄압하였다고 욕먹던 대 통령이 어느 날 갑자기 나라를 구한 위대한 지도자로 둔갑을 해버리는 이 어지러운 현실 속에서 우리는 무엇이 옳은 것이며, 무엇이 틀 린 것인지 종잡을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는 어디로 가야할까요 우리의 가치관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지금 무엇 을 위해 살고 있습니까 우리는 지금 완전히 길을 잃고 있는 것입니다. 동서남북을 분간할 수 없는 깜깜한 밤중에 우리는 길을 잃고 이 리저리 방황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우리의 갈 길을 밝혀 줄 인도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어디에도 우리를 인도하 여 줄 인도자는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편 기자처 럼 하나님께 조용히 엎드려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 주의 길을 나에게 보여 주시고, 주께서 가시는 그 길을 내게 가르쳐 주십시오. 주님은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가르쳐 주십시오. 나는 종일 주님만을 기다립니다."
시 25:4-5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셨다는 사실에 절망하였던 제자들,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소식에 당황한 제자들, 주님이 부활 후 40일 만에 승천하여 가버리신 다음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였던 제자들이 다락방에 조용히 모여 기도할 때 성령님의 임재를 체험하면서 그들은 무엇을 해야할 지를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이 혼란 시대를 살면서 쓸데없이 이리저리 방황하지 말고 조 용히 주님 앞에 나가 기도하므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려야 하겠습니다. 성령님이 오시면 우리가 진리를 깨달아 알게 되며, 우리를 그 길 로 인도하여 주시기에 더 이상 우리가 방황하지 아니하고 진리의 길 을 따라 바른 삶을 이룩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진리를 알게 하시는 성령님 성령님께서 사도 바울과 함께 하시므로 그의 길을 인도하셨습니다. 바울은 회심 후 아라비아에서 3년을 지내면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 라 진리를 깨우쳤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과 달리 이방 인 선교에 전력을 기울였는데, 그것은 '모든 사람은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을 막론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진리는 새로운 깨달음이 었습니다. 다른 사도들이 아직 거기에 이르지 못하였을 때 바울은 이 방인의 사도로 자처하면서 3차에 걸친 전도 여행에 나섰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남긴 '갈라디아서'와 '로마서'는 바로 그의 깨달음을 적 고 있습니다. 결국 이런 깨달음은 완전히 기독교가 율법주의의 테두 리를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그 진리를 선포하게 한 동기가 되 었습니다. 바울은 이 깨달음 때문에 육체적으로 고달픈 삶을 살 수밖 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충실하게 따랐고, 그래서 끝까지 선한 싸움을 다 싸웠던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깨달음을 얻고도 바울처럼 헌신하기보 다는 안락한 삶의 길을 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세 기독교는 권력 과 야합하면서 타락하게 되었고, 그런 중에서 성령님의 부르심을 따른 몇 몇 개혁자들이 일어나 진리의 횃불을 밝혔던 것입니다. 얀 후스 같은 사람은 교황청에 도전했다가 화형을 당했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려던 의인들이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마틴 루터라는 한 수도자에게 성령님이 임하셨고, 그가 말씀을 연구하는 중에 큰 깨달음을 얻고 종교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전 구라 파를 뒤흔들었고, 개혁의 물결은 겉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가 교회를 새롭게 하였던 것입니다.
루터를 비롯한 칼빈, 쯔빙글리, 그리고 스코틀란드의 존 녹스 같은 사람들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성경의 말씀을 통해서 새로운 진리를 깨달아 알게 되었고, 그 진리에 서서 교회를 개혁하는 일에 헌신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성령님이 임재 하시면 우리를 어디로 인도 하실까요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목사가 이단인 줄 알면서도 교계 혹은 정계 지 도자들이 그를 받아 드리고 그를 묵인하고 있을 때, 한 젊은 목사가 그 이단성을 파헤쳐 고발하였던 것입니다. 방송국 측에 자료를 제공 한 사람도 바로 이 젊은 목사였습니다. 그는 우리 교단 이단 사이비 연구소 소장이기도 합니다. 극동방송은 그런 목사에게 방송시간을 제 공하고도 아직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복음 방송을 자처하고 있는 극동방송조차 그 사명을 망각하고 있는 이런 현실로 인해 오늘 한국 교계가 어지러운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가 너무 현실적 가치만을 중요시하여 이상과 원칙 을 버리고 있는 때, 성령님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현실보다는 이상과 원칙을 따르도록 인도하실 것입니다. 모든 것을 경제 논리의 잣대로 만 재려고 하여 돈이 되지 않는 것은 가차없이 버리는 오늘의 현실을 비판하면서 성령님은 우리로 하여금 돈이 되지 않아도 가치 있는 것, 경제적으로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아도 사람과 이 땅을 풍요롭게 하는 문화적 소산들을 새롭게 보도록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큰 것, 일등 하는 것, 부자 되는 것에만 몰두한 나머지 작은 것, 가난한 것, 소박한 것들을 모두 내어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공공근로 사업으로 숲 가꾸기에 동원된 사람들이 산에 큰 나무만 남겨 놓고 나무든 풀이든 덤불이든 모조리 다 베어버리란 명령을 받 고 그대로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산 에는 나무만 있어서는 안되고 덤불도 잡풀도 작은 관목들이 있어야 서로 어우러져 우거진 숲을 만들어 내는 것인데, 작다고 다 잘라버리는 이 사고 방식이 오늘 우리의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오늘 우리에게 오시면 바로 이런 지배 논리, 힘의 논리에 대 항하여 작은 것도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새로운 가치, 새로운 세계 를 이루도록 인도하실 것입니다. 농업은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여 박정희 대통령 이 후 계속하여 축소시켜 왔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 들었고, 농촌은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시골 학교들은 상당수 폐교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경제위기라는 경제적 위기를 맞이하면서 수많은 실직자들이 생겨나고 말았는데, 농사 짓는 인구가 많았더라면 비록 경제 발전은 더뎠어도 오늘 과 같은 고통은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경제 발전이라는 끝도 없는 경쟁 논리 때문에 우리는 도덕성을 버렸고, 가정도 버 렸으며, 사회도 자연도 모두 파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경제 발 전을 이룩하였다고 그 대통령을 위대하다고 칭찬해 대는 오늘의 우리 의 사고가 한심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끝없는 경쟁 사회에서 일등 하라고 몰아대는 오늘의 현실을 똑바로 보면서, 우리는 과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며, 바른 삶의 길이 어디에 있는가를 찾도록 인도 하시는 성령님의 임재를 기다려야 하겠습니다. 유전 공학의 발전은 여러 가지 놀라운 사실들을 이루고 있는데, "이것은 핵 재앙 못지 않거나 그보다 더 심각한 재앙을 예고하는 기 술임이 분명한데도 지금 거의 아무런 사회적 저항 없이 우리의 삶 속 으로 밀물처럼 밀려들어오고 있습니다."(녹색평론, 1999. 5-6월호, p.3.)
유전공학을 비롯한 생명 조작기술들은 늘 인류의 식량문제를 해 결하고, 의료의 한계를 극복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그런 문제 해결 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생명의 질서를 파괴하고 무서운 재앙을 가져올 것이 분명한 이 때, 성령님은 우리로 생명을 있게 하신 하나님을 두려워 하면서 인간의 탐욕에 바탕한 기술 개발 대신에 하나님이 주신 것을 고루 나누어 먹는 사랑을 실천하라고 우리를 깨우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본문에 "그분 곧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13절)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진리는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럼에도 진리의 영이 너희를 나 에게로 인도하실 것이라고 하지 않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고 말 한 것은 우리로 현실을 떠난 추상적인 신앙, 사후 세계만을 바라보는 신앙에 머물지 않고, 오늘 여기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들을 보면서 그 혼란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진리의 세계로 나가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훗날 하나님이 계신 천국에 이르게 될 때는 성령님이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때에는 우리 가 누구나 다 진리를 알고 진리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이 땅에 살고 있는 동안에는 진리보다는 거짓과 불의가 더 욱 활개를 치기 때문에 성령님이 오셔서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 시지 않으면, 우리도 어둠 가운데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파멸에 이르 게 되고 말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이 세상의 거짓과 불의, 그럴듯 한 명분을 내세우며 잠식해 오는 악의 실체를 파악할만한 지혜나 능 력을 가지고 계십니까 그럴만한 능력도 지혜도 없으면서 우리는 마 치 달관한 사람처럼 살아가고 있지 않은지요 그것은 자신을 속이는 일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무지와 지혜 없음을 솔직히 인정하고 시편 의 기자처럼 하나님께 나아가 진리의 길로 인도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 드려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가는 인생 길에는 위험한 거짓의 지 뢰밭과 악의 함정이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아는 척하고 멋대로 나가다는 틀림없이 지뢰를 밟거나 함정에 빠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험난한 인생길을 헤쳐나가려면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절대 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이제 다시 성령님 강림 주일을 맞이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성령님이여 오셔서 우리를 진리의 길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끝까지 믿음을 지켜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승리하는 여러분 의 생활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령님 강림은 세계 역사를 바꾸는 놀라운 사건이 되었고, 성령님은 오늘도 우리 가운데 역사 하시면서 계속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고 계신 것입니다. 길을 잃은 현대인 성령님이 오셔서 변화된 제자들의 모습에서 우리가 먼저 배울 것은 성령님은 우리를 진리 가운데 인도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인간은 길을 잃은 사람과 같습니다. 우리 인간은 이 땅에 태 어나면서 자기의 길을 출발하였는데, 막상 어디로 가야할지 알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는 부모의 돌봄과 가르침 속에서 자라면 서 부모가 인도하는 대로 따랐지만, 성장하여 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하면서부터는 자기 의식이 생기고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기 시 작을 합니다. 그러나 대체로 학교를 다니면서 그 학교에서 가르치는 대로 자기의 삶을 보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현대 교육이 분명한 가치 관을 가지고 있지 못한 채 무조건 대학입시만을 위한 교육에 초점을 마치다 보니 인생이 무엇이며, 그 인생의 길을 어디로 향하여 가야할 지를 가르쳐 주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대학에 들어가면 좀더 깊은 학문의 연구를 통해 인생을 배울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요즈음 대학은 돈이 되지 않는 학문 즉 인문학이나 인문교육은 인기가 없어 학과를 폐지하는 경우가 많고 오직 돈이 되는 과학기술과 관련된 학문만이 인기가 있어서 이 대학 을 거쳐 나오는 사람들은 대체로 기능인간으로 역할을 하게 되는 것 입니다. 사실상 우리 나라 대학들은 종합적으로 학문하는 대학교는 없어지고 기능만 익히는 전문대학으로 전락하여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인생이 무엇이며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알 턱 이 없는 것입니다. 철학을 공부하면서 인간의 문제를 깊이 연구해도 알 수 없는데, 그런 문제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은 채 오로지 과학 기술만을 익힌 인간이 자신을 깊이 있게 통찰하지도 못할 것이며, 자 기가 익힌 과학기술이 만들어내는 것들이 결과적으로 인간을 파멸로 이끌며, 하나님의 세계를 어지럽히는 무서운 독소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거기에 파묻혀 자기의 삶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총체적으로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우리를 교육 시키고 우리 의식을 지배하는 언론이 개혁되지 않은 채 자기 배만을 위하여 동분서주(東奔西走)하고 있고, 교육계는 이미 오래 전부터 갈 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으며, 이 사회를 이끌어 갈 지도적 지 식인들도 주관(主觀)과 신념을 갖지 못한 채 보따리 장사꾼처럼 이리 저리 팔려 다니고 있으며, 심지어는 진정한 인생관과 가치관을 제시 하여야 할 종교들마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정치인들이 신념과 주관 없이 이합집산(離合集散)을 반 복하면서 밥그릇을 위해 더럽게 싸우는 모습은 우리를 더욱 절망케 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말살하고 인권을 탄압하였다고 욕먹던 대 통령이 어느 날 갑자기 나라를 구한 위대한 지도자로 둔갑을 해버리는 이 어지러운 현실 속에서 우리는 무엇이 옳은 것이며, 무엇이 틀 린 것인지 종잡을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는 어디로 가야할까요 우리의 가치관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지금 무엇 을 위해 살고 있습니까 우리는 지금 완전히 길을 잃고 있는 것입니다. 동서남북을 분간할 수 없는 깜깜한 밤중에 우리는 길을 잃고 이 리저리 방황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우리의 갈 길을 밝혀 줄 인도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어디에도 우리를 인도하 여 줄 인도자는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편 기자처 럼 하나님께 조용히 엎드려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 주의 길을 나에게 보여 주시고, 주께서 가시는 그 길을 내게 가르쳐 주십시오. 주님은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가르쳐 주십시오. 나는 종일 주님만을 기다립니다."
시 25:4-5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셨다는 사실에 절망하였던 제자들,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소식에 당황한 제자들, 주님이 부활 후 40일 만에 승천하여 가버리신 다음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였던 제자들이 다락방에 조용히 모여 기도할 때 성령님의 임재를 체험하면서 그들은 무엇을 해야할 지를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이 혼란 시대를 살면서 쓸데없이 이리저리 방황하지 말고 조 용히 주님 앞에 나가 기도하므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려야 하겠습니다. 성령님이 오시면 우리가 진리를 깨달아 알게 되며, 우리를 그 길 로 인도하여 주시기에 더 이상 우리가 방황하지 아니하고 진리의 길 을 따라 바른 삶을 이룩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진리를 알게 하시는 성령님 성령님께서 사도 바울과 함께 하시므로 그의 길을 인도하셨습니다. 바울은 회심 후 아라비아에서 3년을 지내면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 라 진리를 깨우쳤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과 달리 이방 인 선교에 전력을 기울였는데, 그것은 '모든 사람은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을 막론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진리는 새로운 깨달음이 었습니다. 다른 사도들이 아직 거기에 이르지 못하였을 때 바울은 이 방인의 사도로 자처하면서 3차에 걸친 전도 여행에 나섰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남긴 '갈라디아서'와 '로마서'는 바로 그의 깨달음을 적 고 있습니다. 결국 이런 깨달음은 완전히 기독교가 율법주의의 테두 리를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그 진리를 선포하게 한 동기가 되 었습니다. 바울은 이 깨달음 때문에 육체적으로 고달픈 삶을 살 수밖 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충실하게 따랐고, 그래서 끝까지 선한 싸움을 다 싸웠던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깨달음을 얻고도 바울처럼 헌신하기보 다는 안락한 삶의 길을 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세 기독교는 권력 과 야합하면서 타락하게 되었고, 그런 중에서 성령님의 부르심을 따른 몇 몇 개혁자들이 일어나 진리의 횃불을 밝혔던 것입니다. 얀 후스 같은 사람은 교황청에 도전했다가 화형을 당했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려던 의인들이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마틴 루터라는 한 수도자에게 성령님이 임하셨고, 그가 말씀을 연구하는 중에 큰 깨달음을 얻고 종교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전 구라 파를 뒤흔들었고, 개혁의 물결은 겉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가 교회를 새롭게 하였던 것입니다.
루터를 비롯한 칼빈, 쯔빙글리, 그리고 스코틀란드의 존 녹스 같은 사람들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성경의 말씀을 통해서 새로운 진리를 깨달아 알게 되었고, 그 진리에 서서 교회를 개혁하는 일에 헌신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성령님이 임재 하시면 우리를 어디로 인도 하실까요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목사가 이단인 줄 알면서도 교계 혹은 정계 지 도자들이 그를 받아 드리고 그를 묵인하고 있을 때, 한 젊은 목사가 그 이단성을 파헤쳐 고발하였던 것입니다. 방송국 측에 자료를 제공 한 사람도 바로 이 젊은 목사였습니다. 그는 우리 교단 이단 사이비 연구소 소장이기도 합니다. 극동방송은 그런 목사에게 방송시간을 제 공하고도 아직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복음 방송을 자처하고 있는 극동방송조차 그 사명을 망각하고 있는 이런 현실로 인해 오늘 한국 교계가 어지러운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가 너무 현실적 가치만을 중요시하여 이상과 원칙 을 버리고 있는 때, 성령님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현실보다는 이상과 원칙을 따르도록 인도하실 것입니다. 모든 것을 경제 논리의 잣대로 만 재려고 하여 돈이 되지 않는 것은 가차없이 버리는 오늘의 현실을 비판하면서 성령님은 우리로 하여금 돈이 되지 않아도 가치 있는 것, 경제적으로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아도 사람과 이 땅을 풍요롭게 하는 문화적 소산들을 새롭게 보도록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큰 것, 일등 하는 것, 부자 되는 것에만 몰두한 나머지 작은 것, 가난한 것, 소박한 것들을 모두 내어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공공근로 사업으로 숲 가꾸기에 동원된 사람들이 산에 큰 나무만 남겨 놓고 나무든 풀이든 덤불이든 모조리 다 베어버리란 명령을 받 고 그대로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산 에는 나무만 있어서는 안되고 덤불도 잡풀도 작은 관목들이 있어야 서로 어우러져 우거진 숲을 만들어 내는 것인데, 작다고 다 잘라버리는 이 사고 방식이 오늘 우리의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오늘 우리에게 오시면 바로 이런 지배 논리, 힘의 논리에 대 항하여 작은 것도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새로운 가치, 새로운 세계 를 이루도록 인도하실 것입니다. 농업은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여 박정희 대통령 이 후 계속하여 축소시켜 왔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 들었고, 농촌은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시골 학교들은 상당수 폐교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경제위기라는 경제적 위기를 맞이하면서 수많은 실직자들이 생겨나고 말았는데, 농사 짓는 인구가 많았더라면 비록 경제 발전은 더뎠어도 오늘 과 같은 고통은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경제 발전이라는 끝도 없는 경쟁 논리 때문에 우리는 도덕성을 버렸고, 가정도 버 렸으며, 사회도 자연도 모두 파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경제 발 전을 이룩하였다고 그 대통령을 위대하다고 칭찬해 대는 오늘의 우리 의 사고가 한심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끝없는 경쟁 사회에서 일등 하라고 몰아대는 오늘의 현실을 똑바로 보면서, 우리는 과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며, 바른 삶의 길이 어디에 있는가를 찾도록 인도 하시는 성령님의 임재를 기다려야 하겠습니다. 유전 공학의 발전은 여러 가지 놀라운 사실들을 이루고 있는데, "이것은 핵 재앙 못지 않거나 그보다 더 심각한 재앙을 예고하는 기 술임이 분명한데도 지금 거의 아무런 사회적 저항 없이 우리의 삶 속 으로 밀물처럼 밀려들어오고 있습니다."(녹색평론, 1999. 5-6월호, p.3.)
유전공학을 비롯한 생명 조작기술들은 늘 인류의 식량문제를 해 결하고, 의료의 한계를 극복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그런 문제 해결 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생명의 질서를 파괴하고 무서운 재앙을 가져올 것이 분명한 이 때, 성령님은 우리로 생명을 있게 하신 하나님을 두려워 하면서 인간의 탐욕에 바탕한 기술 개발 대신에 하나님이 주신 것을 고루 나누어 먹는 사랑을 실천하라고 우리를 깨우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본문에 "그분 곧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13절)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진리는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럼에도 진리의 영이 너희를 나 에게로 인도하실 것이라고 하지 않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고 말 한 것은 우리로 현실을 떠난 추상적인 신앙, 사후 세계만을 바라보는 신앙에 머물지 않고, 오늘 여기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들을 보면서 그 혼란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진리의 세계로 나가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훗날 하나님이 계신 천국에 이르게 될 때는 성령님이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때에는 우리 가 누구나 다 진리를 알고 진리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이 땅에 살고 있는 동안에는 진리보다는 거짓과 불의가 더 욱 활개를 치기 때문에 성령님이 오셔서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 시지 않으면, 우리도 어둠 가운데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파멸에 이르 게 되고 말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이 세상의 거짓과 불의, 그럴듯 한 명분을 내세우며 잠식해 오는 악의 실체를 파악할만한 지혜나 능 력을 가지고 계십니까 그럴만한 능력도 지혜도 없으면서 우리는 마 치 달관한 사람처럼 살아가고 있지 않은지요 그것은 자신을 속이는 일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무지와 지혜 없음을 솔직히 인정하고 시편 의 기자처럼 하나님께 나아가 진리의 길로 인도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 드려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가는 인생 길에는 위험한 거짓의 지 뢰밭과 악의 함정이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아는 척하고 멋대로 나가다는 틀림없이 지뢰를 밟거나 함정에 빠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험난한 인생길을 헤쳐나가려면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절대 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이제 다시 성령님 강림 주일을 맞이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성령님이여 오셔서 우리를 진리의 길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끝까지 믿음을 지켜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승리하는 여러분 의 생활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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