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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돌려주라 (왕하8:1-6)

본문

행기를 타보신 일이 있으실 것입니다.높은 곳에서 설악산의 전체를 바라보면 기 묘한 산세와 바위들이 어울러진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고 합니다.그러나 이렇 게 멀리서 보는 것이 설악산의 아름다움의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멀리서 보는 전체의 아름다움도 있지만 가까이서 보는 산속에 핀 조그만 에델바이스라든가 아기자기한 폭 포나 작은 바위들 하나하나 역시 아름다운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위대한 영웅이나 기적적인 이야기들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모세와 홍 해,여호수아와 여리고성,삼손의 힘,다윗과 골리앗,다니엘 등 많은 사람과 사건들이 우리 에게 감동과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그러나 성경 속에는 마치 멀리서 볼 때도 잘보이는 훌륭한 경관과도 같은 이러한 위대한 역사들 외에 조그맣게 숨어있는 듯한 작은 사건 들,그냥 읽고 지나갈 만큼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것같은 사건들 속에서도 역시 여호와 하나님의 은헤와 사랑을 말해주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 있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 우리가 함께 봉독한 말씀의 본문이 이런 경우입니다.오늘의 본문은 이스라 엘 역사에도 관계없고 하나님의 구원사적인 성경의 맥락과도 동떨어진 내용입니다.어떤 영웅의 이야기도 아닙니다.특별한 기적의 사건도 아닙니다.굉장한 영적인 의미를 포함 한 내용도 아닙니다.어떤 상징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내용도 아닙니다. 우선 본문의 무대를 보십시다.성경의 위대한 일들은 거의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이루어 졌습니다.그러나 수넴이라는 동네는 나사렛에서도 11㎞이상 떨어진 시골입니다.평범하 고 작은 농촌마을 입니다.본문의 주인공인 여인은 어떻습니까.그녀는 남편과 아이를 가 진 평범한 가정주부입니다.특별한 권세나 지위가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아무 자랑할것 도 없는 우리와 같은 평범한 서민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 평범한 여인이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되었습니다.먼저 오늘 이 여인 을 통하여 나타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축원합니다.
 본문의 배경과 내용 부터 살펴 보면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당시의 시대는 북 이스라엘의 가장 악한 왕과 왕비인 아합왕과 이세벨왕비가 통치하던 시대였습니다.이러한 영적인 암흑기를 혜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세우신 선지자가 엘리 야의 후게자인 엘리사 선지자 였습니다.
그는 많은 이적들을 행하며 하나님의 살아계심 과 역사하심을 전하며 백성들의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이렇게 선지자로서 사역하는 엘리사 선지자를 마음을 다해 도왔던 두 여인을 왕하4장 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한 여인은 사르밧이라는 동네에 사는 여인이었고 오늘 본문의 여인은 수넴이라는 동네에 사는 여인이었습니다.이 여인에 대해서는 4:8-37까지 기록되 어 있습니다.그녀는 아마 평소 부터 엘리사를 존경했던것 같습니다.어느날 자기의 동네 를 지나간다는 소식을 듣고 음식을 준비하고 다락방을 치고 정성스럽게 단장하고 편히 쉴수 있도록 처소를 준비했습니다.그리고 엘리사를 간권하여 모셨습니다.그냥 초 청한 것이 아니라 간곡히 권하고 간청해서 모셨습니다. 엘리사는 고마운 마음에 그녀를 불러서 물어보니 그집에 아들이 없었습니다.그래서 엘 리사는 아들을 얻을 것이라는 축복의 메세지를 선물로 주었습니다.얼마후 엘리사의 축복대로 아들을 얻었고 얼리사는 다시 갈멜산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만 그 귀한 아들이 열병에 걸려 갑자기 죽게되었습니다.이 여인은 즉시 나귀 를 타고 엘리사를 부르러 갑니다.엘리사는 다시 그 가정에 은혜를 베풀어서 그 아이를 살려줍니다. 그 후 얼마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그리고 오늘 본문1절의 말씀과 같이 어느날 엘리사 가 수넴 여인의 집을 찾아 왔습니다.그리고 이곳을 떠나라고 합니다.이 땅은 얼마후 기 근이 들것이니 피했다가 오라는 것입니다.하나님의 종을 하나님을 대접하는 마음으로 극진히 대접했던 그 선한 행위를 하나님은 잊지 않으셨습니다.위대한 선지자인 엘리사 를 친히 그 집에 보내셔서 그녀를 돌보신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선대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를 기억하십니다.그 여인은 자신이 베풀었던 몇 년전의 행위를 까맣게 잊었었습니다.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종인 엘리사 를 선대한 그 행위를 기억하고 계셨습니다.여러분의 주위에는 누가 있습니까.누가 여러분의 도움을 구합니까. 그 사람이 누구이든 선대하고 정성을 베풀면 혹 그 사람도 잊고 나 자신도 잊어버릴지는 몰라도 하나님은 분명히 기억하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베풀 기를 주저하는 이유는 지금 당장 부담이 되니 손해보는 것같고 아까운 생각 때문일 것 입니다.그러나 이런 생각은 지혜로운 생각이 아닙니다.우리가 은행에 현금을 저금하면 나중에 현금과 이자를 탑니다.당장 손에서 돈이 없어진다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어찌 은행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은행은 전쟁이 나면 불타버립니다.이자도 겨우 10%정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히 안전하며 하나님의 이자와 보너스는 우리가 감당할수 없도록 넘치는 것입니다.은행은 믿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은 왜 못믿는단 말입니까!.이 지혜가 여러분에게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2절에 보니 그 여인이 어디로 갔습니까.이웃나라인 불레셋땅으로 갔습니다.거기서 7년 을 우거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행하여 라는 말씀이있습니다. 정들었던 땅과 친척과 고향을 떠나는 것이 쉬운일이 아닙니다.더구나 이방나라인 낯선 타국에 가는것입니다.그러나 수넴여인은 과감하게 순종하여 떠났습니다.여러분 믿음이 있다는 증거가 무엇입니까.그것은 결단입니다.의지로 나타나는 행동입니다.마음은 보이 지 않지만 믿음은 행위로 볼 수있습니다.신앙생활에도 이와같은 결단이 필요합니다. 아직 기근이 오지도 않았습니다.어디가서 무엇을 하며 산단 말입니까.아무리 생각해도 떠날 이유가 없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여인은 수넴을 떠났습니다.무엇을 믿었습 니까.말씀을 믿었습니다. 기도하면 응답해 주신다는 말씀을 믿고 기도하는 것이 믿음입니다.주를 위해 충성봉사 하면 하늘에의 상이 있다는 말씀을 믿고 충성하는 것이 믿음입니다.범사에 감사하라면 감사하는 것이 믿음입니다.항상 기뻐하라면 그 말씀대로 기뻐하는 것이 믿음입니다.자 꾸 내 생각과 과 내 이성을 내세우면 성경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한낱 소 설책이나 교양서적에 불과합니다.하나님의 말씀은 비판과 토론의 대상이 아닙니다.성경 은 내 의견을 묻는 것이 아니라 창조자이신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하는 것입니다.하나님 의 권위를 믿고 순종하여 축복의 길을 갈것인가,아니면 불 순종하여 세상에서 마음껏 쾌락을 추구하며 살다가 결국 멸망의 길을 갈것인가를 선택하여 결단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백성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마지막 설교를 했습니다. 너희 섬길자룰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집은 하나님을 섬기겠노라 날마다 말씀 앞에서 바른 결단을 하는 축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3절에보니 7년이 지난후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이찌된 일입니까.두고갔던 자기의 집과 전토가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누군가가 다 가져버렸고 사람들과 재판관에게 호소 해도 찾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그래서 급기야는 왕에게까지 나가서 하소연하기에 이 르렀습니다.이때 하나님은 엘리사의 종인 게하시를 왕에게 보내셔서 그 여인이 엘리야 에게 행했던 선행과 아들을 살렸던것과 엘리사의 말에 따라 불레셋으로 갔던 것을 말 하도록 하셨습니다.
왕은 그 말을 듣고 6절에 3가지 특별명령을 합니다.청째는 이 여인 의 문제의 효과적인 해결과 집행을 위하여 왕의 직속으로 특별 담당검사를 임명합니다.둘째는 이 여인의 소유를 완전히 다 돌려줄것을 명합니다.셋째는 7년 동안 이 여인의 밭에서 소출한 모든 것을 계산하여 다 돌려주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우리는 또 이 분분에서 하나님께서 왕을 통하여 이 여인에게 베푸신 은총을 보며 몇 가지 은혜를 깨닫습니다. 청째는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을 순종한 사람에게 결코 손해를 주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여인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를 상상해 보십시다.사람들은 비웃었을 것입니다.사람들은 그녀의 재산을 다 잃어버렸다고 동정했습니다.많은 손해를 보았다고 수근 거렸습니다.그러나 하나님은 그 여인의 모든 재산과 그 동안의 소출까지 계산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세상사람들이 볼 때 손해보는 것처럼 보일때도 있습니다.아니 나 자신 스스로 생각할 때도 예수믿는 것이 손해같 이 보일 때도 있습니다.엊그제 한 신학생으로 부터 이런 간증을 들었습니다.자신이 예수믿기 전에는 우중충하게 성경책을 끼고 꽤제제한 가방을 들고 교회가는 사람들을 보 면며 생각하기를 이 화창한 봄날에 갈데가 그렇게 많은데 무엇 때문에 교회를 가나 하 면서 얼마나 불쌍하게 생각했는지 몰랐답니다. 남자들은 사람들은 교회보다 천주교가 더 좋다고합니다.왜냐고 물으면 천주교는 술도 담배도 허용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신앙생활이 은헤가 넘쳐서 기쁘고 감사할 때는 쉽 습니다.그러나 은혜가 마를 때는 신앙생활처럼 힘든 것이 없습니다.교회가는 것이 힘이 들고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어렵고 부담이 됩니다.남들 하는대로 하지 못하니 손해보는 것만 같습니다.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런말을 합니다.차라리 지옥도 천국도 몰랐으면 다행인데 알자니 교회가지 않을수 없고 가자니 힘들고 그래서 고민이라는 것입니다.혹 여러분중 이런 고민에 빠진 사람은 없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은 결코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그 말씀을 따라 산 사람들에 게 손해를 주시지 않습니다.오히려 더 많은 축복과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그래서 사 도바울은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생각컨데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수 없도다 라고 말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은 약자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수넴여인은 아무 힘도 없는 사회적 약자였습니다.명예도 권세도 없습니다.그저 약한 서 민일 뿐입니다.그러나 하나님은 왕을 감동시켜서 그 여인의 소원을 이루게 해 주셨던 것입니다.신명기14:27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의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 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시68:5에는 그 거룩 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 라고 하였습니다.심 지어 신명기27:19에는 약자인 고아나 과부들을 억울하게 대하는 자들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객이나 고아나 과부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 라 시72편 13절에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불쌍히여기시 궁핍한 자의 생명을 구원하며 저희 생명을 압박과 강포 속에서 구속하시리니 저희의 피가 그 목전에서 귀하리로다 . 주님께서 제자로 택하시고 만난 사람들을 보십시다.그들의 대부분은 모두 어부들이며 병든자들이며 가난한 자들이며 소외당한 자들이며 버림받은 사람들입니다.주님은 그들 을 사랑하시고 그들을 쓰셨습니다.하나님은 강한자들, 있는자들의 하나님이 되시지 않는다는 말이 아닙니다.하나님은 강한자나 약한자나 모두에게 똑같은 하나님이 십니다. 그러나 특별히 세상에서 약자로 여김받는 사람들에 대하여 하나님은 특별한 배려와 관 심을 가지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혹 가난하고 약하고 초라한 존재가 된다 할 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에게 사랑과 은헤를 주시는 것입니다.여전히 긍휼과 사랑 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의 평범한 일에까지도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사실 성경의 중요한 내용들을 순서로 비중을 보십시다.오늘의 내용은 아무리 생각해봐 도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수넴여인의 문제가 이스라엘역사나 사회에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닙니다.신앙에 모범을 제시하는 내용도 아닙니다.선자자나,제사장이나,탁월한 지도자 의 문제도 아닙니다.이일로 인하여 미래에 어떤 특별한 상황이 이어지는 것도 아닙니다.이후로는 수넴여인의 이야기는 성경에 다시 나타나지 않습니다.이 일은 아주 평범한 한 여인의 개인적인 일입니다.누구에게나 일어날 수도 있는 평범한 일입니다. 이 일을 우리 입장에서 보지말고 이 큰 우주를 다스리시는 만왕의 왕이시며 창조자이신 하나님 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얼마나 평범하고 대수롭지 않은 일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 여인의 문제를 해결해주시고 은헤를 베푸셨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역사와 교회와 위대하고 특별한 사건에만 관심 이 계신분이 아닙니다.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생활의 문제들에게까지 하나님은 관심을 가 지시고 계십니다.직장으로 고민하는 문제,결혼으로 고민하는 문제,성적으로 고민하는 문제,가정과 자녀들의 문제로 고민하는 문제,사업으로 걱정하는 문제 등 우리가 평범하게 격는 일들에게까지 하나님은 우리를 돌보시는 것입니다.주님은 이런 하나님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신바 되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격는 일상생활의 문제들을 하나님께 아뢰시기 바랍니다.은총을 구하시기 바랍니다.하나님은 분명히 놀라운 은총과 축복으로 응답해 주실 것 입니다.
결론적으로 6절의 말씀을 보십시다. 하나님께서 왕을 통하여 주신 명령은 이렇습니다. 다 돌려주라 완전한 회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잃었던 것을 찾아 주라는 명령입니다. 나봇이라는 평범한 농부가 있었습니다.그에게 재산은 단 하나아름다운 포도밭이 있었 습니다.그 밭은 아합왕의 궁궐 곁에 잇었습니다.왕은 그 포도밭이 무척 탐이났습니다. 얼마나 기름지고 아름다웠든지 나봇에게 그 밭은 팔으라고해도 나봇은 조상으로 부터 물려받은 것이니 팔수가 없다고 했습니다.왕은 이 일로 인하여 근심하게 되었습니다.급 기야 왕비 이세벨은 이런 왕의 고민을 알고 억울한 누명을 씌워서 나봇을 죽이고 그 포도밭은 왕에게 선물로 주고 말았습니다. 아무도 모를줄 알았지만 하나님은 나봇의 억울함을 아셨습니다.그리고 엘리야를 보내 셔서 심판의 메세지를 전하게하셨습니다.하나님은 아무 힘도 없이 당할수 밖에 없었던 약자인 나봇을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왕하21장에 기록된 이 사건의 주인공 나봇은 역시 그 이후 성경에 등장하지 않습니다.그 포도밭으로 인하여 어떤 특별한 역사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단지 나봇 한 사람을 위하여 하나님은 엘리야를 보내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한 여인의 억울했던 이야기를 살펴 보았습니다.그 여인이 땅을 되찾았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중요한 것은 우리와 같이 평범한 한 사람에 대한 하나님 의 관심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을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더 많은 축복으로 돌 려주시는 분이십니다.우리와 같이 약한 자들을 돌보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격는 일상생활의 일들에게 까지도 은혜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역사에 영향을 미치는 어떤 특별한 일들에만 관심이 있을 것이 라고 생각하시지는 않았습니까. 그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그래서 우리 의 아픔과 고민과 문제들을 돌보시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는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혼자 고민하거나 걱정하지 마십시요.하나님께 기도하십시요.게하시를 보내고 왕을 움직이셨듯이 환경을 통하여 또는 사람을 통하여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다 돌려주라는 완전한 해결의 메세지를 주실 것 입니다. 오늘도 좋으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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