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에 생각할 것은 (요15:1-6)
본문
오늘 이 성경 말씀 가운데는 무서운 경고의 말씀/ 심판의 말씀이 있습니다. 2절에,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하여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과실을 더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 끗게 하시느니라 매우 무서운 경고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6절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저는 가지처럼 밖에 버 리어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이 역시 아주 무서운 심판의 말씀입니다.-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익한 나뭇가지, 무용지물은 심판을 받게 된다고 하는 무서운 경고의 말씀입니다. ━ 곧 이 말씀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고, 거룩하 시고 의로우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합당한 삶의 열매/ 의의 열매/ 믿음의 열매/사랑의 열매/ 평강의 열매/ 전도의 얼매/ 신앙의 열매 를 맺지 못하는 자는, 과실을 맺지 못하고 땅만 버리는 무익한 나무와 같이, 반 드시 도끼로 찍히어져 불에 던져지는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는 무서운 경 고의 말씀입니다.
※이런 우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시골 마을 한 처녀가 시집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 처녀가 지금까지 정성껏 먹이며 키웠던 가축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돼지, 개, 소, 말들이 다 모였습니다.━ 저들은 지금까 지 자신들을 정성껏 돌보며 길러 주었던 고마운 주인 아가씨가 시집을 가게 되 었으니, 이 경사스런 일에 가만있을 수 없지 않으냐 고 하면서/ 무엇인가 시집 가는 주인 아가씨를 축하하기 위해서, 자기들이 몸을 바쳐 희생을 하고, 감사를 표하는 무슨 좋은 일을 하나 하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누가 그 일을 담당할 것인가 하는 것을 놓고 의논하던 끝에, 저들은 한 가지 결정을 보았습니다. 그 결정은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 평소에 주 인으로부터 많은 은혜를 받았지만, 그러나 주인을 위해 별로 보답을 한 것이 없는 자, 곧 많은 은혜를 받고 살았지만 그 은혜에 별로 보답하지 못하고 살았던 가축이 있으면, 그가 대신 희생을 하여 주인께 감사를 표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것을 가리기 위하여 이제 가축들은 하나하나 나서서 자기가 평소에 주인에 게 어떤 일로/ 어떻게 은혜에 갚고/ 보답을 했던가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을 하 기 시작했습니다.
━ 먼저 소가 일어나서 말했습니다 "나는 주인을 위해, 농사를 지어 주었다. 밭을 갈아주고 무거운 짐을 날라다 주었다. 내가 없으면 주인은 아마 힘든 농사 를 제대로 지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라고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 다음은 개가 일어나서 "나는 주인을 위해 잠을 자지 않고 늘 도둑을 지켜 주었다"고 역시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 다음은 또 말(馬)이 일어나서, 나도 주인을 위해서 무거운 짐을 날라다 주 기도 하고, 또 주인을 등에 업고 먼 거리를 태워 주기도 하였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모두가 다 주인을 위해서 큰 공적이 있음을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 마지막으로 돼지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돼지는 그 순간 도무지 할 말이 없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주인을 위해서 자기가 한 일이 별로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주인이 베풀어주는 은덕으로 지금까지 어떤 가축들보다도 평안하게 잘 먹 고 잘 살아 왔습니다. 그래서 피둥피둥 살도 많이 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가 주인을 위해서 한 일이라고는 생각이 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날 가축 회의는 아주 간단히 끝이 날 수 있었다는 애깁니다. 곧 지금까지 주인에게 많은 은혜를 받고 살았음에도, 그 주인을 위해 아무런 보답도/ 감사도 표하고 살지 못했던, 돼지가 주인 아가씨의 결혼을 위해, 죽음으로서, 그 살코기를 주인께 바쳐 감사를 표하기로 결정을 보았다고 하는 것입니다.-그래서 아마 우리는 잔치 때마다 돼지를 잡는가 봅니다. 요즘은 몰라도 전 에는 누구 집에서든 잔치를 했다 하면, 꼭 돼지를 잡지 않았습니까 아무튼 돼 지가 잔치의 희생 제물이 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이유였음을 이 동화를 통하여 우리는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요
※ 누가 복음 3:6절 이하에 보면,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의 비유"가 나옵니다. 과수원 주인이 있고, 또 그 과수원을 돌보며 지키라고 명을 받은 과원 지기 머슴이 따로 있었습니다. 머슴은 날마다 물을 주고 거름을 주면서 열심히 무화과나무를 잘 키웠습니다. 드디어 무화가 나무에 열매가 열릴 만 할 때가 되었습니다. 주인이 와서 보 았습니다. 그러나 웬일인지 그 나무에는 열매가 하나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주 인은 매우 섭섭한 마음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다음해에 또다시 와서 보았습니다. 역시 그 나무에는 열매가 열리지 않았 습니다. 내리 삼년 동안 그렇게 계속해서 열매가 얼리지 않자, 드디어 주인은 결심을 했습니다. "여봐라/ 이 나무를 당장 찍어 버리라/ 어찌하여 땅만 버리고 있느냐" 이것이 바로 열매를 맺지 못한 무익한 나무의 마지막 비참한 운명이었 습니다. 마태복음 21장에도 비슷한 말씀이 나옵니다.
━ 주님이 가시던 길가에 무화 과나무가 있었습니다. 마침 주님은 몹시 시장하셨기 때문에, 그 무화과나무에 서 열매를 얻기를 바랐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무화과가 있나 살폈습니다. 그러나 그 나무에는/ 잎은 참 무성한데, 잎을 보아서는 분명히 뭔가 열매가 있을 법도 한데, 무화과 열매가 하나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주님이 무 어라 말씀하셨습니까 "이제부터 너는 영원토록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저주 를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무화과나무는 즉시 말라 죽어 버렸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이 요한 복음 15장 말씀도. 역시 같은 뜻의 말씀입니다.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하여 버리시고, 무 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과실을 더 (많이)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 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저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처럼 (잘라져서) 밖에 버리어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들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 무익한 나무/ 결실 하지 못하는 나무/ 열매가 없는 무익한 나무는 결국 잘리어져서 불에 던지어지고 말 것이라고 하는 무서운 심판의 경고 의 말씀입니다. 계절은 어느듯 가을의 문턱에 성큼 들어섰습니다. 아직도 한 낮은 섭씨 30도 를 오르내리는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서늘한 가을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이불을 덥지 않고는 잘 수 없을 정도로 서늘해졌지요-바야흐로 천고마비/ 하늘 높고 말이 살이 찐다고 하는 천고마비의 계절이 분명히 찾아 왔습니다.-사 계절 중에서 가을은, 서늘한 날씨가 우선 무엇보다 참 마음에 참 듭니다. 그렇지요 너무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는 서늘하고 상쾌한 날씨는 과연 계 절 중에 최고입니다. 일년 내내 이런 가을 날씨만 계속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을은 날씨가/ 기온이 무엇보다 참 마음에 들고 좋습니다. 그리고 가을은 또 무엇보다 결실의 계절로서 우리에게 풍요로운 열매를 가져 다주는 참 유익한 계절이기도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 어떤 계절보다 고맙고, 감사한 계절이 바로 가을입니다.-그래서 우리의 추수 감사절도 이 가을에 지키고 있습니다-들에는 오곡이 누렇게 익어 가고 있고, 나무나무 마다 에는 알알이 열매가 탐스럽게 익어 가는 결실의 계절이 바로 가을입니다. 그런가 하면, 또한편으로, 이 가을은 심판의 계절이기도 합니다.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내 땀을 흘리며 힘써 가꾼 농부에게는 풍요로운 수확을 보장하는 결실의 계절입니다만, 그러나 혹 그렇지 못한 농부들, 곧 봄에 씨를 뿌린 것이 없는 농부, 여름에 힘써 땀을 흘리며 가꾸지 아니하고, 게으름을 피우며 허송세 월한 농부에게는, 결실이 가을이 되어도 아무 것도 거둘 것이 없는 처량한 계절 /한심한 계절이 되고 말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시간/ 우리는/ 또한 우리 인생의 가을도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과연 풍성한 인생의 수확을 거두는 흐뭇 한 인생의 가을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거둘 것이 별로 없는 한 심하고 쓸쓸한 인생의 가을이 되고 있습니까 혹 풍성하지 못한 가을이라고 한다면, 그 이유는 뭐라고 해도, 여러분 자신에 게 있었음을 변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곧 남들처럼 봄에 열심히 씨를 뿌린 일 이 없었거나, 또 여름에 땀흘려 성실히 가꾼 노력이 부족하였기 때문임이 틀림 없을 것입니다. 열매는 절대로 속이지를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 인생의 깊은 가을에 와서/ 거둘 것이 별로 없는 사람은 더 없이 불행하 고 비참한 사람입니다만, 그러나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것이 더욱 슬픈 일일 수도 있습니다. 다시 회복할 길이 영영 없습니다. 계절의 가을은 보내고 다시 또 맞지 할 수 있습니다. 곧 계절은 돌고 돌아 순환하기 때문에, 겨울이 지나면 다시 또 봄이 돌아 와서, 다시 한번 씨를 뿌리 고 열매를 기대할 수 있지만, 그러나 우리 인생의 계절은 전혀 그렇지를 못하다는 말입니다. 단 한번으로서 영원히 끝입니다. 영원히 다시 회복할 수 없고,두번 다시 기회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다시 되 돌아오지 않는, 오직 단 한번뿐인 인생을 우리가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인생은 운동 경기처럼 다시 연습할 수 없고, 다시 반복할 수 없고, 다시 기회 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고로 단 한 순간도 우리는 우리 인생을 헛되이 소비하 거나 소모하며 보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특히 여기 우리 젊은이들 /꼭 기억할 일입니다. 아직도 인생의 봅이나 여름철 에 있는 우리 젊은이들은 깊이 명심할 일입니다.
-한번 지난 인생의 계절은 영원히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다고 하는 이 이치를 깊이 깊이 마음에 새기고, 부 디 풍요로운 여러분의 가을을 맞이하기 위하여, 지금 최선을 다하여/ 땀흘리며 심고 가꾸시기 바랍니다. 빈곤의 계절/ 아무 것도 거둘 것이 없는 쓸쓸하고 빈 곤한 여러분의 쓸쓸한 인생의 가을을 맞지 하지 않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러나 이 보다 더 심각하고 중요한 것이 아직 하나 더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신앙의 가을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신앙의 가을은 지금 어떻습니까 거둘 열매가 좀 있는 것 같습니까 알알이 풍성한 가을의 열매를 지금 맺어 가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혹 잔칫집 돼지처럼, 아무리 생각해도 주인께 받은 은혜는 있지만 보답한 것이 하나도 없어서, 죽음으로밖에는 대신 할 수밖에 없는 한심한 사람 은 혹 우리 가운데 안 계실까요 혹은 그 가지가 삭뚝 잘리어져서 불에 던져져서 불태워질 수밖에 없는 무익한 가지/ 잎만 무성한/ 신앙의 열매가 하나도 없는/ 한심한 사람은 혹 없을까요 여러분, 이 시간 여러분, 자신을 한번 깊이깊이 성찰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과연 나의 신앙의 나뭇가지에는 얼마나 풍성한 열매를 맺고 있는지"를 말입니다. 성경은 여러 번, 우리 신앙인의 열매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먼저, 우리 신앙의 열매는 바로 복음 전도로서 맺어지는 전도의 열매라고 했 습니다.-그래서 우리 교회도 이 열매를 거두기 위하여 올 신년 초에 113 전 도 전략을 내 걸고, 저렇게 벽에다 크게 써 붙여 놓고, 여러분에게/ 한 분이 최 하 3명씩은 꼭 태신자를 정하여, 이 한해가 다 가기 전에, 그 결실을 거둘 수 있도록 최선을 다히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쯤 여러분 어떻습니까 과연 그 결실이 좀 맺혀지고 있는 것같습니까 농부가 밭에 씨를 뿌린 후에는 열심히 김을 매고, 거름을 주며 정성껏 키우듯 이-전도하기로 작정한 태신자를 위하여/ 쉬지 않고 기도하고, 정성으로 다 한 분들은 틀림없이 지금쯤 어떤 결실이 반드시 눈에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씨는 뿌렸지만, 거름도 주지 않고, 김도 안 매주는 게으른 농부처 럼, 비록 태신자는 정했으나 그를 위해 별로 기도도 하지 않고, 별다른 노력도 하지 않고, 게으름만 피우며, 지내 오신 분들이라면 이 가을에도 아무런 전도 의 열매를 기대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그 무엇보다/ 우리가 맺어야 할 신앙의 열매는 전도의 열매라고 하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자는 결국, 언제가는 그 가지가 삭뚝 잘리어져/ 불에 던져지는 심판의 나무와 같은 비참한 운명에 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요, 주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깊이 명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성경은 또한 우리가 맺을 신앙의 열매는 착한 선한 행실이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3장 9절을 한번 펴 보실까요 '9절-11절.' 이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우리가 맺을 신앙의 열매는 무엇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 착하고 선한 행실입니다. 또 에베소서 5:8-9절을 찾아 읽어보십시다' P.315.' 갈라디아서 5:22-23절도 한번 찾아서 읽어보십시다'P.308 .'
━ 성령님의 열매-이 역시 우리 신앙인이 반드시 맺어야 할 신앙의 귀한 열매인 것이 분명 합니다. 그러나 이런 신앙의 열매를 생활 속에서 풍성히 맺지 못하는 가지는 그 운명 이 어떻게 된다고 했습니까.참아 입에 담기도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이 있 을 것이라고 성경은 누누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열매를 풍성히 맺는 가지는 어떤 축복을 받게 될까요━ 어떤 축복을 받게 되는 지 오늘 말씀 2절을 다시 한번 주목해 봅시다' 2절.무 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기 위하여 이를 깨끗이 하느니라.' 그렇습니다. 있는 자에게 더 주는 하나님의 축복의 법칙이 적용이 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법칙과 분배 법칙은 분명히 공산주의와는 분배 법칙과는 아 주 다릅니다. 없는 자에게 골고루 나눠주는 분배가 아니라, 빈익빈 부익부/ 자 본주의의 분배 법칙에 더 가깝습니다. 곧 없는 자에게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아 서 있는 자에게 더 주는 조금은 이상한 법칙입니다. 이 하나님의 분배 법칙은 마태복음 25장 달란트 비유에서 아주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곧 한 달란트 가진 자는 나중에 그 한달란트 마저 빼앗겨서 다섯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게 되지 않습니까 이런 분배 법칙이 언뜻 생각하면 공평하지 않는 것같고, 없는 자에게는 잔인 한 것같이 보이지만, 그러나 깊이 잘 생각해 보면, 절대로 그렇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매우 공평하고 정직한 분배 법칙임을 알 수 있습니다.
-빼앗긴 한 달란트 가진 자가 그 가진 한 달란트 마저 빼앗긴 이유가 무엇인 지를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잇습니다. 저는 그 한달란트로 열실히 일했습니 까 열심히 일하고도 한 달란트 밖에 소유하지 못했습니까-아니지요 땅에 파묻어 두고, 게으름을 피우며, 전혀 일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결국 그 한달란트 마저 빼앗기고 만 것입니다. 만일 그가 최선을 다 하고도 한 달란트 뿐이었다면, 사정은 전혀 달랐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도 주인은 반대로 많이 가진 자에게/ 한 달란트 내 노아라 하시고는 그것을 적 게 가진 자에게 더 주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마냥 게으름만 피우고, 열심을 다하지 않고, 그래서 소유하지 못한 자는 결국 '악한 종'이라고 일컬음을 받고, 심판을 받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하나님의 심판의 법칙이라는 것을,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는 깊이 명심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 혹 전도의 열매를 맺기 위하여, 혹은 의의 열매, 선한 행위 열매, 또한 성령님의 열매를 맺기 위하여/ 우리가 최선을 다하고, 열심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혹 열매를 맺지 못했을 경우는, 누가복음 3장의 계속 되는 비유 말씀처럼, "한해만 더 하고", 하나님은 Try Again/ 한번 의 새로운 기회를 더 주실 지도 모릅니다. 결코 쉽게 가지를 삭뚝 짤라 불에 던지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지도 않고, 열심을 다하지 않고, 이런 저런 핑계만 대며, 게으름을 피우면서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되면 결코 용 서를 받지 못할 것입니다. 결론은 오직 하나, 우리가 신앙의 열매를 맺기 위하여, 얼마나/ 평소에/최선 을 다하며/ 노력하고 있느냐에 달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유감스러운 것은 최선을 다한다 하여도. 우리의 노력만으로는 풍성한 열매를 잘 맺기는 또한 어렵습니다. 어쩌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 비결을/ 열매 맺는 비결을 또한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열매를 쉽게 맺을 수 있는 그 비결 말입니다.
오늘 본분 5절을 다시 주목해 봅시다 함께 읽어봅시다'5절.' 아멘/ 지극히 상식적인 이치입니다만, 가지는 절대로 제 스스로/ 저 혼자서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원둥치인 나무에 붙어 있어서/ 그 잔액을 받아서만 열매 를 맺을 수 있습니다. 똑 같은 이치입니다. 우리가 우리 단독으로서는 절대로 열매를 맺을 수 없다 고 하는 것입니다.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오직 우리는, 우리에게 있어서 마치 포도나무의 원둥치와 같은 우리 주님께 꼭 붙어 있어야만 합니다. 곧 주님 안에 거하여야 합니다. 성령님 안에 거하는 생활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가 내 안에/ 내가 주안에 거하는 생활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런 가운데 서만 우리가 풍성한 신앙의 열매를 맺을 수가 있습니다. 아니 주님께서. 혹은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열매를 맺게 해 주십니다. 여러분, 열매 맺기를 원하시지요 의의 열매/ 성령님의 열매/ 이런 신앙의 열매를 주렁주렁 맺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사시기를 원하십니까 그러시다면 이제부터 오직 주안에 거하기만을 힘쓰시기 바랍니다. 곧 내 안 에/ 내 마음에 성령님을 모시고 사는 생활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그가 대신하여 신앙의 열매를 맺게 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순종하고, 기도에 더욱 힘쓰며, 더욱 주님께 가까이 더 가까이 하는/ 열심을 다하는 신앙 생활에 힘쓰시면, 주님은 그 사람에게 찾아 와 함께 동거해 주십니다.
곧 "주가 내 안에/ 내가 주안에 거하는 아름다운 신 앙 생활이 될 수 있습니다. 열심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는 가운데서/ 주님이 여러분과 늘 함께 계시고, 늘 함께 동거하심으로, 우리 영원한 생명의 열매가 되는/ 신앙의 열매를 주렁주렁 맺어 가는 저와 여러분이 꼭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주님, 풍성한 수확의 계절 가을에 들어섰습니다. 유난히도 더웠던 무 더위와 폭우/ 폭풍 가운데서 저희를 무사하게 지켜 주시고, 풍성한 가을을 맞게 하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주님, 이 가을에 또한 저희가 깊이 생각할 것이 또한 있습니다. 곧 우리 신앙의 나무에는 과연 열매를 맺어 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열매가 없으 면, 주님 잘라서 불에 던져 버리시겠다고 경고 하셨는데, 혹 저희는 그런 심 판의 대상은 되고 있지 않은지 걱정입니다. 심판의 주님이 오시기 전까지는, 아직도 열매를 맺을 기회로 주신 줄로 믿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여, 신앙의 열매/ 전도의 열매/ 의의 열매/ 성령의 열매/ 충성의 열매/ 믿음의 열매를 맺어서 주님께 영광 돌리는 귀한 주 의 백성 되게 하여 주옵소서. 열매를 맺기 위하여 또한 항상 주안에 늘 거하는 자 되고 주안에 거하기 위해 힘쓰는 자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런 우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시골 마을 한 처녀가 시집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 처녀가 지금까지 정성껏 먹이며 키웠던 가축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돼지, 개, 소, 말들이 다 모였습니다.━ 저들은 지금까 지 자신들을 정성껏 돌보며 길러 주었던 고마운 주인 아가씨가 시집을 가게 되 었으니, 이 경사스런 일에 가만있을 수 없지 않으냐 고 하면서/ 무엇인가 시집 가는 주인 아가씨를 축하하기 위해서, 자기들이 몸을 바쳐 희생을 하고, 감사를 표하는 무슨 좋은 일을 하나 하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누가 그 일을 담당할 것인가 하는 것을 놓고 의논하던 끝에, 저들은 한 가지 결정을 보았습니다. 그 결정은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 평소에 주 인으로부터 많은 은혜를 받았지만, 그러나 주인을 위해 별로 보답을 한 것이 없는 자, 곧 많은 은혜를 받고 살았지만 그 은혜에 별로 보답하지 못하고 살았던 가축이 있으면, 그가 대신 희생을 하여 주인께 감사를 표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것을 가리기 위하여 이제 가축들은 하나하나 나서서 자기가 평소에 주인에 게 어떤 일로/ 어떻게 은혜에 갚고/ 보답을 했던가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을 하 기 시작했습니다.
━ 먼저 소가 일어나서 말했습니다 "나는 주인을 위해, 농사를 지어 주었다. 밭을 갈아주고 무거운 짐을 날라다 주었다. 내가 없으면 주인은 아마 힘든 농사 를 제대로 지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라고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 다음은 개가 일어나서 "나는 주인을 위해 잠을 자지 않고 늘 도둑을 지켜 주었다"고 역시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 다음은 또 말(馬)이 일어나서, 나도 주인을 위해서 무거운 짐을 날라다 주 기도 하고, 또 주인을 등에 업고 먼 거리를 태워 주기도 하였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모두가 다 주인을 위해서 큰 공적이 있음을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 마지막으로 돼지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돼지는 그 순간 도무지 할 말이 없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주인을 위해서 자기가 한 일이 별로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주인이 베풀어주는 은덕으로 지금까지 어떤 가축들보다도 평안하게 잘 먹 고 잘 살아 왔습니다. 그래서 피둥피둥 살도 많이 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가 주인을 위해서 한 일이라고는 생각이 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날 가축 회의는 아주 간단히 끝이 날 수 있었다는 애깁니다. 곧 지금까지 주인에게 많은 은혜를 받고 살았음에도, 그 주인을 위해 아무런 보답도/ 감사도 표하고 살지 못했던, 돼지가 주인 아가씨의 결혼을 위해, 죽음으로서, 그 살코기를 주인께 바쳐 감사를 표하기로 결정을 보았다고 하는 것입니다.-그래서 아마 우리는 잔치 때마다 돼지를 잡는가 봅니다. 요즘은 몰라도 전 에는 누구 집에서든 잔치를 했다 하면, 꼭 돼지를 잡지 않았습니까 아무튼 돼 지가 잔치의 희생 제물이 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이유였음을 이 동화를 통하여 우리는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요
※ 누가 복음 3:6절 이하에 보면,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의 비유"가 나옵니다. 과수원 주인이 있고, 또 그 과수원을 돌보며 지키라고 명을 받은 과원 지기 머슴이 따로 있었습니다. 머슴은 날마다 물을 주고 거름을 주면서 열심히 무화과나무를 잘 키웠습니다. 드디어 무화가 나무에 열매가 열릴 만 할 때가 되었습니다. 주인이 와서 보 았습니다. 그러나 웬일인지 그 나무에는 열매가 하나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주 인은 매우 섭섭한 마음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다음해에 또다시 와서 보았습니다. 역시 그 나무에는 열매가 열리지 않았 습니다. 내리 삼년 동안 그렇게 계속해서 열매가 얼리지 않자, 드디어 주인은 결심을 했습니다. "여봐라/ 이 나무를 당장 찍어 버리라/ 어찌하여 땅만 버리고 있느냐" 이것이 바로 열매를 맺지 못한 무익한 나무의 마지막 비참한 운명이었 습니다. 마태복음 21장에도 비슷한 말씀이 나옵니다.
━ 주님이 가시던 길가에 무화 과나무가 있었습니다. 마침 주님은 몹시 시장하셨기 때문에, 그 무화과나무에 서 열매를 얻기를 바랐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무화과가 있나 살폈습니다. 그러나 그 나무에는/ 잎은 참 무성한데, 잎을 보아서는 분명히 뭔가 열매가 있을 법도 한데, 무화과 열매가 하나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주님이 무 어라 말씀하셨습니까 "이제부터 너는 영원토록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저주 를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무화과나무는 즉시 말라 죽어 버렸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이 요한 복음 15장 말씀도. 역시 같은 뜻의 말씀입니다.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하여 버리시고, 무 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과실을 더 (많이)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 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저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처럼 (잘라져서) 밖에 버리어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들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 무익한 나무/ 결실 하지 못하는 나무/ 열매가 없는 무익한 나무는 결국 잘리어져서 불에 던지어지고 말 것이라고 하는 무서운 심판의 경고 의 말씀입니다. 계절은 어느듯 가을의 문턱에 성큼 들어섰습니다. 아직도 한 낮은 섭씨 30도 를 오르내리는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서늘한 가을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이불을 덥지 않고는 잘 수 없을 정도로 서늘해졌지요-바야흐로 천고마비/ 하늘 높고 말이 살이 찐다고 하는 천고마비의 계절이 분명히 찾아 왔습니다.-사 계절 중에서 가을은, 서늘한 날씨가 우선 무엇보다 참 마음에 참 듭니다. 그렇지요 너무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는 서늘하고 상쾌한 날씨는 과연 계 절 중에 최고입니다. 일년 내내 이런 가을 날씨만 계속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을은 날씨가/ 기온이 무엇보다 참 마음에 들고 좋습니다. 그리고 가을은 또 무엇보다 결실의 계절로서 우리에게 풍요로운 열매를 가져 다주는 참 유익한 계절이기도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 어떤 계절보다 고맙고, 감사한 계절이 바로 가을입니다.-그래서 우리의 추수 감사절도 이 가을에 지키고 있습니다-들에는 오곡이 누렇게 익어 가고 있고, 나무나무 마다 에는 알알이 열매가 탐스럽게 익어 가는 결실의 계절이 바로 가을입니다. 그런가 하면, 또한편으로, 이 가을은 심판의 계절이기도 합니다.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내 땀을 흘리며 힘써 가꾼 농부에게는 풍요로운 수확을 보장하는 결실의 계절입니다만, 그러나 혹 그렇지 못한 농부들, 곧 봄에 씨를 뿌린 것이 없는 농부, 여름에 힘써 땀을 흘리며 가꾸지 아니하고, 게으름을 피우며 허송세 월한 농부에게는, 결실이 가을이 되어도 아무 것도 거둘 것이 없는 처량한 계절 /한심한 계절이 되고 말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시간/ 우리는/ 또한 우리 인생의 가을도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과연 풍성한 인생의 수확을 거두는 흐뭇 한 인생의 가을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거둘 것이 별로 없는 한 심하고 쓸쓸한 인생의 가을이 되고 있습니까 혹 풍성하지 못한 가을이라고 한다면, 그 이유는 뭐라고 해도, 여러분 자신에 게 있었음을 변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곧 남들처럼 봄에 열심히 씨를 뿌린 일 이 없었거나, 또 여름에 땀흘려 성실히 가꾼 노력이 부족하였기 때문임이 틀림 없을 것입니다. 열매는 절대로 속이지를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 인생의 깊은 가을에 와서/ 거둘 것이 별로 없는 사람은 더 없이 불행하 고 비참한 사람입니다만, 그러나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것이 더욱 슬픈 일일 수도 있습니다. 다시 회복할 길이 영영 없습니다. 계절의 가을은 보내고 다시 또 맞지 할 수 있습니다. 곧 계절은 돌고 돌아 순환하기 때문에, 겨울이 지나면 다시 또 봄이 돌아 와서, 다시 한번 씨를 뿌리 고 열매를 기대할 수 있지만, 그러나 우리 인생의 계절은 전혀 그렇지를 못하다는 말입니다. 단 한번으로서 영원히 끝입니다. 영원히 다시 회복할 수 없고,두번 다시 기회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다시 되 돌아오지 않는, 오직 단 한번뿐인 인생을 우리가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인생은 운동 경기처럼 다시 연습할 수 없고, 다시 반복할 수 없고, 다시 기회 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고로 단 한 순간도 우리는 우리 인생을 헛되이 소비하 거나 소모하며 보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특히 여기 우리 젊은이들 /꼭 기억할 일입니다. 아직도 인생의 봅이나 여름철 에 있는 우리 젊은이들은 깊이 명심할 일입니다.
-한번 지난 인생의 계절은 영원히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다고 하는 이 이치를 깊이 깊이 마음에 새기고, 부 디 풍요로운 여러분의 가을을 맞이하기 위하여, 지금 최선을 다하여/ 땀흘리며 심고 가꾸시기 바랍니다. 빈곤의 계절/ 아무 것도 거둘 것이 없는 쓸쓸하고 빈 곤한 여러분의 쓸쓸한 인생의 가을을 맞지 하지 않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러나 이 보다 더 심각하고 중요한 것이 아직 하나 더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신앙의 가을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신앙의 가을은 지금 어떻습니까 거둘 열매가 좀 있는 것 같습니까 알알이 풍성한 가을의 열매를 지금 맺어 가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혹 잔칫집 돼지처럼, 아무리 생각해도 주인께 받은 은혜는 있지만 보답한 것이 하나도 없어서, 죽음으로밖에는 대신 할 수밖에 없는 한심한 사람 은 혹 우리 가운데 안 계실까요 혹은 그 가지가 삭뚝 잘리어져서 불에 던져져서 불태워질 수밖에 없는 무익한 가지/ 잎만 무성한/ 신앙의 열매가 하나도 없는/ 한심한 사람은 혹 없을까요 여러분, 이 시간 여러분, 자신을 한번 깊이깊이 성찰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과연 나의 신앙의 나뭇가지에는 얼마나 풍성한 열매를 맺고 있는지"를 말입니다. 성경은 여러 번, 우리 신앙인의 열매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먼저, 우리 신앙의 열매는 바로 복음 전도로서 맺어지는 전도의 열매라고 했 습니다.-그래서 우리 교회도 이 열매를 거두기 위하여 올 신년 초에 113 전 도 전략을 내 걸고, 저렇게 벽에다 크게 써 붙여 놓고, 여러분에게/ 한 분이 최 하 3명씩은 꼭 태신자를 정하여, 이 한해가 다 가기 전에, 그 결실을 거둘 수 있도록 최선을 다히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쯤 여러분 어떻습니까 과연 그 결실이 좀 맺혀지고 있는 것같습니까 농부가 밭에 씨를 뿌린 후에는 열심히 김을 매고, 거름을 주며 정성껏 키우듯 이-전도하기로 작정한 태신자를 위하여/ 쉬지 않고 기도하고, 정성으로 다 한 분들은 틀림없이 지금쯤 어떤 결실이 반드시 눈에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씨는 뿌렸지만, 거름도 주지 않고, 김도 안 매주는 게으른 농부처 럼, 비록 태신자는 정했으나 그를 위해 별로 기도도 하지 않고, 별다른 노력도 하지 않고, 게으름만 피우며, 지내 오신 분들이라면 이 가을에도 아무런 전도 의 열매를 기대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그 무엇보다/ 우리가 맺어야 할 신앙의 열매는 전도의 열매라고 하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자는 결국, 언제가는 그 가지가 삭뚝 잘리어져/ 불에 던져지는 심판의 나무와 같은 비참한 운명에 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요, 주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깊이 명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성경은 또한 우리가 맺을 신앙의 열매는 착한 선한 행실이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3장 9절을 한번 펴 보실까요 '9절-11절.' 이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우리가 맺을 신앙의 열매는 무엇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 착하고 선한 행실입니다. 또 에베소서 5:8-9절을 찾아 읽어보십시다' P.315.' 갈라디아서 5:22-23절도 한번 찾아서 읽어보십시다'P.308 .'
━ 성령님의 열매-이 역시 우리 신앙인이 반드시 맺어야 할 신앙의 귀한 열매인 것이 분명 합니다. 그러나 이런 신앙의 열매를 생활 속에서 풍성히 맺지 못하는 가지는 그 운명 이 어떻게 된다고 했습니까.참아 입에 담기도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이 있 을 것이라고 성경은 누누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열매를 풍성히 맺는 가지는 어떤 축복을 받게 될까요━ 어떤 축복을 받게 되는 지 오늘 말씀 2절을 다시 한번 주목해 봅시다' 2절.무 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기 위하여 이를 깨끗이 하느니라.' 그렇습니다. 있는 자에게 더 주는 하나님의 축복의 법칙이 적용이 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법칙과 분배 법칙은 분명히 공산주의와는 분배 법칙과는 아 주 다릅니다. 없는 자에게 골고루 나눠주는 분배가 아니라, 빈익빈 부익부/ 자 본주의의 분배 법칙에 더 가깝습니다. 곧 없는 자에게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아 서 있는 자에게 더 주는 조금은 이상한 법칙입니다. 이 하나님의 분배 법칙은 마태복음 25장 달란트 비유에서 아주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곧 한 달란트 가진 자는 나중에 그 한달란트 마저 빼앗겨서 다섯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게 되지 않습니까 이런 분배 법칙이 언뜻 생각하면 공평하지 않는 것같고, 없는 자에게는 잔인 한 것같이 보이지만, 그러나 깊이 잘 생각해 보면, 절대로 그렇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매우 공평하고 정직한 분배 법칙임을 알 수 있습니다.
-빼앗긴 한 달란트 가진 자가 그 가진 한 달란트 마저 빼앗긴 이유가 무엇인 지를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잇습니다. 저는 그 한달란트로 열실히 일했습니 까 열심히 일하고도 한 달란트 밖에 소유하지 못했습니까-아니지요 땅에 파묻어 두고, 게으름을 피우며, 전혀 일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결국 그 한달란트 마저 빼앗기고 만 것입니다. 만일 그가 최선을 다 하고도 한 달란트 뿐이었다면, 사정은 전혀 달랐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도 주인은 반대로 많이 가진 자에게/ 한 달란트 내 노아라 하시고는 그것을 적 게 가진 자에게 더 주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마냥 게으름만 피우고, 열심을 다하지 않고, 그래서 소유하지 못한 자는 결국 '악한 종'이라고 일컬음을 받고, 심판을 받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하나님의 심판의 법칙이라는 것을,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는 깊이 명심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 혹 전도의 열매를 맺기 위하여, 혹은 의의 열매, 선한 행위 열매, 또한 성령님의 열매를 맺기 위하여/ 우리가 최선을 다하고, 열심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혹 열매를 맺지 못했을 경우는, 누가복음 3장의 계속 되는 비유 말씀처럼, "한해만 더 하고", 하나님은 Try Again/ 한번 의 새로운 기회를 더 주실 지도 모릅니다. 결코 쉽게 가지를 삭뚝 짤라 불에 던지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지도 않고, 열심을 다하지 않고, 이런 저런 핑계만 대며, 게으름을 피우면서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되면 결코 용 서를 받지 못할 것입니다. 결론은 오직 하나, 우리가 신앙의 열매를 맺기 위하여, 얼마나/ 평소에/최선 을 다하며/ 노력하고 있느냐에 달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유감스러운 것은 최선을 다한다 하여도. 우리의 노력만으로는 풍성한 열매를 잘 맺기는 또한 어렵습니다. 어쩌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 비결을/ 열매 맺는 비결을 또한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열매를 쉽게 맺을 수 있는 그 비결 말입니다.
오늘 본분 5절을 다시 주목해 봅시다 함께 읽어봅시다'5절.' 아멘/ 지극히 상식적인 이치입니다만, 가지는 절대로 제 스스로/ 저 혼자서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원둥치인 나무에 붙어 있어서/ 그 잔액을 받아서만 열매 를 맺을 수 있습니다. 똑 같은 이치입니다. 우리가 우리 단독으로서는 절대로 열매를 맺을 수 없다 고 하는 것입니다.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오직 우리는, 우리에게 있어서 마치 포도나무의 원둥치와 같은 우리 주님께 꼭 붙어 있어야만 합니다. 곧 주님 안에 거하여야 합니다. 성령님 안에 거하는 생활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가 내 안에/ 내가 주안에 거하는 생활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런 가운데 서만 우리가 풍성한 신앙의 열매를 맺을 수가 있습니다. 아니 주님께서. 혹은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열매를 맺게 해 주십니다. 여러분, 열매 맺기를 원하시지요 의의 열매/ 성령님의 열매/ 이런 신앙의 열매를 주렁주렁 맺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사시기를 원하십니까 그러시다면 이제부터 오직 주안에 거하기만을 힘쓰시기 바랍니다. 곧 내 안 에/ 내 마음에 성령님을 모시고 사는 생활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그가 대신하여 신앙의 열매를 맺게 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순종하고, 기도에 더욱 힘쓰며, 더욱 주님께 가까이 더 가까이 하는/ 열심을 다하는 신앙 생활에 힘쓰시면, 주님은 그 사람에게 찾아 와 함께 동거해 주십니다.
곧 "주가 내 안에/ 내가 주안에 거하는 아름다운 신 앙 생활이 될 수 있습니다. 열심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는 가운데서/ 주님이 여러분과 늘 함께 계시고, 늘 함께 동거하심으로, 우리 영원한 생명의 열매가 되는/ 신앙의 열매를 주렁주렁 맺어 가는 저와 여러분이 꼭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주님, 풍성한 수확의 계절 가을에 들어섰습니다. 유난히도 더웠던 무 더위와 폭우/ 폭풍 가운데서 저희를 무사하게 지켜 주시고, 풍성한 가을을 맞게 하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주님, 이 가을에 또한 저희가 깊이 생각할 것이 또한 있습니다. 곧 우리 신앙의 나무에는 과연 열매를 맺어 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열매가 없으 면, 주님 잘라서 불에 던져 버리시겠다고 경고 하셨는데, 혹 저희는 그런 심 판의 대상은 되고 있지 않은지 걱정입니다. 심판의 주님이 오시기 전까지는, 아직도 열매를 맺을 기회로 주신 줄로 믿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여, 신앙의 열매/ 전도의 열매/ 의의 열매/ 성령의 열매/ 충성의 열매/ 믿음의 열매를 맺어서 주님께 영광 돌리는 귀한 주 의 백성 되게 하여 주옵소서. 열매를 맺기 위하여 또한 항상 주안에 늘 거하는 자 되고 주안에 거하기 위해 힘쓰는 자 되게 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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