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이스라엘 (요1:43-51)
본문
주님은 빌립의 전도를 받아 주님앞에 나온 나다나엘을 향하여 보라! 이는 참 이스라 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요 1:47)고 하셨습니다. 요한 21:2에 의하 면 나다나엘은 갈릴리 가나 사람으로 바돌로매와 같은 사람 사람으로 봅니다. (눅 6:14) 바돌로매는 주님의 12제자중 하나입니다.(마 10:3, 막 3:18, 눅 6:14, 행 2:13) 바도로매는 언제나 빌립과 함께 그의 이름이 열거되는 것을 보면 빌립과 어떤 연관이 있는것 같습니다. 바돌로매(나다나엘)에 대해서는 별 기록이 없으며 전설에 의하면 주 님 부활하신후 아라비아를 거쳐서 인도에서 전도하다가 가죽 벗김을 당한채 순교 했습니다. 우리로서는 나다나엘에 대하여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를 향하여 참 이스라엘 이라고 부르심을 보면 그는 메시야 신앙을 가진 경건한 자로 성화 되 어진 성도인 것 같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나다니엘을 향하여 참이스라엘 이라고 하실때 주님은 틀림없이 성화 되어진 야곱을 생각하셨을 것이다.
왜냐하면 대화의 내용이 야곱과 관계되기 때문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위에 오 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요1:51)고 주께서 말씀하셨는데 이는 창 28:12에 나온 야곱의 벧엘사건입니다. 야곱의 성화되어진 성도의 표상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족장이었던 아브라함,이삭,야곱,요셉은 모두 성화 되어진 사람들이었는데 각기 개성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여호와를 믿은후 부터 죽기까지 성화 되었고, 이삭은 일찍부터 성화되어진 사람이었으나 노년에 약간퇴보 되었으며 요셉은 처음부터 죽는날까지 성화되었던 사람이었고, 야곱은 젊은 청년때는 성화되지 못한 생활을 하다가 인생후반기에 가장 완숙한 성화의 생활을 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삭,야곱보다 더 성화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야곱의 147년의 생애를 둘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야곱이라고 하는 이름을 가지고있었던 젊은 시절의 그의 생애입니다. 야곱은 아브라함의 손자요 이삭의 째아들입니다. 야곱은 이삭이 40세에 결혼하여 60 세되던해에 낳았던 쌍동이었습니다. (창25:26) 야곱은 하나님의로 부터 선택받은 백성 이었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말1:2-3) 여기서 하나님이 야곱을 사랑하셨다는 것은 선택을 의미하여 미워하셨다는 것은 버림 받은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야곱이 선택받은 것은 그의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세상에 태어나기전에 하나님의 은혜로운 주권하에서 되었습니다. 바울은 예정 교리를 설 명하면서 야곱과 에서의 예를 들었습니다.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대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자가 어린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바 내 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위하셨다 하심과같으니라. (롬9:11-13) 정말로 야곱은 영원전부터 구원받은 백성으로 선택되었습니다. 그가 선과악을 행하기 이전 모태에서 선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야곱의 의지나 행위와 아무 관계없는 전폭적인 하나님의 은혜스러운 주권에 의해서 됫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선택받아 구원얻은 자임에도 불구하고 그행 위는 버림 받은 그의 형에서만 못했습니다.
1 야곱은 모태에서부터 싸우기를 좋아했습니다.(창25:22)
2 야곱은 출생시 형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이름을 붙잡다는 뜻으로 야곱이라고 했습니다.(창25:26)
3 야곱은 배고픈 형으로 부터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의 명분을 샀습니다.(창25:31)
4 야곱은 눈 어두운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가 받은 축복을 가로챘습니다.(창27:)
5 야곱은 하란 땅에 있는 외가집에 가서 네 아내를 얻었으며 그녀들로 부터 12아들 을 낳았습니다. (창29:-30:)
6 야곱은 장인을 속여가면서 축재에 힘썼습니다.(창30:)
7 야곱은 장인의 집에서 도망쳐 나오면서 드라빔 우상을 가져 나왔습니다.(창31:)
8 야곱은 얍복강에서 위기의 시간에 하나님을 붙들고 늘어졌습니다.(창32:) 참으로 출생부터 얍복강까지의 야곱의 생애는 육의 사람의 생애였습니다. 야곱은 비 록 하나님의 사람의 선택을 받아 구원받은 백성이 되었으나 그의 생활은 극히 세속적 이요 육체의 삶을 살았습니다. 주님은 세속적이고 육체적인 삶을 살았던 야곱에 대하 여 간사하다고 말했습니다. 간사하다는 말은 헬라어로 도로스, 안에 미끌미끌하게 달 아진 돌멩이나 불순물이 들어있는 곡식과 포도주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우리 성경에서는 사악이라고 번역되었습니다. 야곱은 축첨하는일,자식 낳는일,재산모으는 일,향락을 즐기는 일,남을 속이는 일등 너무 세속주의적이며 육체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하 여 인간적으로만 보면 어떤 정도 성공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아름다운 여인 네 명을 아내로 삼았으며 12명의 아들을 낳았고 많은 재물을 모아 거부가 되었으며 수백 명의 종을 거느리면서 향락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야곱은 성화의 생활이 아닌 육의 생활을 살았습니다. 하란에 머물러 있는 동안 야곱의 생애는 철저하게 육을 따라 사는 생활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야곱으로 하여금 세상적 이고 육체적인 삶을 끊도록 하기 위하여 그에게 육체적 고통을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그와 그 가정에 고통스러움이 계속되었습니다. 아내들의 갈등, 배다른 자식들의 갈등, 특히 요셉에 대한 고통,장인과 처남집과의 갈등 참으로 감당키 어려운 것들이었습니다. 야곱은 이같은 고통을 훗날 바로왕 앞에서 그의 나그네 길에 험악한 세월을 보내 었나이다. 고 했습니다.(창47:9) 지금도 구원받은 성도들 가운데 성결하게 살지 못하고 야곱처럼 육으로 사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크게 세가지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는 배와 같이 육적 욕구를 따라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먹고 마 시며 육체적 쾌락을 추구하며 삽니다.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 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빌3:19) 두번째는 가슴과 같이 감정적인 용기만 가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세번째는 머리와 같이 생각하며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비록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구원은 받았으나 배로 사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육체적인 삶은 불신자들은 말할것도 없고 성도들 가운데도 있습니다. 성령님으로 살지 않고 육을 따라 세속적인 삶을 살아가는 성도가 있습니다. 두번째는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이름을 가지고 살았던 그의 중년 이후 노년생애입니다. 젊은 야곱이 육체적이고 세속적인 삶을 살았다고 한다면 노인된 이스라엘은 아주 성숙 한 영적생활 곧 성화되어진 생애를 살았습니다. 얍복강가에서 환도뼈가 뿔어진후 야곱 은 지팡이를 의지하면서 걷고 살았습니다. 얍복강을 건넌 야곱은 그의 이전 생활과는 아주 다른 생활을 했습니다.
1 야곱은 약속에 땅 가나안에서 살았습니다.
2 야곱은 벋엘과 하나님을 늘 사모하며 예배하며 살았습니다.(창35:)
3 야곱은 신령한 눈이 열려 12아들의 장래를 예언하며 축복했습니다.(창49:)
4 야곱은 최후에 지팡이를 의지하며 세상을 떴습니다. (히11:21) 참으로 야곱은 거의 완숙되게 성화의 생활을 하다가 세상을 떴습니다. 야곱은 일찍 부터 자기 가정은 메시야가 약속된 가정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자기 가정의 장자권은 메시야 계승권인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어렴풋이나마 자기 후손중에 메 시야가 탄생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야곱은 벧엘에서 메시야의 계시를 보았으며(창28:) 자기의 12아들중에서 4째 아들 유다를 통해 메시야가 탄생하실 것을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알고 예언했습니다. 유다에 대한 예언중에서 유다는 사자새끼(창47:9,계5:5) 홀, 지팡이,실로(창47:10)라고 함은 곧 메시야에 대한 예언이였습니다. 야곱은 구약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성화되어진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야곱에 대한 것을 말할때 젊었을때 육으로 살았던 야곱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반드 시 노년에 성령님으로 살았으며 성화되어진 모습으로 살았던 야곱 곧 이스라엘을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젊은 야곱 육으로 살았던 야곱만 강조하면 지나친 복음 강조 때문에 반율법주의 도 덕폐기론이 될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부도덕하게 살았던 야곱을 선택하여 구원했다는 것만 강조해서는 안됩니다. 유다도 다윗도 롯도 같은 경우가 됩니다. 노년 야곱 곧 이스라엘, 성령님으로 살고 거룩하게 살았던 것만 강조하게 되면 복음과 하나님의 은혜가 무시됩니다. 야곱의 성화되어진 행위만 강조되어지면 하나님의 사랑 과 은혜와 복음과 그리스도가 무시됩니다.
그러므로 야곱의 147년의 전생애는 은혜(복음)와 율법이 함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야곱과 같은 그가 복음(그리스도)으로 구원 받아 성화(율법)되어진 이스라엘로 살았던 것을 함께 보아야 합니다. 기독교는 복음과 율법이 함께있는 종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복음만 지나치게 강조하면 도덕폐기론,반율법주의 이단이 됩니다. 이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람의 행위를 분리하여 하나님의 은헤를 왜곡시킵니다. 하나님 의 율법만 강조하면 율법주의자가 되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람의 행위를 혼합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희석시키고 퇴색케합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기독교는 복음과 율법이 함께 하는 종교입니다. 그러나 선후의 차이는 분명히 있습니다. 그것은 먼저는 복음요 다음 은 율법입니다. 롬 1장-11장은 복음이요,롬 12장-16장은 율법입니다. 모든 기독교인은 복음(은혜)로만 구원을 얻습니다. 구원 문제에 있어서 인간의 노력, 행위,의지,선행은 전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얻어지는 것입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의지에 의해서 됩니다. 너희가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 난것 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엡2:8-9) 그러나 성도의 성화의 생활은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은 인간의 행위가 필요합니다. 주의 할것은 인간의 독자적 행위로서는 성화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성령님 의 도우심을 받은 인간의 행위가 필요합니다. 거룩하고 성결하게 사는데는 우리들의 노력과 행위가 적극적으로 필요합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2:12)고 하심은 성화를 의미합니다. 야곱은 복음(은혜)으로 구원받고 거의 완벽한 성화된 구약 그리스도인입니다. 성화되 어진 야곱은 요즘에 신비주의에 빠진자들처럼 초자연적이며 기적적인 무엇을 추구하지 않고 거룩하고 성결하게 살았습니다. 우리 모두는 복음(은혜)으로 구원 얻었습니다. 그리고 얻은 구원은 인간들의 행위에 의하여 취소되고 변질되지 않습니다. 이미 얻은 구원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약속 때문에 끝까지 보장(궁극적 구원,견인)이 됩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일은 우리가 도사가 되는 것이 아니요 초능력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앞서간 믿음의 선진들과 같이 성화된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성화는 성령님께서 성경 말씀을 도구로 삼아 이 루게 하십니다. 왜 오늘날 한국교회가 신령하지 못하며 참 이스라엘이 되지 못하고 있는가 복음과 율법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여 바르게 사는 생활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령님 충만은 복음으로 바르게 사는 생활입니다.
왜냐하면 대화의 내용이 야곱과 관계되기 때문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위에 오 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요1:51)고 주께서 말씀하셨는데 이는 창 28:12에 나온 야곱의 벧엘사건입니다. 야곱의 성화되어진 성도의 표상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족장이었던 아브라함,이삭,야곱,요셉은 모두 성화 되어진 사람들이었는데 각기 개성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여호와를 믿은후 부터 죽기까지 성화 되었고, 이삭은 일찍부터 성화되어진 사람이었으나 노년에 약간퇴보 되었으며 요셉은 처음부터 죽는날까지 성화되었던 사람이었고, 야곱은 젊은 청년때는 성화되지 못한 생활을 하다가 인생후반기에 가장 완숙한 성화의 생활을 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삭,야곱보다 더 성화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야곱의 147년의 생애를 둘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야곱이라고 하는 이름을 가지고있었던 젊은 시절의 그의 생애입니다. 야곱은 아브라함의 손자요 이삭의 째아들입니다. 야곱은 이삭이 40세에 결혼하여 60 세되던해에 낳았던 쌍동이었습니다. (창25:26) 야곱은 하나님의로 부터 선택받은 백성 이었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말1:2-3) 여기서 하나님이 야곱을 사랑하셨다는 것은 선택을 의미하여 미워하셨다는 것은 버림 받은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야곱이 선택받은 것은 그의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세상에 태어나기전에 하나님의 은혜로운 주권하에서 되었습니다. 바울은 예정 교리를 설 명하면서 야곱과 에서의 예를 들었습니다.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대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자가 어린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바 내 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위하셨다 하심과같으니라. (롬9:11-13) 정말로 야곱은 영원전부터 구원받은 백성으로 선택되었습니다. 그가 선과악을 행하기 이전 모태에서 선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야곱의 의지나 행위와 아무 관계없는 전폭적인 하나님의 은혜스러운 주권에 의해서 됫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선택받아 구원얻은 자임에도 불구하고 그행 위는 버림 받은 그의 형에서만 못했습니다.
1 야곱은 모태에서부터 싸우기를 좋아했습니다.(창25:22)
2 야곱은 출생시 형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이름을 붙잡다는 뜻으로 야곱이라고 했습니다.(창25:26)
3 야곱은 배고픈 형으로 부터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의 명분을 샀습니다.(창25:31)
4 야곱은 눈 어두운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가 받은 축복을 가로챘습니다.(창27:)
5 야곱은 하란 땅에 있는 외가집에 가서 네 아내를 얻었으며 그녀들로 부터 12아들 을 낳았습니다. (창29:-30:)
6 야곱은 장인을 속여가면서 축재에 힘썼습니다.(창30:)
7 야곱은 장인의 집에서 도망쳐 나오면서 드라빔 우상을 가져 나왔습니다.(창31:)
8 야곱은 얍복강에서 위기의 시간에 하나님을 붙들고 늘어졌습니다.(창32:) 참으로 출생부터 얍복강까지의 야곱의 생애는 육의 사람의 생애였습니다. 야곱은 비 록 하나님의 사람의 선택을 받아 구원받은 백성이 되었으나 그의 생활은 극히 세속적 이요 육체의 삶을 살았습니다. 주님은 세속적이고 육체적인 삶을 살았던 야곱에 대하 여 간사하다고 말했습니다. 간사하다는 말은 헬라어로 도로스, 안에 미끌미끌하게 달 아진 돌멩이나 불순물이 들어있는 곡식과 포도주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우리 성경에서는 사악이라고 번역되었습니다. 야곱은 축첨하는일,자식 낳는일,재산모으는 일,향락을 즐기는 일,남을 속이는 일등 너무 세속주의적이며 육체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하 여 인간적으로만 보면 어떤 정도 성공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아름다운 여인 네 명을 아내로 삼았으며 12명의 아들을 낳았고 많은 재물을 모아 거부가 되었으며 수백 명의 종을 거느리면서 향락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야곱은 성화의 생활이 아닌 육의 생활을 살았습니다. 하란에 머물러 있는 동안 야곱의 생애는 철저하게 육을 따라 사는 생활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야곱으로 하여금 세상적 이고 육체적인 삶을 끊도록 하기 위하여 그에게 육체적 고통을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그와 그 가정에 고통스러움이 계속되었습니다. 아내들의 갈등, 배다른 자식들의 갈등, 특히 요셉에 대한 고통,장인과 처남집과의 갈등 참으로 감당키 어려운 것들이었습니다. 야곱은 이같은 고통을 훗날 바로왕 앞에서 그의 나그네 길에 험악한 세월을 보내 었나이다. 고 했습니다.(창47:9) 지금도 구원받은 성도들 가운데 성결하게 살지 못하고 야곱처럼 육으로 사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크게 세가지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는 배와 같이 육적 욕구를 따라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먹고 마 시며 육체적 쾌락을 추구하며 삽니다.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 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빌3:19) 두번째는 가슴과 같이 감정적인 용기만 가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세번째는 머리와 같이 생각하며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비록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구원은 받았으나 배로 사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육체적인 삶은 불신자들은 말할것도 없고 성도들 가운데도 있습니다. 성령님으로 살지 않고 육을 따라 세속적인 삶을 살아가는 성도가 있습니다. 두번째는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이름을 가지고 살았던 그의 중년 이후 노년생애입니다. 젊은 야곱이 육체적이고 세속적인 삶을 살았다고 한다면 노인된 이스라엘은 아주 성숙 한 영적생활 곧 성화되어진 생애를 살았습니다. 얍복강가에서 환도뼈가 뿔어진후 야곱 은 지팡이를 의지하면서 걷고 살았습니다. 얍복강을 건넌 야곱은 그의 이전 생활과는 아주 다른 생활을 했습니다.
1 야곱은 약속에 땅 가나안에서 살았습니다.
2 야곱은 벋엘과 하나님을 늘 사모하며 예배하며 살았습니다.(창35:)
3 야곱은 신령한 눈이 열려 12아들의 장래를 예언하며 축복했습니다.(창49:)
4 야곱은 최후에 지팡이를 의지하며 세상을 떴습니다. (히11:21) 참으로 야곱은 거의 완숙되게 성화의 생활을 하다가 세상을 떴습니다. 야곱은 일찍 부터 자기 가정은 메시야가 약속된 가정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자기 가정의 장자권은 메시야 계승권인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어렴풋이나마 자기 후손중에 메 시야가 탄생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야곱은 벧엘에서 메시야의 계시를 보았으며(창28:) 자기의 12아들중에서 4째 아들 유다를 통해 메시야가 탄생하실 것을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알고 예언했습니다. 유다에 대한 예언중에서 유다는 사자새끼(창47:9,계5:5) 홀, 지팡이,실로(창47:10)라고 함은 곧 메시야에 대한 예언이였습니다. 야곱은 구약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성화되어진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야곱에 대한 것을 말할때 젊었을때 육으로 살았던 야곱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반드 시 노년에 성령님으로 살았으며 성화되어진 모습으로 살았던 야곱 곧 이스라엘을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젊은 야곱 육으로 살았던 야곱만 강조하면 지나친 복음 강조 때문에 반율법주의 도 덕폐기론이 될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부도덕하게 살았던 야곱을 선택하여 구원했다는 것만 강조해서는 안됩니다. 유다도 다윗도 롯도 같은 경우가 됩니다. 노년 야곱 곧 이스라엘, 성령님으로 살고 거룩하게 살았던 것만 강조하게 되면 복음과 하나님의 은혜가 무시됩니다. 야곱의 성화되어진 행위만 강조되어지면 하나님의 사랑 과 은혜와 복음과 그리스도가 무시됩니다.
그러므로 야곱의 147년의 전생애는 은혜(복음)와 율법이 함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야곱과 같은 그가 복음(그리스도)으로 구원 받아 성화(율법)되어진 이스라엘로 살았던 것을 함께 보아야 합니다. 기독교는 복음과 율법이 함께있는 종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복음만 지나치게 강조하면 도덕폐기론,반율법주의 이단이 됩니다. 이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람의 행위를 분리하여 하나님의 은헤를 왜곡시킵니다. 하나님 의 율법만 강조하면 율법주의자가 되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람의 행위를 혼합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희석시키고 퇴색케합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기독교는 복음과 율법이 함께 하는 종교입니다. 그러나 선후의 차이는 분명히 있습니다. 그것은 먼저는 복음요 다음 은 율법입니다. 롬 1장-11장은 복음이요,롬 12장-16장은 율법입니다. 모든 기독교인은 복음(은혜)로만 구원을 얻습니다. 구원 문제에 있어서 인간의 노력, 행위,의지,선행은 전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얻어지는 것입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의지에 의해서 됩니다. 너희가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 난것 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엡2:8-9) 그러나 성도의 성화의 생활은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은 인간의 행위가 필요합니다. 주의 할것은 인간의 독자적 행위로서는 성화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성령님 의 도우심을 받은 인간의 행위가 필요합니다. 거룩하고 성결하게 사는데는 우리들의 노력과 행위가 적극적으로 필요합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2:12)고 하심은 성화를 의미합니다. 야곱은 복음(은혜)으로 구원받고 거의 완벽한 성화된 구약 그리스도인입니다. 성화되 어진 야곱은 요즘에 신비주의에 빠진자들처럼 초자연적이며 기적적인 무엇을 추구하지 않고 거룩하고 성결하게 살았습니다. 우리 모두는 복음(은혜)으로 구원 얻었습니다. 그리고 얻은 구원은 인간들의 행위에 의하여 취소되고 변질되지 않습니다. 이미 얻은 구원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약속 때문에 끝까지 보장(궁극적 구원,견인)이 됩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일은 우리가 도사가 되는 것이 아니요 초능력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앞서간 믿음의 선진들과 같이 성화된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성화는 성령님께서 성경 말씀을 도구로 삼아 이 루게 하십니다. 왜 오늘날 한국교회가 신령하지 못하며 참 이스라엘이 되지 못하고 있는가 복음과 율법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여 바르게 사는 생활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령님 충만은 복음으로 바르게 사는 생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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