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잠재력을 개발하자 (요14:6-18)
본문
미국의 서남쪽에 가면 한낮의 기온이 섭씨 45도 내지 50도까지 오르는 아주 뜨거운 사막지대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어 떻게 이런 더운 곳에서 살 수 있느냐" 고 물어 보면, 그들의 대답은 간단합니다. 그 밑에 생수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물이 흐르고 있기 때문에 생명을 공급받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우리 기독교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용어는 '생명(life)' 이라는 말 입니다. 예수께서도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요14:6)고 말씀했습니다. 기독교를 가리켜서 '생명의 종교'라고 얘기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 은 아직도 자신의 생활 속에 역동적인 삶의 변화를 일으키지 못한채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교리에만 머물러 있는 경우가 있스니다. 이런 사람은 온전한 신앙생활에 이르지 못한 사람입니다. 기독교는 말씀이 말씀으로만 머물러 있는 철학적이고 추상적인 종교 가 아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생명의 진리가 되시고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풍성한 생명을 주는 종교입니다. 다시 말해서 머리로만 인 식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신앙고백을 함으로써 진리가 내 삶을 변 화시키는 종교라는 말입니다. 어떤 교파에서는 기독교의 진리를 지성적, 논리적으로 인식하기를 강 조합니다. 그래서 흔히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을 곧 지성인이 되는 것 으로 생각하는데, 그것은 건실한 신앙이 아닙니다. 교회 밖에도 지성 인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기독교인이 된다는 말은 곧 말씀이 내 생활 을 변화시키고 인격을 변화시켜 생명 있는 종교인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저는 오늘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생명의 잠재력을 개발하자"라는 제 목으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마음의 문을 열고 믿으라.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인하여 나를 믿으라" 말슴이 말씀으로만 머물러 있으면 생명의 역동성을 잃어버렸니다. 깨 달음에 중점을 두게 되면 이성적이고 지성적이 될지는 모르지만 생활 에 변화가 없습니다. 지성이란 때때로 인간을 이중적으로 만듭니다. 확신이 없고 불안해집니다. 남이 지성적으로 보이니까 자신도 지성인 인 것처럼 허세를 부립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늘 갈등이 있습니다. 지성이라는 것은 궁극적으로 분열과 교만을 가져오고 불순종을 가져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분열된 것은 말로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상은 자기의 지성을 자랑하고 인간적인 것을 내세웠기 때문입니다. 근본적으로 우리의 마음의 변화를 가져오는 건실한 생명의 종교가 되 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머리로 깨닫고 믿으라'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10)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 불어 먹으리라"(계3:20) 이 말은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은 주님과 함께 사는 생명 있는 삶을 누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생물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주위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는 동물은 바 로 인간이라고 합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자라는 태아가 탯줄을 통해서 영양을 공급받다가 세상에 태어나면 폐로 숨을 쉬고 입으로 영양을 섭 취하게 됩니다. 환경에 적응해 나가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인간은 또 영적인 동물이므로 영적 분위기에 쉽게 변화되어야 할 텐 데, 신앙을 가졌다고 하면서도 변화되지 못하고 자연인으로 머물러 있 으면서 인간의 편견과 교만과 부정적인 생각이 자신을 지배하는 무기 력한 신앙은 우리가 반성해야 합니다. 설교 말씀을 들을 때는 고개를 끄떡이다가 교회 문 밖에 나가면 진리를 다 잊어버리고 마는 가증한 생활도 반성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이 오늘날 한국 교회가 신앙의 새로운 변화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입니다. 우리들이 전적으로 믿는 마음의 신앙을 가질 때에, 하나님께서 주신 무한한 잠재력을 개발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무한한 잠재력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많은 사람들이 이 성경 구절을 대하면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당장하 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3년 동안 팔레스틴의 지역적 환경과 문화적 제한 속에 서 열두 제자를 훈련시키셨습니다. 예수님의 제가 베드로가 오순절 마 가의 다락방 사건 이후 복음을 전하자 3천명이 회개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전세계에 복음이 전파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해서 무한한 가능 성과 잠재력을 개발하여 지리적, 문화적 한계 속에 계셨던 예수님보다 도 더 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대학 UCLA의 조사에 의하면, 인간의 두뇌의 능력은 배 우면 배울수록 한없이 무한한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합니다. 소련의 과학자인 이반 예프레무프라는 사람은 "우리는 일생 동안 생각하는 기능의 일부분만을 사용하고 있다. 우리는 어려움 없이 40개 외국어를 자유자재로 말할 수 있고 백과사전을 A에서 Z까지 모두 외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대학에서 전공 분야를 우수하게 공부할 수 있는 두뇌의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혼자서 백 사람의 일을 할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가능성을 믿고 개발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자기 가족도 제대로 거느리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난 할 수 없어. 나는 배우지도 못했어"라고 하며 자기의 잠재력을 믿지 않고 배워서 개발하지 않는, 게으른 사람입니다. 또 자 기의 무한한 가능성을 개발하기는 커녕 오히려 스스로 파괴시키는 사람도 있습니다. 술을 마시는 사람, 마약 복용자, 자기를 멸시하는 사람, 적개심을 가진 사람, 의기소침한 사람, 상상력이 없는 사람이 그 들입니다. 기독교 신앙이라고 해서 다 같은 것은 아닙니다. 어떤 설교를 듣게 되면 목사님이 너무 죄를 강조한 나머지 예수를 믿 어 죄를 용서받았다는 기쁨을 얻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죄의식에 사로 잡혀 자신을 미워하고 채찍질하게 되며, 심지어는 자신에 대한 열등의 식 때문에 남이 잘되는 것을 시기하고 꿈도 없이 지극히 피동적인 태 도를 취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무한한 가능성을 개발시키려고 하면 다른 사람들은 "왜 광림교회에서는 교인들을 가만히 놓아 두지 않느냐" 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무한한 가능성을 개발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면서 살아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무한한 잠재력을 개발하여 훈 련시키고 믿게 하는 것이 오늘날 교회의 사명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 겠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의 가장 큰 정신적 질병은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보려 고 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파괴적으로 생각합니다. 그것이 마치 지 성인의 모습인 양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되면 자기 스스로의 가능성마저 짓밟아 버리고 무한한 존재가 되고 맙니다. 여기에 흰 바탕에 검은 잉크가 묻은 천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넓은 흰 바탕은 볼 줄 모르고 까만 점만 보고서 그것이 문제라고 얘기 합니다. 왜 넓은 흰 바탕은 볼 줄 모릅니까 그런 사람은 무한한 가능 성을 볼 줄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잠재력도 개발하지 못하고 항상 뒤 떨어지는 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아침에 일어나서는 제일 먼저 성경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나를 구속해 주셨고 나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주셨으며 내가 하나님 앞에 은총을 입었다고 하는 성경 말씀을 읽을 때에 '할렐루야, 감사합니다'라는 기도가 저절로 나올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 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은 긍정적인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에 지배 당하게 되지만 부정적인 것만을 보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루종일 부정 적인 생각에 지배당하기 때문에 자주적이지 못하고 무능한 존재가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성경을 읽고서 하루를 시작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대 중의 여론의 지배를 받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소망 가운데 날마 다 개발하고 노력할 때에 깜짝 놀랄만한 기적을 일으킬 수가 있습니다.
3. 믿는 대로 생활 속에 활용하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내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응용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약 속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을 구체적으로 삶에 옮길 때에 놀라운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온전하고 건실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항상 자신에게 세 가지 질문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첫째, 이것이 참인가
둘째,이것은 내가 믿고 행 할 만한 것인가
셋째, 내가 말하는 것이 내 행위와 일치되는 것인가 다시 말하면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을 삶 속에 활용하고 있는가를 항상 물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역동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있습니다. 이성적으로는 이치에 맞지 않고 불가능해 보이지만 약속을 믿고 행동 에 옮길 때에 깜짝 놀랄 만한 기적이 일어나게 되고 자신도 미처 알지 못했던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이 개발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사랑과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사람은 혼자서 살아갈 수가 없 습니다. 서로 보살펴 주고 의지하고 사랑의 교제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낙심되었을 때 서로 격려하면서 사랑을 실천하는 도장이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지 못하고 교제하지 못하면 그것은 교회 생활입니다. 우리 교인 중에 치과의사 한 분이 계십니다. 그는 전통적인 불교 가 정에서 자랐고 어른이 되어서도 불교가 가장 우수한 종교인 줄 알았습니다. 그가 졸업을 한 후 치과의원을 개업했는데, 어쩐 일인지 환자가 없었습니다. 그 분은 삶에 대해 점점 회의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생활이 왜 이런가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살아야 하나' 이 렇게 고민하고 있는 중에 전도를 받고 우리 교회를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종교는 철학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에 머물러 있었으 나, 그게 아니라 삶을 변화시키는 생명의 진리라는 것을 깨닫고 기독교로 개종한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전적으로 받아들여 세례를 받고 집사가 되어 누가 선 교회에서 바쁘게 봉사했습니다. 지금은 교회 경조위원회의 남선교회 위원장이 되어 상가를 찾아다니면서 조의를 표하며 위로와 사랑을 베 풀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 천하니까 하나님께서 그 기업을 축복해 주시는데, 요즈음은 환자가 얼 마나 많이 몰려오는지 모릅니다. 그분의 친척과 친구들가지도 그 분을 보면서, 예수님은 분명 살아계시다는 것을 깨닫고 신앙생활을 시작하 게 되었다고 하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머리로만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구체적으로 생활에 적용 하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일을 책임져 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형제에게 사랑과 용기를 주는 보람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십니다.
4.성령님의 충만을 받으라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세상은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게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내 노력과 지혜가 아니라 보혜사 성령님이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하실 때에 우리는 놀라운 가능성을 개발하고 활용할 수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간이 강한 것 같지만 실상은 넘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뒤에서 도우시는 분이 계셔야 합니다. 보혜사 성령님이 우리를 지키셔야 합니다. 뒤에서 보호해 주시는 부모님이 있을 때에 아이들의 잠재력이 개발되고 능력이 커지는 것처럼, 우리는 부족하지만 보혜사 성령님이 뒤에서 지키실 때에 놀라운 능력을 발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성령님이라는 말이 52가지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바람 같 은 성령님, 불과 성령님, 기름같은 성령님, 물과 같은 성령님, 비둘기 같은성령 등입니다. 성령님은 능력입니다.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우리를 평화 롭게 합니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는 성부되시는 창조주 하나님에 역점을 두고 신학을 전개했습니다. 칼빈 (J.Calvin) 은 성자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핵심을 두고 신앙을 다지며 신학을 펼쳤습니다.
그런데 요한 웨슬레(J.Wesley) 선생은 특히 성령님을 강조하면서 체험적인 신앙을 증 거했습니다. 우리와 같이 계셔서 우리를 도우시고 인도하시는 성령님을 우리에게 증거한 것입니다. 영국 옥스포드 (Oxford)의 이성주의자로 서, 자신은 심판받을 죄인이라고 하는 개념 속에서 무기력했던 웨슬레 가 올더스게이트(Aldersgate) 에서 뜨거운 체험을 한 후 지구를 두 바 퀴 반이나 돌 만큼 역동적인 신앙을 가지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당신은 성령님 충만함을 받았고"라는 것이 웨슬레의 인사 였습니다. 광림교회가 오늘날 부흥된 것은 인간의 힘이나 지성적인 설교 때문이 아닙니다. 이 한가운데에 성령님이 계셔서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시고 역 동적인 신앙을 주시기 때문에 오늘의 광림교회가 된 것입니다. 오늘도 여러분이 무기력해졌을 때에 보혜사 성령님이 여러분 곁에 계셔 서 인도하시는 영으로, 확신을 주시는 영으로, 변화시키는 영으로 여러분의 무한한 잠재력을 개발해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주신 하나님 앞에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역사에 동참하시는 여러분 되시 기를 기원합니다.
1.마음의 문을 열고 믿으라.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인하여 나를 믿으라" 말슴이 말씀으로만 머물러 있으면 생명의 역동성을 잃어버렸니다. 깨 달음에 중점을 두게 되면 이성적이고 지성적이 될지는 모르지만 생활 에 변화가 없습니다. 지성이란 때때로 인간을 이중적으로 만듭니다. 확신이 없고 불안해집니다. 남이 지성적으로 보이니까 자신도 지성인 인 것처럼 허세를 부립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늘 갈등이 있습니다. 지성이라는 것은 궁극적으로 분열과 교만을 가져오고 불순종을 가져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분열된 것은 말로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상은 자기의 지성을 자랑하고 인간적인 것을 내세웠기 때문입니다. 근본적으로 우리의 마음의 변화를 가져오는 건실한 생명의 종교가 되 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머리로 깨닫고 믿으라'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10)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 불어 먹으리라"(계3:20) 이 말은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은 주님과 함께 사는 생명 있는 삶을 누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생물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주위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는 동물은 바 로 인간이라고 합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자라는 태아가 탯줄을 통해서 영양을 공급받다가 세상에 태어나면 폐로 숨을 쉬고 입으로 영양을 섭 취하게 됩니다. 환경에 적응해 나가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인간은 또 영적인 동물이므로 영적 분위기에 쉽게 변화되어야 할 텐 데, 신앙을 가졌다고 하면서도 변화되지 못하고 자연인으로 머물러 있 으면서 인간의 편견과 교만과 부정적인 생각이 자신을 지배하는 무기 력한 신앙은 우리가 반성해야 합니다. 설교 말씀을 들을 때는 고개를 끄떡이다가 교회 문 밖에 나가면 진리를 다 잊어버리고 마는 가증한 생활도 반성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이 오늘날 한국 교회가 신앙의 새로운 변화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입니다. 우리들이 전적으로 믿는 마음의 신앙을 가질 때에, 하나님께서 주신 무한한 잠재력을 개발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무한한 잠재력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많은 사람들이 이 성경 구절을 대하면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당장하 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3년 동안 팔레스틴의 지역적 환경과 문화적 제한 속에 서 열두 제자를 훈련시키셨습니다. 예수님의 제가 베드로가 오순절 마 가의 다락방 사건 이후 복음을 전하자 3천명이 회개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전세계에 복음이 전파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해서 무한한 가능 성과 잠재력을 개발하여 지리적, 문화적 한계 속에 계셨던 예수님보다 도 더 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대학 UCLA의 조사에 의하면, 인간의 두뇌의 능력은 배 우면 배울수록 한없이 무한한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합니다. 소련의 과학자인 이반 예프레무프라는 사람은 "우리는 일생 동안 생각하는 기능의 일부분만을 사용하고 있다. 우리는 어려움 없이 40개 외국어를 자유자재로 말할 수 있고 백과사전을 A에서 Z까지 모두 외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대학에서 전공 분야를 우수하게 공부할 수 있는 두뇌의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혼자서 백 사람의 일을 할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가능성을 믿고 개발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자기 가족도 제대로 거느리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난 할 수 없어. 나는 배우지도 못했어"라고 하며 자기의 잠재력을 믿지 않고 배워서 개발하지 않는, 게으른 사람입니다. 또 자 기의 무한한 가능성을 개발하기는 커녕 오히려 스스로 파괴시키는 사람도 있습니다. 술을 마시는 사람, 마약 복용자, 자기를 멸시하는 사람, 적개심을 가진 사람, 의기소침한 사람, 상상력이 없는 사람이 그 들입니다. 기독교 신앙이라고 해서 다 같은 것은 아닙니다. 어떤 설교를 듣게 되면 목사님이 너무 죄를 강조한 나머지 예수를 믿 어 죄를 용서받았다는 기쁨을 얻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죄의식에 사로 잡혀 자신을 미워하고 채찍질하게 되며, 심지어는 자신에 대한 열등의 식 때문에 남이 잘되는 것을 시기하고 꿈도 없이 지극히 피동적인 태 도를 취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무한한 가능성을 개발시키려고 하면 다른 사람들은 "왜 광림교회에서는 교인들을 가만히 놓아 두지 않느냐" 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무한한 가능성을 개발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면서 살아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무한한 잠재력을 개발하여 훈 련시키고 믿게 하는 것이 오늘날 교회의 사명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 겠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의 가장 큰 정신적 질병은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보려 고 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파괴적으로 생각합니다. 그것이 마치 지 성인의 모습인 양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되면 자기 스스로의 가능성마저 짓밟아 버리고 무한한 존재가 되고 맙니다. 여기에 흰 바탕에 검은 잉크가 묻은 천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넓은 흰 바탕은 볼 줄 모르고 까만 점만 보고서 그것이 문제라고 얘기 합니다. 왜 넓은 흰 바탕은 볼 줄 모릅니까 그런 사람은 무한한 가능 성을 볼 줄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잠재력도 개발하지 못하고 항상 뒤 떨어지는 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아침에 일어나서는 제일 먼저 성경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나를 구속해 주셨고 나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주셨으며 내가 하나님 앞에 은총을 입었다고 하는 성경 말씀을 읽을 때에 '할렐루야, 감사합니다'라는 기도가 저절로 나올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 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은 긍정적인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에 지배 당하게 되지만 부정적인 것만을 보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루종일 부정 적인 생각에 지배당하기 때문에 자주적이지 못하고 무능한 존재가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성경을 읽고서 하루를 시작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대 중의 여론의 지배를 받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소망 가운데 날마 다 개발하고 노력할 때에 깜짝 놀랄만한 기적을 일으킬 수가 있습니다.
3. 믿는 대로 생활 속에 활용하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내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응용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약 속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을 구체적으로 삶에 옮길 때에 놀라운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온전하고 건실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항상 자신에게 세 가지 질문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첫째, 이것이 참인가
둘째,이것은 내가 믿고 행 할 만한 것인가
셋째, 내가 말하는 것이 내 행위와 일치되는 것인가 다시 말하면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을 삶 속에 활용하고 있는가를 항상 물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역동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있습니다. 이성적으로는 이치에 맞지 않고 불가능해 보이지만 약속을 믿고 행동 에 옮길 때에 깜짝 놀랄 만한 기적이 일어나게 되고 자신도 미처 알지 못했던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이 개발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사랑과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사람은 혼자서 살아갈 수가 없 습니다. 서로 보살펴 주고 의지하고 사랑의 교제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낙심되었을 때 서로 격려하면서 사랑을 실천하는 도장이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지 못하고 교제하지 못하면 그것은 교회 생활입니다. 우리 교인 중에 치과의사 한 분이 계십니다. 그는 전통적인 불교 가 정에서 자랐고 어른이 되어서도 불교가 가장 우수한 종교인 줄 알았습니다. 그가 졸업을 한 후 치과의원을 개업했는데, 어쩐 일인지 환자가 없었습니다. 그 분은 삶에 대해 점점 회의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생활이 왜 이런가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살아야 하나' 이 렇게 고민하고 있는 중에 전도를 받고 우리 교회를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종교는 철학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에 머물러 있었으 나, 그게 아니라 삶을 변화시키는 생명의 진리라는 것을 깨닫고 기독교로 개종한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전적으로 받아들여 세례를 받고 집사가 되어 누가 선 교회에서 바쁘게 봉사했습니다. 지금은 교회 경조위원회의 남선교회 위원장이 되어 상가를 찾아다니면서 조의를 표하며 위로와 사랑을 베 풀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 천하니까 하나님께서 그 기업을 축복해 주시는데, 요즈음은 환자가 얼 마나 많이 몰려오는지 모릅니다. 그분의 친척과 친구들가지도 그 분을 보면서, 예수님은 분명 살아계시다는 것을 깨닫고 신앙생활을 시작하 게 되었다고 하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머리로만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구체적으로 생활에 적용 하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일을 책임져 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형제에게 사랑과 용기를 주는 보람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십니다.
4.성령님의 충만을 받으라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세상은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게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내 노력과 지혜가 아니라 보혜사 성령님이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하실 때에 우리는 놀라운 가능성을 개발하고 활용할 수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간이 강한 것 같지만 실상은 넘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뒤에서 도우시는 분이 계셔야 합니다. 보혜사 성령님이 우리를 지키셔야 합니다. 뒤에서 보호해 주시는 부모님이 있을 때에 아이들의 잠재력이 개발되고 능력이 커지는 것처럼, 우리는 부족하지만 보혜사 성령님이 뒤에서 지키실 때에 놀라운 능력을 발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성령님이라는 말이 52가지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바람 같 은 성령님, 불과 성령님, 기름같은 성령님, 물과 같은 성령님, 비둘기 같은성령 등입니다. 성령님은 능력입니다.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우리를 평화 롭게 합니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는 성부되시는 창조주 하나님에 역점을 두고 신학을 전개했습니다. 칼빈 (J.Calvin) 은 성자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핵심을 두고 신앙을 다지며 신학을 펼쳤습니다.
그런데 요한 웨슬레(J.Wesley) 선생은 특히 성령님을 강조하면서 체험적인 신앙을 증 거했습니다. 우리와 같이 계셔서 우리를 도우시고 인도하시는 성령님을 우리에게 증거한 것입니다. 영국 옥스포드 (Oxford)의 이성주의자로 서, 자신은 심판받을 죄인이라고 하는 개념 속에서 무기력했던 웨슬레 가 올더스게이트(Aldersgate) 에서 뜨거운 체험을 한 후 지구를 두 바 퀴 반이나 돌 만큼 역동적인 신앙을 가지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당신은 성령님 충만함을 받았고"라는 것이 웨슬레의 인사 였습니다. 광림교회가 오늘날 부흥된 것은 인간의 힘이나 지성적인 설교 때문이 아닙니다. 이 한가운데에 성령님이 계셔서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시고 역 동적인 신앙을 주시기 때문에 오늘의 광림교회가 된 것입니다. 오늘도 여러분이 무기력해졌을 때에 보혜사 성령님이 여러분 곁에 계셔 서 인도하시는 영으로, 확신을 주시는 영으로, 변화시키는 영으로 여러분의 무한한 잠재력을 개발해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주신 하나님 앞에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역사에 동참하시는 여러분 되시 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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