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삶을 기뻐하라 (요15:10-12)

본문

삶을 가장 잘 사는 위대한 전문가가 비결을 말해준다. "주 안에서 항 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 이것이 살아있는 동 안 늘 할 일이라고 하신다. 그 힘을 근거로 일할 때 우리는 무지개처럼 피 어 오른다. 그리고 삶의 모든 것을 아름답게 만든다. 그래서 더 기쁨이 넘친다. 기쁨으로 시작해서 기쁨으로 마치는게 신자의 삶이다. 그렇다고 해서 기쁨을 목표로 삼아 살라는 것은 아니다. 그런 사람이 많은데 잘못이다. 기쁨은 생에 원동력을 제공한다. 그냥 하는 일보다는 기쁨으로 하는 일이 몇 배 강한 힘을 발휘한다. 신자는 신자에게만 주어 지는 기쁨의 샘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기쁨을 퍼내면 삶을 가치있게 살 수 있다. 모든 일을 기쁨으로 하는게 하나님께 대한 보답이 된다. 신자라고 항상 기쁜 것은 아니다. 모두가 마음에 짐을 다 가지고 있다. 이 짐이 마음을 누르기 때문에 진정한 기쁨을 잘 가질 수 없다. 사업 하는 사람들은 대개 돈에 눌린다. 몸이 아픈 사람은 병에 시달린다. 가정 문제가 기쁨을 빼앗아 가기도 한다.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슬프 기도 하다. 이것저것 슬프고 불안하고 괴로운 일에 눌리면 기쁨은 없다. 지난번 모래시계의 마지막 편을 보았다. 주인공 태수가 사형을 받으려 사형장으로 간다. 늘 감방에만 있던 사람이 오랜만에 밖에 나온다. 그 연 기가 인상적이다. 초췌한 모습으로 햇빛을 눈부셔한다. 그러다가 마지막 으로 보는 세상을 둘러본다. 교도관들에게 끌려가면서 그는 세상을 살펴 본다. 공중을 자유롭게 나는 새떼, 파랗기만한 하늘, 뻗어나가는 나무들. 정말로 아름다웠다. 그야말로 사형수의 눈에는 모든 것이 경이로웠다. 생의 마지막을 아니까 그 가치를 보게 되는 것이다. '하늘을 보고 땅을 보고'라는 책이 있다. 거기서 사형을 당하는 날의 모습을 그려낸다. 밖으로 나가 사형장으로 가는 길에서 사형수는 어떻게 하는가 거의가 다 하 늘을 보고 다시 땅을 본다
마지막으로. 세상은 아름답기만 했다. 사형수는 그저 세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쁘다. 인간은 누구나 다 사 형수이다. 어쩌면 법정에서 사형 언도 받은 사람보다 더 빨리 죽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 있는 그 상태에서 삶을 즐거워하면 된다. 사실 있는 그대로를 얼마든지 즐길 수 있는게 인간이다. 잠깐 모든 것을 다 그만 두고 현재 가진 것 그대로 기뻐할 수 없는가 그러면 기뻐해 보라. 돈이 많고 적건 다 기분의 문제이다. 돈이 많다고 모두 만져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순전히 기분이다. 돈이 없다고 아니 빛에 눌려 있다고 해도 내 살을 갉아 먹는게 아니다. 무서운 것은 가 난하다는 생각이요 빚쟁이를 두려워하는 마음이다. 그냥 내 모습을 그대 로 받으면 감사한 것뿐이다. 빚이 많아도 먹고 살며 할 일 다할 수 있다. 그냥 그대로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다. 내게 주신 내 삶을 기뻐하는 것이다. 사실 걱정거리가 나를 때리는게 아니다. 걱정이 나를 때리는 것이다. 대체로 어려운 일을 당하는 것, 즉 빚 갚으라는 독촉, 남이 주는 비판, 불친절, 괴로운 일은 순간적일뿐이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기분나 쁜 느낌을 유지하기 때문에 계속 괴로운 것이다. 기분을 바꾸어야 한다. 신자는 현재 가진 것으로 얼마든지 기뻐할 수 있다. 지금 그 상태의 삶을 기뻐하라. 외모에 자신이 없다. 키가 작다던지 몸이 뚱뚱하다던지 약하다던지 불구라던지 하다고 보자. 무서운 것은 영혼까지 그 외모대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열등감은 영혼을 그렇게 만든다. 불평은 마음을 일그 러지게 한다. 그래서 더욱 삶에 적응 못하게 하고 기쁨을 빼앗아간다. 그래서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기쁨 없이 살아간다.
그저 허둥대며 죽어간다. 스스로 생각해 보라. 무엇에 쫒기면서 사는가 내 삶은 기쁨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가 내 삶은 잃은게 많고 빼앗긴게 많다고 생각하는 가 그래서 불안과 불만을 가지고 잠자리에 드는가 내 소원은 이루어지 지 않는다. 나는 우울한 사람이요 행복할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는가 내면적인 패배에 눌린 사람은 결코 참된 기쁨을 가질 수 없다. 온종일 염려만 하는 사람은 기뻐할 수 없다. 남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판하거나 냉소적인 사람은 참된 기쁨을 가질 수 없다. 삶에 대해서 그리고 정직과 선과 성실한 삶, 순수함을 우습게 본다면 기쁨을 가질 수 없다. 게으른 사람, 그래서 부모나 형제에게 기대는 사람은 참된 기쁨이 뭔지 모른다. 자기의 삶을 기뻐하라. 자기가 가진 것을 기뻐하라. 음식을 기뻐하면 서 먹으라. 자기 직업을 기뻐하라. 시장거리에 조그만한 책방이 있다. 평 생을 책방에서 보낸 아저씨다. 그에게 물었다. "이 직업을 좋아하십니 까물론이지요. 노동하는 것보다 백배 났지요." 자신이 좋아한다면 참 으로 좋은 직업이다. 돈을 많이 벌건 아니건 그건 다음의 문제이다. 어느 소년의 이야기를 들었다. 나면서부터 팔이 하나였다. 어떤 아줌 마가 보고 말했다. "어머 어쩌다가 팔이 하나만 되었을까" 그때 그 소년 은 아줌마 앞에 다가 간다. 그리고 말한다. "아줌마, 세상에는 팔이 둘 있는 사람도 있고 하나 있는 사람도 있어요." 이 아이의 영혼은 건강했다. 온 몸이 완전하고 아름다워도 죄짓고 슬퍼하는 사람이 많은데. 하나님은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으신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 사랑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난 사람들이다. 마음을 새롭게 하 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대로 하려는데 힘을 주시지 않겠는가! 말해보라. "하나님께서 명령하신대로 기뻐하겠습니다. 내게 주신 생명을 기뻐하고 내게 주신 모든 것을 기뻐하겠습니다. 힘을 공급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되면서 우리는 다음 단계로 뛰어오른다. 위를 바라보게 된다. 의미 있는 삶을 향해서 일어나는 것이다.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두 사람의 웅변가가 있다. 헨리 워드 비쳐와 웬델 필립스이다. 이 사람들의 위 대성은 노예제도를 폐지하게 한다. 이들은 불굴의 신앙으로 뉴욕과 보스 톤 거리에서 노예들을 위해서 싸웠다. 결국 노예제도는 페지되었다. 그후 필립스가 강연을 하는데 비쳐가 들으러 갔다. 강연이 마쳐진 후 두 사람은 호텔에서 만났다. 그때 강연한 사람이 들은 사람에게 평을 부 탁했다. "그보다 더 훌륭한 연설은 들은적이 없네." 그러자 필립스는 말 했다. "나는 연설을 하면서 생명이 없는 것처럼 느꼈어. 전에 느끼던 그 힘이 없어졌어. 자네는 내 친구아닌가. 왜 그런지 좀 말해줘." 비쳐는 대답했다. "아니, 그건 참 좋은 연설이었어. 아름답고 장엄하 고 예술적이었어. 그러나 자네 말이 맞아. 전의 힘이 없어. 이제자네는 더 이상 싸울 목표가 없어진거야. 목숨걸고 싸워야할게 없으니 무슨 힘이 나겠는가!"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 안에서 무슨 목표를 세우라. 도전하 라. 그리고 싸우라. 무슨 걱정을 하는가 어려워도 힘이 나는 것이다. 두려워하면 도전하지 못한다. 두려움 때문에 일을 못한다면 삶의 기쁨 은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평생 아쉬움을 가질 것이다. 무슨 일이건 마음 에서 하고 싶은 일을 향해 도전하라. 신자의 삶은 언제나 가능성 투성이다.
로버트 슐러 목사의 말이다. "당신의 모습 그대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이제 당신이 무엇인가 만들어 하나님께 선물로 드리라." 그러나 한 단계 더 뛰어올라야 최상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항상 자 신만을 위해서 살아간다면 불행해 질 수 있다. 자기와 가족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삶은 절대로 참된 기쁨을 가질 수 없다. 각자가 다 어려움을 가 지고 산다. 그래도 남에게 유익을 주는 삶을 산다면 기쁨을 가질 수 있다. 사랑으로 하라. 이것이 오늘 그리스도가 주시는 말씀의 내용이다. 노만 빈센트 필 목사의 경험이다. 그가 플로리다에 휴양 온 한 부자를 만났다. 그는 너무도 불행했다. 자신이 병들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를 돌볼 간호원 3명이 항상 대기하고 있었다. 필목사를 만났을 때 그가 한 첫마디는 "나는 병들었습니다"였다. 잠간 이야기하는 동안 그 말은 되 풀이 되었다. 의사도 그가 병들었다고 했다. 치료법도 없다고 했다. 그때 목사는 호텔 현관에서 의자를 끌어다니고 있는 노파를 보았다. 의자는 너무 컸고난간에 걸려있었다. 목사는 그에게 말했다. "저쪽에 가 서 저 할머니 좀 도와주시오. 그러면 기분이 좋아질겁니다.목사님이 하시지요. 난 몸이 안좋아서." 목사가 자꾸 고집하자 그는 신음을 내면서 했다. 어떠냐는 질문에 대답한다. "내가 좋아하는줄 아시는군요." 그런 다음에 목사는 예수의 말씀을 주었다.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해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 10:39) 자 기의 목숨만 생각지 말고 남도 위하라는 말이다. 아픈 사람은 말했다. "그 말씀을 많이 들었지만 이제 이해가 됩니다."
어떠한 상황에 있어도 남을 위해 일할 수 있다. 어떠한 상황에서 하나님을 위해 일할 수 있다. 몇 년 후에 목사는 우연히 그를 만났다. 너무도 달라져서 몰라보았다. 그는 건강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간호원은 다 어디 갔습니까" 목사의 질문에 그는 대답한다. "이제 필요 없어요. 저는 이제 완전히 건강합니다." 그의 말이 증거하고 있었다. 우리가 자신을 벗어나 다른 사람에게, 위대한 일에, 더 큰 무엇에 자신을 바칠 때 얻는 기쁨과 힘이다. 그래서 주께서는 말씀하신다.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안에 거하리 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서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내 계명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니라." 자신에게서 벗어나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남을 사랑하는 것이 기쁨의 비결이다. 그 기쁨은 세상의 것이 아니라 주가 주는 것이다. 하나님의 손이 항상 우리를 인도하심을 의식하라. 아는 교수중 하나가 목사로 순교자한 분의 자식이다. 그는 아버지의 죽음을 본 사람이다. 총 살 당하면서 아버지는 평온한 모습으로 죽었다. 두려워하거나 당황하거나 하지 않았다. 어려운 시간에 하나님은 강하게 하신다. 매를 맞고 발길로 채였지만 얼굴은 천사와 같았다. 아들은 평생 그 아버지의 잊지 않았다. 그 모습은 어러울 때마다 그에게 힘을 주었다.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는지 보여주었다. 절대로 악으로 악을 갚지 말라. 남을 비난하지 말고 욕 하지 말라. 그렇게 하는 것은 자신이 마귀노릇하는 것이다. 하나님 노릇 을 하라. 그것은 하나님처럼 사랑하고 용서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기쁨으로 충만해진다. 이것이 주가 주시는 오늘의 말씀이다. 우리는 평생을 통해 기뻐하며 살다가 영원한 기쁨의 나라로 간다. 그 러기 위해 "주 안에서" 기뻐하는 방법에 능통해야 한다.
첫째, 현재의 삶을 즐기라. 같은 값이면 기뻐하는게 좋지 않은가!둘째 위대한 삶에 도 전하라.셋째 남을 사랑하라. 그렇게 하늘나라까지 가라. 주께서 이 모든 일에 힘을 공급하고 계신다. 살아있어라. 살아있다는 사실을 기뻐하라.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66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