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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으로 살아가는 사람 (요14:2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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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C. 카이저 박사의 영적 회복이 필요할 때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분은 이 책에서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의 영적인 상태가 바로 이런 ‘영적 회복이 필요한’ 바로 그 때라고 거듭 강조하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 한번 냉철하게 객관적으로 우리들 자신과 우리가족과 우리이웃의 영적인 상태를 한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과연 영적인 회복이 필요한 때인지, 아니면 영적인 회복이 필요없는 때인지를 말입니다. 분명하게 지적은 못하지만 무언가 나사가 풀려있는 듯한 그런 느슨한 신앙의 상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우리가 성경을 읽어가면서 신약의 역사서인 사도행전 전반부에 나오는 초대교회 신자들의 모습과, 오늘날 현대 교회의 신자들의 모습과 비교해 보면, 더욱 더 뚜렷하게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이야 말로 성경에서 지적하고 있는 내면적인 죄인 시기, 오만, 악의 ,질투등이 더욱 깊이 뿌리내리고 있고, 또한 외면적 죄인 거짓, 부도덕, 속임등으로 나타나는 죄되고 악한 현상을 너무나도 쉽게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비기독교인은 말 할 것도 없고 기독교인까지도 이런 악한 시대적인 조류속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라고 볼 수 있는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이야 말로 자타가 공인할 정도로 영적인 회복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때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 ! 이렇게 영적인 회복이 필요한 때에 사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영적인 회복을 이룰수가 있겠습니까 카이저박사의 책 목차를 보면 영적 회복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 10가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1)우상을 제거해야 되고
(2)죄를 고백해야 되고
(3)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섬겨야되고
(4)하나님은 하나님되도록 해야 되며
(5)하나님을 찾아야 되고
(6)기도를 해야 되고
(7)하나님께로 돌아와야 되고
(8)하나님앞에서 겸손해야 되고
(9)하나님의 일을 새롭게 시작해야 되고
(10)하나님안에서 즐거워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10가지가 이루어 질때 비로소 "영적인 회복이 이루어진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영적 부흥 운동이 일어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정확한 분석에 따른 정확한 처방임에 틀림이 없는것 같습니다. 영적회복이 참으로 필요한 이 시대적인 요청에 필요적절한 영적인 처방인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영적인 처방을 두고 한번 더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 10가지가 다 좋은데 열가지를 간단하게 하나로 묶어서 표현한다면 무슨말로 표현하면 좋을까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하던 결과 영적인 회복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그래서 그 시기를 분명히 파악하고 있다면 ‘ 내 자신이 영으로 사는 사람이 되면 된다’ 라는 포괄적인 처방을 내려 보았습니다. "내 자신이 영으로 사는 사람이 되자 ! 내 자신이 영으로 사는 사람이 되자 ! " 이렇게 되어지면 내속에서는 앞에서 열거한 10가지의 항목들이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고 그 결과 영적회복이 가능할 것이라는 확신과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저로 하여금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게끔 한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봉독한 하나님의 말씀 요 14:25-27의 말씀입니다.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님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우리속에 임하고 계시는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하나님의 자녀라면, 바로 이런 영적인 역사에 대해 느끼고 깨달으면서 살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수 많은 사람들, 그중에서도 영적으로 살아가야 될 기독교인들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너무나도 영적으로 민감하지 못하고 둔한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는것 같지 않습니까 우리속에 바로 내 속에 성령님이 거하시고 있다는 그런 사실을 전혀 잊어버리고 마치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님 하나님이 저 멀리 북극성 근처에 있는그런 하나님인양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바로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의 현실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침으로 주신 하나님의 말씀에서 보면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멀리 계시는 하나님이 아님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인류 최초의 조상인 아담 하와의 경우를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한 후 무화과 나무잎을 엮어서 치마를 해 입고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사이에 숨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어떠했습니까 저들을 찾지 못했습니까 그래서 계속해서 숨박꼭질만 했습니까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속속들이 보시고 있었습니다. 뿐만아니라 그 속의 생각까지 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들을 부르시고 저들의 죄를 문책하시고 벌을 내리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하나님을 두고 구약시대는 무엇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까
(1) 신 32:10,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 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2) 시 17:8,나를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아래 감추사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불꽃같은 눈으로 일거수 일투족을 살피신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우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이 신약시대에는 약간 다른 방식으로 우리에게 임하고 있습니다. 신약시대는 예수께서 약속하신 성령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그 성령님이 우리의 마음속에 깊이 임재하면서 우리와 함께 동거동락하시고 우리에게 모든것을 가르치시고 예수님께서 교훈해 주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의 경우를 사도행전을 통해 살펴보면
(1)베드로의 경우, 그가 설교할 때나 기적을 일으킬때마다 성령님충만함 속에 서 설교나 신유의 역사를 행했고
(2)바울과 여러 전도자의 경우, 그가 전도 할때마다 성령님의 감동과 인도하 심을 받아 행선지를 정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고전 2:11-13에서는 더욱 더 확실하게 우리들에게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로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님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는 지금 성령님께서 우리속에 내주하시는 신약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여러분 속에 내주 하시는 성령님을 얼마나 의식하면서 민감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얼마나 영적으로 예민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일주일에 한번 두번 세번 .열번 교회에 온다고 해서 그때만 하나님이 계신다고 생각하면서 그때만 하나님을 의식하고 그 이후의 일은 전혀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십니다. 무엇이든지 알고,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소부재하십니다. 어디서든지 계십니다. 아니 계신 곳이 없습니다. 우리가 한눈을 팔고 세상에 관심을 두는 것도 아십니다. 우리가 이웃을 비난하는 말을 할 때도 그곳에서 듣고 계십니다. 우리가 나쁜 행동을 할 때도 그 곳에서 보고 계십니다. 아니 우리가 나쁜생각에 빠져 있을 때에도 그 생각을 아시고 안타까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을 늘 생각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민감한 신앙생활 입니다. 이런 민감한 신앙생활의 모습에 대해 엡 5:18-21절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님의 충만을 받으라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바로 이것입니다. 사람들이 술에 취하면 그의 모든 인격과 생각이 그의 모든 육신의 행동이 그의 모든 두뇌의 활동이 술의 지배를 받는 것처럼 성령님 충만한 가운데서 영으로 사는 사람들은 모든 것이 성령님의 지배를 100%받아서 그의 생활이 오직 하나님을 향한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민감한 바로 이런 모습이 , 영으로 사는 사람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영적으로 민감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항상 모든 일에 앞서 하나님의 뜻과 생각을 먼저 살피는 것입니다. 말을 할 때에도 하나님께서 내가 이말을 하면 기뻐하실까 , 행동을 할 때에도 하나님게서 나의 이행동을 어떻게 생각하실까 하면서 살피는 것입니다. 좀 지나치게 민감한 사람은 집에서 가구를 배치할 때도, 주여 이농을 어디에 놓으면 주님께서 보시기가 좋겠습니까 집에서 못을 하나 치더라도 주여 이 못을 어디에 치는 것이 좋겠습니까 직장에서 사업하면서 대화를 나눌때 먼저 내 속에 계시는 성령님께 주여 내가 무슨 말을 해야 좋겠습니까 라고 물을 정도인 것입니다. 또 어떤 회사의 사장님은 " 나는 이 회사의 사장이 아니라 이 회사의 사장님은 바로 하나님이시다. 나는 사장님이신 하나님의 명령을 받는 종업원일뿐이다" 라고 생각하면서 그 회사를 청지기의 입장에서 성심성의껏 꾸려 나간다고 했습니다. 마치 예수님의 비유중에서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종이 그 받은 달란트를 가지고 성심 성의껏 일을 해서 5, 2달란트를 남겨서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받은 종들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 우리는 왜 이렇게 우리의 신앙 생활을 민감하게 해야 됩니까 그것은, 하나님은 우리가 고함을 치고 야단법석을 쳐야만 겨우 얼굴을 내어미는 그런 멀리 계신 하나님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우리곁에 계십니다. 우리슴결을 듣고, 우리의 삶에 동행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내 속에 거하시고, 나와 동거동락하면서 나와 대화를 나누시는 그런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러한 삶이 언제나 계속되기를 바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속에 거하시는 성령님을 무시하고 육으로 살수없습니다. 따라서 이렇게 육으로 살지않고 내안에 거하시는 성령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생활이 되려면 신앙생활에, 영적인 삶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요일서 2:15-17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 말하기를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에 자랑이니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성도 여러분 ! 우리는 영적인 사람입니다. 영으로 살아가야만 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우리 이점을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결단코 잊고 살아서는 안됩니다.
(예화)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 당시 빅토리아 여왕이 왕위에 있는 약 62년동안 여왕과 더불어 영국 정치에 깊게 관계한 윌리암 에워드 글래드스톤이라는 저명한 정치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재무장관,자유당총재,하원의원 등을 역임하였고 총리로 4번씩이나 있으면서 실제적인 대영제국 통치자로서의 생애를 보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대 정치가의 뒷모습을 추적해보면 너무나도 귀한 신앙의 사람이었다는 사실에 대해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글래드스톤이 아홉살 되었을 때에 그의 어머니는 글래드스톤의 생활의 모습을 보고 그의 아들 글래드스톤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을 확신하였다고 합니다. 그가 21세때에 기록한 일기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내가 실행해야 될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안에서의 생활을 나의 심령최대의 습관으로 삼는 것이다. " 그는 짐이 너무 무거워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라도 기도함으로 능히 이겨 나가곤 했습니다. 자나깨나 늘 기도했던 그는 연설하려고 할 때도 언제나 고요한 시간을 내어 기도했습니다. 내각이 위기를 당했을 때도 하루 세번은 반드시 기도의 시간을 가졌다고 합니다. 한번은 옥스포드에 있는 자기 아들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습니다. ".하여간 내가 말하려는 것은 언제나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생각하는 버릇을 갖는 일이 가장 유익한 일이며 또한 이런 습관을 얻는 것이 그 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하면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도움심과 인도하심을 받게 될 것이다 " 또한 그는 그의 침대위에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라는 말을 적어서 걸어 놓고,이는 나의 가장 큰 위로라고 말하곤 했다고 합니다. 일국의 총리가 그 바쁜 일정속에서도 한 순간도 주님과 동행하는 그 삶을 늦추지 않았던 것입니다. 왜 그럴수 있었겠습니까 그는 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의 마음속에는 늘 주의 친절한 팔에 안겨있는 그 자신을 발견했고 날이 갈수록 주의 사랑이 그를 비추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그 살벌한 정치 세계에서 겁과 두려움없이 영으로 사는 사람으로 성공적인 승리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여러분은 이 땅위에서 어떠한 삶을 사시기를 원하십니까 간절히 바라건데 육의 지배를 받는 육의 사람이 아니라 이제부터는 영의 지배를 받는 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다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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