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 (요13:34-35)
본문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 인줄 알 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주님의 사랑의 실천하기 위해서는 먼저 주님의 사랑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 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은 이 세상을, 특별 히 우리 인간들을 사랑하셔서 그의 독생자를 보내신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그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인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우리 대신 죽어 주심으로 우리를 죄와 지옥의 저주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큰 사랑이 없다"라고 말씀하시고 주님께서 우리들을 친구 로 삼으시고, 바로 그 친구들을 위하여 친히 그의 사랑을 십자가 위에서 나타내셨습니다. 바울이 로마서에 기록한 말씀을 보면 롬5:7에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 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 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고 하셨 습니다. 창조자이신 주님이 인간이 되시고 또 죄인 된 인간을 위 하여 죽어 주신 사실은 너무나도 놀라운 사건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 바로 알 때 우리 마음에 감사한 마음이 충만케 됩니다 우리에게 감사한 마음이 있어야 사랑을 실천 할 수가 있습니다 아무 죄도 없으신 우리 예수님께서는 이 십자가 위에서 사랑의 제물이 되셨던 것입니다. 그 결과로 우리가 구원 얻 었으니 우리가 무엇으로 보답하겠습니까
그런데 나를 사랑 하면 형제와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우리 가 형제와 이웃을 사랑함이 마땅합니다 또 우리의 마음에 감사의 마음이 있을 때 우리의 마음이 열려져서 가족도 사랑스럽게 보입니다 이웃도 형제도 사랑 스럽게 보입니다 주님의 사랑 때문에 내 마음이 열리고 또 내 마음이 따 뜻 해저서 사람들이 사랑스럽게 보일 때 사랑의 실천이 가 능합니다 "행복의 범위는 사랑의 범위와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 사람 사랑하면 그만큼 행복합니다 열 사람 사랑하면 열 사람만큼 행복의 범위가 커집니다 내 동포를 사랑하면 그 만큼 행복이 더 커집니다. 그리고 사랑으로 하는 일은 조금도 무겁게 느껴지지 않 습니다 '요일' 5:3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 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하는 일 은 무거운 것이 없습니다 할머니가 손자를 자랑하시느라고 엎고 돌보시는 모습을 보면 아주 즐거워 보입니다 그분들의 모습 속에서는 힘들다거나 짜증스러운 표정은 전혀 볼 수 없습니다 항상 기쁨이 넘칩니다. 그것은 손자를 사랑하기 때 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이 교회를 섬기는 것도 주님을 사랑하면 교회 일 하는 것이 힘은 들지만 짜증은 나지 아니합니다 무슨 일을 맡든지 그저 받은 은혜가 감사해서 하나님 일을 한다는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면 무거울 것이 없 습니다 가족에 대해서도 좋은 가족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런 생각이 있으면 사랑스럽고 예쁘게 봉사 할 수 있습니다
2)우리는 주님의 사랑과 같은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요13:34-35)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 인줄 알 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는 사랑 공동체입니다 교회에 사랑이 충만할 때 그 것이 주님의 교회라는 증거입니다 그 사랑도 주님의 사랑과 질이 같은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은
(1) 조건 없고 차별 없는 사랑입니다
(2)주님의 사랑은 원수까지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거져 주시는 은혜의 사랑입니다
(3)몸소 체휼하시고 종이 되어 섬기고 아낌없이 주는 사랑 고 아가페 사랑입니다 이세상의 사랑은 자기 욕심에 근거한 소유욕과 받기만 하려는 사랑입니다 "현대 교회의 신자들은 지금 여러 면에서 예수님의 제자 들로서의 자기 순수성을 상실해 가고 있다. 예수님의 제자임 을 보여 주는 진정한 표시는 섬기는 자로 오신 예수의 '종 의 형상'을 지닌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이 이런 삶의 모습을 나타내기보다는 세상 풍속과 잘못된 가치 관을 따라 분쟁과 부도덕과, 교만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제자라는 이름을 걸고 다니는 우리는 언제인지 모르게 십자가에 못 박힌 주님의 형상을 보이기 보다 몰골이 추한 '세인들'의 모습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경건의 능력을 눈에 보이지 않는 실령한 성도의 성숙한 삶은 살기 보다는 눈에 보이는 어떤 것으로 지기 과시를 하려 합니다 또 봉사를 통해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기보다는 물질이나 조직의 힘을 의지하고 세상적 영광과 이익을 취하려 합니다 봉사와 섬김의 자리에 있기보다는 명예와 권세의 자리를 탐내고, 겉으로 보기에는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인데 실제로는 열 두 제자들처럼 가슴속에 전혀 다른 세상적 동기들을 숨기고 예수를 따릅니다 여기에 오늘의 제자들의 위기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거 하는 길은 서로 사랑하는 길뿐 입니다. 교인의 모습은 사랑하는데 나타납니다 교회는 재물 을 축적해 두는 곳도 아니고 이념을 추구하는 곳도 아닙니다 그저 모여서 사랑하는 공동체입니다 서울에 사시는 홍근수 목사님이 일본교회를 방문 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분은 일본에서 한교회를 보았는데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운 교회를 보고 와서 간증을 했습니다
그 교회는 일본교회로 경도에 있는 北白川(기다시라 가와)교회였습니다 그 교회는 일본인 교회로서 역사는 60년 되었고 교인도 60여명되는 교회입니다 한국 기준 으로 하면 작은 교회이지만, 일본 기준으로 하면 큰 교회라고 했습니다. 그를 놀라게 한 것은 그 교회의 크기 같은 것 보다는 언뜻 볼때 그 교회는 교회 같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 그러나 그 교회가 진짜 교회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 다는 것입니다. 우선 그 교회는 십자가가 없었습니다. 건물 밖에는 물론 건물안, 특히 예배실에도 없습니다. 건물은 자기 건물이지만, 교회라고 알아볼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 었습니다. 그냥 주위에 있는 가정집들과 꼭 같은 집이 었기에 교회로 알아 볼 수 없었습니다. 사실은 그 교회는 일반 가정집이었던 건물을 교회로 개축한 곳이었습니다. 건물 밖 출입문 옆에 '日本基督敎團 北白川敎會' 라고 한문으로 내려 쓴 나무 간판이 하나 걸려 있었습니다. 그것도 붉은 색깔의 나무에 검은 붓글씨로 쓰고 그 위에 니스칠을 같은 것을 해서 그런지 컴컴하여 그 앞에 바싹 가 보기 전에는 잘 알아 볼 수 없었습니다. 주차장 같은 것도, 마당도 없었습니다. 높은 강단도 강대상도 안 보였습니다. 강단과 강대 상이 있어야 할 위치에 작은 탁상과 의자가 하나씩 있 었을 뿐입니다. 옆쪽에 작은 오르간이 하나 있었고 그 반대편에는 작은 칠판이 하나 세워져 있었습니다.거기는 주보 대신 예배 순서가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예배시간이 되었을때 어느새 그 예배실은 사람들로 꽉 찼습니다. 60여명이 되어 보였습니다. 교회에는 담임 목사님 한 사람이 있을뿐 다른 교역자나 사무직원조차 도 없었습니다.
목사님이 하는일 이외의 교회의 일들은 교인 모두가 나누어서 맡아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는 일본이 만주를 침략할때 그들 만 주 사람들에게서 침략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복음을 주 어야 한다고 하여 만주 선교사로 두 사람이나 배출되었 습니다 그들 가운데 한분은 만주에서 순교를 당했습니다. 또 그 교회는 일본의 2차대전을 비판하고 일본에서는 금기인 천황제도를 비판하는 설교를 하는 교회입니다. 그 교회의 수는 적지만, 정말 정직하게, 성실하게 그리스도의 제자로 사는 진지한 크리스쳔이라고 생각하 였습니다. 그 교회는 그리스도인과 그리스도 교회의 자유를 철저히 믿고 일본 제국주의 권력에 맹종하거나 굴 복하지 않았습니다. 그 교회는 현재도 한국교포가 서너 명이 교인으로 있었습니다. 재일 동포들이 일본인 교회 에 교인으로 되는 예는 그리 많지 않고 그리 쉽지도 않 습니다. 그들이 그곳에서 인종은 비록 다르지만, 그리스도안에서 하나가 되고 한 권속으로 따뜻하게 환영을 받 고 있으니 교인으로 있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또 그 교회 교인들은 피차별민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재일 한국교포들에 대해서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교회였습니다. 2차대전의 와중에서 일본에서 와서 살면서 학교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여 일본말을 잘 모 르는 나이 많은 한국 여성들을 위하여 '어머니학교'라는 것을 세워 그들에게 일본말을 공부시키는 야학교가 있었습니다. 그 학교의 선생으로 자원 봉사하는 교인들 이 몇분 있었습니다. 그 어머니 학교는 학생 한 사람에 선생 한 사람이라고 하는데 현재 20여명의 어머니들이 공부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어머니 학교 선생들중 한 분은 한국 사람들을 더 잘 이해하고 한국어로 기도 할수 있기 위해 한국에 나와서 1년반 동안 연세대학교 어학당에서 한글공부를 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가족들을 일본에 두고 서울에 와서 공부한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의 사랑을 몸소 실천하는 성도가 됩시다
3) 주님의 사랑의 실천은 오직 성령님 충만으로만 가능 합니다 (엡5:18-21)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님의 충만을 받으라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라고 말씀하 셨습니다 성령님의 충만은 예수님의 사랑을 알게 합니다 성령님 충만 은 사랑의 근거가 되는 감사한 마음이 일어나게 합니다 성령님 충만은 성령님의 열매인 사랑과 희학과 화평과 인내 자비 양선이 나와서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게 합니다 우리 모두 성령님 충만 받아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 가 됩시다
1)주님의 사랑의 실천하기 위해서는 먼저 주님의 사랑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 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은 이 세상을, 특별 히 우리 인간들을 사랑하셔서 그의 독생자를 보내신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그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인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우리 대신 죽어 주심으로 우리를 죄와 지옥의 저주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큰 사랑이 없다"라고 말씀하시고 주님께서 우리들을 친구 로 삼으시고, 바로 그 친구들을 위하여 친히 그의 사랑을 십자가 위에서 나타내셨습니다. 바울이 로마서에 기록한 말씀을 보면 롬5:7에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 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 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고 하셨 습니다. 창조자이신 주님이 인간이 되시고 또 죄인 된 인간을 위 하여 죽어 주신 사실은 너무나도 놀라운 사건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 바로 알 때 우리 마음에 감사한 마음이 충만케 됩니다 우리에게 감사한 마음이 있어야 사랑을 실천 할 수가 있습니다 아무 죄도 없으신 우리 예수님께서는 이 십자가 위에서 사랑의 제물이 되셨던 것입니다. 그 결과로 우리가 구원 얻 었으니 우리가 무엇으로 보답하겠습니까
그런데 나를 사랑 하면 형제와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우리 가 형제와 이웃을 사랑함이 마땅합니다 또 우리의 마음에 감사의 마음이 있을 때 우리의 마음이 열려져서 가족도 사랑스럽게 보입니다 이웃도 형제도 사랑 스럽게 보입니다 주님의 사랑 때문에 내 마음이 열리고 또 내 마음이 따 뜻 해저서 사람들이 사랑스럽게 보일 때 사랑의 실천이 가 능합니다 "행복의 범위는 사랑의 범위와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 사람 사랑하면 그만큼 행복합니다 열 사람 사랑하면 열 사람만큼 행복의 범위가 커집니다 내 동포를 사랑하면 그 만큼 행복이 더 커집니다. 그리고 사랑으로 하는 일은 조금도 무겁게 느껴지지 않 습니다 '요일' 5:3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 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하는 일 은 무거운 것이 없습니다 할머니가 손자를 자랑하시느라고 엎고 돌보시는 모습을 보면 아주 즐거워 보입니다 그분들의 모습 속에서는 힘들다거나 짜증스러운 표정은 전혀 볼 수 없습니다 항상 기쁨이 넘칩니다. 그것은 손자를 사랑하기 때 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이 교회를 섬기는 것도 주님을 사랑하면 교회 일 하는 것이 힘은 들지만 짜증은 나지 아니합니다 무슨 일을 맡든지 그저 받은 은혜가 감사해서 하나님 일을 한다는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면 무거울 것이 없 습니다 가족에 대해서도 좋은 가족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런 생각이 있으면 사랑스럽고 예쁘게 봉사 할 수 있습니다
2)우리는 주님의 사랑과 같은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요13:34-35)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 인줄 알 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는 사랑 공동체입니다 교회에 사랑이 충만할 때 그 것이 주님의 교회라는 증거입니다 그 사랑도 주님의 사랑과 질이 같은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은
(1) 조건 없고 차별 없는 사랑입니다
(2)주님의 사랑은 원수까지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거져 주시는 은혜의 사랑입니다
(3)몸소 체휼하시고 종이 되어 섬기고 아낌없이 주는 사랑 고 아가페 사랑입니다 이세상의 사랑은 자기 욕심에 근거한 소유욕과 받기만 하려는 사랑입니다 "현대 교회의 신자들은 지금 여러 면에서 예수님의 제자 들로서의 자기 순수성을 상실해 가고 있다. 예수님의 제자임 을 보여 주는 진정한 표시는 섬기는 자로 오신 예수의 '종 의 형상'을 지닌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이 이런 삶의 모습을 나타내기보다는 세상 풍속과 잘못된 가치 관을 따라 분쟁과 부도덕과, 교만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제자라는 이름을 걸고 다니는 우리는 언제인지 모르게 십자가에 못 박힌 주님의 형상을 보이기 보다 몰골이 추한 '세인들'의 모습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경건의 능력을 눈에 보이지 않는 실령한 성도의 성숙한 삶은 살기 보다는 눈에 보이는 어떤 것으로 지기 과시를 하려 합니다 또 봉사를 통해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기보다는 물질이나 조직의 힘을 의지하고 세상적 영광과 이익을 취하려 합니다 봉사와 섬김의 자리에 있기보다는 명예와 권세의 자리를 탐내고, 겉으로 보기에는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인데 실제로는 열 두 제자들처럼 가슴속에 전혀 다른 세상적 동기들을 숨기고 예수를 따릅니다 여기에 오늘의 제자들의 위기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거 하는 길은 서로 사랑하는 길뿐 입니다. 교인의 모습은 사랑하는데 나타납니다 교회는 재물 을 축적해 두는 곳도 아니고 이념을 추구하는 곳도 아닙니다 그저 모여서 사랑하는 공동체입니다 서울에 사시는 홍근수 목사님이 일본교회를 방문 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분은 일본에서 한교회를 보았는데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운 교회를 보고 와서 간증을 했습니다
그 교회는 일본교회로 경도에 있는 北白川(기다시라 가와)교회였습니다 그 교회는 일본인 교회로서 역사는 60년 되었고 교인도 60여명되는 교회입니다 한국 기준 으로 하면 작은 교회이지만, 일본 기준으로 하면 큰 교회라고 했습니다. 그를 놀라게 한 것은 그 교회의 크기 같은 것 보다는 언뜻 볼때 그 교회는 교회 같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 그러나 그 교회가 진짜 교회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 다는 것입니다. 우선 그 교회는 십자가가 없었습니다. 건물 밖에는 물론 건물안, 특히 예배실에도 없습니다. 건물은 자기 건물이지만, 교회라고 알아볼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 었습니다. 그냥 주위에 있는 가정집들과 꼭 같은 집이 었기에 교회로 알아 볼 수 없었습니다. 사실은 그 교회는 일반 가정집이었던 건물을 교회로 개축한 곳이었습니다. 건물 밖 출입문 옆에 '日本基督敎團 北白川敎會' 라고 한문으로 내려 쓴 나무 간판이 하나 걸려 있었습니다. 그것도 붉은 색깔의 나무에 검은 붓글씨로 쓰고 그 위에 니스칠을 같은 것을 해서 그런지 컴컴하여 그 앞에 바싹 가 보기 전에는 잘 알아 볼 수 없었습니다. 주차장 같은 것도, 마당도 없었습니다. 높은 강단도 강대상도 안 보였습니다. 강단과 강대 상이 있어야 할 위치에 작은 탁상과 의자가 하나씩 있 었을 뿐입니다. 옆쪽에 작은 오르간이 하나 있었고 그 반대편에는 작은 칠판이 하나 세워져 있었습니다.거기는 주보 대신 예배 순서가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예배시간이 되었을때 어느새 그 예배실은 사람들로 꽉 찼습니다. 60여명이 되어 보였습니다. 교회에는 담임 목사님 한 사람이 있을뿐 다른 교역자나 사무직원조차 도 없었습니다.
목사님이 하는일 이외의 교회의 일들은 교인 모두가 나누어서 맡아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는 일본이 만주를 침략할때 그들 만 주 사람들에게서 침략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복음을 주 어야 한다고 하여 만주 선교사로 두 사람이나 배출되었 습니다 그들 가운데 한분은 만주에서 순교를 당했습니다. 또 그 교회는 일본의 2차대전을 비판하고 일본에서는 금기인 천황제도를 비판하는 설교를 하는 교회입니다. 그 교회의 수는 적지만, 정말 정직하게, 성실하게 그리스도의 제자로 사는 진지한 크리스쳔이라고 생각하 였습니다. 그 교회는 그리스도인과 그리스도 교회의 자유를 철저히 믿고 일본 제국주의 권력에 맹종하거나 굴 복하지 않았습니다. 그 교회는 현재도 한국교포가 서너 명이 교인으로 있었습니다. 재일 동포들이 일본인 교회 에 교인으로 되는 예는 그리 많지 않고 그리 쉽지도 않 습니다. 그들이 그곳에서 인종은 비록 다르지만, 그리스도안에서 하나가 되고 한 권속으로 따뜻하게 환영을 받 고 있으니 교인으로 있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또 그 교회 교인들은 피차별민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재일 한국교포들에 대해서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교회였습니다. 2차대전의 와중에서 일본에서 와서 살면서 학교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여 일본말을 잘 모 르는 나이 많은 한국 여성들을 위하여 '어머니학교'라는 것을 세워 그들에게 일본말을 공부시키는 야학교가 있었습니다. 그 학교의 선생으로 자원 봉사하는 교인들 이 몇분 있었습니다. 그 어머니 학교는 학생 한 사람에 선생 한 사람이라고 하는데 현재 20여명의 어머니들이 공부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어머니 학교 선생들중 한 분은 한국 사람들을 더 잘 이해하고 한국어로 기도 할수 있기 위해 한국에 나와서 1년반 동안 연세대학교 어학당에서 한글공부를 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가족들을 일본에 두고 서울에 와서 공부한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의 사랑을 몸소 실천하는 성도가 됩시다
3) 주님의 사랑의 실천은 오직 성령님 충만으로만 가능 합니다 (엡5:18-21)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님의 충만을 받으라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라고 말씀하 셨습니다 성령님의 충만은 예수님의 사랑을 알게 합니다 성령님 충만 은 사랑의 근거가 되는 감사한 마음이 일어나게 합니다 성령님 충만은 성령님의 열매인 사랑과 희학과 화평과 인내 자비 양선이 나와서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게 합니다 우리 모두 성령님 충만 받아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 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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