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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의 전도 (요1:40-42)

본문

유명한 성경 주석가 벵겔(Bengel)은 요한복음 1장 35-51절 중에 나타나는 예수의 최초 제자들의 모습을 가리켜 '기독교회의 새 기원'이라고 하였 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 복음 운동의 처음 제자들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 입니다. 본문 가운데 나타난 처음 제자들 중에는 세례 요한에 의하여 예수의 제자가 된 안드레와 요한 같은 자도 있습니다(요 1:35-42). 또 안드레의 전 도에 의해서 예수의 제자가 된 게바, 곧 베드로 같은 자도 있습니다(요 1:40-42). 또 예수의 직접적인 부르심을 받고 제자가 된 빌립도 있습니다 (요 1:43-44). 또 먼저 부름을 받은 빌립에 의해서 전도를 받은 나다나엘 도 있습니다(요 1:45-51). 역사의 한가운데서 조용한 별들의 전쟁이 시작되는 모습입니다. 마침내 전세계를 흔들어 놓고, 새 역사를 창조해 내고야 말 별들의 움직임이 보이 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우리는 안드레의 전도를 만나기 원합니다. 안드 레의 전도는,
I. 기독교 역사상 가장 처음으로 행해진 자발적인 전도였 습니다. 안드레는 베드로의 형제였습니다(요 1:40). 그는 세례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께서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요 1:36-37)이라고 믿게 된 자입니다. 요한복음 1장 41절에 그가 라고 한 말은 40절의 안드레를 말합니다. 그와 사도 요한은 가서 , 예수 계신 데를 보고 , 그날 예수와 함 께 거한 일이 있었습니다(요 1:39). 그때부터 저들은 세례 요한의 제자 된 자리에서 예수의 제자로 자리를 옮긴 자들이었습니다. 사도 요한과 안드레가 예수 계신 곳을1 찾아가서2 보고3 그날 함께 거하기 시작한 이 사실을 가리켜 '그날은 그리스도의 교회가 탄생한 날'이라고 웨스트 콧(Westcott)은 말하였습니다. 안드레는 예수 계신 곳에 서 큰 만족과 기쁨을 누렸습니다. 이러던 그(안드레)가 그의 형제 시몬에 게 전도를 하였습니다. 그는 예수의 제자가 되기 시작한 직후에 전도자가 된 것입니다. 예수와 함께 하는 행복이 자기 자신만의 독점물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Ⅱ. 골육 복음화에 최우선을 둔 자였습니다. 요한복음 1장 41절에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먼저라 함은 1 사도 요한이 자기 형제 야고보에게 전한 것보 다 앞서 전도했다는 뜻입니다.
2 그러면서 이 말은 또한 다른 사람에게 전도하기 전 제일 먼저, 최우선적으로 자기 형제 시몬(게바)에게 전도했다는 말입니다.
3뿐만 아니라 '먼저'라는 이 말은 시간적으로 '아침 일찍' 이란 개념도 있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나타내신 주님의 선교전략을 따르면 제일 먼저 예루 살렘, 유다, 사마리아, 땅끝의 순서입니다. 전도자 바울도 골육 전도가 우 선적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
첫째는 유대인이요'라는 말을 반 복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의 마음에 큰 근심과 고통이 있는 것을 그 양심이 성령님 안에서 증거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롬 9:1). 그의 큰 근심과 고통은 바로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 의 복음화라고 하였습니다(롬 9:3). 이 일은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는 한이 있어도 원하는 바라고 하였습니다(롬 9:3).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을 받아 구원인이 되고난 후의 그 첫 번째 과제가 골육의 구원입니다. 그 이유는 그것이 사실상 자신들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뼈 중에 뼈요, 살 중의 살과 관계되어 있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실상 별들의 전쟁은 가족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Ⅲ. 그의 전도 내용은 바로 복음의 핵심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장 41절에 …우리가 메시야를만났다 라고 하였습니다. 곧 그리스도를 만났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안드레는 예수 계신 곳으로 가서 보고, 예수와 접촉하는 가운데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발견했다는 사실 입니다. 이것은 유대교 4,000년이래 실로 대 발견이요, 대 폭발이요, 대 사건입니다. 안드레의 이러한 발견과 그 전파는 실로 금광의 노다지나 다이아몬 드 광산을 발견한 것 하고도 비교할 수가 없는위대한 것입니다. 모든 구약성경은 사실상 예수께서 인류의 메시야, 곧 그리스도로 오실 것이라는 내용이 그 주제였습니다. 그러나 유구한 세월의 변천과 함께 이 스라엘의 메시야관은 전혀 엉뚱하게 발전되어 버렸습니다. 저들이 바벨론 포로 시기와 페르시아 그리고 헬라, 로마로 이어지는 세계 패권주의 압제 에 시달리면서, 저들은 한결같이 경제적, 정치적, 민족주의적 메시야를 기 다리게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안드레는 메시야를 구원의 메시야로 바로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는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야임을 체험하고 그 형제 게바에게 전도하 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 복음 전도의 본질적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 곧 자기 백성 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구원의 주님으로 전도해야 합니다. 결코 예수는 이 세상의 육신적 기복의 주님이나, 어떤 육신적 치유의 요행을 가지고 세상에 오신 분은 아닙니다. 영적으로 죽을 죄인을 완전히 구원하시러 오신 구세주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저 빌립보 간수에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고 전도한 것입니다(행 16:31).
Ⅳ. 그의 전도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이고, 행동적이고, 실 천적인 개인전도였습니다. 요한복음 1장 42절에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라고 하였습니다. 안드레는 자기 자신이 예수 계신 곳을 가서 친히 보았습니다. 그리고 함 께 거하면서 예수가 세상에 오신 메시야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때 그는 전혀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가슴은 영열(靈熱)로 불타 올랐습니다. 그리고 벅차 오르는 이상한 기쁨으로 가득 차 버렸습니다. 그 때 그는 그 분을 자기 형제에게 알리고, 소개해 주고 싶었습니다. 자기의 마음에 일어나고 있는 그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생명의 희열을 나누어주 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자기에게 임한 그 이상한 메시야적 힘이 그 마음과 몸을 움직이 게 하고, 입을 움직이게 하고, 눈을 움직이게 한 것입니다. 그것은 마침내 실제로 자기 형제 시몬을 움직이게 하여 예수께로 데리고 오게까지 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습니다. 말하자면 그는 일대일의 전도를 시작한 사람입니다. 안드레는 개인전도 의 선구자였습니다. 이렇게 생명을 받은 자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생명 그 자체가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성격이기 때문입니다. 생 명은 언제나 요동(搖動)이요 요진(搖進)입니다. 안드레의 마음에 임한 메시야적 은총의 힘은 저렇게도 적극적이고, 능동 적이고, 행동적이고 실천적인간절한 전도운동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Ⅴ. 그의 전도는 효과적인 전도, 곧 열매맺는 전도였습니다. 요한복음 1장 42절이 다시 말합니다.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가라사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고 하였습니다. 주님은 안드레가 인도해 온 시몬을 보고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고 하였습니다. '게바'를 음역하면 '베드로' 곧 '반 석'이란 뜻입니다. 주님은 그에게 새 이름을 예언해 주었습니다. 주님이 그에게 '게바'라고 하는 새 이름까지 주심은
1 그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 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2 뿐 아니라 장차 그가 사람 낚는 어부로 주님이 얼마나 크게 사용할 유용한 인물인지를 알려 주는 내용입니다. 주님은 그에게 미래적 가능성을 예시해 주었습니다. 지금은 '요한의 아 들 시몬'이지만 장차는 '게바'가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반석'이 될 것 이라고 하였습니다. 결코 예수는 우리를 현재, 지금의 상태로만 보시지 않 습니다. 미래를 약속해 주는 내일(來日)의 사람으로 사용해 주십니다. 그것은 마치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창 17:5), 야곱을 이스라엘로(창 32:28), 사울을 바울로(행 13:9) 개명해 주심과 같습니다. 이렇게 예수님 은 사람 속에 있는 가능성을 찾아내어 주십니다. 중대한 것은 안드레가 자 기 형제 베드로를 전도함으로 장차 예루살렘과 세계 교회의 기수가 될 예수의 대 사도 베드로를 얻게 된 사실입니다. 주님께서 예언하신 게바의 이름은 마침내 저 유명한 가이사랴 빌립보에 서그의 신앙고백과 함께 이루어지고 말았습니다(마 16:18). '안드레'란 이름의 뜻은 '강인함', '남자답다'인데, 과연 그는 그 이름대로 큰 일을 남자답게 해낸 사람이 되고 만 것입니다. 장차 세계 교회를 창설할 베드로 를 주께로 인도한 것을 볼 때 그는 실로 남자다운 큰 일을 한 사람이 아닌 가! 벌써 지난해의 일이 되었습니다.
1998년 12월 2일(수) 79세를 향년으로 (1919. 8. 27. 生) 천국에 가신 고 신철석 집사님이 우리 교회에 계셨습니다. 그 분은 고향이 경북 대구인데, 경북고를 졸업하고 일본 명치대 법학과 를 졸업하셨습니다. 경남 마산 북면 창북중학교 교장으로 봉직하시다가 63 세 때 공로 퇴직을 하신 훌륭하신 교직자의 사표였습니다. 퇴직 후 서예 작품 활동을 하셨는데, 우리 고려신학교 교장실에도 그 분이 기증하신 작 품이 2점이나 걸려 있습니다. 유족으로 부인되신 우리 교회 김경 집사님과 장남 신호일 집사님, 그리고 자부 장점숙 집사님이 있고, 또 두 아들과 자 부, 딸 하나(3남 1여)가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손자와 손녀들이 있습니다. 이분은 98년 1월 4일에 등록을 하고, 그해 4월 12일에 세례를 받고, 5월 31일에 교회서 행한 서리 집사 추가 임명시에 전격적으로 서리 집사 임명 까지 받은 분입니다. 그는 97년 8월 심근경색증으로 여의도 성모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는데, 그때 가족들은 돌아가실 줄 알고 거기에 따르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 습니다. 병원에서는 별다른 처방이 없어서 집으로 퇴원하셔서 투병생활을 하던 중 그해 12월 즈음에, 안방에서 비몽사몽(의식 반 꿈 반) 중에 흰옷 을 입으시고 키는 천정에 닿을 정도로 크신(9척쯤으로 생각됨) 예수님이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문을 열고 들어오심을 보게 되었습니다. 계속해서 예수님을 따라 흰옷을 입고 가시면류관을 쓰신 열한 분이 함께 들어와서 누워 계신 할아버지 둘레에 서서 허리를 굽히고, 아무 말씀도 안 하시고, 한참 동안 계시더니 한 분씩 문을 열고 나가시는 장면을 보게 되 었습니다. 이 기막힌 장면을 보신 할아버지는 그 후에 곧 병이 나아서 활동하게 되 었습니다. 그해 12월에 맏아들 신호일 집사가 아버지께 "아버님, 우리 한 길을 가셔야죠."라고 하면서 교회에 나가실 것을 권하자, 그는 바로 그 다음 주일(98년 1월 첫째 주일)에 교회에 등록을 하신 후 한 주일도 빠짐없 이 나오셨습니다. 이 사실을 본 그 부인 김경 집사님도 이것이 꿈인지 생 시인지 모르겠다고 하시면서 좋아하셨습니다. 평소 과묵하신 할아버지는 교회 나온지 3, 4개월이 지나서야 비로소 예수님이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자기를 찾아 주셨던 사실을 자녀들과 교역자 들에게 알리고, 자부 장점숙 집사님에게 가시 면류관을 쓰신 예수님의 사 진을 구해 오라고 해서 그 사진을 자기 방에 걸어 두고 지냈습니다. 이 할아버지가 주님을 만난 후 교역자들의 심방을 받을 때는 천사를 영 접하고 환영하는 것같이 하셨습니다. 심방이 있는 날은 항상 한복을 입으 시고, 상(床)을 펴놓고, 방석을 깔아 놓고 심방 받을 준비를 하고 기다리 고 계셨습니다. 이 일은 아무도 가르친 일이 없었는데 그 분 스스로가 그 리하였습니다. 전에는 교역자가 가면 방에서 나오시지도 않으시던 분이 먼저 현관에 나 오셔서 영접을 하고, 교역자의 신발을 정리해 놓고, 또 떠날 때는 배웅 인 사를 극진히 하였습니다. 그리고 교회나 구역예배나 가정 심방시에 그 예 배 태도는 참으로 진지하고 경건하였습니다. 교회가 하는 영적 사역들을 알리고 동참할 것을 권하자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동참하여 선교헌금, 신학교 헌금을 작정하고 각종 예배 헌금에 즐 겁게 참여하셨습니다. 부인되신 김경 집사님께서 우리는 모두 한 주머니인 데 별도로 할 것이 무엇이냐고 하면, 할아버지는 각자의 몫을 각자가 감당 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주일예배와 구역예배를 기다리고 사는 것이 이 분의 낙이었습니다. 매일 성경을 읽으시고, 눈이 잘 보이지 않을 때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간절한 기도생활을 하였습니다.
사실 그 아버지의 주일예배 참석 때문에 아들과 자 부의 주일예배가 강화된 셈이었습니다. 소천하시기 한 주일 전에 교역자가 심방을 했는데 "이제 몸이 좋지 않아 서 이번 주에 교회에 갈 수 있을는지…"라고 하셨습니다. 마지막 구역예배 때는 "천당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고 하시면서 항상 하셨듯이 구역원들이 먹을 빵을 사서 들고 오셨습니다. 소천하시기 전날 밤에는 전 과 같이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로 계속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화요 일 밤에 입원하여 수요일 11시경에 소천하셨습니다. 부인되신 할머니의 말 에 의하면 돌아가신 그 얼굴이 꼭 천사의 얼굴과 같았다고 하였습니다. 고인의 장례식은 참으로 은혜로웠습니다. 장남 되시는 신 집사님이 아버 지 이름으로 건축헌금을 드리고(건축위원 됨), 아들과 자부도 또 건축헌금 과 함께 건축위원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당회장 앞에서 아들 되신 신 집사 님께서 친히 1999년부터는 보다 더 적극적인 신앙생활을 약속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전도는 확실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역사는 역사적 사건의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의 생명 곧 영생 문제와 직 결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전하는 전도의 힘이 약하거나 또 사람의 전도 를 거절할 때는 오늘 우리가 듣게 된 이 할아버지처럼 주님이 직접 나타나 서 결정적인 전도 효과를 나타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구원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듣든지 듣지 않든지 전해야 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 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고전 1:21)라고 하였 습니다. 안드레의 전도! 바로 우리의 전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름다운 별들 의 전쟁입니다. 자기 형제 시몬을 예수께로 돌아오게 해 버린 안드레! 그는 분명히 별과 같이 빛나고(단 12:3)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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