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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어가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회복하는 길 (요14:1-11)

본문

I. 잭 캔필드(Jack Canfield)와 마크 빅토 한센(Mark Victor Hansen)이 쓴 "영혼을 위한 병아리국"(Chicken Soup for the Soul)이란 책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키라는 어린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가 4살이 되었을 때, 그의 어머 니가 남동생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4 살난 누이 사키가 갓난 아이하고 자기하고 단둘이만 있게 해 달라고 졸랐습니다. 부모들은처음에는 누나가 동생에게 사랑을 빼앗겨서, 시샘이 나서 단둘 이 있으면 동생에게 해꼬지를 할려고 그러는 줄 알아서 안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누나가 동생에게 해꼬지를 하나 주의 깊게 살펴 보았습니다.
그런데 누나는 동생에게 전혀 질투를 느끼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 리고 동생을 사랑하고, 동생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부모들은 딸의 청을 받아 들여서 동생과 단둘이만 있게 했읍니다. 그랬더니 딸 사키는 방문을 걸어 잠구는 것이였습니다. 부모들은 얼른 열쇠를 찾아서 방문을 열고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방에서 그런 징조같은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문을 조금 열고 누나가 동생에게 어떻게 하나를 엿보았습니다. 그러자 누이는 동생을 때리지도 않고, 동생 배위에 올라가지도 않고, 동 생 뺨에 자기 얼굴을 조심스럽게 갖다가 대더니 동생에게 이렇게 묻는 것이 였습니다. "아가, 하나님이 어떻게 생겼는지 내게 말해줄래. 나는 하나님의 모습을 잊어버리기 시작을 했거든" 이 예화에 나오는 것과 같이 이 땅에 사람들은 이 땅에 태어한 후로 시 간이 가면서 점점 더 하나님의 형상을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세상의 죄, 사단들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형상을 잊어버리게 합니다. 사람들로 하나님의 형상을 잊어버리게 하는 것이 마귀 사단의 목표이 며, 마귀 사단들은 죄를 이용해서 우리로 하나님의 형상들을 자꾸 잊어버리 게 합니다. 그래서 (요1:18)에 있는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형상을 본자가 없게 되 었습니다." 이 땅에 있는 사람들 중에 하나님의 형상을 보거나 아는 자들 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을 잊어버린 것이 인간의 비극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잊어 버린 것은 우리 자신의 근본을 잊어 버린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잊어버린 이 하나님의 형상을 다시 보여 주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 이십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하나님의 형상을 잊어 버린 자들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래서 (요1:18)에서는 "아무도 하나님의 형상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 독생하신 하나님-즉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하나님을 보여 주셨 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빌립이 예수님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 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고 간청을 하자, 예수님은 "빌립 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 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고 책망을 하셨습니다. 즉 예수님 속에 하나님이 드러나 있다는 말씀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은 영이라 볼 수 없지만,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을 통 하여 하나님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점점 더 식어가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형상을 잊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던 사람도 멀리 떨 어지거나, 오래 떨어져 있으면, 얼굴을 잊어버리게 되고, 그러면 마음에서 도 멀어지고, 사랑도 식어지게 됩니다. 영어 속담에 "out of sight, out of mind"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얼어진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모습을 우리가 잊어버리게 되면,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서 사라 지게 되고,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식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바른 신앙생활을 하려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회복하는 길은 잊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다시 회복하는 길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가 사단과 죄의 방해로 잊어버리고, 하나님 보다 세상 과 물질을 더 사랑하다가 잊어버린, 하나님의 모습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 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잃어 버린 사랑을 다시 회복 하려고 합니다.
II. 본 론
1. 우리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을 생각할 때, 모든 사람들에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가장 아름다 운생각은 "하나님은 좋으시다"는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정말로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좋으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참 좋으 신 나의 하나님"이라는 복음성가를 좋아 합니다. 하나님이 정말로 선하시 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 갈 때 어떤 사람은 수 많은 고통이 연속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도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거나, 아니면 그가 어머니 보다 먼저 죽을 때, 그의 머리 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우리 어머니는 정마로 좋으 셨다"라는 생각일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인간들이 마지막 죽으면서 할 말도 "하나님은 정말로 좋 았다"라는 말 입니다. 이 세상에 와서 어떻게 살다가 죽던 간에, 이 세상 에 살 때에는 어떨런지 몰라도, 마지막 죽으면서 우리가 할 말은 "하나님은 정말 좋았다"라는 말일 것입니다. 지금으로 부터 약 1세기 전에 알렌 가디너(Allen Gardiner)라는 선교사 가 해상 사고로 익사하고 말았다. 그의 배가 전복된 그 해안에서 그의 시체가 발견 되었을 때, 그의 일기장도 같이 발견 되었다. 그 일기장에는 그가 겪었더 배고픔, 궁핍, 박해, 고통 등이 계속해서 적 혀 있었다. 그래서 그 일기를 읽는 이들로 하여금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그런데 그 일기장의 맨 마지막에는 이런 글이 쓰여 있었다. "하나님은 내게 너무 너무 좋으셨다."(I am overwhelmed with a sense of the goodness of God) 하나님은 정말로 좋으신 하나님 이십니다. 그래서 최용덕씨가 작사 작 곡한 "오 신실하신 주"라는 복음성가를 보면 "하나님 한 번도 나를 실망 시 킨적 없으시고, 언제나 공평과 은혜로 나를 지키셨네. 지나온 모든 세월 들 돌아 보아도, 그 어느 것 하나 주의 손길 안미친 것 하나 없네. 오 신 실하신 주, 오 신실 하신 주,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내 너를 버 리지도 않으리라. 약속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하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의 선하심은 많습니다. 모세가 십계명을 다시 받으려고 돌판 둘을 깍아서 시내 산으로 올라가자, 하나님이 강림하셔서, 그 앞으로 지나가시면서 "여호와로 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출34:6)고 반포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선하심은 많습니다. 선하심이 얼마 안되는 그런 선하신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선하심이 많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조금 좋으신 하나님이 아니라, 아주 아주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특정인에게만 좋으신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다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크십니다. (시31:19) 말씀을 보면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곧 인생 앞에서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베푸신 은혜가 어 찌 그리 큰지요"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크고도 크십니다. 항상 있습니다. 있다가는 없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있으십니다. 그래서 (시52:1) 말씀을 보면 "강포한 자여 네가 어찌하여 악한 계획 을 스스로 자랑하는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항상 있도다"고 찬양하고 있읍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항상 있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좋으십니다. 언제나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만족케 하십니다. 하나님이 좋으신 것은 우리를 만족케 하 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좋다고 합니다. 그래서 (시 65:4)은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거하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족케 하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이 우리를 만족케 합니다. 보편적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좋으십니다. 모두가 다 하나님이 만드신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만인에게 평등하 게 보편적으로 좋으십니다. 그래서 (시145:9)은 "여호와께서는 만유를 선 대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라고 찬양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좋으십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 선하심을 늘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늘 묵상을 해 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도 선해집니다.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선하심 에 대한 생각이 있을 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영국 캠브리지(Cambridge England)에 있는 성령님 삼위일체 교회(Holy Trinity Church)의 목사님으로 1782-1836년까지 54년 동안 목회를 하신 챨 스 사이몬(Charles Simeon) 목사님이 계십니다. 이 목사님은 특별히 대 학생들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챨스 사이몬 목사님의 목회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영접한 자들 중에는 훌륭한 인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 중 에는 인도 선교의 개척자인 헨리 마틴(Henry Martyn) 같은 분들이 있읍니다. 학생들이 목사님의 집을 찾아오고, 그리고 차를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 곤 했습니다. 학생들은 영적 진리에 대하여 질문을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한 학생이 "어떻게 목사님은 하나님과 같이 걸어가는 거리가 멀어지지 않고, 그렇게 하나님과 가까이 걸어 오실 수가 있었습니까 "하는 질문을 했습니다. 그때 챨스 사이몬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우리가 죄를 범해서 받아야 할 무서운 형 벌로 부터 우리를 구해주신 놀라운 구원을 묵상했기 때문에, 나는 늘 하나님과 가까이서 걸어 올 수 있었다. 이것들을 마음에 늘 간직하면 우리는 우리가 가야할 길로 우리가 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고, 하나님의 존재를 느낄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고, 하나님의 은혜를 즐기며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소망 가운데 살 수 있다.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명상이 우리의 성장과 은혜의 커다란 수단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하나님의 선하심을 마음속에 묵상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악한 자들은 이것을 마음에 새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10:4) 말씀을 보면 "악인은 그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와께서 이를 감찰치 아 니하신다 하며, 그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마음 속에 선하신 하나님을 묵상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악한자, 교만 한 자가 됩니다. (시14:1)은 이런 자를 어리석운 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알고 믿는 자들은 지혜로운 자들입니다. 그들의 삶이 형통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하심을 모르고 믿지 않는 자 들은 어리석운 자들이요, 불행한 자들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것을 알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하심을 알지못하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아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비결입니다.
2.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은 사랑 이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 (요일4:8) 말씀을 보면 "사랑하지 아 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고 하셨 습니다. 또한 (요일4:16)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 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우리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럼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인가요
1) 하나님의 사랑은 큰 사랑입니다. (엡2:4)에서 사도 바울은 "긍 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라고 하시 면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크신 사랑이라고 말씀하셨읍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적은 사랑이 아니라, 큰 사랑입니다. 이러한 하나님 의 사랑을 다윗 왕은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우리 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넘치는 큰 사랑입니다. 바다인지 강인지를 분별하기 어려운 세계에서 제일 큰 강 아마존 강엘 간 한 목사님이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이 작은 꽃 데이지(daisy) 하나에 물을 주고자 이 아마존 강물이 흘러 내리는 것 보다도 더 많다" 하 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렇게 엄청나게 큽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측량할 수 없이 크십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이 크십니다.그렇다고 하나님의 사랑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아동들의 자주활동을 주로 하는 교육법을 행하여 성공한 사람으로서 교 육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1795-1879)년까지 살았던 영국의 교육가였던 로우랜드 힐(Rowland Hill)은 그의 청중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그 의 개념을 전달하기 위하여 여러가지 다양한 예화들을 사용하며 열심히 설 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을 쳐다보면서 다음과 같이 소리쳤다. "나는 이 고상한 주제에 다다를 수가 없다. 그러나 나는 끝없는 대해 에서 수영하는 가장 작은 물고기라도 그가 그 바다의 거대함을 측량할 수 없다고 해서 바다의 거대함을 불평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도 그렇다. 나는 나의 작은 능력을 가지고는 내가 결코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는 하나님의 이 거대한 사랑에 관한 주제에 뛰어 들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 커서 완전히 이해할수 없다고 불평하지는 않는다" 하나님의 사랑은 바닷가가 바닷속의 가장 작은 물고기에게 큰 것 보다 도, 더욱더 우리에게 크다. 하나님의 사랑의 크기는 다함이 없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사랑의 농도는 변함이 없으십니다. 이 땅에 비가 많이 와서 많은 물이 바다로 흘러 들어도, 바다물의 염도가 변함이 없으시 듯이, 하나님의 사람이 아무리 크다고 하더라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의 사랑의 농도는 변함이 없으십니다.
2)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한 사랑입니다. 인간의 사랑은 영원하지 못합니다. 인간의 사랑은 쉽게 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영 원합니다. 그래서 (렘31:3)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나 여호와가 옛적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기를 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는 고로 인자함으로 너를 인도하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무궁한 사랑"은 영원한 사랑을 뜻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을 인자함으로 인 도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는 영원한 사랑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성경 (요13:1) 말씀을 보면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 시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렇게 우리를 향한 우리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는 영원한 사랑이십니다. 19세기의 영국의 유명한 설교가 챨스 스펄젼 목사님이 하루는 시골길을, 그 시골에 사는 친구와 함께 걷게 되었다. 둘이서 걸어 가는데, 바람개 비가 서있었다.
그런데 그 바람개비에 "하나님은 사랑이다"(God is love) 라는 글이 쓰여져 있었다. 스펄젼 목사는 친구에게 "바람개비는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데 잘 어울 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바람개비는 변할 수 있고, 또 바람에 따라 변하는 반면,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하기 때문이다."라고 말을 했다. 그러자 친구는 "너는 그 뜻을 잘 못 이해 했다. 바람개비를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치려고 했던 하나님의 사랑은 그것이 아니다. 바람개비를 통 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은 '바람이 어느 방 향으로 불던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다"고 설명을 했다. 우리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인생의바람이 분다고 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불변성의 사랑입니다. 영원한 사랑입니다.
3)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아낌 없이 주시는 희생 의 사랑입니다. 사도 바울은 (롬5:8)에서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 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죄인 를 짓고, 하나님께 원수와 같이 행했는데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의 죄 를 사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독생자 예수님을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사랑은 이런 희생의 사랑입니다.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아낌 없이 주시는 희생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롬8:32)에서는 사도 바울 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 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 뇨"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모든 것을 주시는, 나중에는 자기 자신까지 주시는 희생의 사랑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 운 사랑입니까 페르시아에 샤아 아바스(Shah Abbas)라는 황제가 있었다. 그는 참으로 훌륭한 황제였으며, 나라를 잘 다스렸다. 그리고 위대하고 장엄한 황제였다.
그런데 가장을 하고 백성들 속에 들어가 섞여서 생활하는 것을 좋아 했다. 그래서 백성들의 민심을 파악했다. 그런데 한번은 이 황제가 가난한 사람의 복장을 하고는 어둡고, 침침하 고, 눅눅하고, 좁은 지하실로 내려 가서 재 위에 앉아서 화로를 돌보는 화 부를 만났다. 황제는 그 옆에 앉아서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점심 때가 되자, 그 화부는 자기가 먹으려고 싸온 하찮은 시커먼 빵과 물병을 내 놓았다. 황제와 화부는 그것을 먹고 마셨다. 그리고 샤아 황제는 갔다. 그러나 그 곳을 계속해서 찾아 왔다.
왜냐하면 그의 마음에는 이 외로운 화부에 대한 동적으로 가득찼기 때문이다. 황제는 그 불쌍한 화부에게 따듯한 위로와 충고의 말을 해주었다. 그러자 이 화부는 마음의 문을 활짝열고, 그렇게 친절하고, 그렇게 현명하나, 그러나 자기와 같이 가난한 이 황제를 사랑했다.
그런데 때가 되자 황제는 그 화부에게 "자기가 황제라는 사실을 알려주 고, 그 화부가 자기에게 무엇을 구하는가"를 알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자 기 자신이 샤아 아바스 황제라는 사실을 그에게 알렸다. 황제는 그가 무 엇을 구하는가를 알고 싶었다. 그러나 화부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 황제를 사랑과 경의를 가지고 바 라 보았다. 그러자 황제는 "너는 지금 내가 황제라는 것을 못 믿느냐 내가 너를 부자로 만들어 줄 수도 있고, 고귀한 사람으로 만들어 줄 수도 있고, 너에 게 한 도시를 떼어 줄 수도 있고, 너로 높은 통치자를 만들어 줄 수도있다는 것을 너는 모르느냐 "하고 물었다. 화부는 잘 안다고 대답을 했다. 그러자 황제는 그럼 왜 너는 나에게 아무것도 구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화부가 이렇게 대답을 했다. "황제께서 궁궐의 그 영광스런 자리를 떠나서 이 어둡고 눅눅한 곳에 오 셔서 저와 같이 앉아서 대화를 하고, 이 누추한 음식을 같이 잡수시고, 내 마음이 기쁜지 슬픈지를 늘 돌도아 주신 이것이 얼마나 엄청난 선물인데, 제가 더 황제님께 무엇을 구하겠습니까 이것 보다 더 귀한 선물이 어디 에 있겠습니까 황제께서 다른 사람들에는 많은 귀한 선물들을 주실 수 있으시지만, 제게는 황제자신을 저에게 주셨습니다. 그것 보다 더 귀한 선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제가 바랄 수 있는 하나의 소원이 있다면 나와의 이 우정의 선물을 도로 가져가지 않는 것입니다." 황제가 자기 백성중에 가난한 자를 사랑해서 그와 같은 모습을 하고, 그 의 일하는 현장에서 그와 같이 사랑의 교제를 나누고, 같이 먹고 마시는 이 것이 얼마나 놀라운 사랑입니까 이것이 그렇게 놀라운 사랑이라면, 우주의 왕이신 하나님이 저 높고 높 은 보좌를 버리시고, 이 낮고 천한 이 땅에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오셔 서, 우리와 같이 먹고 마시고, 우리와 사랑의 교제를 나누시고, 우리가 자는 이 땅에서 같이 주무시고, 나중에 가실 때에는 자기의 생명까지 다 주시 고 가시는 이 하나님의 사랑보다 더 귀한 사랑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이런 사랑이십니다.
4) 우리의 모습 이대를 받아주시는 사랑이십니다. 영국 최고의 문학상인 휘트브레드 문학상(British Whitebread Award) 1989년도 수상작품은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의 자전적 소설 "시계의 눈 밑에서"(Under tht Eye of the Clock)였다. 놀란은 어렸을 때(3세) 뇌성마비가 되어 오직 눈으로만 의사를 표현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는 말도 못했으며, 듣지도 못했으며, 손 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그는 이마에 작은 맏대기를 붙이고 키를 누르는 방법으로 타자를 쳤다. 타자지 한 쪽을 찍는데 열두 시간이 걸렸다. 그는 그 자신의 말대로 "아무 쓸모 없는 육체"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어떻게 이런 위대한 시인이요, 소설가가 되었는가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주변 사람들이 나를 내 모습 그대로 받아 주 었기 때문입니다."(They accepted me for what I am) 거부(拒否)는 사람을 슬픔과 좌절로 몰라간다. 그러나 받아 주는 것은 희망의 출발이며, 의욕과 노력의 동력이 된다. "내가 너를 기뻐한다."고 하시며 하나님이 예수님을 받아 주신 것처럼 우리의 존재를 하나님께서 받 아 주신다. 하나님은 내 모습 이대로를 기쁨으로 영접해 주시고 나 같은 인간, 나 같은 죄인을 통하여서도 무엇인가를 이룩하려 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깨끗하고 거룩하고 잘 나 서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거룩하게 되고 깨끗하게 된 후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지금 이 모습 그대로를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롬5:6-8)에서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 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은 우리가 훌륭해지고난 후에, 우리가 출세하고난 후에, 우리가 변화되고난 후에 우리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의 사랑은 지금 내모습 이대로를 사랑하시는 참 사랑이십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이런 사랑을 깨달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더욱더 사랑하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가 잊어버린것 중에 아주 귀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잊어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잊어 버리자,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도 식어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늘 기어하시사, 사랑의 하나님 을 잊어 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늘 하나님을 사랑하며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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