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가는 길 (요14:1-6)
본문
죽음과 내세 누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현대인은 죽음을 죽여 버렸다.” 즉 현대인들이 죽음의 현실을 망각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의미심장한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오늘날 눈부실 정도로 과학 문명이 발달하면서 세상이 점점 편리해지고 있습니다. 그 자체로는 정말 좋은 일이지만 반면 부작용도 많습니다. 그 중 하나는 사람들의 사고 방식이 유물론적 혹은 물질주의적으로 기울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결과 인간을 육체적인 존재로만 보고 영혼에 무관심한 경향이 있습니다. 또 현세에만 관심을 두고 내세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냉소적입니다 천국이 있든 없든, 지옥이 있든 없든 상관하지 않겠다는 식입니다. 그저 이 세상에서 오래 오래 건강하게 즐기며 사는 것만이 관심의 전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명심해야 됩니다. 인간은 죽음을 망각하려 하나 죽음은 인간을 절대 망각하지 않습니다. 또한 인간은 죽음을 피하려고 하나 죽음은 인간을 절대 피해가지 않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이 말씀은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옛날이나 지금이나, 선진국이나 후진국이나 사망률은 항상 100%입니다. 다만 현대인들이 죽음을 일부러 망각하고 생각하기 싫어하는 것뿐입니다. 그 근본 이유는 죽기가 싫고, 또 죽는 게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은 누구에게나 닥쳐오는 엄연한 현실입니다. 따라서 죽음에 대한 생각을 무조건 회피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입니다. 마치 꿩이 사냥꾼에게 쫓기다가 급한 김에 엉덩이는 내놓은 채 머리만 수풀에 처박고 있는 것과 같은 꼴입니다.
그러므로 막연하게 죽음을 회피하려고만 하지 말고 차라리 죽음을 직시하고 정면승부를 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성경도 그런 뜻으로 이렇게 말씀합니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전 7:2)” 그런 점에서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매우 유익한 말씀입니다. 바로 죽음 이후의 내세에 관해 확실한 교훈을 제공해 주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날 밤 최후의 만찬 직후에 하신 말씀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죽음을 예감하고 몹시 불안해졌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헤어지고 나면 그후 자신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심히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것은 미래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이런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 종류와 정도가 다를 뿐 모두 불안과 두려움을 안고 살아갑니다.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과 멀어진 모든 인간의 공통 심리입니다. 그리고 마음 깊은 곳에는 죽음에 대한 원초적인 불안감이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과 내세에 대해 확실하게 정리해 두면 불안과 두려움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불안에 휩싸인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그리고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든 확실한 미래의 사실이 있기에 염려할 것이 없다고 제자들을 위로합니다. 그 확실한 미래의 모습이 무엇입니까 내세 천국입니다. 우리도 이 말씀을 통해 죽음과 그 이후의 내세 문제에 관해 잘 정리하고 확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럼으로써 남은 생애 동안 소망 가운데 기뻐하며 의미있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1. 천국은 과연 실재하는 곳인가 예수님은 분명하게 천국의 실재를 증거하십니다. 2절에 나오는 “내 아버지 집”은 천국을 가리킵니다. 흔히 하늘 나라나 천국이란 말 대신 “천당”이란 말을 쓰기도 하는데, 이 구절과 잘 어울리는 말입니다.
그런데 혹자는 천국이 실재하는 장소가 아니고, 하나의 신화라고 주장하거나 혹은 영적인 상태에 불과한 것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천국은 실재하는 장소라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본문의 짧은 단락에서도 천국이 장소라는 사실을 밝혀 주는 표현들이 많이 나옵니다. ‘집’이란 단어도 그렇고, ‘거할 곳’, ‘처소’, ‘나 있는 곳’ 등의 표현이 모두 구체적인 장소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사용된 동사들도 모두 장소를 전제로 사용된 것들입니다. 즉 ‘가나니’, ‘가서’, ‘와서’, ‘있게’ ‘가는’ 등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22장 등을 비롯해서 천국에 관해 언급한 다른 성구들을 살펴봐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지만 천국의 실재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천국과 정반대인 지옥의 실재도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기록이 부자와 거지 나사로 이야기(눅 16:19-31)입니다.
그런데 성도들 중에도 분명히 신앙 생활을 한다고는 하는데 천국과 지옥에 관해 무관심한 분들이 적지않습니다. 통계 자료를 보면 실제로 사람들에게 제일 인기 없는 설교 주제가 천국과 지옥이라고 합니다. 죽음에 대해 함께 언급해야 되니까 마음에 걸려서 그런지 모르지만 정말 그렇습니다. 하지만 인기가 없거나 말거나 성경이 아주 빈번하게 강조하는 주제가 바로 천국과 지옥이란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만큼 우리 신앙에 있어 내세 문제는 중요한 것입니다.
2. 천국은 과연 어떤 곳인가
1) 천국은 우리가 영원히 거주할 곳입니다. 주님은 2절에서 ‘거할 곳이 많도다’라고 밝히셨습니다. 이 말은 거주할 공간이 많다는 뜻입니다. 여어성경에도 ‘거할 곳’이 방들(room)으로 변역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그곳에 우리가 거처할 처소를 예비하러 가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십자가 죽음, 부활, 그리고 승천 등이 모두 처소를 예비하기 위한 절차라는 것입니다. 처소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구체적인 거처를 의미합니다. 천국은 우리의 영원한 거처가 충분할 정도로 넓은 곳입니다. 이 세상에서 무주택자의 설움이 얼마나 큽니까 예수님도 집이 없으셨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었지만 주님은 머리 둘 곳이 없었습니다(마 8:20). 주님은 우리의 인생고를 아십니다. 오늘날도 그렇겠지만 옛날에 무주택자들의 애환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아이가 많던 시절에는 아이들이 많다고 셋방도 안 주고, 아이들이 떠들거나 울면 주인집 눈치 보느라 전전긍긍곤 했습니다. 천국에 가면 무주택자가 없습니다. 셋방 설음도 인생고도 없습니다. 넉넉한 공간이 있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충분히 거처할 저택과 방들이 즐비합니다. 영원히 우리의 소유입니다. 땅에 있는 우리 육신이 죽어가고, 거처하던 집이 무너진다 해도 영원한 하늘의 집이 준비되어 있습니다(고후 5:1).
2)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좋은 곳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22장을 보면 천국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곳은 이 세상에서 우리를 괴롭히던 것들이 하나도 없습니다. 눈물, 질병, 사망, 애통하는 것, 곡하는 것, 속된 것, 가증한 것, 저주, 어두운 밤 등, 그리고 이 세상에서 부족하고 아쉬웠던 것들이 풍성하게 준비되어 있습니다. 주님과 성도들의 풍성한 사랑의 교제, 생명수 강, 풍요로움, 섬김, 찬양, 황금, 보석집 등, 이렇게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지만 이것들은 우리 인간의 짧은 언어로 표현한 것에 불과합니다. 아마 직접 가보면 상상을 초월하는 아름다움과 풍성함이 있을 것입니다. 지옥은 이와 정반대입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 미움, 저주, 그리고 절망 등이 가득한 곳입니다. 천국이 얼마나 좋은지 아십니까 천국에서 역이민 해 온 삼이 한 명도 없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살기 좋다고 선진국에 이민 갔다가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별 ㄱ서 아니라며 다시 돌아옵니까 반대로 지옥이 얼마나 나쁜지 아십니까 탈주자가 한 명도 없는 것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살기 힘들다는 북한에서도 도망 나오는 탈북자가 많은데 지옥은 얼만 살벌한지 도망도 못 나오는 곳입니다. 물론 조크입니다. 정말이지 천국으 못 가면 큰일 날 정도로 좋은 곳입니다. 그리고 지옥은 가면 큰일 날 정도로 나쁜 곳입니다.
그러므로 있다 없다를 가지고 변론하지 말고, 기필코 천국에 들어갈 궁리를 해야 마땅합니다. 그것이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그리스도인들조차 너무 현세적이 되어서 세상에서 대충 건강 장수를 누리고 풀요롭게 살면 된다는 생각으로 막연하게 살아갑니다. 하지만 사실은 춘국에 가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큰 일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는 잠시 살지만, 천국이든 지옥이든 내세는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이 세상에서는 한번 결정해도 번복이 가능하지만, 일단 죽음 너무 내세로 들어가면 취소나 변경이 절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정리해야 됩니다. 설사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병들고 고난받는다 하더라도 천국 가는 게 더 중요함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천국의 비유 중 밭에 감추인 비유(마 13:44)처럼 모든 것을 포기하고서라도 천국에는 가야 합니다. 반면 이 세상에서 부티나게 하고 모양나게 살았어도 지옥가면 치명적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신앙의 가치가 있습니다. 하여튼 우리는 천국을 확신하고 소망할 사람들입니다.
3. 천국엔 어떻게 가는가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천국의 실재를 말씀하신 후 천국가는 길에 관해 언급하십니다. 주님은 재림하셔서 천국으로 대려가실 것을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3절). 그러나 재림 이전에라도 우리는 죽음의 관문을 통해 영혼이 천국으로 갑니다. 어떻게 갑니까 주님은 제자들이 그 길을 이미 알고 있다고 말씀합니다(4절). 그 길이 바로 주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곧 주님이 천국으로 인도하는 안내자요 가이드인 것입니다. 주님은 천국에서 이 세상에 내려 오셨다가 다시 가신 분입니다. 그리고 다시 오실 분입니다.
그러므로 그분만 따라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답답하게도 제자들이 말귀를 알아듣지를 못합니다. 그 중 도마가 나서서 주님 가시는 곳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겠는가에 대해 반문합니다. 이때 주님이 하신 말씀이 바로 6절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원문에는 정관사가 붙어 있습니다. 즉 ’그 길‘입니다. 그러니까 유일한 길이라는 뜻입니다. 사도행전 4:12절에도 예수님 외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분명히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종교다원주의라는 이상한 이론이 등장했습니다. 여기에 동조하는 신학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 내용인즉 세상의 모든 종교가 다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중 아무거나 선택해서 믿으면 된다는 논리입니다. 그러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입맛대로 개성대로, 취미대로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의 절대 유일성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타협할 수 없습니다. 생활 면에서는 얼마든지 타종교들과도 지혜롭게 교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리 면에서 섞여버리면 곤란합니다. 오직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흘리신 대속의 공로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오직 예수를 통해서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천국을 본 적도 없고, 가 본 적도 없지만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시다면 나는 영생을 얻었고(요일 5:12), 이미 심령 속에 천국(눅 17:21)을 맛보고 사는 것입니다. 또
그렇다면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날 때 내 영혼이 주님 손에 이끌리어 천국에 들어가 영생복락을 누릴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주께서 재림하시는 날 육체조차 부활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천국에 들어갈 자는 오직 천국 입국 비자를 받은 자에 한합니다. 그 비자는 어린 양 예수의 붉은 피(계 7:14)로 그탬프가 찍힌 것입니다. 기리고 오직 생명책(계 21:27)에 기록된 자들뿐입니다. 우리가 이 진리를 믿기에 환난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만일 천국이 없다면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불쌍한 자들입니다(고전 15:19). 그 중에 순교자는 영광스러운 자가 아니라 가장 큰 바보일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도 전세계적으로 1년에 15만 명이 순교자의 반열에 동참합니다 이들이 다 바보란 말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천국에 대한 확신이 그만큼 견고하기에 순교도 불사하는 것입니다. 천국을 증거하는 삶 여러분도 이런 천국의 확신을 갖고 소망 중에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주변 사람들에게 이 복음을 꼭 전합시다. 모든 사람을 위해 너무나 귀중한 진리이기에, 그리고 많은 사람에게 너무나 소홀히 취급되고 있기에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증거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후회합니다. 내가 믿는다고 옆에 있는 가족이나 이웃도 함께 천국 가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언젠가 우리 모두에게, 그리고 가족들과 친구들에게도 죽음이 찾아오게 될 겁니다. 그때에도 과연 우리에게 소망이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천꾸 가는 길이신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시면 여전히 소망이 있을 줄 믿습니다. 그래서 성도의 죽음은 귀중한 것이고(시 116:15), 성도죽음 앞에서도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잠 14:32). 이따금 암 전문의나 호스피스 사역자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공통된 이야기가 있습니다. 천국을 확신하는 신실한 성도들은 암 같은 중병에 걸려서도 고통을 비교적 잘 참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몹시 고통스러워 하다가도 임종 직전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평화롭고 환한 모습으로 얼굴이 변한 채 하늘 나라로 간다는 것입니다. 천국가는 길을 발견한 사람들의 최후 승리입니다. 아무쪼록 여러분 모두 이 아름다운 천국 소망을 품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천국가는 길되신 예수님만 의지하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에 우리를 들러싸고 있는 그 어떤 어둠의 그림자도 물러갈 줄로 믿습니다. 죽음이 두렵지 않은데 이 세상 그 어느 것이 우리를 두렵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옛날이나 지금이나, 선진국이나 후진국이나 사망률은 항상 100%입니다. 다만 현대인들이 죽음을 일부러 망각하고 생각하기 싫어하는 것뿐입니다. 그 근본 이유는 죽기가 싫고, 또 죽는 게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은 누구에게나 닥쳐오는 엄연한 현실입니다. 따라서 죽음에 대한 생각을 무조건 회피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입니다. 마치 꿩이 사냥꾼에게 쫓기다가 급한 김에 엉덩이는 내놓은 채 머리만 수풀에 처박고 있는 것과 같은 꼴입니다.
그러므로 막연하게 죽음을 회피하려고만 하지 말고 차라리 죽음을 직시하고 정면승부를 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성경도 그런 뜻으로 이렇게 말씀합니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전 7:2)” 그런 점에서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매우 유익한 말씀입니다. 바로 죽음 이후의 내세에 관해 확실한 교훈을 제공해 주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날 밤 최후의 만찬 직후에 하신 말씀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죽음을 예감하고 몹시 불안해졌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헤어지고 나면 그후 자신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심히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것은 미래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이런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 종류와 정도가 다를 뿐 모두 불안과 두려움을 안고 살아갑니다.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과 멀어진 모든 인간의 공통 심리입니다. 그리고 마음 깊은 곳에는 죽음에 대한 원초적인 불안감이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과 내세에 대해 확실하게 정리해 두면 불안과 두려움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불안에 휩싸인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그리고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든 확실한 미래의 사실이 있기에 염려할 것이 없다고 제자들을 위로합니다. 그 확실한 미래의 모습이 무엇입니까 내세 천국입니다. 우리도 이 말씀을 통해 죽음과 그 이후의 내세 문제에 관해 잘 정리하고 확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럼으로써 남은 생애 동안 소망 가운데 기뻐하며 의미있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1. 천국은 과연 실재하는 곳인가 예수님은 분명하게 천국의 실재를 증거하십니다. 2절에 나오는 “내 아버지 집”은 천국을 가리킵니다. 흔히 하늘 나라나 천국이란 말 대신 “천당”이란 말을 쓰기도 하는데, 이 구절과 잘 어울리는 말입니다.
그런데 혹자는 천국이 실재하는 장소가 아니고, 하나의 신화라고 주장하거나 혹은 영적인 상태에 불과한 것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천국은 실재하는 장소라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본문의 짧은 단락에서도 천국이 장소라는 사실을 밝혀 주는 표현들이 많이 나옵니다. ‘집’이란 단어도 그렇고, ‘거할 곳’, ‘처소’, ‘나 있는 곳’ 등의 표현이 모두 구체적인 장소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사용된 동사들도 모두 장소를 전제로 사용된 것들입니다. 즉 ‘가나니’, ‘가서’, ‘와서’, ‘있게’ ‘가는’ 등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22장 등을 비롯해서 천국에 관해 언급한 다른 성구들을 살펴봐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지만 천국의 실재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천국과 정반대인 지옥의 실재도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기록이 부자와 거지 나사로 이야기(눅 16:19-31)입니다.
그런데 성도들 중에도 분명히 신앙 생활을 한다고는 하는데 천국과 지옥에 관해 무관심한 분들이 적지않습니다. 통계 자료를 보면 실제로 사람들에게 제일 인기 없는 설교 주제가 천국과 지옥이라고 합니다. 죽음에 대해 함께 언급해야 되니까 마음에 걸려서 그런지 모르지만 정말 그렇습니다. 하지만 인기가 없거나 말거나 성경이 아주 빈번하게 강조하는 주제가 바로 천국과 지옥이란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만큼 우리 신앙에 있어 내세 문제는 중요한 것입니다.
2. 천국은 과연 어떤 곳인가
1) 천국은 우리가 영원히 거주할 곳입니다. 주님은 2절에서 ‘거할 곳이 많도다’라고 밝히셨습니다. 이 말은 거주할 공간이 많다는 뜻입니다. 여어성경에도 ‘거할 곳’이 방들(room)으로 변역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그곳에 우리가 거처할 처소를 예비하러 가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십자가 죽음, 부활, 그리고 승천 등이 모두 처소를 예비하기 위한 절차라는 것입니다. 처소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구체적인 거처를 의미합니다. 천국은 우리의 영원한 거처가 충분할 정도로 넓은 곳입니다. 이 세상에서 무주택자의 설움이 얼마나 큽니까 예수님도 집이 없으셨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었지만 주님은 머리 둘 곳이 없었습니다(마 8:20). 주님은 우리의 인생고를 아십니다. 오늘날도 그렇겠지만 옛날에 무주택자들의 애환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아이가 많던 시절에는 아이들이 많다고 셋방도 안 주고, 아이들이 떠들거나 울면 주인집 눈치 보느라 전전긍긍곤 했습니다. 천국에 가면 무주택자가 없습니다. 셋방 설음도 인생고도 없습니다. 넉넉한 공간이 있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충분히 거처할 저택과 방들이 즐비합니다. 영원히 우리의 소유입니다. 땅에 있는 우리 육신이 죽어가고, 거처하던 집이 무너진다 해도 영원한 하늘의 집이 준비되어 있습니다(고후 5:1).
2)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좋은 곳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22장을 보면 천국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곳은 이 세상에서 우리를 괴롭히던 것들이 하나도 없습니다. 눈물, 질병, 사망, 애통하는 것, 곡하는 것, 속된 것, 가증한 것, 저주, 어두운 밤 등, 그리고 이 세상에서 부족하고 아쉬웠던 것들이 풍성하게 준비되어 있습니다. 주님과 성도들의 풍성한 사랑의 교제, 생명수 강, 풍요로움, 섬김, 찬양, 황금, 보석집 등, 이렇게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지만 이것들은 우리 인간의 짧은 언어로 표현한 것에 불과합니다. 아마 직접 가보면 상상을 초월하는 아름다움과 풍성함이 있을 것입니다. 지옥은 이와 정반대입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 미움, 저주, 그리고 절망 등이 가득한 곳입니다. 천국이 얼마나 좋은지 아십니까 천국에서 역이민 해 온 삼이 한 명도 없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살기 좋다고 선진국에 이민 갔다가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별 ㄱ서 아니라며 다시 돌아옵니까 반대로 지옥이 얼마나 나쁜지 아십니까 탈주자가 한 명도 없는 것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살기 힘들다는 북한에서도 도망 나오는 탈북자가 많은데 지옥은 얼만 살벌한지 도망도 못 나오는 곳입니다. 물론 조크입니다. 정말이지 천국으 못 가면 큰일 날 정도로 좋은 곳입니다. 그리고 지옥은 가면 큰일 날 정도로 나쁜 곳입니다.
그러므로 있다 없다를 가지고 변론하지 말고, 기필코 천국에 들어갈 궁리를 해야 마땅합니다. 그것이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그리스도인들조차 너무 현세적이 되어서 세상에서 대충 건강 장수를 누리고 풀요롭게 살면 된다는 생각으로 막연하게 살아갑니다. 하지만 사실은 춘국에 가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큰 일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는 잠시 살지만, 천국이든 지옥이든 내세는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이 세상에서는 한번 결정해도 번복이 가능하지만, 일단 죽음 너무 내세로 들어가면 취소나 변경이 절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정리해야 됩니다. 설사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병들고 고난받는다 하더라도 천국 가는 게 더 중요함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천국의 비유 중 밭에 감추인 비유(마 13:44)처럼 모든 것을 포기하고서라도 천국에는 가야 합니다. 반면 이 세상에서 부티나게 하고 모양나게 살았어도 지옥가면 치명적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신앙의 가치가 있습니다. 하여튼 우리는 천국을 확신하고 소망할 사람들입니다.
3. 천국엔 어떻게 가는가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천국의 실재를 말씀하신 후 천국가는 길에 관해 언급하십니다. 주님은 재림하셔서 천국으로 대려가실 것을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3절). 그러나 재림 이전에라도 우리는 죽음의 관문을 통해 영혼이 천국으로 갑니다. 어떻게 갑니까 주님은 제자들이 그 길을 이미 알고 있다고 말씀합니다(4절). 그 길이 바로 주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곧 주님이 천국으로 인도하는 안내자요 가이드인 것입니다. 주님은 천국에서 이 세상에 내려 오셨다가 다시 가신 분입니다. 그리고 다시 오실 분입니다.
그러므로 그분만 따라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답답하게도 제자들이 말귀를 알아듣지를 못합니다. 그 중 도마가 나서서 주님 가시는 곳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겠는가에 대해 반문합니다. 이때 주님이 하신 말씀이 바로 6절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원문에는 정관사가 붙어 있습니다. 즉 ’그 길‘입니다. 그러니까 유일한 길이라는 뜻입니다. 사도행전 4:12절에도 예수님 외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분명히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종교다원주의라는 이상한 이론이 등장했습니다. 여기에 동조하는 신학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 내용인즉 세상의 모든 종교가 다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중 아무거나 선택해서 믿으면 된다는 논리입니다. 그러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입맛대로 개성대로, 취미대로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의 절대 유일성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타협할 수 없습니다. 생활 면에서는 얼마든지 타종교들과도 지혜롭게 교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리 면에서 섞여버리면 곤란합니다. 오직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흘리신 대속의 공로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오직 예수를 통해서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천국을 본 적도 없고, 가 본 적도 없지만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시다면 나는 영생을 얻었고(요일 5:12), 이미 심령 속에 천국(눅 17:21)을 맛보고 사는 것입니다. 또
그렇다면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날 때 내 영혼이 주님 손에 이끌리어 천국에 들어가 영생복락을 누릴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주께서 재림하시는 날 육체조차 부활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천국에 들어갈 자는 오직 천국 입국 비자를 받은 자에 한합니다. 그 비자는 어린 양 예수의 붉은 피(계 7:14)로 그탬프가 찍힌 것입니다. 기리고 오직 생명책(계 21:27)에 기록된 자들뿐입니다. 우리가 이 진리를 믿기에 환난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만일 천국이 없다면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불쌍한 자들입니다(고전 15:19). 그 중에 순교자는 영광스러운 자가 아니라 가장 큰 바보일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도 전세계적으로 1년에 15만 명이 순교자의 반열에 동참합니다 이들이 다 바보란 말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천국에 대한 확신이 그만큼 견고하기에 순교도 불사하는 것입니다. 천국을 증거하는 삶 여러분도 이런 천국의 확신을 갖고 소망 중에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주변 사람들에게 이 복음을 꼭 전합시다. 모든 사람을 위해 너무나 귀중한 진리이기에, 그리고 많은 사람에게 너무나 소홀히 취급되고 있기에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증거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후회합니다. 내가 믿는다고 옆에 있는 가족이나 이웃도 함께 천국 가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언젠가 우리 모두에게, 그리고 가족들과 친구들에게도 죽음이 찾아오게 될 겁니다. 그때에도 과연 우리에게 소망이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천꾸 가는 길이신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시면 여전히 소망이 있을 줄 믿습니다. 그래서 성도의 죽음은 귀중한 것이고(시 116:15), 성도죽음 앞에서도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잠 14:32). 이따금 암 전문의나 호스피스 사역자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공통된 이야기가 있습니다. 천국을 확신하는 신실한 성도들은 암 같은 중병에 걸려서도 고통을 비교적 잘 참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몹시 고통스러워 하다가도 임종 직전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평화롭고 환한 모습으로 얼굴이 변한 채 하늘 나라로 간다는 것입니다. 천국가는 길을 발견한 사람들의 최후 승리입니다. 아무쪼록 여러분 모두 이 아름다운 천국 소망을 품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천국가는 길되신 예수님만 의지하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에 우리를 들러싸고 있는 그 어떤 어둠의 그림자도 물러갈 줄로 믿습니다. 죽음이 두렵지 않은데 이 세상 그 어느 것이 우리를 두렵게 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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