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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믿음, 거짓 믿음 (요12:34-43)

본문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의 흐름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 3년 동안 예수님께서는 갈릴리와 유대 나라를 다니시면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라." 하고 천국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만나는 무리들을 앞에 놓고 복음을 전하시고 진리를 가르치시고 또 병든 자들을 치유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제 그와 같은 모든 사역들을 마무리해야 될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판단하셨습니다. 36절 후반부를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서 숨으시니라." 참으로 이상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일체의 공적인 활동을 중단하시고 잠적하신 것입니다. 이제 며칠 남지 아니한 기간을 이용해서 조용한 곳에서 제자들을 마지막으로 격려하고 교육하며 그들을 준비시키는데 심혈을 기울이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13장 이하에는 제자들과 만나서 계속말씀하시는 것만 나오지 무리들 앞에 자기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하시고 가르치시고 치료하시던 사역은 이제 마무리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읽은 본문 내용을 보면 예수님이 지난 3년 동안 하신 사역이 실패작이 아니었나 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하나님 아들이 직접 오셔서 권세 있는 말씀을 가지고 전하시고 이적과 표적을 베푸사 사람들의 모든 질병들을 치유하시고 심지어 죽은 자까지 살리시는 이런 엄청난 일을 보여주셨는데도 3년 동안 예수님을 믿고 돌아오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37절을 보십시오. "이렇게 많은 표적을 저희 앞에서 행하셨으나 저를 믿지 아니하니."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으려 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대세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역이 실패였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구원 받을 수 있는 길을 닦아 놓으시고 우리가 믿고 예수님 앞으로 가는 풍성한 열매는 성령님과 제자들에게 넘겨주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우리는 그로부터 불과 한두 달도 지나지 않아 엄청난 열매가 맺히게 되었음을 분명히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자신이 하신 사역만을 놓고 볼 때는 결과가 너무 빈약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더욱이 성경은 이렇게 3년 동안 복음을 듣고도 사람들이 예수를 안 믿는 기현상을 두고 이미 예언된 일이니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투로 말씀합니다. 이사야 라고 하는 선지자가 오래 전부터 이런 불신의 세대가 예수님의 사역을 방해할 것을 내다보고 있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38절 이하에 보면 이사야의 예언이 그대로 인용되어 있습니다.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 무슨 뜻인지금방 안 들어올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이여,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누가 우리의 말을 믿었습니까 하나님이여,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적 기사를 행하고 하나님의 강한 팔을 보여 줄 때 예수님을 믿고 돌아온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모두가 귀를 막고 안 들었습니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사야는 장차 예수님 당시에 나타날 불신의 세대를 내다보고 이미 이런 예언을 해 놓았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예언대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예수님 당시의 세대는 왜 이적 기사를 보고도 그 마음을 주님께로 돌이켜 예수님을 믿지 않았을까요 39절 이하에 그 이유가 나옵니다.
40절을 보십시오. "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보고도 안 믿었습니까 40절 말씀은 하나님이 그 눈을 가려 놓았으니 못 믿었다는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하나님이 그 마음을 완악하게 만들어 버리셔서 믿을 수가 없었다는 말처럼 들립니다. 그들이 마음으로 깨닫고 회개하고 돌아와서 구원을 받을까 싶어서 아예 그렇게 못하도록 일부러 그렇게 하셨다고 말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어떤 섭리에 의해서 어떤 사람에게는 이렇게 하십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아예 마음을 강퍅하게 만들어 버리고 무슨 소리를 해도 듣지 못하도록 그 귀를 콱 막아 버려서 마지막까지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항하다가 저주받는 자리로 돌아가도록 만든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애굽의 바로 왕이나 예수님 당시의 빌라도, 대제사장 같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눈과 귀를 아예 막아 버린 좋은 예라고 할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이렇게 완악하게 되도록 손을 쓰셨을까 우리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 것은 그들은 특수한 경우에 해당되는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그와 같은 특수한 경우를 일반적인 경우와 같이 놓고 보면 안됩니다. 사실 40절의 말씀은 특수한 경우에 대해 이야기라기보다 일반적인 경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못 믿도록 방해를 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유대 나라 사람들이 믿지 못한 책임을 하나님께로 돌릴 수 없다는 뜻입니다. 제가 볼 때 40절 말씀을 읽을 때 조금 각도를 바꾸어 놓고 생각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눈이 멀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눈앞에 와도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알아 볼 수가 없을 만큼 죄로 인해서 그 눈이 어두워져 있습니다. 이미 어두운 사람인데 그를 또 어둡게 할 필요가 있을까요 인간은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이미 어두운 존재들인데 더 어둡게 하고 말고가 어디 있겠습니까 또 사람은 이 세상에 날 때부터 마음이 강퍅합니다. 성경 말씀대로 하면 돌처럼 굳은 마음을 가지고 세상에 나옵니다. 미련한 마음을 가지고 나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그 마음이 돌짝 밭과 같고 가시덤불과 같아서 아무리 귀가 아프도록 들려줘도 깨닫지 못합니다. 날 때부터 이미 완악한 데 또 완악하게 할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따라서 하나님이 눈을 멀게 했다, 완악하게 했다는 말을 액면 그대로 들으면 안되겠습니다. 이 말씀은 완곡한 표현법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눈먼 사람은 눈먼 그대로 내버려두셨고 마음이 완악한 사람은 완악한 그대로 내버려두셨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자연적으로는 깨달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본문을 이렇게 보아야 합니다. 실제로 성경에 보면 이런 말씀들이 있습니다. 로마서 1장을 보면 예수 믿으라고 해도 믿지 않고 회개하라고 해도 회개하지 않고 우상을 숭배하는데 열을 내는, 하나님의 저주 아래 놓인 사람들을 놓고 "하나님이 내어버려 두셨다"고 했습니다. 로마서 1장 24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버려 두사." 또 26절을 보십시오.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버려 두셨으니." 또 28절을 보십시오.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버려 두사." 하나님이 내어버려 두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일컬어서 오늘 본문에서는 "눈을 멀게 하셨다",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다" 하는 말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이려면 초자연적인 어떤 역사가 그 마음에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 자신으로는 100 퍼센트 불가능입니다. 우리 힘으로는 눈을 뜰 수도 없고 우리 힘으로는 마음을 부드럽게 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 앞에 나타나도 믿을 수가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를 믿으려면 하나님의 은혜가 100 퍼센트 역사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굳은 마음을 부드럽게 해주시는 은혜가 있어야 됩니다. 눈먼 눈을 씻어 주시고 들을 수 있는 귀를 열어주셔야 됩니다. 그 때에야 우리는 비로소 예수님이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믿음이라는 것은 백 퍼센트 기적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모시게 되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게 되었습니까 이것은 기적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기적은 바로 내가 예수를 믿은 것입니다. 할렐루야! 나 같은 것이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발견한 것입니다. 할렐루야! 나 같은 것이 주님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것만큼 위대한 기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가 있을 때만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예수님 당시의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 은혜를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냥 내어버려 두셨습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의 아들이 3년 동안 그렇게 온갖 이적 기사를 행하셨는데도 열매가 그렇게 신통치 않았던 것입니다. 거짓 믿음 저는 오늘 본문을 보면서 특별히 주목하며 묵상한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거짓 믿음에 대한 것이고, 또 하나는 약한 믿음에 대한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당시의 일반적인 대세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으려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를 안 믿었습니다. 그러나 12장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보면 조금 다른 면이 있습니다. 예수님 주변에 몰려 있는 많은 청중들은 조금 다른 데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흘 동안 무덤에 있다가 예수님께서 말씀 한마디로 불러 일으켜 무덤에서 죽은 자를 살려내는 것을 눈으로 본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들 중 다수는 그 기적을 보자마자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입니다(11절). 그뿐입니까 예수님이 어린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이 사람들은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호산나! 이스라엘의 왕이여." 하고 환호하면서 하루종일 열광하던 무리들입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천둥 번개와 함께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하시는 말씀을 귀로들은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12장에 나오는 일반 청중들은 거의가 믿는 것처럼 보이는 분위기입니다. 겉으로 보면 믿는 사람들 같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대부분의 칼라가 예수님을 믿는 것처럼 보이는 칼라입니다. 이것이 12장에 나오는 청중들의 일반적인 경향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그들이 믿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17절). 겉으로는 믿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런점에서 그들의 믿음은 거짓 믿음이었습니다. 분위기를 따라서 믿는 것처럼 행세하는 것은 다 거짓 믿음입니다. 이와 같은 거짓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잘 따진다는 것입니다. 잘 따지고, 잘 싸우고, 논쟁도 잘하고, 마음에 별의별 의심을 품고서 끝도 없는 질문을 늘어놓습니다. 이것이 보통 거짓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일반적인 경향입니다. 말이 많습니다. 뭔가 질문이 많고 끝없는 논쟁을 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바른 말을 하면 잘 듣지를 않고 자기 생각에 몰입이 되어 가지고 자기 소리만 합니다. 오늘 우리 본문에 나오는 무리들 역시 벌써 그런 티를 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2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이 말이 무슨 뜻입니까 사도 요한은 이에 덧붙여 그 뜻을 설명합니다.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 여러분, 땅에서 들린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기억하십니까 제가 지난주에 두 가지 의미를 말씀드렸습니다.
첫째는 십자가에 죽으시는 것이요,둘째는 승천하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님 주변에 있었던 청중들은 이 말씀의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아, 예수님이 죽으신다는 이야기로구나.'하고 그 의미를 파악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대뜸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34절을 보십시오. "아, 우리가 율법 책에 보니까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너는 왜 죽는다고 하느냐 네가 죽는다고 하는 소리를 하는 것 보니까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가 아닌 것이 틀림없지 않느냐" 거짓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이처럼 뭐라도 꼬투리가 될 만한 게 보이면 트집을 잡고 따지려고 드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입니다. 그에게는 죽음이 없습니다. 그의 나라는 영원토록 계승될 것이요,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토록 쇠하지 않을 것입니다. 할렐루야! 구약에도 보면 그렇게 말씀하는 성경 말씀들이 있습니다. 시편 89편 4절을 보십시오. "내가 네 자손을 영원히 견고히 하며 내 위를 대대에 세우리라." 그러니까 '영원히'나 '대대에'하는 말은 죽음이라든지 쇠한다든지 망하는 것이 없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에스겔 37장 25절을 보십시오. "내 종 다윗이 영원히 그 왕이 되리라." 여기서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예수님이 영원히 왕이 되리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약 성경에 있는 이런 좋은 말씀들을 이 사람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진짜 메시아가 오시면 그분은 영원히 왕노릇 하실 분이므로 그분은 죽는 것도 없을 것이요 이스라엘 나라에 파라다이스를 세워서 우리도 죽지 않게 하실 것이다.' 하는 막연한 기대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자기가 죽는다고 하시니까 "네가 무슨 메시아냐"하고 따지고 들었던 것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아십니까 거짓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정직하게 배우고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또 교회를 다니지 않아서 하나님의 말씀하고 거리가 먼 사람이라 할지라도 바른 복음을 전하면 잘 들으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자기 마음에 드는 말만 쏙쏙 뽑아 가지고 마음에 담습니다. 예수님 주변에서 시비를 걸고 들어오는 군중들 역시 그러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구약을 배웠던 유대나라 사람들은 좋은 것만 쏙쏙 뽑아 가지고 알고 있습니다. 나쁜 것은, 조금 마음에 들지 않는 말씀은 아예 무시해 버립니다. 이렇게 정직하게 말씀을 보지 못하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에 보면 예수님이 영원히 다스린다는 말씀도 있지만 그 영원은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영원한 통치를 얻기 이전에 예수님은 먼저 죽으셔야 합니다. 세상의 죄와 허물을 짊어진 어린양으로 십자가에서 속죄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부활과 함께 영원히 다스리시는 하나님 나라의 왕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시편 22편 1절을 보십시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하고 주님의 고난을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이사야 53장 5절을 보십시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시면 먼저 그 살이 찢겨야 합니다. 채찍에 맞아야 됩니다. 죽어야 됩니다. 상처를 입고 피를 흘려야 됩니다. 이 십자가의 고난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영원히 죽음을 정복하시고 영원히 다스리시는 만 왕의 왕이 되신다고 성경은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어야 되고 고난받아야 된다는 이런 말씀을 다 재껴 놓았습니다. 자기 마음에 안 드니까 안보는 것입니다. 메시아가 죽어야 되는데도 안 죽는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메시아는 죽음으로써 영원한 왕이 된다고 말씀하셨는데도 그 말씀을 모르니까 "네가 죽는다면 어떻게 우리의 메시아가 될 수 있느냐" 하고 따지고 드는 것입니다. 이게 다 그 믿음이 엉터리이기 때문에 하는 소리입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우리 중에는 이런 분이 계실지 모릅니다. 마음속에 의심을 가지고 씨름하고 바른 말을 하면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을 조금 가까이 와서 보면 되는데 보려고도 하지 않고 늘 자기 속에 남아 있는 어떤 선입견이나 자기가 알고 있는 작은 상식을 가지고 계속 트집을 잡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행여나 이런 마음을 가진 분이 계시면 주의하십시오. 여러분들의 믿음은 거짓 믿음일수도 있습니다. 여러분께 부탁 드립니다. 성경을 펴십시오. 그리고 성경 앞으로 나와서 어린아이처럼 정직하게 읽어보십시오. 그러면 예수님을 만날 것입니다. 십자가의 주님을 알게 될 것이고 영광의 주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아무리 오해가 많이 싸여 있는 사람끼리라도 직접 만나서 자주 이야기를 하다가 보면 오해가 풀리고 서로가 마음에 정이 가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우리가 믿는다고 하면서 말씀을 통해 그분을 자주 만날 생각은 않고 성경은 덮어놓은 채 마음에 있는 의심을 가지고 씨름한다면 안 믿으려는 사람과 무엇이 다릅니까 믿으려고 한다면 그런 태도는 절대 가지면 안 됩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기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말씀 앞에 나와서 조용히 성경을 펴놓고 "하나님이여, 저의 굳은 마음을 제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이여, 저에게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옵소서. 하나님이여, 정직한 눈을 가지고 예수님을 보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하면서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마음은 닫아 놓고 계속 의심에 사로잡혀 질문만 던지며 시비만 걸면 안 되는 것입니다. 약한 믿음 두 번째로 제가 생각해 보았던 것은 약한 믿음입니다. 제가 약한 믿음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것은 42절 이하에 나오는 내용 때문입니다. 우리는 온 천하가 예수를 안 믿는 대세로 흘러가고 겉으로 믿는 것처럼 하는 사람도 실상은 거짓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2절을 보면 참 흥미로운 내용이 나옵니다. "그러나 관원 중에도 저를 믿는 자가 많되." 참 희한한 말씀입니다. 관원이라고 하면 요즘 우리 사회로 이야기하면 상당히 높은 지도자층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그 당시 관원 하면 유대 나라에서 100명 미만에 속하는 아주 존경받는 귀족 계급이요, 권세가 막강한 사람들입니다. 성경에 나온 사람 중에 니고데모나 아리마대 요셉 같은 사람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부와 명예를 다 누리고 있는 이 사람들 가운데 예수를 믿는 자가 많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굉장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에 따라 나오는 말씀입니다. "바리새인들을 인하여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회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그들은 믿기는 믿는데 바리새인들이 두려워 자신의 믿음을 드러나게 말하지 못했습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나는 예수님이 메시야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라고 공적으로 시인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가지 약점이 있었습니다. 출회를 당할까 두려워한다고 그랬습니다. 그 당시 유대 나라는 유대교의 종교 분위기 아닙니까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시인을 하게 되면 관원들처럼 지위가 있는 사람은 지위가 다 날아갈 수 있습니다. 성전에 가서 제사 지내는데 참여할 수 없도록 쫓겨 날 수도 있습니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재산상의 손해도 입을 수 있고, 결국은 사회적으로 고립이 되는 핍박을 당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사회에서 그런 불이익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일반 평민들이 그런 불이익을 당한다면 그렇게 표가 안 날지 모르지만 관원이라고 하는 아주 명예와 부를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되면 엄청난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 때문에 당할 불이익을 겁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43절을 보십시오. "저희는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그들은 마음가짐이 바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면 예수님이 항상 그 마음에서 가장 우선 순위가 되야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자신을 예수님보다 앞세웠고, 하나님보다 앞세웠습니다. 자기를 먼저 위하고 그 다음에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의 영광보다 자기 영광을 더 많이 생각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그들은 신앙 고백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예수 믿다가 손해 볼까 싶어 날마다 부들부들 떨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리고 마음은 하나님보다 자기가 더 앞서고 있고, 자기를 더 사랑했습니다. 그럼에도 놀라운 것은 이런 사람들을 놓고도 성경은 "예수를 믿는다"고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볼 때는 엉터리 믿음 같은데, 우리가 앞서 이야기한 거짓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나 별반 다를 바 없는 것 같은데, 그들을 놓고 믿는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실 우리가 드러내놓고 자신이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십니까 로마서 10장 10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그러니까 아무리 속으로 '믿습니다' 해도 자기 입으로 예수님을 고백하지 못하면 그 믿음은 의심할만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0장 32-33절에서 주님은 굉장히 끔직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이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 이런 말씀에 비춰 보면 예수님을 드러내놓고 고백하지 못하는 사람은 믿는 사람이라고 말하기 어렵다고 생각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은 그들을 가리켜 여전히 믿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기 위해서 값을 치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세상이냐 예수냐 예수를 선택했을 때 세상에서 핍박받고 환란 받고 예수 때문에 내가 많은 고통을 당하며 손해를 본다고 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예수는 진주와 같습니다. 누구든지 진주를 발견했으면 그 진주를 손에 넣기 위해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팔아 가지고 돈을 만들어서 진주가 묻힌 밭을 산다고 했지요 예수 믿는 것은 바로 이것과 같다고 그랬습니다. 예수님 한 분을 소유하고, 예수님을 통해 영생을 얻기 위해서 내가 핍박을 당하면 핍박을 당할 것이요, 목에 칼이 들어와도 예수 믿는 것은 포기할 수 없다고 하면서 모든 고통과 고난을 기쁘게 받는 것이 참 신앙을 가진 사람의 태도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지위가 날아갈까, 손해 볼까 하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이런 관원을 놓고 믿는다고 하는 것은 참 이상합니다. 우리 눈에는 세상 영광도 놓치고 싶지 않고 하늘의 영광도 놓치고 싶지 않고, 이세상의 행복도 놓치고 싶지 않고 천국의 복락도 놓치고 싶지 않은 아주 욕심 많은 사람들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수요 예배 때 박은혜 전도사님이 오셔서 참 기가 막힌 간증을 해주셨습니다. 여러분 중에 못 들으신 분이 참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불쌍해요. 정말 불쌍해요. 기회는 한번 놓치면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법입니다. 테이프도 안 만들 겁니다. 이 자매는 중국에 사는 조선족 자매인데 배운 것도 별로 없는 평범한 여자입니다. 그는 중국에서 문화 혁명이 사람들을 한참 힘들게 핍박할 무렵 가만히 남 몰래 라디오를 틀어놓고 듣다가 극동방송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극동방송을 들으면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구주요, 예수 믿으면 죄 사함 받고 영생을 얻는다는 진리를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시간만 되면 만사를 제쳐놓고 방송을 틀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혼자 조용히 방송을 듣고 있는데 설교자가 설교를 끝내면서 이런 말을 했나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과연 예수 믿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제가 하는 대로 기도를 따라 하십시오" 설교자가 그런 말씀을 하니까 이 자매는 그대로 따라했습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예수님은 나의 구주요 나의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예수님은 나의 구주요 나의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한참 이렇게 따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머리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확 쏟아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너무 놀래 가지고 벌떡 일어나서 눈을 떠보니까 언제 들어왔는지 자기 남편이 들어와 가지고 국수를 먹다가 뜨거운 국수 그릇을 그냥 머리에다가 쏟아 버린 것입니다. "이 여자가 무슨 개딱지 같은 소리하고 있나"하면서 머리에다 그대로 엎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매님은 꺾이지 않았습니다. 중국에는 공산당하고 이렇게 서로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기독교의 명색을 유지해왔던 삼자교회가 있습니다. 이제 라디오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해 매 주일 마다 삼자교회에 나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자 남편은 핍박의 정도를 몇 배나 늘렸습니다. 얼마나 핍박을 하는지 교회만 다녀오면 그날 저녁은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도록 계속 두들겨 맞는 것입니다. 너무 두들겨 맞아서 양쪽 귀가 다 터진 적도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렇게 10년 동안을 두들겨 맞으며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예수 안 믿는다는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남편이 "너, 나를 택할래 예수를 택할래"하고 으름장을 놓을 때마다 "나는 예수님도 택하고 당신도 택할 겁니다." 라며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결국 판사 앞에 끌려가서 강제 이혼을 당했습니다. 그리고는 한국으로 쫓겨와서 지금까지 10년이 넘도록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데 그 가슴에 얼마나 불이 붙는지 모릅니다. 저는 그 자매님의 말씀을 들으며 참 부끄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자매님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한국 교회에 와 보니까 모든 성도들이 대부분 배에 기름이 줄줄 흐르도록 받은 것이 너무 많은데도 이상하게 기도할 때 엎드리기만 하면 하나님한테 뭘 그렇게 많이 맡겨 놓은 게 있는 지 '주여, 주시옵소서.' 하고 날마다 달라고만 합니다. 중국 성도들은 그렇게 환란과 핍박을 받으면서 신앙 생활을 해도 무엇을 달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여,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를 들어 사용해 주시옵소서. 우리가 주님을 위해 살게 해 주옵소서.'하고 기도하지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오면 날마다 달라고만 하고 자기 중심적으로 신앙 생활 하는 사람들이 진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겠느냐는 뼈아픈 충고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는다는 게 뭡니까 손해 보는 것 아닙니까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환란을 당하는 것이 정상 아닙니까 예수 믿으면서 믿음을 바로 가져 보려다가 두들겨 맞는 수도 있는 것이고, 어떤 면에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할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나는 예수를 믿습니다. 당신도 예수 믿으십시오." 하고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이 참 믿음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렇게 살지 못했던 관원들을 놓고 성경이 믿는다고 말씀하는 것이 놀랍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을 했습니다. 관원들은 속으로는 믿습니다. 속으로는 믿는데 겁이 나가지고 말을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의 믿음은 믿는다고 말할 수는 있으되 약한 믿음이요, 어린 믿음인 것입니다. 어린 믿음을 가진 사람은 믿음 때문에 환란을 당하라고 하면 겁이나 도망도 갈 수 있습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 다녔지만 막판에 생명이 위험하니까 세 번씩이나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난 예수란 사람을 모른다" 하고 부인해 버리지 않습니까 누구에게나 믿음이 약하면 이런 어려움이 있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은행에 저금했다가 찾아 쓰는 돈과 같은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자라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씨앗입니다.
그러므로 처음에 믿음이 약하고 어리면 이 관원들처럼 모순을 가질 수 있습니다. 직장에 가서든, 가정에서든 겁이 나서 "나는 예수를 믿습니다." 하고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고, 조금만 불리하다 싶으면 아예 안 믿는 것처럼 행세하려고 하고, 마음은 하나님보다도 자기가 항상 앞서 있는 이런 모순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 아직 어리고 약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믿음은 빨리빨리 키워서 잘못된 것을 씻어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주신 목적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사랑의교회를 우리 모두에게 허락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교회는 어머니입니다. 어머니는 양육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자녀들을 키우기 위해 젖을 먹이고 밥을 먹이고 입혀주고 사랑으로 돌보아 주는 것이 어머니 아닙니까 우리의 믿음은 처음부터 강한 믿음, 좋은 믿음이 아닙니다. 어린 믿음인 줄 아시기 때문에 우리 믿음을 키워주라고 지상에 교회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교회에 들어와서 이 교회가 가르치는 대로 잘 순종해야 합니다. 사랑의교회와 같은 교회가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글쎄 또 있는 지는 모르지만, 얼마나 좋은 교회입니까 이 교회에 와 가지고 이 교회가 지도하는 대로 부지런히 배우고 열심을 내서 예수님을 알기를 원하고 주님을 위해서 살아보려고 몸부림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믿음이 이 교회 올 때는 아무리 어린 믿음이고 작은 믿음이었다 할지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좋은 믿음, 큰 믿음으로 바꾸어주실 줄 믿습니다. 지난주간에 저는 금년 상반기 중 새가족반을 마친 분들을 만나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약 500명 정도 되는 분들이 참석을 하셔서 은혜로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때 김영수 성도라고 하는 분이 간증을 했습니다. 소아과 의사인데, 이분은 어려서부터 예수를 잘 믿는 분위기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머리가 커 가지고 자기 생각을 하게 되니까 조금 빗나간 것 같습니다. 한 때 김용옥씨의 동양 철학 관련 서적이나 불교에 관한 책들, 에리히 프롬이라고 하는 분의 책들을 읽으면서 심취했습니다. 성경 말씀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교회하고도 거리가 많이 멀어졌습니다.
그런데 사랑의교회로 옮겨오게 되었는데 이 교회 와서도 처음에는 새가족반에 안 들어갔습니다. 그러다가 누가 뒤에서 떠밀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어떤 계기를 통해 뒤늦게 새가족반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모임에 참석하는 동안 그에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자기의 어린 믿음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그분의 간증을 한번 들어보십시오. "세상의 온갖 책들을 즐겨 읽으면서도 성경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나, 하나님께서 오래 전부터 자녀 삼아 주심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은 어쩌면 인간의 관념의 소산일지도 몰라. 성령님의 은사를 받았다고 하는 사람은 아마도 미세한 착각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지. 지상에서는 온갖 불의한 사람들이 득세하고 있는데 과연 하나님께서는 역사를 주관하고 계실까 등등 하나님을 모독했던 나, 온갖 욕심과 정욕, 불신용과 교만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 육신이 병든 것은 알아도 영혼이 황폐하여 지고 깊은 병에 걸린 줄을 모르고 있었던 나,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 나에게 당신 스스로 내 마음속에 들어와 주신 예수님, 나의 죄를 씻겨 주시기 위해 당하신 십자가의 고난의 의미를 깨닫게 하여 주신 예수님, 나의 걱정, 근심, 무거운 짐을 아시고 위로하여 주시는 예수님, 이 어찌 좋은 예수님이 아니겠습니까" 그 점잖은 남자 분은 간증을 하면서 내내 울어댔습니다. 새가족반에 들어가서 살아 계신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어린 믿음, 약한 믿음에 그대로 머물러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런 믿음 가지고 평생을 살다가는 나중에 구원을 못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주시고 계속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게 하시고 살아 계신 예수님을 만나게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약한 믿음, 어린 믿음을 키워 주시려고 하는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 교회를 통해서 순종하고 열심을 가지고 예수님을 알기를 사모하고 하나님 말씀 앞에 오면 그리고 그 말씀을 통해서 성령님의 은혜를 체험하면 여러분의 작은 믿음이 금방 큰 믿음으로 바뀔 수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이런 은혜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남의 눈이 두려워 예수 믿는다는 말을 하지 못하던 사람이 예수 믿노라고 당당하게 고백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세상에서 손해 볼까 겁이 나가지고 항상 예수 믿는 사람답게 담대하게 행동하지 못하던 사람이 '이제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나는 예수님을 포기하지 못해.' 하는 자세를 가지고 신앙 생활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마음속에 하나님보다 세상을 사랑하고 하나님보다 자기 자신을 더 앞세우는 이와 같은 잘못된 것들이 완전히 뿌리가 뽑히고 오직 예수, 오직 하나님,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는 일에 마음이 집중되는 참 믿음의 사람, 강한 믿음의 사람, 성숙한 믿음의 사람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이 교회를 통해서 우리 모두에게 이와 같은 축복 주시기를 저는 날마다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이와 같은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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