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을 행하면 복을 받으리라 (요13:12-20)
본문
세상 사람은 누구나 나름대로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 갑니다. 다만 잘못알고 그 행복한 길을 찾고 있기 때문에 더 큰 불행의 늠에 빠져서 허우적 거리고 있는 것입니다.이번에 대학 입학 부정에 대하여 많은 것을 깨닫게 해 줍니다. 아들 딸이 대학에만 들어가면 당장 내앞에 행복이 찾아 올 줄알았지만 그것은 행복하게 되는 길을 잘못알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슴하셨습니다. 17절 말씀을 그대로 읽어 보겠습니다.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을 받으리라 " 무엇을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까세상에서는 무엇을 행하면 행복하는 많은 길을 열어 놓고 있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행복해 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결혼을 잘하면 행복해 진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운동을 해서 건강하면 행복해 진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무엇이 행복한 길인가를 알고 행하면 행복해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가의 다락방에서 12명의 제자들과 식사는 자리에서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루시고 한사람씩 씻기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다씻기신 다음 옷을 다시 입으시고 제자들을 다시금 교훈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교훈은 제자들에 대한 질문으로 부터 시작하신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 질문이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선생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그 의미를 아느냐라는 질문이였습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질문하신다면 내가 제자들의 발을 씻은 그 의미를 네가 아느냐 고 물으신다면 어떻게 대답하실렵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은 겸손히 봉사하는 것이다고 한마디로 말할수가 있습니다.
1.겸손히 서로 섬기는 것은 옳으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4절말씀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1)성도들에게 반드시 겸손히주님께 메달려야 할 의무가있다는 뜻입니다. 옳으니라는 말의 어원이 어디서 나왔느냐 하면 빚을 진다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빚진다는 말은 꼭 갚아야하는 강제성이 있는 것입니다. 반드시 해야할 의무인 것입니다. 겸손히 주께 섬기지 못하면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으려면 반드시 겸손히 자신을 낮추며 서로 봉사해야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으로 부터 복 받은 사람 가운데 야곱을 꼽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으로 복 받은때가 어제라고 여겨 집니까 아무래도 얍복강나루터에서 홀로 고독한 중에 하나님께 기도하다가 그가 야곱이라는 이름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받을때가 아닌가 생각됩니다.야곱은 얍복강에서 형에서가 400명을 이끌고 야곱을 기다리고 있다는 정보를 듣고 지금 야곱은 답답하고 심히 두려워 하고 있습니다. 그 밤에 두아내와 두 여종과 11아들을 먼저 강건너 보내고 혼자 남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을 합니다. 그러나 야곱은 안질려고 사생결단 이 능력의 사람을 놓아 주지를 않습니다. 창세기 32:25절에 이처절한 씨름의 중계를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름 할때에 위골이 되었더라 이 씨름으로 야곱의 환도뼈가 어긋났다는 말입니다. 이 씨름은 하나님께서 야곱을 거룩하게 만드시려고 걸어온 씨름입니다. 여러분도 성도가 축복받는 자리에 나아가기를 원합니까 반드시 이 씨름이 있습니다. 야곱이 하나님과 겨루워 이길려고 하는 교만의 엉치뼈가 부러 지는 순간입니다. 야곱은 형의 에서의 문제를 자기의 세력으로 자기의 뇌물로 자기의 재산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야곱이 가진 것이 없어서 형에서가 두려운 것이아닙니다. 오히려 교만의 엉치뼈를 내려 칠때에 야곱의 교만의 뼈가 내려앉은 것입니다. 씨름하는 선수나 레스링하는 선수나 권투선수가 기진 맥진할때에 취하는 자세는 규칙이나 룰이나 챔피온의 체면 불구하고 상대방 선수를 엉겨안고 매달릴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야곱이 얍복강에서 하나님과 시름 할때의 자세입니다. 겸손히 하나님앞에 메달리는 자세를 취하지 아니하고는 하나님의 부드러운 은혜를 체험하는 복을 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위기에서 하나님의 복을 받는 길은 염체 불구하고 겸손히 하나님 앞에 그로키 상태가 될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한번 손대시면 위골이 되는 교만의 엉치뼈를 낮추고 주님께 메달리시기를 바랍니다.
2)서로 겸손히 발을 씻기는 것이 옳다는 말은복받은사람은 서로서로 겸손히 섬 기는 것을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는 말씀입니다. 겸손히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이렇게 말합니다 뛰어난 사람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나를 위해 봉사하고있가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서로 서로 겸손히 봉사하는 사람이 복을 받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다른 사람을 봉사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예수믿고 복 받으십시요 할때 그 복은 경제적인 복지의 건설이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중요한 것 하나깨달을 때가 왔습니다. 경제적인 부라는 것은 한도없고 끝도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것입니다. 60년대 잘살아보자는 목표는 하루세끼 걸르지 않고 먹는 것이였습니다.70년대 잘살아보자는 초가 지붕매년마다 이지않아도 되는 지붕개량한 집에서 사는 것이였습니다. 80년대 잘살아보자의 꿈은 자가용타고 친정가는 것이였습니다. 90년대 초반에 우리는 이런 잘살아보자는 꿈을 이루웠으면 나는 행복합니다. 하는 사람이 거리마다 가득할 테데 우리는 더욱 답답하고 불만 불평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60년대 부터 우리는 줄기차게 서로 봉사하며 살아와습니다. 그러나 이제 서로 봉사를 받기만 바라고 있습니다.누구나 봉사하는 노동자가 되기를 꺼려 하고 있습니다.교인들의 섬기고 봉사하는 것을 싫어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복은 물질 그것이 복이 아닙니다. 그 물질이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되고 손으로 정당하게 노동해서 재물을 모으는 노동자에게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전도서 5:12 노동자는 먹는 것이 많든지 적든지 잠을 달게 자거니와 부자는 배부름으로 자지 못하니라 좋은 침대를 사면 좋은 아파트를 사면 행복이 저절로 오는 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행복하지 못합니다.돈으로 살수없는 단잠을 주님께서 주시지 아니하면 어찌 행복할수있겠습니까 겸손히 남을 섬기는 것이 지극히 내것으로 알고 일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3)겸손히 서로를 섬기는 것은 본을 보이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교육하는데는 여러방법이있습니다. 설명을 통해서 지식을 전달하는 방법이 있고 다른 하나는 본을 보여서 삶의 내용을 전달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런데 겸손히 봉사하는 삶의 양식은 설명이나 논리로 정보가 전달되는 것이아니라 본을 보이므로 행복한 생활이 전달 된다는 것입니다. 15절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너희도 행하게 하려 본을 보였노라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은 충분한데 그 말씀대로 사는 생활은 빈약하다고들 합니다.
1과다한 하나님 말씀
2설교자의 괴리 나는 왜하나님으로 부터 쓰임을 받지 못할까 이런 본을 보이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용하기를 원치아니하신다는 것입니다 . 지금 150년전 미국의 복음 전도자로 널리 알려진 무디 그는 무식했습니다.가난한 구두수선공이였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무디를 하나님이 쓰는 사람으로 만드셨습니다. R. A토레이는 그를 지켜보면서 하나님께서 무디를 쓰시는 이유 7가지를 밝히면서
1그는 절대순종의 본을 보인 사람이였기대문이였다는 것입니다.
2기도의 본을 보인 사람이였다는 것입니다.
3성경연구의본을 보였습니다.
4겸손의 본을 보인 사람이였습니다. 5물질에 대하여 청지기의 본을 보였습니다. 6뜨거운 열정의 본을 보인 사람이였다는 것입니다. 7능력 충만의 본을 보였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은 예수에 대하여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모습을 작아도 보여 주는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2.예수님의 겸손한 봉사를 알고 행하면 복을 받습니다. 예수님의 겸손한 봉사 어디에 어떻게 나타나고 있씁니까 예수님은 가륫유다가 자기를 팔것을 알았습니다. 성경에 응하려고 그는 가륫 유다의 발도 씻어 주셨습니다. 다만 같이 떡을 먹는자가 배신한다는 성경의 선지자의 글이 응답되는 이룰려고 했던 것입니다. 18절 말씀에 내가 너희를 다 가르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택한자가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성경의 뜻을 이루는 봉사를 한 것입니다. 성경이 결국을 만든다는 것을 그는 확신하였기에 기다릴수도 있었고 또 참을 수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하시는 일은 예수님의 겸손한 봉사는 성경대로 되어 진다는 것을 믿었기에 겸손할수 있었습니다 모든 봉사를 겸손히 행할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모든것이 성경대로 될줄 알고 겸손히 행하는 사람은 성경대로 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4)상대방에게 편하게 그 문제를 해결해 줌으로 섬기기 때문에 복을 받습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고 하는 성에 들어가셨습니다. 야곱의 우물에서 그는 물을 길러온 여인을 만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이 지금 다섯 남편과 헤어지고 지금 여섯번째의 남자와 살고있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만족이 없습니다. 진정으로 만족을 누리지 못하고있다는 것은 주님은 다 꿰뚫어 보고 계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지금 당신의 문제는 현실 속에서 만족을 누리려고 하기 때문에 만족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고 진단 할수 있겠지만 예수님은 그 문제를 스스로 찾아서 나타내기를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마리아 여자에게 네가 남편이 다섯이 있지만 그는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지금 이 여자를 도우고 봉사하는 것은 답답하고 불만가운데 생활하는 마음을 해결 받는 길입니다. 겸손이 없는 가운데 봉사하는 경우는 어떻하겠습니까 내가 보니까 당신은 전남편이 5명이나 있네요 남편이 당신의 우울증을 해결하지 못해요 당신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결코 이우울증에서 헤어 날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칫 그는 더큰 우울증에 빠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겸손히 사마리아 여인의 문제를 겸손히 섬김으로 해졀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바라봅시다 당신의남편을 불러오라 예수님은 이 여자가 과거에 다섯명의 남자와 결혼했다가 헤어 졌으며 지금도 그는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예수님은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여자의 가장 큰 아품은 과거에 5명의 남자들과 헤어져 산다는 것이 가장 큰 부끄럽고 속 상하는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과학이나 세상에서의 문제 해결이라는 것은 그원인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해결책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겸손히 해결할 것인가 아니면 거만히 그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문제의 척결에만 신경을 쓰지 그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겸손히 해결해야한다는 명제에 대하여는 무관심 한 것입니다.
지금 사회 부조리가 만연하고있습니다. 이문제에 대하여 척결해야한다는 데 대해서는 누구나 동의할 것입니다.한때 정권이 바뀔때마다 3공비리 4공비리 5공비리 6공비리 이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왔습니까 정죄하고 비리척결에만 간심을 가져왔기 때문에 군사혁명을 일으켰을때에도 여러 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정지하는 차원이였습니다. 삼청교육대 청문회가 우리 역사가 사회문제를 들처어내는 기관은 될수있지만 그것이 부정부패를 치료하는 그런 조직은 될수가 없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어디가 아프다하는 그원인은 밝혔는데 그 치유책은 찾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 요12:47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니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 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다 이 여자의 문제를 지적하는 일은 쉽습니다. 그러나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봉사할때에도 우리의죄만 지적하기는 쉽습니다, 예수님의목적은 죄를 찾는 선지자의 일만아니라 그 죄를 깨닫고 해결해 주는데있습니다.예수님은 선지자 왕 제사장의 세가지일을 다감당하시는 메시야라는 말은 그분은 우리의 죄를 알게 하실 뿐아니라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는 제사장이 되실 뿐아니라 우리를 영원토록 앙에나라에서 우리를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이여자의 잘못을 지적하는 일은 기다릴 필요도 없습니다. 바로 정곡을 찔러 버리면 간단합니다. 그러나 겸손히 섬기는 예수님은 이것을 알고 행하신 것입니다.
바로 이 여자를 이해하고 그 여자의입장에서 이 여자가 안고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이 여자의 숨기고 싶은 문제에 대하여 여자가 스스로 이야기 할때 기다렸습니다. 과거에 남자 5명이 있었다는 것은 여자에게는 치명적인 상처일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 일에 대하여 예수님이 발설하시지 아니했습니다. 다만 네 남편을 불러 오라고만 했습니다. 남편이 다섯이 다섯이있었다는 말은 사마리아 여자가 스스로 틀어 내놓도록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봉사는 겸손한 봉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의 속을 모를리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낮을 불힐일은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하기위해서는 그 문제를 주님앞에 내어 놓아야만 합니다. 겸손한 봉사를 알고 이해하고 행하면 이미 복을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겸손한 봉사는 먼저 하나님 앞에 자신의 교만과 거만의환도뼈가 부러져야합니다. 천국에는 하나같이 교만의 환도뼈가 어긋난사람들로 가득할 것입니다. 서로 겸손히 봉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처사입니다. 우리교회가 봉사를 가르치고싶습니까목사님과 장로님들이 겸손의 본을 보여야 그 교회가 겸손히 봉사하는 교회로 소문 날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겸손히 섬기는 가정으로 만들고 싶습니까 부모님들이 부모님들에게 겸손히 섬기는 본을 보이여야 합니다 봉사하되 겸손히 봉사하는 의미는 내가 섬기고자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상대방의 문제를 편하게 해결해주는 것이 겸손히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늘로 부터오는 복을 받기를 원합니다.이 복이 먼데 있는 것이아닙니다 지금 우리에게 알려 주신 말씀의 뜻을 알고 행하면 복을 받으리라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서로서로 겸손히 봉사하므로 복을 받는 믿음의 식구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1.겸손히 서로 섬기는 것은 옳으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4절말씀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1)성도들에게 반드시 겸손히주님께 메달려야 할 의무가있다는 뜻입니다. 옳으니라는 말의 어원이 어디서 나왔느냐 하면 빚을 진다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빚진다는 말은 꼭 갚아야하는 강제성이 있는 것입니다. 반드시 해야할 의무인 것입니다. 겸손히 주께 섬기지 못하면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으려면 반드시 겸손히 자신을 낮추며 서로 봉사해야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으로 부터 복 받은 사람 가운데 야곱을 꼽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으로 복 받은때가 어제라고 여겨 집니까 아무래도 얍복강나루터에서 홀로 고독한 중에 하나님께 기도하다가 그가 야곱이라는 이름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받을때가 아닌가 생각됩니다.야곱은 얍복강에서 형에서가 400명을 이끌고 야곱을 기다리고 있다는 정보를 듣고 지금 야곱은 답답하고 심히 두려워 하고 있습니다. 그 밤에 두아내와 두 여종과 11아들을 먼저 강건너 보내고 혼자 남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을 합니다. 그러나 야곱은 안질려고 사생결단 이 능력의 사람을 놓아 주지를 않습니다. 창세기 32:25절에 이처절한 씨름의 중계를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름 할때에 위골이 되었더라 이 씨름으로 야곱의 환도뼈가 어긋났다는 말입니다. 이 씨름은 하나님께서 야곱을 거룩하게 만드시려고 걸어온 씨름입니다. 여러분도 성도가 축복받는 자리에 나아가기를 원합니까 반드시 이 씨름이 있습니다. 야곱이 하나님과 겨루워 이길려고 하는 교만의 엉치뼈가 부러 지는 순간입니다. 야곱은 형의 에서의 문제를 자기의 세력으로 자기의 뇌물로 자기의 재산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야곱이 가진 것이 없어서 형에서가 두려운 것이아닙니다. 오히려 교만의 엉치뼈를 내려 칠때에 야곱의 교만의 뼈가 내려앉은 것입니다. 씨름하는 선수나 레스링하는 선수나 권투선수가 기진 맥진할때에 취하는 자세는 규칙이나 룰이나 챔피온의 체면 불구하고 상대방 선수를 엉겨안고 매달릴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야곱이 얍복강에서 하나님과 시름 할때의 자세입니다. 겸손히 하나님앞에 메달리는 자세를 취하지 아니하고는 하나님의 부드러운 은혜를 체험하는 복을 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위기에서 하나님의 복을 받는 길은 염체 불구하고 겸손히 하나님 앞에 그로키 상태가 될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한번 손대시면 위골이 되는 교만의 엉치뼈를 낮추고 주님께 메달리시기를 바랍니다.
2)서로 겸손히 발을 씻기는 것이 옳다는 말은복받은사람은 서로서로 겸손히 섬 기는 것을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는 말씀입니다. 겸손히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이렇게 말합니다 뛰어난 사람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나를 위해 봉사하고있가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서로 서로 겸손히 봉사하는 사람이 복을 받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다른 사람을 봉사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예수믿고 복 받으십시요 할때 그 복은 경제적인 복지의 건설이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중요한 것 하나깨달을 때가 왔습니다. 경제적인 부라는 것은 한도없고 끝도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것입니다. 60년대 잘살아보자는 목표는 하루세끼 걸르지 않고 먹는 것이였습니다.70년대 잘살아보자는 초가 지붕매년마다 이지않아도 되는 지붕개량한 집에서 사는 것이였습니다. 80년대 잘살아보자의 꿈은 자가용타고 친정가는 것이였습니다. 90년대 초반에 우리는 이런 잘살아보자는 꿈을 이루웠으면 나는 행복합니다. 하는 사람이 거리마다 가득할 테데 우리는 더욱 답답하고 불만 불평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60년대 부터 우리는 줄기차게 서로 봉사하며 살아와습니다. 그러나 이제 서로 봉사를 받기만 바라고 있습니다.누구나 봉사하는 노동자가 되기를 꺼려 하고 있습니다.교인들의 섬기고 봉사하는 것을 싫어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복은 물질 그것이 복이 아닙니다. 그 물질이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되고 손으로 정당하게 노동해서 재물을 모으는 노동자에게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전도서 5:12 노동자는 먹는 것이 많든지 적든지 잠을 달게 자거니와 부자는 배부름으로 자지 못하니라 좋은 침대를 사면 좋은 아파트를 사면 행복이 저절로 오는 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행복하지 못합니다.돈으로 살수없는 단잠을 주님께서 주시지 아니하면 어찌 행복할수있겠습니까 겸손히 남을 섬기는 것이 지극히 내것으로 알고 일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3)겸손히 서로를 섬기는 것은 본을 보이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교육하는데는 여러방법이있습니다. 설명을 통해서 지식을 전달하는 방법이 있고 다른 하나는 본을 보여서 삶의 내용을 전달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런데 겸손히 봉사하는 삶의 양식은 설명이나 논리로 정보가 전달되는 것이아니라 본을 보이므로 행복한 생활이 전달 된다는 것입니다. 15절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너희도 행하게 하려 본을 보였노라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은 충분한데 그 말씀대로 사는 생활은 빈약하다고들 합니다.
1과다한 하나님 말씀
2설교자의 괴리 나는 왜하나님으로 부터 쓰임을 받지 못할까 이런 본을 보이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용하기를 원치아니하신다는 것입니다 . 지금 150년전 미국의 복음 전도자로 널리 알려진 무디 그는 무식했습니다.가난한 구두수선공이였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무디를 하나님이 쓰는 사람으로 만드셨습니다. R. A토레이는 그를 지켜보면서 하나님께서 무디를 쓰시는 이유 7가지를 밝히면서
1그는 절대순종의 본을 보인 사람이였기대문이였다는 것입니다.
2기도의 본을 보인 사람이였다는 것입니다.
3성경연구의본을 보였습니다.
4겸손의 본을 보인 사람이였습니다. 5물질에 대하여 청지기의 본을 보였습니다. 6뜨거운 열정의 본을 보인 사람이였다는 것입니다. 7능력 충만의 본을 보였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은 예수에 대하여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모습을 작아도 보여 주는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2.예수님의 겸손한 봉사를 알고 행하면 복을 받습니다. 예수님의 겸손한 봉사 어디에 어떻게 나타나고 있씁니까 예수님은 가륫유다가 자기를 팔것을 알았습니다. 성경에 응하려고 그는 가륫 유다의 발도 씻어 주셨습니다. 다만 같이 떡을 먹는자가 배신한다는 성경의 선지자의 글이 응답되는 이룰려고 했던 것입니다. 18절 말씀에 내가 너희를 다 가르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택한자가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성경의 뜻을 이루는 봉사를 한 것입니다. 성경이 결국을 만든다는 것을 그는 확신하였기에 기다릴수도 있었고 또 참을 수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하시는 일은 예수님의 겸손한 봉사는 성경대로 되어 진다는 것을 믿었기에 겸손할수 있었습니다 모든 봉사를 겸손히 행할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모든것이 성경대로 될줄 알고 겸손히 행하는 사람은 성경대로 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4)상대방에게 편하게 그 문제를 해결해 줌으로 섬기기 때문에 복을 받습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고 하는 성에 들어가셨습니다. 야곱의 우물에서 그는 물을 길러온 여인을 만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이 지금 다섯 남편과 헤어지고 지금 여섯번째의 남자와 살고있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만족이 없습니다. 진정으로 만족을 누리지 못하고있다는 것은 주님은 다 꿰뚫어 보고 계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지금 당신의 문제는 현실 속에서 만족을 누리려고 하기 때문에 만족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고 진단 할수 있겠지만 예수님은 그 문제를 스스로 찾아서 나타내기를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마리아 여자에게 네가 남편이 다섯이 있지만 그는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지금 이 여자를 도우고 봉사하는 것은 답답하고 불만가운데 생활하는 마음을 해결 받는 길입니다. 겸손이 없는 가운데 봉사하는 경우는 어떻하겠습니까 내가 보니까 당신은 전남편이 5명이나 있네요 남편이 당신의 우울증을 해결하지 못해요 당신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결코 이우울증에서 헤어 날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칫 그는 더큰 우울증에 빠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겸손히 사마리아 여인의 문제를 겸손히 섬김으로 해졀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바라봅시다 당신의남편을 불러오라 예수님은 이 여자가 과거에 다섯명의 남자와 결혼했다가 헤어 졌으며 지금도 그는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예수님은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여자의 가장 큰 아품은 과거에 5명의 남자들과 헤어져 산다는 것이 가장 큰 부끄럽고 속 상하는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과학이나 세상에서의 문제 해결이라는 것은 그원인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해결책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겸손히 해결할 것인가 아니면 거만히 그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문제의 척결에만 신경을 쓰지 그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겸손히 해결해야한다는 명제에 대하여는 무관심 한 것입니다.
지금 사회 부조리가 만연하고있습니다. 이문제에 대하여 척결해야한다는 데 대해서는 누구나 동의할 것입니다.한때 정권이 바뀔때마다 3공비리 4공비리 5공비리 6공비리 이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왔습니까 정죄하고 비리척결에만 간심을 가져왔기 때문에 군사혁명을 일으켰을때에도 여러 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정지하는 차원이였습니다. 삼청교육대 청문회가 우리 역사가 사회문제를 들처어내는 기관은 될수있지만 그것이 부정부패를 치료하는 그런 조직은 될수가 없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어디가 아프다하는 그원인은 밝혔는데 그 치유책은 찾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 요12:47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니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 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다 이 여자의 문제를 지적하는 일은 쉽습니다. 그러나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봉사할때에도 우리의죄만 지적하기는 쉽습니다, 예수님의목적은 죄를 찾는 선지자의 일만아니라 그 죄를 깨닫고 해결해 주는데있습니다.예수님은 선지자 왕 제사장의 세가지일을 다감당하시는 메시야라는 말은 그분은 우리의 죄를 알게 하실 뿐아니라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는 제사장이 되실 뿐아니라 우리를 영원토록 앙에나라에서 우리를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이여자의 잘못을 지적하는 일은 기다릴 필요도 없습니다. 바로 정곡을 찔러 버리면 간단합니다. 그러나 겸손히 섬기는 예수님은 이것을 알고 행하신 것입니다.
바로 이 여자를 이해하고 그 여자의입장에서 이 여자가 안고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이 여자의 숨기고 싶은 문제에 대하여 여자가 스스로 이야기 할때 기다렸습니다. 과거에 남자 5명이 있었다는 것은 여자에게는 치명적인 상처일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 일에 대하여 예수님이 발설하시지 아니했습니다. 다만 네 남편을 불러 오라고만 했습니다. 남편이 다섯이 다섯이있었다는 말은 사마리아 여자가 스스로 틀어 내놓도록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봉사는 겸손한 봉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의 속을 모를리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낮을 불힐일은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하기위해서는 그 문제를 주님앞에 내어 놓아야만 합니다. 겸손한 봉사를 알고 이해하고 행하면 이미 복을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겸손한 봉사는 먼저 하나님 앞에 자신의 교만과 거만의환도뼈가 부러져야합니다. 천국에는 하나같이 교만의 환도뼈가 어긋난사람들로 가득할 것입니다. 서로 겸손히 봉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처사입니다. 우리교회가 봉사를 가르치고싶습니까목사님과 장로님들이 겸손의 본을 보여야 그 교회가 겸손히 봉사하는 교회로 소문 날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겸손히 섬기는 가정으로 만들고 싶습니까 부모님들이 부모님들에게 겸손히 섬기는 본을 보이여야 합니다 봉사하되 겸손히 봉사하는 의미는 내가 섬기고자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상대방의 문제를 편하게 해결해주는 것이 겸손히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늘로 부터오는 복을 받기를 원합니다.이 복이 먼데 있는 것이아닙니다 지금 우리에게 알려 주신 말씀의 뜻을 알고 행하면 복을 받으리라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서로서로 겸손히 봉사하므로 복을 받는 믿음의 식구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