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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의 모습 (요13:12-20)

본문

본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사건입니다. 그리고서는 문제의 심각성 과 내용의 중요함을 권면하시는 말씀입니다. 14절에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이렇게 발을 서로 씻길 것을 요구하면서도 20절에서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 에게 이르노니 나의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하는 결론으로까지 이 사건을 확대해 가 고 있습니다. 우리는 쉽게 남의 발을 씻긴다고 얘기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발을 씻긴다는 것이 여기 있는 본문에 의하면 생각보다 그 내용이 깊고 크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 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쉽게 전도를 한다든가, 봉사를 한다든가, 구제를 한다든 가 이렇게 이야기 할 만한 구절이 아닙니다. 이것은 보다 더 깊은 내용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러한 부분들을 추적해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본론' 오늘 본문의 발을 씻어주는 사건은 서로의 잘못을 씻어주며, 서로의 불의한 것과 성실치 못한 것을 서로가 서로에게 충고하고 권면하는 정도가 아닌 것입니다. 말하 자면 그렇게 하는 자로서의 나의 확인이 요구되고 있다는 것이 핵심인 것입니다. 말하자면 나를 영접하는 자가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는 그 자리에 자신이 과연 서 있느냐하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쉽게말해 무작정 누가 나를 영접하는 것으로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다고 고함을 지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 입니다. 문제는 누가 나를 영접하느냐를 따지기 전에 먼저 자신이 나를 보내신 이 를 제대로 영접하고 있느냐를 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신자된 나를 영접하는 것으로 예수님을 영접한 것이라고 말하려 한 다면, 나는 과연 그러면 나로 하여금 신자되게 하신 그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로 영 접하고 있는가에서 확정되어져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내가 과연 예수 그리스도 를 제대로 영접하고 올바른 관계를 맺고 있느냐가 나의 신자됨의 관건이 달린 싸 움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본문의 사건의 요구가 무엇에 연결되는가를 보십시오. 발을 씻기는 사건과 연결되어 나옵니다. 따라서 이것은 내가 남의 발을 씻는 구제나 봉사나 헌신 을 통해 과연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보내신 자로서 보여지고 있느냐로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고후2:14-16절에 이에 좋은 설명이 나타나 있습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 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 얻은 자들에게나 망 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 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 을 감당하리요" 사도 바울이 자기의 사도직과, 또 이 일을 수행하는 면에 있어서 상대방이 자기를 알아보는 것을 어떤 형태를 들어 설명하지 않고 추상적인 냄새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사도직을 수행하는 것을 어떤 형태를 지닌 모양으로가 아 니라 냄새로써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라는 말을 씁니다. 따라서 그 신자를 만나면 그에게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전달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사실은 향기란 꼭 어떤 형태를 가져야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지금 남의 발을 씻긴다는 일이 어디까지 확대되기를 요구하 시냐 하면 사람들이 우리를 보았을 때에 그들 각자의 발이 더러운 것이 찔려야 된 다는 이야기입니다. 다시말해 그리스도께 보냄 받은 나를 어떻게 상대방이 영접 해야 된다는 것입니까 그것은 상대방이 나를 보았을 때에 자신의 더러운 발, 즉 더러운 그 심령이 죄인으로서 찔려짐으로 받아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대개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손에는 찌르는 가시와 쓰린 고추가루 를 들고서 상대방을 강짜로 덮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몰상식하고도 인위적인 열성으로 부지런을 떨어 보지만 손해만 끼치는 자가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말씀입니다. 즉, 본인은 좋아서 상대방을 붙잡고 기도하지만 당하는 쪽에서는 이 사람이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것인지 악취를 풍기는 것인지 분간이 안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만날 때 참으로 큰 문제 중의 하나가 냄새나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괜챦은데 입에서 냄새가 나면 서로 답답합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외면을 하고서 얘기를 들으면 상대방은 '이 사람이 왜 내 눈을 똑바로 보지 않나'하고서 생각합니다. 하지만 듣는 쪽에서는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닌데도 말 못하니 답답하 고 괴로운 지경인 것입니다. 이것은 현실적인 문제입니다만 이와 유사한 문제가 신 자들에게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상대방이 나를 영접하는 이유가 그리스도의 향기와 냄새가 나는 것으로써 받아들 여야 하는데, 우리는 우리가 총칼을 들고 나가 싸워서 포획해야 할 사냥감을 낙아 채듯 하는 식으로 밖에는 그리스도를 향한 열심을 표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 다보니 우리가 솟은 열심과 정열에 비해서 너무 손해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일은 많이 했는데 결국 자신에게는 이익이 되지 못하는 일이 많았음 을 여기 저기에서 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 누가 여러분에게 예수를 믿게 해서 예수를 믿었지만 별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다시말 해 그 사람 때문에 예수를 믿은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 그 사람과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은 없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향기가 아니라, 좋지 않 냄새를 풍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 그리스도의 향기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인품적이고 성품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만나고 보면 그 사람 뒤에 서 있는 예수 그리스도가 생각나야 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고전10:31-33절에 이런 대표적인 구절이 있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같이 모 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 또한, 고전11:1절에;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이 말씀들이 모두 무슨 말씀입니까 남의 유익을 구하라,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말라, 먹든지 마시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군사요 그리스도의 일군으로 부름받고 있습니다. 내가 내 생애를 통하여 나를 보는 자들에게 '아! 이 사람은 지금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보냄을 받았구나!'하는 것이 풍겨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나의 인품과 자세와 원리와 모양에서 나의 신분이 나타나는 자로서 자기를 갈고 닦는 일 에 앞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게 주어진 인생의 길을 그 누구도 대신해 주어서는 안되며 오로지 하나님께 붙잡힌 자로서 남아 있는 길을 남김없이 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 하면 무엇이 먼저 생각 나십니까 그 엄청난 고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늘 넘치는 기쁨과 만족 속에 그 길을 묵묵히 걸어 갔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기뻐 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감옥 에서 이렇게 편지를 썼습니다. 매도 수없이 맞고 태장으로 맞고 곤장으로 맞고 또 파선하고 주리고 굶고 춥고 헐벗고 애쓰고 고생하는 이야기의 연속이었습니다. 그 것이 그가 가는 길의 어려운 과정이었지만 그 자신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기쁜 일이 요, 하고 싶은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 그러면 뒤로 그리스도가 연결되 면서, 그의 인생과 개인과 이름이 그리스도의 향기로 결정되어 버린 것입니다. 바로 그와같은 것을 발을 씻는 자의 삶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분명히 자기 일을 위하여 살지 않고 주님의 신하며, 주님의 일군이며, 주의 일을 맡은 자인 것 입니다.
그러므로 신자의 생애란 예수님의 고백처럼 되어져야 합니다. 즉 '나는 아버지께서 원하는 일을 한다.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한다. 나를 보내신 이 의 일을 이루는 것이 내 양식이요 내 기쁨이다.' 이렇게 되어야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구태여 설교나, 전도나, 기도라고 하는 종교적인 형태로 나타 나지 않더라도 일상의 생활 속에서 꾸준한 향기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내게 주어진 일터와 가정, 여러분의 자식들, 이웃들, 친척, 직장, 동료들 앞에서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의 크신 이름으로 존재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에게 생명이 있고, 진리가 있고, 사람들이 그를 보면 영적인 문제에 도전을 받고 갈급함을 느끼게 되는 대상으로 존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숙제거리입니다. 아무리 종교적인 외모와 얘기를 많이 한다고 하더라도 생활 속에 향기와 내용이 없을 때는 공허한 것을 쌓는 일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 좋은 예로서 고전5:1절 보시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이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이라" 겉으로는 종교적인 겉 모습을 갖추고 있고 종교적인 얘기도 많이 하고 있건만, 그 내용을 보니 불신자들에게서도 잘 찾아볼 수 없는 악하고 더러운 것이 있었다면 누 가 거기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맡을 수 있겠습니까 위선과 거짓과 더러움에 경악하 고 얼굴를 찌푸리고 떠나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용이 없는 형식은 공허할 뿐입니다. 5절에서; "이런 자를 사탄에게내어 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향기를 품은 자가 되기 위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그 구체적인 실천 사항으로 들어가면 맨 먼저 금기 사항부터 나옵니다. 하지 말아 야 될 것이 나옵니다. 즉, 악한 것과 더러운 것을 멀리해야 합니다. 악한 것과 더 러운 것에 잡혀서는 그리스도의 능력있는 군사 노릇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나를 볼 때에 빛을 보거나 소금의 맛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악한 것과 더러운 일을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면 상대방이 여러분을 볼 때에 자기네들을 방불하는 해적이며, 산적이며, 도적을 볼 뿐입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사람의 모습은 전혀 찾아 볼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 이 되고자 할 때에 맨 처음으로 선을 그어야 하는 것이 있다면 악한 것과 더러운것 에 손을 대지 않도록 스스로 선을 긋는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또한, 이 일에 있어서 중요한 또한가지는 이렇게 악한 것과 더러 운 것을 멀리하는 목적이 상대방들을 옳고 그름을 따지기 위한 심판관으로 서기 위 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상대방을 씻어주기 위한 목적으로 악한 것과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발을 씻기는 작업에는 여러가지 실제적인 일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그 중 의 하나가 기다림입니다.
고전6:1절에 이 일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로 더불어 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송사 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이어서 고전6:7-8절을 보십시다; "너희가 피차 송사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완연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저는 너의 형제로다" 왜 이같이 불의한 일과 안타까운 일들이 벌어지는 것입니까 기다려 주지 못하고 발을 씻어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서로 형제 된 자로서 서로가 발을 씻어 주어야 할 대상이며, 또한 하나님 사랑의 대상이라는 것을 기억할 때에 비로소 상대방의 발이 다 씻기기 까지 인내와 겸손으로 기다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요한복음 13장의 본문이 바로 이것을 시사하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일이 어렵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들의 주와 선생으로서 이 일을 행했으니 너희도 서로 이 일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무슨 뜻 입니까 '즉 이 일을 하다가 어려움을 발견하고 하기 싫어질 것이다. 자존심이 상 할 것이다. 그때 이 생각을 해라. 우리 주께서도 나에게 이 일을 했는데 왜 우리 가 같은 입장에서 못하겠느냐' 하라는 뜻인 것입니다. 주의 일을 하는 데 내가 이 일을 했으니 나는 옳다. 나는 이 일을 했으니 나는 잘 났다 하는 대접을 받으면서 하기보다는 오히려 괄시받고 남의 이익을 구하는 데도 오히려 천대받는 일이 더 많을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거기서 바로 우리의 목숨까 지도 내어 버린 자로, 우리의 모든 자존심을 버린 자로, 겸손한 자로, 목숨을 바쳐 상대방의 이익을 구하는 자로 서야 이 원리를 깨닫게 됩니다. 주께서 그 영광을 버리시고 육신으로 오사 친히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바로 이러 한 시점에서 이루어진 사건이라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이 요구하는 신자들의 모습입니다. 누가 나를 보든지 그의 영혼이 어떤 찔림을 보며, 나를 보면 그의 더러움이 기억나게 하는 자로 있어야 됩니다. 고전2:14절 이하의 말씀식 으로 얘기하자면 자기의 찔림이 속상해서 우리에게 돌을 던지는 자가 있을 것입니다. 저들에게는 멸망의 빙거요, 사망의 냄새일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의 시체 된 것을 확인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게는 빛을 발견하는 자가 될 것이요, 생명수를 마실 수 있는 기회를 주게 될 것입니다. 우리를 보고 여기에 진리가 있구나 여기에 나의 구원의 길이 있구나를 발견하는 복된 기회를 가지게 되는 사람들도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와같은 일들을 우리 신자들 모두가 해야할 일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므로서 가능한 일인 것입니다. 냄새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담을 넘어가서 나는 법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에게 불행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냄새나지 않는 조화와 같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떠드는 선교 사업도, 구제사업도, 교육 사업도, 성전을 크게 하고 치장하는 일도, 모여 기도하는 일도, 그렇게 울며 불며 회개한 간증거리도 많은데 향기가 없는 교회가 되어 버렸습니다. 프랜카드를 내 걸 고, 신문에 광고도 나오고, 여의도 광장에 모이기도 하며, 예수 믿는 사람들이 그 렇게 많은데 그리스도의 향기는 없는 때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결코 신문에 날 만한 싸움이 아니며, 교회에서 광고될 만한 사건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각자가 나에게 맡기어진 무대, 즉 내 가정, 내 직장에서 참으로 중요한 생명의 출 입구가 되고, 생명의 샘이 흐르는 소리를 내어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꽃이 만발 하되 그 향기가 생각지 않는 곳을 넘어 들어가 모두의 심장에까지 파고드는 자로서 존재하는 막중한 책임을 가진 그리스도의 특권을 부여받은 군사인 것입니다. '바울' 그러면 생각나는 것같이, '다니엘' 그러면 우리가 그 신앙의 힘에 도전 받는 것같이 이제 우리는 각자 자신을 누가 생각할 때마다, 바로 예수믿는 것에 대한 감격과 감사, 다함이 없는 관용, 인내, 성실, 힘과 생명이 같이하는 자로서 그 향 기를 알 수 있는 영광스러운 신자의 인격이 되도록 자신을 갈고 닦으셔야 합니다.
'결론' 여러분이 이제는 스스로 이렇게 연습하고 훈련하셔야 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퍼져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책임이며 동시에 자 랑입니다. 여러분 피아노를 치고 바이올린을 켜는 것이 얼마나 고달픈 일인지 아십니까 피 아노를 열심히 쳐서 지문이 나오지 않는 사람이 있고, 너무 바이올린을 열심히 켜 서 목이 돌아간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에게 약점입니까 아닙니다. 음 악을 하는 사람 중에 그것을 노동으로 여기고 하는 사람을 보셨습니까 아닙니다. 설교를 하는 사람이 그것을 노동으로 하는 사람을 보셨습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그것은 축복이요, 자랑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의 모든 일이 바로 이와같은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일에 게으른 것은 우리의 축복을 깍아먹는 것이요, 우리가 나태한 것은 우리가 우리의 영광을 스스로 먹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우리의 일 그 자체가 영광이요 자랑인 그러한 자리에 초대받은 줄을 아셔야 합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이익이요 축복입니다. 이 이익과 축복을 위하여 자신의 말씀 앞에 날마다 항복시키며 상대방의 발을 씻기며 그리스도의 향기와 냄새를 풍기는 복된 생애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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