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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발을 씻기라 (요13:1-17)

본문

오늘 읽은 본문말씀은 주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향해 가시기 바로 전날 즉 목요일 저녁 사랑하는 제자들과 함께 다락방에 서 마지막 만찬을 마친 뒤 차례로 제자들의 발을 기신 사건을 기록 한 말씀입니다. 참고로 주님께서 수난 당하신 수난 주간에 있었던 일들을 애기해 토요일(니산월 9일):어느 죄 많은 여인으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으시 일요일: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마 2I:1-1, 요 12:12) 월요일: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시고(마 2l ' 18-20), 성전에서 제 2차 숙청하시고(막Il:15-18) 화요일:여러 가지 비유를 말하시고 반대자들과 논쟁하시고(마 21 ' 20-25:46, 막 11:20-12:37, 눅 20:1-2l .38) 수요일 ' 베다니에서 정양하시고 목요일:최후의 만찬(막 14 .I2-21). 제자들의 발을 기시고(요 13:l-I7), 베드로의 부인을 예언(마 26:=-S5, 요 13 . S6-S8), 다 락방의 강화(요I4 'I-I6 ' 3S), 대제사장의 기도(요I7:), 세마 네 동산의 기도(마 26 . S6-4
6). 잡히시고:(마 26 .47. 56, 요I8:1-11) 금요일:공회에서 심문(막 14:5S-65, 요 18:12-27), 베드로의 부인막I4:66-72, 요 18:15-18), 빌라도의 심문(막 15:1-15), 십자가의 심문(막 15:I-lS), 십자가에 달리심(마 27:33-56 요 19:17-S0), 장사지냄(마 27:57-6l, 요 19:-42). 토요일 .무덤에 계심(마 27:62-6
6). 일요일 . 부하심(마:요 20:). 주께서 원수들에게 잡히시던 날 밤에 사랑하는 제자들과 함께 마지 막 만찬을 잡수시고 그 자리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신 사건은 주 님의 사랑과 정신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신 사건이라고 볼 수 있읍니다. 우리는 오늘 주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사건 속에 들어 있는 진리와 교훈을 발견해 내야겠습니다.
1. 이미 목욕한 자라도 발은 날마다, 그 때마다 씻어야 합니다. 본문에 이미 목욕한 자'란 말씀의 뜻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중생한 사실을 의미하고 '발을는다'는 말씀의 뜻은 비록 증생한 자 일 지라도 날마다 생 속에서 더러워진 것을 주님께 고백하고 씻음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유대인들의 관습은 잔치집에 가기 전에는 목 욕을 하고 갔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초대한 집에 가서는 다시 목욕을 할 필요가 없고 발만 으면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의식이었고 위생상의 예의였습니다. 더운 지방인 데다 먼지가 많음으로 발을 씻는 것은 흔한 예의였던 것입니다. 주께서 발을 씻겨 주시는 일에 대하여 베드로는 황송한 맘을 금할 수 없어서 '주께서 제 발을 씻기십니까 절대로 제발을 길 수 없나 이다'라고 했을 때 주님은 '내가 너를 기지 않으면 네가 나와 상관 이 없느니라'고 하셨고 이에 당황한 베드로는 u
그렇다면 내 발 뿐만이 아니고 손과 머리도 씻겨달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거기에 대하여 주님은 이미 목욕한 자는 발만 으면 된다H고 대답 하셨습니다. 우린 우리의 발을 날마다 씻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고치지 못한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버리지 못한 것도 많 고 해결하지 못한 것들도 너무도 많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눈과 손과 발로 짓는 죄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매일 아침 거울보고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듯이 우린 날마다 말씀 앞에 서서 나의 죄로 얼룩지고 멍들고 깨진 모습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했고 u날마다 나를 쳐서 복종시킨다'고 했습니다. 나는 어제도 부족하고 오늘도 부족하고 내일도 부족합니다. 그래서 나는 어제도 죄인이고 오늘도 죄인이고 내일도 죄인입니다. 그래서 나에겐 어제도 주님이 필요하고 오늘도 필요하고 내일도 필 요합니다. 바울사도가 말하신 '날마다 내가 죽노라n는 말의 뜻은 내가 날 마다 죽어야 날마다 살 수 있다는 역설적 진리를 가진 말입니다.
2. 남의 발을 씻기라. '발을 씻기라'는 말의 뜻 속에는 날마다 자신의 허물과 죄를 주님의 십자가와 그 샘에 나와 씻는다는 뜻이 있고 겸손과 희생의 정신을 가 지고 다른 사람의 발을 씻겨준다는 뜻이 있습니다. 이 세상엔 발을 씻는 사람들 가운데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봅니다.
1 한 대야의 물을 가지고 자신의 발을 스스로 씻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향하여서 나의 발을 씻기라고 명령하고 남이 내 발을 씻 겨 주기를 바라고 기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은 섬김을 받고자하는 사람들이고 지배하려는 사람들이고 높아 지려는 사람들입니다.
2 한 대야의 물을 가지고 남의 발을 씻겨주기에 온갖 정성을 다 쏟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이야말로 희생의 사람들이요, 봉사의 사람들이요, 사랑의 사람들입니다.
3자신의 발도 지 않고 남의 발을 씻기지 않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오만한 사람들이요 불신다의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지식과 그릇된 가치관으로 성곽을 쌓고 그 안에 들어 앉아서 하나님 도 이웃도 자신의 눈 아래 깔아 버리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안병무'박 사는 '어떤 의미에선 기독교도에게 성서를 말하는 것은 제일 어렵다. 까닭은 저들의 단편적 지식이 도그마화해서 이해의 문턱에서 파숫꾼 노릇을 하기 때문이라'고. 주님은 허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손수 떠다가 제자들의 발을 기셨습니다. 거기엔 조수나 조교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시증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주님과 제자들의 관계는 어떤 관계 일까요 주께서 저들의 발을 겨야 할 이유라도 있었을까요 선생과 제자 ! 주와 종 ! 하나님과 인간 ! 이 세상의 법칙대로라면 제자가 선생의 발을 겨야 하고 종이 주 인의 발을 씻겨야 하고 낮은 자가 높은 자의 발을 씻겨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손수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 은 주님의 행동 속에서 나보다 못한 자와 낮은 자차 나보다 가 난한 자와 나보다 무식한 자와 나보다 약한 자와 나보다 힘없는 자들 의 발을 씻겨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이 자기의 발만을 씻고 있는 행동은 이기적인 행동입니다. 나보다 높은자. 강한자. 가진자의 발만을 씻기는 것은 굴종이요, 아 첨입니다. 그러나 나보다 낮은자 약한자 천한자들의 밭을 씻는 것은 사랑이 요, 봉사요, 미 덕입니다. 주님은 본문 13절에서 '너희가 나를 선생이 라 주라 하니 저희 말이 옳다. 내가 선생이 되고 주가 되어 너희의 발 을 겼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앗시시의 성 프랜시스는 본래 부자였다고 합니다. 그는 젊었을 때 부요했기 때문에 무엇이든 최고급이 아니면 만족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그야말로 귀공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의 마음이 평안하고 즐거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에겐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 적인 고민, 종교적인 고뇌가 있었습니다. 어느날 그는 흘로 말을 달리며 교외로 나갔습니다. 그가 달려가는 길가에서 한 문등이를 만났습니다. 문등이의 모습은 처참한 몰골이었 습니다. 몸서리 쳐지는 모습의 문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문등이를 보는 순간 프랜시스의 마음은 이상한 층동으로 울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말에서 내려 거의 본능적으로 두팔을 벌려 그 문등이를 껴안았습니다. 그가 문둥이를 힘껏 껴 안는 순간 아 ! 그 문 둥이는 예수의 모습으로 변했던 것입니다. 만일 내가 저 문등이를 껴 안을 때 그가 예수로 변하는 것이 확실 하다면 문등이를 껴안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만일 내가 저 가난하고 저 병약하고 저 초라한 저 사람의 발을 씻 길 때 그가 주님으로 변하는 것이 분명하다면 모든 사람이 남의 발을 씻기기에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지극히 적은 소자에게 행한 것이 곧 나에게 행한 것이니라 "지극 히 적은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을 대접하는 것이 곧 나를 대접하는 것 이라'고.
3., 서로 씻기라. 우리 시대의 고민이 가 서로 발을 내밀고 씻기라고 강요하는 사람만 있지 허리에 수건을 두르고 대야에 물을 떠다가 발을 씻기려는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본문 14절에서 '너희도 서로 발을 기는 것이 옳으 니라'고 말씀하셨다. 사랑의 교사, 사랑의 교육가로 유명했던 페스탈로찌 선생은 길거리 를 돌아 다니며 깨진 유리병 조각 따위를 줍곤 했다고 합니다. 누군가 가 그 이유를 물었을 때. '이 거리에 사랑하는 아이들이 뛰어놀다가 깨진 유리 조각에 발이 라도 다치게 되면 그 책임은 누가 져야겠느냐 '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페스탈롯찌 선생이 실천적 교사로서 깨진 유리병을 넝마주 이처럼 줍고 다녔다는 사실도 증요하지만 한가지 더 생각해야 할 것은 만일 그 어떤 사람들이 길거리에 유리병을 버리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점입니다. 서로 책임지는 도덕을 공증도덕이라고 합니다. 서로 함께 사는 삶 을 공존이라고 합니다. 남이야 어떻게 되건말건 남이야 죽건말건 나만 잘 되고 나만 잘 살 면 된다고 하는 정신이나 생은 공중도덕도 아니고 공존의 정신은 더욱 못 됩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에 남자와 여자를 부부로 짝지어 살게 하시면서 서로 사랑하고 서로 책임지고 서로 도와가며 살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런데 뱀의 꾀임에 빠져 범죄하게 된 저들 부부 아담과 하와에게 맨 먼저 찾아온 비극은 서로 져야할 책임을 남에게 뒤집어 씌우려는 개인주의였습니다. 아담은 하와를 손가락질하면서 '저 여자 때문이었다'고 뒤집어 씌 웠고 하와는 뱀을 가르키면서 '하나님이 만드신 저 뱀 때문이었다'고 하나님을 걸고 뱀에게 뒤집어 씌우려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책임윤리가 파괴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교회가 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를 지신 것처럼 서로의 짐을 져주고 서로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주님의 정신이고 교회의 정신입니다. 그러니까 뒤집어 씌우려는 정신이 마귀의 정신이고 책임지는 정신 이 주님의 정신입니다. 우린 누가 내 발을 씻겨 주기 전에 남의 발을 씻겨야 합니다. 서로 기는 것이 교회의 본질입니다. 나는 너를 사랑하고 너는 나를 사랑 하는 것이 사랑의 본질인 것입니다.
4. 주님과의 관계 왜 주께서 저들의 발을 씻기셨을까요 그것은 저들이 빌라도나 헤롯이나 가야바의 제자들이 아니고 주님이 사랑하는 제자들이었기 때 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본문 8절에서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관계가 없다'는 말의 뜻은 '몫이 없다 "분깃이 없 다' 받을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의 죄를 사함받 지 못하면 주님과 우리와의 상관이 없게 됩니다. 그리고 상관이 없게 되면 우리가 주님에게서 받을 것이 없어져 버럽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근무하는 회사나 직장에서 한달 동안 일을 하고 월급을 받습니다. 일은 A라는 직장에서 하고 월급은 B라는 직장에서 받지 않습니다. 내가 주님의 십자가로 죄사함을 받고 주님의 자녀가 되어야 천국에 서 분깃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주님과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15장에서 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나를 주 안에 주님은 내 안에' 포도나무이신 주님에게 내가 접붙임을 받아야 합니다. 내가 누구를 만나고 누구와 친하고 누구에게 배우느냐에 따라 나의 인생은 그 장래가 결정됩니다. 학생은 좋은 스승을 만나야 하고 나무는 은 땅과 좋은 정원사를 만나야 하듯이 인생은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만나야 행복을 찾고 구원을 찾게 됩니다. 스위스의 어떤 정원사에게 나무를 새로 심을 때마다 뭐라고 중얼거 리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나무야 잘 자라거라. 시들지 말고 싱싱하게 너는 자라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그가 심은 나무는 절대로 시드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풀 한 포기도 사랑과 격려가 필요한데 하물며 인간의 생명이랴 ! 누가 우리 인생의 정원사가 되어서 위로해 주고 격려해 줄 수 있겠 습니까 그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히브리서 12장 1절에서 '예수를 바라보자'고 외쳤읍니다.
5. 본을 보였습니다.
(결론) 본문 15절에서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 여 본을 보였노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내가 그떻게 했으 니 너도 그렇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은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버 자녀들에게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내가 만나는 사람 들에게 '나를 배우라 나를 본받으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어떤 소매치기가 6살짜리 아들 하나를 데리고 살고 있었습니다. 어 느날 아들이 이웃 구멍가게에서 사탕을 쳐 왔습니다. 이것을 안 그 의 아버지가 매를 들고 그를 때렸습니다. 왜 남의 것을 쳤느냐 먹고 싶으면 돈을 달래서 사먹지 왜 쳤느냐 면서._ 그리고 그는 또 네가 네놈 하나 키워서 공부시켜 보겠다고 소매치기를 하는 것도 지겹고 소름끼치는데 네놈까지 도둑놈이 될 작정이냐면서 종아리를 때렸읍니다. 매를 맞고 서 있던 6살짜리 아들은 울면서 하는 말이 '아빠 미워 아빠 미워 왜 때리는 거야 t 아빠도 그러면서 왜 때리는 거야 ! ." '우린 누구에게 본을 보이고 있습니까 ' 스페인에는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끊이지 않는 교회당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그 교회당의 한 구석의 대리석 기등에 새겨져 있는 십자가 형의 조각을 보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아람인들이 스페인을 점령했을 때 스페인의 기독교도 한 사람이 신 전에 발을 드려 놓았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바로 그 기등에 결박되어 사형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회회교의 신전에는 이교도의 출입 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죽음을 기다리는 이 청년은 그 기등에 결박된 채 사람들의 눈을 피해 손톱으로 그 대리석 기등에다 십자가 형을 조각했다는 것 입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발견했을 때는 열 손가락의 손톱은 모두 다 달아 없어지고 손은 피투성이가 되었더라는 것입니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 손톱으로 십자가 흔적을 남겼고 날 그 흔적 을 보는 많은 관광객들에게 큰 감동을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회회교의 신전은 날 교회당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의 후손들을 위하여 신앙의 흔적, 모본을 남겨야겠습니다 17절에서 주님은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삶이 축복된 삶이 되기 위해 주님의 명령대로 서로 발을 기면서 살아야 겠습니다. 우선 우린 내 몸에 주님의 흔적을 지니고 살아야 합니다. 또 유리의 생애 속에 예수의 흔적을 남겨야 합니다. 그리고 이 역사의 페이지에 흔적을 남겨야 합니다. 그래서 날 우리의 후손들이 우리가 남긴 흔적을 보면서 인생을 논하고 신앙을 얘 기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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