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안에 살자 (요13:21-30)
본문
“나는 저 사람과 다르다. 나는 저렇게 하지 않겠다”라는 생각은 참 위험하고 잘못된 생각입니다. 부부간에 다투는 가정을 보고 “무슨 싸움을 저렇게 하냐 나는 가정에서 안 싸울 것이다”라고 한다거나, 사업이 부도나서 어려운 사람을 보고 “무슨 사업을 저렇게 하냐 나는 사업을 잘 할 것이다”라고 한다면 이것은 여러분이 상대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말이기 때문에 위험한 것입니다. 부부가 살다 보면 싸울 일이 분명히 있습니다. 사업을 하다 보면 부도나는 날도 있습니다.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이런 말을 해야 합니다. 정치를 해보지도 않고 “요사이 정치는 다 썩었다. 내가 정치하면 잘할 것이다”라는 말을 하면 안됩니다. 국회의원 선거 때가 되면 모든 후보들이 “내가 국회 의사당에 들어가면 이 나라는 좋아질 것입니다.”라고 이야기하지만 국회를 그렇게 간단하게 보아서는 안됩니다. 의과 대학을 지원하는 학생에게 “너는 왜 의대를 원하느냐” 라고 물으면 “저는 의사가 되어서 가난한 자들과 어려운 이들을 위해 일생을 바치고 싶습니다. 저는 성경에 나오는 누가 같은 의사가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그렇게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을 거치면서 흰 가운에 때가 묻듯이 사명감을 가졌던 순수한 마음에도 서서히 때가 묻게 됩니다. “그것만은 아니었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사명감이 점점 사라지는 자기 자신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판검사를 너무 잘못되었다. 내가 판사가 되면 정말 약하고 억울한 자의 편에 서서 그들을 변호하고 공평한 재판을 하겠다.” 처음에는 모두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판사가 되고 검사가 되어 일년 이년 지나면서 약한 자의 편에 선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목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회를 저렇게 해서는 안된다. 나는 농어촌을 위해서 일하겠다. 나는 아골 골짝 빈 들에도 복음 들고 갈 것이다. 나는 사도 바울과 같이 일할 것이다.” 그러나 목회를 시작해 보면 사랑과 희생과 헌신이 통하지 않고 오히려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에게 더 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 밝던 눈동자가 흐려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목표를 정할 때 최고의 목표를 정하는 것보다는 겸손하게 목표를 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 가운데 아브라함이나 다윗과 같이 되는 것도 좋지만 “주여 제가 가룟 유다같이 되지 않게만 도와주시옵소서. 제가 발람이나 고라와 같이 되지 않게 도와주시옵소서. 압살롬이 되지 않게 도와주시옵소서.” 라고 해야 합니다. 우리가 겸손하게 목표를 정하여 살아갈 때에 큰 은혜도 받을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주님을 사랑한 제자와 그 사랑의 품을 떠난 제자, 주님과 함께 순교의 자리에까지 나간 제자와 주님을 배반한 제자, 주님을 믿고 충성스럽게 사명을 감당한 열한 제자와 주님을 은 삼십에 팔아먹은 가룟 유다를 같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열한 사람은 끝까지 잘 달려가서 승리하였는데 왜 한 사람은 예수님을 저버리고 스스로 목매어 죽는 불행한 사람이 되었습니까 열한 제자는 다 주님의 품에 있었습니다. 주님의 품안에 믿음으로 안기고 사랑으로 안긴 제자들이었습니다. 즉 이들은 죄를 속하여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안겼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3년 동안이나 주님을 따라다녔지만 그의 품안에 안기지 못하였습니다. 언제나 예수 밖에서 보고, 예수 밖에서 이야기하고, 예수 밖에 있는 사람들과 만나고, 예수 밖의 일들을 크게 보았습니다. 예수님을 크게 보지 않고, 구주로 고백하지 아니하며, 사랑하지 아니하며, 언제나 예수 밖에 있었습니다. 신앙은 위치가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생각하며 예수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분을 향하여 뜨거운 사랑을 고백하고 있습니까 주님을 향하여 말 한마디도 고백하지 못하는 밖에 있는 제자는 아닙니까 “(골2:6)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골2:7)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고 했습니다. 사람의 유형은 두 가지입니다. 밖에 있는 사람이 있고, 안에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행복의 비결은 가정의 품안에 안기는 것입니다. 안에 있으면 행복합니다. 그러나 밖에 있으면 불행합니다. 우리는 부족할지라도 예수의 품안에 있으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 품을 떠날 때 어려움이 오는 것입니다. 안전하게 살아가는 길이 어디에 있습니까 안에 있어야 합니다. 밖에서는 제아무리 조심해도 사고를 만나는 것입니다. 부족한 줄 알고 예수 안에 있는 자가 오히려 큰 자가 되고 위대한 자가 될 줄 믿습니다. 요한복음 12장 1-8절을 보면 마리아가 옥합을 깨뜨려서 주님께 향유를 부어드리고 헌신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사랑해야 할 가룟 유다가 그것을 나쁘게 여기고 비판합니다. 가룟 유다의 마음은 언제나 밖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밖에서 나쁘게 보고 나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밖에 있는 사람과 안에 있는 사람은 조금 다른 것이 아니라 엄청나게 다릅니다. 전에도 제가 그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땅굴을 북한이 파 내려온 것이 아니라 우리가 팠다는 것입니다. 안기부가 조작을 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김재규는 사형시키지 않았고 사실은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말을 이런 생각을 합니까 엉뚱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밖에 있기 때문입니다. 안에 있느냐 밖에 있느냐가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가정 안에 있는 사람은 가정을 사랑하지만 가정 밖에 있는 사람은 비판하게 마련입니다. 모든 축복은 안에 있을 때 열매를 맺습니다. “(잠5:18)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잠5:19) 그는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고 했습니다. 행복의 비결은 항상 그 품을 족하게 여기고 그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내가 처음에 잘못 봐서 속았다고 하면서 눈을 밖으로 돌리면 안됩니다. 밖의 품은 안기지 않아야 할 품입니다. 그 품은 결국 가룟 유다와 같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안겨야 할 품이 있습니다. 사랑의 품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잘못된 생각을 바꾸고, 잘못된 언어를 바꾸고 잘못된 눈을 바꾸면서 주님의 품안에 안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미국의 시인 에머슨은 “모든 사람의 열쇠는 그의 생각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성공하려는 사람은 성공을 생각하고 축복받으려는 사람은 축복을 생각해야 합니다. 생각이 열쇠입니다. 천국을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천국이 열릴 것이고, 은혜를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은혜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그러나 미움을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미움이 열립니다. 술 취하고 방탕한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는 타락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사람은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참 중요합니다. 우리의 잘못된 생각을 예수 안에서 믿음으로 거룩한 생각으로 바꾸고 나를 구속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항상 좋게 바라볼 때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평생 동안 이어질 줄 믿습니다. 이단에 빠지는 사람이 주로 누구입니까 교회의 품에 안기지 못하는 사람이 주로 이단에 빠집니다. 이단에 빠지는 사람의 대부분이 기성 교회의 교인이었다고 합니다. 교회에 안기지 못하면 다른 이야기에 빠져 교회를 비판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성 교회를 비판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합법적으로 온 세계가 인정하는 교회, 수천 년 동안 내려오는 교회를 비판하는 것은 분명히 비판하는 사람에게 문제가 있습니다. 이단의 공통적인 특징은 기성 교회를 반대하는 것입니다. 구원파만 하더라도 십일조하는 것을 비판합니다. 신약성경 어디에 십일조하라는 것이 있느냐고 합니다. 기도하는 것도 비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지 않아도 다 아시는데, 왜 기도를 하느냐고 합니다. 꼭 기도를 해야만 들으시는 분이라면 그런 하나님을 어떻게 믿느냐고 합니다. 한 번만 회개하면 다 구원받는데 교회에 왜 그렇게 얽매이느냐고 합니다. 교회의 품안에 안기지 못하고 교회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면 사람들에게는 그런 이야기가 그럴듯하게 들립니다. 왠지 매였던 것이 시원하게 다 풀리는 것 같아서 그쪽으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이단의 천국입니다. 각종 이단이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모든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권력과 밀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안기지 못하고 예수의 품안에 안기지 못하면 이단으로 넘어가기 쉽습니다. 그러나 한번 그곳으로 넘어가면 가룟 유다와 같이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품안에 안겨야 합니다. 사랑하는 제자 베드로와 요한같이 예수님의 품에 기대어야 합니다. 그분을 사랑해야 합니다. 나의 구주이신 예수님을 믿고 우리의 말도 우리의 생각도 그를 의지해야 할 줄 믿습니다.
예수의 품안에 안기지 못하는 가룟 유다에게는 열등감이 있었다고 합니다. 많은 신학자들이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좋게 보지 못하고 부정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열등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열등감을 가지고 있으면 마귀가 역사합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다 열등감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사람에게는 부족함이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렵든지, 남들만큼 배우지 못했든지, 신체적으로 문제가 있든지, 자녀에게 문제가 있든지, 권력을 갖지 못했든지, 사람은 어느 면으로든 부족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그 부족함을 채워주시는 주님을 우리는 더욱 가까이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부족함으로 말미암아 시험이 들어서는 안됩니다. 할렐루야. 어느 용감한 스파르타 장군의 아들이 칼이 너무 짧다고 불평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장군이 “너는 왜 칼이 짧다고 불평을 하느냐 그 칼이 짧은 것만큼 네가 한걸음 더 앞으로 나가면 되지 안느냐” 하고 말했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짧은 것, 부족한 것이 있을지라도 낙심하지 말고 그것 때문에 더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짧은 칼을 들고도 더 앞으로 나가서 적극적으로 싸우면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가난합니까 그것 때문에 더 부지런해질 수 있습니다. 남들만큼 배우지 못했습니까 그것 때문에 더 기도할 수 있습니다.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내게 없는 것 때문에 더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열등감에 사로잡혀서 시험에 들지 마십시오. 부족한 것 때문에 오히려 더 기도하고 충성하고 주 안에서 살아갈 때 여려분도 베드로와 같이 사도 바울과 같이 위대한 하나님의 일꾼들이 될 줄 믿습니다.
어떤 부부가 신혼 여행을 가는데 신랑이 신부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너무 고마워, 내가 한쪽 눈이 없는데도 당신이 나를 사랑하고 결혼해 주어서 너무 고마워.” 이분은 사고로 한쪽 눈을 잃어서 대신 다른 눈을 넣었던 것입니다. 신부는 깜짝 놀랐습니다. “눈이 없다니 무슨 말이예요” “내가 한쪽 눈이 없잖아. 그건 당신도 알지 않았어” “무슨 말이예요 왜 숨겼다가 이제 털어놓아요” “내가 언제 숨겼어 내가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 한 눈에 반했다고 편지에 썼잖아. 그 편지 한번봐. ” 이 말을 들은 신부는 신랑을 이해하고 동정하는 가운데 화해하고 서로 사랑하며 잘살았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을 때 그것을 잘 넘어서는 길도 있지만, 어려움에 빠지는 길도 있습니다. 시내가 있을 때 다리를 놓아서 건너가는길이 있고, 물에 빠져서 건너가는 길도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 앞에 다 부족합니다.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바라보아야 됩니다. 내가 가난하기 때문에 만왕의 왕이 되셔서 우리를 부유하게 하시는 주님께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리석기 때문에 우리를 지혜롭게 하시는 주님을 의지하게 되고, 내일 일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영원하신 주님을 더욱 사랑하고 바라보게 되는 줄 믿습니다. 열등감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저에게 “고향이 어디입니까” 라고 물으면 저는 선뜻 대답을 못합니다. 그 지역을 아는 분의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고향에서 제일 가까운 도시를 말합니다. 저희 고향은 전체 군민이 3만 명밖에 안됩니다 깊은 산속이라 논도 없어서 논농사 대신 감자와 옥수수를 많이 생산합니다. 저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어려웠기 때문에 그만큼 일찍이 하나님 앞에 매달렸던 것입니다.
땅의 것이 없었기 때문에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땅에 가뭄이 들면 당연히 비를 주시는, 위에 계신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일찍부터 주님 앞에 나가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나는 없지만, 나는 못배웠지만, 나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이 모든 것을 채워주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다른 길로 가지 아니하고 그분의 품안에 안겨서 열심히 살았더니 주님께서 저를 축복해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은 열등감을 갖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교회가 나 같은 사람은 알아주지도 않는다.” 이런 마음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실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은 감사함으로 나아가는 사람에게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어머니가 키질을 하면서 쭉정이를 골라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래위로 키를 몇번만 움직이면 쭉정이는 다 밖으로 밀려 나가고, 알곡은 키 안쪽으로 들어와서 바닥에 남아 있습니다. 참 신기합니다. 알곡은 언제나 안으로 들어옵니다. 오늘 우리에게 시험이 있어도, 열등감이 있어도, 문제가 있어도 그럴수록 우리가 교회 안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교회에 충성하고 교회 안으로 들어와야지 밖에서 안을 보면 안됩니다. 가정 밖에서 가정을 들여다보면 안됩니다. 안에서 볼 때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보금자리가 되는 줄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공하는 삶은 어디서든지 품안에 들어가 안기는 삶이고, 실패하는 삶은 품을 떠나는 삶입니다. 주님의 품을 떠난 자의 삶은 길이 없습니다. 오늘 나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리 이단이 횡행하여 이 세상이 어려워도 여러분이 열한 제자와 같이 예수님의 품안에서, 교회의 품에서 만족할 때 여러분의 가정에 하나님의 축복이 넘칠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목표를 정할 때 최고의 목표를 정하는 것보다는 겸손하게 목표를 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 가운데 아브라함이나 다윗과 같이 되는 것도 좋지만 “주여 제가 가룟 유다같이 되지 않게만 도와주시옵소서. 제가 발람이나 고라와 같이 되지 않게 도와주시옵소서. 압살롬이 되지 않게 도와주시옵소서.” 라고 해야 합니다. 우리가 겸손하게 목표를 정하여 살아갈 때에 큰 은혜도 받을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주님을 사랑한 제자와 그 사랑의 품을 떠난 제자, 주님과 함께 순교의 자리에까지 나간 제자와 주님을 배반한 제자, 주님을 믿고 충성스럽게 사명을 감당한 열한 제자와 주님을 은 삼십에 팔아먹은 가룟 유다를 같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열한 사람은 끝까지 잘 달려가서 승리하였는데 왜 한 사람은 예수님을 저버리고 스스로 목매어 죽는 불행한 사람이 되었습니까 열한 제자는 다 주님의 품에 있었습니다. 주님의 품안에 믿음으로 안기고 사랑으로 안긴 제자들이었습니다. 즉 이들은 죄를 속하여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안겼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3년 동안이나 주님을 따라다녔지만 그의 품안에 안기지 못하였습니다. 언제나 예수 밖에서 보고, 예수 밖에서 이야기하고, 예수 밖에 있는 사람들과 만나고, 예수 밖의 일들을 크게 보았습니다. 예수님을 크게 보지 않고, 구주로 고백하지 아니하며, 사랑하지 아니하며, 언제나 예수 밖에 있었습니다. 신앙은 위치가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생각하며 예수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분을 향하여 뜨거운 사랑을 고백하고 있습니까 주님을 향하여 말 한마디도 고백하지 못하는 밖에 있는 제자는 아닙니까 “(골2:6)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골2:7)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고 했습니다. 사람의 유형은 두 가지입니다. 밖에 있는 사람이 있고, 안에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행복의 비결은 가정의 품안에 안기는 것입니다. 안에 있으면 행복합니다. 그러나 밖에 있으면 불행합니다. 우리는 부족할지라도 예수의 품안에 있으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 품을 떠날 때 어려움이 오는 것입니다. 안전하게 살아가는 길이 어디에 있습니까 안에 있어야 합니다. 밖에서는 제아무리 조심해도 사고를 만나는 것입니다. 부족한 줄 알고 예수 안에 있는 자가 오히려 큰 자가 되고 위대한 자가 될 줄 믿습니다. 요한복음 12장 1-8절을 보면 마리아가 옥합을 깨뜨려서 주님께 향유를 부어드리고 헌신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사랑해야 할 가룟 유다가 그것을 나쁘게 여기고 비판합니다. 가룟 유다의 마음은 언제나 밖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밖에서 나쁘게 보고 나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밖에 있는 사람과 안에 있는 사람은 조금 다른 것이 아니라 엄청나게 다릅니다. 전에도 제가 그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땅굴을 북한이 파 내려온 것이 아니라 우리가 팠다는 것입니다. 안기부가 조작을 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김재규는 사형시키지 않았고 사실은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말을 이런 생각을 합니까 엉뚱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밖에 있기 때문입니다. 안에 있느냐 밖에 있느냐가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가정 안에 있는 사람은 가정을 사랑하지만 가정 밖에 있는 사람은 비판하게 마련입니다. 모든 축복은 안에 있을 때 열매를 맺습니다. “(잠5:18)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잠5:19) 그는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고 했습니다. 행복의 비결은 항상 그 품을 족하게 여기고 그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내가 처음에 잘못 봐서 속았다고 하면서 눈을 밖으로 돌리면 안됩니다. 밖의 품은 안기지 않아야 할 품입니다. 그 품은 결국 가룟 유다와 같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안겨야 할 품이 있습니다. 사랑의 품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잘못된 생각을 바꾸고, 잘못된 언어를 바꾸고 잘못된 눈을 바꾸면서 주님의 품안에 안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미국의 시인 에머슨은 “모든 사람의 열쇠는 그의 생각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성공하려는 사람은 성공을 생각하고 축복받으려는 사람은 축복을 생각해야 합니다. 생각이 열쇠입니다. 천국을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천국이 열릴 것이고, 은혜를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은혜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그러나 미움을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미움이 열립니다. 술 취하고 방탕한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는 타락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사람은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참 중요합니다. 우리의 잘못된 생각을 예수 안에서 믿음으로 거룩한 생각으로 바꾸고 나를 구속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항상 좋게 바라볼 때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평생 동안 이어질 줄 믿습니다. 이단에 빠지는 사람이 주로 누구입니까 교회의 품에 안기지 못하는 사람이 주로 이단에 빠집니다. 이단에 빠지는 사람의 대부분이 기성 교회의 교인이었다고 합니다. 교회에 안기지 못하면 다른 이야기에 빠져 교회를 비판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성 교회를 비판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합법적으로 온 세계가 인정하는 교회, 수천 년 동안 내려오는 교회를 비판하는 것은 분명히 비판하는 사람에게 문제가 있습니다. 이단의 공통적인 특징은 기성 교회를 반대하는 것입니다. 구원파만 하더라도 십일조하는 것을 비판합니다. 신약성경 어디에 십일조하라는 것이 있느냐고 합니다. 기도하는 것도 비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지 않아도 다 아시는데, 왜 기도를 하느냐고 합니다. 꼭 기도를 해야만 들으시는 분이라면 그런 하나님을 어떻게 믿느냐고 합니다. 한 번만 회개하면 다 구원받는데 교회에 왜 그렇게 얽매이느냐고 합니다. 교회의 품안에 안기지 못하고 교회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면 사람들에게는 그런 이야기가 그럴듯하게 들립니다. 왠지 매였던 것이 시원하게 다 풀리는 것 같아서 그쪽으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이단의 천국입니다. 각종 이단이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모든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권력과 밀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안기지 못하고 예수의 품안에 안기지 못하면 이단으로 넘어가기 쉽습니다. 그러나 한번 그곳으로 넘어가면 가룟 유다와 같이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품안에 안겨야 합니다. 사랑하는 제자 베드로와 요한같이 예수님의 품에 기대어야 합니다. 그분을 사랑해야 합니다. 나의 구주이신 예수님을 믿고 우리의 말도 우리의 생각도 그를 의지해야 할 줄 믿습니다.
예수의 품안에 안기지 못하는 가룟 유다에게는 열등감이 있었다고 합니다. 많은 신학자들이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좋게 보지 못하고 부정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열등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열등감을 가지고 있으면 마귀가 역사합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다 열등감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사람에게는 부족함이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렵든지, 남들만큼 배우지 못했든지, 신체적으로 문제가 있든지, 자녀에게 문제가 있든지, 권력을 갖지 못했든지, 사람은 어느 면으로든 부족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그 부족함을 채워주시는 주님을 우리는 더욱 가까이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부족함으로 말미암아 시험이 들어서는 안됩니다. 할렐루야. 어느 용감한 스파르타 장군의 아들이 칼이 너무 짧다고 불평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장군이 “너는 왜 칼이 짧다고 불평을 하느냐 그 칼이 짧은 것만큼 네가 한걸음 더 앞으로 나가면 되지 안느냐” 하고 말했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짧은 것, 부족한 것이 있을지라도 낙심하지 말고 그것 때문에 더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짧은 칼을 들고도 더 앞으로 나가서 적극적으로 싸우면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가난합니까 그것 때문에 더 부지런해질 수 있습니다. 남들만큼 배우지 못했습니까 그것 때문에 더 기도할 수 있습니다.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내게 없는 것 때문에 더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열등감에 사로잡혀서 시험에 들지 마십시오. 부족한 것 때문에 오히려 더 기도하고 충성하고 주 안에서 살아갈 때 여려분도 베드로와 같이 사도 바울과 같이 위대한 하나님의 일꾼들이 될 줄 믿습니다.
어떤 부부가 신혼 여행을 가는데 신랑이 신부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너무 고마워, 내가 한쪽 눈이 없는데도 당신이 나를 사랑하고 결혼해 주어서 너무 고마워.” 이분은 사고로 한쪽 눈을 잃어서 대신 다른 눈을 넣었던 것입니다. 신부는 깜짝 놀랐습니다. “눈이 없다니 무슨 말이예요” “내가 한쪽 눈이 없잖아. 그건 당신도 알지 않았어” “무슨 말이예요 왜 숨겼다가 이제 털어놓아요” “내가 언제 숨겼어 내가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 한 눈에 반했다고 편지에 썼잖아. 그 편지 한번봐. ” 이 말을 들은 신부는 신랑을 이해하고 동정하는 가운데 화해하고 서로 사랑하며 잘살았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을 때 그것을 잘 넘어서는 길도 있지만, 어려움에 빠지는 길도 있습니다. 시내가 있을 때 다리를 놓아서 건너가는길이 있고, 물에 빠져서 건너가는 길도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 앞에 다 부족합니다.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바라보아야 됩니다. 내가 가난하기 때문에 만왕의 왕이 되셔서 우리를 부유하게 하시는 주님께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리석기 때문에 우리를 지혜롭게 하시는 주님을 의지하게 되고, 내일 일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영원하신 주님을 더욱 사랑하고 바라보게 되는 줄 믿습니다. 열등감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저에게 “고향이 어디입니까” 라고 물으면 저는 선뜻 대답을 못합니다. 그 지역을 아는 분의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고향에서 제일 가까운 도시를 말합니다. 저희 고향은 전체 군민이 3만 명밖에 안됩니다 깊은 산속이라 논도 없어서 논농사 대신 감자와 옥수수를 많이 생산합니다. 저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어려웠기 때문에 그만큼 일찍이 하나님 앞에 매달렸던 것입니다.
땅의 것이 없었기 때문에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땅에 가뭄이 들면 당연히 비를 주시는, 위에 계신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일찍부터 주님 앞에 나가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나는 없지만, 나는 못배웠지만, 나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이 모든 것을 채워주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다른 길로 가지 아니하고 그분의 품안에 안겨서 열심히 살았더니 주님께서 저를 축복해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은 열등감을 갖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교회가 나 같은 사람은 알아주지도 않는다.” 이런 마음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실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은 감사함으로 나아가는 사람에게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어머니가 키질을 하면서 쭉정이를 골라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래위로 키를 몇번만 움직이면 쭉정이는 다 밖으로 밀려 나가고, 알곡은 키 안쪽으로 들어와서 바닥에 남아 있습니다. 참 신기합니다. 알곡은 언제나 안으로 들어옵니다. 오늘 우리에게 시험이 있어도, 열등감이 있어도, 문제가 있어도 그럴수록 우리가 교회 안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교회에 충성하고 교회 안으로 들어와야지 밖에서 안을 보면 안됩니다. 가정 밖에서 가정을 들여다보면 안됩니다. 안에서 볼 때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보금자리가 되는 줄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공하는 삶은 어디서든지 품안에 들어가 안기는 삶이고, 실패하는 삶은 품을 떠나는 삶입니다. 주님의 품을 떠난 자의 삶은 길이 없습니다. 오늘 나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리 이단이 횡행하여 이 세상이 어려워도 여러분이 열한 제자와 같이 예수님의 품안에서, 교회의 품에서 만족할 때 여러분의 가정에 하나님의 축복이 넘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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