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제자의 표식 (요13:31-38)
본문
30절에 보시면,유다가 그 조각을 받 곧 나가니 밤이더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유다가 예수를 넘겨주기 위하여 나갔습니다. 예수를 죽이려는 죽음의 화살촉은 이미 그 시위를 떠났습니다. 우주가 그 최대의 밤을 만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 죽는 사망의 밤이 찾아오는 이 마지막 장면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의 마지막 설교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의 마지막 말들이란 얼마나 진실되고 귀중한 말씀인가요 그 밤을 비취는 빛이란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보배로운 말씀의 빛밖에 없었습니다. 그 말씀이 오늘 본문부터 18장에서 체포되시기 전까지 계속됩니다. 그가 하시는 마지막 설교의 가장 처음되고 중요한 부분이 오늘 본 문의 34절과 35절입니다. 요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너희가 내 제자인줄을 알 것인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면 내 제자인 것으 로 알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즉,서로 사랑하는 것이 예수따라가는 제자의 참된 표식인 것입니다. 프란스시 쉐이퍼 박사가 말한대로, 참된 제자가 차고 다니는 뱃지 가 있는데 그것이 '사랑'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주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같은 모습으로 사랑하는 삶을 살 때, 그 때서야 세상사람들은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인 것을 알게 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예) 초대교회-저들은 세상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뒤집어 엎었다. 보라!저들은 서로 사랑하였다. 오늘날 교회-저들은 세상을 망쳐가고 있다. 보라!저들은 서로 미위하고 있다. 어느 누구나 우리를 머릿속에 그릴 때에 '진정 사랑하는 사람의 모 습'으로 그릴 때에 우리는 진정 주님의 제자인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오늘 본문에서 서로사랑하라는 이 말씀을 새계명으로 준다고 했습니다. 우선 계명을 생각해 봅시다. 잘 아시는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중요한 계명이 십계 명입니다. '분석' 1-4계명까지는 하나님에 관한 것, 5-10계명까지는 인간에게 관한 것. 그것의 기초는 역시 사랑! 1-4까지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 5-10까지는 인간에 대한 사랑을 강조한 것. 이미 여러차례말씀드린대로, 살인하지 말라는 것은 이웃의 생명을 보호하는 사랑이요,이것은 결국 나를 사랑하기 위한 하나님의 말씀 인 것입니다. 거짓말하지 말라는 것도 이웃에 대한 사랑입니다. 또한 이것은 내 가 거짓말 당하기 싫은 것과 같이 남에게 거짓말하지 않는 사랑을 베풀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1-4계명까지도 나를 위한 사랑입니다. 우상을 섬기면 내영혼이 파멸되기 때문에 사실은 나를 사랑하셔서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인 것입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 영혼이나 건강에 유익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여기에는 전부 하나님과 이웃과 나 자신에 관한 사랑의 모습이 기록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하면 십계명의 근거는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니다.
그런데,주님이 사랑을 말씀하시면서 왜,굳이 새계명이라고 하셨는 가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몇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1,부정적인데 긍정적인 데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지말라,하지말라는 정도가 아니라 이제는 더욱 적극적으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요15:13/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원수라도 사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아주 질적인 의미에서 새로운 계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앞에 단서가 붙어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라는 말입니다. 이 사랑은, 죄인을 사랑하신 사랑이며 배반자까지도 사랑하신 사랑이며, 의로운 사랑이며, 공의로운 사랑이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신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랑으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아주 감사한 것은, 우리가 계명을 지키지 못하면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십계명을 다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시는 사랑으로 그 계명을 완성시키 셨습니다. 말씀그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그래서 사랑이 우리를 구원한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구원받았습니까 주님의 사랑의 완성으로 구원받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사랑할 때에 우리가 구원되고 이웃이 구원 되고 가정이 구원되고, 사회가 구원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같은 사랑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이 사랑이 없이는 아무도 제자로서 주님을 따라 간다고 말할 수 없 습니다. 오늘 베드로를 보십시오! 36절에, 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나의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 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 오리라!' 이 말씀은 아주 간단합니다. 나는 이 세상사람을 위하여 사랑의 죽음을 죽으러 간다!
그런데 너는 이 죽음을 같이 죽을 수 있는 사랑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랑을 가지고 후에는 내가 간 이 죽음의 길을 갈 수가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과연 주님은 베드로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베드로는 아직도 친구를 위하여 목숨까지라도 버리는 사랑이 얼마 나 귀중하며 이것이 정말 예수따라가는 길인지 몰랐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자기부정과 자기 이기주의를 버리는 것이 철저하지 못했음을 보신 것입니다. 혈기로 목숨까지 버릴 것라고 했지만, 아직도 자기중심적인 사랑으 로 뭉쳐저 있는 베드로 인 것을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철저하게 주님이 가지신 사랑을 가지지 못하고 자기중심적이며,자 기 욕심적인 생각을 가지고 주를 따라 가는 사람은 반드시 어느 금 이 있습니다. 그 금에 오면 넘어집니다. 베드로 처럼 주님을 저주하고 배반하게 됩니다. 신앙생활 할 때도 보면, 평소에는 다 착하고 잘 신앙생활합니다.
그런데, 철저하게 나를 죽이고, 나의 이기심을 포기하고, 어떤 때는 내 목 숨이라도 버려서 사랑을 이루어야할 사건과 순간이 오게 되면 예수 못따라가고 베드로 처럼 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 부모와 자식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체적으로 사랑을 말하라면 자식들이 걸려서 넘어집니다. 부모님의 사랑은 무한정이고,자기 희생적인 사랑으로 그 사랑은 어디까지든지 갑니다.
그런데 자식들의 사랑은 아직도 재고 있고, 아직도 순수치 못하 고, 자기희생과 자기 유익을 유보당하게 될 때는 걸려서 넘어지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다가 걸려넘어지게 되는 것도 바로 이 부분에 서 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이라는 말씀대로 주님 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같은 사랑을 가지고 산다면 걸려서 넘어질 장애가 없습니다. 이제 다시 한 번 우리 주님의 모습으로 돌아가 보기를 원합니다. 13장21절에 보시면 요13:2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에 민망하여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 리라 하시니 마음에 고민과 괴로움을 가지셨습니다.
(예)어떤 사람은 가롯유다를 미화해서 해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가롯유다의 역활이 없었으면,예수님의 십자가 구속사역이 이루어 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엄청난 넌센스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보시면 가롯유다의 역활이 없었어도 어떻게든지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하필이면 너희중 하나가 나를 팔것인가하는 것을 생각 하시면서 주님의 고통하고 계신 것입니다. 너희중! 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목회하신 곳에도 가롯유다 가 있었습니다. 더 깊히 생각하면 바로 내가 가롯유다가 아닌가 내가 삶가운데서 예수를 팔자가 아닌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부분들에 대하여 회개해야 합니다. 가롯유다 왜,정말 가롯유다입니까 철저한 회개가 없었기 때문입니니다. 예수님은 끝까지 자기를 팔 자가 가롯유다인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만약에 가롯유다가 팔 것이라고 말씀했다면 아마 성미 급한 베드로같은 제자가 일어나서 때려서 죽였을지도 모릅니다. 혈기로 주님위해서 목숨을 바치겠다고 한 베드로였기에 무슨 일을 할지 모 르는 것입니다. 주님은 마지막까지 그 이름을 말씀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떡 한 조각 을 고기국물에 찍어서 가롯유다에게 주시고, 할 일을 속히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우정의 술잔을 권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의 발을 씻겼을 뿐만아니라, 마지막까지 그를 나무라거나 그에게 분노를 발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마지막이 되어서 만약에 주님이 분통을 터트리시고 그를 나무랐다고 한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가 그 조각을 받고 나갈 때까지 아무런 질책이나 분노로 그를 나 무라지 않고 있는 사랑의 모습입니다. 오히려 저를 향하여 민망이 여기고 마음 아파하고 있는 모습인 것 입니다.
(예)모세-온유함이 온 지면에 승하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백성들이 저를 향하여 원망을 발하게 되었을 때에 분노하여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쳐서 물을 내었으나,그것 때문에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는 불운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끝까지 참으시고 그를 용서하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말씀을 보십시오. 30,31절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저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지금 인자가 영광을 얻었고 하나님도 인자를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도다 만일 하나님이 저로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인하여 저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 가롯유다가 나간후에 주님은 영광을 얻었고, 나를 인하여 하나님 도 영광을 받으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즉,끝까지 사랑으로 이겼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랑으로 용서하고 사랑으로 침묵하며 끝까 지 선으로 악을 대할 때, 우리는 상처받은 것이 아니라,이긴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하나님의 참된 제자로서 영광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통하여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한 것입니다. 돈을 받고 오히려 주님을 팔은 가해자 가롯유다의 마음은 너무나 괴롭고 그래서 자살을 택해야 할 지경이었으나, 아무 말도 없이 고난을 잔을 마셔야 하는 예수님의 마음은 편안 하였으며, 영광스럽다고까지 한 것입니다.
(예)좋은 대학교 뱃지를 달면 영광스러운 것과 마찬가지로,우리가 끝까지 사랑으로 승리하고 사랑으로 마감하였을 때,우리는 제자의 영광스러움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믿는 사람들은 생각해야 합니다. 성공을 해야 행복이 있고, 성공을 해야 영광이 있다는 생각은 성서 적이지 않습니다. 사랑이 있을 때 행복이 있고, 사랑으로 승리해야 영광이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유다가 나간 뒤에 밤은 깊습니다. 비진리가 진리를 이기려는 순간이요, 미움이 판을 치고, 사망이 득세하려는 때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이 예수님의 마음에 영광의 빛을 드리워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으로 십자가에 죽게 되었을 때 영광의 부 활의 빛이 온 세상 가득하게 됩니다. 유대나라에 세사람의 젊은 구도자가 랍비를 방문하였습니다. 한 청년은 '흑암을 일소하는 도리'를 배우러 왔다고 하였고, 또한 청년은'흑암을 제거하는 도리'를 배우러 왔다고 했으며, 마지막 청년은'흑암을 타도하는 비결'을 배우러 왔다고 하였습니다. 랍비는 먼저 저들에게 빗자루 하나씩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어두운 지하실로 인도하여 그들에게 그 빗자루로 흑암을 일소해 버리라고 하였습니다. 저들이 아무리 빗자루로 쓸어보았지만,먼 지만 나고 어두움은 전혀 없이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사실을 들은 랍비는 그들에게 바구니를 하나씩 들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들어가 어두움을 퍼내어 제거해 버리라고 하였습니다. 저들 은 다시 들어가 바구니로 어두움을 열심히 퍼내 보았지만 여전히 방안은 캄캄할 따름이었습니다.랍비는 다시 저들에게 몽둥이 하나 씩을 들려주었습니다. '이것으로 그대들은 흑암을 타도해 버리라' 고 하였습니다. 저들이 아무리 몽둥이를 휘둘러 보았지만 어두움 을 타도할 수는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랍비는 그들에게 촛불 하나씩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차례로 내려가 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어두움은 자연히 물러가고 방안은 낮과 같이 밝아졌습니다. 그 때 랍비는 청년들을 불러 말하였습니다. '흑암,즉 이 세상의 부조리와 죄와 모든 악한 것은 다른 무엇으로도 없이 할 수 없고 다만 그대들이 사랑의 빛 만을 하나 하나 비추게 될 때 없앨수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예) 초대교회-저들은 세상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뒤집어 엎었다. 보라!저들은 서로 사랑하였다. 오늘날 교회-저들은 세상을 망쳐가고 있다. 보라!저들은 서로 미위하고 있다. 어느 누구나 우리를 머릿속에 그릴 때에 '진정 사랑하는 사람의 모 습'으로 그릴 때에 우리는 진정 주님의 제자인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오늘 본문에서 서로사랑하라는 이 말씀을 새계명으로 준다고 했습니다. 우선 계명을 생각해 봅시다. 잘 아시는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중요한 계명이 십계 명입니다. '분석' 1-4계명까지는 하나님에 관한 것, 5-10계명까지는 인간에게 관한 것. 그것의 기초는 역시 사랑! 1-4까지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 5-10까지는 인간에 대한 사랑을 강조한 것. 이미 여러차례말씀드린대로, 살인하지 말라는 것은 이웃의 생명을 보호하는 사랑이요,이것은 결국 나를 사랑하기 위한 하나님의 말씀 인 것입니다. 거짓말하지 말라는 것도 이웃에 대한 사랑입니다. 또한 이것은 내 가 거짓말 당하기 싫은 것과 같이 남에게 거짓말하지 않는 사랑을 베풀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1-4계명까지도 나를 위한 사랑입니다. 우상을 섬기면 내영혼이 파멸되기 때문에 사실은 나를 사랑하셔서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인 것입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 영혼이나 건강에 유익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여기에는 전부 하나님과 이웃과 나 자신에 관한 사랑의 모습이 기록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하면 십계명의 근거는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니다.
그런데,주님이 사랑을 말씀하시면서 왜,굳이 새계명이라고 하셨는 가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몇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1,부정적인데 긍정적인 데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지말라,하지말라는 정도가 아니라 이제는 더욱 적극적으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요15:13/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원수라도 사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아주 질적인 의미에서 새로운 계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앞에 단서가 붙어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라는 말입니다. 이 사랑은, 죄인을 사랑하신 사랑이며 배반자까지도 사랑하신 사랑이며, 의로운 사랑이며, 공의로운 사랑이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신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랑으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아주 감사한 것은, 우리가 계명을 지키지 못하면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십계명을 다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시는 사랑으로 그 계명을 완성시키 셨습니다. 말씀그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그래서 사랑이 우리를 구원한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구원받았습니까 주님의 사랑의 완성으로 구원받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사랑할 때에 우리가 구원되고 이웃이 구원 되고 가정이 구원되고, 사회가 구원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같은 사랑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이 사랑이 없이는 아무도 제자로서 주님을 따라 간다고 말할 수 없 습니다. 오늘 베드로를 보십시오! 36절에, 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나의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 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 오리라!' 이 말씀은 아주 간단합니다. 나는 이 세상사람을 위하여 사랑의 죽음을 죽으러 간다!
그런데 너는 이 죽음을 같이 죽을 수 있는 사랑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랑을 가지고 후에는 내가 간 이 죽음의 길을 갈 수가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과연 주님은 베드로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베드로는 아직도 친구를 위하여 목숨까지라도 버리는 사랑이 얼마 나 귀중하며 이것이 정말 예수따라가는 길인지 몰랐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자기부정과 자기 이기주의를 버리는 것이 철저하지 못했음을 보신 것입니다. 혈기로 목숨까지 버릴 것라고 했지만, 아직도 자기중심적인 사랑으 로 뭉쳐저 있는 베드로 인 것을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철저하게 주님이 가지신 사랑을 가지지 못하고 자기중심적이며,자 기 욕심적인 생각을 가지고 주를 따라 가는 사람은 반드시 어느 금 이 있습니다. 그 금에 오면 넘어집니다. 베드로 처럼 주님을 저주하고 배반하게 됩니다. 신앙생활 할 때도 보면, 평소에는 다 착하고 잘 신앙생활합니다.
그런데, 철저하게 나를 죽이고, 나의 이기심을 포기하고, 어떤 때는 내 목 숨이라도 버려서 사랑을 이루어야할 사건과 순간이 오게 되면 예수 못따라가고 베드로 처럼 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 부모와 자식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체적으로 사랑을 말하라면 자식들이 걸려서 넘어집니다. 부모님의 사랑은 무한정이고,자기 희생적인 사랑으로 그 사랑은 어디까지든지 갑니다.
그런데 자식들의 사랑은 아직도 재고 있고, 아직도 순수치 못하 고, 자기희생과 자기 유익을 유보당하게 될 때는 걸려서 넘어지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다가 걸려넘어지게 되는 것도 바로 이 부분에 서 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이라는 말씀대로 주님 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같은 사랑을 가지고 산다면 걸려서 넘어질 장애가 없습니다. 이제 다시 한 번 우리 주님의 모습으로 돌아가 보기를 원합니다. 13장21절에 보시면 요13:2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에 민망하여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 리라 하시니 마음에 고민과 괴로움을 가지셨습니다.
(예)어떤 사람은 가롯유다를 미화해서 해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가롯유다의 역활이 없었으면,예수님의 십자가 구속사역이 이루어 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엄청난 넌센스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보시면 가롯유다의 역활이 없었어도 어떻게든지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하필이면 너희중 하나가 나를 팔것인가하는 것을 생각 하시면서 주님의 고통하고 계신 것입니다. 너희중! 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목회하신 곳에도 가롯유다 가 있었습니다. 더 깊히 생각하면 바로 내가 가롯유다가 아닌가 내가 삶가운데서 예수를 팔자가 아닌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부분들에 대하여 회개해야 합니다. 가롯유다 왜,정말 가롯유다입니까 철저한 회개가 없었기 때문입니니다. 예수님은 끝까지 자기를 팔 자가 가롯유다인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만약에 가롯유다가 팔 것이라고 말씀했다면 아마 성미 급한 베드로같은 제자가 일어나서 때려서 죽였을지도 모릅니다. 혈기로 주님위해서 목숨을 바치겠다고 한 베드로였기에 무슨 일을 할지 모 르는 것입니다. 주님은 마지막까지 그 이름을 말씀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떡 한 조각 을 고기국물에 찍어서 가롯유다에게 주시고, 할 일을 속히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우정의 술잔을 권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의 발을 씻겼을 뿐만아니라, 마지막까지 그를 나무라거나 그에게 분노를 발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마지막이 되어서 만약에 주님이 분통을 터트리시고 그를 나무랐다고 한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가 그 조각을 받고 나갈 때까지 아무런 질책이나 분노로 그를 나 무라지 않고 있는 사랑의 모습입니다. 오히려 저를 향하여 민망이 여기고 마음 아파하고 있는 모습인 것 입니다.
(예)모세-온유함이 온 지면에 승하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백성들이 저를 향하여 원망을 발하게 되었을 때에 분노하여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쳐서 물을 내었으나,그것 때문에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는 불운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끝까지 참으시고 그를 용서하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말씀을 보십시오. 30,31절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저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지금 인자가 영광을 얻었고 하나님도 인자를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도다 만일 하나님이 저로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인하여 저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 가롯유다가 나간후에 주님은 영광을 얻었고, 나를 인하여 하나님 도 영광을 받으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즉,끝까지 사랑으로 이겼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랑으로 용서하고 사랑으로 침묵하며 끝까 지 선으로 악을 대할 때, 우리는 상처받은 것이 아니라,이긴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하나님의 참된 제자로서 영광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통하여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한 것입니다. 돈을 받고 오히려 주님을 팔은 가해자 가롯유다의 마음은 너무나 괴롭고 그래서 자살을 택해야 할 지경이었으나, 아무 말도 없이 고난을 잔을 마셔야 하는 예수님의 마음은 편안 하였으며, 영광스럽다고까지 한 것입니다.
(예)좋은 대학교 뱃지를 달면 영광스러운 것과 마찬가지로,우리가 끝까지 사랑으로 승리하고 사랑으로 마감하였을 때,우리는 제자의 영광스러움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믿는 사람들은 생각해야 합니다. 성공을 해야 행복이 있고, 성공을 해야 영광이 있다는 생각은 성서 적이지 않습니다. 사랑이 있을 때 행복이 있고, 사랑으로 승리해야 영광이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유다가 나간 뒤에 밤은 깊습니다. 비진리가 진리를 이기려는 순간이요, 미움이 판을 치고, 사망이 득세하려는 때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이 예수님의 마음에 영광의 빛을 드리워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으로 십자가에 죽게 되었을 때 영광의 부 활의 빛이 온 세상 가득하게 됩니다. 유대나라에 세사람의 젊은 구도자가 랍비를 방문하였습니다. 한 청년은 '흑암을 일소하는 도리'를 배우러 왔다고 하였고, 또한 청년은'흑암을 제거하는 도리'를 배우러 왔다고 했으며, 마지막 청년은'흑암을 타도하는 비결'을 배우러 왔다고 하였습니다. 랍비는 먼저 저들에게 빗자루 하나씩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어두운 지하실로 인도하여 그들에게 그 빗자루로 흑암을 일소해 버리라고 하였습니다. 저들이 아무리 빗자루로 쓸어보았지만,먼 지만 나고 어두움은 전혀 없이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사실을 들은 랍비는 그들에게 바구니를 하나씩 들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들어가 어두움을 퍼내어 제거해 버리라고 하였습니다. 저들 은 다시 들어가 바구니로 어두움을 열심히 퍼내 보았지만 여전히 방안은 캄캄할 따름이었습니다.랍비는 다시 저들에게 몽둥이 하나 씩을 들려주었습니다. '이것으로 그대들은 흑암을 타도해 버리라' 고 하였습니다. 저들이 아무리 몽둥이를 휘둘러 보았지만 어두움 을 타도할 수는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랍비는 그들에게 촛불 하나씩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차례로 내려가 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어두움은 자연히 물러가고 방안은 낮과 같이 밝아졌습니다. 그 때 랍비는 청년들을 불러 말하였습니다. '흑암,즉 이 세상의 부조리와 죄와 모든 악한 것은 다른 무엇으로도 없이 할 수 없고 다만 그대들이 사랑의 빛 만을 하나 하나 비추게 될 때 없앨수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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