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가 깨어질 때 (요12:20-26)
본문
첫째, 왜 예수를 믿어도 변화나 감격이 없습니까 요한복음 12:24에 '한 알의 밀알이 죽는다'는 의미는 무엇이며, 또 25절에 '자기의 생명을 사랑한다'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그리고 26 절에 사람이 예수님을 섬기려면 어떻게 섬기는 것입니까우리가 예배 를 드린다고 할 때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합니까 자아가 죽고 깨어진 다는 것이 무슨 뜻이며 어떻게 죽고 깨어지는가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린다고 했는데 자기 생명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제 대로 알아야 하나님의 참된 진리를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예수를 믿고 내 영이 거듭나서 구원을 얻어는데도 내 생활이나 성품 에 변화가 없는 사실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변 화가 있다면 예수 믿는 그 사실 하나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한 주일 에도 여러 번 교회에 나가서 가쁨 눈물을 흘리고 은혜도 체험하는데 왜 옛사람 그대로 있습니까 교회 가면 변화된 사람처럼 느껴지나 집 에 오면 왜 다시 옛사람이 되어 버립니까 다른 사람들은 기도할 때 탄식하며 눈물을 흘리고, 울부짖고, 손뼉도 치고, 통회 자복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무감각하며 왜 나는 예수를 아무런 감동도 없이 냉철한 심정으로 믿습니까 나를 가로막는 요소가 무엇입니까 이런 모든 의 문들의 근원을 우리가 성경적으로 깨달아 변화되어야 하겠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예수를 믿는 분들 가운데에 스스로 다음과 같은 회의에 빠지는 경우 가 많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나의 원죄는 사함을 받게 되었는데 내가 지은 자범죄가 그렇게 많습니까 남을 미워하거나 시기, 질 투하지 않고 그저 담담히 예수를 믿는 것밖에 없는데 왜 나에게는 아 무런 감동이 없습니까 어떤 분들은 예배를 드리면서 할렐루야! 아멘! 하는데 나는 왜 10년,20년을 믿어도 아무 변화도 없습니까 무엇이 은 혜를 못하게 하는 장애물입니까 어떤 성도가 이런 질문을 해 왔습니다. "저는 별로 죄 지은 것도 없는데 기도가 막히고 답답한데 어떻게 하면 기도의 문이 시워하게 터집 니까"
둘째, 하나님은 인간의 자아가 나타나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우리 속에는 타고난 혼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타고난 이기주의적 자 기 욕심, 곧 자아가 하나님과 나 사이의 교통을 막습니다. 특별한 죄 를 지어서가 아니라 내 속에 있는 잘못된 지삭, 감정, 의지가 나와 한 님의 영적 교통을 방해하니다. 자아, 즉 나라는 존재가 내 생각을 주 장합니다. 원수 마귀가 나의 혼에 작전 본부를 설치하고 자아를 나타 내도록 조종합니다. 자아가 나타나는 것을 성경에서는 교만이라 하며 이는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 중의 하나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 시기를,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눅 9:25). 세상과 정반대되는 이야기입니다. 이 진리를 깨달으면 세상의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이 구절에서 "자기를 부인하고"의 "자기"란 타고난 자아아, 즉 내 혼을 두고 말합니다. 흔적인 것을 부인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자신의 '자아'를 부인해야 한다는 것, 즉 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영을 둘러싸고 있는 자아가 하나님과 나의 영광의 교통에 방 해가 됩니다. 영은 거듭난 것이나 혼은 거듭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자아는 언제나 나와 함께하므로 떼어 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23절에 계속하여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했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져야 할 십자가 중에 하나가 바로 자아라고 하는 십자가입니다. "날마다의 제 십자가를 지고"란 뜻을 자아와 관련시키면 흔적인 자아 를 날마다 깨어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흔적인 자아를 깨지 못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셋째, 자아를 깨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도우심과 자신의 노력이 필요 합니다. 영적인 것이 나타나는 것을 방해하는 자아적인 것을 깨기 위해서는 자기의 노력이 필요하고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 간구 하면서 내가 주님의 긍휼을 인내하며 기다릴 때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바울 사도는 이 자아적인 것을 아래와 같이 표현했습니다. "혈과 육은 하나님이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고전 15:50). 즉 흔적인 것으로는 절대로 구원을 받지 못하며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도 요한복음에서 말씀하시기를, "영접하는 자 그 일므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 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 1:12-13).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자아저이고 흔적인 혈통, 육정 및 사람의 뜻으로 난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으로 영이 거듭나서 되는 것입니다. 자 아적인 것, 흔적인 것, 타고난 것을 부인할 때에 하나님의 생명이 나 타난다는 말입니다. 흔적인 것은 안정이 없고, 혼돈하고, 혼미하며, 여러가지 문제를 가져옵니다. 자기 중심적인 흔적인 것 때문에 교회에 분열이 일어나고, 부부가 헤어지고, 세상이 어지럽습니다. 이 흔적인 것이 우리를 파괴하려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어떤 분은 흔 적으로 주님을 열심히 섬기면서 만족해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영 원한 것이 되지 못합니다.
넷째, 흔적인 것이 왜 장애물이 됩니까 그러면 자아란 것,타고난 힘, 자기 흔적인 것이 왜 은혜받는데 장애 물이 됩니까 영적이고 새사람인 속사람과 타고난 흔적인 겉사람은 정 반대 길을 가기 때문입니다. 거듭난 영과 타고난 혼은 동질이 아닙니다. 어떤 가정에 잘 믿는 아내가 있고 믿지 않는 남편이 있다고 할때, 믿는 일에는 언제나 의견이 다릅니다. 영이 거듭난 사람과 흔적인 사람은 서로 동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영적으로는 열심히 기도하고 싶었으나 흔적인 것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영적인 면과 흔적인 면이 상반되는 사실을 깨닫게 자세 히 기룩한 말씀이 로마서 7장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되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 내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 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롬 7:21-23). 내가 거듭난 속사람으로는 손을 들고 손뼉을 치며 하나님을 찬양하면 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꼭 그렇게 해야만 하 나' 하는 생각은 혼에서 오는 것입니다. 영적인 면에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는 아무런 의문이 없습니다. 언제나 의심과 혼동을 주는 것은 흔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속사람과 흔적인 겉사람이 싸울 때 영적인 것이 이기지 못하기 때문에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 다"(롬 7:24)라고 탄식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영은 제일 가운데 있고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혼이며 이 혼을 담고 있는 것이 육, 즉 우리의 몸입니다. 속사람이 속 에서 거듭나서 밖으로 나오려고 하는데 흔적인 것이 둘러싸서 막고 있 으므로 하나님과 나 사이에 교통이 되지 않습니다. 영적인 속사가이 흔적인 겉사람을 이기려고 눈물로 기도하고 호소할 때 성령님이 역사하 시어 우리의 영광 하나가 되셔서 흔적인 것을 이기고 승리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 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님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으라"(롬 8:1-2). 다섯째, 성령님만이 내 속삶을 도우실 수 있습니다. 내 속사람을 도울 수 있는 것은 나의 지혜나, 세상의 부귀나, 처자나 친구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진리의 영이신 신령만이 도울 수 있습니다. 성령님만이 친히 우리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 을 증거합니다(롬 8:16). 예를 들어 교회에서 손뼉 치며 손드는 것을 안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혼에서 나오는 생각입니다. 이것을 바울 사 도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육신의 생각이라고 했습니다(롬 8:7). 성령의 도움으로 흔적인 것을 이기는 것이 복이며 영적 승리입니다. 육적인 그리스도인과 세상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어 세상에서 재미 없는 사람이 될까봐 두렵다"고 합니다. "세상 재미 없어 어떻게 세상을 사느냐"라는 말을 하는 분들은 흔적 으로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이런 흔적인 것을 파괴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흔적인 것을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을 보고 심정이 너무나 답답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 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너희 눈을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마 13:14-16).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영적 말씀을 듣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기적을 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깨어져 변화 받으면 세상 재미가 없어질 것이 두려워서 못합니다. 마음이 완악해졌 고 죄와 유혹으로 마음이 강퍅해졌기 때문입니다(히 3:13). 마음이 완악해진 것은 흔적인 것이요, 세상적이요, 안목적이고 마귀 적인 것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주님께서는 문밖에서 두 드리고 계십니다. "볼찌어다 내가 문 밖에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 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 으리라"(계3:20). 우리는 들을 수 있는 귀, 볼 수 있는 눈, 열린 마음의 문이 되어야 하니다. 거듭난 새사람이 속사람은 이러한 흔적인 사람 속에 갇혀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께로 난 우리의 속사람을 통해 섬김을 받는 것이지 겉사람인 썩어질 육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본문 말씀 요한복음 12:24-25에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 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 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 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하셨습니다. 밀알 자체가 중요한 것보다도 밀알 속에 있는 생명이 껍 질을 깨고 나오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이며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예수를 믿고 영접하면 거듭난 자입니다. 그러나 거듭난 속사람을 둘러싸 고 있는 흔적인 겉사람이 깨어지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깨 어지면 찬송이 흘러나오고, 기도가 솟아나고,주님과 영적 교통이 일어 납니다. 여섯째, 겉사람이 어떻게 깨어집니까 이 겉사람이 어떻게 깨어집니까 한 알의 밀은 땅 속에 들어가야 껍 질이 깨어지고 싹이 돋습니다. 밀알이 길가에 떨어지면 새가 주워 먹 어버리므로 깨어질 틈이 없습니다. 따라서 열매도 맺지 못합니다. 돌 밭에 떨어지면 깨어져 싹이 돋는 것같지만 곧 말라 버립니다. 가시떨 기 위에 떨어지면 세상 염려와 재리의 유혹으로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옥토에 떨어져야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습니다 (마 13:3-23).
1) 씨앗이 떨어지는 환경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씨앗이 떨어지는 환경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어떤 환경은 길가와 같고, 어떤 환경은 돌밭과 같고, 어떤 환경은 가시떨기와 같 고, 어떤 환경은 옥토입니다. 깨어지고 변화받는 것이 환경에 따라 차 이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를 왜 좋은 학교에 보내려고 합니까 환 경에 따라 자녀들이 달려지기 때문입니다. 옥토에 떨어지는 사람은 빨 리 깨어집니다. 그래서 옥토같은 교회를 잘 선택하는 것이 참으로 중 요합니다. 무쇠를 아무리 뜨거운 태양 아래 두더라도 무쇠 그대로 입니다. 풀무 속에 넣어야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듯이 불이 활활 타는 풀 무 속같은 교회에 넣어야 나와 세상은 간곳없고 구속한 주만 바라보게 됩니다. 이것이 깨어지고 변화받는 것입니다. 흙의 색깔도 붉은 것, 검은 것, 노란 것 등으로 다양합니다.흙 자신 이 토기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토기장이의 손에 들어가야 식탁 위에 놓여질 수 있는 쓸모있는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아가 깨어 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손에 드렁가야 합니다. 흔적인 자아가 깨어지 고 부숴져야 내 속사람이 나올 수 있고 이 속사람으로 주님을 찬양할 때 주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이 속사람이 나올 수 있도록 겉사람이 깨 어지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겉사람은 이렇게 깨어지는 환경 속에 들어가는 것을 싫어하며 변화를 받을 때에 고통스러워 합니다. 믿고 변화받는 과정에서 자아가 깨어질 때 여러가지 아픔이 따르기도 합니다.
2) 환경의 고통이 하나님의 사랑의 손입니다. 하나님은 환경으로 고통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잘되던 일 이 예수를 믿은 다음에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될 때도 있습니다. 환경 이나 물질에 어려움이 오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며 환경이 자 기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흔적인 것을 깨기 위해 물질, 부부간 의 갈등 등을 사용하십니다. 사업이 망한 후에 예수님을 믿는 것, 부 부간의 불화로 예수님을 믿는 사례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풀무불 연단 의 일종입니다. 하나님은 레위기에서 말씀하십니다. "나도 그들을 대항하여 그 대적의 땅으로 끌어 갔음을 깨닫고 그 하 례 받지 아니한 마음이 낮아져서 그 죄악의 형벌을 순히 받으면 내가 야곱과 맺은 내 언약과 이삭과 맺은 내 언약을 생각하며 아브라함과 맺은 내 언약을 생각하고 그 땅을 권고하리라(레 26:41-42).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의 흔적인 교만을 낮추시기 위하여 대적의 땅 으로 끌고 갔습니다. 대적의 땅에서 그들의 흔적인 교만이 무너짐과 동시에 자연히 강퍅한 자아가 깨어져 영적인 속사람이 기도를 드릴 때 에 그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어 믿음의 선조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 대로 복지를 회복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를 영적으로 설명하자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즉 흔적인 자아를 세상으로 끌고 가서 고난을 받게 만들었을 때 하나님께 항의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인간적인 자아가 깨어지게 하는 환경을 복으로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이 낮아지게 하는 환경을 복으로 알아야 한다는 것이니다. 자기 마음이 낮아져 흔적인 것이 완전히 깨어졌을 때에야 하나님 의 복이 내려오는 것입니다. 완전히 깨어지고난 후, 자아가 없어져서 천부께 두 손 들고 나올 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 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약 1:2). 내가 당하고 있는 어려운 환경을 하나님의 손으로 믿고 인내로 온전 히 기쁘게 여기면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게 되고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겉사람이 깨어지기를 원해도 오직 겉사람을 깨어지게 해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분은 구경하러 교회에 왔다가 깨어져 변화를 받는가 하면 어떤 분은 '꼭 그렇게 믿어야 하나' 하며 교회를 다니면서 이런 흔적인 생각을 하는 것을 봅니다. 깨어지는 데는 두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어떤 분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에서 순간적으로 깨어져 변화를 받고 어떤 분은 조금씩 깨어지다 가 오랜 세월 후에야 완전히 깨어지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깨어지는 것은 내 마음대로가 아니요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입니다.그러나 어떤 환경에 들어가느냐 하는 것은 나의 책임입니다. 내가 빨리 깨어질 수 있는 환경, 즉 교회를 가야 합니다. 일곱째, 흔적인 것이 깨어지면 세상일에 대해 관심이 없어집니다. 흔적인 것이 깨어지면 세상의 하찮은 일에 대한 관심이 차차 줄어듭니다. 예전에는 그렇게 좋았던 것들이 별로 좋아히지 않습니다.은혜를 받고도 세상 것을 좋아한다면 아직도 자아적인 것을 그대로 가지고 있 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세상 욕심이 없어지고 이생의 자랑,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을 자극하는 세상의 것들에는 관심이 적어지며 주님이 내 삶 가운데 주시는 축복에 온전한 감사를 주께 돌리고 싶어 집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죄의 종에서 (육은 죄를 섬기) 구원시켜 주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는데 다시는 겉사람의 종이 되지 말라 고 바울 사도가 강조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로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사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 5:1). 자아를 나타내며 교만했던 흔적인 것이 전부 다 깨어지고난후 거듭 난 속사람이 자유함을 얻게 됩니다. 이 자유함을 얻고 나면 감정, 혈 기, 흔적인 것은 간곳 없고 내 마음 속에 속사람의 평화와 기쁨이 넘 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 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요 7:37-38). 여덟째, 자아가 깨어지면 생수의 강이 흘러납니다. 자아가 깨어지고 나니 영적인 사람, 속사람이 나오면서 나의 삶을 풍 성하게 해주는 생수의 강이 흘러나게 됩니다.예수를 아무리 오래 믿었 어도 이 흔적인 것이 깨어지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진정한 교통이 없습니다. 깨어지면 내 마음이 평안하고 기뻐 마음껏 주님께 감사와 영광 을 돌리는 자유함을 누리게 됩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으니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종의 멍에, 즉 흔적인 것에 얽매이지 말아야겠습니다.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나 성령님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 치겠느냐"(갈 3:3). 결코 흔적으로 마쳐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자유함을 얻 은 속사람에게는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듯 새로운 역사가 있습니다. 이 자유함으로 예수를 믿으면 아무 거리낌없이 손도 들고 손뼉도 칠 수 있고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이렇게 될 수 있도 록 기도하고 사모하는 각 심령 속에 주 예수님의 은혜의 생수가 넘쳐 흐르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하나님은 인간의 자아가 나타나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우리 속에는 타고난 혼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타고난 이기주의적 자 기 욕심, 곧 자아가 하나님과 나 사이의 교통을 막습니다. 특별한 죄 를 지어서가 아니라 내 속에 있는 잘못된 지삭, 감정, 의지가 나와 한 님의 영적 교통을 방해하니다. 자아, 즉 나라는 존재가 내 생각을 주 장합니다. 원수 마귀가 나의 혼에 작전 본부를 설치하고 자아를 나타 내도록 조종합니다. 자아가 나타나는 것을 성경에서는 교만이라 하며 이는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 중의 하나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 시기를,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눅 9:25). 세상과 정반대되는 이야기입니다. 이 진리를 깨달으면 세상의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이 구절에서 "자기를 부인하고"의 "자기"란 타고난 자아아, 즉 내 혼을 두고 말합니다. 흔적인 것을 부인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자신의 '자아'를 부인해야 한다는 것, 즉 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영을 둘러싸고 있는 자아가 하나님과 나의 영광의 교통에 방 해가 됩니다. 영은 거듭난 것이나 혼은 거듭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자아는 언제나 나와 함께하므로 떼어 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23절에 계속하여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했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져야 할 십자가 중에 하나가 바로 자아라고 하는 십자가입니다. "날마다의 제 십자가를 지고"란 뜻을 자아와 관련시키면 흔적인 자아 를 날마다 깨어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흔적인 자아를 깨지 못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셋째, 자아를 깨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도우심과 자신의 노력이 필요 합니다. 영적인 것이 나타나는 것을 방해하는 자아적인 것을 깨기 위해서는 자기의 노력이 필요하고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 간구 하면서 내가 주님의 긍휼을 인내하며 기다릴 때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바울 사도는 이 자아적인 것을 아래와 같이 표현했습니다. "혈과 육은 하나님이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고전 15:50). 즉 흔적인 것으로는 절대로 구원을 받지 못하며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도 요한복음에서 말씀하시기를, "영접하는 자 그 일므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 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 1:12-13).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자아저이고 흔적인 혈통, 육정 및 사람의 뜻으로 난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으로 영이 거듭나서 되는 것입니다. 자 아적인 것, 흔적인 것, 타고난 것을 부인할 때에 하나님의 생명이 나 타난다는 말입니다. 흔적인 것은 안정이 없고, 혼돈하고, 혼미하며, 여러가지 문제를 가져옵니다. 자기 중심적인 흔적인 것 때문에 교회에 분열이 일어나고, 부부가 헤어지고, 세상이 어지럽습니다. 이 흔적인 것이 우리를 파괴하려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어떤 분은 흔 적으로 주님을 열심히 섬기면서 만족해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영 원한 것이 되지 못합니다.
넷째, 흔적인 것이 왜 장애물이 됩니까 그러면 자아란 것,타고난 힘, 자기 흔적인 것이 왜 은혜받는데 장애 물이 됩니까 영적이고 새사람인 속사람과 타고난 흔적인 겉사람은 정 반대 길을 가기 때문입니다. 거듭난 영과 타고난 혼은 동질이 아닙니다. 어떤 가정에 잘 믿는 아내가 있고 믿지 않는 남편이 있다고 할때, 믿는 일에는 언제나 의견이 다릅니다. 영이 거듭난 사람과 흔적인 사람은 서로 동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영적으로는 열심히 기도하고 싶었으나 흔적인 것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영적인 면과 흔적인 면이 상반되는 사실을 깨닫게 자세 히 기룩한 말씀이 로마서 7장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되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 내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 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롬 7:21-23). 내가 거듭난 속사람으로는 손을 들고 손뼉을 치며 하나님을 찬양하면 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꼭 그렇게 해야만 하 나' 하는 생각은 혼에서 오는 것입니다. 영적인 면에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는 아무런 의문이 없습니다. 언제나 의심과 혼동을 주는 것은 흔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속사람과 흔적인 겉사람이 싸울 때 영적인 것이 이기지 못하기 때문에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 다"(롬 7:24)라고 탄식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영은 제일 가운데 있고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혼이며 이 혼을 담고 있는 것이 육, 즉 우리의 몸입니다. 속사람이 속 에서 거듭나서 밖으로 나오려고 하는데 흔적인 것이 둘러싸서 막고 있 으므로 하나님과 나 사이에 교통이 되지 않습니다. 영적인 속사가이 흔적인 겉사람을 이기려고 눈물로 기도하고 호소할 때 성령님이 역사하 시어 우리의 영광 하나가 되셔서 흔적인 것을 이기고 승리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 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님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으라"(롬 8:1-2). 다섯째, 성령님만이 내 속삶을 도우실 수 있습니다. 내 속사람을 도울 수 있는 것은 나의 지혜나, 세상의 부귀나, 처자나 친구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진리의 영이신 신령만이 도울 수 있습니다. 성령님만이 친히 우리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 을 증거합니다(롬 8:16). 예를 들어 교회에서 손뼉 치며 손드는 것을 안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혼에서 나오는 생각입니다. 이것을 바울 사 도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육신의 생각이라고 했습니다(롬 8:7). 성령의 도움으로 흔적인 것을 이기는 것이 복이며 영적 승리입니다. 육적인 그리스도인과 세상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어 세상에서 재미 없는 사람이 될까봐 두렵다"고 합니다. "세상 재미 없어 어떻게 세상을 사느냐"라는 말을 하는 분들은 흔적 으로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이런 흔적인 것을 파괴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흔적인 것을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을 보고 심정이 너무나 답답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 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너희 눈을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마 13:14-16).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영적 말씀을 듣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기적을 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깨어져 변화 받으면 세상 재미가 없어질 것이 두려워서 못합니다. 마음이 완악해졌 고 죄와 유혹으로 마음이 강퍅해졌기 때문입니다(히 3:13). 마음이 완악해진 것은 흔적인 것이요, 세상적이요, 안목적이고 마귀 적인 것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주님께서는 문밖에서 두 드리고 계십니다. "볼찌어다 내가 문 밖에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 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 으리라"(계3:20). 우리는 들을 수 있는 귀, 볼 수 있는 눈, 열린 마음의 문이 되어야 하니다. 거듭난 새사람이 속사람은 이러한 흔적인 사람 속에 갇혀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께로 난 우리의 속사람을 통해 섬김을 받는 것이지 겉사람인 썩어질 육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본문 말씀 요한복음 12:24-25에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 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 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 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하셨습니다. 밀알 자체가 중요한 것보다도 밀알 속에 있는 생명이 껍 질을 깨고 나오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이며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예수를 믿고 영접하면 거듭난 자입니다. 그러나 거듭난 속사람을 둘러싸 고 있는 흔적인 겉사람이 깨어지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깨 어지면 찬송이 흘러나오고, 기도가 솟아나고,주님과 영적 교통이 일어 납니다. 여섯째, 겉사람이 어떻게 깨어집니까 이 겉사람이 어떻게 깨어집니까 한 알의 밀은 땅 속에 들어가야 껍 질이 깨어지고 싹이 돋습니다. 밀알이 길가에 떨어지면 새가 주워 먹 어버리므로 깨어질 틈이 없습니다. 따라서 열매도 맺지 못합니다. 돌 밭에 떨어지면 깨어져 싹이 돋는 것같지만 곧 말라 버립니다. 가시떨 기 위에 떨어지면 세상 염려와 재리의 유혹으로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옥토에 떨어져야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습니다 (마 13:3-23).
1) 씨앗이 떨어지는 환경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씨앗이 떨어지는 환경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어떤 환경은 길가와 같고, 어떤 환경은 돌밭과 같고, 어떤 환경은 가시떨기와 같 고, 어떤 환경은 옥토입니다. 깨어지고 변화받는 것이 환경에 따라 차 이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를 왜 좋은 학교에 보내려고 합니까 환 경에 따라 자녀들이 달려지기 때문입니다. 옥토에 떨어지는 사람은 빨 리 깨어집니다. 그래서 옥토같은 교회를 잘 선택하는 것이 참으로 중 요합니다. 무쇠를 아무리 뜨거운 태양 아래 두더라도 무쇠 그대로 입니다. 풀무 속에 넣어야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듯이 불이 활활 타는 풀 무 속같은 교회에 넣어야 나와 세상은 간곳없고 구속한 주만 바라보게 됩니다. 이것이 깨어지고 변화받는 것입니다. 흙의 색깔도 붉은 것, 검은 것, 노란 것 등으로 다양합니다.흙 자신 이 토기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토기장이의 손에 들어가야 식탁 위에 놓여질 수 있는 쓸모있는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아가 깨어 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손에 드렁가야 합니다. 흔적인 자아가 깨어지 고 부숴져야 내 속사람이 나올 수 있고 이 속사람으로 주님을 찬양할 때 주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이 속사람이 나올 수 있도록 겉사람이 깨 어지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겉사람은 이렇게 깨어지는 환경 속에 들어가는 것을 싫어하며 변화를 받을 때에 고통스러워 합니다. 믿고 변화받는 과정에서 자아가 깨어질 때 여러가지 아픔이 따르기도 합니다.
2) 환경의 고통이 하나님의 사랑의 손입니다. 하나님은 환경으로 고통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잘되던 일 이 예수를 믿은 다음에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될 때도 있습니다. 환경 이나 물질에 어려움이 오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며 환경이 자 기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흔적인 것을 깨기 위해 물질, 부부간 의 갈등 등을 사용하십니다. 사업이 망한 후에 예수님을 믿는 것, 부 부간의 불화로 예수님을 믿는 사례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풀무불 연단 의 일종입니다. 하나님은 레위기에서 말씀하십니다. "나도 그들을 대항하여 그 대적의 땅으로 끌어 갔음을 깨닫고 그 하 례 받지 아니한 마음이 낮아져서 그 죄악의 형벌을 순히 받으면 내가 야곱과 맺은 내 언약과 이삭과 맺은 내 언약을 생각하며 아브라함과 맺은 내 언약을 생각하고 그 땅을 권고하리라(레 26:41-42).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의 흔적인 교만을 낮추시기 위하여 대적의 땅 으로 끌고 갔습니다. 대적의 땅에서 그들의 흔적인 교만이 무너짐과 동시에 자연히 강퍅한 자아가 깨어져 영적인 속사람이 기도를 드릴 때 에 그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어 믿음의 선조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 대로 복지를 회복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를 영적으로 설명하자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즉 흔적인 자아를 세상으로 끌고 가서 고난을 받게 만들었을 때 하나님께 항의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인간적인 자아가 깨어지게 하는 환경을 복으로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이 낮아지게 하는 환경을 복으로 알아야 한다는 것이니다. 자기 마음이 낮아져 흔적인 것이 완전히 깨어졌을 때에야 하나님 의 복이 내려오는 것입니다. 완전히 깨어지고난 후, 자아가 없어져서 천부께 두 손 들고 나올 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 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약 1:2). 내가 당하고 있는 어려운 환경을 하나님의 손으로 믿고 인내로 온전 히 기쁘게 여기면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게 되고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겉사람이 깨어지기를 원해도 오직 겉사람을 깨어지게 해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분은 구경하러 교회에 왔다가 깨어져 변화를 받는가 하면 어떤 분은 '꼭 그렇게 믿어야 하나' 하며 교회를 다니면서 이런 흔적인 생각을 하는 것을 봅니다. 깨어지는 데는 두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어떤 분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에서 순간적으로 깨어져 변화를 받고 어떤 분은 조금씩 깨어지다 가 오랜 세월 후에야 완전히 깨어지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깨어지는 것은 내 마음대로가 아니요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입니다.그러나 어떤 환경에 들어가느냐 하는 것은 나의 책임입니다. 내가 빨리 깨어질 수 있는 환경, 즉 교회를 가야 합니다. 일곱째, 흔적인 것이 깨어지면 세상일에 대해 관심이 없어집니다. 흔적인 것이 깨어지면 세상의 하찮은 일에 대한 관심이 차차 줄어듭니다. 예전에는 그렇게 좋았던 것들이 별로 좋아히지 않습니다.은혜를 받고도 세상 것을 좋아한다면 아직도 자아적인 것을 그대로 가지고 있 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세상 욕심이 없어지고 이생의 자랑,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을 자극하는 세상의 것들에는 관심이 적어지며 주님이 내 삶 가운데 주시는 축복에 온전한 감사를 주께 돌리고 싶어 집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죄의 종에서 (육은 죄를 섬기) 구원시켜 주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는데 다시는 겉사람의 종이 되지 말라 고 바울 사도가 강조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로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사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 5:1). 자아를 나타내며 교만했던 흔적인 것이 전부 다 깨어지고난후 거듭 난 속사람이 자유함을 얻게 됩니다. 이 자유함을 얻고 나면 감정, 혈 기, 흔적인 것은 간곳 없고 내 마음 속에 속사람의 평화와 기쁨이 넘 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 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요 7:37-38). 여덟째, 자아가 깨어지면 생수의 강이 흘러납니다. 자아가 깨어지고 나니 영적인 사람, 속사람이 나오면서 나의 삶을 풍 성하게 해주는 생수의 강이 흘러나게 됩니다.예수를 아무리 오래 믿었 어도 이 흔적인 것이 깨어지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진정한 교통이 없습니다. 깨어지면 내 마음이 평안하고 기뻐 마음껏 주님께 감사와 영광 을 돌리는 자유함을 누리게 됩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으니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종의 멍에, 즉 흔적인 것에 얽매이지 말아야겠습니다.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나 성령님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 치겠느냐"(갈 3:3). 결코 흔적으로 마쳐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자유함을 얻 은 속사람에게는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듯 새로운 역사가 있습니다. 이 자유함으로 예수를 믿으면 아무 거리낌없이 손도 들고 손뼉도 칠 수 있고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이렇게 될 수 있도 록 기도하고 사모하는 각 심령 속에 주 예수님의 은혜의 생수가 넘쳐 흐르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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