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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 요한의 세 번째 증거 (요1: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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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 요한의 첫 번째 증거는 15절에 하였지만 그러나 더 구체적인 세례요한의 첫 번째 증거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 웠느니라" 천국이 가까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부르짖었습니까 눈이 보이는 천국을 말한 것이 아니었다. 곧 예수를 두고 말한 것이었다. 세례 요한의 첫 번째 증거가 회개를 촉구하고 약간 그 무엇을 감추는 듯한 외침이었다면 두 번째 증거는 이제 좀더 확실하게 그리고 오늘 세 번째 증거는 예수를 더 확실하게 나타내는 증거이다. 세례요한의 삶은 예수를 증거하기 위해 이 땅에 온자 였다. 7절 증거. 8, 15, 19, 32, 34절 계속 증거하고 있다. 세 번째 증거에서는 세례요한 자신이 누구라는 것에 대해서 확실하게 말하면서 예수를 다시 증거하고 있다. 세례요한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궁금해 했다. 특히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더욱 궁금해 했다. 그들에게 세례 요한은 자신을 무엇이라고 밝히고 있습니까 이 세례 요한의 행동에서 우리는 깨닫는 것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9 절 "네가 누구냐 물울 때에 요한 의 증거가 이러하니라 " 유대인들은 세례요한이 외치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사람에게 관심이 있었다. 저자가 누구냐 유대인들은 결국 종교 지도자들을 세례요한에게 보내어서 알아오도록 한 것이다 예루살렘으로부터 파견되었던 그들에게 세례요한은 자신을 확실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예수를 나타내고 있다.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왔다는 것은 바로 예루살렘 성전으로부터 파견된 가장 높은 지위를 가진 자들이 온 것을 말한다. 그들은 네가 전파한 말이 무슨 뜻이냐 묻지 아니했다. 네가 누구냐 사람에게 관심을 보였다. 여기에 대해 세례요한은 분명하게 자신을 밝혔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사람에게 관심을 보인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세계보다는 ㅋ에 나타난 것부터 보는 시대이다 학벌이 어떠냐 집안이 어떠냐 인물이 어떠냐 건강 하느냐 재산은 얼마나 되느냐 교회에서도 목사 학벌이 어느 정도냐 미남이냐 교회는 크냐 작으냐 눈에 보이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는 세상이다. 우리 예수님은 마지막 때에 "사람의 미혹을 받지 말라고 했다" (마24 4) 세례요한에게 수많은 인파들이 몰려들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는 말씀 앞에 많은 자들이 그 말씀을 들으려고 몰려왔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 온 이 종교 지도자들은 저가 누구냐 사람을 알아보기 위하여 왔다. 오늘날도 교회에 나와서 신앙생활 하는 자들 중에 사람을 보러 나오는 자들이 있다. 예수님의 예언대로 마지막 때는 많은 사람들이 사람의 미혹을 받게 될 것이다. 이 주님의 예언은 세상을 향해서 주신 말씀이 아니다. 성경은 불신자들을 위해서 주신 말씀이 아니다. 믿는 자들을 위해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다.
그렇다면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말라 !" 이 말씀은 바로 믿는 우리들에게 주신 말씀이다 마지막 때 많은 믿는 자들이 사람의 미혹을 받을 것이라는 주님의 예언의 말씀이다. 이런 미혹에서 내가 멀리 서있는 자가 되려면 무엇보다도 내가 어디에 마음을 두고 신앙 생활 하는게 아주 중요하다. 잠 4:23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사람에게 초점을 두면 안된다. 우리의 초점은 오직 예수에게 오직 말씀에 두고신앙생활 한다면 그 어떤 미혹도 이길 수가 있을 것이다. 사람이 누구냐 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가 그 분이 누구 신가 왜 그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는가 왜 그분이 다시 오실 것인가 이러한 질문이 우리 속에서 계속 되는 한 우리는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며 살지 않게 될 것이다. 히 3:1 "대제사장이신 X 를 깊이 생각하라" 20 절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 대 " 많은 사람들이 세례 요한을 그리스도로 알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한마디로 요한은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곧 메시아라는 말과 같다. 메시야는 히브리어이고 그리스도는 헬라어이다. 즉 하나님 으로부터 기름 받은 자 라는 뜻이다
 세례요한은 숨기지 아니했다고 했다. 온전히 드러내었다. 즉 확실하게 분명하게 밝혔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고. 증거자의 참된 모습을 우리는 보고있다. 증거자는 그것을 증거 하므로 사명이 다 끝난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증거자가 증거를 하는 그 자체가 되어 버린다면 이것은 증거자가 아니다. 주의 종들은 모두 증거자 일뿐이다. 글자 그대로 주님의 종이다. 그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도 아니고 오직 주님의 종이다. 종은 주인이 하라는 대로 한다. 섬기는 주인이 없다면 종도 필요 없다. 주님의 종은 오직 주님을 증거 하는 것이다. 그 이상 할 것도 없다. 오직 주님만 증거 하는 삶이 종의 삶이다. 세례요한은 그러한 삶을 온전히 우리에게 모범을 보여주었다. 오늘날 증거자들이 증거 할 것을 증거 하지 않고 다른 것들을 증거하고 있다. 올바른 증거자 라고 볼 수 없다. 성도들도 예외는 아니다. 예수께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 되라고 했다. 소금이 되라고 했다. 예수가 빛이고 소금이시므로 우리는 가는 곳마다 이 증거를 하는 것이 바로 빛과 소금의 사명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신앙을 보세요. 우리가 증거자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 예수를 증거 하기보다는 나를 더 증거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증거자의 삶은 그 증거하는 본체가 나타날 때 사라져 버려야 한다. 세례요한은 보세요. 요한 은 자신이 증거한 본체가 나타나시자 조용히 무대 위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예수를 위한 삶이 무엇입니까 기도하고, 말씀보고, 능력 받고, 하는 것입니까 물론 이런 것도 아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예수 안에서 내 자신이 부인되는 것이다. 기도하고, 말씀보고, 능력 받는 것 이 모두는 결국은 내 자신을 부인하기 위하는 하나의 과정이다. 한 알의 밀알이 썩지 아니하면 그대로 있겠다고 했다. 내 자신이 예수 안에서 온전히 썩어지고 나는 온데 간데 없고 오직 예수만 나타날 때 증거자의 삶을 살 수가 있을 것이다. 세례요한은 광야에서 30년동안 자신을 부인하며 광야에서 지냈다. 예수를 위해서 하나의 재물이 되기를 요한은 사모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어려울 때는 주님을 위해 살겠다고 해놓고 문제가 해결되면 혼자 영광을 누리고 만다. 주의 종들도 마찬가지다 교회개척 때는 주님만 의지하고 살다가 교회가 부흥되면 혼자 영광을 다 누린다. 세례요한은 수많은사람들이 몰려 왔지만 자신을 부인하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고 말하고 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마16:24) 21 절 "또 묻되 그러면 무엇 네가 엘리야냐. 가로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 요한이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말하자 이들은 계속 물어본다. 요한 은 엘리야도. 선지자도 아니다고 말한다. 예수님은 막9:11-12 세례요한을 엘리야로 말했다.
그렇다면 세례요한이 지금 거짓말하고 있는 것인가 또 세례요한은 선지자 처럼 저들의 죄를 책망하고 있다
그런데 선지자도 아니라고 하고있다. 지금 세례요한이 거짓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지금 종교 지도자들의 질문은 "네가 엘리야냐" 이 말은 "네가 구약의 엘리야 이냐 " 묻고 있는 것이다. "네가 선지자냐 " 이 말도 신 18:15 에서 모세가 나와 같은 선지자를 보낸다는 그 의미로 묻고 있는 것이다. 모세가 말한 한 선지자는 곧 예수를 뜻하므로 세례요한은 아니다고 말하고 있다. 예수님이 엘리야라고 말한 것은 영적으로 엘리야 같은 사명을 가지고 올 것을 말하고 것이고.저 유대인들은 구약의 엘리야를 말하는 것이므로 요한은 아니다고 말한 것이다
 만약에 구약의 엘리야가 다시 태어난다면 이것은 큰일나는 소리다. 저 당시의 종교인들이 얼마나 우매 한자들이었는지 우리는 알 수 있다. 저들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했다. 오늘날도 성경을 문자 적으로만 해석하는 자들이 많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한 책이다 하나님이 영 이시므로 즉 영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성경 아가서를 읽다가 무슨 하나님 말씀이 이렇게 추잡스러우냐 하고 덮어 버렸다고 한다. 문자적으로만 보기 때문이다. 성경 곳곳에 나오는 성적인 문제들. 문자적으로는 해석이 나올 수 없다. 영적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눅24:44)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이것이라 " 모든 성경의 해석의 열쇠는 예수 그리스도 이시다 . 예수로 풀 때 우리의 영안이 열리게 될 것이다. (고후3:15-16)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오히려 그 마음을 덮었도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어지리라 22-23 절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다 " 그러면 도대체 너는 누구냐 묻는 그들에게 세례 요한은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말한다. 구약의 이사야 선자자의 말을 인용. 사 40:3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직접 인용 하므로서 세례 요한이 자기 증언을 예언 성취의 형식으로 제시하고 있다.
 광야 삭막한 곳. 외치는 자의 소리 구원의 메시지. 왜 외쳤는가 주님의 길을 곧게 하려고. 당시에 유대인들이 기다리고 있던 메시야에 대한 생각이 잘못 되어 있었다. 그 잘못된 생각을 고쳐서 주님이 오시는 길을 바르게 하려고 세례 요한은 외쳤다. '적 용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잘못된 메시야 관을 살펴보면서 우리에게도 잘못된 메시야 관은 없는지 즉 예수에 대한 잘못된 것은 없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1. 아담과 아브라함에게 약속되었던 "그 자손이" 메시야를 언급 한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유대인들은 그 자손이 바로 자기들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 자손이 예수를 두고 한 말이라고 보는 사람은 없었음. 그들은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요 8:33 ) 예수도 자기들과 똑같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만 보았다. 예수야 말로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모든 것들이 성취되는 자손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갈3:16)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우리의 구원은 누구의 자손이냐가 아니라 오직 예수를 믿느냐 안 믿느냐 에 달려있다. '행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 그래서 세례 요한은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 외친 이다
2. 메시야를 육적인 해방자로 알고 있었다. 다윗처럼 이웃의 모든 대적 국가들을 쳐부수고 모든 나라를 통치하는 그런 메시야를 기다렸다. 이렇게 잘못 되어있는 저들의 메시야에 대한 사고 방식을 깨뜨리기 위해서 하나님 께서는 한 예고자를 보내시게 된 것이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회개하라"고 외쳤다. 육적으로만 모든 것을 보고 살아가는 저들에게회개하고 영적인 세계를 바라보라고 외쳤다. 오늘날도 우리의 신앙이 얼마나 육적인 면으로만 자꾸 빠져 들어가는지 모른다. 영적인 세계를 바라보는 것보다 육적인 문제 때문에 예수를 바라보게 되고 하는 우리들 모습이 저 유대인들의 모습과 동일하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의 육적인 문제도 해결 해주신다. 그러나 해결이 안될 수도 있다 그러나 영적인 문제는 우리가 기도하면 반드시 해결해 주신다. 저 유대인들처럼 육적 문제만 해결해 주는 그런 메시야를 기다리고 갈망한다면 우리도 메시야를 못볼수도 있다. 그러한 사고방식이 우리에게 있다면 우리는 먼저 철저히 회개하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우리의 육적인 문제도 해결하여 주실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육적인 문제는 해결 안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도 바울이 병에 걸렸지만 하나님은 고쳐주지 아니했다. 그 육체의 가시 때문에 바울은 더 큰일을 감당 할 수 있었다. 그때 고백한 바울의 말 (고후12:9)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 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3. 당시에 종교관은 올바로 고쳐져야만 했다. 형식과 의식으로 만연된 종교 였다.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고 경건의 모양만 갖춘 형태였다. 이런 이들에게 예수님은 진리의 메시지를 선포 할 것인데 인간들이 회개하고 그 진리를 받아 들여야만 했기 때문에 예수가 나타나기 전에 세례요한은 사람들에게 회개가 이루어져야 할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회개를 외쳤다 이제 마지막 때에도 예수가 재림하기 전에 주의 종들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메시지가 선포되고 있다. 재림직전 까지 두 증인들을 통하여 알리게 될 것이다 잘못된 종교관, 형식적인 우리의 신앙이 이런 진리의 소리에 깨어나야 할 것이다. 이 시대 이 상태에서 주님 오시면 안된다. 주님이 오실 때까지 주의 종들을 복음을 외쳐야 된다. 초림때 처럼 형식과 외식으로 가득찬 이 시대의 신앙인 들의 상태를 보고 주의 종들은 외쳐야 된다. 그외침을 듣고 성도들은 깨어나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어찌할꼬" 하는 회개의 역사가 다시한번 이 땅에 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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