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 요한이 증거한 그리스도 (요1:19-34)
본문
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님으로부터 쓰임을 받은 세례 요한이 어떻게 쓰임을 받았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증거한 내용에 관해서 살펴보면서 이 말씀을 통하여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1.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19-23절)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애를 씁니다. 그리고 그 욕심 때문에 끊임없이 죄를 짓다가 이 세상을 떠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것들이 죄로 말미암아 나오게 된 것을 알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무엇이 죄이고 무엇이 잘못인지를 모릅니다. 그래서 자신이 하나님께 잘못을 범해놓고도 잘못한 일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신의 욕심들이 자기 죄에서 나오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어야만 우리들은 비로소 주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요한복음은 다른 복음서와 달리 처음부터 예수님에 대해서 드러내 놓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은 그 첫 번째 증인 입니다. 그의 증언에 의하면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 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예수님을 통해서 자신을 온전히 나타내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게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들리는 말씀, 볼 수 있는 말씀으로 나타나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이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님을 증거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그 요한은 사람들에게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그는 약대 털옷을 입고 음식은 석청과 메뚜기를 먹었다고 합니다.(마 3:4). 또한 그는 광야에서 외쳤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선지자로 생각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파견해서 조사하게 했습니다. 오늘 본문 1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요한에게 묻기를 “네가 누구냐”라고 했습니다. 이런 질문이 왜 나왔는가 눅 3:15에 그 답이 나와 있습니다. 눅 3:15에 보시면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의논하니”(15절)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 나름대로 구약에서 예언하신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지만 결국 메시야를 기다린다는 점에서는 동일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요한이 메시야가 아닌가 하고 물어 보게 된 것이다. 요한은 즉각적으로 “나는 메시야(그리스도)가 아니다”(20절)라고 밝혔습니다. “네가 엘리야냐” “나는 아니다.” “그러면 네가 그 선지자냐”라고 또 질문했다(21절). 신 18:18에 예언된 “그 선지자”인지 물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세례 요한은 분명히 답변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단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말 합니다.(23절). “광야의 소리”라는 말은 요한이 메시야가 아니라는 말이 담겨져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유대인들로 하여금 구약 이사야 40장의 상황으로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이 분명히 말씀이신 그리스도가 아니라 소리라고 한다. 소리는 소리로써 사명을 감당할 뿐 입니다. 세례 요한은 모든 관심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돌리기를 원했다. 세례 요한은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했기에 그런 겸손한 행동을 취했을까요 우리가 관심을 갖고 보아야 하는 부분입니다.
2. 그리스도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으로 증거함(24-31절) 세례 요한은 이사야 말씀을 인용합니다. 사 40:3-5에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대저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서 많은 사람들이 볼 것이라고 했는데 그 여호와의 영광이 지금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여기서 말한 어린양이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제물로써 드려진 어린양 이라는 말입니다. 또한 우리들의 죄를 위해서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양”(사 53:7)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어린양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어린양은 구약 성경에 보면 제사를 드릴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희생의 재물로 드려집니다. 예수님이 어린양으로 하나님께 드려진다는 것은 우리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하나님께 재물로 드려진다느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가리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고 했습니다. 여기 죄를 ‘지고 가다’는 말은 ‘덜어주다’, ‘벗겨 주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죄를 지고 멀리 우리 눈에 보이지 않도록 치워 버렸다는 말 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들의 죄를 해결해 주시는 중보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 입니다. 그 어느 누구도 이같은 어린양의 재물이 될 수 없습니다. 이 말은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될 수 없다는 말 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먼저 선언했던 것입니다. 세상은 어두움에 속해 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릅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에 대해서는 더더욱 알지 못 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누군가가 조금 위대하게 보이면 제각기 자기가 원하고 기다리는 모습으로 메시야가 온 것으로 착각하고 메시야인가를 묻고 있습니다. 우리는 간혹 이단에 빠진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무엇이 복음인지 알았더라면 그렇게 헤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 생활을 잘 하다가도 “그 동안 내가 찾는 진짜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무엇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을 못한 것 입니다. 여러분들과 나는 우리 죄를 대속해 주신 어린양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믿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이 세상에 속한 자들이 아닙니다. 교회박에 있는자들은 예수님에 관해서 혹은 자기 자신에 관해서 알지 못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예수님께서 정죄했던 어두움의 세상을 알고, 우리 자신을 알고 있는 자들입니다. 어두움의 세상을 알고 있다면 우리들은 그 세상을 멀리해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밖의 사람들과 똑같이 행동하면서 우리가 과연 예수님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세상이 요구하는 것을 부정해야 하니다. 그런 죄된 세상을 부정하려면 우리 자신들부터 부정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자신을 부인하지 않고는 주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 우리들은 우리 자신을 부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뛰어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세례 요한은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분은 ‘나보다 앞서 계시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영원하신 분 이십니다. 그 분을 증거한 삶을 살아야 한다.
3. 성부 하나님께서도 그리스도를 증거 하셨습니다.(32-34절)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에서 성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이 음성을 들었습니다. “요한이 또 증거하여 가로되 내가 보매 성령님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님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님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노라 하니라”(요 1:32-3
4).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예수님 위에 “성령님이 비둘기 같이 임했다”고 합니다. 성령님이 비둘기 같이 임했다는 것은 성령님이 비둘기라는 말이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비둘기 같이 임하셨다는 것은 이 예수님이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고 화평하게 하시려고 오셨다는 뜻입니다.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입니다. 또한 좋은 소식을 제공해 줍니다. 하나님 쪽에서 제공한 좋은 사랑의 선물이 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8장에 보면 노아는 비둘기를 사람들보다 앞서 보내어 좋은 소식을 가져오기를 기대했습니다. 비둘기 같은 성령님이 임하셨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바로 이와 같은 일을 하실 것을 증거해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예수님 위에 비둘기 같은 성령님이 임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거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성부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하여 증거하고 계십니다. 고전 12:3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님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했다. 우리들에게도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야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의 구주이심을 믿게 됩니다. 성령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도록 증거해 주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한다면 이미 내 안에 성령님께서 나와 함께 해 주셨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의 자녀임이 분명해 졌습니다. 의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성령님께서 나와 함께 해 주셔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게 해 주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이보다 더 큰 복이 있겠는가 천하를 얻고도 구원을 받지 못하고 멸망받아 지옥간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세례 요한을 통하여 무엇을 보여 주시기를 원하시는가 그것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들도 그 세례 요한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례 요한이 하나님으로부터 쓰임을 받았을 때 어떤 삶의 모습을 보였습니까 그는 예수그리스도를 증거 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그토록 예언해 주셨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말씀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 빛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했습니다. 메시야를 기다린 사람들이 메시야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거부한 자들에게 세례 요한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받고 있습니다. 그가 오시리라고 예언했던 그 메시야라고 합니다. 우리들의 죄에서 구원하신 어린양이라고 합니다. 우리들은 세례 요한의 외침을 통하여 기록된 이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들을 뿐만 아니라 이 분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원래 죄가 전혀 없으신 분이십니다. 우리들의 죄를 담당하신 분이ㄷ십니다. 우리들의 죄 때문에 마치 어린양과 같이 희생을 당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들을 자유케 하셨습니다. 이것은 말로 다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의 결정체였습니다. 이같은 사랑으로 우리들을 부르셔서 사명을 주셨습니다. 요 15:16-17에 보면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로라”고 했습니다. 우리들을 택한 이유를 두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들에게 항상 신앙의 열매를 맺고 그 열매가 우리들에게 떠나지 않게 하려고 우리들을 택하셨습니다. 나에게 있어서 그 열매들이 있는가
둘째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엇을 위해서든지 기도하면 응답해 주시려고 우리들을 택해 주셨다고 합니다. 우리 이 말씀 안에서 승리하며 살아야 합니다.
1.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19-23절)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애를 씁니다. 그리고 그 욕심 때문에 끊임없이 죄를 짓다가 이 세상을 떠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것들이 죄로 말미암아 나오게 된 것을 알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무엇이 죄이고 무엇이 잘못인지를 모릅니다. 그래서 자신이 하나님께 잘못을 범해놓고도 잘못한 일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신의 욕심들이 자기 죄에서 나오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어야만 우리들은 비로소 주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요한복음은 다른 복음서와 달리 처음부터 예수님에 대해서 드러내 놓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은 그 첫 번째 증인 입니다. 그의 증언에 의하면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 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예수님을 통해서 자신을 온전히 나타내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게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들리는 말씀, 볼 수 있는 말씀으로 나타나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이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님을 증거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그 요한은 사람들에게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그는 약대 털옷을 입고 음식은 석청과 메뚜기를 먹었다고 합니다.(마 3:4). 또한 그는 광야에서 외쳤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선지자로 생각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파견해서 조사하게 했습니다. 오늘 본문 1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요한에게 묻기를 “네가 누구냐”라고 했습니다. 이런 질문이 왜 나왔는가 눅 3:15에 그 답이 나와 있습니다. 눅 3:15에 보시면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의논하니”(15절)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 나름대로 구약에서 예언하신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지만 결국 메시야를 기다린다는 점에서는 동일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요한이 메시야가 아닌가 하고 물어 보게 된 것이다. 요한은 즉각적으로 “나는 메시야(그리스도)가 아니다”(20절)라고 밝혔습니다. “네가 엘리야냐” “나는 아니다.” “그러면 네가 그 선지자냐”라고 또 질문했다(21절). 신 18:18에 예언된 “그 선지자”인지 물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세례 요한은 분명히 답변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단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말 합니다.(23절). “광야의 소리”라는 말은 요한이 메시야가 아니라는 말이 담겨져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유대인들로 하여금 구약 이사야 40장의 상황으로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이 분명히 말씀이신 그리스도가 아니라 소리라고 한다. 소리는 소리로써 사명을 감당할 뿐 입니다. 세례 요한은 모든 관심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돌리기를 원했다. 세례 요한은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했기에 그런 겸손한 행동을 취했을까요 우리가 관심을 갖고 보아야 하는 부분입니다.
2. 그리스도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으로 증거함(24-31절) 세례 요한은 이사야 말씀을 인용합니다. 사 40:3-5에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대저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서 많은 사람들이 볼 것이라고 했는데 그 여호와의 영광이 지금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여기서 말한 어린양이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제물로써 드려진 어린양 이라는 말입니다. 또한 우리들의 죄를 위해서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양”(사 53:7)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어린양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어린양은 구약 성경에 보면 제사를 드릴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희생의 재물로 드려집니다. 예수님이 어린양으로 하나님께 드려진다는 것은 우리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하나님께 재물로 드려진다느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가리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고 했습니다. 여기 죄를 ‘지고 가다’는 말은 ‘덜어주다’, ‘벗겨 주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죄를 지고 멀리 우리 눈에 보이지 않도록 치워 버렸다는 말 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들의 죄를 해결해 주시는 중보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 입니다. 그 어느 누구도 이같은 어린양의 재물이 될 수 없습니다. 이 말은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될 수 없다는 말 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먼저 선언했던 것입니다. 세상은 어두움에 속해 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릅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에 대해서는 더더욱 알지 못 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누군가가 조금 위대하게 보이면 제각기 자기가 원하고 기다리는 모습으로 메시야가 온 것으로 착각하고 메시야인가를 묻고 있습니다. 우리는 간혹 이단에 빠진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무엇이 복음인지 알았더라면 그렇게 헤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 생활을 잘 하다가도 “그 동안 내가 찾는 진짜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무엇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을 못한 것 입니다. 여러분들과 나는 우리 죄를 대속해 주신 어린양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믿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이 세상에 속한 자들이 아닙니다. 교회박에 있는자들은 예수님에 관해서 혹은 자기 자신에 관해서 알지 못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예수님께서 정죄했던 어두움의 세상을 알고, 우리 자신을 알고 있는 자들입니다. 어두움의 세상을 알고 있다면 우리들은 그 세상을 멀리해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밖의 사람들과 똑같이 행동하면서 우리가 과연 예수님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세상이 요구하는 것을 부정해야 하니다. 그런 죄된 세상을 부정하려면 우리 자신들부터 부정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자신을 부인하지 않고는 주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 우리들은 우리 자신을 부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뛰어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세례 요한은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분은 ‘나보다 앞서 계시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영원하신 분 이십니다. 그 분을 증거한 삶을 살아야 한다.
3. 성부 하나님께서도 그리스도를 증거 하셨습니다.(32-34절)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에서 성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이 음성을 들었습니다. “요한이 또 증거하여 가로되 내가 보매 성령님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님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님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노라 하니라”(요 1:32-3
4).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예수님 위에 “성령님이 비둘기 같이 임했다”고 합니다. 성령님이 비둘기 같이 임했다는 것은 성령님이 비둘기라는 말이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비둘기 같이 임하셨다는 것은 이 예수님이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고 화평하게 하시려고 오셨다는 뜻입니다.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입니다. 또한 좋은 소식을 제공해 줍니다. 하나님 쪽에서 제공한 좋은 사랑의 선물이 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8장에 보면 노아는 비둘기를 사람들보다 앞서 보내어 좋은 소식을 가져오기를 기대했습니다. 비둘기 같은 성령님이 임하셨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바로 이와 같은 일을 하실 것을 증거해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예수님 위에 비둘기 같은 성령님이 임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거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성부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하여 증거하고 계십니다. 고전 12:3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님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했다. 우리들에게도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야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의 구주이심을 믿게 됩니다. 성령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도록 증거해 주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한다면 이미 내 안에 성령님께서 나와 함께 해 주셨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의 자녀임이 분명해 졌습니다. 의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성령님께서 나와 함께 해 주셔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게 해 주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이보다 더 큰 복이 있겠는가 천하를 얻고도 구원을 받지 못하고 멸망받아 지옥간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세례 요한을 통하여 무엇을 보여 주시기를 원하시는가 그것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들도 그 세례 요한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례 요한이 하나님으로부터 쓰임을 받았을 때 어떤 삶의 모습을 보였습니까 그는 예수그리스도를 증거 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그토록 예언해 주셨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말씀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 빛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했습니다. 메시야를 기다린 사람들이 메시야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거부한 자들에게 세례 요한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받고 있습니다. 그가 오시리라고 예언했던 그 메시야라고 합니다. 우리들의 죄에서 구원하신 어린양이라고 합니다. 우리들은 세례 요한의 외침을 통하여 기록된 이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들을 뿐만 아니라 이 분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원래 죄가 전혀 없으신 분이십니다. 우리들의 죄를 담당하신 분이ㄷ십니다. 우리들의 죄 때문에 마치 어린양과 같이 희생을 당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들을 자유케 하셨습니다. 이것은 말로 다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의 결정체였습니다. 이같은 사랑으로 우리들을 부르셔서 사명을 주셨습니다. 요 15:16-17에 보면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로라”고 했습니다. 우리들을 택한 이유를 두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들에게 항상 신앙의 열매를 맺고 그 열매가 우리들에게 떠나지 않게 하려고 우리들을 택하셨습니다. 나에게 있어서 그 열매들이 있는가
둘째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엇을 위해서든지 기도하면 응답해 주시려고 우리들을 택해 주셨다고 합니다. 우리 이 말씀 안에서 승리하며 살아야 합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