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1장의 섭리적 진실 (요11:35-37)
본문
죽음은 인간의 진실 요한복음 11장의 섭리적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해 드리 도록 하겠습니다. 요한복음 11장의 설정은 참으로 특이합니다. 요한복음 11장에는 죽 은 나사로와 죽은 나사로를 향해 우는 이들이 등장하는데, 여기서 주검(시체)으로 등장하는 나사로와 죽은 나사로를 보며 우는 이들-마르다, 마리아, 유대 인들-모두는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진실 을 증거해 줍니다. 요한복음 11장에서의 나사로는 주검(시체)으로 등장하는데, 여기서 주검(시체)이라는 설정이 얼마나 인간의 진실을 극적으로 묘사해 주 고 있는 설정인지 모릅니다. 인간의 결국을 보여주는 주검(시체)의 상태는 참으로 인간의 진실된 모습을 보여 주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나사로의 주검이 인간의 진실뿐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의 무한성과 인간의 유한성, 그리스도 왕국의 초우주적 기반 등을 또한 증거해 주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여기서 그리스도 왕국의 초우주적 기반은 생명을 뜻한다.) 죽은 나사로를 향해 우는 이들의 눈물 속에는 인간의 비극과, 고뇌 와, 진실이 담겨져 있었는데, 이 눈물의 울음은 인간 자신이 인간의 진실의 한 가운데 서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막힌 담을 헐고 구원 (생명)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탄식의 몸부림의 표출이었습니다. 여기 서 우리는 또한 예수 그리스도와 죽은 나사로의 관계가 담긴 요한복음 11장의 말씀이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역사의 진행방향과 방식, 그리고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예언적으로 증거해 주고 있는 말씀임 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 의미와 인간이 받은 새로운 가치 이제부터 요한복음 11장 1절로 1 44절까지의 말씀을 다섯 단락으로 나누어 설명해 드리도록 할텐데, 각각의 단락의 세부적인 설명에 들 어가기에 앞서 각각의 단락의 주된 요지를 대략 간단히 설명해 드리 도록 하겠습니다. 요한복음 11장 3절115절까지의 첫 번째 단락에 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 의미와 인간이 받은 새로운 가치를1. 영광,2. 구원의 섭리,3. 믿음의 자리로 증거해 주고 있으며, 마르다의 탄식으로부터 시작되는 요한복음 11장 21절로 1 27절까지 의 두 번째 단락에서는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라는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으로써 성립된 구원의 언약, 즉 신약 전 체의 구원의 줄기를 증거해 주고 있으며, 마리아의 탄식으로부터 시 작되는 요한복음 11장 32절로 1 38절까지의 세 번째 단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눈물의 진실(탄식의 섭리)과 예수 그리스도의 재 림을 통한 부활의 성취를 증거해 주고 있으며, 요한복음 11장 39절 의 네 번째 단락에서는 주검의 냄새를 통해 죽음의 진실을 증거해 주고 있으며, (죽은 인간에게서 냄새가 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여기서 주검의 냄새는 죽음의 진실을, 별의 진실을 드러낸다는 예언 적 의미를 지닌다. 별은 그 별을 보는 자 안에서 그 정체를 드러낸다. 하나님의 날카로운 진실의 검은 이 시대의 진실을 드러내는 역 사를 한다. 즉, 불의한 자의 진실, 더러운 자의 진실, 거룩한 자의 진실, 의로운 자의 진실 등등 각각의 모든 진실을 드러내는 역사를 하신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11장 40절로 1 44절까지의 다섯 번째 단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와 또한 나사로야, 나오라!라는 말씀을 통해서 부활의 성취의 의미를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1. 영광 첫 번째 단락(요한복음 11장 3절로 1 15절) 요한복음 11장 3절에는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 었나이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은 진실의 절대구도를 보여 주는 말입니다. (참고 ; 여기서 주는 하나님을, 사랑하시는 자는 우리 인간들을, 병은 인간이 처한 비극적 현실을 의미한다.) 인간이 병들었기에, 죄적 현실에 빠졌기에 주님의 구원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다는 그 진실의 절대구도의 내용이 요한복음 11장 3절의 말씀 속에는 잘 담겨져 있습니다. 이렇듯, 요한복음 11장의 말씀은 진실의 절대구도를 확립하는 말로써 시작됩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진실을 표출한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 나이다.라는 이 말은 주여, 보시옵소서. 우리가 주님을 필요로 하나이다.라는 말로서,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의 진실의 절대구 도를 보여 주는 말입니다. 우리 또한 회개하고자 할 때, 하나님을 의지하고자 할 때, 하나님의 실체를 만나고자 할 때 주여, 보시 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라는 말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라는 말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라는 위대한 말씀으로 답하십니다.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 에 없는 인간의 비극적 현실을 의미하는 병을 죽을 병이 아니 라고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속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의 초림으로 인하여 엄청난 변혁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알 아야 합니다. 인간이 죽을 수밖에 없는, 사망의 구렁텅이에 빠진 죄인임에도 불구 하고,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말씀하심은 이제 인간의 가치가 죽 음의 가치가 아닌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의 영광을 위한 가 치가 됐음을 증거하시기 위함에서였습니다.
여기서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라는 이 말씀은 인간의 가 치를 뒤바꿔 놓는 말씀임과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부활과 생 명되심을 증거한 말씀입니다. 즉,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라는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 자신 스스로가 자신의 권세는 사단과 죽음을 이긴 권세임을 증거한, 자신의 존재 의미를 밝힌 말씀이란 것입니다.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존재 의미가 부활과 생명되심을 보여줌과 동시에 인류에게 구원의 가치의 빛이 비춰졌 음을 증거해 준 말씀이다.) 또한 우리는 자기 자신의 목적 자체를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장 먼저 밝히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역시 멋지신 분이시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라는 말씀 을 통해 다른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의 영광이 자신의 존재 의미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요, 결국이 됨을 밝히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 요라는 말씀과 함께 하나님의 아들로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라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를 힘입은 우리까지도 포함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은 예수 그리스도뿐 아니라 우리의 영광이기도 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영광이 성령님과 하나되어서 거두는 영광이기 때문에 결국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 요, 하나님의 아들로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라는 이 말씀에는 성부, 성자, 성령님의 영광이 다 포함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1장 3절로 1 15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 의미와 인간이 받은 새로운 가치를 1. 영광,2. 구원의 섭리,3. 믿음의 자리로 증거해 주고 있는데, 이 요한복음 11장 314절의 말씀은 그중 영광 에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2. 구원의 섭리 낮이 열두 시가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고로 실족하느니라.(요한복음 11장 9-10절)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낮 열두 시라는 시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역하실 당시의 시간을 나타내 주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이 시간을 그 시간만으로 국한시켜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섭리의 선상은 인간의 늘어진 시간대와 동일시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낮 열두 시라는 시간적 표현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 역하고 계셨던 그 당시의 시간뿐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가 적용되는 모든 시간대를 의미하는 시간적 표현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멈춰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섭리의 모 든 선상이 낮 열두 시인 것입니다.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 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고로 실족하느니라.라는 이 말씀은 나의 구원의 섭리의 빛 안에 나의 사랑하는 자들을 거하게끔 해서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내가 구원의 섭리의 빛으로 이 땅에 왔다.라는 말씀으로 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음을 나타내 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구원의 섭리의 빛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자는 구원을 받고, 속하지 않는 자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그러한 섭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씀해 주고 있는 낮과 밤은 예수 그리스도께 속 한 자와 속하지 않은 자,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자와 동행하지 않은 자를 구분해 주는 구원의 섭리의 선상인 것입니다. 섭리에 속 한 것은 그리스도께 속한 것이고, 그리스도께 속한 것은 구원에 속 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 9-10절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 의미와 인간이 받은 새로운 가치 중 구원의 섭리 에 해당되는 부분의 말씀입니다.
3. 믿음의 자리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요 한복음 11장 11절)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나사로를 보고 잠들었 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이유는 단순히 표현상의 묘미를 위함에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스스로가 자신의 존재 의미를 드러내기 위함 에서였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보고 잠들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죽음을 폐한 권세를 가지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죽은 나 사로를 향해 잠들었다고 말씀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나사로를 향해 잠들었다고 말씀하실 수 있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 있어서 죽음은 이미 폐해진 권세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지고 오신 그 나라와 그 의의 기반이 영원한 긍휼과 생 명에서인 까닭이다.) 나사로가 죽었거나 살았거나 예수 그리스도 앞 에서 나사로가 잠든 것에 불과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 미 죽음을 압도한(초월한) 권세였기 때문입니다. 죽은 나사로를 향 해 잠들었도다.라는 말씀은 자신이 가져온 가치를 드러내시는 말씀입니다.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요한복음 11장 14115절) 여기서 나사로가 죽었느니라.라는 말씀은 우리 인간의 측면에서 사실을 말씀하시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1장 14절에서 15절까지의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 의미와 인간이 받은 새로운 가치 중 믿음의 자리 에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상대성의 회복을 위한 믿음의 자리를 만들어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내가 거 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라는 이 말씀이 내가 십자가에 달려 죽었는데도 계속적으로 무덤 속에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부활하여 너희에게 성령님을 보내어 주려 함이라.라는 예 언적 의미를 담고 있는 말씀임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속적으로 무덤 속에 머물러 계시지 아니하시고 사흘 만에 부활 하셨다는 것, 이것이 실로 인류에게 있어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값진 가치인 것입니다 마르다의 사건-구원의 언약을 선포하시는 두 번째 단락의 말씀 두 번째 단락(요한복음 11장 21127절)
요한복음 11장 21절로127절까지의 말씀은 마르다와 예수 그리스도 와의 대화가 담긴 말씀인데, 여기서는 편의상 단락을 구분짓기 위해 이 부분의 내용을 마르다의 사건으로 제목 짓도록 하겠습니다. 마르다의 사건이 기록된 요한복음 11장 21절로127절까지의 말씀은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라는 마르다의 탄식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마르다의 이 탄식의 말이 인간의 죽음의 비극에 대한 근본적인 탄식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치가 왜 필요한가에 대한 진실을 증거하는 탄식임을 알아야 합니다. 마르다의 탄식은 인간의 타락에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까지의 모든 만물의 탄식을 함축한 탄식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까지 인간은 인간의 죽음에 대한, 구원의 갈망에 대한, 그리스도의 가치를 향 한, 진정으로 메시야를 기다림에 대한 탄식을 해 왔습니다. 인간의 죽음의 비극에 대한 근본적인 탄식인 이 마르다의 탄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의 가치가 왜 필요한가에 대한 진실을 증거해 주는 탄식 입니다. (마르다의 탄식은 인간의 타락에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초 림까지의 모든 탄식을 함축하고 있는 탄식이다.) 마르다의 이 탄식 의 말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라는 말씀 을 하셨는데, 이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라는 예수 그리스도 의 이 말씀은 내가 네 오라비를 살릴 만한 구원의 가치를 가지고 왔다.라는 의미의 말씀으로서, 이 말씀은 구원의 언약을 선포하 시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라는 말과 나사로야, 나오라!라는 말의 의미가 다름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라는 말은 구원(부활)의 언약의 선포이나, 나사로야, 나오라!라는 말씀은 명령성 발언으 로서, 부활을 성취하시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네 오라비가 다 시 살리라.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 이 이미 죽음을 이긴 가치를 가지고 왔음을 선포하신 말씀이고, 나사로야, 나오라!라는 말씀은 명령성 발언으로서, 부활을 성취 하시는, 몸의 구속을 받게 되는 말씀이다.)나는 부활이요, 생명 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요한복음11장 25126절)
이미 삶과 죽음 의 경계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 안에는 오직 생명만이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르다를 향하여 하신 이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라는 말씀을 신약의 존재 의미요, 신 약 복음의 탄생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라는 이 선포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지고 오신 구원의 가치를(그리스도께서 생명되심을) 너무 나도 적나라하게 표출시키는 말씀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 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 냐라는 말씀에 마르다가 답한 이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라는 말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묻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시니이다.라고 답한 베드로의 말과 맥락을 같이 하는 말임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베드로의 이 같은 시인의 말이 혈 육이 아닌 하늘에 계신 아버지로부터 나온 말이듯이, 마르다의 이 같은 시인의 말 또한 인간적인 말이 아닌 하늘에 계신 아버지로부터 나온 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마르다의 시인의 말로 인하여 하나님께로부터 확증받은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인간의 시인의 말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을 통해서 성 립된 부활의 언약, 구원의 언약이 인간에게 주어졌음을 확증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1장 21절에서 27절의 말씀은 한 구절 한 구절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는 그리스도시 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한 인간의 시인 을 통해 모든 인류에게 구원의 가치가 주어졌음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전체적으로 이 마르다의 사건은 신약의 복음의 기준인 구원의 언약을 증거해 주는 사건인 것입니다. 그 신약의 구원의 형 태는 예수 그리스도의 섭리 안에 속한 자와 속하지 않은 자로 나누 셨습니다. 쉽게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자만이 구원을 받았 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재림 때의 구원의 형태는 신약의 구원의 형태와는 다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재림 때의 구원은 진 정으로 몸의 구속을 통한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마르다의 사건에서는 신약 복음의 기준인 구원의 언약을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마르다의 탄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의 가치가 왜 중요한지에 대 한 진실을 증거해 주는 탄식이다. 마리아의 사건-부활의 성취의 필요성을 표출시킨 세 번째 단락의 말씀 세 번째 단락(요한복음 11장 32절 1 38절) 요한복음 11장 32절 1 38절까지의 말씀 또한 마리아와 예수 그리스도와의 대화가 담긴 말씀인데, 여기서도 편의상 단락을 구분짓기 위해 이 부분의 내용을 마리아의 사건으로 제목짓도록 하겠습니다.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와서 보이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가로 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 라 예수께서 그의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 인들의 우는 것을 보 시고 심령이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사 가라사대 그를 어디 두 었느냐 (요한복음 11장 32133절) 마리아의 탄식은 부활을 향한 하나님의 아들들의 탄식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부터 부활까지의 탄식을 함축한 탄식입니다. (참고 ; 마르다의 탄식은 죽음의 비극에 대한 인간의 근본적인 탄식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의 가치가 왜 필요한가에 대한 진실을 증거해 주는 탄식이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 하였겠나이다. 우리는 여기서 부활의 성취를 갈망하는 우리의 탄 식이 또한 마리아의 탄식이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마리아와 조문온 유대 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통분히 여기 시고, 민망히 여기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어디에 두었느 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를 어디에 두었느냐라는 이 말씀은 선지적 비젼을 갖고 보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열어주지 않으시면, 풀릴 수 없는 말씀입니다. 그를 어디에 두었느냐라는 이 말씀은 탄식을 통해서 이루어낸 역사입니다. (그를 어디에 두었느냐라는 말씀은 탄식하는 자 안에서 탄생된 부활을 향한 소망의 비젼의 탄생으로 이루어낸 말씀이다.) 우리는 여기서 이 마지막 때는 탄식하는 자가 부활에 대한 소망을 가질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를 어디에 두었느냐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사로의 무덤을 향하여 가고자 하시는 순간입니다. 우리 안에 탄생된 보이지 않는 소망, 참음으로 기다리는 소망, 그 소망의 비젼이 바로 우리의 탄식으로 말미암아 탄생된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이 세상에서 탄식하지 않고 묻혀만 산다면, 결코 우리에게는 소망의 비젼이 탄생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 안에서도 우리의 탄식으로 인하여 그를 어디에 두었느냐라는 말씀의 탄생을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그를 어디 두었느 냐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마리아가 주여, 와서 보옵소 서. 라고 말씀하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눈물을 흘리십니다. 어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눈물을 흘리신 이유가 유대 인들 때문이라 고도 말하는데, 진정한 예언적 의미와 진정한 시대적인 복음의 차원 에서 하나님께서 열어주시는 차원은 그런 단순한 차원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눈물 안에서 요한 복음 11장의 섭리의 비밀 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눈물은 단순한 탄식의 눈물 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리스도인, 모든 만유, 이 모든 만유 의 모든 탄식이, 인류 역사의 모든 진실이 이 예수 그리스도의 눈 물 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눈물은 이 세상에서 가장 진실된 눈물이며, 인류 역사의 진실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눈물입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죽은 나사로를 앞에 두고 눈물을 흘리셔야만 했던 것일까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눈물을 가지고 있는 자들입니다. 진실로 모든 그리스도 인들의 눈에서 보배로운 예수 그리스도의 눈물이 흘러나와야 할 것 입니다.
요한복음 11장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눈물이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탄식의 섭리를 표출시키는 부분인데, 그러면 과연 누구의 눈에서 이 예수 그리스도의 눈물이 흐르겠는가 여기서 우리는 지금 우리가 하 고 있는 이 탄식의 섭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눈물이 적나라하게 증거 해 주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눈물의 진정한 진수를 알려면 유대 인들이 속삭인 두 마디 말-보라. 그를 어떻게 사랑하였는가, 소경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에 주 목해 보아야 합니다. 유대 인들이 속삭인 보라. 그를 어떻게 사랑하였는가.라는 첫 번째 말은 부활의 성취에 대한 시대적 요구를 표현해 준 말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부활의 성취에 대한 시대적인 요구를 표출해 주는 시대입니다. 이제 우리의 입술에서도 주여, 이제사랑하는 자들의 나타남이 이르렀사오니, 주 예수여, 어서 오 시옵소서.라는 부활의 성취에 대한 시대적인 요구가 담긴 말이 나 와야 할 것입니다. 저는 그를 어떻게 사랑하였는가, 소경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라는 이 말을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며, 하나님은 구원자이심을 나타내는 진실의 절대구도의 정적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눈물 속 에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주여, 와서 보옵소서. 이 장면을 시편 기자는 시편 90편 13절-16절에 이렇게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 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긍휼히 여기소서 아침에 주의 인자로 우리를 만족케 하사 우리 평생에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우리를 곤고케 하신 날 수 대로와 우리의 화를 당한 년 수 대로 기쁘게 하소서 주 의 행사를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저희 자손에게 나타내소서 시편 90편 13절-16절까지의 이 말씀 또한 부활의 성 취에 대한 시대적인 요구를 표출시킨 말씀입니다. 유대 인들이 속 삭인 소경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라는 두 번째 말은 인간의 죽음의 진실을 드러냄으로써 부활의 성취의 필요성을 표출시킨 말입니다. 여기서 잠시 마리아의 사건을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리아의 탄식은 부활의 성취를 갈망하는 하나님의 아들(그리스도 인)들, 만유의 탄식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눈물 안에 있는 자들로서, 예수 그리스도 의 눈물을 표출시켜야 될 자들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눈물은 이 시 대를 향해 주시는 탄식의 섭리를 표출시키는 부분이다. 주검의 냄새-시대의 진실이 드러날 것을 예언적으로 의미한 네 번 째 단락의 말씀 네 번째 단락 (요한 복음11장 39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가로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 이다 여기서 시체에서 냄새가 난다는 것은 죽었음을 증명해 주는 것입니다. 앞에서 나사로의 죽음은 인간의 진실을 의미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주검의 냄새는 탄식의 섭리를 표출시킨 후에 진실이 드 러날 때가 온다는 예언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주검의 냄새는 인간의 진실을 드러내는 역사이다.
왜냐하면 주검의 냄새가 하나님 앞 에 모든 진실이 드러날 때가 온다는 예언적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 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섭리 속에서 각각의 진실이 갈리워 지는 시대로서, 요한 계시록 22장 11절-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시대입니다. 죽은 나사로가 무덤에서 나오기 직전에 시체의 냄새 를 풍겼음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가 가까운 이 때도 주검의 냄새를 풍기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이 때가 바로 주검의 냄새가 나는 때인 것입니다. 주검의 냄새는 이런 예언적인 섭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시체가 냄새를 풍기듯이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 의 진실을 드러낼 때가 오는데, 지금 이 때가 인간의 진실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때인 것이다.) 또한 주검의 냄새는1. 하나님 의 진리로서,2. 인간의 진실로서,3. 사단의 멸망을 위한 증거로서 그 진실을 드러낼 것인데, 이 세 가지의 진실은 절대구도의 확립을 드러내는 진실입니다. 네가 정녕 죽으리라. 라는 이 말씀은 하나님의 진리이자 인간의 진실이며, 사단의 멸망의 증거입니다. 로마서 2장 5절-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 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 를 네게 쌓는도다.-의 말씀과 같이 사단 또한 이때까지 행한 그 모든 죽음의 진실로써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사단은 인간을 죽게함으로써 그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잡으 려 했지만, 결국 이 죽음으로써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멸망을 받 게 된다.)
마지막 때는 각각의 진실이 냄새를 풍기게 되는데, 인간 을 통해서 1, 2 의 진실이 증거되고, 3 으로 열매를 맺게 됩니다. 나사로야 나오라-부활의 성취의 의미를 증거해 주는 다섯 번째 단락의 말씀 다섯 번째 단락 (요한복음 11장40절144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 러러 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우리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탄식이 있습니다.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라는 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간구의 말씀입니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즉 부활의 성취를 갈망하는 우리 안에서 요구되 어야 할 간구의 말입니다. 우리의 진실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 간구는 살아 있습니다. 즉,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 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라는 이 예수 그리스도의 간구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곧 부활의 성취를 갈망하는 우리 안에서 표출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하셨던 이와 같은 간구를 할 수 있 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 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한복음 11장 42절)
예언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이 말씀을 이 시대에 맞게 직역해 드리자면 하나님께서 시대적 복음을 저들에게 주심은 부 활을 향한 저들의 믿음의 성취를 위함이니, 사랑하는 이들의 믿음의 성취를 위하여 내가 다시 가려 합니다.라는 말씀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결코 사랑하시는 자들의 부활을 갈망하는 그 소망과 믿음을 저버리지 않으시고, 사랑하시는 자들의 믿음과 소망을 위해 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진정 우리의 믿음을 받으시는 그 때에 하나님께서 나사로야, 나오라!라는 말씀을 하실 것입니다. 나사 로야, 나오라!라는 이 말씀은 부활이 성취되는 장면의 말씀입니다. 앞에서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라는 말씀은 구원의 언약 을 표출시키는 부분이라고 말씀드렸는데, 이 나사로야, 나오라! 라는 말은 부활이 성취되는 부분의 말씀입니다. 이렇듯, 요한복음 11장의 말씀은 예언적인 의미를 가득 담고 있는 말씀인데, 이 요한 복음11장의 말씀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눈물 속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요한복음 11장 3절-15절까지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 의미 와 인간이 받은 새로운 가치를
1.영광,
2.구원의 성취,
3.믿음의 자 리로 증거해 주고 있는 말씀이다. 여기서 우리는 결국 우선시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임을 알 수 있다. 본격적으로 예언적 의미가 시 작되는 요한복음 11장 21절-27절까지의 말씀은 마르다의 탄식이 담 긴 말씀으로서, 마르다의 탄식은 인간의 타락에서부터 예수 그리스도 초림까지의 모든 만유의 탄식을 함축한 탄식이다.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라는 말씀 속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위대한 구원의 언약을 가지고 오셨음과, 또한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을 내가 믿나이다.라는 한 인간의 시인을 통해 그 가치를 인간에게 주셨음을 확 증하셨음을 알 수 있다. 요한복음 11장 32절로 38절까지의 말씀은 마리아의 탄식이 담긴 말씀으로서, 마리아의 탄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 때부터 부활의 성 취의 때까지 부활을 갈망하는 그리스도인과 만유의 탄식을 함축한 탄식이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눈물이 너무나도 극적인 상황의 표현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눈물은 우리의 눈물만 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 이제 우리의 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눈물 이 표출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를 때가 다 되었음을 의미 한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부활의 성취에 대한 시대적인 요구를 탄 생시켜야 될 자들이다. 우리는 요한복음 11장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눈물에 담긴 예언적 의미를 잘 이해 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인류 역사의 모든 진실을 함축한 그 탄식, 그 고귀한 눈물을 흘 리기 위해서 이 시대에 있는 자들이다. 우리는 시대적 요구의 표출과 함께 부활의 성취에 대한 필요성을 알 려야 될 자들이다. 요한복음 11장 39절의 죽은 자의 냄새가 갖는 예 언적 의미는 인간의 진실의 드러남이다. 시체가 썩은 냄새를 냄과 같이, 이제 인류 역사의 죽음의 진실은 그 진실의 정점에서 썩은 냄새를 드러낼 것이다. 또한 그 진실의 정점에서는 썩은 냄새뿐 아 니라 의로운 냄새도 드러낼 것이다.
왜냐하면 선한 것과 악한 것, 진실한 것과 진실이 아닌 것에 대한 각각의 진실이 진실의 냄새를 드러낼 것이기 때문이다. (참고; 결국 인간의 진실은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기에 여기서는 모든 냄새를 죽음의 냄새로 표현했다. 그런데, 이 주검의 냄새는 하나님의 진실로서, 인간의 진실로서, 사단 의 멸망을 위한 증거로서 그 진실을 드러낼 것이다. 요한복음 11장 34절에 기록된 그를 어디 두었느냐라는 말씀은 소망의 비젼의 탄생을 의미하는 말씀이며, 요한복음 11장 39절에 기록된 돌을 옮겨 놓으라.라는 말씀은 사명의 비젼의 탄생을 의 미하는 말씀이다. 요한복음 11장 40절로 42절에 기록된 예수 스리 스도의 간구는 우리의 간구가 되어야 한다. 우리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식과, 예수 그리스도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들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이 낳은 하나님의 섭리가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갈망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아들들 안에서 표 출되어야 할 것이다.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 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라는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시대적 복음을 저들에게 주심은 부활을 향한 저들의 믿음의 성취를 위함이니, 사랑하는 이들의 믿음의 성취를 위하여 내 가 다시 가려 합니다.라는 예언적 의미를 지닌 말씀이다. 요한복음 11장의 이 말씀은 지금 이 시대에 살아 움직이면서 우리 앞에 펼 쳐지고 있다. 내가 이 시대의 탄식의 섭리를 표출하는 자가 되어, 하나님의 섭리를 가지고 있는 자가 되어, 나의 진실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눈물 안에서 요한복음 11장의 말씀을 볼 때 이 말씀을 내 것으로 소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죽은 나사로요, 마르다요, 마리아요, 죽은 나사로를 향해 우는 유대 인들이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통하여 진실을 볼 수 있어 야 한다. 마리아의 탄식을 통해 나타난 부활을 갈망하는 탄식의 가 치, 즉 탄식을 통하여 탄생된 소망의 비젼이 바로 우리가 가진 신 앙의 비젼인 것이다. 그러나, 이 마지막 때에는 주검의 냄새가 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의 믿음 안에서 탄생된 시대적 요구에 대한 탄 식과 함께 그 탄식이 탄생시킨 부활을 향한 소망의 비젼을 하나님께서 받으실 그 때에 나사로야, 나오라!라는 말씀과 함께 하나님 께서 우리 앞에 나타나실 것이다.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라는 말씀은 구원의 언약에 대한 말씀이며, 나사로야, 나오라라는 말씀은 부활의 성취를 의미하는 말씀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나사로야, 나오라! 라는 말씀과 함께 몸 의 구속, 몸의 해방, 부활의 성취를 원하는 우리를 위해 다시 오실 것이다.
1. 영광 첫 번째 단락(요한복음 11장 3절로 1 15절) 요한복음 11장 3절에는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 었나이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은 진실의 절대구도를 보여 주는 말입니다. (참고 ; 여기서 주는 하나님을, 사랑하시는 자는 우리 인간들을, 병은 인간이 처한 비극적 현실을 의미한다.) 인간이 병들었기에, 죄적 현실에 빠졌기에 주님의 구원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다는 그 진실의 절대구도의 내용이 요한복음 11장 3절의 말씀 속에는 잘 담겨져 있습니다. 이렇듯, 요한복음 11장의 말씀은 진실의 절대구도를 확립하는 말로써 시작됩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진실을 표출한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 나이다.라는 이 말은 주여, 보시옵소서. 우리가 주님을 필요로 하나이다.라는 말로서,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의 진실의 절대구 도를 보여 주는 말입니다. 우리 또한 회개하고자 할 때, 하나님을 의지하고자 할 때, 하나님의 실체를 만나고자 할 때 주여, 보시 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라는 말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라는 말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라는 위대한 말씀으로 답하십니다.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 에 없는 인간의 비극적 현실을 의미하는 병을 죽을 병이 아니 라고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속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의 초림으로 인하여 엄청난 변혁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알 아야 합니다. 인간이 죽을 수밖에 없는, 사망의 구렁텅이에 빠진 죄인임에도 불구 하고,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말씀하심은 이제 인간의 가치가 죽 음의 가치가 아닌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의 영광을 위한 가 치가 됐음을 증거하시기 위함에서였습니다.
여기서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라는 이 말씀은 인간의 가 치를 뒤바꿔 놓는 말씀임과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부활과 생 명되심을 증거한 말씀입니다. 즉,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라는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 자신 스스로가 자신의 권세는 사단과 죽음을 이긴 권세임을 증거한, 자신의 존재 의미를 밝힌 말씀이란 것입니다.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존재 의미가 부활과 생명되심을 보여줌과 동시에 인류에게 구원의 가치의 빛이 비춰졌 음을 증거해 준 말씀이다.) 또한 우리는 자기 자신의 목적 자체를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장 먼저 밝히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역시 멋지신 분이시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라는 말씀 을 통해 다른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의 영광이 자신의 존재 의미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요, 결국이 됨을 밝히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 요라는 말씀과 함께 하나님의 아들로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라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를 힘입은 우리까지도 포함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은 예수 그리스도뿐 아니라 우리의 영광이기도 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영광이 성령님과 하나되어서 거두는 영광이기 때문에 결국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 요, 하나님의 아들로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라는 이 말씀에는 성부, 성자, 성령님의 영광이 다 포함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1장 3절로 1 15절까지의 말씀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 의미와 인간이 받은 새로운 가치를 1. 영광,2. 구원의 섭리,3. 믿음의 자리로 증거해 주고 있는데, 이 요한복음 11장 314절의 말씀은 그중 영광 에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2. 구원의 섭리 낮이 열두 시가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고로 실족하느니라.(요한복음 11장 9-10절)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낮 열두 시라는 시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역하실 당시의 시간을 나타내 주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이 시간을 그 시간만으로 국한시켜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섭리의 선상은 인간의 늘어진 시간대와 동일시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낮 열두 시라는 시간적 표현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 역하고 계셨던 그 당시의 시간뿐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가 적용되는 모든 시간대를 의미하는 시간적 표현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멈춰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섭리의 모 든 선상이 낮 열두 시인 것입니다.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 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고로 실족하느니라.라는 이 말씀은 나의 구원의 섭리의 빛 안에 나의 사랑하는 자들을 거하게끔 해서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내가 구원의 섭리의 빛으로 이 땅에 왔다.라는 말씀으로 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음을 나타내 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구원의 섭리의 빛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자는 구원을 받고, 속하지 않는 자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그러한 섭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씀해 주고 있는 낮과 밤은 예수 그리스도께 속 한 자와 속하지 않은 자,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자와 동행하지 않은 자를 구분해 주는 구원의 섭리의 선상인 것입니다. 섭리에 속 한 것은 그리스도께 속한 것이고, 그리스도께 속한 것은 구원에 속 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 9-10절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 의미와 인간이 받은 새로운 가치 중 구원의 섭리 에 해당되는 부분의 말씀입니다.
3. 믿음의 자리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요 한복음 11장 11절)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나사로를 보고 잠들었 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이유는 단순히 표현상의 묘미를 위함에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스스로가 자신의 존재 의미를 드러내기 위함 에서였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보고 잠들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죽음을 폐한 권세를 가지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죽은 나 사로를 향해 잠들었다고 말씀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나사로를 향해 잠들었다고 말씀하실 수 있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 있어서 죽음은 이미 폐해진 권세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지고 오신 그 나라와 그 의의 기반이 영원한 긍휼과 생 명에서인 까닭이다.) 나사로가 죽었거나 살았거나 예수 그리스도 앞 에서 나사로가 잠든 것에 불과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 미 죽음을 압도한(초월한) 권세였기 때문입니다. 죽은 나사로를 향 해 잠들었도다.라는 말씀은 자신이 가져온 가치를 드러내시는 말씀입니다.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요한복음 11장 14115절) 여기서 나사로가 죽었느니라.라는 말씀은 우리 인간의 측면에서 사실을 말씀하시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1장 14절에서 15절까지의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 의미와 인간이 받은 새로운 가치 중 믿음의 자리 에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상대성의 회복을 위한 믿음의 자리를 만들어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내가 거 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라는 이 말씀이 내가 십자가에 달려 죽었는데도 계속적으로 무덤 속에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부활하여 너희에게 성령님을 보내어 주려 함이라.라는 예 언적 의미를 담고 있는 말씀임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속적으로 무덤 속에 머물러 계시지 아니하시고 사흘 만에 부활 하셨다는 것, 이것이 실로 인류에게 있어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값진 가치인 것입니다 마르다의 사건-구원의 언약을 선포하시는 두 번째 단락의 말씀 두 번째 단락(요한복음 11장 21127절)
요한복음 11장 21절로127절까지의 말씀은 마르다와 예수 그리스도 와의 대화가 담긴 말씀인데, 여기서는 편의상 단락을 구분짓기 위해 이 부분의 내용을 마르다의 사건으로 제목 짓도록 하겠습니다. 마르다의 사건이 기록된 요한복음 11장 21절로127절까지의 말씀은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라는 마르다의 탄식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마르다의 이 탄식의 말이 인간의 죽음의 비극에 대한 근본적인 탄식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치가 왜 필요한가에 대한 진실을 증거하는 탄식임을 알아야 합니다. 마르다의 탄식은 인간의 타락에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까지의 모든 만물의 탄식을 함축한 탄식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까지 인간은 인간의 죽음에 대한, 구원의 갈망에 대한, 그리스도의 가치를 향 한, 진정으로 메시야를 기다림에 대한 탄식을 해 왔습니다. 인간의 죽음의 비극에 대한 근본적인 탄식인 이 마르다의 탄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의 가치가 왜 필요한가에 대한 진실을 증거해 주는 탄식 입니다. (마르다의 탄식은 인간의 타락에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초 림까지의 모든 탄식을 함축하고 있는 탄식이다.) 마르다의 이 탄식 의 말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라는 말씀 을 하셨는데, 이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라는 예수 그리스도 의 이 말씀은 내가 네 오라비를 살릴 만한 구원의 가치를 가지고 왔다.라는 의미의 말씀으로서, 이 말씀은 구원의 언약을 선포하 시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라는 말과 나사로야, 나오라!라는 말의 의미가 다름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라는 말은 구원(부활)의 언약의 선포이나, 나사로야, 나오라!라는 말씀은 명령성 발언으 로서, 부활을 성취하시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네 오라비가 다 시 살리라.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 이 이미 죽음을 이긴 가치를 가지고 왔음을 선포하신 말씀이고, 나사로야, 나오라!라는 말씀은 명령성 발언으로서, 부활을 성취 하시는, 몸의 구속을 받게 되는 말씀이다.)나는 부활이요, 생명 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요한복음11장 25126절)
이미 삶과 죽음 의 경계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 안에는 오직 생명만이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르다를 향하여 하신 이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라는 말씀을 신약의 존재 의미요, 신 약 복음의 탄생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라는 이 선포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지고 오신 구원의 가치를(그리스도께서 생명되심을) 너무 나도 적나라하게 표출시키는 말씀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 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 냐라는 말씀에 마르다가 답한 이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라는 말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묻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시니이다.라고 답한 베드로의 말과 맥락을 같이 하는 말임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베드로의 이 같은 시인의 말이 혈 육이 아닌 하늘에 계신 아버지로부터 나온 말이듯이, 마르다의 이 같은 시인의 말 또한 인간적인 말이 아닌 하늘에 계신 아버지로부터 나온 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마르다의 시인의 말로 인하여 하나님께로부터 확증받은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인간의 시인의 말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을 통해서 성 립된 부활의 언약, 구원의 언약이 인간에게 주어졌음을 확증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1장 21절에서 27절의 말씀은 한 구절 한 구절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는 그리스도시 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한 인간의 시인 을 통해 모든 인류에게 구원의 가치가 주어졌음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전체적으로 이 마르다의 사건은 신약의 복음의 기준인 구원의 언약을 증거해 주는 사건인 것입니다. 그 신약의 구원의 형 태는 예수 그리스도의 섭리 안에 속한 자와 속하지 않은 자로 나누 셨습니다. 쉽게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자만이 구원을 받았 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재림 때의 구원의 형태는 신약의 구원의 형태와는 다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재림 때의 구원은 진 정으로 몸의 구속을 통한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마르다의 사건에서는 신약 복음의 기준인 구원의 언약을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마르다의 탄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의 가치가 왜 중요한지에 대 한 진실을 증거해 주는 탄식이다. 마리아의 사건-부활의 성취의 필요성을 표출시킨 세 번째 단락의 말씀 세 번째 단락(요한복음 11장 32절 1 38절) 요한복음 11장 32절 1 38절까지의 말씀 또한 마리아와 예수 그리스도와의 대화가 담긴 말씀인데, 여기서도 편의상 단락을 구분짓기 위해 이 부분의 내용을 마리아의 사건으로 제목짓도록 하겠습니다.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와서 보이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가로 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 라 예수께서 그의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 인들의 우는 것을 보 시고 심령이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사 가라사대 그를 어디 두 었느냐 (요한복음 11장 32133절) 마리아의 탄식은 부활을 향한 하나님의 아들들의 탄식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부터 부활까지의 탄식을 함축한 탄식입니다. (참고 ; 마르다의 탄식은 죽음의 비극에 대한 인간의 근본적인 탄식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의 가치가 왜 필요한가에 대한 진실을 증거해 주는 탄식이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 하였겠나이다. 우리는 여기서 부활의 성취를 갈망하는 우리의 탄 식이 또한 마리아의 탄식이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마리아와 조문온 유대 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통분히 여기 시고, 민망히 여기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어디에 두었느 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를 어디에 두었느냐라는 이 말씀은 선지적 비젼을 갖고 보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열어주지 않으시면, 풀릴 수 없는 말씀입니다. 그를 어디에 두었느냐라는 이 말씀은 탄식을 통해서 이루어낸 역사입니다. (그를 어디에 두었느냐라는 말씀은 탄식하는 자 안에서 탄생된 부활을 향한 소망의 비젼의 탄생으로 이루어낸 말씀이다.) 우리는 여기서 이 마지막 때는 탄식하는 자가 부활에 대한 소망을 가질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를 어디에 두었느냐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사로의 무덤을 향하여 가고자 하시는 순간입니다. 우리 안에 탄생된 보이지 않는 소망, 참음으로 기다리는 소망, 그 소망의 비젼이 바로 우리의 탄식으로 말미암아 탄생된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이 세상에서 탄식하지 않고 묻혀만 산다면, 결코 우리에게는 소망의 비젼이 탄생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 안에서도 우리의 탄식으로 인하여 그를 어디에 두었느냐라는 말씀의 탄생을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그를 어디 두었느 냐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마리아가 주여, 와서 보옵소 서. 라고 말씀하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눈물을 흘리십니다. 어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눈물을 흘리신 이유가 유대 인들 때문이라 고도 말하는데, 진정한 예언적 의미와 진정한 시대적인 복음의 차원 에서 하나님께서 열어주시는 차원은 그런 단순한 차원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눈물 안에서 요한 복음 11장의 섭리의 비밀 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눈물은 단순한 탄식의 눈물 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리스도인, 모든 만유, 이 모든 만유 의 모든 탄식이, 인류 역사의 모든 진실이 이 예수 그리스도의 눈 물 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눈물은 이 세상에서 가장 진실된 눈물이며, 인류 역사의 진실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눈물입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죽은 나사로를 앞에 두고 눈물을 흘리셔야만 했던 것일까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눈물을 가지고 있는 자들입니다. 진실로 모든 그리스도 인들의 눈에서 보배로운 예수 그리스도의 눈물이 흘러나와야 할 것 입니다.
요한복음 11장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눈물이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탄식의 섭리를 표출시키는 부분인데, 그러면 과연 누구의 눈에서 이 예수 그리스도의 눈물이 흐르겠는가 여기서 우리는 지금 우리가 하 고 있는 이 탄식의 섭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눈물이 적나라하게 증거 해 주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눈물의 진정한 진수를 알려면 유대 인들이 속삭인 두 마디 말-보라. 그를 어떻게 사랑하였는가, 소경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에 주 목해 보아야 합니다. 유대 인들이 속삭인 보라. 그를 어떻게 사랑하였는가.라는 첫 번째 말은 부활의 성취에 대한 시대적 요구를 표현해 준 말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부활의 성취에 대한 시대적인 요구를 표출해 주는 시대입니다. 이제 우리의 입술에서도 주여, 이제사랑하는 자들의 나타남이 이르렀사오니, 주 예수여, 어서 오 시옵소서.라는 부활의 성취에 대한 시대적인 요구가 담긴 말이 나 와야 할 것입니다. 저는 그를 어떻게 사랑하였는가, 소경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라는 이 말을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며, 하나님은 구원자이심을 나타내는 진실의 절대구도의 정적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눈물 속 에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주여, 와서 보옵소서. 이 장면을 시편 기자는 시편 90편 13절-16절에 이렇게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 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긍휼히 여기소서 아침에 주의 인자로 우리를 만족케 하사 우리 평생에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우리를 곤고케 하신 날 수 대로와 우리의 화를 당한 년 수 대로 기쁘게 하소서 주 의 행사를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저희 자손에게 나타내소서 시편 90편 13절-16절까지의 이 말씀 또한 부활의 성 취에 대한 시대적인 요구를 표출시킨 말씀입니다. 유대 인들이 속 삭인 소경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라는 두 번째 말은 인간의 죽음의 진실을 드러냄으로써 부활의 성취의 필요성을 표출시킨 말입니다. 여기서 잠시 마리아의 사건을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리아의 탄식은 부활의 성취를 갈망하는 하나님의 아들(그리스도 인)들, 만유의 탄식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눈물 안에 있는 자들로서, 예수 그리스도 의 눈물을 표출시켜야 될 자들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눈물은 이 시 대를 향해 주시는 탄식의 섭리를 표출시키는 부분이다. 주검의 냄새-시대의 진실이 드러날 것을 예언적으로 의미한 네 번 째 단락의 말씀 네 번째 단락 (요한 복음11장 39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가로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 이다 여기서 시체에서 냄새가 난다는 것은 죽었음을 증명해 주는 것입니다. 앞에서 나사로의 죽음은 인간의 진실을 의미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주검의 냄새는 탄식의 섭리를 표출시킨 후에 진실이 드 러날 때가 온다는 예언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주검의 냄새는 인간의 진실을 드러내는 역사이다.
왜냐하면 주검의 냄새가 하나님 앞 에 모든 진실이 드러날 때가 온다는 예언적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 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섭리 속에서 각각의 진실이 갈리워 지는 시대로서, 요한 계시록 22장 11절-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시대입니다. 죽은 나사로가 무덤에서 나오기 직전에 시체의 냄새 를 풍겼음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가 가까운 이 때도 주검의 냄새를 풍기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이 때가 바로 주검의 냄새가 나는 때인 것입니다. 주검의 냄새는 이런 예언적인 섭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시체가 냄새를 풍기듯이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 의 진실을 드러낼 때가 오는데, 지금 이 때가 인간의 진실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때인 것이다.) 또한 주검의 냄새는1. 하나님 의 진리로서,2. 인간의 진실로서,3. 사단의 멸망을 위한 증거로서 그 진실을 드러낼 것인데, 이 세 가지의 진실은 절대구도의 확립을 드러내는 진실입니다. 네가 정녕 죽으리라. 라는 이 말씀은 하나님의 진리이자 인간의 진실이며, 사단의 멸망의 증거입니다. 로마서 2장 5절-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 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 를 네게 쌓는도다.-의 말씀과 같이 사단 또한 이때까지 행한 그 모든 죽음의 진실로써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사단은 인간을 죽게함으로써 그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잡으 려 했지만, 결국 이 죽음으로써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멸망을 받 게 된다.)
마지막 때는 각각의 진실이 냄새를 풍기게 되는데, 인간 을 통해서 1, 2 의 진실이 증거되고, 3 으로 열매를 맺게 됩니다. 나사로야 나오라-부활의 성취의 의미를 증거해 주는 다섯 번째 단락의 말씀 다섯 번째 단락 (요한복음 11장40절144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 러러 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우리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탄식이 있습니다.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라는 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간구의 말씀입니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즉 부활의 성취를 갈망하는 우리 안에서 요구되 어야 할 간구의 말입니다. 우리의 진실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 간구는 살아 있습니다. 즉,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 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라는 이 예수 그리스도의 간구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곧 부활의 성취를 갈망하는 우리 안에서 표출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하셨던 이와 같은 간구를 할 수 있 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 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한복음 11장 42절)
예언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이 말씀을 이 시대에 맞게 직역해 드리자면 하나님께서 시대적 복음을 저들에게 주심은 부 활을 향한 저들의 믿음의 성취를 위함이니, 사랑하는 이들의 믿음의 성취를 위하여 내가 다시 가려 합니다.라는 말씀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결코 사랑하시는 자들의 부활을 갈망하는 그 소망과 믿음을 저버리지 않으시고, 사랑하시는 자들의 믿음과 소망을 위해 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진정 우리의 믿음을 받으시는 그 때에 하나님께서 나사로야, 나오라!라는 말씀을 하실 것입니다. 나사 로야, 나오라!라는 이 말씀은 부활이 성취되는 장면의 말씀입니다. 앞에서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라는 말씀은 구원의 언약 을 표출시키는 부분이라고 말씀드렸는데, 이 나사로야, 나오라! 라는 말은 부활이 성취되는 부분의 말씀입니다. 이렇듯, 요한복음 11장의 말씀은 예언적인 의미를 가득 담고 있는 말씀인데, 이 요한 복음11장의 말씀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눈물 속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요한복음 11장 3절-15절까지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 의미 와 인간이 받은 새로운 가치를
1.영광,
2.구원의 성취,
3.믿음의 자 리로 증거해 주고 있는 말씀이다. 여기서 우리는 결국 우선시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임을 알 수 있다. 본격적으로 예언적 의미가 시 작되는 요한복음 11장 21절-27절까지의 말씀은 마르다의 탄식이 담 긴 말씀으로서, 마르다의 탄식은 인간의 타락에서부터 예수 그리스도 초림까지의 모든 만유의 탄식을 함축한 탄식이다.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라는 말씀 속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위대한 구원의 언약을 가지고 오셨음과, 또한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을 내가 믿나이다.라는 한 인간의 시인을 통해 그 가치를 인간에게 주셨음을 확 증하셨음을 알 수 있다. 요한복음 11장 32절로 38절까지의 말씀은 마리아의 탄식이 담긴 말씀으로서, 마리아의 탄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 때부터 부활의 성 취의 때까지 부활을 갈망하는 그리스도인과 만유의 탄식을 함축한 탄식이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눈물이 너무나도 극적인 상황의 표현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눈물은 우리의 눈물만 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 이제 우리의 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눈물 이 표출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를 때가 다 되었음을 의미 한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부활의 성취에 대한 시대적인 요구를 탄 생시켜야 될 자들이다. 우리는 요한복음 11장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눈물에 담긴 예언적 의미를 잘 이해 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인류 역사의 모든 진실을 함축한 그 탄식, 그 고귀한 눈물을 흘 리기 위해서 이 시대에 있는 자들이다. 우리는 시대적 요구의 표출과 함께 부활의 성취에 대한 필요성을 알 려야 될 자들이다. 요한복음 11장 39절의 죽은 자의 냄새가 갖는 예 언적 의미는 인간의 진실의 드러남이다. 시체가 썩은 냄새를 냄과 같이, 이제 인류 역사의 죽음의 진실은 그 진실의 정점에서 썩은 냄새를 드러낼 것이다. 또한 그 진실의 정점에서는 썩은 냄새뿐 아 니라 의로운 냄새도 드러낼 것이다.
왜냐하면 선한 것과 악한 것, 진실한 것과 진실이 아닌 것에 대한 각각의 진실이 진실의 냄새를 드러낼 것이기 때문이다. (참고; 결국 인간의 진실은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기에 여기서는 모든 냄새를 죽음의 냄새로 표현했다. 그런데, 이 주검의 냄새는 하나님의 진실로서, 인간의 진실로서, 사단 의 멸망을 위한 증거로서 그 진실을 드러낼 것이다. 요한복음 11장 34절에 기록된 그를 어디 두었느냐라는 말씀은 소망의 비젼의 탄생을 의미하는 말씀이며, 요한복음 11장 39절에 기록된 돌을 옮겨 놓으라.라는 말씀은 사명의 비젼의 탄생을 의 미하는 말씀이다. 요한복음 11장 40절로 42절에 기록된 예수 스리 스도의 간구는 우리의 간구가 되어야 한다. 우리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식과, 예수 그리스도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들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이 낳은 하나님의 섭리가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갈망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아들들 안에서 표 출되어야 할 것이다.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 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라는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시대적 복음을 저들에게 주심은 부활을 향한 저들의 믿음의 성취를 위함이니, 사랑하는 이들의 믿음의 성취를 위하여 내 가 다시 가려 합니다.라는 예언적 의미를 지닌 말씀이다. 요한복음 11장의 이 말씀은 지금 이 시대에 살아 움직이면서 우리 앞에 펼 쳐지고 있다. 내가 이 시대의 탄식의 섭리를 표출하는 자가 되어, 하나님의 섭리를 가지고 있는 자가 되어, 나의 진실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눈물 안에서 요한복음 11장의 말씀을 볼 때 이 말씀을 내 것으로 소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죽은 나사로요, 마르다요, 마리아요, 죽은 나사로를 향해 우는 유대 인들이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통하여 진실을 볼 수 있어 야 한다. 마리아의 탄식을 통해 나타난 부활을 갈망하는 탄식의 가 치, 즉 탄식을 통하여 탄생된 소망의 비젼이 바로 우리가 가진 신 앙의 비젼인 것이다. 그러나, 이 마지막 때에는 주검의 냄새가 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의 믿음 안에서 탄생된 시대적 요구에 대한 탄 식과 함께 그 탄식이 탄생시킨 부활을 향한 소망의 비젼을 하나님께서 받으실 그 때에 나사로야, 나오라!라는 말씀과 함께 하나님 께서 우리 앞에 나타나실 것이다.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라는 말씀은 구원의 언약에 대한 말씀이며, 나사로야, 나오라라는 말씀은 부활의 성취를 의미하는 말씀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나사로야, 나오라! 라는 말씀과 함께 몸 의 구속, 몸의 해방, 부활의 성취를 원하는 우리를 위해 다시 오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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