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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동역자를 세우십니다 (요11:40-44)

본문

일전에 철야기도시 저는 이러한 질문을 성도님들께 드린적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처녀요 총각이라 결혼을 해야 할터인데 정말 '날씬한 몸매와 나에게 알맞는 키와 믿음직하고 마음을 끌어 당기는 목소리, 거기다가 박 사들의 실력을 능가하는 지식과 귀한 보석과 옷감으로 그것도 아주 적당하 게 장식한 단정된 머리와 복장' 자 이런 신랑감과 신부감이 있으면 결혼하 겠습니까" 아마 당장에는 대답 못하더라도 90 % 이상 속으로는 결정을 내리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멋쟁이들이 최첨단 컴퓨터 기술에 의하여 만들어진 로보트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경우 그래도 결혼을 하려고 할까요 물론 당 장에 "아니요"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로보트이기 때문입니다. 마음과 마음 이 자유롭게 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관계 곧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산 다는 것은 서로의 생각과 감정, 의견과 행동이 자연적으로 인식되고 자유 롭고 자발적인 반응과 의사소통이 교류되고 무엇보다도 상대가 진심으로 우러러 나오는 마음으로 칭찬을 하거나 위로를 하거나 사랑을 해올때 감동 적인 기쁨과 위로 그리고 행복감이 상대와 나에게 나눠지는 것이지 로보트 와 인형이 기계적으로 입력된 프로그램에 의하여 말을 하고 반응을 하고 움직여줄 때 거기에서 무슨 교제와 행복과 의미와 가치가 나누어 질 수 있 습니까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선악과를 만들어 놓으시고 먹지말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이렇게 명령하신 이유는 인간을 얼마나 위대 하게 창조하셨는가를 보여 주심입니다. 하나님은 기계를 만들어 놓은게 아 닙니다. 인형이나 로봇 인간을 만들어 놓으시고 전기와 명령 스위치에 의 하여 땅을 정복하고 만물을 다스리게 하셨다면 거기에서 하나님이 얻으실 것이 무엇입니까 스스로의 분별력, 자연적으로 느끼고 그 감정을 표현 할 수 있는 순수감정, 하나님의 마음에 들고 들지 않고를 스스로 이해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쪽을 자발적으로 선택하여 행동하는 자유의지, 바로 이러 한 인간을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어떤 과일 하나를 먹어도 그 색갈을 그 맛을 그 생김새를 스스로 쳐다보고 먹어보고 중심으로부터 감탄하며 "하나님 이거 정말 맛있어요, 이거 정말 이쁘게 만들으셨네요," 한가지 한 가지 감동하며 칭찬하며 좋아하며 하나님이 제일이라고 어린아 이 처럼 순수하게 그의 지혜와 솜씨, 그의 능력 등등을 칭찬하며 좋아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신 보람을 느끼신다는 말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당신의 동역자로 만들어 놓으셨는데 이점을 결코 잊어 서는 안됩니다. 만물을 하나님 혼자서 충분히 다스릴수 있는데도 사람에게 "만물을 다스려라"하심으로 통치의 일을 사람하고 같이 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보세요' 당신이 그 전능으로 계속하여 사람을 만들어 놓을수 있는데요 사람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축복하심으로 인간 창조의 사역을 사람과 함께 해나가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가지 더 구약에서 보면 만민에게 복을 내리시는 것도 하나님 혼자서 하면 될터인데 아브라함을 불러서 "너 를 인하여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혼 자서 일하지 않고 인간을 동참시키셔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심을 알리시면 서 하나님과 인간이 함께 기쁨과 영광과 권세와 나라를 함께 나누시려고 하신다는 이점은 얼마나 몰라운 하나님의 지혜인지 정말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을 한번 자세히 들여다 봅시다. 참으로 신기한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죽은 나사로가 누워 있는 무덤에 가셔서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랬더니 거짓말같이 죽었던 나사로가 무덤에서 일어나 수족이 베로 동인체로, 그리고 얼굴은 수건에 싸인체로 걸어 나왔습니다. 그 때에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이 사건을 읽으면 아무 것도 느낄 수 없겠지만, 한번만 더 깊이 생각해 본다면, 한가지 의문을 발 견하게 될 것입니다. 만군의 하나님이신 주님께서, 말씀 한 마디로 죽은 나 사로도 살리시는 그런 능력의 주님께서 왜 나사로를 살리시면서 그를 묶고 있는 모든 장애물을 살리실 때 한꺼번에 다 제거하시고 깨끗하게 걸어 나 오게 하실 수도 있을 텐데, 왜 따로 명령을 하셔서 "풀어 놓아 다니게 하 라"고 하셨겠습니까 하는 말씀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들과 함께 일하시기를 원하시고 하나님의 역사에 우리들을 동참시키시 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비단 이번 나사로 의 사건만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에는 한결 같이 이와 같은 모습이 숨어 있습니다. 주님 최초의 기적인 물로 포도주를 만드실 때에도 주님은 반드시 사람 을 통하여 물이 포도주가 되게 하셨고, 5병2어의 기적을 베푸실 때에도 한 소년의 도시락을 이용하셨으며, 베드로가 그물이 찢어지도록 물고기를 잡을 때에도 친히 베드로로 하여금 그물을 내리게 하셔서 기적이 나타나도 록 하셨습니다. 또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비유에서도 이와 같은 사실을 분명하게 발견하게 되는데, 탕자가 돌아 왔을 때 친히 달려나가 그를 맞으 면서도,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 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눅 15;22-23)고 명령하 심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배우는 것은 하나님은 하나님의 그 모든 일에 자신이 선택하신 일꾼들을 요소 요소에 배치하시고 사용하시기 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만드시고, 부름 받은 우리들에게는 그 생명을 유지 발전시키도록 또다른 일을 감당하게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 이 땅에 구원받은 우리 그리스도인 곧 하나님의 자녀를 남겨두심은 하나님께서 친히 하시는 생명의 역사와 복을 주는 역사에 수종들며 동역하는 봉사자의 일을 맡기시기 위함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맡김을 받은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충성"뿐 인 것입니다(고전4:2). 그러면 어떻게 충성하여야 할는지 구체적으로 성경 에서 그 방법을 배워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죽도록 충성하라 사도 요한이 마지막 때에 남긴 요한 계시록에 보면 주님의 이와 같은 말씀이 남아 있습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 류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고. 여기 이 말씀에서 우리는 '네'와 '내'를 자 세히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마지막 때에 죽도록 충성해야 할 사람 은 바로 우리 자신이고, 그렇게 충성한 자에게 면류관으로 상을 주시는 이는 바로 주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아버지께서 이 마지막 때에 하늘의 귀 중한 사명을 우리들에게 맡기신 그 자체가 우리들에게는 큰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귀중한 일을 맡은 우리들은 죽도록 충성을하여 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나타난 "충성"이란 말은 원문에 피스토스 인데 이는 곧 "믿음"이란 말과 동일한 말입니다. 즉, 하나님의 일은 반드시 믿음으로 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본문 40절에도 보면,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 말을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 느냐"고 하셨습니다. 세상의 일은 배운것으로, 혹은 돈으로, 경험으로 할 수 도 있지만 하나님의 일인 교회의 일은 그런 것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믿음"으로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도록 충성하라"는 이 말은 "죽도록 하나님을 의지하라, 예수님의 능력의 역사하심을 신뢰하라"는 말씀 과 같은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내 힘이나 주변 의 사람들의 힘에 의하여 좌우되지 말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공급 하시는 힘이 있음을 알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충성하라이고요, 또한 하나님 의 일을 열심히 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나중에 큰 상을 주실 것이란 것 을 믿고 확신하라는 말씀이요, 사람이 뭐라고 하든지 그것에 상관하지 말 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겠는가 하는데 관심을 두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하지만 보는이는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이 시시 때때로 상관하며 참견할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거기에 너무 신경 쓰지 말라는 말 입니다. 교회에서는 목사님이 OK하면 그만이요, 그 일을 시킨 이가 OK하 면 그만인 것입니다. 그 외에 다른 사람이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것에는 상 관하지 말고 부지런히 일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어차피 자기 수준만큼 외에는 말하지 못하는 법이니, 천태만상의 수준이 다 모인 교회에서 그 많 은 사람들의 비위를 어떻게 다 맞추며 일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이와 같은 믿음이 없이 하나님의 일, 교회의 일을 하다가는 시험 들기 십상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죽도록 믿으라" 혹은, "죽도록 충성하라"고 권하셨던 것입니다.
2. 원망과 시비, 다툼을 멀리 해야 합니다 빌2:14에 보면 "너희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하라"고 하셨고요 디모데후서 3:24에 보면, "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라는 말씀이 나타납니다. 주님과 함께 일하는 동역자들이 제일 금해야 할 일은 "원망과 시비와 다툼을 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원망과 시비와 다툼은 하나님과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동역자들에게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원망과 시비와 다툼은 마귀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들 곁에 함께 하시는 가운데 일하는 것이 하나님의 동역자인데 선한 일을 한다고 하며 교회에서 성내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일은 절대로 용납이 되지 않습니다. 이는 다 사탄 마귀로 좇아 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 렇게 하는 자는 다 악에 빠지게 되고 결국은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지게 된 다고 선언하였습니다. 시37:8-9를 한번 귀 기울여 들어 보세요. "분을 그치 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끈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라" 그래서 사도 바울은 아들과 같은 디모데에게와 열심히 일하는 빌립보교인들에게 권면하기 를, "너는 주의 종으로서 절대로 다투지 말라,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하라"고 당부하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하나님 과 교회에 유익 되게 하려고 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같은 거룩한 일을 하도록 부름 받은 주의 동역자들이 교회에서 다투어서 야 쓰겠습니까 창세 이후로 이렇게 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징벌과 심판하 지 않으신 적이 없으십니다. 특히 미국의 교인들 중에 이러한 원망과 다 툼이 많은데 어떤 목사님은 미국 이민목회 10년간에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악을 행하며 다투던 자가 과연 어떻게 되던가를 무서우리 만큼 자세히 잘 보았다고 간증을 하였습니다. 어떤 이는 가정이 파탄이 되어 이혼하고 말 았고, 어떤 이는 자식이 마약으로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고, 어떤 이는 사업 이 다 불에 타서 빈손 들고 나와 망하였고, 어떤 이는 중한 병에 걸려비참 하게 되는 등, 어쩌면 그렇게도 분명한 역사가 나타나던지 참으로 두려 울 만큼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것을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렇게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원망하거나 서로 다투지 맙시다. 이는 참으로 우리가 절대로 삼가야 할 불문률입니다.
3. 교만하지 말라. 낮은 곳에 물이 고이는 법입니다. 사람의 곁에는 언제나 사람이 꼬이고 모여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면서 사람이 피하여가는 그런 사람이 되면 안됩니다. 왜 사람이 머물지 못하고 피하여 갑니까 그는 너무 나도 높은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즉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영적인 교만은 스스로가 망하기 전에는 그 누구도 말리지 못합니다. 우리는 교만 하다가 망한 사울과 웃시야 왕을 잘 압니다. 그들은 참으로 다 훌륭한 인 물들이었는데, 불행하게도 그들은 인생 끝에 다 망하고 말았습니다. 한결 같이 교만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잘하다가 보면, 자칫 이와 같은 우를 범하게 되기가 쉽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이와 같은 교만에 대해 깊은 신경을 써야 합니다. 이렇게 자칫 잘못하여 교만하 여지면 사람은 커녕 하나님도 싫어하시고 떠나시게 되기 때문입니다. 아무 도 자기 자신을 교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 이것이 문제입니다. 암이 몸에 침범해 들어 와도 우리 몸이 그 암 바이러스를 깨닫지 못하 기 때문에 죽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교만은 아무도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 기 때문에 망하기 전에는 깨닫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만은 영적 으론 암보다 더 무서운 병인 것입니다. 내가 남보다 조금 더 주님의 일을 잘한다고해서 남을 무시하거나 주님이 피로 값주고 사신 이웃을 업신여길 때, 이미 우리 속에는 교만의 바이러스가 온 몸에퍼진 증거입니다. 우리는 다 같이 천국에 들어갈, 한배를 탄 같은 식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상대가 그 누구였던지 간에 무시하거나 업신여겨서는 안됩니다. 교 만은 바로 이런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일을 하면서 이웃 성도를 무시한다면 이는 차라리 세상일을 하면서 그러지 않는 것 보다 더 무서운 것입니다. 성경에서나 교회에서 망하는 사람은 대부분이 다 이렇게 교만하다가 망했다는 사실만 가슴에 깊이 명심해 두십시오. 그러면 교만하 여 망하지는 않게 될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폴 길버트의 다음과 같은 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구주를 위해서 설득력있는 산 증거가 될 수 있도록 격려하기 위해서 쓰여 진 것입니다. "당신이 하는 행동으로 당신이 하는 말로서 당신은 매일매일 한 장의 복음"을 씁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이나 있는 사람이나 사람들은 당신이 쓰는 것을 읽습니다. 당신이 기록하는 복음은 어떤 것입니까 말해보십시오. 그렇지만 때때로 우리의 글은 겨우 낡은 펜으로 끄적거리는 것에 불과합니다. 어쩌면 그 글씨는 너무나 얼룩지고 알아보기가 어려워 하나님을 전하는 메시지가 판독되어 질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19세기 영국의 위대한 복음 증거자 한나 모어 여사는 자신이 쓴 글의 영적 수준에 대하여 가끔 실망을 느꼈습니다. 그녀는 복음을 들어보지 못 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학교도 세우고 또한 많은 찬송가와 복음에 대 한 소책자들을 썼지만 그녀는 자신이 하는 일이 과연 그만큼 효과가 있는 지에 대해서는 자신감이 없었습니다. 다음은 그녀가 자기 자신을 평가한 말입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가장 쓸모없는 도구를 사용하셔서 일하시기를 즐겨 하십니다. 그리고 나는 이 모든 일을 하나님이 하신다는 점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를 제거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저에게 항상 위대 한 작가가 아주 나쁜 펜을 가지고 작품을 쓰는 것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위대한 작가이신 하나님께서는 저와 당신 같은 낡은 펜을 사용하셔서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의 말씀을 전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 생각에 우리 자신의 필체가 어떠하든지 상관하지 말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계속 써 나갑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 역자입니다.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맡겨 준 일에 충성합시다. 원망과 다툼을 버리고 사랑과 용납으로 다른 이들과 함께 손잡고 일합 시다. 교만을 버리고 겸손으로 일합시다. 하나님손의 펜임을 자각하고 감사 하며 일합시다. 생명의 면류관이 성도 여러분들을 위하여 분명 준비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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