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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육신 (요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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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시 성탄절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해마다 반복되는 일이지만 언제나 우리의 마음은 같습니다. 무엇인가 평화롭고 무엇인가 행복한 것 을 기대하는 계절입니다. 서로 용서할 수 있는 마음도 일어납니다. 사랑 하는 사람들로부터 따듯한 정이 실린 선물을 기대합니다. 선물을 서로 주 고 받으면서 마음을 나눕니다. 때로는 잊지못할 선물도 있습니다. 제가 교육전도사를 할 때 입니다. 부임하자마자 곧 중등부와 고등부 부감들과 마찰이 생겼습니다. 제가 하는 방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 이었습니다. 너무 새롭다는 것입니다. 자유주의라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잘못 물들여 놓는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그러나 그러는 이유는 전도사 를 그들이 시키는대로 아무 말 없이 움직이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한 해가 마쳐질 때 아마도 다른 곳으로 가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자신도 그만 하고 싶었습니다. 너무도 고달팠습니다. 그러나 담임목사님께서 그만 두라는 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 해를 더 참고 일해보자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중등부 부감이 못하겠다고 사표를 내었습니다. 담임목사님은 다른 사람을 부감으로 세웠습니다. 일년이 지나갔습니다. 성탄절 저녁 고등부 부감이 찾아왔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는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전도사님을 괴롭혀서 죄송합니다. 전도사님 본심을 잘 모르고 그랬으니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는 눈이 하얗게 덮인 마당을 지나서 돌아갔습니다. 그후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그 날 받은 그의 마음은 지금도 뜨겁습니다. 저보다 나이가 한참 위인 분이었습니다. 얼마나 그 말을 하기까지 괴 로웠을까 그 말은 제 마음을 뜨겁게 하고 제게 용서를 비는 마음을 주었 습니다. 그냥 그의 본을 받은게 아닙니다. 그 행동은 성령님의 감동을 통해 서 왔습니다. 그의 말은 선물로 제 속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후 저도 사람들과 갈등을 경험할 때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이 선물을 사람들에게 주기 바랍니다. 원수에게도 말하십 시오. "당신을 용서합니다"가 아닙니다. "용서해 주십시오"입니다. 상대는 잘못하고 나는 잘한게 아닙니다. 제가 그분에게 크게 잘못하지는 않았 습니다. 그렇다고 잘한 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먼저 자신을 용 서하라고 부탁했습니다. 이것이 신자의 마음인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주의 마음도 됩니다. 그가 어떻게 했습니까 죄지은 사람 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했습니까 "내가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니까 너희 들은 한심한 인간들이다. 이러저러한 면에서 지옥에 들어가야 한다. 거기 서 영원히 저주받아야 한다. 그러나 내가 누구냐 사랑이 많아서 너희들 을 용서해 주겠다. 그러니다시는 그렇게 악한 짓을 하지 말고 살아라."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죄를 자기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비난을 다 수용했습니다. 모두 앞에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리고 그 댓가를 지불했습니다. 마치 못된 짓하는 아들을 둔 아버지와 같습니다. 자식의 잘못한 것을 속죄하느라 굽실거리는 부모들을 가끔 보 셨을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의 잘못을 전부 자기 것으로 삼습니다. 그리고 용서를 빌고 있습니다. 자식이 전혀 뉘우치지를 않습니다. 그 러면 그것까지도 자기가 짊어지고 괴로워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 은 그 정도가 아닙니다. 자식의 죄를 짊어진게 아닙니다. 친구를 대신한 것도 아닙니다. 원수의 죄를 자기 것으로 여겼습니다. 남의 악을 자기 것 으로 여겨 괴로워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의미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선물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는 것입니다. 그는 모두에게 용서해 달라는 말을 들어야 할 존재입니다. 그러나 용서를 비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마음을 받는 사람들은 마음 속의 미움을 버릴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용서해 주는게 아니라 용서해 달라고 해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큰 선물이 될 것입니다. 주의 이러한 사랑은 뭉쳐져 사람으로 표현되셨습니다. 이것이 성육신 입니다. 사랑이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왜 육신이 되었습니 까 자랑하고 교만하기 위해서 입니까 내 마음대로 지배하고 높은 사람 이 되기 위해서 입니까 아닙니다. 우리의 짐을 짊어지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육신의 목적입니다. 그렇게 구원하는 것입니다.
자 이제 성탄에 받는 선물을 한 번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최상의 선물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높은 왕좌에 앉 아서 복종할 대상으로 오신게 아닙니다. 우리에게 이거저거하라 명령하는 대상으로 오신게 아닙니다. 그는 섬기러 오십니다. 섬기되 자기의 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주려 오신다고 합니다. 그가 바로 선물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사람들은 우선 능력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많은 세상적 축복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받은 것은 무엇보다도 그의 마음 입니다. 사람들은 기도합니다. "능력을 주십시오. 복을 주십시오." 주는 대답합니다. "내 마음이 가장 큰 복이다. 그것을 사용해야 제대로 능력이 나타난다. 병고침도 죽은자를 일으킨 것도 모두 그 사랑의 마음이다.사랑의 마음은 모든 것을 극복한다. 오래 참음을 준다. 온유하게 한다. 질투하지 않고 자랑하지 않는다. 교만하지도 성내지도 무례히 행치도 않는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악한 것이나 불의를 행하지 않는다.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고 믿고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딘다. 사랑은 기적을 준다. 그것은 참된 능력이요 참된 승리요 하나님 자신이다." 그래서 깨달은 사람이 기도합니다. "주의 마음을 내게 주십시오." 주는 대답하십니다. "이미 내 마음이 네 속에 있다.아닙니다. 주여 내 마음에는 욕심만 가득차 있습니다.느낌에 복종하지 말라. 나의 말에 복종하라. 그 말을 믿으라. 나를 영접한자는 나의 마음도 받았다. 그 마음을 따르라. 그것이 능력이요 그것이 기적이다. 그것으로 통치하라." 이것은 세상의 방법과 다릅니다. 세상 왕은 큰 행차와 함께 옵니다. 왕궁에서부터 금빛 수레를 타고 모든 호위병을 거느리고 옵니다. 그러나 영적인 눈으로 보면 한 초라한 죄인이 걷고 있을뿐입니다. 사람들도 여러 가지 호화로운 것으로 자랑을 삼습니다. 목사도 경호원과 함께 다니는 이 가 있었습니다. 수행원이 많다고 영적으로도 그런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그가 우리에게 오실 때 겸손하게 오십니다. 우리의 왕은 왕궁이 아니라 마구간에 나십니다. 양들 가운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는 호위병이 없습니다.
성장할 때는 목수의 가정에 있었습니다. 가난이나 초라함을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가 예루살 렘에 입성할 때는 어린 나귀를 탔습니다. 이것이 그의 행동방법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눈이 있는 사람은 금새 알 수 있습니다. 그가 마굿간에 구유에 누워있을 때였습니다. 하늘과 땅은 영적인 빛으로 찬란했습니다. 하늘의 천군 천사들은 모두 내려와서 신비한 찬양을 불렀습니다. 온 하늘 과 온 땅은 은혜로운 빛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볼 수 있는 자는 별로 없었습니다. 죄와 교만으로 그 마음이 가득찼기 때문입니다. 그가 세례를 받을 때 그랬습니다. 초라한 모습으로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사람들 눈에는 전혀 구세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죄사 함의 세례를 받을 이유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의 죄를 짊어지 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었습니다. 그는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자 하늘은 갈라지고 천군이 도열한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선물로 받는 사람들은 모 두 그와 같습니다. 겉으로는 별 일 아닙니다. 우리가 무릎을 꿇고 예수를 구주로 모셔들입니다. 아무 변화도 없습니까 아닙니다. 하늘의 모든 천 사들이 기쁨으로 환호합니다. 그리고 그의 안에서 그리스도와 같은 종류 의 사람이 새로 탄생합니다. 영혼은 하나님의 얼굴 모습을 닮았습니다. 세상적으로는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경호원도 없습니다. 그러나 경호원이 아무리 많아도 죽을 사람은 죽습니다. 때때로 국가 원수들이 저격을 당합니다. 아무리 경호원이 많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받은 사람들은 천사가 경호를 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믿음으로 흔들리지 않고 선다면 영적인 실체는 그대로 힘으로 나타납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가난하게 살라는게 아닙니다. 마굿간에서 태어났다고 훌륭한게 아닙니다. 또한 왕궁에서 살면 나쁜 것도 아닙니다. 무조건 검 소하게 살면 영적으로 부요한게 아닙니다. 가난하건 말건 부요하건 말건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외형적인 복에 너무 매달리지 말라는 이야 기입니다. 어떻게 하든 하나님의 성품을 따라서 사는게 중요합니다. 예수는 이렇게 육신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들어와 녹아지셨 습니다. 우리 몸을 통해서 성육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같은 존재 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결단할 것은 이것입니다. 이 예수를 나의 도구로 내 종으로 이용할 것인가, 아니면 그에게 복종해서 그와 같은 삶을 살 것인가 그가 나에게 녹아진 것처럼 나도 그에게 녹아질까 다른 말로 하면 이러합니다. 그처럼 섬기며 다른 사람들 속에 다시 성 육할 것인가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영원한 축복을 누리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사는 것입니다. 유명하고 재산을 많이 모으는 것이 내 영혼을 유익하게 하는게 아닙니다. 그런 것들을 이용해서 사람들 마음 속에 녹아지는 것입니다. 얼마나 크게 녹아질 수 있습니까! 몇 년 전 신문에 났던 사실입니다. 한 청년이 성탄절날 자살을 했습니다. 아무 선물도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는다. 세상에 나는 철저하게 혼자다."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러자 그는 이 런 악한 생각에 골몰하게 됩니다. 그리고 세상을 증오의 눈으로 보았습니다. "더 이상 이런 상태로 살아서 무엇하는가" 오직 그 생각이었습니다. 그는 제일 좋은 선물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그저 남들이 날 사랑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런 사랑을 얻기 위해 뭐라도 하겠다는게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조그만 선물을 가지고 소외된 사람 하나를 찾 을 수 있습니다. 어느 해 성탄절 밤에 암으로 죽어가는 사람과 홀로 병원 에 누운 부인을 찾았습니다. 선물 받은 것은 그들이 아니라 저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최상의 선물은 이미 우리가 받았습니다. 성탄에 그리스도 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바로 "주는 마음"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 마음 가득히 주는 마음을 부어주셨습니다. 다 른 사람의 죄를 아파하고 다른 사람의 고통을 느끼는 마음입니다. 그것이 성탄의 선물입니다. 그 마음이 우리의 삶 속에 성육신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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