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목자의 자화상 (요10:1-6)
본문
'목자는 시편 이십삼편을 본다하'는 그런 이름에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 저자인 필립켈러라고 하는 분은 팔년동안 목장주인으로 생활한 경험을 토대로 해서 양에 대해서 나름대로 기록을 하고 특별히 시편 이십삼편에 있는 내용을 더깊게 더확실하게 경험해서 방정해 주는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는 유니벌스티 토론토 대학을 나오고 공부를 많이한 사람이고 그리고 토양학자 이기도 합니다. 그는 이책에서 양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양이라고 하는 동물은 참으로 나약한 동물이다. 그렇습니다. 뿔도 없고 여러분 아시는 대로 물어찢을수 있는 온곳니도 없습니다 뱀같은 독도 없습니다. 양은 짐승처럼 사나운 발톱도 없습니다. 그저 무방비적인 나약한 동물입니다. 자지기보다 작은 동물한테도 꼼작 못하고 먹혀죽는 그런 하잘 것없이 약한동물입니다. 그야말로 순하고 착한 양입니다. 그러나 양에 특징이 있습니다. 그 분이 하는 말은 이렇습니다. "양은 고집이 세고 보수적 습관이 강한동물이라고요" 이점에 문제가 있습니다. 제멋대로 하게 내버려두면 도랑이 생길 정도로 같은 길을 간다. 같은 길로 다닌다 말입니다. 그래서 중동에 다니면서 보면 아주 넓은 산이 있지요. 산에 오선지를 그려 놓은 것 같이 길이 있어요. 하나 줄줄이 길이 있는데 이 길이 뭐냐 양이 그 길로만 거기로만 수백 마리가 계속 다니니까 도랑이 생길 정도로 자기 다니는 길로만 계속 다니는 거예요. 이래서 아주 땅을 못 쓰게 만들어요. 그런가하면 황폐하게 될 만큼 같은 언덕에서 풀을 뜯는다는 것입니다. 먹기 시작했으면 그 언덕에서만 계속 풀을 뜯어요. 그저 그 마른풀 노랗게 말라버린 1cm도 안되는 풀을 그냥 뜯어먹어요. 이렇게 해서 양이 그 자리에 머무는데로 내버려두면 그 산이 완전히 못쓰게 되고 그들이 황폐하고 말아요. 그런가하면 질병과 기생충이 들끌을만큼 그는 그 목장 그 목양장을 더럽힙니다. 그 우리를 더럽힙니다. 도대체가 자기로서는 그 대책을 세우지를 못해요. 거시서 그냥 싸고 먹고 이렇게 해서 마침내는 거기서 병이 들끌어요. 그래도 그냥 거기 머물러 있는 거예요. 죽을 때까지 이게 양의속성이라는 거지요. 대게 고집이센 그런 짐승이라는 말이에요.
글쎄올시다. 조금 어리석은 사람이 고집이 있긴 있습니다만은, 양은 철저하게 보수적 고집이 있는 그런 동물이라는 거지요. 결론은 뭐냐하면 그럼으로 양에게는 목자가 있어야 합니다. 만일에 멋대로 하도록 내버려두면 이들은 다 죽어버리고 맙니다. 자연도 망치고, 자기도 죽고, 그래서 멋대로 하지 못하도록 이동을 시켜야 합니다. 환경을 바꾸어주어야 합니다. 목자가 저들을 인도해서 그 다음 초장으로 그 다음 목장으로 계속 장소를 옮겨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풀밭도 살고 목장도 살고 양도 살고 그것이 양에 생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성경에서는 예수님께서 "나는 선한 목자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는목자다. 비유적으로 말하며 목자에 자화상을 그리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신학적으로 아주 중요한 단어 일급이 있습니다. 그것은 뭐냐하면 예수님 친히 나는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그 말은 영어로 I am 직선적으로 나는 무엇이다 나는무엇이다. 일곱번 말씀하시는데 이것이 요한복음에 주제입니다. 그것은 나는 말씀이다 나는 빛이다. 나는 길이다. 나는 진리다. 나는 생명이다. 나는부활이다 그리고 나는 선한 목자다. 이 일곱마디에 말을 설명하면 이것이 요한복음입니다. 나는선한 목자다 그 말에 깊은뜻이 뭐냐하면 나는 선한 목자다. 너는 선한양이 되라 그말씀을 하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먼저 생각해야 할 부분이 뭐냐하면 선한 목자인 자기자신을 설명하면서 동시에 양들이 선한 양이 되어줄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한 목자 오늘 본문에 말씀대로 나는 선한 목자다. 그걸 먼저 말하면서 선한 목자임을 알아야 한다는 거지요 안다는 문제가 있어요. 선한 목자를 선한 목자로 알아야 선한 양이 되는 거지요 이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보니까 아침에 목자가 양에 우리를 방문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밤새껏 얼마나 수고했는지 그 축축한 양에 우리에서 고생을 했는것 목자가 알고 있다. 그래서 적당한때 적당한 장소에 적당한 방법으로 나타납니다. 아침에 이제 푸른초장에 햇빛이 들고 그저 풀을 뜯기위해 좋은시각이 되서 적당한 시간에 오신것 또 양들이 지금 먹어야 될 시간이에요. 모든것을 아시고 선한목자는 아침 일찍이 찾아왔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는대로 잠깐 암시됩니다만은, 문지기가 양의문을 연다 그랬어요. 양에 우리에 문을연다. 양에 우리의 문을열면 이제 목자가 저들을 만나게 되는데 양이 목자를 알아보고 목자가 양을 알아본다는 거지요.
여러분 아시는대로 문지기나 목자나 양에눈으로 볼때는 사람인것 마찬가지요. 누가더 키가 크고 작고 하는 것도 아니고요. 또 여기에 암시된바 같이 도둑이요 강도요. 그 사람들도 사람은 사람이요 양이 볼때는 그러나 양은 알고있습니다. 이사람은 강도 이사람은 뭐 이사람은 문지기 돈 받고 밤새 양에 우리나 지켜보고 있는 그런사람 진정으로 사랑하는 목자는 이사람 그들은 목자를 알아봅니다. 선한목자 자기를 위하여 찾아오시는 목자 자기를 사랑하는 목자를 알아본다는 거지요. 예수님 말씀이 이비유속에서 무엇을 말합니까 나는 선한 목자다 내 음성을 들어야하고 나는 너를알고 너는 나를안다 서로 알아야지요 목자와 양사이에 이런 아름다운 관계가 이루어 지는 거예요. 그게 무슨 지식이 뭡니까 뭐 이름을 압니까 생일날을 압니까 뭐 과거를 압니까 그런얘기가 아니지요. 오직하나 저분은 나를 사랑한다. 저분은 나를 사랑한다. 이 사실을 알아요. 선한 목자와 양 사이에 이런 아름다운 관계가 이루어져요. 그래서 으레이 이 시간되면 오실거다 기다렸다가 목자에 음성이 들리면은 초초해집니다. 웅성웅성 합니다. 그래 이제 문지기가 문을 열면은 양들이 목자를 보고 반가워 합니다. 아주 반가워하는 모습이지요. 상상을 해보세요. 서로이렇게 안다는것이지요. 그뿐 아니라, 오늘 본문에 더아름다운 말씀은 양에 이름을 부른다는 거예요. 하나하나 이름을 부른다 이것은 개인적 사랑을 말하는 것이에요. 개별적으로 안다. 그래서 뭐 검둥이 흰둥이 뭐 점백이 이렇게 부르면 다 알아서 하나씩 하나씩 턱을 넘어서 밖으로 나온다. 양은 목자에 이름을 안다. 얼마나 아름다운 얘기인지 모릅니다. 가끔 우린 그런생각을 해요 하나님이 많은사람 가운데 나를 아실까 내게 관심이 있을까 대단히 죄송하고 미안한 말씀입니다만은, 우리 교인들이 저를 만났을때 "목사님 저 모르시지요" 아이고 전 정말답답해요. 괴롭고 미안하고 그렇습니다. 제가 건망증이 많아서 그걸, 어떻게다 기억을 하겠습니까 아니 집사가 오천명인데 내가 어떻게 집사를 알겠습니까 그런데 아니 이분이 딱 이렇게 묻거든요 참어려워요 특별히 해외에 갔을때 "목사님 저 누군지 알겠어요" 이것은 고둥고시 시험보다 더어려운거예요. 참 뺨을치는것 같아요. 꼭알아야 되겠는데 본듯 안본듯 한데 알제간이있나 그래서 그럴때에 제가말합니다 " 죄송합니다 아이고 참 죄송합니다"
그런데 제발 그러지말고 제가 소망교회권사 입니다. 요렇게 말해주면 참좋겠는데 아니 이것 남을 심문하는 거예요. 이것도 고욕입니다. 어쨌든 전 그럴때마다 죄송하게 구구한 설명을 드립니다. 그러나 저도 할말은 있어요. 사람의 기억력은 삼백명 이상의 이름을 기억못합답니다. 아는척 해봐야 삼백명 이내입니다. 평균 삼백명밖에 기억못한다. 그러니 내가 삼만명을 어떻게 알겠어요. 알려고 하지도 않이요. 공평하게 하기위해서 다 알지도 않아요. 그렇게 덤덤이 되는데 그러고보면은, 목자로서는 시원치안은 목자지요. 그러나 한가지 잊지마세요. 하나님은 아십니다. 우리는 한사람 한사람을 다모릅니다만은 하나님은 여러분 하나하나를 By name 이름을 하나하나 Personalic 개인적으로 개별적으로 아신다는 말입니다. 알되 특별히 여러분의특징을 압니다. 형편을아십니다 나약함도 아십니다 잘못된 습관도 아십니다. 말썽꾸러기인 것도 아십니다. 하필이면 꼭못된 방향으로만 생각하는 그런 인간됨도 다 아십니다. 양이라는 것이 많다보면 거기 오족 별것이 다 있겠습니까 다 알고 있어요. 같은게 아니예요 양이라고 이모든 사실을 개별적으로 알고 계시단 말씀입니다. 얼마나 고마운 말씀입니까 목자는 압니다. 양에 입맛을 알아요.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또 어떻게 해야지 양을 위하는 것인지 목자가 압니다. 양은 몰라요 양은 제멋대로 고집을 부리지만은 아니다 이놈아 그건 네게 해로운거다. 이리와라 이것이 네게 이로운것이다. 분명히 목자가 알고 있지요. 양이 아는것이 아니예요. 여러분 다보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은 유명한 영화 쉰들러리스트 라는 영화가있지요. 너무나도 유명한영화입니다. 못본 사람하고는 얘기 안합니다. 이영화 육백만이나 되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히틀러와 그일당들이 죽일떼에 그 때에 살아남기 위해서 여러가지로 백방으로 애쓰는 그런 모습입니다. 많은 방법으로 애를써서 얼마간에 사람을 살릴 수 있도록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제 그쉰들러가 살려낼 사람에 리스트를 작성합니다. 그 장면이 가장 감격적입니다. 기억력을 발해서 자기가 아는사람에 이름을 거기에 적습니다. 천명을 여기이름이 쓰여진 사람은 살아남는것입니다. 그리서 빼내는것입니다. 죽을때서 빼내는데 그것이 쉰들러리스트 입니다. 리스트에요 리스트에 기록합니다. 기록된 사람은 삽니다. 문제는 쉰들러라는 사람에 머리속에 기억되어 있는사람은 사는 거예요. 여기서 빠지면 죽는 거예요. 그것을 밤새워 가면서 기억을 해내면서 하나하나 이름을 적어나가고 그 명부를 가지고 헤매는 모습을 봅니다. 얼마나 감격스러우십니까
여러분 분명히 구약성경에서 말씀합니다. 너희 이름이 내 손바닥에 있으니라 하나님은 우리에 이름을 손바닥에 써넣고 기억하고 있다. 절대로 이름을 잊어버리지 않겠다. 너희 하나 하나를 개별적으로 사랑한다는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구약성경에서 있는바와같이 아브라함와 모세야, 사무엘라, 또 솔로몬아 모든 허물이있고 부족한 사람들 이지만은 하나님께서 하나하나 불러서십니다. 거기에 의인이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그하나하나를 다 사랑하세요. 개별적으로 사랑해서 글을 쓰시는 것을 볼수있어요. 이거 하나님에 사랑이예요. 특별히 오늘 본문에말씀 우리에 마음을 뜨겁게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렇게 다 이름을 부른다음에 앞서가신다는 거예요. 저는 이대목이 너무 마음에 은혜가 되요. 양을 다 불러낸 다음에는 목자가 앞서가면 양들이 뒤따라 가더라 어찌 생각하면 간단하게 생각되지만은 이게 얼마나 오묘하고 귀한말씀인지 모릅니다.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어요. 리저스 다이제트에 나타난 이야기인데요 서양목동과 동양목동을 비교했어요. 그런기록이 있는데 그얘기는 이렇습니다. 서양목동은 그 가축을 뒤에서 몬다는 거예요. 자 생각해 보세요 가축을 앞에다 놓고 몰게되면 어떻게 됩니까 여러분 서부활극에서 봤지요. 그 소를 몰때 소를 앞서가게 하고 뒤에서 모는 거에요 때리고 곁길로 가는놈은 붙들어오고 또 이리 때리고 저리 때리고 앞으로 그냥 몰로 갑니다. 이렇게 가축을 몰지만은, 동양 목동은 양을 인도한다. 자기가 앞서가고 가축을 뒤따 라 오게 한다는 거지요. 그런 풍속에 대한 차이점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귀한 이야기에요. 보세요. 앞에다 놓고 뒤에서몰때는 결국은 강꾼이 발동되는 거예요. 위협을 하는거에요 잘못된 길로 가는놈은 때려가면서 인도 합니다. 그러나 앞에서 간다할때는 어떻게 됩니까 양이 자기를 따라올것을 믿고있는 거에요. 저는 예루살렘에 갔을때 그 어린 아이가 목동하나가 양 삼백마리가량을 인도하는것을 봤어요. 전 그 뜨거운 햇빛에서서 일부러 한삼십분 동안 본것 같습니다. 너무너무 아름다운 거예요. 조그만 아이가 목동이 땡강땡강땡강 총을 치면서 가니깐요 그 양이 삼백만이나 됩니다. 많은양이 줄을서고 따라가는데요 한놈도 이탈자가 없어요. 내 그것을 보면서 느낀것이 뭔지 아세요. 우리 교인이 다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 아 참아름다운 장면이예요.
목자는 양을 믿어요. 따라올것이라고 그 가운에는 말썽꾸러기 있어요. 고집센놈도 있어요. 또 가끔 가다 쓰러지는 놈도 있어요. 또 비틀거리는 놈 별놈다 있는것 알아요. 알지만 꼭 따라올거라고 믿어 요. 그리고 저는 앞서가고 양들은 절렁절렁 따라와요. 그게뭐 한 눈파는 놈도 있지, 그러나 결국은 다 따라온다 말입니다. 이것이 목자에 믿음이예요. 양이 목자를 믿는건만 아니예요. 목자가 양을 믿고 있는 거에요. 그러기 때문에 앞서가는거지 생각해 보세요. 양이 목을 맵씁니까 자갈을 물렀습니다까 그냥 내버려 둔거예요. 목자가 앞서가면 졸졸졸졸 따라온다 이거에요. 이 얼마나 아름다운 관계냐 이거예요. 거기에믿음이 있고 신뢰성이 있는 거지요. 사랑이 있고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 입니까 언젠가 한 번 여집사님이 그래요 자기아이가 어린아이가 벌써 말썽꾸러기입니다 어찌나 사고를 많이내고 게다가 너무너무 말썽을 부려서 걱정이라고 게다가 한마디 더해요. 제에비 닮아가지고 그래가지고 내가 물어봤어요. 말썽꾸러기라서 낙심이 된다해서 몇살이요. 그러니까 국민하교 사학년이래요. 그래서 내가 그러지 마세요. 물론 세계적인 인물이라고는 합니다만은, 성어거스틴에 어머니는 그 아들이 방탕할때 형편없이 막당하고 죄로해 갈때 십삼년을 기달렸습니다. 전혀 낙심하지도 않고 원망하지도 않고, 오로지 하나님 앞에 성실하게 끝까지 사랑하고 믿고 기도하고 기달렸어요. 결국은 그 아들이 로마로 갔다가 암무르스를 만나고 가출까지 했다가 성자가 되어가지고 돌아옵니다. 기다려요 그게 믿음이예요 좀 죄송한 고백입니다만은 제가 개인적으로 목회자로서 고백합니다만은, 어떤때 교인들이 와서 어떤 교인이 있는데 아 그분이 어떻게 어떻게해서 말썽을 부리고 어떻게 말이많고 뭐 좀 문제에 인물입니다. 그렇게 말할때 제가 삼십년 전에 목회할때는 철없이 그래요 또 찾아가서 군면을 했지요. 군면해달라고 지금은 부탁을 누가해도 제가 잘안합니다. 가도록 해볼께요 하고 안갑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기다립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해서 성령님으로 말씀으로 함께해서 그속이 변화될때가 오더라구요 가만히 기달리면 언젠가 이루어져요. 내가 만일 그를 직접만나 군면을 하게되면 나에게 치부를 들어냈다는것때문에 더 멀어져요. 목사님 만나는게 꺼리고 부끄러워지고 이거 안된다 말입니다. 그러니까 뭐 부부싸움 했다고 네가가서 말려달다고 해도 저 안갑니다 그거는요 그 모른척 해야지요. 그것다 알면 됩니까. 어쩌다가 실수가 있다하더라도 그러지 않아요. 목자는 양을 믿어요. 앞서가면 줄렁줄렁 따라와요. 뭐 이리가고 저리가다가도 따라와요. 이걸 잊지말아야 되요. 그리고 목자는 앞서가면서 모든위험을 자기가먼저 당합니다. 맹수를 만나도 먼저 함정에 빠져도 자기가 먼저 자기가 먼저가며 먼저 고난을 당합니다. 양들은 믿고, 안심 하고, 그를 따릅니다. 전적으로 믿고 따릅니다. 조금도 의심하지 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도 흐트러지지 안고 삼백만이나 되는 양이 줄줄이 따라가고 있더란 말입니다. 한 길로 따라가기 때문에 한번 지나가면 골이 패일정도로 된단 말입니다. 이 아름다운 장면을 생각해보세요. 또한 오늘 성경말씀은 이렇게 귀한말씀을 주시고 하나 더 있습니다. 십일절과 십팔절에 보면은, 나는 선한 목자다 선한 목자는 양을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선한 목자는 목숨을버리고 양을 사랑해서 어떤때는 대신죽어요. 그런가하면, 누가 빼앗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버리노라 스스로 목숨을 버려가면서 양을 사랑해 이걸알기 때문에 이걸믿기 때문에 양들이 목자를 따르는 거지요. 긴얘기가 필요없어요. 왜이리로 인도합니까 왜저리로 가라는 것입니까 왜하필이면 이골짜기 입니까 절대 묻을 필요가 없어요. 사방이 움침한 골짜기로 지나가도 그대로 믿고 따라가는 거예요. 이 언덕을 넘어서면 저기 푸른초장이 나타나는 거지요. 이것이 목자와 양의 관계예요.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 맙시다.
선한 목자되신 주께서 인도하십니다. 그저 믿고 조용히 따라가 기다려 보세요. 이런 재미있는 얘기가 있어요. 뉴욕주에 한 휴양지에 거기에 문레이크 나치라고하는 그런 레스토랑하나 식당이 하나 있었는데 거기에 조지 쿠렐이라고 하는 그런 인디안출신에 요리사가 하나 있어요. 요리를 정성껏 만드는 분인데 어느날 까다로운 손님 하나가 왔어요. 주인도 이걸 알아요 저분은 한번 음식 갔다주면은 도로 물러 다시 해와 골탕먹이는 것을 알지만은, 단골손님이라 그럴수 없어서 단단히 주위를 주었지요. 주인은 왕이다 몇번말씀하시든 몇번 퇴자를 놓든 그저 줄거운 마음으로 웃으면서 순종을 해야 하는니라 잘 모셔야 하느니라 그랬어요. 아니나 다를까 아 그저 후렌치프라이 감자를 이렇게 썰어서 기름에 튀긴건데 이것을 만들어 주었더니 너무크다고 조그만하게 또 다시 만들어 주니까 너무 두껍다고 얇게 또 하면 또 얇게 마지막에 그냥 집어치우고 싶지만은 주인이 말했거든요. 손님은 왕이라고 그래서 참고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래가지고 이감자를 얇게 얇게 종이장처럼 얇게 썰어가지고 튀겨가 주었더니 바삭바삭 그걸 씹으며 젓가락으로 집을수 없을 정도로 얇게 씹으면서 음 좋다고 만족하다고 아 소문이 나는데 그 집에 가면 종이장처럼 얇은 감자튀김이 있다고 그래가지고 손님이 모여드는데 이게 포테이토칩입니다. 때돈을 벌었답니다. 때돈을 벌었어요. 그저 어떻게든 마음대로 안되는것 같지만은 이것은 주인에 명령이요. 그래서 순종해라 했기 때문에 순종순종 했더니만 이런 결과가 왔다는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러분 선한목자 믿습니까 그러면 나는 선한 양이 되야지요. 여러분 스스로 생각해 보세요. 네가 어느정도에 양인가 정말 착하고 좋은 양인가 목자는 양을 믿고 있는데 나는 이모양이래요. 언제까지 말썽꾸러기가 될것입니까 사방에 움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 받음을 두려하지 않을것은 주께서 나와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이십삼편일절을 보세요. 여호하는 나에 목자시니 네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라 그것이 바로 우리에 고백이요. 선한 목자에 신앙입니다. 선한 목자에 선한 양에 순종입니다. 그에 찬양입니다.
글쎄올시다. 조금 어리석은 사람이 고집이 있긴 있습니다만은, 양은 철저하게 보수적 고집이 있는 그런 동물이라는 거지요. 결론은 뭐냐하면 그럼으로 양에게는 목자가 있어야 합니다. 만일에 멋대로 하도록 내버려두면 이들은 다 죽어버리고 맙니다. 자연도 망치고, 자기도 죽고, 그래서 멋대로 하지 못하도록 이동을 시켜야 합니다. 환경을 바꾸어주어야 합니다. 목자가 저들을 인도해서 그 다음 초장으로 그 다음 목장으로 계속 장소를 옮겨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풀밭도 살고 목장도 살고 양도 살고 그것이 양에 생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성경에서는 예수님께서 "나는 선한 목자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는목자다. 비유적으로 말하며 목자에 자화상을 그리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신학적으로 아주 중요한 단어 일급이 있습니다. 그것은 뭐냐하면 예수님 친히 나는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그 말은 영어로 I am 직선적으로 나는 무엇이다 나는무엇이다. 일곱번 말씀하시는데 이것이 요한복음에 주제입니다. 그것은 나는 말씀이다 나는 빛이다. 나는 길이다. 나는 진리다. 나는 생명이다. 나는부활이다 그리고 나는 선한 목자다. 이 일곱마디에 말을 설명하면 이것이 요한복음입니다. 나는선한 목자다 그 말에 깊은뜻이 뭐냐하면 나는 선한 목자다. 너는 선한양이 되라 그말씀을 하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먼저 생각해야 할 부분이 뭐냐하면 선한 목자인 자기자신을 설명하면서 동시에 양들이 선한 양이 되어줄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한 목자 오늘 본문에 말씀대로 나는 선한 목자다. 그걸 먼저 말하면서 선한 목자임을 알아야 한다는 거지요 안다는 문제가 있어요. 선한 목자를 선한 목자로 알아야 선한 양이 되는 거지요 이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보니까 아침에 목자가 양에 우리를 방문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밤새껏 얼마나 수고했는지 그 축축한 양에 우리에서 고생을 했는것 목자가 알고 있다. 그래서 적당한때 적당한 장소에 적당한 방법으로 나타납니다. 아침에 이제 푸른초장에 햇빛이 들고 그저 풀을 뜯기위해 좋은시각이 되서 적당한 시간에 오신것 또 양들이 지금 먹어야 될 시간이에요. 모든것을 아시고 선한목자는 아침 일찍이 찾아왔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는대로 잠깐 암시됩니다만은, 문지기가 양의문을 연다 그랬어요. 양에 우리에 문을연다. 양에 우리의 문을열면 이제 목자가 저들을 만나게 되는데 양이 목자를 알아보고 목자가 양을 알아본다는 거지요.
여러분 아시는대로 문지기나 목자나 양에눈으로 볼때는 사람인것 마찬가지요. 누가더 키가 크고 작고 하는 것도 아니고요. 또 여기에 암시된바 같이 도둑이요 강도요. 그 사람들도 사람은 사람이요 양이 볼때는 그러나 양은 알고있습니다. 이사람은 강도 이사람은 뭐 이사람은 문지기 돈 받고 밤새 양에 우리나 지켜보고 있는 그런사람 진정으로 사랑하는 목자는 이사람 그들은 목자를 알아봅니다. 선한목자 자기를 위하여 찾아오시는 목자 자기를 사랑하는 목자를 알아본다는 거지요. 예수님 말씀이 이비유속에서 무엇을 말합니까 나는 선한 목자다 내 음성을 들어야하고 나는 너를알고 너는 나를안다 서로 알아야지요 목자와 양사이에 이런 아름다운 관계가 이루어 지는 거예요. 그게 무슨 지식이 뭡니까 뭐 이름을 압니까 생일날을 압니까 뭐 과거를 압니까 그런얘기가 아니지요. 오직하나 저분은 나를 사랑한다. 저분은 나를 사랑한다. 이 사실을 알아요. 선한 목자와 양 사이에 이런 아름다운 관계가 이루어져요. 그래서 으레이 이 시간되면 오실거다 기다렸다가 목자에 음성이 들리면은 초초해집니다. 웅성웅성 합니다. 그래 이제 문지기가 문을 열면은 양들이 목자를 보고 반가워 합니다. 아주 반가워하는 모습이지요. 상상을 해보세요. 서로이렇게 안다는것이지요. 그뿐 아니라, 오늘 본문에 더아름다운 말씀은 양에 이름을 부른다는 거예요. 하나하나 이름을 부른다 이것은 개인적 사랑을 말하는 것이에요. 개별적으로 안다. 그래서 뭐 검둥이 흰둥이 뭐 점백이 이렇게 부르면 다 알아서 하나씩 하나씩 턱을 넘어서 밖으로 나온다. 양은 목자에 이름을 안다. 얼마나 아름다운 얘기인지 모릅니다. 가끔 우린 그런생각을 해요 하나님이 많은사람 가운데 나를 아실까 내게 관심이 있을까 대단히 죄송하고 미안한 말씀입니다만은, 우리 교인들이 저를 만났을때 "목사님 저 모르시지요" 아이고 전 정말답답해요. 괴롭고 미안하고 그렇습니다. 제가 건망증이 많아서 그걸, 어떻게다 기억을 하겠습니까 아니 집사가 오천명인데 내가 어떻게 집사를 알겠습니까 그런데 아니 이분이 딱 이렇게 묻거든요 참어려워요 특별히 해외에 갔을때 "목사님 저 누군지 알겠어요" 이것은 고둥고시 시험보다 더어려운거예요. 참 뺨을치는것 같아요. 꼭알아야 되겠는데 본듯 안본듯 한데 알제간이있나 그래서 그럴때에 제가말합니다 " 죄송합니다 아이고 참 죄송합니다"
그런데 제발 그러지말고 제가 소망교회권사 입니다. 요렇게 말해주면 참좋겠는데 아니 이것 남을 심문하는 거예요. 이것도 고욕입니다. 어쨌든 전 그럴때마다 죄송하게 구구한 설명을 드립니다. 그러나 저도 할말은 있어요. 사람의 기억력은 삼백명 이상의 이름을 기억못합답니다. 아는척 해봐야 삼백명 이내입니다. 평균 삼백명밖에 기억못한다. 그러니 내가 삼만명을 어떻게 알겠어요. 알려고 하지도 않이요. 공평하게 하기위해서 다 알지도 않아요. 그렇게 덤덤이 되는데 그러고보면은, 목자로서는 시원치안은 목자지요. 그러나 한가지 잊지마세요. 하나님은 아십니다. 우리는 한사람 한사람을 다모릅니다만은 하나님은 여러분 하나하나를 By name 이름을 하나하나 Personalic 개인적으로 개별적으로 아신다는 말입니다. 알되 특별히 여러분의특징을 압니다. 형편을아십니다 나약함도 아십니다 잘못된 습관도 아십니다. 말썽꾸러기인 것도 아십니다. 하필이면 꼭못된 방향으로만 생각하는 그런 인간됨도 다 아십니다. 양이라는 것이 많다보면 거기 오족 별것이 다 있겠습니까 다 알고 있어요. 같은게 아니예요 양이라고 이모든 사실을 개별적으로 알고 계시단 말씀입니다. 얼마나 고마운 말씀입니까 목자는 압니다. 양에 입맛을 알아요.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또 어떻게 해야지 양을 위하는 것인지 목자가 압니다. 양은 몰라요 양은 제멋대로 고집을 부리지만은 아니다 이놈아 그건 네게 해로운거다. 이리와라 이것이 네게 이로운것이다. 분명히 목자가 알고 있지요. 양이 아는것이 아니예요. 여러분 다보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은 유명한 영화 쉰들러리스트 라는 영화가있지요. 너무나도 유명한영화입니다. 못본 사람하고는 얘기 안합니다. 이영화 육백만이나 되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히틀러와 그일당들이 죽일떼에 그 때에 살아남기 위해서 여러가지로 백방으로 애쓰는 그런 모습입니다. 많은 방법으로 애를써서 얼마간에 사람을 살릴 수 있도록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제 그쉰들러가 살려낼 사람에 리스트를 작성합니다. 그 장면이 가장 감격적입니다. 기억력을 발해서 자기가 아는사람에 이름을 거기에 적습니다. 천명을 여기이름이 쓰여진 사람은 살아남는것입니다. 그리서 빼내는것입니다. 죽을때서 빼내는데 그것이 쉰들러리스트 입니다. 리스트에요 리스트에 기록합니다. 기록된 사람은 삽니다. 문제는 쉰들러라는 사람에 머리속에 기억되어 있는사람은 사는 거예요. 여기서 빠지면 죽는 거예요. 그것을 밤새워 가면서 기억을 해내면서 하나하나 이름을 적어나가고 그 명부를 가지고 헤매는 모습을 봅니다. 얼마나 감격스러우십니까
여러분 분명히 구약성경에서 말씀합니다. 너희 이름이 내 손바닥에 있으니라 하나님은 우리에 이름을 손바닥에 써넣고 기억하고 있다. 절대로 이름을 잊어버리지 않겠다. 너희 하나 하나를 개별적으로 사랑한다는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구약성경에서 있는바와같이 아브라함와 모세야, 사무엘라, 또 솔로몬아 모든 허물이있고 부족한 사람들 이지만은 하나님께서 하나하나 불러서십니다. 거기에 의인이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그하나하나를 다 사랑하세요. 개별적으로 사랑해서 글을 쓰시는 것을 볼수있어요. 이거 하나님에 사랑이예요. 특별히 오늘 본문에말씀 우리에 마음을 뜨겁게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렇게 다 이름을 부른다음에 앞서가신다는 거예요. 저는 이대목이 너무 마음에 은혜가 되요. 양을 다 불러낸 다음에는 목자가 앞서가면 양들이 뒤따라 가더라 어찌 생각하면 간단하게 생각되지만은 이게 얼마나 오묘하고 귀한말씀인지 모릅니다.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어요. 리저스 다이제트에 나타난 이야기인데요 서양목동과 동양목동을 비교했어요. 그런기록이 있는데 그얘기는 이렇습니다. 서양목동은 그 가축을 뒤에서 몬다는 거예요. 자 생각해 보세요 가축을 앞에다 놓고 몰게되면 어떻게 됩니까 여러분 서부활극에서 봤지요. 그 소를 몰때 소를 앞서가게 하고 뒤에서 모는 거에요 때리고 곁길로 가는놈은 붙들어오고 또 이리 때리고 저리 때리고 앞으로 그냥 몰로 갑니다. 이렇게 가축을 몰지만은, 동양 목동은 양을 인도한다. 자기가 앞서가고 가축을 뒤따 라 오게 한다는 거지요. 그런 풍속에 대한 차이점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귀한 이야기에요. 보세요. 앞에다 놓고 뒤에서몰때는 결국은 강꾼이 발동되는 거예요. 위협을 하는거에요 잘못된 길로 가는놈은 때려가면서 인도 합니다. 그러나 앞에서 간다할때는 어떻게 됩니까 양이 자기를 따라올것을 믿고있는 거에요. 저는 예루살렘에 갔을때 그 어린 아이가 목동하나가 양 삼백마리가량을 인도하는것을 봤어요. 전 그 뜨거운 햇빛에서서 일부러 한삼십분 동안 본것 같습니다. 너무너무 아름다운 거예요. 조그만 아이가 목동이 땡강땡강땡강 총을 치면서 가니깐요 그 양이 삼백만이나 됩니다. 많은양이 줄을서고 따라가는데요 한놈도 이탈자가 없어요. 내 그것을 보면서 느낀것이 뭔지 아세요. 우리 교인이 다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 아 참아름다운 장면이예요.
목자는 양을 믿어요. 따라올것이라고 그 가운에는 말썽꾸러기 있어요. 고집센놈도 있어요. 또 가끔 가다 쓰러지는 놈도 있어요. 또 비틀거리는 놈 별놈다 있는것 알아요. 알지만 꼭 따라올거라고 믿어 요. 그리고 저는 앞서가고 양들은 절렁절렁 따라와요. 그게뭐 한 눈파는 놈도 있지, 그러나 결국은 다 따라온다 말입니다. 이것이 목자에 믿음이예요. 양이 목자를 믿는건만 아니예요. 목자가 양을 믿고 있는 거에요. 그러기 때문에 앞서가는거지 생각해 보세요. 양이 목을 맵씁니까 자갈을 물렀습니다까 그냥 내버려 둔거예요. 목자가 앞서가면 졸졸졸졸 따라온다 이거에요. 이 얼마나 아름다운 관계냐 이거예요. 거기에믿음이 있고 신뢰성이 있는 거지요. 사랑이 있고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 입니까 언젠가 한 번 여집사님이 그래요 자기아이가 어린아이가 벌써 말썽꾸러기입니다 어찌나 사고를 많이내고 게다가 너무너무 말썽을 부려서 걱정이라고 게다가 한마디 더해요. 제에비 닮아가지고 그래가지고 내가 물어봤어요. 말썽꾸러기라서 낙심이 된다해서 몇살이요. 그러니까 국민하교 사학년이래요. 그래서 내가 그러지 마세요. 물론 세계적인 인물이라고는 합니다만은, 성어거스틴에 어머니는 그 아들이 방탕할때 형편없이 막당하고 죄로해 갈때 십삼년을 기달렸습니다. 전혀 낙심하지도 않고 원망하지도 않고, 오로지 하나님 앞에 성실하게 끝까지 사랑하고 믿고 기도하고 기달렸어요. 결국은 그 아들이 로마로 갔다가 암무르스를 만나고 가출까지 했다가 성자가 되어가지고 돌아옵니다. 기다려요 그게 믿음이예요 좀 죄송한 고백입니다만은 제가 개인적으로 목회자로서 고백합니다만은, 어떤때 교인들이 와서 어떤 교인이 있는데 아 그분이 어떻게 어떻게해서 말썽을 부리고 어떻게 말이많고 뭐 좀 문제에 인물입니다. 그렇게 말할때 제가 삼십년 전에 목회할때는 철없이 그래요 또 찾아가서 군면을 했지요. 군면해달라고 지금은 부탁을 누가해도 제가 잘안합니다. 가도록 해볼께요 하고 안갑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기다립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해서 성령님으로 말씀으로 함께해서 그속이 변화될때가 오더라구요 가만히 기달리면 언젠가 이루어져요. 내가 만일 그를 직접만나 군면을 하게되면 나에게 치부를 들어냈다는것때문에 더 멀어져요. 목사님 만나는게 꺼리고 부끄러워지고 이거 안된다 말입니다. 그러니까 뭐 부부싸움 했다고 네가가서 말려달다고 해도 저 안갑니다 그거는요 그 모른척 해야지요. 그것다 알면 됩니까. 어쩌다가 실수가 있다하더라도 그러지 않아요. 목자는 양을 믿어요. 앞서가면 줄렁줄렁 따라와요. 뭐 이리가고 저리가다가도 따라와요. 이걸 잊지말아야 되요. 그리고 목자는 앞서가면서 모든위험을 자기가먼저 당합니다. 맹수를 만나도 먼저 함정에 빠져도 자기가 먼저 자기가 먼저가며 먼저 고난을 당합니다. 양들은 믿고, 안심 하고, 그를 따릅니다. 전적으로 믿고 따릅니다. 조금도 의심하지 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도 흐트러지지 안고 삼백만이나 되는 양이 줄줄이 따라가고 있더란 말입니다. 한 길로 따라가기 때문에 한번 지나가면 골이 패일정도로 된단 말입니다. 이 아름다운 장면을 생각해보세요. 또한 오늘 성경말씀은 이렇게 귀한말씀을 주시고 하나 더 있습니다. 십일절과 십팔절에 보면은, 나는 선한 목자다 선한 목자는 양을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선한 목자는 목숨을버리고 양을 사랑해서 어떤때는 대신죽어요. 그런가하면, 누가 빼앗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버리노라 스스로 목숨을 버려가면서 양을 사랑해 이걸알기 때문에 이걸믿기 때문에 양들이 목자를 따르는 거지요. 긴얘기가 필요없어요. 왜이리로 인도합니까 왜저리로 가라는 것입니까 왜하필이면 이골짜기 입니까 절대 묻을 필요가 없어요. 사방이 움침한 골짜기로 지나가도 그대로 믿고 따라가는 거예요. 이 언덕을 넘어서면 저기 푸른초장이 나타나는 거지요. 이것이 목자와 양의 관계예요.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 맙시다.
선한 목자되신 주께서 인도하십니다. 그저 믿고 조용히 따라가 기다려 보세요. 이런 재미있는 얘기가 있어요. 뉴욕주에 한 휴양지에 거기에 문레이크 나치라고하는 그런 레스토랑하나 식당이 하나 있었는데 거기에 조지 쿠렐이라고 하는 그런 인디안출신에 요리사가 하나 있어요. 요리를 정성껏 만드는 분인데 어느날 까다로운 손님 하나가 왔어요. 주인도 이걸 알아요 저분은 한번 음식 갔다주면은 도로 물러 다시 해와 골탕먹이는 것을 알지만은, 단골손님이라 그럴수 없어서 단단히 주위를 주었지요. 주인은 왕이다 몇번말씀하시든 몇번 퇴자를 놓든 그저 줄거운 마음으로 웃으면서 순종을 해야 하는니라 잘 모셔야 하느니라 그랬어요. 아니나 다를까 아 그저 후렌치프라이 감자를 이렇게 썰어서 기름에 튀긴건데 이것을 만들어 주었더니 너무크다고 조그만하게 또 다시 만들어 주니까 너무 두껍다고 얇게 또 하면 또 얇게 마지막에 그냥 집어치우고 싶지만은 주인이 말했거든요. 손님은 왕이라고 그래서 참고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래가지고 이감자를 얇게 얇게 종이장처럼 얇게 썰어가지고 튀겨가 주었더니 바삭바삭 그걸 씹으며 젓가락으로 집을수 없을 정도로 얇게 씹으면서 음 좋다고 만족하다고 아 소문이 나는데 그 집에 가면 종이장처럼 얇은 감자튀김이 있다고 그래가지고 손님이 모여드는데 이게 포테이토칩입니다. 때돈을 벌었답니다. 때돈을 벌었어요. 그저 어떻게든 마음대로 안되는것 같지만은 이것은 주인에 명령이요. 그래서 순종해라 했기 때문에 순종순종 했더니만 이런 결과가 왔다는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러분 선한목자 믿습니까 그러면 나는 선한 양이 되야지요. 여러분 스스로 생각해 보세요. 네가 어느정도에 양인가 정말 착하고 좋은 양인가 목자는 양을 믿고 있는데 나는 이모양이래요. 언제까지 말썽꾸러기가 될것입니까 사방에 움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 받음을 두려하지 않을것은 주께서 나와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이십삼편일절을 보세요. 여호하는 나에 목자시니 네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라 그것이 바로 우리에 고백이요. 선한 목자에 신앙입니다. 선한 목자에 선한 양에 순종입니다. 그에 찬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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