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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11:17-44)

본문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이 나사로를 죽은지 나흘만에 살리신 유명 한 사건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죽은 자를 살리신 예수님의 이적보다는 마르다에 그 초점을 맞추고. 그녀의 신앙생활 상태를 살펴 보고져 한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 마르다에게 하시는 주님의 질문이다. 마르다의 대답은 간단하고 명확하다. 어느 누가 보더라도. 나무랄바 없는 확실한 대답이요, 신앙고백이다. 본문 40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주님이 보시기에는 아직도 모자라는 바가 많았다. 네가 믿으면.이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 냐.라고 하신다. 한마디로 아직도 모자란다는 말씀이다. 믿으라 그리하면 영광을 보리라. 마르다를 향하여. 아직도 모자란다는 말씀이요, 책망하는 말씀이요, 권 고하는 말씀이요, 일깨워 주는 말씀이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오늘 본문 말씀에 주님은 마르다에게 세 가지 사실을 말씀하셨다. 마르다의 대답을 통하여. 우리들 각자의 신앙 상태를 점검해 보는 기 회로 삼고져 한다. 여기서 나사로의 죽음에 대해서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나사로가 병들었을 때. 그의 누이 마르다와 마리아가. 요단강 저편 요한이 세례 주던 곳에 거 하시는 주님에게(요10:40) 사람을 보내어 오라비 나사로가 병들었으니 (요11:3). 와서 고쳐 달라고 했다. 그 주님은 나사로의 병들었다.하는 전갈을 받고.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함이라".고 하셨다(요11:4).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전갈을 받고. 곧바로 베다니로 향하신 것이 아니라 이틀을 더 유하셨다(요11:6). 그리고 베다니에 도착해서 보니. 나사로는 이미 죽은지 나흘(본문39 절), 무덤에 있은지 나흘이 되었다(본문17절). 이를 종합해 보면. 나사로는 그의 누이들이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던 날 죽었고, 예수님이 그 소식을 이틀 후에 들으셨고, 나사로의 장례는 죽던 날 치루어졌다는 것이 된다. 이런 내용을 기억하며. 오늘 본문 말씀을 살펴 보자.
1.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 본문 23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 마르다의 오라비 나사로는. 죽어 장사지낸지 나흘이 되었다. 찾아오신 그 주님은. 자신이 요단강 저편 요한이 세례 주던 곳에 거하 시는 주님에게(요10:40) 사람을 보내어 오라비 나사로가 병들었으니(요 11:3). 고쳐 달라고 했던 주님이. 이제 오신 것이다. 본문 21-22절/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 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마르다의 고백이다. 주가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병이라도 고칠 수 있는 주님. 주님의 병고침으로 건강하게 살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면. 그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 아나이다. 나는 이제라도. 무엇이든지. 주실 줄 아나이다. 마르다가 무엇을 안다는 것일까.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바로 "일어나라".의 이적이다. "소녀야 일어나라"(막5:41). "청년아 일 어나라"(눅7:14). 그 "일어나라".의 이적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 주님의 이 말씀 앞에. 마르다의 대답은.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 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이제라도".의 고백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무엇이든지. 주실 줄 아나이다".의 고백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일어나라".의 이적. 그 "일어나라".의 이적을 믿는 신앙은 없습니다. 그 "일어나라"의 이적은 나인성 과부에게 있는 이적이요, 회당장 야이 로에게나 있는 이적이지. 나에게도 있을 수 있는 이적이라고는 믿고 고백하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날 부활에. 그래서, 마르다는 대답하지요. 오라비의 부활 예,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 나는 이제라도.무엇이든지. 주실 줄 아나이다. 이런 마르다의 고백 앞에 묻고 있습니다.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이것을 네가 믿느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아나이다".의 고백으로는. "일어나라".의 이적을 체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제라도".가 "마지막 날 부활에는".하고 달 라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부활이 무엇이고, 부활이 언제 이루어지고. 이렇게 부활에 대하여 아는 것 가지고는. 부활 신앙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일어나라".의 이적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2.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본문 25-26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이것을 네가 믿느냐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 신다. 마르다의 대답은 간단하다. "주여 그러하외다". 또렷한 대답이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 다". 소위 말하는 똑 소리 나는 대답이다. 일찍이 베드로가 한 신앙고백이요(마16:16), 그 위에다 내 교회를 세우리라 하시던 신앙고백이다(마16:18). 흠잡을 데 없는 명확한 신앙고백이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 부활에 관하여 아는 것이. 부활 신앙이 아니다. 부활 신앙은. 부활이신 주님을 바로 알고, 그 주님이 신앙고백 되어질 때. 부활 신앙이 될 수 있다. 나사렛 예수에 관하여 내가 얼마나 잘 아느냐.가 신앙이 아니다. 하나님을 알고, 성령님을 알고, 성경을 알고, 교회를 알고, 예배를 알고, 진리를 알고. 그 아는 것이 신앙이 아니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 그래서, 주님은 마르다에게. 이것을 네가 믿느냐.하시는 질문으 로. 모든 말씀을 연결해 가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마르다와 같이. 전능하사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압니다. 또한 동정녀의 몸에서 탄생하신 주님도 압니다. 그분이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심도 압니다. 부활하심도 압니다. 그리고, 남들은 부인해도. 우리 성도들은 시인하고 신앙고백을 합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주님을 의심 없이 믿고. 신앙고백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일어나라".의 이적을 체험할 수 있는. "부활 신앙"이 될 수 없음에. 문제가 있습니다. "부활 신앙"은. 우리의 신앙고백만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신앙고백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 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자라 가라는 것이다(엡4:13).
3.돌을 옮겨 놓으라. 본문 39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 의 누이 마르다가 가로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 "주여 그러하외다".하는 마르다의 고백 앞에. "돌을 옮겨 놓으라".고 하시는 주님의 말씀이다. 돌을 옮겨 놓으라. 이는 부활을 아는 일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입으로 주 앞에 고백하는 신앙고백에 속하는 것도 아니다. 행동으로 돌을 옮겨야 한다. 다시 말해 서 생활에 속하는 삶의 신앙을 말한다. "죽은 지가 나흘이 되어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마르다의 생활 속의 신앙은. 자신이 아는 신앙과는 너무도 차이가 있다. 입으로 고백하는 신앙과도 차이가 있음을 보게 된다. "나는 이제라도. 무엇이든지. 주실 줄 아나이다". "죽은 지가 나흘이 되어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이제라도".가 "벌써".로 바뀌어 있다. 이미 마르다의 가슴에는 "벌써". "이제라도".의 부활 신앙은 사라지 고 없다. 죽은지 나흘이 되어 벌써 썩어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본문 40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마르다를 향하여. 아직도 네 믿음이 생활 속에서는 없다는 말씀이요, 자라지 못했다는 말씀이요, 모자란다는 말씀이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주님이 이 말씀을 언제 마르다에게 하셨는가 베다니에 오셔서 하신 주 님의 말씀이 아니다. 요단강 저편에서 하신 말씀이다. 전갈자를 통하여 들려진 말씀이다. 요한복음 11:4절/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 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함이라 하시더라/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다. 요단강 저편에서 주님이 이 말씀을 하실 때에는. 사실은 나사로는 이 미 죽어 장사지낸지 이틀이 된 때이다. 함께한 제자들도, 전갈자도. 모르는 사실이나. 주님은 알고 계셨다. 나사로가 잠들었으니. 깨우러 가노라.고 하신다. 제자들은 그 말을 알지 못했고. 잠들었으니 낫겠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11:14절/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이에 나사로가 죽은 사실을 분명히 밝히셨다. 자신들로 하여금 믿게 하려 함이라. 일러주시건만, 제자들 역시 믿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죽으러 가자".라 하고 있다. 기껏 한다는 소리가. "죽으러 가자".이다. 죽은 자를 살리러 간다는 데. "죽으러 가자".라 니. 참으로 기막힐 노릇이다. 그러기에 "너희로 믿게 하려함이라".고 하셨나 보다(요11:1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전갈을 보낸 사람을 통하여. 마르다는 이미 예수님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마르다는 주신 응답을 지나쳐 버린 것입니다. 전갈자가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자신의 오라비가 죽어 장사지낸지 이틀인데.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라니. 마르다의 이성적 판단은 주님의 응답을 쉽게 지나쳐 버리고 만 것입니다.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 이것 역시 이성적 판단이 앞서가고있습니다. "주여 그러하외다". 이것 역시 이 성적 판단이 앞서고 있습니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이것 역시 이 성적 판단이 앞서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을 네가 믿느냐 마르다에게 주시는. 주님의 이 질문은. 네가 부활에 대하여 아는가.하는 질문이 아닙니다. 네가 나를 구주로 신앙고백하느냐. 하는 질문도 아닙니다. 바로 네 생활 속에 "부활 신앙"의 삶의 행동이 있느냐.하는 질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돌을 옮겨 놓을 수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죽어장사지낸지 나흘이나 된, 네 오라비의 무덤을 막고 있는 돌을 옮 겨 놓을 수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벌써 썩어 냄새가 나는 무덤의 돌 을 옮겨 놓을 수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 속에 나타난 마르다의 신앙생활 상태가 바로 나 자신의 모습 은 아닌지. 우리 이 시간 한 번 깊이 생각해 봅시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이제라도.주께서 무엇이든지.구하시는 것을.주실 줄 아나이다".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 주님의 이 물음은. 우리의 신앙생활이 "아는 것"에 머물지 말라는. 책망하는 말씀이요, 권고하는 말씀이요, 일깨워 주는 말씀이요, 아직도 모자란다는 말씀입니다.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 주님의 이 물음은. 우리의 신앙생활이 "신앙고백"에 머물지 말라는. 책망하는 말씀이요, 권고하는 말씀이요, 일깨워 주는 말씀이요, 아직도 모자란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 가라는 말씀 입니다.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 주님의 이 물음은.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 "신앙고백"이 담긴 삶을. 실제 행동으로 나타내라는. 책망하는 말씀이요, 권고하는 말씀이요, 일 깨워 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서. "돌을 옮겨 놓으라".나의 이성적 판단을 버리고.돌을 옮기는 것입니다 "물위로 걸어 오라". 이성적 판단을 버리고. 물위를 걷는 것입니다. "물을 떠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내 판단을 버리고.갖다주는 것입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의심 없이 걸어가는 것입니다.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곧바로 실로암 못으로 달려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의 삶 속에. 이러한 신앙고백의 생활화가 있는가. 믿음의 행동들이. 실제로 내 생활 속에 있는가. 스스로를 한 번 살펴 봅시다. 무덤의 돌을 옮겨 놓을 때. 바로 거기에 "일어나라".의 이적이 있습니다. 나사로가 살아서 일어나 걸어나오는 놀라운 축복이 거기에 있습니다. 예수를 아는 데 머물지 않고. 구주로 고백하는 자리로 나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입으로 구주를 신앙고백하는 자리에 머물지 않고. 삶을 통해 무덤의 돌을 옮겨 놓는 실제 행동으로 "일어나라".의 이적을 체 험하는 자리로 나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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