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받은 가정 (요11:1-8)
본문
가정,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시고 이 땅에 살게 하실 때에 사람이 사는 방방곡곡 어디서나 하나님의 사랑을, 하나님의 참되심을, 하나님의 선하심을,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을 몸소 경험하면서 살 수 있도록 작은 천국으로 가정을 주셨습니다. 가정, 신성한 곳이요, 땅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는 장이요, 죄많은 땅에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참되심과 아름다우심을 경험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곳입니다. 가정, 사람이 이땅위에 사는 동안 학교 보다 중한 곳이요, 병원보다 중한 것이요, 그 어느곳보다 소중한 곳입니다. 그렇기에 세상은 아무리 거짓되어도 가정만은 진실한 곳이요, 또한 진실해야만 하는 곳입니다. 세상이 온통 이기적인 목적으로 살아갑니다만 가정은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이타적인 사람들이 모인곳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불의하다고 할지라도 가정에는 불의가 있어서도 안되는 곳입니다. 남편이 어찌 아내에게 불의하리요! 어버이가 자식에게 어찌 거짓되리요! 그토록 그토록 아름다운곳이 바로 가정입니다. 그래서 서양사람은 가정을 “스윗트 홈”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가정안에 어린아이의 장래가 보장되고, 그런 가정안에 비젼있는 국가와 민족이 보장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 이 땅위에 그런 가정이 몇군데나 되느냐”는 것입니다.하나님의 참되심과 같은 참됨이, 하나님의 선하심과 같은 선함이,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같은 의로움이 그대로 구현되어지는 가정이 이땅위에 과연 몇군데나 되겠습니까 여러분의 가정은 이런 이상적인 가정에 속하고 있습니까 참으로 애석하게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그대로 하나님을 나타내는 그런가정은 거의다 무너졌습니다. 참으로 슬픈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치 꽃밭을 잘 일구어 놓았는데 돼지새끼 한마리가 달려와서 헤집어 놓고 간것처럼 오늘 지상에 신성한 가정은 다 무너져 가고 있고, 진실한 가정, 참된 가정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와같은 현실을 직시하면서 어떻하면 이런 가정이 하나님의 창조의 본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여기에 대한 대답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3:16)”말씀대로 개인의 구원이 절대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바른 관계에서 이루어 지듯이 “주 예수를 믿으라그리하면 너와 네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으로 수라장이 되어버린 가정의 구원도 예수님과 바른관계에서 이루어 진다고 성경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읽어드린 본문에 식구는 많지 않으나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이 등장합니다. 예수님과 바른 관계에서 축복받은 이 가정을 모델로 해서 우리도 그와같은 축복의 가정이 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며, 태도는 무엇인가를 더듬어 보고자 합니다. 예루살렘 남쪽 15리쯤에 수박이 많이 나는 ‘베다니’라고 하는 동네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동네에 나사로라고 하는 한 청년과 그의 두 누이동생 마르다와 마리아가 살고 있었습니다. 혹 시몬이라는 나환자가 그 집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성경에 간혹 비추기는 하지만 그 집 식구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어쩻든 성경에 나타난대로 세식구로 구성된 가정입니다. 이 가정은 예수님이 이땅에 계실때 (30
3) 예수님과 가장 친한 가정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제사장의 가정도 있었고, 종교지도자들의 가정도 있었고, 당당한 명문세가의 가정도 있었지만 단 한가정도 예수님과 친한 가정은 없었습니다. 오직 이 가정만 예수님과 친한 가정이었습니다.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예루살렘에서 갈릴리로 전도 여행을 오고 가실때 다리도 아프고, 몸도 피곤하고, 물이 귀한 땅이라 목욕도 할 수 없었든지라 그럴때마다 그 집에 가셔서 푹 쉬셨습니다. 어떤때는 음식대접도 잘하고, 어떤때는 옥합을 깨뜨려 300데나리온씩이나 하는 막대한 귀한 기름으로 주님을 씻겨 드리고, 머리카락으로 비벼드리고.그렇게 예수님을 잘 대접한 가정이었습니다. 특히 십자가를 앞에둔 마지막 한주간동안 예수님의 마음이 얼마나 무겁고 착찹하셨겠습니까 그런때 낮에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복음을 증거하시다가 저녁에는 으레히 그 집에서 쉬시고,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이렇게 하리만큼 그 집과는 참으로 친한 사이였습니다. 저는 이런 가정을 그림보듯이 바라보면서 “참 부럽다”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는 이 가정을 모델로 축복받은 가정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상고해 보려고 합니다.
I. 그럼 어떤 가정이 축복받은 가정입니까 물론 제가 이렇게 물으면 여러분 모두는 그야 물론 “식구 모두 건강하고 물질적으로도 풍요하고 문화주택에 편하게 살고 형제들이 화목하게 살면 그것이 행복한 가정이겠죠.”라고 대답하시겠죠. 물론 그러한 조건을 가진 가정, 참으로 축복받은 가정임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복받은 가정은 그런 조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조건은.
1. 예수님과 친한 가정이어야 합니다. 마리아와 마르다의 가정이 얼마나 부자였는지는 잘 모르겠습다만 그러나 그렇게 가난하지는 않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런 가정이 예수님과 친했다고 하는 점이 우리에게 뭉클하게 해주는 부러움입니다. 사람이 이 땅에 사는 동안 누구와 친하느냐에 따라 이해득실이 결정되어 집니다. 내가 대통령과 친한 관계라면 사회생활하는데 큰 덕을 보겠죠. 내가 인천시장과 친하다면 인천시내에서는 어디를 가나 대접을 잘 받을 것입니다. 하나못해 계산동장하고 친해도 주민등록등본을 떼러 갈때도 문간에 세워놓지는 않을 것입니다. 일제시대때 동네 빨래터에서 우쭐대며 거들먹거리는 한 처녀가 있길래 도대체 무슨 백믿고 그렇게 콧대가 높으냐고 묻자 그가 대답하기를 내 친구가 아무개 경찰서장집의 가정부로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자기 친구가 경찰서장의 가정부로 있다는 것 때문에 우쭐댄다면 우리는 누구와 친한관계를 가져야 할까요 사랑하시는 여러분, 여러분들의 가정은 예수님과 친해지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의 가정에 오고 싶어서 견딜 수 없도록 친한관계 맺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예수님을 안모시고는 못배길 정도로 친한관계 맺으시기 바랍니다. 종교전문가들도 아니요, 성직자도 아니요, 성경학자들도 아닌 이 삼남매의 가정이 예수님과 친했다는 것이 매우 부럽습니다. 우리가 어느 가정에 들어가보면 그 가정의 가풍을 느끼게 됩니다. 어느집은 상당히 보수적인 가풍인지라 아무리 뜨거운 여름철이라도 옷을 벗지 않는 그런 집이 있는가 하면, 어떤 집에는 그 분위기가 매우 자유스러운 가풍이 있는 집도 있습니다. 가풍이라는 것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 가정이 현재 누가 분위기를 좌우하느냐에 따라 가풍이 형성이 되는 경우도 있는데 여러분의 집은 예수님에 의해 가풍을 형성되어지길 바랍니다. 또 다른말로 하면 가정에는 칼라라는 것이 있습니다. 아주 맑고 밝은 색깔을 지닌 가정이 있는가 하면, 원색적인 가정도 있습니다. 벽에 걸려 있는 달력만 보더라도 그 가정의 색깔을 알 수 있고, 아이들이 들락날락 하면서 이야기 하는 말속에서 그 가정의 색깔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예수님이 색깔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맑고 밝고 은은한 그런 색깔 말입니다. 또 다른 말로 말하면 가정에는 냄새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에게 채취라는 것이 있듯이 가정에는 냄새라는 것이 있습니다. 척 들어가보면 어떤집은 공자냄새가 나는 집이 있는가 하면, 어떤집은 석가 냄새가 나는 집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집에는 예수님의 냄새가 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과 친해 예수님의 가풍이 우리집에 푹 배도록,예수님의 색깔이 우리집에 은은하도록,예수님의 냄새가 우리집에 향기롭도록 예수님과 친해지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과 친해지면 내외문제도 해결되고 부모자식지간의 문제도 해결되고 골머리 아픈 가정문제도 해결됩니다.그렇기에 예수님과 친해져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친하던 가정들이 TV가 나오면서 TV하고 대화를 하느냐고 예수님은 그만 뒷전에 물러나버리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과 친하던 사이가 TV 때문에 그만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요즘와서는 ‘비디오’라는 것이 들어와서 아예 예수님은 저 뒷전에 밀려나 버리고 예수님과의 관계가 파괴되어버린 가정이 한 둘이 아닙니다. 내가 TV를 보고 앉아 희희낙낙 할때에 마땅히 친해야 할 예수님은 저 뒷방 어느구석인가에 앉아 울고 계신다는 것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비디오를 보고서 그냥 신나고 있을 때 내가 친해야 예수님이 저 구석에서 훌쩍훌쩍 울고 앉아 계시다는 것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가정에서 그렇게 푸대접받으실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 인생길에 그렇게 푸대접 받아도 되는 분이 아니십니다. 왜 가정에 문제들이 있습니까 가정의 가풍이 예수화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가정의 칼라가 예수화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가정의 냄새가 예수화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문제들이 여러분을 괴롭고 비참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의 가정은 예수님과 친해지시기를 바랍니다. 기도로서 예수님과 친해지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읽는 시간을 통해 예수님과 대화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동안에 예수님과 친해지시기를 바랍니다. “빛나고 높은 보좌와 그위에 앉으신 주 예수 얼굴이 해같이 빛나네.”찬송하면서 예수님과 친해지시기를 바랍니다. 찬송을 안부를래야 안부를 수 없고, 기도의 자리에서 일어 날래야 일어날 수 없고, 말씀읽는 자리에서 일어날래야 일어날 수가 없고, 찬송의 자리에서 일어날래야 일어날 수가 없는.그래서 예수님과 친한 교제가 끊어지지 않아 끝까지 복받는 가정되시기를 바랍니다. “전도사님이 아무리 말씀하셔도 우리 가정은 나 혼자 믿는데요 뭘.”하지마시고 한 사람이라도 좋습니다. 예수님과 친하시기를 바랍니다. 열식구 중에 나혼자라도 좋습니다. 예수님과 아주 친하셔서 예수님의 인격이(가풍,색깔,냄새.) 나를 통해 가정에 전염될 수 있도록 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모든 문제 주님이 친히 해결해 주십니다.
2. 예수님이 쉬어가실 수 있는 가정이 되시길 바랍니다. 말씀드린대로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예루살렘에서 갈릴리로.복음을 증거하시는 주님은 주택이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가정도 없었습니다. 그저 나그네로 갈릴리.예루살렘.을 돌아다니신 것입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머리들곳이 있건만은 예수님은 비내리건만 피할데도 없으셨고, 바람불건만 바람피할만한 곳도 없으셨고, 겨울날이지만 추위를 피해 쉴만한 곳도 없었습니다. 그런 생활속에서 가장 즐겁고 평안히 쉬어가실 곳이라고는 나사로 삼남매의 가정뿐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과 관계가 깊어졌고 다른 부수적인 축복이 수반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주님은 매우 피곤하십니다. 죄많은 세상을 돌보시는 임마누엘의 예수님은 피곤하십니다. 입으로는 주여 주여 하면서 생활에서는 주님을 잊어버린 위선자들의 푸대접을 받는 예수님은 몹시도 피곤하십니다. 니파 내파 교파를 천갈래 만갈래 쪼개놓고는 “네책임이다. 내책임이다.” 싸우는 사이에서 예수님은 피곤하십니다. 이 피손하신 예수님, 내 안방에 쉬어가실 수 있도록 기도가 있는 방, 내 건너방에 쉬어가실 수 있는 찬송이 있는 방, 내 식탁에 주님오셔서 비록 기름진 반찬을 없을지라도 뚝배기에 국 한사발, 마른 떡조각 하나일지라도 예수님 오셔서 마음 편하게 쉬어가실 수 있는 가정, 이런 가정이야 말로 세상에 더할나위 없는 축복된 가정입니다.
3. 주님께 위로드릴 수 있는 가정이 되시길 바랍니다. 말씀드린대로 십자가 앞에둔 마지막 주간, 육체를 가진 사람으로서 예수님은 몹시도 괴로우셨습니다. 그럴때마다 낮에는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증거하시고는 밤에는 이 가정에 와서는 쉬었다가 아침에는 또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가 또 저녁이면 또 내려오셔서 쉬셨다가.왜 그러셨습니까 그 가정에서만 위로를 받으실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식탁의 고기반찬으로가 아니라 그 가정의 가풍이 예수님을 위로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가정의 분위기가 예수님을 위로해 드릴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어떻습니까 오히려 주님께 걱정거리가 되고 있지 않습니까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위로해 드리는 그런 가정이 되시길 바랍니다.
Ⅱ. 그러면 이렇게 복된 가정을 가질 수 있는 비결과 방법은 무엇입니까 마리아와 마르다와 나사로 삼남매의 경위를 더듬어 보면.
1. 주님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해야 합니다. 300데나리온어치의 기름이라 할지라도 아낌없이 깨어 주님께 붓는 마음이 지극합니다. 신성시 되고 있는 머리카락을 비비고 비벼 먼지묻은 예수님의 발을 닦을 수 있을 만큼 주님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합니다. 여러분이여, 얼마나 주님 사랑하는 마음이 뜨겁게 뜨겁게 여러분의 생활을 지배하고 있습니까 주님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뜨거우냐가 주님과 얼마나 가까우냐로 결정되어집니다. 그리고 주님과 얼마나 가까우냐가 주님의 축복을 얼마만큼 받는냐가 결정 되어집니다.
2. 화락한 가정이라야 이와같은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과 바른관계맺으면 화락해 지지만 화락해 져야만이 또한 주님과 바른관계맺을 수 있습니다. 본문의 삼남매가 얼마나 화락했는지 모릅니다. 언니의 걱정이 내 걱정이요, 동생의 걱정이 내걱정이요, 오라버니의 걱정이 내걱정이었습니다. 서로가 걱정하는 화락한 가정, 화락한 가정이 복되다는 것은 상식이기에 긴말하지 않겠습니다.
3. 주님의 말씀을 청종하고 알아들어야 이 축복 받을 수가 있습니다. 주님이 그 집에 오셨습니다. 마리아는 발앞에 앉아 말씀을 넙죽넙죽 잘 받아 먹습니다. 주님의 의도를 알아 그에 맞게 처신을 합니다. 오늘 우리의 시간을 어디서 보내고 있습니까 주님 발앞에서 말씀 경청하고 주님의 마음을 알아드리는 가풍, 기도속에서 주님의 의도를 알아드리는 분위기, 찬송속에서 주님의 뜻을 눈치채는 처신이 있을때 그 가정은 주님과 바른관계속에 복받은 가정이 될것입니다.
4. 주님을 위해 봉사하는 가정입니다. 300데나리온어치의 값진 향유를 주님의 몸에 바른 마리아, 부얶에 들어가 땀을 뻘뻘흘리며 대접을 준비하는 마르다, 어찌보면 마리아는 칭찬받고 마르다는 책망받았다고 마르다는 잘못됬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러나 이는 선후의 문제를 책망하신 것이지 주님위해 봉사하는 것을 책망하신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느냐는 얼마나 주님위해 땀을 흘리냐로 결저되어 집니다.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느냐는 말은 얼마나 주님위해 시간과 물질을 바치느냐와 같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의 표현으로서 주님을 위해 봉사하는 가정, 그런 가정이 축복받은 가정입니다. 말을 맺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가정만은 가장 진실한 곳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만은 가장 선한 곳, 가장 아름다운 곳, 가장 의로운 곳, 하나님의 사랑이 넘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그 방법은 예수님과 친해지는 것 밖에 없습니다. 인천을 돌아다니시다가 피곤하신 예수님이 그냥 우리집으로 찾아오시도록 친해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집은 예수님이 쉴어가실 수 있는 곳, 우리집은 예수님이 위로받으실 수 있는 곳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뜨거워야 합니다. 말씀 청종하여 그 마음 알아드리고 주님위해 봉사하는 실천이 있을때 틀림없이 우리 집은 20세기 에덴동산이 될것입니다. 주님과 친해져 이렇게 복받는 가정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 이 땅위에 그런 가정이 몇군데나 되느냐”는 것입니다.하나님의 참되심과 같은 참됨이, 하나님의 선하심과 같은 선함이,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같은 의로움이 그대로 구현되어지는 가정이 이땅위에 과연 몇군데나 되겠습니까 여러분의 가정은 이런 이상적인 가정에 속하고 있습니까 참으로 애석하게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그대로 하나님을 나타내는 그런가정은 거의다 무너졌습니다. 참으로 슬픈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치 꽃밭을 잘 일구어 놓았는데 돼지새끼 한마리가 달려와서 헤집어 놓고 간것처럼 오늘 지상에 신성한 가정은 다 무너져 가고 있고, 진실한 가정, 참된 가정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와같은 현실을 직시하면서 어떻하면 이런 가정이 하나님의 창조의 본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여기에 대한 대답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3:16)”말씀대로 개인의 구원이 절대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바른 관계에서 이루어 지듯이 “주 예수를 믿으라그리하면 너와 네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으로 수라장이 되어버린 가정의 구원도 예수님과 바른관계에서 이루어 진다고 성경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읽어드린 본문에 식구는 많지 않으나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이 등장합니다. 예수님과 바른 관계에서 축복받은 이 가정을 모델로 해서 우리도 그와같은 축복의 가정이 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며, 태도는 무엇인가를 더듬어 보고자 합니다. 예루살렘 남쪽 15리쯤에 수박이 많이 나는 ‘베다니’라고 하는 동네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동네에 나사로라고 하는 한 청년과 그의 두 누이동생 마르다와 마리아가 살고 있었습니다. 혹 시몬이라는 나환자가 그 집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성경에 간혹 비추기는 하지만 그 집 식구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어쩻든 성경에 나타난대로 세식구로 구성된 가정입니다. 이 가정은 예수님이 이땅에 계실때 (30
3) 예수님과 가장 친한 가정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제사장의 가정도 있었고, 종교지도자들의 가정도 있었고, 당당한 명문세가의 가정도 있었지만 단 한가정도 예수님과 친한 가정은 없었습니다. 오직 이 가정만 예수님과 친한 가정이었습니다.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예루살렘에서 갈릴리로 전도 여행을 오고 가실때 다리도 아프고, 몸도 피곤하고, 물이 귀한 땅이라 목욕도 할 수 없었든지라 그럴때마다 그 집에 가셔서 푹 쉬셨습니다. 어떤때는 음식대접도 잘하고, 어떤때는 옥합을 깨뜨려 300데나리온씩이나 하는 막대한 귀한 기름으로 주님을 씻겨 드리고, 머리카락으로 비벼드리고.그렇게 예수님을 잘 대접한 가정이었습니다. 특히 십자가를 앞에둔 마지막 한주간동안 예수님의 마음이 얼마나 무겁고 착찹하셨겠습니까 그런때 낮에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복음을 증거하시다가 저녁에는 으레히 그 집에서 쉬시고,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이렇게 하리만큼 그 집과는 참으로 친한 사이였습니다. 저는 이런 가정을 그림보듯이 바라보면서 “참 부럽다”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는 이 가정을 모델로 축복받은 가정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상고해 보려고 합니다.
I. 그럼 어떤 가정이 축복받은 가정입니까 물론 제가 이렇게 물으면 여러분 모두는 그야 물론 “식구 모두 건강하고 물질적으로도 풍요하고 문화주택에 편하게 살고 형제들이 화목하게 살면 그것이 행복한 가정이겠죠.”라고 대답하시겠죠. 물론 그러한 조건을 가진 가정, 참으로 축복받은 가정임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복받은 가정은 그런 조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조건은.
1. 예수님과 친한 가정이어야 합니다. 마리아와 마르다의 가정이 얼마나 부자였는지는 잘 모르겠습다만 그러나 그렇게 가난하지는 않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런 가정이 예수님과 친했다고 하는 점이 우리에게 뭉클하게 해주는 부러움입니다. 사람이 이 땅에 사는 동안 누구와 친하느냐에 따라 이해득실이 결정되어 집니다. 내가 대통령과 친한 관계라면 사회생활하는데 큰 덕을 보겠죠. 내가 인천시장과 친하다면 인천시내에서는 어디를 가나 대접을 잘 받을 것입니다. 하나못해 계산동장하고 친해도 주민등록등본을 떼러 갈때도 문간에 세워놓지는 않을 것입니다. 일제시대때 동네 빨래터에서 우쭐대며 거들먹거리는 한 처녀가 있길래 도대체 무슨 백믿고 그렇게 콧대가 높으냐고 묻자 그가 대답하기를 내 친구가 아무개 경찰서장집의 가정부로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자기 친구가 경찰서장의 가정부로 있다는 것 때문에 우쭐댄다면 우리는 누구와 친한관계를 가져야 할까요 사랑하시는 여러분, 여러분들의 가정은 예수님과 친해지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의 가정에 오고 싶어서 견딜 수 없도록 친한관계 맺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예수님을 안모시고는 못배길 정도로 친한관계 맺으시기 바랍니다. 종교전문가들도 아니요, 성직자도 아니요, 성경학자들도 아닌 이 삼남매의 가정이 예수님과 친했다는 것이 매우 부럽습니다. 우리가 어느 가정에 들어가보면 그 가정의 가풍을 느끼게 됩니다. 어느집은 상당히 보수적인 가풍인지라 아무리 뜨거운 여름철이라도 옷을 벗지 않는 그런 집이 있는가 하면, 어떤 집에는 그 분위기가 매우 자유스러운 가풍이 있는 집도 있습니다. 가풍이라는 것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 가정이 현재 누가 분위기를 좌우하느냐에 따라 가풍이 형성이 되는 경우도 있는데 여러분의 집은 예수님에 의해 가풍을 형성되어지길 바랍니다. 또 다른말로 하면 가정에는 칼라라는 것이 있습니다. 아주 맑고 밝은 색깔을 지닌 가정이 있는가 하면, 원색적인 가정도 있습니다. 벽에 걸려 있는 달력만 보더라도 그 가정의 색깔을 알 수 있고, 아이들이 들락날락 하면서 이야기 하는 말속에서 그 가정의 색깔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예수님이 색깔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맑고 밝고 은은한 그런 색깔 말입니다. 또 다른 말로 말하면 가정에는 냄새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에게 채취라는 것이 있듯이 가정에는 냄새라는 것이 있습니다. 척 들어가보면 어떤집은 공자냄새가 나는 집이 있는가 하면, 어떤집은 석가 냄새가 나는 집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집에는 예수님의 냄새가 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과 친해 예수님의 가풍이 우리집에 푹 배도록,예수님의 색깔이 우리집에 은은하도록,예수님의 냄새가 우리집에 향기롭도록 예수님과 친해지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과 친해지면 내외문제도 해결되고 부모자식지간의 문제도 해결되고 골머리 아픈 가정문제도 해결됩니다.그렇기에 예수님과 친해져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친하던 가정들이 TV가 나오면서 TV하고 대화를 하느냐고 예수님은 그만 뒷전에 물러나버리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과 친하던 사이가 TV 때문에 그만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요즘와서는 ‘비디오’라는 것이 들어와서 아예 예수님은 저 뒷전에 밀려나 버리고 예수님과의 관계가 파괴되어버린 가정이 한 둘이 아닙니다. 내가 TV를 보고 앉아 희희낙낙 할때에 마땅히 친해야 할 예수님은 저 뒷방 어느구석인가에 앉아 울고 계신다는 것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비디오를 보고서 그냥 신나고 있을 때 내가 친해야 예수님이 저 구석에서 훌쩍훌쩍 울고 앉아 계시다는 것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가정에서 그렇게 푸대접받으실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 인생길에 그렇게 푸대접 받아도 되는 분이 아니십니다. 왜 가정에 문제들이 있습니까 가정의 가풍이 예수화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가정의 칼라가 예수화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가정의 냄새가 예수화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문제들이 여러분을 괴롭고 비참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의 가정은 예수님과 친해지시기를 바랍니다. 기도로서 예수님과 친해지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읽는 시간을 통해 예수님과 대화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동안에 예수님과 친해지시기를 바랍니다. “빛나고 높은 보좌와 그위에 앉으신 주 예수 얼굴이 해같이 빛나네.”찬송하면서 예수님과 친해지시기를 바랍니다. 찬송을 안부를래야 안부를 수 없고, 기도의 자리에서 일어 날래야 일어날 수 없고, 말씀읽는 자리에서 일어날래야 일어날 수가 없고, 찬송의 자리에서 일어날래야 일어날 수가 없는.그래서 예수님과 친한 교제가 끊어지지 않아 끝까지 복받는 가정되시기를 바랍니다. “전도사님이 아무리 말씀하셔도 우리 가정은 나 혼자 믿는데요 뭘.”하지마시고 한 사람이라도 좋습니다. 예수님과 친하시기를 바랍니다. 열식구 중에 나혼자라도 좋습니다. 예수님과 아주 친하셔서 예수님의 인격이(가풍,색깔,냄새.) 나를 통해 가정에 전염될 수 있도록 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모든 문제 주님이 친히 해결해 주십니다.
2. 예수님이 쉬어가실 수 있는 가정이 되시길 바랍니다. 말씀드린대로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예루살렘에서 갈릴리로.복음을 증거하시는 주님은 주택이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가정도 없었습니다. 그저 나그네로 갈릴리.예루살렘.을 돌아다니신 것입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머리들곳이 있건만은 예수님은 비내리건만 피할데도 없으셨고, 바람불건만 바람피할만한 곳도 없으셨고, 겨울날이지만 추위를 피해 쉴만한 곳도 없었습니다. 그런 생활속에서 가장 즐겁고 평안히 쉬어가실 곳이라고는 나사로 삼남매의 가정뿐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과 관계가 깊어졌고 다른 부수적인 축복이 수반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주님은 매우 피곤하십니다. 죄많은 세상을 돌보시는 임마누엘의 예수님은 피곤하십니다. 입으로는 주여 주여 하면서 생활에서는 주님을 잊어버린 위선자들의 푸대접을 받는 예수님은 몹시도 피곤하십니다. 니파 내파 교파를 천갈래 만갈래 쪼개놓고는 “네책임이다. 내책임이다.” 싸우는 사이에서 예수님은 피곤하십니다. 이 피손하신 예수님, 내 안방에 쉬어가실 수 있도록 기도가 있는 방, 내 건너방에 쉬어가실 수 있는 찬송이 있는 방, 내 식탁에 주님오셔서 비록 기름진 반찬을 없을지라도 뚝배기에 국 한사발, 마른 떡조각 하나일지라도 예수님 오셔서 마음 편하게 쉬어가실 수 있는 가정, 이런 가정이야 말로 세상에 더할나위 없는 축복된 가정입니다.
3. 주님께 위로드릴 수 있는 가정이 되시길 바랍니다. 말씀드린대로 십자가 앞에둔 마지막 주간, 육체를 가진 사람으로서 예수님은 몹시도 괴로우셨습니다. 그럴때마다 낮에는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증거하시고는 밤에는 이 가정에 와서는 쉬었다가 아침에는 또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가 또 저녁이면 또 내려오셔서 쉬셨다가.왜 그러셨습니까 그 가정에서만 위로를 받으실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식탁의 고기반찬으로가 아니라 그 가정의 가풍이 예수님을 위로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가정의 분위기가 예수님을 위로해 드릴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어떻습니까 오히려 주님께 걱정거리가 되고 있지 않습니까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위로해 드리는 그런 가정이 되시길 바랍니다.
Ⅱ. 그러면 이렇게 복된 가정을 가질 수 있는 비결과 방법은 무엇입니까 마리아와 마르다와 나사로 삼남매의 경위를 더듬어 보면.
1. 주님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해야 합니다. 300데나리온어치의 기름이라 할지라도 아낌없이 깨어 주님께 붓는 마음이 지극합니다. 신성시 되고 있는 머리카락을 비비고 비벼 먼지묻은 예수님의 발을 닦을 수 있을 만큼 주님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합니다. 여러분이여, 얼마나 주님 사랑하는 마음이 뜨겁게 뜨겁게 여러분의 생활을 지배하고 있습니까 주님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뜨거우냐가 주님과 얼마나 가까우냐로 결정되어집니다. 그리고 주님과 얼마나 가까우냐가 주님의 축복을 얼마만큼 받는냐가 결정 되어집니다.
2. 화락한 가정이라야 이와같은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과 바른관계맺으면 화락해 지지만 화락해 져야만이 또한 주님과 바른관계맺을 수 있습니다. 본문의 삼남매가 얼마나 화락했는지 모릅니다. 언니의 걱정이 내 걱정이요, 동생의 걱정이 내걱정이요, 오라버니의 걱정이 내걱정이었습니다. 서로가 걱정하는 화락한 가정, 화락한 가정이 복되다는 것은 상식이기에 긴말하지 않겠습니다.
3. 주님의 말씀을 청종하고 알아들어야 이 축복 받을 수가 있습니다. 주님이 그 집에 오셨습니다. 마리아는 발앞에 앉아 말씀을 넙죽넙죽 잘 받아 먹습니다. 주님의 의도를 알아 그에 맞게 처신을 합니다. 오늘 우리의 시간을 어디서 보내고 있습니까 주님 발앞에서 말씀 경청하고 주님의 마음을 알아드리는 가풍, 기도속에서 주님의 의도를 알아드리는 분위기, 찬송속에서 주님의 뜻을 눈치채는 처신이 있을때 그 가정은 주님과 바른관계속에 복받은 가정이 될것입니다.
4. 주님을 위해 봉사하는 가정입니다. 300데나리온어치의 값진 향유를 주님의 몸에 바른 마리아, 부얶에 들어가 땀을 뻘뻘흘리며 대접을 준비하는 마르다, 어찌보면 마리아는 칭찬받고 마르다는 책망받았다고 마르다는 잘못됬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러나 이는 선후의 문제를 책망하신 것이지 주님위해 봉사하는 것을 책망하신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느냐는 얼마나 주님위해 땀을 흘리냐로 결저되어 집니다.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느냐는 말은 얼마나 주님위해 시간과 물질을 바치느냐와 같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의 표현으로서 주님을 위해 봉사하는 가정, 그런 가정이 축복받은 가정입니다. 말을 맺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가정만은 가장 진실한 곳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만은 가장 선한 곳, 가장 아름다운 곳, 가장 의로운 곳, 하나님의 사랑이 넘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그 방법은 예수님과 친해지는 것 밖에 없습니다. 인천을 돌아다니시다가 피곤하신 예수님이 그냥 우리집으로 찾아오시도록 친해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집은 예수님이 쉴어가실 수 있는 곳, 우리집은 예수님이 위로받으실 수 있는 곳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뜨거워야 합니다. 말씀 청종하여 그 마음 알아드리고 주님위해 봉사하는 실천이 있을때 틀림없이 우리 집은 20세기 에덴동산이 될것입니다. 주님과 친해져 이렇게 복받는 가정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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