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하는 몸 (약5:13-20)
본문
미국 캘리포니아 주 세코이아 국립공원에 붉은 삼나무가 있다. 수령 은 2천년 이상되고 높이는 150미터가 넘는다. 나무 밑에 길을 뚫어서 차 들이 지나다닌다. 사람들이 몇 십명이 팔을 벌리고 둘러서야 밑둥을 감을 수 있다. 하나님의 걸작품이다. 이 엄청난 나무도 처음에는 다른 나무들 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 조그만 삼나무가 그렇게 자라는 것이다. 이 나무를 보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 같다. "보라. 내가 하는 일을. 너도 이 나무처럼 크고 싶지 않느냐" 하나님은 세상 모든 만 물을 통해서 말씀하신다. 그 말씀을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이제 이 놀라운 피조물이 우리에게 주는게 무엇인가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처럼 성장해서 주위 생물들에게 큰 유익을 주고 감탄을 일으킨다. 싱싱하게 자라는 신자들은 아름답다. 나무가 병들면 색깔이 변하고 시들시들해진다. 집에 있는 나무들을 보라. 사올 때는 싱싱하다. 얼마 지 나 보면 노랗게 되고 시든다. 한쪽이 무너져 죽는다. 신자들은 잘 자라는 나무처럼 싱싱해야 한다. 교회에서는 물론 가정과 직장에서 그리고 사회 에서 잘 뻗어나가야 한다. 그리고는 구원의 영광에 이르러야 한다.
1. 생명의 진액은 기도와 찬송 속에 흐른다 고난 당하는 자는 기도하고 즐거워하는 자는 찬송하라고 한다. 둘 다 같은 것으로 하나님과의 교제이다. 줄기가 막히면 시든다. 비록 나무에 잘 붙어있어도 막히면 죽는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하나님과의 실제 교제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생 명과 능력이 끊임없이 흘러들어와야 한다. 그 도구가 기도와 찬송이다. 도구라고 한 것은 그것이 다가 아니라는 말이다. 기도하고 찬송하면 다 되는게 아니다. 모두가 믿음 속에서 해야 한다. 믿음 없이 하는 기도는 푸념에 지나지 않는다. 새벽기도나 철야기도하는 이들에게 왜 하느냐 고 물어보라. 많은 사람들이 그냥 한다고 한다. 하면 다르다는 것이다. 무 엇이 다르냐 물으면 대개는 대답을 못한다. 기분이 다르다는 말이다. 하지만 믿음은 그 대상이 자신이 아니다. 내가 기분이 그냥 막연히 은혜스러우면 믿음이 좋은 것이 아니다. 믿음의 대상은 하나님과 그의 말씀이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확실하고 그의 말씀이 그대로 사실이라고 믿어야 한다. 그래서 거기 맞추어 내 기분이 은혜스러워야 한다. 그러기 때문에 언제나 하나님에 대한 신앙으로 자신의 마음을 잘 설득해야 한다.
그러므로 고난 당하는 자는 기도해야 한다. 기도가 자기 열심의 차원 으로 그치면 안된다. 하나님을 믿기에 그의 모든 약속이 그대로 사실로 내게 임하며 그의 능력이 내게 전달되고 있다고 믿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과 대화한다. 마음은 그 말씀에 대한 확신으로 채워진다. 그래서 고난보다 큰 힘이 자신을 감싸고 밀어주고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이렇듯 하나님으로부터 자녀에게 주어지는 진액은 기도를 통해서 흘 러들어온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쉬지 않고 기도를 해야 한다. 특별히 고난 당하면 기도하라는 말씀의 이유가 있다. 고난을 당하면 사람들은 문제 에 압도되어 믿음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런 상태에서는 기도를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모습만 기도이지 전혀 힘을 얻지 못한다. 찬송도 그렇다. 찬송이란 그냥 종교적인 노래가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해 주신 일을 감사하며 하나님을 높이는 노래가 찬송이다. 많은 복음송 중에 심지어는 공식적인 찬송가 중에도 전혀 찬송이 아닌 노래들 이 많이 들어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한 마디도 없고 모두가 인간의 입장 만 말하고 있다면 찬송이 아니다. 찬송은 하나님을 노래하는 것이다. "오 내 사랑 오 내 기쁨 이 내 말씀 들어주게"하는 노래를 생각해 보라. "당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얼마나 내 삶의 의미를 주는지 당신이 없 으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요 나는 죽습니다"는 식의 노래이다. 하나님을 향해서 이보다도 못하다면 무슨 찬양이 되겠는가! 정말로 애인을 늘 그 리며 간절히 사모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향해서 찬송하는 것이다. 시편이 모두 그런 내용이다. 전능의 신이며 사랑의 신이신 하나님을 높인다. 자신의 고통거리를 말하고 도우심을 요구하며 더욱 사랑하고 힘 달라고 애원한다. 이렇게 되면 찬송이나 기도의 차이가 없어진다. 찬송은 곡조를 붙인 기도일뿐이다. 찬송을 많이 부를수록 하나님이 마음에 충만 해진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찬송 중에 거하신다고 말한다.(시22:3)
그러므로 기도하고 찬송하라는 말은 믿음으로 하나님과 대화하고 힘 을 얻으라는 의미이다. 고난 당할 때만 기도하고 즐거울 때만 찬송하라는 것은 아니다. 늘 아버지와 교제하는 이는 역경을 피해갈수도 있고 만나더 라도 쉽게 극복할 수 있다. 신자라고 하나님의 자녀된 것 만으로 만족하 지 않고 계속적인 교통이 필요함을 알고 실천해야 한다.
2. 교회와의 수직적인 관계를 소중히 여기라. 나무처럼 사람들은 성장하기를 바란다. 그러면 성장하는 일을 하면 된다. 나보다 훌륭한 사람을 자꾸보고 훌륭한 일을 생각해야 한다. 예수는 그 키와 지혜가 함께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갔다고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옆길로 빠진다. 조금만 돈을 벌고 이름이 나면 유명인사의 잘못된 것부터 먼저 배운다. 성장이 않된다. 성장하려면 윗사람 높은 사람과 교제한다고 모든 것을 다 집중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면서 교회 일은 뒷전이다. 진짜로 잘되려면 우선 영혼 부터 자라야 한다. 하나님과 교제해야 한다. 이것을 위해서 주어진 것이 교회이다. 여기 붙어있어야 하고 더 나아가서 진액을 공급받기 위해서 늘 교제해야 한다. 사도신경에도 말한다.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 하는 것"을 믿습니다. 이것이 주의 몸과 신자가 교제하는 것이다. 신자는 하나님께 속해 있다. 물론 세상적으로도 여러군데 소속되어 있을 것이다. 가족, 학교, 직장 크게 보아 민족이나 국가이다. 소속된 곳 에서 여러 가지 유익을 얻기 때문에 머물러 있는다.
그렇다면 영적으로는 어디 속했을까 단 한 군데이니 그것이 교회이다. 교회로부터 신자는 모 든 영적인 젖줄을 받는다. 그래서 힘을 얻어서 일어나는 것이다.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병들었을 때 하라고 한다. 물론 몸의 병만이 아니다.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을 때에 교회의 어른들을 초청해서 도움을 받으라는 말이다. 이것은 수직적인 관계를 말한다. 목사나 장로나 권사 구역장 권찰등 조직이 있다. 그래서 가족처럼 도움을 받으라는 것이다. 그들과 아무런 교제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많은 것을 손해본다. 교회에서 직분 받을 때 은사를 받는다. 목사는 목사로서의 은사를 받는다. 장로나 권사나 집사나 모두 직분 받을 때의 은사가 있다. 사도바울 은 디모데에게 가면서 안수받을 때의 은사를 불일 듯이 하려고 그런다고 하였다. 구역장이건 선교회 임원이건 무엇이든지 거기 맞는 은사를 하나님이 주신다. 직분받은 자들은 먼저 이 일을 깨닫고 믿어야 한다.
그러므로 장로들은 병자들이 청할 때에 가서 기름을 바르며 기도해 야 한다.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이나 도움을 받는 사람이나 모두가 믿음을 가져야 한다. 장로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통해서 일하심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아픈 사람들은 지금 하나님께서 이 분들을 도구로 삼아서 자 기에게 은혜를 베푸심을 믿어야 한다.
그렇다면 반드시 열매가 있다. "믿음의 기도"가 병든자를 구원한다고 한다. 죄를 범했을지라도 사함 을 얻게 한다. 모든 문제도 해결한다. 이미 앞에서 말했지만 기도를 하는 것만으로는 안된다. 장로들이 기도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믿음으로 하 지 않는 것은 형식에 불과하다. 기도하는 행위만 강조하지 말라. 마음 속 이 예수 같아야 한다. 믿음의 말씀으로 먼저 자신을 설득하라. "엘리아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보통 사람이라는 말이다. 저가 능력을 가진 것은 자신의 공로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를 능력의 사람으로 만든 것은 바로 이러한 믿음이었다. 하나님이 그를 선지자로 안수 하실 때 은사를 베풀어 예언하게 하고 믿음의 기도를 하게 하셨다는 확 신이 그를 움직였다. 직분을 받은 이들은 엘리아처럼 확신해야 한다.
3. 은혜 받으려면 교회 안에서 수평적 교제도 해야 한다 나무가 자라려면 굵기도 생각해야 한다. 위로만 자라는 나무는 오래 살지 못한다. 수직적인 것뿐 아니라 수평도 잘되어야 한다. 교회에 오래 나와도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는 이들이 있다. 아예 그것을 자 랑으로 삼는다. 새로 누가 나왔는지. 누가 방문했는지 처음 온 사람은 없는지. 누가 아픈지. 누가 이사를 가고 애를 낳고 사업을 시작했는지. 교인들은 서로 교제해야 한다. 서로 간에 친목을 도모하고 좋은 인간 관계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 어떤 훌륭한 신자 하나가 간증했다. 자기는 교회를 오래 안 나갔지만 교회를 사랑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게 되었을 뿐 아니라 여러가지 축복을 많이 받아서 감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대체 로 나이가 많이 들어서 교회에 가면 잘 어울리기가 어렵다. 그도 처음에는 쑥스러웠는데 교회에서 하는 일에 열심히 참여하고 선교회도 나가고 아이들도 가르치고 하다보니까 아주 교인들과 가까워졌 다고 한다. 자기 형은 20년 이상 그 교회를 다녔지만 남선교회원들이나 다른 중진들과 거의 대화도 않는다고 한다. 처음부터 그렇게 하다보니 안 된다는 것이다. 교제를 통해서 좋은 사랑하는 가족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믿음의 교제이다. 서로 죄를 고하며 병 낫기 를 위해서 격려하며 서로 기도하라고 성경은 가르친다. 이것이 믿음의 교 제이다. 서로 간의 기도의 응답을 나누며 간증하며 격려한다. 이것이 성도 간의 교제이다. 같은 교회의 형제자매와의 교제를 통해서 축복을 많이 받은 사람들도 많이 있다. 믿음의 교제는 서로를 강하게 한다. 얼마나 많은 신자들이 교우간의 사랑에 힘을 입어서 믿음을 돈독케 했는지 모른다. 교회는 기둥만 세워져 있는게 아니다. 다시 말해서 위 아 래로 수직적인 관계만 있는게 아니다. 벽돌들이 빈 공간을 메꾼다. 그리스도의 몸은 뼈대와 핏줄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살로 몸이 채워졌다. 살이 윤택하면 몸도 건강한 것이다. 아무리 몸이 커도 말랐으면 약하다. 어느 건물이건 벽돌 하나라도 빠지면 구멍이 생긴다. "나 하나쯤 빠 져도 괜찮겠지" 한다면 절대로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하지 못한다. 나 하 나 때문에 주의 몸이 얼마나 고통하는지 모르는 자는 주의 몸이 아니다.
그러므로 자리 채우는 것도 대단히 중요한 수평적인 교제이다. 함께 모여 서 찬양하고 기도하며 함께 예배하라. 이것이 예배 공동체이다. 이제까지 성장의 비결을 말했다. 붉은 삼나무처럼 한없이 하늘 향해 솟아오르는 건강한 신자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확실히 갖고 있다. 그의 말씀을 항상 마음에 채우고 기도한다. 교회를 자기 몸처럼 생각한다. 어 른들을 존경하고 교우들을 형제처럼 사랑한다. 그렇게 함으로 주의 몸은 성장하고 하늘의 복은 다 부어진다. 그 가운데 있는 나에게도 그렇다.
1. 생명의 진액은 기도와 찬송 속에 흐른다 고난 당하는 자는 기도하고 즐거워하는 자는 찬송하라고 한다. 둘 다 같은 것으로 하나님과의 교제이다. 줄기가 막히면 시든다. 비록 나무에 잘 붙어있어도 막히면 죽는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하나님과의 실제 교제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생 명과 능력이 끊임없이 흘러들어와야 한다. 그 도구가 기도와 찬송이다. 도구라고 한 것은 그것이 다가 아니라는 말이다. 기도하고 찬송하면 다 되는게 아니다. 모두가 믿음 속에서 해야 한다. 믿음 없이 하는 기도는 푸념에 지나지 않는다. 새벽기도나 철야기도하는 이들에게 왜 하느냐 고 물어보라. 많은 사람들이 그냥 한다고 한다. 하면 다르다는 것이다. 무 엇이 다르냐 물으면 대개는 대답을 못한다. 기분이 다르다는 말이다. 하지만 믿음은 그 대상이 자신이 아니다. 내가 기분이 그냥 막연히 은혜스러우면 믿음이 좋은 것이 아니다. 믿음의 대상은 하나님과 그의 말씀이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확실하고 그의 말씀이 그대로 사실이라고 믿어야 한다. 그래서 거기 맞추어 내 기분이 은혜스러워야 한다. 그러기 때문에 언제나 하나님에 대한 신앙으로 자신의 마음을 잘 설득해야 한다.
그러므로 고난 당하는 자는 기도해야 한다. 기도가 자기 열심의 차원 으로 그치면 안된다. 하나님을 믿기에 그의 모든 약속이 그대로 사실로 내게 임하며 그의 능력이 내게 전달되고 있다고 믿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과 대화한다. 마음은 그 말씀에 대한 확신으로 채워진다. 그래서 고난보다 큰 힘이 자신을 감싸고 밀어주고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이렇듯 하나님으로부터 자녀에게 주어지는 진액은 기도를 통해서 흘 러들어온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쉬지 않고 기도를 해야 한다. 특별히 고난 당하면 기도하라는 말씀의 이유가 있다. 고난을 당하면 사람들은 문제 에 압도되어 믿음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런 상태에서는 기도를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모습만 기도이지 전혀 힘을 얻지 못한다. 찬송도 그렇다. 찬송이란 그냥 종교적인 노래가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해 주신 일을 감사하며 하나님을 높이는 노래가 찬송이다. 많은 복음송 중에 심지어는 공식적인 찬송가 중에도 전혀 찬송이 아닌 노래들 이 많이 들어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한 마디도 없고 모두가 인간의 입장 만 말하고 있다면 찬송이 아니다. 찬송은 하나님을 노래하는 것이다. "오 내 사랑 오 내 기쁨 이 내 말씀 들어주게"하는 노래를 생각해 보라. "당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얼마나 내 삶의 의미를 주는지 당신이 없 으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요 나는 죽습니다"는 식의 노래이다. 하나님을 향해서 이보다도 못하다면 무슨 찬양이 되겠는가! 정말로 애인을 늘 그 리며 간절히 사모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향해서 찬송하는 것이다. 시편이 모두 그런 내용이다. 전능의 신이며 사랑의 신이신 하나님을 높인다. 자신의 고통거리를 말하고 도우심을 요구하며 더욱 사랑하고 힘 달라고 애원한다. 이렇게 되면 찬송이나 기도의 차이가 없어진다. 찬송은 곡조를 붙인 기도일뿐이다. 찬송을 많이 부를수록 하나님이 마음에 충만 해진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찬송 중에 거하신다고 말한다.(시22:3)
그러므로 기도하고 찬송하라는 말은 믿음으로 하나님과 대화하고 힘 을 얻으라는 의미이다. 고난 당할 때만 기도하고 즐거울 때만 찬송하라는 것은 아니다. 늘 아버지와 교제하는 이는 역경을 피해갈수도 있고 만나더 라도 쉽게 극복할 수 있다. 신자라고 하나님의 자녀된 것 만으로 만족하 지 않고 계속적인 교통이 필요함을 알고 실천해야 한다.
2. 교회와의 수직적인 관계를 소중히 여기라. 나무처럼 사람들은 성장하기를 바란다. 그러면 성장하는 일을 하면 된다. 나보다 훌륭한 사람을 자꾸보고 훌륭한 일을 생각해야 한다. 예수는 그 키와 지혜가 함께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갔다고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옆길로 빠진다. 조금만 돈을 벌고 이름이 나면 유명인사의 잘못된 것부터 먼저 배운다. 성장이 않된다. 성장하려면 윗사람 높은 사람과 교제한다고 모든 것을 다 집중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면서 교회 일은 뒷전이다. 진짜로 잘되려면 우선 영혼 부터 자라야 한다. 하나님과 교제해야 한다. 이것을 위해서 주어진 것이 교회이다. 여기 붙어있어야 하고 더 나아가서 진액을 공급받기 위해서 늘 교제해야 한다. 사도신경에도 말한다.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 하는 것"을 믿습니다. 이것이 주의 몸과 신자가 교제하는 것이다. 신자는 하나님께 속해 있다. 물론 세상적으로도 여러군데 소속되어 있을 것이다. 가족, 학교, 직장 크게 보아 민족이나 국가이다. 소속된 곳 에서 여러 가지 유익을 얻기 때문에 머물러 있는다.
그렇다면 영적으로는 어디 속했을까 단 한 군데이니 그것이 교회이다. 교회로부터 신자는 모 든 영적인 젖줄을 받는다. 그래서 힘을 얻어서 일어나는 것이다.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병들었을 때 하라고 한다. 물론 몸의 병만이 아니다.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을 때에 교회의 어른들을 초청해서 도움을 받으라는 말이다. 이것은 수직적인 관계를 말한다. 목사나 장로나 권사 구역장 권찰등 조직이 있다. 그래서 가족처럼 도움을 받으라는 것이다. 그들과 아무런 교제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많은 것을 손해본다. 교회에서 직분 받을 때 은사를 받는다. 목사는 목사로서의 은사를 받는다. 장로나 권사나 집사나 모두 직분 받을 때의 은사가 있다. 사도바울 은 디모데에게 가면서 안수받을 때의 은사를 불일 듯이 하려고 그런다고 하였다. 구역장이건 선교회 임원이건 무엇이든지 거기 맞는 은사를 하나님이 주신다. 직분받은 자들은 먼저 이 일을 깨닫고 믿어야 한다.
그러므로 장로들은 병자들이 청할 때에 가서 기름을 바르며 기도해 야 한다.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이나 도움을 받는 사람이나 모두가 믿음을 가져야 한다. 장로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통해서 일하심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아픈 사람들은 지금 하나님께서 이 분들을 도구로 삼아서 자 기에게 은혜를 베푸심을 믿어야 한다.
그렇다면 반드시 열매가 있다. "믿음의 기도"가 병든자를 구원한다고 한다. 죄를 범했을지라도 사함 을 얻게 한다. 모든 문제도 해결한다. 이미 앞에서 말했지만 기도를 하는 것만으로는 안된다. 장로들이 기도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믿음으로 하 지 않는 것은 형식에 불과하다. 기도하는 행위만 강조하지 말라. 마음 속 이 예수 같아야 한다. 믿음의 말씀으로 먼저 자신을 설득하라. "엘리아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보통 사람이라는 말이다. 저가 능력을 가진 것은 자신의 공로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를 능력의 사람으로 만든 것은 바로 이러한 믿음이었다. 하나님이 그를 선지자로 안수 하실 때 은사를 베풀어 예언하게 하고 믿음의 기도를 하게 하셨다는 확 신이 그를 움직였다. 직분을 받은 이들은 엘리아처럼 확신해야 한다.
3. 은혜 받으려면 교회 안에서 수평적 교제도 해야 한다 나무가 자라려면 굵기도 생각해야 한다. 위로만 자라는 나무는 오래 살지 못한다. 수직적인 것뿐 아니라 수평도 잘되어야 한다. 교회에 오래 나와도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는 이들이 있다. 아예 그것을 자 랑으로 삼는다. 새로 누가 나왔는지. 누가 방문했는지 처음 온 사람은 없는지. 누가 아픈지. 누가 이사를 가고 애를 낳고 사업을 시작했는지. 교인들은 서로 교제해야 한다. 서로 간에 친목을 도모하고 좋은 인간 관계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 어떤 훌륭한 신자 하나가 간증했다. 자기는 교회를 오래 안 나갔지만 교회를 사랑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게 되었을 뿐 아니라 여러가지 축복을 많이 받아서 감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대체 로 나이가 많이 들어서 교회에 가면 잘 어울리기가 어렵다. 그도 처음에는 쑥스러웠는데 교회에서 하는 일에 열심히 참여하고 선교회도 나가고 아이들도 가르치고 하다보니까 아주 교인들과 가까워졌 다고 한다. 자기 형은 20년 이상 그 교회를 다녔지만 남선교회원들이나 다른 중진들과 거의 대화도 않는다고 한다. 처음부터 그렇게 하다보니 안 된다는 것이다. 교제를 통해서 좋은 사랑하는 가족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믿음의 교제이다. 서로 죄를 고하며 병 낫기 를 위해서 격려하며 서로 기도하라고 성경은 가르친다. 이것이 믿음의 교 제이다. 서로 간의 기도의 응답을 나누며 간증하며 격려한다. 이것이 성도 간의 교제이다. 같은 교회의 형제자매와의 교제를 통해서 축복을 많이 받은 사람들도 많이 있다. 믿음의 교제는 서로를 강하게 한다. 얼마나 많은 신자들이 교우간의 사랑에 힘을 입어서 믿음을 돈독케 했는지 모른다. 교회는 기둥만 세워져 있는게 아니다. 다시 말해서 위 아 래로 수직적인 관계만 있는게 아니다. 벽돌들이 빈 공간을 메꾼다. 그리스도의 몸은 뼈대와 핏줄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살로 몸이 채워졌다. 살이 윤택하면 몸도 건강한 것이다. 아무리 몸이 커도 말랐으면 약하다. 어느 건물이건 벽돌 하나라도 빠지면 구멍이 생긴다. "나 하나쯤 빠 져도 괜찮겠지" 한다면 절대로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하지 못한다. 나 하 나 때문에 주의 몸이 얼마나 고통하는지 모르는 자는 주의 몸이 아니다.
그러므로 자리 채우는 것도 대단히 중요한 수평적인 교제이다. 함께 모여 서 찬양하고 기도하며 함께 예배하라. 이것이 예배 공동체이다. 이제까지 성장의 비결을 말했다. 붉은 삼나무처럼 한없이 하늘 향해 솟아오르는 건강한 신자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확실히 갖고 있다. 그의 말씀을 항상 마음에 채우고 기도한다. 교회를 자기 몸처럼 생각한다. 어 른들을 존경하고 교우들을 형제처럼 사랑한다. 그렇게 함으로 주의 몸은 성장하고 하늘의 복은 다 부어진다. 그 가운데 있는 나에게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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