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 (요10:11-18)

본문

기독교를 무력하게 하는 가장 큰 원인 두가지를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습니다.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는지를 모르기 때문이요, 또 하나는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결국 구원의 확신이 없는 신앙생활에 감격을 상실한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이 두가지의 딜레마에 대한 명쾌한 답을 주고 있습니다.나는 양의 문이다!나로 말미암아 들어 오는자는 구원을 얻고 꼴을 얻으리라!예수님에 대한 분명한 신앙고백없이 막연히 하나님을 믿는 자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오직 예수님에 대한 믿음으로 구원함에 이르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위대한 선언과 함께 또 하나를 덧붙였습니다.나는 선한 목자라!우리가 양의 문이신 예수님을 통과할 때 우리는 그 양의 우리안에 속한 자가 됩니다. 초장에 가서 즐기고 먹다가도 언제든지 잘 돌아 올수가 있습니다. 목자와의 끊을 수 없는 관계를 지닌 양이 됩니다. 이제부터 이 양은 목자의 철저한 보호속에서 삶을 살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신학적 용어로 말하면하나님의 주권안에 있는 삶!입니다. 한마디로 그리스도인의 삶이란,철저한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사는 삶이라는 사실입니다. 목자의 철저한 보호속에서 사는 삶이라는 사실입니다.
첫째, 악한 목자인 바리새인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나는 목자라!
그런데 어떤 목자라 하셨습니까선한 목자!(oJ poimh;n oJ kalov")왜선한(kalov")이라는 형용사를 강조했습니까 무엇이 있기 때문입니까악한 목자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본문 12절에서는삯군(oJ misqwto;")이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이 악한 목자들을 말씀하셨을 때 우선 그 당시에 누구를 연상 하셨습니까 그 당시의 바리새인들 이었습니다. 이상하게 예수님께서 그 당시에 모든 사람들에게 관용하셨지만, 세리에게도, 깡패에게도, 창녀에게도 관용하신 우리 주님께서 바리새인들만 보며는 이를 가십니다. 이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주님께서 사용하신 복음서의 칭호들을 보십시오. 여러분! 바리새인들이 종교인이라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예수님을 알지 못했던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가능한 일입니까 오늘날 교회안에서 큰 문제는 그리스도를 경험하지 않고서 하나님을 믿으려고 하는 사람들, 정말 그리스도를 통한중생의 체험이 없는 사람들! 그러면서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종교인들! 복음의 진정한 원색적인 색깔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사실은 기독교를 오도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장본인들 입니다. 이악한 목자들그들은 자기들 스스로를 민중의 영적인 지도자로 자처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백성들의 지도자로 군림하고, 그 백성들을 통해서 자신에게 돌아오는 이익에 커다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철저하게 바리새인들이 무관심 했던 것, 그것은양들의 영적인 상태였습니다. 그들은 양들이 어디를 향해서 가야 하는지 한사람 한사람에 대한 관심, 그들의 영적인 상태에 대한 분명하고 뜨거운 관심을 상실한 기독교! 이것은 이미 변질된 기독교라는 사실입니다.
둘째,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 예수님은 선한 목자이십니다.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선한 목자로써 지금도 양들을 보호하십니다. 어떤 의미에서 보호하신다는 말씀입니까 적어도 오늘 본문에는 세가지 정도의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그밖에도 양과 목자의 관계에서 많은 연상이 있을수 있지만, 본문에 근거하면 세가지 의미만 살펴보겠습니다.
1. 생명을 지킵니다. 9절에서는구원을 얻는다했고, 10절에서는생명을 얻게 한다고 했으며, 13절에서는돌아본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써 오늘 우리의 영적인 생명이 지켜지고 있다는 것, 내가 예수님을 믿었을 때 주께서 내게 주신 영원한 생명이 잃어지지 않고 지켜지는 것은 누구 때문 인지 아십니까 우리의 철저한 결심 때문이 아닙니다. 목자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한번 구원 얻으면 그 구원을 잃어 버릴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절대로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 구원을 지키기 위해서 철저하게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이 아니라, 나를 구원하신 주님이 내 구원을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그의 사랑, 그의 은혜, 그의 약속이 내 구원을 보장하십니다. 이런 사실을 10:18절 이하에 분명히 드러납니다.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손에서 빼앗을자가 없느니라.사실 이 말씀이 역사적 배경을 가진 말씀입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그들의 신앙을 지켜주는 것이, 그들의 영적지도자들이었던 바리새인들이라는 선전이 문서에 보면 많이 나옵니다. 또 바리새인들이 그들에게 요구하는 여러 가지 요구의 수준들을 지키려고 노력할 때, 그 노력에 의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지켜진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의미에서 그 당시의 바리새인들의 가르침을 뒤집은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을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을 지키는 것, 우리에게 주신 영원한 생명을 지키는 것, 그것은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지키십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구원이 영원한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말씀이 베풀어졌던 절기가 어떤 절기라고 했습니까(22절)수전절에 주님께서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히브리사람들은 이 절기를하누카라고 합니다. 이 하누카의 유래를 보면 본래 B.C 167년경 알렉산더 대제 이후에 알렉산더가 통치하던 나라들은 몇개의 커다란 등분으로 나누어 집니다. 그때 유대나라가 들어있는 지역을 포함한 지역을시리아라 불렀는데, 그 시리아 지역을 다스리던 통치자 가운데 한사람안티오커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팔레스타인을 완전히 장악한 다음에, 유대인들에게 성전제사를 금지해 버렸습니다. 성전에서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모든 일을 금지시켜 버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이스 신들을 이 성전안에 안치시켜 놓고서, 유대인들이 제일 싫어하는 돼지를 잡아서 머리를 받치는 일을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최대의 모독적인 예배를 드리도록 강요했습니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이런 상황이 되면 누구나 그러한 것처럼 생존을 위해서 이 악한 지도자와 타협하여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분노하고 이를 갈았던 가문이 있었습니다. 그 유명한유다 마카비 형제입니다. 이 마카비 형제가이럴 수는 없다하여서 여호와에 대한 신성한 신앙을 보존하기 위해우리의 땅을 어지럽히고 부패시키는 이 적들과 싸워야 한다하여 게릴라 전쟁을 시작하였습니다. 거의 2-3년 동안 치열한 전투를 통해서 드디어 이 세력을 완전히 몰아내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성전을 회복하여 여호와께 다시 바쳤습니다.
그런데 성전을 회복해서 바친 그날 금촛대에 불을 켰는데 그 등잔에 있던 기름이 하루 밖에 갈수 없는 것이었는데 이상하게 8일동안 황홀하게 성전을 비추면서 다시찾은 성전의 영광을 하나님 앞에 노래했습니다. 이것이하누카의 유래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위대한 신앙의 지도자들이 그들의 신앙을 지켜준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이스라엘 백성이 성전을 되찾고 신앙을 되찾은 것은 그들의 투쟁이나 노력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라!는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을 주님은 가장 개인적인 사건으로 적용시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 우리 개인의 신앙도, 자유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지켜지고 있는 것도하나님의 주권때문입니다.나의 결심이 아닙니다. 목자되시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생명을 지키십니다.
2. 양식을 제공하십니다. 9절 하반절에.꼴을 얻으리라 10절 하반절에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진리의 말씀으로 우리의 영적인 양식을 공급하십니다.
3. 인도하십니다(16절).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기 위해서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성령님을 통해 우리를 인도하시는 선한 목자이십니다.
셋째, 신앙생활이란 선한 목자의 인도함을 받는 생활입니다. 양은 철저하게 의존적인 동물이면서도, 독립적인 행세를 하려는 특성을 갖습니다. 사53:6절 말씀에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양이 얼마나 무력합니까 모든 동물이 저마다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어떤 보호색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양은 전혀 자기를 방어할 보호색을 갖지 못한 동물입니다. 아주 무력합니다. 또 양은 스스로 양식을 공급할 능력이 없습니다 더구나 양은방향 감각이 없습니다. 모든 동물이 저마다 자기 집을 찾아 올 수 있지만, 양만은 가야할 방향을 찾지 못합니다. 이 모든 문제가 간단히 해결될 수 있는 비결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목자만 따르면됩니다. 즉 목자의 인도함을 받기만 하면 됩니다. 신앙생활 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양의 문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받은 공동체에 들어가면, 예수님을 목자로 모시게 됩니다. 이제부터 내가 살아간다는 것, 평생에 신앙생활 한다는 것은, 이 선한 목자되신 예수님만 철저하게 의존하며 그분이 인도함을 받는 것입니다. 나를 지키시는 그 분 앞에 나를 맡기며, 나를 인도하시길 원하시는 그분의 음성을 들으며 따라가면 되는 것입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669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