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기전에 부지런하라 (벧후3:8-13)
본문
사람들은 하나같이 내일이 있다는 희망 속에서 삶의 의욕을 재 충전 시킵니다.
그런데, 이 내일 이라는 희망이 어떻게 사용되느냐 하는 문제에 있 어소는 천태만상으로 각각 다릅니다. 오늘 사글세 신세를 면치 못하여 이리저리 전전긍긍 하지만 이제 내일은 반드시 형편이 나아 지리라 믿는 희망에 참고 견딥니다. 전세 신세인 사람 들은 계약 만기일만 되면 주인의 동정에 신경을 쓰며 이사 걱정을 해야되 지만 이제 3년만 더 참고 견디자 합니다. 왜냐면 3년 후엔 적금 부은 것이 나올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3년 이라는 희망에 스스스로 집 없는 설움을 달래가며 삽니다. 사업 하는 사람들도 희망속에 사업의 장래 를 맡기고 때로는 희망에 모험을 하기도 합니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은 가난 아기를 바라 보면서 온갖 희망과 기대를 겁니다. 어서 커서 유치원 에나 다녔으면 얼마나 편하고 좋을까 하는 희망에 온갖 보살핌을 마다하 지 않습니다. 그러다 유치원 다니는 아이로 크면 이젠 어서 빨리 국민학교 에 다니면 훨씬 쉬울텐데 합니다. 그러나, 막상 국민학교에 다니면 이제는 또, 중학교를 기대합니다. 중학교에 가면 이제 고등학교라는 희망을 겁니다. 고등학교에 가면 이제 꼭 대학에 들어가 주었으면 하고 간절히 빌면서 희망을 겁니다. 대학에 들어가고 나면 졸업하여 좋은 직장에 좋은 배필을 만나는 것에 희망을 걸고 마음쓰기에 바쁩니다. 좋은 직장에 좋은 결혼을 하고나면 이제 귀여운 손자손녀를 기다리는 희망에 삽니다. 이렇게 자녀에 게 온갖 희망을 걸고 정신없이 쫓아온 부모들은 어느듯 머리에는 하얀 서 리가 어지럽게 앉아 내리고 허리는 굽어 버리고 탄력있던 피부가 보기 흉 한 가죽만이 앙상하여 스스로 보기에도 측은해 집니다. 그토록 희망을 걸 었던 자녀는 이제 부모의 희망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자식들은 이제 다 자라나 자신들의 세계와 희망을 엮어 나가기에도 빠쁜 나날을 보내느라 늙 은 부모의 희망을 한같 간섭으로 간주하고 "이제 아무 걱정 마시고 조용히 쉬기나 하세요!"라고 말하므로 삶의 생기와 활력을 한껏 불어 넣어주던 희 망이 감옥에 갖히는 신세로 전락되고 맙니다. 희망이란 죽음 밖에 없어집니다. 희망이 없는 황혼기 그야말로 음침한 지옥의 전주곡이 아니고 무었이겠습 니까
그러므로, 이상과 같이 인생의 황혼기와 죽음의 한계를 넘지 못하는 세상중심적인 희망은 인간을 썩어지고 없어질 이 세상에 얽매어 놓으려는 사단의 가장 무서운 함정 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희망은 이 세상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에 걸어야 합니다. 인생의 한계와 죽음을 뛰어넘어 희망을 걸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우리의 모든 희망을 두어야 낭패를 당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세상의 허황된 실상에 희망을 걸지 말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희망을 걸고 부지런히 살아가야 할 이유가 무었인지를 살펴 보고자 합니다.
1.주의 재림이 도적같이 임할 것이므로 하나님 나라에 희망 두기를 부지런 해야 합니다.(8-12절) 말세를 사는 성도들에게 있어 가장 위험한 현상 가운데 하나는 주의 재 림에 대하여 무감각해 지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주의 재림이 지연되는 것에서 기인됩니다.
그런데 주의 재림에 대한 이러한 회의적인 생각은 오늘날 뿐만 아니라 베드로 당시에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재림이 늦은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가르칩니다.
1)하나님은 시간에 제한되지 않습니다.(8절) 인간의 삶은 철저하게 시간의 지배를 받으며 삽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간의 시간 계산법에 의해 인생을 설계하기도 하고 또 매일의 생활을 해 나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인간이 세운 시간법에 제한을 받 지 않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 다"고 말합니다. 모세도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다."(시90:4) 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니 성도들이 주 의 재림을 날짜를 계산해 가며 손꼽아 기다리다 지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에 있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하나님의 시간 계산법을 무리하게도 자신의 시간 계산법에 맞추기 때문에 낙망하여 넘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길면 80년에 이르는 인간의 생명(시90:10)을 가리켜 "너희 생명이 무었이 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4:14)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시간 계산법을 알게 될때에 마침내 우리는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84:10)라고 고백한 시편 기자 처럼 하루를 살더라도 하나님의 의와 영광을 위해 살므로 도적같이 재림하실 주님 을 준비하게 되는 것입니다.
2)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다 구원 되시기를 원하십니다.(9절)
(1)하나님은 오래 참으심으로 모두 구원 되기를 원하십니다.-재림이 지연 되었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인간에 대하여 무관심하거나 재림을 잊어 버렸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가 다 구원 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가능하면 좀더 참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행위는 때때로 많은 불신자들로 부터 오해를 받고 또한, 악한 그리스도인 들에게 악용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같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오히 려 조롱하고 악용하는 일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멸시하는 무서운 죄가 아닐 수 없음을 잊지말아야 합니다. 재림의 지연은 재림의 중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회개의 촉구입니다.
(2)하나님은 아무도 멸망 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하나님께서는 이 스라엘 백성이든 이방인이든 누구든지 심판에 이르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방인 니느웨에 요나를 보내어 복음을 전파하게 하 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방황하고 있는 수많은 심령들이 돌아 오기 를 기다리십니다. 집을 나간 탕자나, 집안의 탕자나 할것없이 주님께서는 재림의 유보를 통하여 마지막 기회를 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3)마지막 시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10절) 주님의 재림이 유보되고 늦어진다고 하여서 계획이 변경된다는 것이 아 닙니다. 오히려 주님께서는 반드시 재림하십니다. 그 종말은;
(1)종말은 갑자기 옵니다.-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다 구원 되기를 원하시지만 적당한 기한이 차면 반드시 재림 하십니다.
그런데 이 시기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들어 말씀하시기를 도 둑이 오는 것과 같다고 교훈 하셨습니다.(마24:43,눅12:39)
그러므로 우리는 이 갑작스런 주님의 재림에 대하여 늦기전에 철저히 깨 어 부지런히 기름준비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2)하나님의 심판은 철저합니다.-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 것 인지를 본문에서 말하기를;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 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라고 합니다. 주 님의 재림으로 세상이 심판을 받는 날이면 온 우주 만물에게 다 적용됩니다. 우주의 어느 한 부분, 어느 한 생명체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 습니다. 이 주의 재림과 심판을 늦기전에 미리 준비한 성도는 심판날에 주 의 상급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 늦어 미처 준비 못한 자들은 영원 한 형벌만이 기다릴 뿐입니다.
2.새하늘과 새땅을 바라보고 희망을 걸고 부지런해야 합니다.(11-13절)
1)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볼 수 있는 근거.
(1)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 포 로된 자에게 자유가 선포되고, 눈먼자가 다시 보게되고, 눌린 자가 자유케 되었습니다.(눅4:18) 예수님께서는 죽음과 절망의 늪에 허덕이는 불쌍한 인생을 건지시기 위하여 하늘의 높고 높은 보죄를 버리시고 추하고 냄새나 며 구역질 나는 인생의 틈바구니 속에 들어 오셨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당신의 전부를 우리를 위하여 던지시고 십자가의 대속과 부활의 소망과 영생 의 나라를 상속케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더욱더 분명한 보증으로 성령을 보내 주시고 완서을 위하여 재림과 새 하늘 새 땅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시 고 계신 것입니다. 이같은 주님의 모든 약속은 우리가 영원한 새 하늘 새 땅을 기다리게 보증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2)사도들의 증거.-사도들에게는 주님께로 받은 계시와 말씀으로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 믿음으로 사도들은 온 갖 고초를 다 감내 하였으며, 환란 가운데서도 담대히 복음을 전할 수 있 었던 것입니다. 특히, 밧모섬에 유배 되었던 사도 요한은 환란 중에서도 장차 이루어질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묵시를 보고 증거하고 있습니다.사 도 요한이 증거는 오직 정의 만이 넘치는 새로운 세상이 분명히 도래 할 것을 확신케 하는 근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늦기전에 부지런하여 열심히 그 나라를 향한 희망에 부풀어 전심전력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3)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성도의 신앙의 자세.(11-12절)
(1)경건한 신앙을 지켜야 합니다.(11절)-성도들의 신앙은 새 하늘과 새땅을 소망 하는대 그쳐서는 안됩니다. 그 나라가 임하기 까지 마음에 분 명한 확신을 갖고 그 나라를 바라보고 그 나라에 들어갈 준비를 하는 삶이 어야 합니다. 주님의 새 나라에 들어갈 준비를 하는 삶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삶입니다. 예수님을 닮기위해 노력하는 자가 경건한 삶을 사는 자 입니다.
(2)거룩한 행실을 가져야 합니다.(11절)-거룩한 행실 이란 복음에 합 당한 열매를 맺히는 생활을 말합니다. 심판 때의 계산은 열매 계산입니다. 다시말해 복음으로 말미암은 행위의 열매를 계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더 늦어 기회가 없어지기 전에 부지런하여 복음 의 합당한 열매를 맺히기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결론>
오늘도 하루가 지나갔습니다. 무었을 쫓아 살았습니까 무었에다 희망을 걸고 시간을 보냈습니까 아직도 신기루를 쫓고 있지는 않습니까 쫓아가 도 쫓아가도 자꾸만 달아나는 손에 잡히지 않는 희망을 따라 살지 않았습 까 결국은 아무것도 쥘 수 없는 헛된 세상 일에 온 마음과 몸을 던지는 허송 세월을 하지는 않았는지 자신을 살펴 보십시다. 그리고 다시한번 주 님께서 말씀하시는 영원한 희망과 소망인 주의 나라를 위해 살기를 작정하 십시다. 주님의 시간이 도적 같다고 하셨으니 오늘 밤이 마지막 기회인지를 누가 알겠습니까 더 늦기전에 미련을 두고 있는 세상일과 세상 것에서 과감히 벗어 나시기 바랍니다. 무슨 일을 해도 주님 만을 위하여 합시다. 무슨 계획을 해도 주님의 나라를 위하여 계획하십시다. 무슨 생각을 해도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부지런히 생각 하십시다. 그러면 희망차고 영광스러운 영원한 내일을 기다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내일 이라는 희망이 어떻게 사용되느냐 하는 문제에 있 어소는 천태만상으로 각각 다릅니다. 오늘 사글세 신세를 면치 못하여 이리저리 전전긍긍 하지만 이제 내일은 반드시 형편이 나아 지리라 믿는 희망에 참고 견딥니다. 전세 신세인 사람 들은 계약 만기일만 되면 주인의 동정에 신경을 쓰며 이사 걱정을 해야되 지만 이제 3년만 더 참고 견디자 합니다. 왜냐면 3년 후엔 적금 부은 것이 나올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3년 이라는 희망에 스스스로 집 없는 설움을 달래가며 삽니다. 사업 하는 사람들도 희망속에 사업의 장래 를 맡기고 때로는 희망에 모험을 하기도 합니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은 가난 아기를 바라 보면서 온갖 희망과 기대를 겁니다. 어서 커서 유치원 에나 다녔으면 얼마나 편하고 좋을까 하는 희망에 온갖 보살핌을 마다하 지 않습니다. 그러다 유치원 다니는 아이로 크면 이젠 어서 빨리 국민학교 에 다니면 훨씬 쉬울텐데 합니다. 그러나, 막상 국민학교에 다니면 이제는 또, 중학교를 기대합니다. 중학교에 가면 이제 고등학교라는 희망을 겁니다. 고등학교에 가면 이제 꼭 대학에 들어가 주었으면 하고 간절히 빌면서 희망을 겁니다. 대학에 들어가고 나면 졸업하여 좋은 직장에 좋은 배필을 만나는 것에 희망을 걸고 마음쓰기에 바쁩니다. 좋은 직장에 좋은 결혼을 하고나면 이제 귀여운 손자손녀를 기다리는 희망에 삽니다. 이렇게 자녀에 게 온갖 희망을 걸고 정신없이 쫓아온 부모들은 어느듯 머리에는 하얀 서 리가 어지럽게 앉아 내리고 허리는 굽어 버리고 탄력있던 피부가 보기 흉 한 가죽만이 앙상하여 스스로 보기에도 측은해 집니다. 그토록 희망을 걸 었던 자녀는 이제 부모의 희망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자식들은 이제 다 자라나 자신들의 세계와 희망을 엮어 나가기에도 빠쁜 나날을 보내느라 늙 은 부모의 희망을 한같 간섭으로 간주하고 "이제 아무 걱정 마시고 조용히 쉬기나 하세요!"라고 말하므로 삶의 생기와 활력을 한껏 불어 넣어주던 희 망이 감옥에 갖히는 신세로 전락되고 맙니다. 희망이란 죽음 밖에 없어집니다. 희망이 없는 황혼기 그야말로 음침한 지옥의 전주곡이 아니고 무었이겠습 니까
그러므로, 이상과 같이 인생의 황혼기와 죽음의 한계를 넘지 못하는 세상중심적인 희망은 인간을 썩어지고 없어질 이 세상에 얽매어 놓으려는 사단의 가장 무서운 함정 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희망은 이 세상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에 걸어야 합니다. 인생의 한계와 죽음을 뛰어넘어 희망을 걸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우리의 모든 희망을 두어야 낭패를 당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세상의 허황된 실상에 희망을 걸지 말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희망을 걸고 부지런히 살아가야 할 이유가 무었인지를 살펴 보고자 합니다.
1.주의 재림이 도적같이 임할 것이므로 하나님 나라에 희망 두기를 부지런 해야 합니다.(8-12절) 말세를 사는 성도들에게 있어 가장 위험한 현상 가운데 하나는 주의 재 림에 대하여 무감각해 지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주의 재림이 지연되는 것에서 기인됩니다.
그런데 주의 재림에 대한 이러한 회의적인 생각은 오늘날 뿐만 아니라 베드로 당시에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재림이 늦은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가르칩니다.
1)하나님은 시간에 제한되지 않습니다.(8절) 인간의 삶은 철저하게 시간의 지배를 받으며 삽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간의 시간 계산법에 의해 인생을 설계하기도 하고 또 매일의 생활을 해 나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인간이 세운 시간법에 제한을 받 지 않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 다"고 말합니다. 모세도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다."(시90:4) 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니 성도들이 주 의 재림을 날짜를 계산해 가며 손꼽아 기다리다 지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에 있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하나님의 시간 계산법을 무리하게도 자신의 시간 계산법에 맞추기 때문에 낙망하여 넘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길면 80년에 이르는 인간의 생명(시90:10)을 가리켜 "너희 생명이 무었이 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4:14)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시간 계산법을 알게 될때에 마침내 우리는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84:10)라고 고백한 시편 기자 처럼 하루를 살더라도 하나님의 의와 영광을 위해 살므로 도적같이 재림하실 주님 을 준비하게 되는 것입니다.
2)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다 구원 되시기를 원하십니다.(9절)
(1)하나님은 오래 참으심으로 모두 구원 되기를 원하십니다.-재림이 지연 되었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인간에 대하여 무관심하거나 재림을 잊어 버렸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가 다 구원 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가능하면 좀더 참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행위는 때때로 많은 불신자들로 부터 오해를 받고 또한, 악한 그리스도인 들에게 악용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같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오히 려 조롱하고 악용하는 일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멸시하는 무서운 죄가 아닐 수 없음을 잊지말아야 합니다. 재림의 지연은 재림의 중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회개의 촉구입니다.
(2)하나님은 아무도 멸망 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하나님께서는 이 스라엘 백성이든 이방인이든 누구든지 심판에 이르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방인 니느웨에 요나를 보내어 복음을 전파하게 하 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방황하고 있는 수많은 심령들이 돌아 오기 를 기다리십니다. 집을 나간 탕자나, 집안의 탕자나 할것없이 주님께서는 재림의 유보를 통하여 마지막 기회를 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3)마지막 시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10절) 주님의 재림이 유보되고 늦어진다고 하여서 계획이 변경된다는 것이 아 닙니다. 오히려 주님께서는 반드시 재림하십니다. 그 종말은;
(1)종말은 갑자기 옵니다.-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다 구원 되기를 원하시지만 적당한 기한이 차면 반드시 재림 하십니다.
그런데 이 시기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들어 말씀하시기를 도 둑이 오는 것과 같다고 교훈 하셨습니다.(마24:43,눅12:39)
그러므로 우리는 이 갑작스런 주님의 재림에 대하여 늦기전에 철저히 깨 어 부지런히 기름준비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2)하나님의 심판은 철저합니다.-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 것 인지를 본문에서 말하기를;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 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라고 합니다. 주 님의 재림으로 세상이 심판을 받는 날이면 온 우주 만물에게 다 적용됩니다. 우주의 어느 한 부분, 어느 한 생명체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 습니다. 이 주의 재림과 심판을 늦기전에 미리 준비한 성도는 심판날에 주 의 상급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 늦어 미처 준비 못한 자들은 영원 한 형벌만이 기다릴 뿐입니다.
2.새하늘과 새땅을 바라보고 희망을 걸고 부지런해야 합니다.(11-13절)
1)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볼 수 있는 근거.
(1)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 포 로된 자에게 자유가 선포되고, 눈먼자가 다시 보게되고, 눌린 자가 자유케 되었습니다.(눅4:18) 예수님께서는 죽음과 절망의 늪에 허덕이는 불쌍한 인생을 건지시기 위하여 하늘의 높고 높은 보죄를 버리시고 추하고 냄새나 며 구역질 나는 인생의 틈바구니 속에 들어 오셨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당신의 전부를 우리를 위하여 던지시고 십자가의 대속과 부활의 소망과 영생 의 나라를 상속케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더욱더 분명한 보증으로 성령을 보내 주시고 완서을 위하여 재림과 새 하늘 새 땅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시 고 계신 것입니다. 이같은 주님의 모든 약속은 우리가 영원한 새 하늘 새 땅을 기다리게 보증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2)사도들의 증거.-사도들에게는 주님께로 받은 계시와 말씀으로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 믿음으로 사도들은 온 갖 고초를 다 감내 하였으며, 환란 가운데서도 담대히 복음을 전할 수 있 었던 것입니다. 특히, 밧모섬에 유배 되었던 사도 요한은 환란 중에서도 장차 이루어질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묵시를 보고 증거하고 있습니다.사 도 요한이 증거는 오직 정의 만이 넘치는 새로운 세상이 분명히 도래 할 것을 확신케 하는 근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늦기전에 부지런하여 열심히 그 나라를 향한 희망에 부풀어 전심전력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3)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성도의 신앙의 자세.(11-12절)
(1)경건한 신앙을 지켜야 합니다.(11절)-성도들의 신앙은 새 하늘과 새땅을 소망 하는대 그쳐서는 안됩니다. 그 나라가 임하기 까지 마음에 분 명한 확신을 갖고 그 나라를 바라보고 그 나라에 들어갈 준비를 하는 삶이 어야 합니다. 주님의 새 나라에 들어갈 준비를 하는 삶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삶입니다. 예수님을 닮기위해 노력하는 자가 경건한 삶을 사는 자 입니다.
(2)거룩한 행실을 가져야 합니다.(11절)-거룩한 행실 이란 복음에 합 당한 열매를 맺히는 생활을 말합니다. 심판 때의 계산은 열매 계산입니다. 다시말해 복음으로 말미암은 행위의 열매를 계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더 늦어 기회가 없어지기 전에 부지런하여 복음 의 합당한 열매를 맺히기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결론>
오늘도 하루가 지나갔습니다. 무었을 쫓아 살았습니까 무었에다 희망을 걸고 시간을 보냈습니까 아직도 신기루를 쫓고 있지는 않습니까 쫓아가 도 쫓아가도 자꾸만 달아나는 손에 잡히지 않는 희망을 따라 살지 않았습 까 결국은 아무것도 쥘 수 없는 헛된 세상 일에 온 마음과 몸을 던지는 허송 세월을 하지는 않았는지 자신을 살펴 보십시다. 그리고 다시한번 주 님께서 말씀하시는 영원한 희망과 소망인 주의 나라를 위해 살기를 작정하 십시다. 주님의 시간이 도적 같다고 하셨으니 오늘 밤이 마지막 기회인지를 누가 알겠습니까 더 늦기전에 미련을 두고 있는 세상일과 세상 것에서 과감히 벗어 나시기 바랍니다. 무슨 일을 해도 주님 만을 위하여 합시다. 무슨 계획을 해도 주님의 나라를 위하여 계획하십시다. 무슨 생각을 해도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부지런히 생각 하십시다. 그러면 희망차고 영광스러운 영원한 내일을 기다릴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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