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부터 난 지혜 (약3:13)
본문
두가지 지혜-하나는 세상적 지혜, 하나는 오늘 말씀드릴 위로부터 난 지혜가 있다고 야고보는 말씀하고 있다. 위로부터 난 지혜는 그 근원이 하나님이기 때문에 지식은 수평적이지만 지혜는 수직적이다.-위로부터 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하늘로부터 당연히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약1:5-17에 야고보는 지혜와 지식의 차이점을 이미 말씀드린바 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지혜 곧 자체라고 고전 1:24,30. 골2:3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 성경은 지혜를 여러 군데 말씀하고 있다. 이사야 선지자는 사11:2에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라”. 주님이 오셔서 지혜의 근원자 되실 것을 예언했다. 위로부터 난 지혜는 성령님의 열매와 매우 비슷한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갈5:22-23은 성령님의 9가지 열매(은사). 위로부터 난 지혜의 성령님의 9가지 열매처럼 위로부터 난 지혜도 9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성경은 늘 우리가 읽어보면 성령님의 충만함을 따라 하나님의 지혜를 얻게 됨을 우리가 알 수 있다. 행6:3은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님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일을 저희에게 맡기리라” 행6:10에는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님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치 못하여” 지혜와 성령님은 항상 연결되고 있음을 말씀한다. 고전12:8에는 “어떤이에게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이에게는 같은 성령님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엡1:17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골1:9은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행6:3은 초대교회 사도들이 사역의 업무가 많아 피로할 때에 일곱 집사를 세워 이 업무를 대행하게 했는데 그 자격이 영적인 지혜를 가진 사람이었다. 이런 지혜가 우리에게 필요하고 우리가 구해야 할 지혜인줄로 믿습니다.
1.위로부터 난 지혜는 9가지
1)성결하다 인간의 지혜는 순수하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지혜는 (위로부터) 깨끗한 삶, 성결의 삶으로 인도한다. 마늘 먹으면 마늘냄새가 나듯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그 냄새가 나게 되있다. 우리가 위로부터 난 믿음의 사람되어 참 하나님의 사람 될 때에 예수님의 향기, 그리스도의 향기가 난다. 그 근원이 성결, 순결함이다. 우리 믿음의 성도들은 다 잊어버려도, 모두 없이해도 거룩함, 성결함, 순결은 잃지 말아야 한다. 모든 것을 다 투자해 거룩을 얻을 수 있는 믿음이 되자.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고, 악랄할지라도, 목적을 이룰려면 뭐든지 하는데 우리 믿음의 법은 그런것이 아닌줄 믿습니다. 성결-거룩-성화는 깨끗하다는 말이다. 순정, 청결은 죄없는 의미의 뜻이다. 지혜라는 말이 자연적으로 성결케 되어지는 뜻이다. 슬기 지혜는 ‘알’ 혹은 사리에 밝을 ‘지’자에-알 ‘지’자 날 ‘일’자 합친 것-사리를 밝게 아는것. 총명할 지혜 슬기 밝을 ‘해’자 빗자루‘혜’와 마음‘심’자가 합쳐서 빗자루로 쓸듯이 띠끌하나 없는 마음을 말한다. 김씨가 난 아들은 성이 뭐예요 김씨예요. 위로부터 난 지혜의 사람은 성결한 줄로 믿습니다. 돈 몇 푼 손해 안볼려고 악을 쓰면서 성령님이여 강림하사…, 해봐도 성령님의 지혜와는 거리가 멀단 말입니다. 이런 지혜의 성령님, 성결을 빼앗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혜는 어둠을 쫓아내고 어떤 곳에서도 영향을 받지 아니하는 성결함의 은혜다. (희랍=부엉새) 꿩새끼, 닭 병아리 = 처음엔 구분 안돼도 날개가 자라나면 꿩은 날아가고 닭은 닭장에 갇혀있다. 창 위로부터 온 지혜를 소유하는 성도가 됩시다. 첫번째 은혜, 성결의 은혜를 소유하고 날아가는 올라가는 믿음이 되자.
2)화평-달랜다, 평화를 회복한다. 엄청난 최고의 위력을 가지고 있다. 권력이나 특권과는 달리 화평은 그 어떤 것보다 강한 힘을 가지고, 지혜자는 화평을 만드는 줄로 믿습니다. 위로부터 난 하나님의 지혜를 가진 사람은 가는 곳곳마다 화평을 조성하고 은혜를 나눈다. 반대는 가는데 마다 깨지고, 가는데 마다 부딪치고, 가는데 마다 판이 깨지고 흥을 깨고, 붙은 불을 꺼버린다. 이것은 세상의 지혜다. 우리는 화평을 조성하는 화평의 사신, 하나님의 지혜의 사람이 됩시다. 성경은 항상 짝을 이루는 것이 대부분인데 성결과 화평은 짝을 이루고 다닌다. 성결하고 나면, 거룩해지면, 화평밖에는 할 줄 몰라, 나 자신에 문제가 있고 거룩치 못하니까 쪽박을 깨는일만 하게되는 것이다. 성결이 내 자신속에 완성된 사람은 가는 곳마다 깨진 것을 붙이고, 갈라진 것 합치고 불화를 화평케 하는 일 밖에 할 줄 몰라 할게 없다는 말이다. 성결과 화평은 짝이다. 마5:8에 “마음이 청결한 자 복이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5:9은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계시록은 (증인-순교자), (말씀-기도), (믿음-역사), (지혜-성령님). 성결해지면 화평만 이루게 된다. 화평하지 못하면 늘 불평, 불만이요, 화평을 깨는 사람은 자기가 덜된 사람이며, 모자란 사람이며, 성결되지 못한 사람이다. 네 눈에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에 티끌만 보는 자들이라고 주님은 책망하셨다. 나 자신이 깨끗한 심령일 때 남의 티끌보고 비방하고 비판하지 않고, 그것 어떻게 하면 가리고 어떻게 하면 빼줄까 하게된다. 잠3:12, 히12:14, 마5:9, 롬12:18
3)관용-모든 생각이 공정하고 알맞고 합리적이다. 약자에 대한 엄한 공정성을 주장하지 않는 것이며, 언제든지 남에게 너그러움을 보여주는 것이다. 나의 의견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는 최고의 통치자로서의 삶을 말하는 것이 관용입니다. 관용은 최고의 통치자라는 뜻도 있다.-사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정치지도자들은 관용이 부족 했던 것이 사실이다. 딤전3:3은 감독을 세울 때에 논쟁을 좋아하는 사람(따지고 드는 사람)을 피하여 관용하는 사람을 감독으로 세우라 딛3:2은 정세나 권세 잡은 자들에게 온유와 관용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지도자, 윗사람이 될자들에게 관용을 요구하고 있으니-최고의 통치자가 되는 길은-위로부터 난 지혜자는 남을 너그러이 이해할 줄 아는, 베풀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과격한 권리나 자기 주장을 내세워 상대방을 괄시하고 불안하게 하며, 오만한 자세는 자기를 파멸케 하는 것이며, 자기 주의에서 사람들을 떠나게 하는 것입니다. 베풀 수 없어서 걱정이지 할 수 있으면 나눠주고 베풀어주고 감싸주는 관용의 지혜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삼상12:22, 단3:42)
4)양순 본문에서 나오는 단어다. 다루기 쉬운, 유순하다, 쉽게 설득된다. 남을 의심치 않고 신뢰한다. 언제든지 복종할 수 있는 순종자다. 설득된다 했으니-잘 속아넘어가는 사람이다-이런 뜻은 아닙니다. 이것은 양보를 말하는 것입니다. 양순은-무지, 연약으로 속아넘어가고 억압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다 알고 다 할 수 있는데도, 나의 강하고, 권세와 재력이 다른이에게 상처가 될까봐 이해하고 설득되어져 양보하는 유순함을 말한다-저는 하나도 안하고 해놓은 것도 없으면서 뭐 해놓은게 있냐고, 무슨 일을 그렇게 하냐고 따지듯이 하는 사람보면 참 불쌍해요. 자식들을 사람해서 속아주고 그냥 눈감을 때가 있습니다. 그것을 통해 교훈하려고 말예요. 9시가 넘으면 취침시간인데 예배마치고 좀늦게 가보면 우리 아이들이 쿵탕 거리다가 자는 척, 죽은듯이 누워있으면 베개 따로, 이불 따로…, “응 자는구나, 착하다.” 그 다음에는 미안해서도 잡니다. 양순은 자기의 뜻이 꺾여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뜻이 있을지라도 상대방의 뜻을 앎으로 그 뜻에 맞추기 위한 이해요, 양보인 것이다. 서로를 좋게하기 위해 내것을 양보하는,이해하는 너그러움의 설득이다. 나를 이용하려고 하는구나. 나를 써먹으려 하는구나. 니가 내 도움이 그렇게 필요하면 얼마든지 나를 써먹어라 괜찮다. 모르고 당하면 분통터질지 모르지만 그런것이 아니다. 이해해 주는 것, 상대방을 위해 양보하는 것. 니가 날 속이려고 나쁜놈, 괘씸한놈, 내가 누군데 거기 넘어갈것 같으냐…, 똑똑한것 같아도 세상적 지혜의 본 모습이다.
눅22:42 겟세마네의 주님
5)긍휼 위로부터 난 지혜가 없으므로, 우리는 엉뚱한 것의 지배를 받아왔다. 마23:28은 “이와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롬1:29도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근수근 하는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하는 자요, 자랑하는 자요”. 벧후 2:14은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쉬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 롬15:14은 “내 형제들아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둘로 나누어지는데, 어떤 사람은 악한 것으로, 음심으로 가득차 있고, 어떤 사람은 선함으로 하나님의 지식으로 가득차 있다. 아래로부터 난 사람은 악으로 가득차 있고, 위로부터 난 사람은 하나님의 지혜, 선으로 가득차 있으니 우리가 세상적으로 가득한 것 비워버리고, 없이해 버리고-심령이 가난한자가 되어-(우리가 가난하게 살라는 말이 아니고 심령을 가난하게) 위로부터 난 지혜-하나님의 긍휼로 가득 채우는 성도가 됩시다. 위로부터 난 지혜는 긍휼을 베푸는 일에 모자람이 없습니다. 긍휼이 풍성한 사람인 것입니다. 눅10:25-37에 사마리아 사람-선한 이웃의 비유 가운데-부비(치료비)가 더들어 모자라면 내가 돌아오는 기에 다시 주겠다고 부족함이 없이 긍휼에 풍성한 사람. 주님도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6)선한 열매가 가득하다.-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 유익하다. 위로부터 난 하나님의 지혜는 선한 열매가 가득하답니다. 성경은 사람을 열매맺는 나무에 비유했다. 갈5:22에 성령님의 9가지 열매, 요15:1-16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영적 열매, 엡5:9은 빛의 열매, 시92:13-14은 여호와의 집에 심기운 자는 늙어도 결실한다. 빌1:11은 의의 열매가 가득하기를 원한다. 우리의 삶을 열매맺는 삶으로 말씀하고 있다. 열매없는 잎만 무성한 신자가 되지 말기를 바랍니다. 열매있는 믿음의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열매있는자 되어야지 열매없는 잎만 무성한 신자가 되지 말기를 바랍니다. 열매있는 믿음의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열매 있는자 되어야지 열매없는 잎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가 주님께 저주받아 마른것처럼, 우리가 잎만 무성하고 화려, 찬란해서 자랑하지 말고, 정말 열매를 성실하게 맺을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나무는 열매를 봐서 좋은 나무를 안다.
7)편벽함이 없다.-우유부단히 없다. 요동치 않는다. 흔들림이 없다. 하나님의 지혜는 편벽하지 않습니다. 논쟁에서도 한편에 치우치지 않는다. 여기에 흔들리고 저기에 흔들리고, 이사람 말듣고, 저사람 말듣고, 우유부단한 성도가 되지 맙시다. 중심을 가지고 삽시다. 우유부단해서 하나님의 교회일 을 그르치고, 신앙의 기회를 잃어버리고, 직무 감당치 못하고 사명 끝내는 경우가 많다. 사람이 어떻고, 동창이 뭐라하고, 이웃이 떠들고 인척이 어쩌고 이말, 저말, 편벽해서 왔다갔다. 이리저리 기웃둥거리면 아! 이사람은 흔드니까 흔들리는구나 자꾸 흔들게 되는 것입니다. 위로부터 난 지혜를 얻은 사람은 높은 것이나, 어리석은 것이나, 배운자, 못배운자, 민족이나, 집안이나, 인격, 연륜, 연령, 상하 어떤 경우에도 영향을 받지 아니하는 참된 지혜의 사람이 됩시다. (개는 짖어도-열차는 간다) 누가 뭐라 해도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라면 내길 갑시다.(롬12:9, 고후6:6, 벧전1:22) 8)거짓이 없는 사랑-과장이 없다. 위선적 행위가 없다. 나는 거짓된 나를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본래 나의 자아를 잃어버리지는 않았나요 하나님의 형상이 내게는 있습니까 거짓속에 내가 병든 사람은 아닙니까 허상한자요, 위험스럽기 짝이 없는 사람 위로부터 난 자아 , 하나남의 모습, 지혜를 발견합시다. 존재해야 하는 세상이 교회가 정말 필요로 하는 모습을 가집시다. 위선과 과장으로 사는 사람 많다. 남의 등이나 쳐먹고 이리저리 끌어들여 신세나지고…, 교회안에도 위선자가 많다.-하나님앞에 있는 그대로 우리 모습을 깡그리 내놓을 수 있는 성도가 됩시다. 9)화평케 하는 자는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둡시다. 우리가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는 줄 믿습니다. 화평을 심으면 화평한 의의 열매거두고 분장, 술수, 심으면 그런 것 거둔다. 사32:17 “의의 공효는 화평이요, 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 암6:12 “말들이 어찌 바위 위에서 다리겠으며, 소가 어찌 거기 밭 갈겠느냐
그런데 너희는 공법을 쓸개로 변하며 정의의 열매를 인진으로 변하며” 마5:8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고후9:10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라” 히12: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는다”. 울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되어있다. 어떻게 심느냐에 따라 어떻게 거두냐가 결정된다. 화평의 열매를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자. 불의로 심는자는 불의밖에는 못거둔다. 심는대로 거둔다면 심는것은 생활이요, 거두는 것은 열매다. 화평을 심고, 믿음을 심읍시다. 심는 대로 거두는것을 기억합시다. 심을때는 힘들고, 아깝고, 괴롭지만 열매는 반드시 기대 이상으로 복될 것을 믿습니다. 씨앗은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심으면 거둘 때가 반드시 옵니다. 이것은 농사의 원리입니다. 신앙의 원리도, 심는 것이 있어야 거둔다면 같은 원리다. 심는 게 버리는 게 아님을 믿습니다. 봉사, 충성, 헌금, 직분감당,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면 기회가 내게 옵니다. 건강이 옵니다. 몸을 하나님께 드리면 강건이 옵니다. 물질을 하나님께 드리면 30배, 60배, 100배 축복이 옵니다.
2.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지혜있는 자는 믿음이 행위로 나타나는 성도를 말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죽은것이다. 주님만 내 사정 아신다고(주님이 벌써 다아셔)말은 참 잘해도, 남이 볼때는 아니올씨답니다. 주님이 아신다고 진정 깨닫는 사람은 그말 안합니다.(자기속에 삭인다고요) 우리에게 믿음의 열매가 온유함으로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13절 “너희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이라” 민12:3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하나님이여 원컨데 그를 고쳐 주옵소서” 마11:29, 21:5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매는 짐승의 새끼를 탓도다” 고후10:1 “너희를 대하여 대면하면 겸비하고 떠나 있으면 담대한 나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권한다”는 말씀처럼 지혜와 총명있는 온유한 믿음의 성도들이 도시기를 축원합니다.
1.위로부터 난 지혜는 9가지
1)성결하다 인간의 지혜는 순수하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지혜는 (위로부터) 깨끗한 삶, 성결의 삶으로 인도한다. 마늘 먹으면 마늘냄새가 나듯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그 냄새가 나게 되있다. 우리가 위로부터 난 믿음의 사람되어 참 하나님의 사람 될 때에 예수님의 향기, 그리스도의 향기가 난다. 그 근원이 성결, 순결함이다. 우리 믿음의 성도들은 다 잊어버려도, 모두 없이해도 거룩함, 성결함, 순결은 잃지 말아야 한다. 모든 것을 다 투자해 거룩을 얻을 수 있는 믿음이 되자.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고, 악랄할지라도, 목적을 이룰려면 뭐든지 하는데 우리 믿음의 법은 그런것이 아닌줄 믿습니다. 성결-거룩-성화는 깨끗하다는 말이다. 순정, 청결은 죄없는 의미의 뜻이다. 지혜라는 말이 자연적으로 성결케 되어지는 뜻이다. 슬기 지혜는 ‘알’ 혹은 사리에 밝을 ‘지’자에-알 ‘지’자 날 ‘일’자 합친 것-사리를 밝게 아는것. 총명할 지혜 슬기 밝을 ‘해’자 빗자루‘혜’와 마음‘심’자가 합쳐서 빗자루로 쓸듯이 띠끌하나 없는 마음을 말한다. 김씨가 난 아들은 성이 뭐예요 김씨예요. 위로부터 난 지혜의 사람은 성결한 줄로 믿습니다. 돈 몇 푼 손해 안볼려고 악을 쓰면서 성령님이여 강림하사…, 해봐도 성령님의 지혜와는 거리가 멀단 말입니다. 이런 지혜의 성령님, 성결을 빼앗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혜는 어둠을 쫓아내고 어떤 곳에서도 영향을 받지 아니하는 성결함의 은혜다. (희랍=부엉새) 꿩새끼, 닭 병아리 = 처음엔 구분 안돼도 날개가 자라나면 꿩은 날아가고 닭은 닭장에 갇혀있다. 창 위로부터 온 지혜를 소유하는 성도가 됩시다. 첫번째 은혜, 성결의 은혜를 소유하고 날아가는 올라가는 믿음이 되자.
2)화평-달랜다, 평화를 회복한다. 엄청난 최고의 위력을 가지고 있다. 권력이나 특권과는 달리 화평은 그 어떤 것보다 강한 힘을 가지고, 지혜자는 화평을 만드는 줄로 믿습니다. 위로부터 난 하나님의 지혜를 가진 사람은 가는 곳곳마다 화평을 조성하고 은혜를 나눈다. 반대는 가는데 마다 깨지고, 가는데 마다 부딪치고, 가는데 마다 판이 깨지고 흥을 깨고, 붙은 불을 꺼버린다. 이것은 세상의 지혜다. 우리는 화평을 조성하는 화평의 사신, 하나님의 지혜의 사람이 됩시다. 성경은 항상 짝을 이루는 것이 대부분인데 성결과 화평은 짝을 이루고 다닌다. 성결하고 나면, 거룩해지면, 화평밖에는 할 줄 몰라, 나 자신에 문제가 있고 거룩치 못하니까 쪽박을 깨는일만 하게되는 것이다. 성결이 내 자신속에 완성된 사람은 가는 곳마다 깨진 것을 붙이고, 갈라진 것 합치고 불화를 화평케 하는 일 밖에 할 줄 몰라 할게 없다는 말이다. 성결과 화평은 짝이다. 마5:8에 “마음이 청결한 자 복이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5:9은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계시록은 (증인-순교자), (말씀-기도), (믿음-역사), (지혜-성령님). 성결해지면 화평만 이루게 된다. 화평하지 못하면 늘 불평, 불만이요, 화평을 깨는 사람은 자기가 덜된 사람이며, 모자란 사람이며, 성결되지 못한 사람이다. 네 눈에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에 티끌만 보는 자들이라고 주님은 책망하셨다. 나 자신이 깨끗한 심령일 때 남의 티끌보고 비방하고 비판하지 않고, 그것 어떻게 하면 가리고 어떻게 하면 빼줄까 하게된다. 잠3:12, 히12:14, 마5:9, 롬12:18
3)관용-모든 생각이 공정하고 알맞고 합리적이다. 약자에 대한 엄한 공정성을 주장하지 않는 것이며, 언제든지 남에게 너그러움을 보여주는 것이다. 나의 의견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는 최고의 통치자로서의 삶을 말하는 것이 관용입니다. 관용은 최고의 통치자라는 뜻도 있다.-사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정치지도자들은 관용이 부족 했던 것이 사실이다. 딤전3:3은 감독을 세울 때에 논쟁을 좋아하는 사람(따지고 드는 사람)을 피하여 관용하는 사람을 감독으로 세우라 딛3:2은 정세나 권세 잡은 자들에게 온유와 관용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지도자, 윗사람이 될자들에게 관용을 요구하고 있으니-최고의 통치자가 되는 길은-위로부터 난 지혜자는 남을 너그러이 이해할 줄 아는, 베풀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과격한 권리나 자기 주장을 내세워 상대방을 괄시하고 불안하게 하며, 오만한 자세는 자기를 파멸케 하는 것이며, 자기 주의에서 사람들을 떠나게 하는 것입니다. 베풀 수 없어서 걱정이지 할 수 있으면 나눠주고 베풀어주고 감싸주는 관용의 지혜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삼상12:22, 단3:42)
4)양순 본문에서 나오는 단어다. 다루기 쉬운, 유순하다, 쉽게 설득된다. 남을 의심치 않고 신뢰한다. 언제든지 복종할 수 있는 순종자다. 설득된다 했으니-잘 속아넘어가는 사람이다-이런 뜻은 아닙니다. 이것은 양보를 말하는 것입니다. 양순은-무지, 연약으로 속아넘어가고 억압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다 알고 다 할 수 있는데도, 나의 강하고, 권세와 재력이 다른이에게 상처가 될까봐 이해하고 설득되어져 양보하는 유순함을 말한다-저는 하나도 안하고 해놓은 것도 없으면서 뭐 해놓은게 있냐고, 무슨 일을 그렇게 하냐고 따지듯이 하는 사람보면 참 불쌍해요. 자식들을 사람해서 속아주고 그냥 눈감을 때가 있습니다. 그것을 통해 교훈하려고 말예요. 9시가 넘으면 취침시간인데 예배마치고 좀늦게 가보면 우리 아이들이 쿵탕 거리다가 자는 척, 죽은듯이 누워있으면 베개 따로, 이불 따로…, “응 자는구나, 착하다.” 그 다음에는 미안해서도 잡니다. 양순은 자기의 뜻이 꺾여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뜻이 있을지라도 상대방의 뜻을 앎으로 그 뜻에 맞추기 위한 이해요, 양보인 것이다. 서로를 좋게하기 위해 내것을 양보하는,이해하는 너그러움의 설득이다. 나를 이용하려고 하는구나. 나를 써먹으려 하는구나. 니가 내 도움이 그렇게 필요하면 얼마든지 나를 써먹어라 괜찮다. 모르고 당하면 분통터질지 모르지만 그런것이 아니다. 이해해 주는 것, 상대방을 위해 양보하는 것. 니가 날 속이려고 나쁜놈, 괘씸한놈, 내가 누군데 거기 넘어갈것 같으냐…, 똑똑한것 같아도 세상적 지혜의 본 모습이다.
눅22:42 겟세마네의 주님
5)긍휼 위로부터 난 지혜가 없으므로, 우리는 엉뚱한 것의 지배를 받아왔다. 마23:28은 “이와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롬1:29도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근수근 하는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하는 자요, 자랑하는 자요”. 벧후 2:14은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쉬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 롬15:14은 “내 형제들아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둘로 나누어지는데, 어떤 사람은 악한 것으로, 음심으로 가득차 있고, 어떤 사람은 선함으로 하나님의 지식으로 가득차 있다. 아래로부터 난 사람은 악으로 가득차 있고, 위로부터 난 사람은 하나님의 지혜, 선으로 가득차 있으니 우리가 세상적으로 가득한 것 비워버리고, 없이해 버리고-심령이 가난한자가 되어-(우리가 가난하게 살라는 말이 아니고 심령을 가난하게) 위로부터 난 지혜-하나님의 긍휼로 가득 채우는 성도가 됩시다. 위로부터 난 지혜는 긍휼을 베푸는 일에 모자람이 없습니다. 긍휼이 풍성한 사람인 것입니다. 눅10:25-37에 사마리아 사람-선한 이웃의 비유 가운데-부비(치료비)가 더들어 모자라면 내가 돌아오는 기에 다시 주겠다고 부족함이 없이 긍휼에 풍성한 사람. 주님도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6)선한 열매가 가득하다.-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 유익하다. 위로부터 난 하나님의 지혜는 선한 열매가 가득하답니다. 성경은 사람을 열매맺는 나무에 비유했다. 갈5:22에 성령님의 9가지 열매, 요15:1-16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영적 열매, 엡5:9은 빛의 열매, 시92:13-14은 여호와의 집에 심기운 자는 늙어도 결실한다. 빌1:11은 의의 열매가 가득하기를 원한다. 우리의 삶을 열매맺는 삶으로 말씀하고 있다. 열매없는 잎만 무성한 신자가 되지 말기를 바랍니다. 열매있는 믿음의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열매있는자 되어야지 열매없는 잎만 무성한 신자가 되지 말기를 바랍니다. 열매있는 믿음의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열매 있는자 되어야지 열매없는 잎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가 주님께 저주받아 마른것처럼, 우리가 잎만 무성하고 화려, 찬란해서 자랑하지 말고, 정말 열매를 성실하게 맺을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나무는 열매를 봐서 좋은 나무를 안다.
7)편벽함이 없다.-우유부단히 없다. 요동치 않는다. 흔들림이 없다. 하나님의 지혜는 편벽하지 않습니다. 논쟁에서도 한편에 치우치지 않는다. 여기에 흔들리고 저기에 흔들리고, 이사람 말듣고, 저사람 말듣고, 우유부단한 성도가 되지 맙시다. 중심을 가지고 삽시다. 우유부단해서 하나님의 교회일 을 그르치고, 신앙의 기회를 잃어버리고, 직무 감당치 못하고 사명 끝내는 경우가 많다. 사람이 어떻고, 동창이 뭐라하고, 이웃이 떠들고 인척이 어쩌고 이말, 저말, 편벽해서 왔다갔다. 이리저리 기웃둥거리면 아! 이사람은 흔드니까 흔들리는구나 자꾸 흔들게 되는 것입니다. 위로부터 난 지혜를 얻은 사람은 높은 것이나, 어리석은 것이나, 배운자, 못배운자, 민족이나, 집안이나, 인격, 연륜, 연령, 상하 어떤 경우에도 영향을 받지 아니하는 참된 지혜의 사람이 됩시다. (개는 짖어도-열차는 간다) 누가 뭐라 해도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라면 내길 갑시다.(롬12:9, 고후6:6, 벧전1:22) 8)거짓이 없는 사랑-과장이 없다. 위선적 행위가 없다. 나는 거짓된 나를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본래 나의 자아를 잃어버리지는 않았나요 하나님의 형상이 내게는 있습니까 거짓속에 내가 병든 사람은 아닙니까 허상한자요, 위험스럽기 짝이 없는 사람 위로부터 난 자아 , 하나남의 모습, 지혜를 발견합시다. 존재해야 하는 세상이 교회가 정말 필요로 하는 모습을 가집시다. 위선과 과장으로 사는 사람 많다. 남의 등이나 쳐먹고 이리저리 끌어들여 신세나지고…, 교회안에도 위선자가 많다.-하나님앞에 있는 그대로 우리 모습을 깡그리 내놓을 수 있는 성도가 됩시다. 9)화평케 하는 자는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둡시다. 우리가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는 줄 믿습니다. 화평을 심으면 화평한 의의 열매거두고 분장, 술수, 심으면 그런 것 거둔다. 사32:17 “의의 공효는 화평이요, 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 암6:12 “말들이 어찌 바위 위에서 다리겠으며, 소가 어찌 거기 밭 갈겠느냐
그런데 너희는 공법을 쓸개로 변하며 정의의 열매를 인진으로 변하며” 마5:8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고후9:10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라” 히12: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는다”. 울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되어있다. 어떻게 심느냐에 따라 어떻게 거두냐가 결정된다. 화평의 열매를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자. 불의로 심는자는 불의밖에는 못거둔다. 심는대로 거둔다면 심는것은 생활이요, 거두는 것은 열매다. 화평을 심고, 믿음을 심읍시다. 심는 대로 거두는것을 기억합시다. 심을때는 힘들고, 아깝고, 괴롭지만 열매는 반드시 기대 이상으로 복될 것을 믿습니다. 씨앗은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심으면 거둘 때가 반드시 옵니다. 이것은 농사의 원리입니다. 신앙의 원리도, 심는 것이 있어야 거둔다면 같은 원리다. 심는 게 버리는 게 아님을 믿습니다. 봉사, 충성, 헌금, 직분감당,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면 기회가 내게 옵니다. 건강이 옵니다. 몸을 하나님께 드리면 강건이 옵니다. 물질을 하나님께 드리면 30배, 60배, 100배 축복이 옵니다.
2.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지혜있는 자는 믿음이 행위로 나타나는 성도를 말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죽은것이다. 주님만 내 사정 아신다고(주님이 벌써 다아셔)말은 참 잘해도, 남이 볼때는 아니올씨답니다. 주님이 아신다고 진정 깨닫는 사람은 그말 안합니다.(자기속에 삭인다고요) 우리에게 믿음의 열매가 온유함으로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13절 “너희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이라” 민12:3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하나님이여 원컨데 그를 고쳐 주옵소서” 마11:29, 21:5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매는 짐승의 새끼를 탓도다” 고후10:1 “너희를 대하여 대면하면 겸비하고 떠나 있으면 담대한 나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권한다”는 말씀처럼 지혜와 총명있는 온유한 믿음의 성도들이 도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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