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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적 지혜 (약3:14-16)

본문

두 가지 지혜가 있다. 하나는 세상적인 지혜, 또 하나는 다음 시간에 증거할 위로부터 난 지혜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세상적 지혜가 아니라 위로부터 난 하나님의 지혜로 무장하는 하나님의 지혜를 소유하여 얻는 성도가 되자. 우리 하나님은 이미 1장 15절에서 말씀드린 대로 지혜가 부족한 자들이 하나님께 구하게 될 때에 우리 하나님은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했듯이 우리가 세상적인 지혜와 위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지혜를 오늘과 다음 시간에 거쳐서 말씀을 나누므로 이들을 잘 구분해서 참으로 위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지혜를 간구하여 소유하는 성도가 됩시다. 14, 15, 16절의 짧은 성경 속에 각기 한가지씩 세상 지혜를 설명하고 있다. 오늘 말씀드리는 세상적인 지혜를 어리석음을 추구하지 않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一.세상적인 지혜의 성격(14)
1. 세상적인 지혜는 독한 시기가 있다. 그러나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가 세상적인 지혜에서 난다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이 여기에 대하여 갈5:19절에 성령님의 열매와 병행하여 말씀하면서 육체적인 일들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등이 있다고 했습니다. 육체의 일을 시기와 투기로 강조하고 있다. 시기는 (ζηλο,헬,젤로스)로 열성 열의 열심이라는 말인데 이 말은 좋은데 이 앞에 '독한'이란 말이 붙어 있으니 문제가 된다. 세상 지혜를 가지고 사는 열심, 열의가 있는 것 같은데 그것이 독한 열심이요 독한 열성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젤로스는 중성인데 악한 의미로 부정적이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한다고 열심 한다고 그러는데 세상적, 독한 것을 품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게 되는 것입니다. 시기를 질투라고 더 많이 알고 있지만 논쟁과 싸움의 과도한 열성은 의미하는 뜻이 시기 가운데 있습니다. 시기의 강렬함, 비통, 과정, 이러 것이 독한 것하고 연결된다는 말입니다. 猜忌(시기)의 한자 뜻을 살펴보면 猜(시)자는 미친개 변에 날뛰며 시퍼런 청자로 되어 있습니다. 낯빛이 의심하므로 성낸 푸른 빛의 뜻을 말하고 忌(기)는 끓이고 살기가 미워한다는 의미를 가진 뜻이 시기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이 악한 독한 시기와 열성은 세상적으로부터 오는 지혜로 미친개가 시퍼렇게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말 뛰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우리 생활이 이런 생활되지 아니하도록 우리 믿음이 온순함으로 질서 있는 규모 있는 생활을 합시다. 균형 없이 사는 사람을 향해 ,“미친년 널뛰듯”한다고 하는데(웃음) 질서를 가지고 살며 겸손하게 신앙의 질서를 가지고 시기하는 자리에 나가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어리석은 사람이 하나도 없기를 축원합니다.

2. 다툼이 있다. 다툼은 불일치, 뭔가 삐걱거린다. 당신이 아니면 못살겠다고 맹세하며 결혼해도 서로 이해하지 못해서 다툼이 일어나고 이것이 맹렬해져 언제 내가 죽도록 사랑한다고 했느냐고 말합니다. 한 교회 안에서도 당파의 형성, 일치되지 못하는 싸움을 말합니다. 고전1:1-12에는 당시 고린도교회는 신령한 은사가 가장 뜨거운 과열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분쟁과 당파 싸움이 있었는데 말씀처럼 “이는 다름 아니라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는 것이니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뇨.” 가장 신령하다고 자처했고 고린도교회 은사가 많았던 교회가 한 파는 바울, 한 파는 아볼로, 또는 게바, 또한파는 그리스도파로 나뉘어 네파, 내파 당파를 만들어 다툼했다. 이것이 세상적 지혜라는 말입니다. 가장 믿음 생활 잘하고 가장 신령하다고 잘한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인데 당파를 이루어 싸움질했다는 말입니다. 목사님편 장로편 나뉘고 다투는 것은 세상 지혜 마귀 생각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말씀의 기초가 든든히 뿌리박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말씀에는 관심이 없고 설교 시간에는 졸고 그러면서 인도자를 비난합니다. 그러면서 은사를 원하지만 말씀에 뿌리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로부터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신령한 은혜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 있는데는 모두 자기가 잘 났습니다. 자기가 제일입니다. 여기에는 파당이 많고 다툼이 있답니다. 고린도교회 9가지 은사 체험자가 가장 많은 교회지만 가장 분쟁이 많은 교회였다는 것입니다. 분쟁을 일삼는 어리석은 은사 말보다 말씀을 깊이 뿌리를 내리는 말씀 속에 분쟁이 없는 믿음이 우리의 믿음이 됩시다. 파벌, 다툼 분쟁은 모두 세상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교회에 하나도 유익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면서 모쪼록 다툼이 없도록 믿음의 전진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일치하지 못하면 다툼이 있기 마련이다. 남이 일치해 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내가 먼저 일치할 수 있는 성도가 되자. 빌1:7,2;3)
3. 자랑을 합니다. 자랑하지 말라의 원어를 읽어보면, '메'라는 부정사가 있는데 명령문 부정형이요 현재적 진행형, 행동적 자랑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지금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별것도 아닌 것 남도 다가지고 있는 것 큰 것인 양 착각하고 자랑하는 것을 말한다. 곡식은 익을 수록 고개를 숙이고 사람도 지혜 학식이 많을 수록 고개를 숙이고 겸손합니다. 아는 척 잘난 척, 쓸모도 없는 것들이 고개를 들고 교만하여 자랑합니다. 우리가 이런 교만이 없기를 축원합니다.
 자랑치 않는 말씀이기를 원합니다. (롬11:18, 약2;13)
4. 진리를 거슬려 거짓 합니다. 거짓으로 속이는 것 비 진리를 말하는 것이다. (벧후 2:1)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에게도 거짓 선생 들이 있으리라” (마7;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 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 라” 또한 거짓 증인들에 대한 말씀에 다음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롬 13:9 롬9:1, 갈1;22, 골3;9 요일1:6 거짓된 것, 또는 속이려고 시도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진리를 거슬려 거짓 하늘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아래서부터 오는 세상적인 것으로 세상의 지혜는 진리를 거슬려 부딪치고 거짓말하고 참된 진리를 배격한다는 말입니다. 말이 진리를 거스리고, 말이 거짓되면, 위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인 것이다. 진리는 옳다, 정직하다는 뜻입니다. 참된 지혜는 항상 진리를 따라 살지만 세상적 지혜는 진리와 다른 것을 말하는 거기에 간사함과 속임이 있다는 사실을 알자. 간사함으로 우리를 속이려는 거짓됨에 유혹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롬9:1-2 /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 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님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갈1:20/ 보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 말이 아니로다. 골3:9 / 너희가 서로 거짓말 말라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버리고. 요일1:6/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 치 아니함이거니와. 계3:9/ 보라 사탄의 회라 하고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내 게 주어 저희로 내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거짓되고 진리를 거스리는 모든 것들을 잘못된 세상적인 것에서 왔다고 말하고 있다.

二.이런 세상적 지혜의 근원들.
1. 세상적으로 온다. 세상적(에피게이오스,) 세속적인 현세인으로 중성적인 부정형의 단어입니다. 빌3;19 / 땅에 일을 생각하는 자는 마침이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 움에 있다. 세상적인 지헤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하고 복음을 거절하는 것이다. 고전1:1-18/ 십자가의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세상적 지혜는 하나님의능력을 미련하게 본다. 진리를 거절한다. 참 지혜, 참 믿음, 참 은혜가 우리의 믿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2. 정욕에서 시작됩니다. ㅈ3욕적인 생명, 영혼을 의미하는 것으로 심리적이라는 말의 기원합니다. 퓨시케9정욕)은 생명, 영혼과, 관계되는 상황에서 육에 속했다. 영적이지 못했다. 세상에서 오는 지헤는 절대로 영적이지 못함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슴은 천국의 열쇠로 영적인 열쇠로 열어야 열리는데 저욕으로 육적으로 열라니 절대로 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세대가 바로 정욕을 위한 지혜 정욕을 도모하는 지혜가 가득차 있는 세대입니다. 이속에 우리가 삽니다. 모든 것이 정욕을 자극하고 정욕을 자극하는 지혜로 방법을 가득차 있습니다. 이 때에 우리는 위로부터 난 참 지혜로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고전2;14, 고전15:44-46, 유1;19) 너희가 구해도 얻지 못함은 정욕을 위해 쓰려고 잘 못 구함이라고 야고보는 말했습니다.(약4:3) 정욕적으로 오는 것 추구하기 위해 얼마나 바쁘게 거품을 품고 다리며 삽니까 우리에게는 극복되기를 바랍니다.
3. 마귀에게서 시작된다.(마귀적이다) 마귀적인 능력은 하나님에게 대적하는 가운데 인간들에게 그 생각과 행동을 주관하려 합니다. 마귀 사단 참 묘한 것입니다. 창3자의 사단과 이브의 대화속에서 유혹이 시작됩니다. 여기서부터 사람을 타락하게 하고 넘어뜨렸던 마귀는 계20장까지는 계속 역사하고 있다. 마귀적인 지혜는하나님을 대적하여 하나님의 사람들을 대적하여 에덴 동산의 역사를 재현 하려는 마귀적인 행위인데 계20장이 끝나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지기까지 계속된다. 예수의 이름으로 사탄을 쫒으면 될 것 같지만 그게 아주 물러가는 것이 아니다. 눅4장, 마4장, 40일 금식후 말씀으로 무리쳤을 때 아주 쫒겨난 것이 아니라 작전상 후퇴로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계속적으로 역사했음을 믿습니다. 주님에게까지도 잠시 살기를 바랍니다. 누가 세상없는 사람이 말하더라도 이 말이 위로부터난 하나님의 지혜인가 세상으로난 마귀의 것인가를 판단하고 물리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영적인 자만네 빠지면 세상적이 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조금이라도 마귀 사탄이 틈타는 기회를 주지 않는 경성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중요한 것도 이 마귀가 영물이라는데 있습니다. 육보다 앞선다는 사실이에요 심령이 매어서 하나님의 전심갑주로 무장치 않고서는 육신만가지고서는 마귀에게 번번히 평정 깨지고 넘어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영에 속한 사람이 아니면 백번이라도 마귀에게 진다는 것입니다. 교회 생활 한다고 하면서도 마귀가 사단의 도구가 되어지는 가룟 유다, 니골라 같은 사람 불쌍한 사람이 하나도 없기를 바랍니다.(살후2:9, 딤전4:1, 계6:13-14, 요8:46) 마귀를 도와주는 어리석은 심령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일은 중단케하고 방해하면 마귀를 도와주는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머리털 하나라도 마귀에게 사용되어지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세상적 지혜는 세상적, 정욕적, 마귀적입니다. 이런 세상적인 지혜가 교회에 침투해 들어도록 방관하면 독한 시기를 불러 일으켜 불안을 조성하고 하나님의 지혜와는 거리가 먼 버려야 할 세상 것을 고집하고 지헤를 짜내어 꿰어내는 세상것에 어찌그리 전념하는지 이런 분파심을 가지고 서로 대적하게 만들고 상호간에 마음을 열고 관대하게 이해하고 사라으로 서로 뉘우치고 화해하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고 철저히 세상적이요 철저히 정욕적이지요 철저한 마귀적인 행위 가운데 사는 것인데 이런 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수단 방법 정치가들이 하는 술수 정략이란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에게서 떠나기를 바랍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가까이 하지 않도록 합시다. 하나님 의한 것이 아니라. 마귀의 조정에 우리 방향이 마귀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三 세상적인 지혜의 결과(16)
1.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 요란이 있다. 세상적인 결과는 요란이 있답니다. 요란은 불안의 상태, 무질서, 혼돈, 동요를 가르키는 말입니다. 세상적인 지혜의 결과는 이런것 뿐입니다. 이런 결과 빚는 사함없기를 바랍니다. 창11장의 바벨은 혼돈의 땅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대답하는 인간의 교만의 결과 바벨탑 쌓는 세상 지혜 교만 쌓아 자기 않기를 축원합니다.

2.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 모든 악한 일이 추가 된다.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 곧 추가 되어 간다는 말입니다. 모든 악한 일 곧 악한(파우로스)는 형용사로 도덕적 비열, 나쁜 무가치한 것을 가리킵니다. 모든 면에 있어서 쓸모가 없는 가치 없는 행위를 모든 악한 일이다. 가치 없는 일, 일삼고 사는 사람이 아니기를 원합니다. 할 일없는 사람들이 장날 다리 밑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 치마가 길으니 짧으니 머리가 어떻다는 등 말이 많습니다. 필요 없이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없이를 바랍니다. 그 시간에 차라리 성경 봅시다. 그 시간에 기도합니다. 그 시간에 찬송합시다. 말씀 틀어 놓고 말씀 들읍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모든 악한 일을 점점 추가해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악한 일을 생산해 내는 공장이 되어 버리고 만다면 우리의 믿음은 좋은 믿음이기를 원합니다. 세상적, 정욕적, 마귀적이 아닌 하나님의 지혜로 사는 성도가 됩시다. 시기, 분쟁, 미움,빼어 버리면 아무것도 없는 제일 세상적인 교회가 고린도 교회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신, 망, 애가 넘치는 교회로 칭찬 받았다. 빌립보교회가 기쁨 넘치는 즐거움의 교회로 찬양하는 교회, 베뢰아 교회가 신사적 교회 곧 최고의 칭찬들은 교회이며 말씀의 교회 뿌리가 깊은 교회입니다. 교회가 교회 되게 하는 하나님의 역사는 말씀의 터전 위에서 이루어짐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지푸라기나 나무로 모래 위에 집을 짓지 말고 반석으로 반석 위에 믿음의 집을 지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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