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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들의 今生來生 成功法1 (약1:12-18)

본문

하나님이 법적으로 우리의 구주가 된 것은 이미 되어있고, 실상으로 우리 행동에 우리 생활에 우리 구주가 되는 것은 이미 얻은 기본구원을 우리가 버리지 안하고 그 기본구원을 힘입어서 행위 구원을 이루게 됩니다. 우리가 행동 할 때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전능자로 같이 해 주시고 전지자로 같이 해 주시고 대주재 주권자로 같이 해 주실 수 있는 이런 관계는 우리가 현실 현실에서 그 관계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현실에서 하나님으로 자기의 지능과 전부를 삼는 그 한 편이 있고 또 이를 배반하고 악령과 세상을 자기와 관련된 것으로 삼는 그런 양면을 가지 고 사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자유를 가지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은혜로 자기 의 전부를 삼는 그 일도 현실에서 삼고 안 삼는 것이 결정되고 또 악령과 세상의 것을 자기의 전부로 삼는 것도 결정되고 안 되는 것이 다 현실에서 판단 나는 것입니다.
현실에서 하나님 편에 속하려고 하면 악령과 세상 편에 속하지 안해야 되 고 또 세상에 속하려하면 하나님 편에 속하지 안해야 되고 양면을 다 가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비유컨대 열차가 서울로 가는 것, 부산으로 가는 것 둘이 있다고 하면 한 몸이 양편을 다 갈 수는 없고 갈려고 하면 그 몸을 쪼 개야 할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 편에 속하든지 악령과 세상 편에 속하든지 둘 중에 하나를 해야 되지 둘 다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현실을 우리가 당했을 때에 우리가 이리 해야 저리 해야 되느냐 하는 그 지식으로 이 지식을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그 지식을 내가 수락해서 내 지식으로 삼아 현실을 사느냐 하나님의 지식에 반대가 되는 악령과 이 세상의 지식을 자기가 자기 지식으로 수락해서 현실을 통과하느냐 하는 것 둘 중에 누구든 지 하나가 이루어지지 둘 다 이루어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행동도 그러합니다. 현실에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그대로 그렇게 행하는 행동도 있고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면서 하라고 하는 그 행동 반대인 악령과 세상이 가르쳐 주는 그대로의 행동하는 행동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현실에서 지식도 둘이요 행동도 둘입니다. 하나님에게 속한 지식과 행동이 있고 또 하나님의 지식에 반대되는 악령과 세상에 속한 행동도 있고 둘이 있습니다. 그러면, 세상에는 하나님에게 속한 지식과 행동과 또 세상에게 속한 지식 과 행동 이 둘이 같은 때도 있습니다. 같은 때 그것은비유컨대 낮과 같은 때입니다. 밤이 아니고 낮과 같은 때입니다. 그럴 때는 하나님 말씀도 순종 되고 세상에게도 순종되고 둘 다 같이 순종이 되니까 아무런 시비 있을 것 이 없고 신강 될 것이 없습니다. 그럴 때에는 하나님 말씀대로 하는 사람이 나 이 세상 모든 지식대로 하는 사람이나 아무런 그런 시비가 없고 둘 다 같은 것이 됩니다. 그러다가 이제 차차 차차 하나님의 지식과 세상 지식이 달라지는 그것이 우리에게 오고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행동하는 그 행동과 세상이 요구하는 행동과 달라지는 그 행동이 오는데 조금 달라지는 행동은 초저녁이라고 초 저녁이라고 할 수 있고, 점점 많이 달라지는 것은 밤이 짙어간다고 할 수가 있고, 밤중은 아주 정반대로 달라지는 그런 일이 올 때에 그것을 밤중이라 그렇게 비유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현실에서 하나님에게 배워서 하나님의 지식을 하나씩 둘씩 받아 가 지고 자라가는 그 실력, 또 하나님이 하라는 것을 함으로 하나님에게 능력 을 받아 가지고 하나씩 둘씩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자라가는 그 2가지를 가리켜서 지능으로 자라간다. 지능의 실력이라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다 하나님에게 배우고 또 하나님의 하라 하시는 대로 행동함 으로 하나님이 우리 하는 일에 같이 해 주셔서 그 능력을 힘입어서 썩지 안 하고 쇠하지 안하고 없어지지 아니할 그 영생이 되는 그런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은 다 있습니다. 그런 행동을 하고 싶은 마음도 다 있습니다. 있는데 왜 우리가 못하는고 하는 그 이유를 우리가 찾아 가지고서 밝히 알기만 알 면 못할 이유가 없고 안 할 이유가 없고 다 하게 됩니다. 그러나, 바로 알 지 못하는 데에서 마귀의 꼬임에 빠져 가지고 우리가 실패를 합니다. 성경이 가르치기를 생각도 둘이요 행동도 둘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생각 은 성령님의 생각도 있고, 육체의 생각도 있고, 성령님의 행동도 있고 육체의 행동도 있다 이랬습니다. 성령님의 행동은 성령님이 가르치시고 시키시는 대 로하는 것이 성령님이 주시는 지능이요, 또 육체의 생각이나 행동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 반대의 자기 욕심, 자기 생각, 자기 뜻, 자기 지식. 자기 비판 평가, 자기 경영 하나님에게 반대되는 자기나 어떤 사람이나 세상이나 개인 이나 단체나 나라나 시대나 뭐 크고 작고 할 것 없이 그 어떤 것대로 하든 지 하나님의 지식과 능력으로 하지 않는 그런 것은 다 그것이 하나 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현실은 어쨌든지 행동으로 통과합니다. 현실은 이렇게 행 동해서 그 현실을 지내 보내든지 저렇게 행동해서 그 현실을 지내 보내든지 현실은 뭐 그 사건이 당했을 때에 자기는 사건을 행하지 안하고 누워서 잠 을 자서 현실을 통과하든지 삐뚤어지게 행동을 해서 통과를 하든지 바로 행 동해서 통과하든지 어쨌든 둘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말하기를 현실을 만나서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그 지식대 로 자기가 행동을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성령님의 생각대로 하는 행동이라 그 렇게 말했는데 성령님의 생각대로 하는 행동은 다 생명과 평강이 된다 이랬습니다. 다 사는 것과 평강이 된다 이렇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고, 또 그와 정반대로 피조물의 하나님의 반대인 피조물 즉 개인이나 나라나 사 회나 국가나 전 인류라 할지라도 하나님에게 반대되는 그 생각과 행동은 다 사망이라, 전체가 망하는 것과 죽는 것뿐이라 그렇게 성경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는 사는 것과 평강이 됐고 하나는 죽는 것과 망하는 것이 되 어지니까 누가 죽는 일을 좋아하며 누가 망하는 일을 좋아할 리가 있습니 까 몰라서 마귀가 꾀우니까 죽는 것은 사는 것이라 하고 또 사는 것은 죽는 것이라 하고 평안한 것은 고통 된다 하고 고통 되는 것은 평안하다 하고 이 악령이 저희 사람들을 붙들고 말하고, 우리 속에도 악령의 미혹을 받은 이 부패성, 아주 옛사람의 그 쓰지 못할 자기 중심의 생각 이런 것들이 다 한 덩어리가 되어 가지고서 하나님의 도에 순종치 못하게 그렇게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현실에서 기름을 준비하려 할 때에 기름 준비를 하지 말 라고 꾀우다가 안 되면 강제로 또 박해를 가합니다. 이러니까 임시 강제와 박해를 견디지 못해 가지고 기름 준비를 집어 던져 버리고 이 세상 이 말하는 대로하면 그같은 박해도 없고 욕도 없고 핍박도 없고 어려움도 없으니까 그만 그대로 사람들이 하기 쉬운 대로 해 가지고서 망합니다. 하기 쉬운 대 로.
그러므로, 거기에 대해서 아마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단편적으로 듣고 기 름 준비 해라 하는 이 말씀을 듣고 기름 준비를 하려고 오늘부터라도 시작 해서 이 시간 붙여 놔도 하나님께서 이 현실은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할 때에 하나님의 지식대로 할까 세상이가르치는 대로할까 그것을 좌우로 판 정을 지워서 걸어 갈려고 하면 당장에 애로가 있습니다. 애로가 있으면 그 만, 오늘 설교 들어 봤자, 기름 준비하려고 시작하다가 다 그만 버리고 내 나 세상에 멸망 받는 그 길 걸어가게 될 것이기 때문에 이 말씀을 다시 첨 부해서 증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날 때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와 같이 행하는 기름 준비하는 이 일을 하려고 하면 다 어려움을 닥칩니다. 어려움을 닥 치나 그 어려움을 닥쳐도 그 어려움에게 막혀지지 아니하고 어려움에게 밀 려지지를 안하고 그 어려움에게 굴복을 하지 안하고 참는 자는 복이 있다 이랬습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다' 시험 당할 때에 계속하는 자는 복이 있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그 건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이제 너는 됐다.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네가 이 현실은 네가 바로 알았고 바로 행했다.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그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그와 같이 하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요 현실에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그대로 받아 들 여 가지고서 그대로 행하는 이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주 님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현실을 만났을 때에 주님이 하라고 가르쳐 요렇다 하면서 가르쳐 주시는 주님이 가르쳐 주시는 것을 듣지 아니하고 그대로 행 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님을 미워하는 자요 주님을 배반하는 자입니다. 그러기에 현실을 만날 때에 어려움이 있어도 그 어려움을 인해서 주님이 가 르쳐 주시는 그 지식을 배반치 말고 주님이 하라는 그 행동을 버리지 말고 그대로 계속해 하면 그 말입니다. 계속해 하면, 하나님이 인제 됐다.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하나님께서 인제 됐다 너는 됐다. 너는 지금 사업을 하는데 이제 됐다. 사업을 하려 하다가 다 망해 버리고 망해 버리고 하는 것이 무엇 때문에냐 그 모든 것이 주권은 하나님에게 있는데 하다가 삐뚤 어져서 망하고 삐뚤어져 망하고 그래 다 망하는 것입니다.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이제 그것 이 자기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은 어디서 결정 되는고 하니 그것도 현실에서 결정됩니다. 현실에서 주님을 사랑하는 것도 결정되고 주님을 미워하는 것도 결정되고 현실에서 주님을 영접하는 것도 결정되고 주님을 배반하는 것도 결정이 됩니다. 그 결정은 무엇이냐 주님 이 가르치는 그 지식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지식으로 하라 하는 대로 순 종해서 행하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영접하는 것이요 주님의 것을 받아 들이는 것이요. 그 지식을 부인하고 행동을 버리면 자기는 주님을 배반하는 사람이요 주님을 미워하는 사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을 미워하고 사랑하고 영접하고 버리는 것이 그 현실 자기가 하나님이 가르치시는 대로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이 행동하라는 대로 행동을 하고. 요 2가지, 주님이 주시는 지식을 만고 행동하라고 능력 주시는 그 능력을 받아서 행동하고. 이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영접하는 것이요 주님의 모든 것을 자기가 받을 수 있는 것이오. 그 현실에, 현실에는 주님 시키는 대로하지 안하고 가르치는 대로 자기가 수락하지 안하고 또 가르친 그대로 행동하지 안하고, 그라면서 다를 때는 뭐 주님을 위하는 듯이 하고 또 주님을 위해서 제가 무슨 큰 일을 한다고 떠들어 쌓고 뭐 연보도 하고 뭐 아무리 한다고 해도 그것 가지고 주님을 사랑하는 것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주의 모든 것이 다 당신의 것인데 다만 당신을 인정하느냐 안 하느냐 믿느냐 안 믿느냐 당신을 영접하느냐 안 하느냐 사랑을 하 느냐 안 하느냐 그것을 이제 표현해서 확실히 결정 지우기 위해서 우리에 게 현실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현실은 참 오묘한 현실입니다. 현실보다 우리에게는 귀한 것이 없습니다. 이 온 우주가 넓지만 내게는 내 현실 그것이 제일 내게는 귀중합니다. 내 현실밖에 억억 만금이 있어도 내게는 상관없어. 내 현실 그 것이 제일 보배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현실을 이 우주에서는 내게 제일 보 배가 현실입니다. 그러면 이 보배로운 현실을 어디다가 사용할 것인가 세상에 어떤 사람은 돈이나 권세나 지위나 자기 행락이나 자기 취미나 자기 욕심이나 그런데에 다 사용을 하지만 그것은 어리석고 미련한 처녀입니다. 요 현실은 다만 하나님에게 배워서 하나님의 지식으로 실력을 만들고 하나님의 주시는 능력을 받아 실력을 만들어서 하나님이 주시는 그 지능으로 실력을 만들어서 길러 서 어떤 밤중이라도 어떤 박해, 어떤 환난, 어떻게 진리를 억압하고 삐뚤어 지게 한다 해도 삐뚤어지지 안하고 그대로 꽉 통과해서 세상을발아래 발끈 밟고 온 세상을 자기의 것으로 삼아서 하늘나라 것과 땅의 것이 다 자기에 게 영원토록 통치를 받을 수 있는 이런 사람으로 통과할 수 있는 그 능력이 현실 준비에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생명의 면류관을 얻는다' 그 말은 면류관이라 말은 승리를 가리켜서 면류관이라 이 랍니다.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생명이 승리하는 승리를 얻을 것임이라. 생명이 승리하는 승리라 말은 뭘 말씀했습니까 생명은 하나님과 자기와 연결된 그 연결이 승리하는 승리를 가지게 될 것이다 하는 것입니다.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13절에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 니' 사람이 그 어려움을 당할 때에 어려움을 당할 때에 하나님이 나를 어려 움 준다 그렇게 생각하지 안해야 됩니다. 제가 망해 놓고 하나님이 나를 망 친다, 제가 실패케 해 놓고서 하나님이 나를 실패케 했다, 제가 복은 차 던 지고 화는 제가 취해 놓고 하나님이 나에게 이렇게 한다 이렇게 원망 불평 망령을 하기 쉬운데 그렇게 하지 말라 했습니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제가 고통을 당할 때에 하나님 께서 나를 고통을 주신다 그렇게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 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 하시느니라' 하나님은 이렇게 사람을 괴롭히는 하나님이 아니라 그 말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괴롭히는 하나님이 아니라. 요런 거는 단단히 잡으십시오. 하나님은 사람을 괴롭히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을 평안하게만 해 주시는 하나님이 지 괴롭게 하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요것도 믿기가 참 어려운 말씀인데 요 말씀을 우리가 단단히 확신을 가져야 됩니다.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 하시느니라.' 이 말씀도 믿기가 어렵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괴롭히지도 안 하는 하나님이시요 어떤 것에게 괴로움을 당하지도 안하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괴로움을 당하지도 안하는 하나님이시요 또 괴로움을 사람들 에게 주지도 아니하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러 가지 어려움 당 하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어려움 주신다 이렇게 생각한다 그겁니다. 다니엘이 그렇게 사자 구덩이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어려움을 닥 쳤는데 하나님께서 그 어려움을 당하게 했습니다. 그 어려움은 하나님이 사 자 구덩이를, 그렇게 사자 구덩이 넣기로 결의한 것이나 다른데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그런 모든 전국이 결의한 그것이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이 만들었는데, 그러면 하나님이 만들었으면 하나님께서 사자구 덩이에 다니엘을 들어가도록 했으니까 어떻게 하나님이 다니엘에게 그 어려 움을 주지 안했다고 말하는가 괴로움을 주지 안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네 어려움을 주지 안했습니다. 괴로움을 주지 안했습니다. 이것을 단단히 잘 깨달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을 어려움을 주신 것이 아니고 어려움을 벗어 나도록 하셨고 또 괴롭게 한 것이 아니고 다니엘을 괴롭게 하는 모든 것들을 다 없 애기 위해서 그 방편을 하나님께서 쓰신 것입니다. 이러니까, 언뜩 보면 사자 구덩이에 묶어다가 집어 던지니까 다니엘은 참 어려움을 당했다 하지만 그 사자 구덩이 들어가도 죽지 안하니까 뭐 어려움 이 될게 뭐 있습니까 또 나중에는 그 원수가 다 결박당해서 없어졌으니까 다니엘에게는 평안이 됐고. 아주 평생 싸워야 될 원수들이 다 없어져 버렸 고. 앞으로 원수 없는 세상에 살게 되니까 평안을 줬지 괴로움 준 것이 아 니라 그 말입니다. 그 다음에 그게 해석이 나옵니다. 14절에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사람이 왜 어려움을 당하느냐 어려움 당 하는 것은 각 사람이 자기 욕심 때문에 어려움 당한다 그 말입니다. 욕심 때문에 어려움을 당한다. 다니엘도 살고 싶은 욕심이 있었으면 다니엘도 어 려움을 당하지 안 당할 리가 없습니다. 다니엘이 이 욕심이 없었기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지 안했습니다. 그러면 다니엘은 죽고 싶은 사람이냐 그것 아니오. 다니엘은 '주여 살아도 좋고 죽어도 좋고 사는 것이 좋으면 주님이 살게 해 주실 것이고 죽는 것이 좋으면 죽게 해 주실 것이고. 이러니까, 안 죽는 사람이 누가 있나 이러니까 주님께서 살고 죽는 것은 주님이 내게 가장 유익하도록 적절한 시기를 그렇게 전지한 지혜로 선택해 가지고서 적절한 시기를 정했기 때문에 지금 죽는 것이 하나님이 내게 좋으 면 지금 죽게 할 것이고 또 사자 구덩이 암만 열 번 들어가도 지금 안 죽는 것이 내게 유익하면 안 죽게 해 주시고 당신이 내 생사를 제일복되게 주관 하신다.'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절대 믿고 자기 사적으로 '이래야 되겠다 저래야 되겠다. 이것 원한다 저것 원한다' 그 육체의 소욕인 사욕이라는 것 이 없어졌기 때문에 다니엘에게는 아무 염려가 없었습니다. 아무 고통이 없 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고통 당하는 것은 다 제 욕심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제 주 관 때문에 고통을 당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은 무엇 때문에 고통을 당 하는고 하니 2가지 때문에 고통을 당합니다. 자기가 이것은 없어지지 안해 야 되겠는데 하는데 그게 없어질 때에, 없어지지 안해야 되겠다 없어 지지 안해야 되겠는데 하는 자기 그 욕심과 없어지는 것과 같지 안하고, 자기 욕 심은 없어지지 안해야 되겠다 하는데 그게 없어지니까 고통이오. 또 이것은 꼭 이것은 성공하고 이것은 달성해야 되겠다 달성해야 되겠다 하는데 달성 이 안 되니까 고통이고 달성되도록 하려 해 가지고 고통이고 염려고 그렇습니다. 그것을 하나님께 다 맡겨 놨습니다. 있던 것이 없어지는 것이 전지하신 사랑의 주님이 보실 때에 없어지는 것이 좋으면 없어지게 하실 것이고, 또 없는 그것이 새로 생겨져야 좋으면 생겨 지게 하실 것이고 전지 전능의 주권자. 주재자, 개별 섭리자 그분을 든든히 믿고 그분의 능력을 믿고 그분의 사랑을 믿고 그분에게 다 맡겨 놓고 나는 그저 모든 것 다 맡겨놨으니까 당신이 뭐 죽는 것이나 사는 것이나, 내게 있는 것이 없어지는 것이나, 없는 것이 있게 되는 것이나 많은 것이 적게 되는 것이나 적은 것이 많게 되는 것이나 그 모든 것을 당신이 주관하셔서 제일 좋게 해 주실 것을 내가 믿습니다. 이러니까 나는 다만 할 것은 당신 이 시키시는 대로 할 것 하나뿐입니다. 이것만 딱 단정을 짓고 그래 있는 사람에게는 시험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이 그렇게 하나님께 다 맡겨 놓으면 너무 허무하지 않는가 네, 사람의 생각이 하나님이 없어져야 된다 하는데 있어지면 그것은 다 사 망되는 것입니다. 그게 나를 사망케 하는 것입니다. 또 이것은 없어야 하나님이 없어져야 되는데 하시는 것을 나는 꼭 없어지지 안해야 됩니다. 하면 그 없어지지 안하는 그것은 자기를 사망케 하는 것뿐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럴 때에는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하면 없어질 때 없어지고, 있어질 때에 있어지고, 또 적어질 때에 적어지고 많아질 때에 많아지고. 또 그것이 이겨야 될 때이기고, 질 때 지고 그렇게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만 하면 없어지고 있어지고 커지고 작아지고. 또 위에 올라가고 밑에 내려오고 하는 그것을 하나님이 조절해서 시키시는 대로만 하면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조절해 가지고 모든 것을 해 주시는데, 하나님을 어겨서 제 생각대로 하면 그것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이루어지는데 하나님은 하나님 시키시는 대 로하면 없어질 터인데 하나님이 시키시는 것을 어겨서 인간 생각대로 하니 까 없어지지 안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했으면 없어질 터인데 보라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하지 안하고 우리 사람 생각대로 하니까 없어지지 안하지 안했느냐 이것은 다행이다 이것은 성공이다 좋다' 그렇게 생각하지만 그 자기 생각대 로 해서 없어지지 안하는 그것은 결과적으로 자기를 죽이고 망치는 것 그 외에는 아무 것도 결과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가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 가르치시는 그 지식을 받아 들여 예, 이것이 옳습니다. 네 이제는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 지식을 받아들이고 그대로 행동하면 없어져 좋을 때는 없어지고, 있어져 좋을 때는 있어지고 작아져 좋아질 때에는 작아지고 커져 좋을 때는 커지고 올라가 좋을 때는 올라가고, 내려가 좋을 때는 내려가고, 살아 좋을 때는 살고, 죽어 좋을 때는 죽고. 이러니까 이것을 당신이 책임지시고 모든 것을 내게 맡기라 하셨 으니까 맡기는 이 사람이 의인이요, 이 사람이 하나님의 전지 전능의 그 사랑을 가지고 우리에게 후대해 주시는 그 후대를 다 받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지극히 큰 욕망을 가지시고 우리를 이렇게 저렇게 참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통치할 만한 이런 보배로운 사람으로 성장시키려고 하시는 그 성장을 다 받을 수 있지만, 우리가 당신 시키시는 대로하지 안하는 데에 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사랑할 수도 없고 나는 사랑을 받지 도 못하고 하나님이 근심하고 걱정하고 저 안 된다 하는 것 사망한 자꾸 끌 어넣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이 인도를 버리고 이 세상 자기 인간대로 인간들의 생각대로 이대로 산 사람 쳐놓고 지옥을 면한 사람은 역사에 온 사람이 한없 이 있지만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 사람들이 전부 다 지옥 가 있습니다. 또 택한자라고 하면 그 사람들이 기본구원으로 영은 하늘나라 가있지만 기능 은 전부 지옥불에 다 태워 버렸고 자기 소유도 다 태워 버리고 하나도 하늘 나라에 가지고 가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래서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자기 욕심에 끌려 가지고서 미혹에 들었다. 자기 욕심에 끌려 가지고서 미 혹을 받아 그렇다, 잘못 생각해 그렇다 그 말이오. 자기 욕심에 끌려서 미 혹 받았다. 그 어떤 사람은 자기의 사업이 이 사람은 이 사업이 무너져야 그 사람이 살고 평안하고 복되겠는데 사람은 일방적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사업을 기어코라도 살려 볼라고 애를 씁니다. 이러니까, 자 하나님은 무너지는 것이 좋다 하는데 그 사람은 자꾸 그것이 건설되는 것이 좋다고 이러니까 하나님이 하지 안하는 일을 하나님 말씀을 어겨 가면서 해서 그것을 건설하려 하니까 하나님께 거슬림이 고통이오. 또 하나님 말씀대로 하면 그 사업이 무너질 터이니까 또 그래 고통이오. 이러 니까 이게 다 고통이 자기 욕심에 끌려서 꾀임을 받아 가지고 자기 욕심에 미혹을 받아 가지고 그와 같이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사업이 무너져야 좋을 때에는 무너져야 좋을 터인데 무너 져야 좋을 때에 그 무너지게 하는 법칙이 무엇입니까 내가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 그 사업에 대해서 모든 처사를 하니까 그 사업이 그만 무너졌습니다. 무너졌으면 아,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함으로 무너졌으니 이 무너지는 것이 좋기 때문에 하나님이 당신에게 순종하는 이 순종을 귀하게 여겨 서 이거 무너뜨리셨다. 만일 그때에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서 이것이 무너 질 것을 무너지지 안하고 있었으면 이것이 나를 어떻게 사망시킬 것인가 이래서 감사해야 될 터인데 이 참 아주 맥맥한 어두운 사람들이 되어 놓으 니까 자꾸 원망 오고 불평 오고 이래서 그것 때문에 고통입니다. 하나님은 무너지는 것이 좋다 하는데 저는 일어서야 된다 하고 하나님은 일어서 야 된다 하는데 저는. 무너지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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