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을 버립시다. (약1:12-18)
본문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시험과 마귀로부터 오는 시험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두 시험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시험은 그 동기가 선합니다.그리고 연단해서 보다더 큰 축복을 주시려는 목적에서 주어집니다.그러나 마귀의 시험은 사람을 넘어뜨리고 파멸시키려는 악한 동기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결과 역시 악하게 됩니다.하나님의 시험을 연단이라고 본다면 마귀의 시험은 유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린 본문을 통하여 몇 가지 교훈을 얻게 됩니다.
1.하나님의 시험의 경우 참고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본문 12절을 보면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고 했습니다. 유혹은 받을수록 위태롭고 거기에 빠질 가능성이 큽니다만,연단은 받을수록 강해지고 튼튼해집니다. 연단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인내하는 것입니다.그것은 마치 운동선수가 훈련을 견디지 못하여 포기해 버리면 능숙한 선수가 못되는 것과 같습니다. 연단은 그 사람의 인격과 신앙을 성숙하게 만들어 줍니다. 언제 연단이 끝납니까 그것은 연단하시는 하나님께서 이만하면 됐다고 인정하실 때 끝이 납니다. 본문 12절은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라고 했습니다. 프로 축구의 경우를 보면 선수가 있고 트레이너(trainer)가 있고 코치가 있고 감독이 있고 구단주(球團主)가 있습니다. 선수들이 두어 시간 연습을 하다가 힘들다면서 오늘은 연습을 그만하자고 한다면 그 구단은 희망이 없습니다. 그리고 훈련의 계속 여부는 선수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훈련시키는 사람 쪽에서 결정하는 것입니다.다시 말해 그가 이만하면 됐다고 인정할 때 연습이 끝나는 것입니다.그리고 그 연습은 시합 전까지 그리고 시합 후에도 쉬면 안됩니다. 신앙 생활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연단의 끝마침은 우리를 연단하시는 하나님께서 결정하십니다.본문이 말하는 대로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연단이 끝나는 것입니다.
며친 전 반월에 있는 생산 공장에 심방을 갔었습니다.공장 사원들이 조를 짜서 24시간 기계를 가동하고 있었습니다.이유를 물었더니,기계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거나 생산 과정에 어떤 문제가 발생해서 가동이 중단되면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운동장에서 공을 몰고 달리는 사람은 슛이 될 때까지 달려야 합니다.달리다가 그만두면 의미가 없습니다. 연단을 통하여 그 믿음의 적합성과 확실성을 인정받을 때 연단이 그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연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연단의 결과입니다. 12하반절을 보면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고 했습니다. 연단을 참고 견디면 생명의 면류관이 상으로 주어집니다.상이란 주는 편이나 받는 편이나 모두가 기분 좋은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받는 연단은 막연한 연단이 아닙니다.그 연단을 통해 얻는 것들이 있습니다.첫째는,내가 하나님의 소유이며 자녀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히브리서 12장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연단과 징계를 받는다고 했습니다.둘째는,연단을 통해 내 믿음이 성숙하게 됩니다.셋째는,연단 후에 생명의 면류관을 얻게 됩니다.
2.하나님은 유혹자가 아닙니다. 13절을 보면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악의 유혹에 빠지거나 사탄의 시험에 넘어가시지 않습니다. 광야에서 주님이 40일 금식 기도를 하신 후에 사탄이 찾아와 주님을 시험했습니다. 그때 주님은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고 하심으로 시험을 일축하셨습니다.이유는 하나님은 선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어떤 시험이나 유혹에 빠져 일을 저지르고 고통을 받게 된 후 그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그리고 “주님 왜 저를 시험하십니까”라고 항변하는 것도 옳지 못합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연단하시지만 마귀는 유혹합니다.그리고 연단은 그 사람을 존귀하게 만들지만 유혹은 그 사람을 파멸시킵니다. 연단의 동기는 사랑이고 유혹의 동기는 악입니다.
그러므로 유혹에 빠지는 것보다는 연단의 대열에 끼는 것이 천만배 귀한 일입니다. 잠언 19:3을 보면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자기가 길을 잘못들거나 일을 그르쳐 놓은 후 하나님을 원망하는 사람을 미련한 사람이라고 말한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3.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14-15절을 보면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두 구절 속에서 욕심의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저는 얼마전 지리산 밑에 있는 온당 충신교회 입당식에 참석하기 위해 항공편을 이용,여수로 내려가 다시 여수에서 순천을 거쳐 온당리로 갔었습니다.여수와 순천간의 국도는 마치 고속 도로처럼 넓게 뚫려 있었고 통행 차량들이 고속으로 질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수를 떠나 30분쯤 왔을 때 도로변에 교통사고로 뒤집혀 박살이 난 승용차 한 대가 방치되어 있었습니다.너무나 끔찍한 사고였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안 일이었습니다만,그것은 본보기로 일부러 방치해둔 망가진 자동차였습니다.과속으로 인한 사고의 비극을 경고하는 전시물이었던 것입니다. 과식,과음은 위장병의 원인이 됩니다. 과속은 사고의 원인이 됩니다. 과욕은 범죄의 원인이 됩니다. 과소비는 빈곤의 원인이 됩니다. 과신은 불신의 원인이 됩니다. 과로는 만병의 원인이 됩니다. 어떤 의학 연구가는 사람이 한편생을 사는 동안 100번 정도 암에 걸린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체내에서 인터페론이 생성되어 항암 작용을 해주기 때문에 암을 이겨 내고 건강을 유지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거짓말을 일삼고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 찬 짜증스런 삶을 살면서 절망하고 욕심을 버리지 않게 되면 저항력이 감소되어 암에 걸린다는 것입니다. 본문은,욕심은 마음속에서 일어나며 그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는다고 했습니다. 우린 여기서 욕심과 죄와 사망의 관계가 생리적 현상으로 설명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욕심은 마치 임산부처럼 죄를 10개월간 품고 있습니다.그리고 10개월이 지나면 사망이라는 자식을 낳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욕심 때문에 금방 죽지는 않습니다.죄는 10개월이라는 세월을 욕심의 복중에 잠복하고 있다가 죽음이라는 사산아를 낳게 되는 것입니다. 인도네시아 정글 속에는 사람이나 산돼지를 잡아먹는 뱀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 뱀은 힘이 얼마나 센지 일단 뱀에게 휘감기게 되면 뼈가 으스러지고 통째로 삼켜지게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단 산돼지나 다른 것을 통째로 삼키고 나면 그것을 다 소화시킬 때까지는 꼼짝도 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그때 그 뱀을 잡아다가 가죽을 벗겨서 핸드백도 만들고 허리띠고 만든다는 것입니다. 결국 욕심 때문에 죽는다는 애기인 것입니다. 그리고 영국 격언 가운데는 “욕심을 제어하라.만일 네가 욕심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욕심이 너를 제어할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욕심이란 마음속의 불만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을 말합니다.그러니까 욕심을 제어하려면 우선 마음속에 있는 불만족을 없애야 합니다.불만족을 없애려면 만족한 것으로 채우면 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어떻게 해야 욕심을 제거할 수 있습니까
첫째,시편 119:36을 보면 “내 마음을 주의 증거로 향하게 하시고 탐욕으로 향치 말게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그 뜻은 내 마음이 주의 증거의 말씀을 사모하면 탐욕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말씀으로 내 마음이 가득 채워져 있으면 세상 헛된 욕심이 물러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고린도전서 5:11을 보면 “음행하거나 탐람하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후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토색하거든(그와) 사귀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그 뜻은 욕심 사나운 사람과 사귀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욕심에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허영에 들뜬 사람이나 사치스런 사람이나 과욕에 정신 팔린 사람과 사귀다 보면 자신도 오염되기 때문에 그런 사람과는 사귀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15:33에서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라고 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유혹자나 미혹하는 친구를 멀리해야 합니다. 요즈음 사회적으로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 마약의 경우,본인 스스로 마약을 복용하거나 주사를 자청해서 맞는 경우는 없습니다.그 누군가의 강요와 달콤한 유혹에 빠져 시작했다가 중독자가 되는 것입니다. 모든 유혹이나 죄악이 그 누군가의 꼬임에서부터 시작됩니다.하와의 타락 역시 뱀의 꼬임에서 출발했습니다. 내 주변에 나를 파멸로 이끌어 가려는 악한 이웃이나 친구가 있으면 과감하게 노끈을 자르듯 잘라 버립시다.
동가식 서가숙(東家食 西家宿)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미혼 처녀에게 두 군데서 혼담이 들어왔습니다.동쪽에 사는 남자는 집안이 좋고 돈은 많지만 얼굴이 못생겼고,서쪽에 사는 남자는 집안은 가난하지만 얼굴이 잘생겼습니다. 아버지가 딸에게 “네가 동쪽으로 시집 가고 싶으면 왼편 손을 들고 서쪽으로 시집 가고 싶으면 오른손을 들어라”고 했더니 두 손을 다 들었습니다.얘기인즉 밥은 동쪽에 가서 먹고 잠은 서쪽에 가서 자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여기서 “동가식 서가숙”이라는 말이 나왔다고 합니다. 현실에서의 선택 때문에 미래를 포기하지 맙시다. 눈앞의 욕심 때문에 영원한 생명을 버리지 맙시다. 본문 17절은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나니”라고 했습니다. 욕심은 마음속에서 나오고,좋은 선물은 하나님께서 주십니다.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주시는 선물을 내 마음속에 가득 채우면,내 삶은 만족하고 평안하고 감사가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요한복음 7:38에서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은혜,축복,사랑,충만이 강물처럼 흘러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욕심을 버리고 은혜로 그 공간을 채우시기 바랍니다.
1.하나님의 시험의 경우 참고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본문 12절을 보면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고 했습니다. 유혹은 받을수록 위태롭고 거기에 빠질 가능성이 큽니다만,연단은 받을수록 강해지고 튼튼해집니다. 연단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인내하는 것입니다.그것은 마치 운동선수가 훈련을 견디지 못하여 포기해 버리면 능숙한 선수가 못되는 것과 같습니다. 연단은 그 사람의 인격과 신앙을 성숙하게 만들어 줍니다. 언제 연단이 끝납니까 그것은 연단하시는 하나님께서 이만하면 됐다고 인정하실 때 끝이 납니다. 본문 12절은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라고 했습니다. 프로 축구의 경우를 보면 선수가 있고 트레이너(trainer)가 있고 코치가 있고 감독이 있고 구단주(球團主)가 있습니다. 선수들이 두어 시간 연습을 하다가 힘들다면서 오늘은 연습을 그만하자고 한다면 그 구단은 희망이 없습니다. 그리고 훈련의 계속 여부는 선수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훈련시키는 사람 쪽에서 결정하는 것입니다.다시 말해 그가 이만하면 됐다고 인정할 때 연습이 끝나는 것입니다.그리고 그 연습은 시합 전까지 그리고 시합 후에도 쉬면 안됩니다. 신앙 생활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연단의 끝마침은 우리를 연단하시는 하나님께서 결정하십니다.본문이 말하는 대로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연단이 끝나는 것입니다.
며친 전 반월에 있는 생산 공장에 심방을 갔었습니다.공장 사원들이 조를 짜서 24시간 기계를 가동하고 있었습니다.이유를 물었더니,기계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거나 생산 과정에 어떤 문제가 발생해서 가동이 중단되면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운동장에서 공을 몰고 달리는 사람은 슛이 될 때까지 달려야 합니다.달리다가 그만두면 의미가 없습니다. 연단을 통하여 그 믿음의 적합성과 확실성을 인정받을 때 연단이 그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연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연단의 결과입니다. 12하반절을 보면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고 했습니다. 연단을 참고 견디면 생명의 면류관이 상으로 주어집니다.상이란 주는 편이나 받는 편이나 모두가 기분 좋은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받는 연단은 막연한 연단이 아닙니다.그 연단을 통해 얻는 것들이 있습니다.첫째는,내가 하나님의 소유이며 자녀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히브리서 12장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연단과 징계를 받는다고 했습니다.둘째는,연단을 통해 내 믿음이 성숙하게 됩니다.셋째는,연단 후에 생명의 면류관을 얻게 됩니다.
2.하나님은 유혹자가 아닙니다. 13절을 보면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악의 유혹에 빠지거나 사탄의 시험에 넘어가시지 않습니다. 광야에서 주님이 40일 금식 기도를 하신 후에 사탄이 찾아와 주님을 시험했습니다. 그때 주님은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고 하심으로 시험을 일축하셨습니다.이유는 하나님은 선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어떤 시험이나 유혹에 빠져 일을 저지르고 고통을 받게 된 후 그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그리고 “주님 왜 저를 시험하십니까”라고 항변하는 것도 옳지 못합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연단하시지만 마귀는 유혹합니다.그리고 연단은 그 사람을 존귀하게 만들지만 유혹은 그 사람을 파멸시킵니다. 연단의 동기는 사랑이고 유혹의 동기는 악입니다.
그러므로 유혹에 빠지는 것보다는 연단의 대열에 끼는 것이 천만배 귀한 일입니다. 잠언 19:3을 보면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자기가 길을 잘못들거나 일을 그르쳐 놓은 후 하나님을 원망하는 사람을 미련한 사람이라고 말한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3.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14-15절을 보면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두 구절 속에서 욕심의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저는 얼마전 지리산 밑에 있는 온당 충신교회 입당식에 참석하기 위해 항공편을 이용,여수로 내려가 다시 여수에서 순천을 거쳐 온당리로 갔었습니다.여수와 순천간의 국도는 마치 고속 도로처럼 넓게 뚫려 있었고 통행 차량들이 고속으로 질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수를 떠나 30분쯤 왔을 때 도로변에 교통사고로 뒤집혀 박살이 난 승용차 한 대가 방치되어 있었습니다.너무나 끔찍한 사고였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안 일이었습니다만,그것은 본보기로 일부러 방치해둔 망가진 자동차였습니다.과속으로 인한 사고의 비극을 경고하는 전시물이었던 것입니다. 과식,과음은 위장병의 원인이 됩니다. 과속은 사고의 원인이 됩니다. 과욕은 범죄의 원인이 됩니다. 과소비는 빈곤의 원인이 됩니다. 과신은 불신의 원인이 됩니다. 과로는 만병의 원인이 됩니다. 어떤 의학 연구가는 사람이 한편생을 사는 동안 100번 정도 암에 걸린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체내에서 인터페론이 생성되어 항암 작용을 해주기 때문에 암을 이겨 내고 건강을 유지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거짓말을 일삼고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 찬 짜증스런 삶을 살면서 절망하고 욕심을 버리지 않게 되면 저항력이 감소되어 암에 걸린다는 것입니다. 본문은,욕심은 마음속에서 일어나며 그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는다고 했습니다. 우린 여기서 욕심과 죄와 사망의 관계가 생리적 현상으로 설명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욕심은 마치 임산부처럼 죄를 10개월간 품고 있습니다.그리고 10개월이 지나면 사망이라는 자식을 낳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욕심 때문에 금방 죽지는 않습니다.죄는 10개월이라는 세월을 욕심의 복중에 잠복하고 있다가 죽음이라는 사산아를 낳게 되는 것입니다. 인도네시아 정글 속에는 사람이나 산돼지를 잡아먹는 뱀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 뱀은 힘이 얼마나 센지 일단 뱀에게 휘감기게 되면 뼈가 으스러지고 통째로 삼켜지게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단 산돼지나 다른 것을 통째로 삼키고 나면 그것을 다 소화시킬 때까지는 꼼짝도 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그때 그 뱀을 잡아다가 가죽을 벗겨서 핸드백도 만들고 허리띠고 만든다는 것입니다. 결국 욕심 때문에 죽는다는 애기인 것입니다. 그리고 영국 격언 가운데는 “욕심을 제어하라.만일 네가 욕심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욕심이 너를 제어할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욕심이란 마음속의 불만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을 말합니다.그러니까 욕심을 제어하려면 우선 마음속에 있는 불만족을 없애야 합니다.불만족을 없애려면 만족한 것으로 채우면 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어떻게 해야 욕심을 제거할 수 있습니까
첫째,시편 119:36을 보면 “내 마음을 주의 증거로 향하게 하시고 탐욕으로 향치 말게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그 뜻은 내 마음이 주의 증거의 말씀을 사모하면 탐욕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말씀으로 내 마음이 가득 채워져 있으면 세상 헛된 욕심이 물러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고린도전서 5:11을 보면 “음행하거나 탐람하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후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토색하거든(그와) 사귀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그 뜻은 욕심 사나운 사람과 사귀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욕심에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허영에 들뜬 사람이나 사치스런 사람이나 과욕에 정신 팔린 사람과 사귀다 보면 자신도 오염되기 때문에 그런 사람과는 사귀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15:33에서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라고 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유혹자나 미혹하는 친구를 멀리해야 합니다. 요즈음 사회적으로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 마약의 경우,본인 스스로 마약을 복용하거나 주사를 자청해서 맞는 경우는 없습니다.그 누군가의 강요와 달콤한 유혹에 빠져 시작했다가 중독자가 되는 것입니다. 모든 유혹이나 죄악이 그 누군가의 꼬임에서부터 시작됩니다.하와의 타락 역시 뱀의 꼬임에서 출발했습니다. 내 주변에 나를 파멸로 이끌어 가려는 악한 이웃이나 친구가 있으면 과감하게 노끈을 자르듯 잘라 버립시다.
동가식 서가숙(東家食 西家宿)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미혼 처녀에게 두 군데서 혼담이 들어왔습니다.동쪽에 사는 남자는 집안이 좋고 돈은 많지만 얼굴이 못생겼고,서쪽에 사는 남자는 집안은 가난하지만 얼굴이 잘생겼습니다. 아버지가 딸에게 “네가 동쪽으로 시집 가고 싶으면 왼편 손을 들고 서쪽으로 시집 가고 싶으면 오른손을 들어라”고 했더니 두 손을 다 들었습니다.얘기인즉 밥은 동쪽에 가서 먹고 잠은 서쪽에 가서 자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여기서 “동가식 서가숙”이라는 말이 나왔다고 합니다. 현실에서의 선택 때문에 미래를 포기하지 맙시다. 눈앞의 욕심 때문에 영원한 생명을 버리지 맙시다. 본문 17절은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나니”라고 했습니다. 욕심은 마음속에서 나오고,좋은 선물은 하나님께서 주십니다.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주시는 선물을 내 마음속에 가득 채우면,내 삶은 만족하고 평안하고 감사가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요한복음 7:38에서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은혜,축복,사랑,충만이 강물처럼 흘러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욕심을 버리고 은혜로 그 공간을 채우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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