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에서 승리하는 길 (약1:2-12)
본문
1절은 인사말 입니다. 야고보는 1절에서 자신을 소개 할 때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라고 이야기 하지 않고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이라고 소개 합니다. 대개의 신학자들이 이야기 하기를 야고보는 예수님의 젖동생으로 인정 합니다.
그런데 야고보는 자신을 “종”으로 소개 합니다. 여기서 종은 헬라어 둘로스에 해당 됩니다. 둘로스 종은 철저하게 자유가 없고 어떤 한 인격에 매여서 충성과 순종을 드릴수 밖에 없는 상태를 의미 합니다. 그러기에 야고보의 자기 소개는 섬김의 사역에 자신을 헌신했습을 나타내는 신앙고백적 표현 입니다. 2절 이하에보면 흩어져있는 12지파가 말할 수 없는 박해와 고난에 직면해 있읍을 봅니다. 이런 위기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여기에 몇가지 중요한 단어들이 나옵니다. 여기라, 앎이라, 이루라, 구하라. 인데 이 4가지 단어는 그리스도인의 영적성숙과, 풍성한 삶, 승리의 삶을 위해 반드시 기억해야 할 단어들 입니다.
'1' 여기라 2절에보면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즉 시험이 오거든 피하지 말고 기쁨으로 환영하라는 것 입니다. 그리스도인이건 불신자건간에 예외 없이 시련과 고난은 있습니다. 요16:33절에보면 “세상에서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환난이 있음을 주님은 아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환난을 당하면 담대히 환난을 직면해서 그 환난속에서 승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환난은 피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싸워 이겨야 합니다. 아니 환난 가운데 담대하면 예수님같이 이기에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하신 것 입니다. 야고보서에서 계속 볼수 있는 도식이 하나 있는데 환난은 우리를 교육시키고, 훈련시키고, 연단하여 우리로 하여금 예수그리스도의 인격 즉 주니의 형상을 닮은 모습이 되게 한다는 것 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완전에 이르러야 하는데 이작업은 평생을 두고 이루어 나가는 신앙의 작품 입니다.
바울은 신앙의 성장에 장해가되는 과거의 악몽을 생각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뒤에 있는 것을 잊어 버리고 ”라고 했는데 이것은 과거를 망각이 아닌 “과거의 사건이 현재에 영향을 주지 않게 한다”는 것입니다. 동이 서에서 먼것 같이 과거의 죄가 살아졌음을 바울은 믿었습니다. 다메색에서 예수님을 만나기 전만 해도 예수믿는 자들을 죽이는 살인마 였습니다. 이것을 기억하면 복음을 담대히 증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뒤에 것을 생각지 않고 미래를 향해 나아갔습니다. 바울은 부르심의 상급을 위하여 한평생 달려와서 인생의 노년기에 이렇게 고백 합니다. “ 내 겉사람은 날로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와진다”고 말입니다. 신앙은 환난가운데서도 인내함으로 승리의 삶을 이루어야 합니다.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여기서 여기라는 말의 본래의 뜻은 “평가하라”는 말입니다. 욥은 큰환난을 당했으나 그 환난을 이렇게 평가 했습니다. “나의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욥23:10) 욥은 친구들의 철학적 궤변 앞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들은 몰라 하나님이 나를 단련 하신후에 나는 정금으로 될 것이다. 정금은 단련하고 또 단련해서 만드는 것 입니다. 마찬가지로 야고보의 권면과 욥의 고백은 단련된 믿음에서 참 신앙이 나옴을 이야기 합니다.
'2' 앎이라 3절에보면 “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의 시련은 반드시 인내를 가져 옵니다. 하나님도 인생을 시험고, 사탄도 인생을 시험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은 교육과 훈련을 통해서 더 나은 인격의 그리스고인이 되게 하는데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시험은 인내의 아름다운 덕을 가져옵니다. 롬5:3절에보면 “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라고 했습니다. 인내는 성령님의 열매이며, 인내는 소극적으로 참고만 있는 것을 의미함이 아니고 환난을 적극적으로 대쳐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 입니다.
'3' 이루라 4절에보면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아라” 신앙은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있는 생활을 통해 이루어지지 어느 한쪽의 일방적이지는 않습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는 말은 성령님의 역사와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는 말 입니다. 빌2:12절에보면 “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구원은 칭의적 구원이 아니고 성화의 차원에서의 구원를 의미 합니다.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빌2:13절에보면 “ 너희 안에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 이시니”라고 했습니다. 즉 구원을 이루는데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적신앙이 함께 조화를 이룰 때 되어 진다는 뜻 입니다. 그러면 야고보 선생은 본문을 통해서 무엇을 이루라는 뜻 입니까
1) 온전하고 완전하다는 뜻이 아니고 성숙을 의미 합니다. 즉 인내를 통해서 신앙의 성숙을 이루라는 것 입니다.
2) 구비하여 이 단어는 히브리 인들이 하나님 앞에 제물을 드릴 때 제물이 상처가 없고 흠이 없음을 의미하는 말 입니다. 즉 인내의 시련을 통과하여 인내를 구비하라, 인내의 열매를 맺으라는 것 입니다.
3)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인격 부족함이 없다는 말은 하나님의 표준에 도달할 수 있는 인격을 말합니다. 주님이 죄인을 위해 행하시는 역사는 구원의 사역이요. 주님이 우리안에서 우리와 함께 역사하시는 역사는 성화의 역사요. 주님이 우리를 통해 이루어 내시는 사건이 봉사 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영광 받으시기전에 우리를 훈련 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아들을 25년 훈련후에 주셨고 요셉을 애굽의 통치자로 쓰시기위하여 13년 시련속에서 훈련 시키셨고, 모세는 40년 쓰임받기 위하여 80년동안 시련과 역경을 통해서 훈련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조금도 부족함이 없을 때 까지 연단 하시고 연단된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 십니다. '
4' 구하라 5절에보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 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 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두가지를 강조 합니다.
1) 무엇을 구해야 되는가 대개의 사람들은 시련이오면 시련을 물리쳐 달라고 기도 합니다. 그러나 야고보 선생은 지혜를 구하라고 햤습니다. 어떤 언어 학자가 지식과 지혜를 이렇게 구분 했습니다. 지식은 분석 이지만 지혜는 종합 입니다. 즉 지식은 분석아고 쪼개서 알아는 것이지만 지혜는 종합해서 삶가운데 적용하는 것 입니다. 현대 그리스도인의 병적인 요소는 지식은 많은데 적용하는 지혜가 부족 합니다. 후히주신다는 말은 풍족히가 이니고 주저하지않고 주신다는 뜻입니다. 꾸짖지 아니하신다는 뜻은 귀찮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2) 어떻게 구해야 될 것인가 6절에보면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홤이 없는 자 로다”라고 했습니다. 즉 주실 줄 믿고 구해야 합니다.
결론:1:12절을 읽어라.
II. 유혹에서 승리하는 길
본문:약1:13-18절 지난 시간에는 시련, 시험이 오면 기쁘게 여기라는 것에 대해서 말씀 드렸습니다.
왜냐하면 시험을 이기면 인내의 연단을 통하여 정금보다귀한 심령이 되어지며 하나님의 약속한 생명의 멸류관을 얻기 때문 입니다. 오늘은 시험을 이기는 길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시험은 시련으로 번역된 곳도 있고 유혹으로 본역된 곳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 시험이라는 단어가 유혹을 의미 하느냐 시련을 의미 하느냐 하는 것은 문맥을 읽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시련은 일반적으로 밖으로 부터 주워지는 것 이고 이것은 테스트(test)라 이해 할 수 있으며 시련의 궁극적인 목적은 교육적인 것 입니다. 즉 우리의 삶에 중요한 수업을 시키고자 하는 하나님의 의도가 있습니다. 유혹은 우리 안에서 부터 일어나는 것 입니다. 이것은 사탄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이 시험은 파괴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혹의 차원에서 본 시험의 문제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오스카 와일드 라는 문학가는 “나는 무엇에든지 다 저항 할 수 있다. 단 유혹은 빼놓고”라는 말을 통해서 유혹을 물리치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 인가를 보여 보여주고 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부탁 하시기를 “ 시험에 들지않게 깨어있어 기도하라”고(마26:41절)에서 말씀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 무릇 섰다 하는 가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시련과 유혹이 이원론적으로 확실히 구분되지 않습니다. 시련이 왔을 때 그 시련을 겸손히 인내하지 아니하면 시련이 유혹이 되기 때문 입니다. 시련의 과정을 지날 때 하나님을 원망하면 시련이 유혹이되어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들어가자마자 흉년이 들자 하나님의 지시도 없었는데 아브라함의 마음대로 가나안을 떠나 애굽으로 내려 갔습니다. 가나안에 흉년이 든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시련 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시련을 통과하기 보다는 오히려 자기의 마음대로 결정을 합나다. 애굽으로 가보니 먹을 것이 풍성하고 호화로운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자기의 결정이 옳았다고 생각 했을런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아내를 빼았길 뻔 하는 위기의 유혹을 직면 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해방시켜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요단강만 건너가면 가나안인데 그곳에서 정탐꾼을 보내어 정찰 했습니다. 12지파의대표12명이 가나안을 정탐 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이 주신것 이기에 들어갈 수 있다고 보고 했고 나머지 11명은 들어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 보고를 들은 백성들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종 모세를 원망 했습니다. 그럼으로 원망한 사람들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 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시련을 믿음으로 인내해야 합니다.
그런데 야고보는 자신을 “종”으로 소개 합니다. 여기서 종은 헬라어 둘로스에 해당 됩니다. 둘로스 종은 철저하게 자유가 없고 어떤 한 인격에 매여서 충성과 순종을 드릴수 밖에 없는 상태를 의미 합니다. 그러기에 야고보의 자기 소개는 섬김의 사역에 자신을 헌신했습을 나타내는 신앙고백적 표현 입니다. 2절 이하에보면 흩어져있는 12지파가 말할 수 없는 박해와 고난에 직면해 있읍을 봅니다. 이런 위기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여기에 몇가지 중요한 단어들이 나옵니다. 여기라, 앎이라, 이루라, 구하라. 인데 이 4가지 단어는 그리스도인의 영적성숙과, 풍성한 삶, 승리의 삶을 위해 반드시 기억해야 할 단어들 입니다.
'1' 여기라 2절에보면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즉 시험이 오거든 피하지 말고 기쁨으로 환영하라는 것 입니다. 그리스도인이건 불신자건간에 예외 없이 시련과 고난은 있습니다. 요16:33절에보면 “세상에서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환난이 있음을 주님은 아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환난을 당하면 담대히 환난을 직면해서 그 환난속에서 승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환난은 피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싸워 이겨야 합니다. 아니 환난 가운데 담대하면 예수님같이 이기에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하신 것 입니다. 야고보서에서 계속 볼수 있는 도식이 하나 있는데 환난은 우리를 교육시키고, 훈련시키고, 연단하여 우리로 하여금 예수그리스도의 인격 즉 주니의 형상을 닮은 모습이 되게 한다는 것 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완전에 이르러야 하는데 이작업은 평생을 두고 이루어 나가는 신앙의 작품 입니다.
바울은 신앙의 성장에 장해가되는 과거의 악몽을 생각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뒤에 있는 것을 잊어 버리고 ”라고 했는데 이것은 과거를 망각이 아닌 “과거의 사건이 현재에 영향을 주지 않게 한다”는 것입니다. 동이 서에서 먼것 같이 과거의 죄가 살아졌음을 바울은 믿었습니다. 다메색에서 예수님을 만나기 전만 해도 예수믿는 자들을 죽이는 살인마 였습니다. 이것을 기억하면 복음을 담대히 증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뒤에 것을 생각지 않고 미래를 향해 나아갔습니다. 바울은 부르심의 상급을 위하여 한평생 달려와서 인생의 노년기에 이렇게 고백 합니다. “ 내 겉사람은 날로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와진다”고 말입니다. 신앙은 환난가운데서도 인내함으로 승리의 삶을 이루어야 합니다.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여기서 여기라는 말의 본래의 뜻은 “평가하라”는 말입니다. 욥은 큰환난을 당했으나 그 환난을 이렇게 평가 했습니다. “나의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욥23:10) 욥은 친구들의 철학적 궤변 앞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들은 몰라 하나님이 나를 단련 하신후에 나는 정금으로 될 것이다. 정금은 단련하고 또 단련해서 만드는 것 입니다. 마찬가지로 야고보의 권면과 욥의 고백은 단련된 믿음에서 참 신앙이 나옴을 이야기 합니다.
'2' 앎이라 3절에보면 “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의 시련은 반드시 인내를 가져 옵니다. 하나님도 인생을 시험고, 사탄도 인생을 시험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은 교육과 훈련을 통해서 더 나은 인격의 그리스고인이 되게 하는데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시험은 인내의 아름다운 덕을 가져옵니다. 롬5:3절에보면 “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라고 했습니다. 인내는 성령님의 열매이며, 인내는 소극적으로 참고만 있는 것을 의미함이 아니고 환난을 적극적으로 대쳐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 입니다.
'3' 이루라 4절에보면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아라” 신앙은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있는 생활을 통해 이루어지지 어느 한쪽의 일방적이지는 않습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는 말은 성령님의 역사와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는 말 입니다. 빌2:12절에보면 “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구원은 칭의적 구원이 아니고 성화의 차원에서의 구원를 의미 합니다.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빌2:13절에보면 “ 너희 안에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 이시니”라고 했습니다. 즉 구원을 이루는데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적신앙이 함께 조화를 이룰 때 되어 진다는 뜻 입니다. 그러면 야고보 선생은 본문을 통해서 무엇을 이루라는 뜻 입니까
1) 온전하고 완전하다는 뜻이 아니고 성숙을 의미 합니다. 즉 인내를 통해서 신앙의 성숙을 이루라는 것 입니다.
2) 구비하여 이 단어는 히브리 인들이 하나님 앞에 제물을 드릴 때 제물이 상처가 없고 흠이 없음을 의미하는 말 입니다. 즉 인내의 시련을 통과하여 인내를 구비하라, 인내의 열매를 맺으라는 것 입니다.
3)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인격 부족함이 없다는 말은 하나님의 표준에 도달할 수 있는 인격을 말합니다. 주님이 죄인을 위해 행하시는 역사는 구원의 사역이요. 주님이 우리안에서 우리와 함께 역사하시는 역사는 성화의 역사요. 주님이 우리를 통해 이루어 내시는 사건이 봉사 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영광 받으시기전에 우리를 훈련 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아들을 25년 훈련후에 주셨고 요셉을 애굽의 통치자로 쓰시기위하여 13년 시련속에서 훈련 시키셨고, 모세는 40년 쓰임받기 위하여 80년동안 시련과 역경을 통해서 훈련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조금도 부족함이 없을 때 까지 연단 하시고 연단된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 십니다. '
4' 구하라 5절에보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 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 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두가지를 강조 합니다.
1) 무엇을 구해야 되는가 대개의 사람들은 시련이오면 시련을 물리쳐 달라고 기도 합니다. 그러나 야고보 선생은 지혜를 구하라고 햤습니다. 어떤 언어 학자가 지식과 지혜를 이렇게 구분 했습니다. 지식은 분석 이지만 지혜는 종합 입니다. 즉 지식은 분석아고 쪼개서 알아는 것이지만 지혜는 종합해서 삶가운데 적용하는 것 입니다. 현대 그리스도인의 병적인 요소는 지식은 많은데 적용하는 지혜가 부족 합니다. 후히주신다는 말은 풍족히가 이니고 주저하지않고 주신다는 뜻입니다. 꾸짖지 아니하신다는 뜻은 귀찮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2) 어떻게 구해야 될 것인가 6절에보면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홤이 없는 자 로다”라고 했습니다. 즉 주실 줄 믿고 구해야 합니다.
결론:1:12절을 읽어라.
II. 유혹에서 승리하는 길
본문:약1:13-18절 지난 시간에는 시련, 시험이 오면 기쁘게 여기라는 것에 대해서 말씀 드렸습니다.
왜냐하면 시험을 이기면 인내의 연단을 통하여 정금보다귀한 심령이 되어지며 하나님의 약속한 생명의 멸류관을 얻기 때문 입니다. 오늘은 시험을 이기는 길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시험은 시련으로 번역된 곳도 있고 유혹으로 본역된 곳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 시험이라는 단어가 유혹을 의미 하느냐 시련을 의미 하느냐 하는 것은 문맥을 읽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시련은 일반적으로 밖으로 부터 주워지는 것 이고 이것은 테스트(test)라 이해 할 수 있으며 시련의 궁극적인 목적은 교육적인 것 입니다. 즉 우리의 삶에 중요한 수업을 시키고자 하는 하나님의 의도가 있습니다. 유혹은 우리 안에서 부터 일어나는 것 입니다. 이것은 사탄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이 시험은 파괴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혹의 차원에서 본 시험의 문제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오스카 와일드 라는 문학가는 “나는 무엇에든지 다 저항 할 수 있다. 단 유혹은 빼놓고”라는 말을 통해서 유혹을 물리치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 인가를 보여 보여주고 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부탁 하시기를 “ 시험에 들지않게 깨어있어 기도하라”고(마26:41절)에서 말씀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 무릇 섰다 하는 가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시련과 유혹이 이원론적으로 확실히 구분되지 않습니다. 시련이 왔을 때 그 시련을 겸손히 인내하지 아니하면 시련이 유혹이 되기 때문 입니다. 시련의 과정을 지날 때 하나님을 원망하면 시련이 유혹이되어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들어가자마자 흉년이 들자 하나님의 지시도 없었는데 아브라함의 마음대로 가나안을 떠나 애굽으로 내려 갔습니다. 가나안에 흉년이 든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시련 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시련을 통과하기 보다는 오히려 자기의 마음대로 결정을 합나다. 애굽으로 가보니 먹을 것이 풍성하고 호화로운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자기의 결정이 옳았다고 생각 했을런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아내를 빼았길 뻔 하는 위기의 유혹을 직면 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해방시켜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요단강만 건너가면 가나안인데 그곳에서 정탐꾼을 보내어 정찰 했습니다. 12지파의대표12명이 가나안을 정탐 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이 주신것 이기에 들어갈 수 있다고 보고 했고 나머지 11명은 들어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 보고를 들은 백성들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종 모세를 원망 했습니다. 그럼으로 원망한 사람들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 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시련을 믿음으로 인내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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