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에 대한 역설적 반응 (약1:1-8)
본문
이제 문안하는 야고보 형제의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 타향살이하는 나그네입니다. 유행가 가사처럼 부모가 있고 친척이 있건만 마음 한구석이 허전 한 것을 채울 수가 없습니다. 예수의 위로가 아니고서는 이 목사도 그 공허한 마음을 메꿀수 없습니다.
1.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기쁘게 반응하라는 것입니다. 역설적인 반응올시다. 사람은 모름지기 시련을 싫어하고 피하기를 원합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련이라고 할지라도 시련이 닥치면 견디기가 어렵습니다.
1'다양한 시험이 있습니다. 시험이 한 과목뿐이 아니라 여러 과목이라는 말입니다. 믿음의 역사 시련의 역사입니다. 이 사람에게는 이런 시험저 사람에게는 저런 시험이 닥 칩니다. 옛 말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자 혼자 애지중지키우던 외아들이 죽었습니다. 슬픔이 대단하였습니다. 길 가던 나그네가 보고 딱한 처지를 보고 죽은 아이를 살리겠다고 나섰습니다. 나가서 동네에 3년이내에 아무 어려움을 당한 적이 없는 집의 냄비를 구해서 죽을 오늘 안으로 끓여 오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해가 지도록 아낙은 빈손으로 돌아 왔습니다. 사방팔방으로 돌아 다녔지만 아무 어려움 없이 지난 집은 한 사람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하고 돌아 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을 사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시련이 닥치게 마련입니다.
히11:36-40을 읽어보겠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질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더 좋은 것을 예비 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니이라" 무슨 말입니까 오늘 모인 사람의 수만큼 시련이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갖은 고난과 시련을 겪었지만 상급 예수로 영원한 평안함과 안식의 약속은 아직 까지 보류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순교하였습니다. 야고보 사도도 칼로 순교를 당하셨습니다. 저 천국에서 아직 그때처럼 예수 때문에 갖은 고생을 당하고 시련을 당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아니면 온전히 이루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현대인의 번역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완전케 하려 하셨기 때문입니다. 라고 쉽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포기하지 맙시다 우리가 당하는 시련이 각자가 다를지라도 참고 견디고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은 똑 같습니다. 믿음을 예수님 다시 오시는 날까지 포기하지 않도록 주님 저의 믿음 지켜 주십시오. 이 시련 인연하여 떠 빨리 주께로 갑니다. 옆 사람 보십시오 아무걱정 없는 것 같지요. 그러나 밖에 걱정-으로 살아가는 시련에 전문가이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2'모두에게 시련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이런 말 뜻은 내 혼자만 당하는 시련이 아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많고 많은 사람 중에 하필이면 나에게 시련을 당하게 하시는지 하나님 해도 너무하십니다. 특히 하나님의 택한 자녀라면 시련이 없으면 버리운 자라는 것입니다. 확실한 근거는 없습니다만 세상에 자기 자녀가 딴 사람에 체벌을 당하면 속상할 것은 틀림없는 이치입니다. 집사님이 위로하기를 나한테 체벌을 대표적으로 당하는 아이를 이야기하면서 늘 목사님은 그 집사님은 아들만 사랑하고 하더니 이제 목사님이 당신 아들 사랑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위로하니까 안색이 조금 달라지더라는 것입니다. 사실 목사가 직접 나서서 체벌하기 좋아하는 목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저는 솔직히 자녀들의 장래 사회성을 생각하고 또 그만큼의 기대치가 있기 때문에 체벌을 하는 것입니다. 변명으로 들릴 줄 모르겠지만 언제 까지나 엄마가 곁에서 챙겨 주지 못합니다 우선 급한대로 초등학교만 들어가도 집에 나서서 학교갔다가 집에 돌아 올 때까지 혼자 판단하고 혼자 일을 처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엄마가 늘 곁에 있는 사회가 아니고 언젠가는 홀로 서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거든요. 하나님도 우리를 마마 보이로 우리를 키우지 않으려고 하십니다.
효도하는 것은 좋지만 결혼해서도 시련을 닥치면 아내와 같이 의논하고 해결점을 찾아야 할테데 결혼해서도 홀로 서기를 못한 마마보이가 많습니다. 특히 영적으로 이런 마마보이에게 히 12:5-7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셨으니 너희가 참음으로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시지 않은 아들이 있으리요" 잘못이 있을때 시련이 올 때 그 잘못을 깨달읍십시요. 그러나 시련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3'기쁘게 여기라. 시련을 닥치면 슬프게 여기는 것이 상식적인 처사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역설적인 반응을 이야기합니다. 성경에 보면 역설적인 반응에 대하여 많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른 뺨을 맞기 위해 왼뺨을 돌려대라는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하면 짜증이 나야하지요. 그러나 성경은 역설적으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성경의 이 역설적인 사실을 증거하기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벧전1:7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너의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 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시련을 통하여 금보다 귀한 믿음으로 연단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시련이 닥치면 이것 쯤이야 하고 정면으로 대결하십시오. 피하면 비겁해지고 더 큰 시련을 당하게 됩니다. 이왕지사 당한 시련이라면 이 시련을 통하여 마귀가 빼앗으려는 것이 무엇인가 살피고 시련이 닥칠수록 믿음으로 기쁨을 지킵십시오. 감사를 지킵십시오. 기도를 빠뜨리지 마십시오.
2.시련의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결국은 부족함이 없게 하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3절과4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하려 함이라"
1'인내를 만들어 냅니다. 인내가 부족한 우리에게 시련은 인내를 만들어 냅니다. 지금 저들은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박대를 견디다 못해서 고향 떠나온 사람들입니다. 또 시련을 견디지 못하고 또 적응하지 못하고 이민을 떠날 그런 가능성이 많습니다. 시련을 견디지 못하면 인내를 만들어 낼 수도 없고 믿음의 기초를 닦을 수 없습니다. 믿음은 더 이상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포기하고 싶은 유혹이 있습니까 지금까지의 믿음이 다 허사입니다. 기다려야 기대하는 열매를 딸 수가 있습니다. 포기하고 싶은 유혹이 많은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에게 아니 오늘 견디기가 어려워서 포기하려고 망설이리는 여러분을 향하여 성령님은 이렇게 격려합니다. 약5:7,11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 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니.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도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농부와 욥이라는 인물을 통하여 인내를 배우라는 권면입니다. 아무리 성급해도 제철을 기다린 농산물이 뭐가 달라도 다릅니다. 속성 재배해서 출하된 채소는 오래 기다려서 제철에 먹는 채소와는 다릅니다. 욥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시련이 그렇게 엄습해 오면 한번쯤 하나님을 원망할 법합니다. 그러나 욥은 끝까지 시련을 견디고 입술로 하나님께 범죄 하지 않았습니다. 당사자의 고통도 고통이지만 곁에서 간병하던 아내가 견디다 못해 말을 합니다. 욥의 아내를 악처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충분히 이해가 가는 대목입니다.
욥2:9-10을 읽어보겠습니다. "그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겠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에 하나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치 아니하니라" 자식 다 잃고 재산 다 잃은 후 몸에 악창이 나서 기왓장으로 긁어면서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기다린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앞이 캄캄하고 아무런 조짐이 없습니다. 그러나 말씀의 능력을 의지하고 포기하지 아니하는 신앙, 존귀한 믿음입니다. 무엇인가 잘 될 때에 조짐이 좋을 때 믿는 것, 그것은 쉽습니다. 재앙 속에서 역경 속에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기다린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습니다.
2'갖추어야 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 구비라는 말뜻은 "호로케로이" 성숙을 위하여 한몫 한몫 갖춘다는 뜻입니다. 다른 항목은 다갖추었더라도 하나님보시기에 미흡한 점을 갖추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늙은 신 부모님이 집을 나서는 자식에게 "길 조심해라" 늙으신 부모가 더 걱정입니다. 보모의 눈에는 아무리 장성하고 성숙한 자녀라도 부족함이 보이듯이, 하나님아버지의 눈에는 우리가 늘 불안 한 것입니다. 한몫을 채우는데 인내라는 것이 필요해서 성숙하게 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3'부족함이 없게 만드십니다. 온 지구를 다 준다고 해도 부족함이 있을 것입니다 시련을 통하여 욕심이 점점 줄어 들것입니다. 시련은 귀찮은 존재이지만 시련을 통해서 얻는 것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병만 해도 그렇습니다. 한자에 병이라는 것은 병자있고 이외도 많습니다. 병, 병, 병. 등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건강을 유리병처럼 조심하지 않으면 건강도 조심하지 않으면 병을 얻게 되고 건강은 병하고 나란히 있어야 건강의 귀중함을 알고, 군사가 나라를 지키듯이 병이 건강을 지킨다는 뜻이라는 말입니다. 시편119:71절 말씀에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지금여러분 하나님의 구비 과정 중에 있습니까 기쁘게 여기십시오. 고난과 시련 중이라면 이 때가 바로 하나님의 정비중이라고 생각하십시오.
3.구하라는 것입니다.
1'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꾸중을 하지 않습니다. 왜 이렇게 늦었느냐. 바보스럽게 지냈느냐. 꾸짖지 않습니다. 5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사람의 지혜도 귀히 여겨서 재물보다 지혜를 넘겨주려고 하거든 하나님의 지혜는 손에 만져지지 않는 보물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성경에서 솔로몬입니다. 솔로몬이 기브온에서 일천 번제를 드리고 밤에 여호와께서 꿈에나타나셔서 내가 네게 무엇을 하여줄꼬 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솔로몬의 간구와 응답이 열왕기상3:9-12가지를 읽어보겠습니다.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 할 수 있사오리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맞은지라 이에 하나님이 저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수도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은즉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너의 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거니와 너의 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지금 무엇이 문제입니까 생명 연장입니까 부귀 영화입니까 그보다도 하나님의 지혜가 부족하지 않습니까 시련을 하나님의 지혜로 슬기롭게 견디게 하소서가 저와 여러분의 기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2'의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의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6-7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예수님께서 바다에서 걸어 오실 때 이 놀라운 기적 앞에 많은 제자들이 놀랐습니다. 베드로가 용감하게 주의 명령대로 바다위로 걸어갔습니다. 그러나 몇 발자국 가지 못해서 바다에 도로 빠졌습니다. 바다에 빠진 베드로를 건져 주시고 예수님께서 충고하신 말씀이 마14:31절 하반 절에 있습니다. 오늘 이 아침에 우리를 향하신 주의 말씀으로 받읍시다.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믿음과 의심은 반비례합니다. 큰 믿음에는 의심이 비좁고 들어갈 틈새가 없습니다. 믿음이 혼탁해지면 의심을 비롯한 온갖 불순물이 섞기게 마련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한가지 마음으로 꽉 차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믿음에 마음에 다른 마음 곧 의심하는 두 마음을 품지 말라는 것입니다.
7절과8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믿고 나아가는데 의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닥친다고 할지라도 믿기만 하는 것이 참믿음인 것입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생명이 위독합니다 응급조치를 해야합니다. 그날 따라 더더디게 되었습니다. 12년간 혈루병 앓은 여인 의심없이 예수의 옷가를 만지고 나옴을 입었습니다. 야이로에게는 아까운 시간 낭비 였습니다. 그 사이 아니나 다를까 회당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방금 죽었으니까 선생을 더이상 괴롭게 말라는 전갈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곁에서 이 두렵고 의심케하는 소리를 듣고 막5:36에말씀하시기를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하셨습니다.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을 애로와 시련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러나 야고보 선생은 믿음으로 저들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당장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지금의 야고보 편지를 받는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1.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기쁘게 반응하라는 것입니다. 역설적인 반응올시다. 사람은 모름지기 시련을 싫어하고 피하기를 원합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련이라고 할지라도 시련이 닥치면 견디기가 어렵습니다.
1'다양한 시험이 있습니다. 시험이 한 과목뿐이 아니라 여러 과목이라는 말입니다. 믿음의 역사 시련의 역사입니다. 이 사람에게는 이런 시험저 사람에게는 저런 시험이 닥 칩니다. 옛 말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자 혼자 애지중지키우던 외아들이 죽었습니다. 슬픔이 대단하였습니다. 길 가던 나그네가 보고 딱한 처지를 보고 죽은 아이를 살리겠다고 나섰습니다. 나가서 동네에 3년이내에 아무 어려움을 당한 적이 없는 집의 냄비를 구해서 죽을 오늘 안으로 끓여 오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해가 지도록 아낙은 빈손으로 돌아 왔습니다. 사방팔방으로 돌아 다녔지만 아무 어려움 없이 지난 집은 한 사람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하고 돌아 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을 사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시련이 닥치게 마련입니다.
히11:36-40을 읽어보겠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질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더 좋은 것을 예비 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니이라" 무슨 말입니까 오늘 모인 사람의 수만큼 시련이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갖은 고난과 시련을 겪었지만 상급 예수로 영원한 평안함과 안식의 약속은 아직 까지 보류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순교하였습니다. 야고보 사도도 칼로 순교를 당하셨습니다. 저 천국에서 아직 그때처럼 예수 때문에 갖은 고생을 당하고 시련을 당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아니면 온전히 이루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현대인의 번역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완전케 하려 하셨기 때문입니다. 라고 쉽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포기하지 맙시다 우리가 당하는 시련이 각자가 다를지라도 참고 견디고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은 똑 같습니다. 믿음을 예수님 다시 오시는 날까지 포기하지 않도록 주님 저의 믿음 지켜 주십시오. 이 시련 인연하여 떠 빨리 주께로 갑니다. 옆 사람 보십시오 아무걱정 없는 것 같지요. 그러나 밖에 걱정-으로 살아가는 시련에 전문가이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2'모두에게 시련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이런 말 뜻은 내 혼자만 당하는 시련이 아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많고 많은 사람 중에 하필이면 나에게 시련을 당하게 하시는지 하나님 해도 너무하십니다. 특히 하나님의 택한 자녀라면 시련이 없으면 버리운 자라는 것입니다. 확실한 근거는 없습니다만 세상에 자기 자녀가 딴 사람에 체벌을 당하면 속상할 것은 틀림없는 이치입니다. 집사님이 위로하기를 나한테 체벌을 대표적으로 당하는 아이를 이야기하면서 늘 목사님은 그 집사님은 아들만 사랑하고 하더니 이제 목사님이 당신 아들 사랑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위로하니까 안색이 조금 달라지더라는 것입니다. 사실 목사가 직접 나서서 체벌하기 좋아하는 목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저는 솔직히 자녀들의 장래 사회성을 생각하고 또 그만큼의 기대치가 있기 때문에 체벌을 하는 것입니다. 변명으로 들릴 줄 모르겠지만 언제 까지나 엄마가 곁에서 챙겨 주지 못합니다 우선 급한대로 초등학교만 들어가도 집에 나서서 학교갔다가 집에 돌아 올 때까지 혼자 판단하고 혼자 일을 처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엄마가 늘 곁에 있는 사회가 아니고 언젠가는 홀로 서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거든요. 하나님도 우리를 마마 보이로 우리를 키우지 않으려고 하십니다.
효도하는 것은 좋지만 결혼해서도 시련을 닥치면 아내와 같이 의논하고 해결점을 찾아야 할테데 결혼해서도 홀로 서기를 못한 마마보이가 많습니다. 특히 영적으로 이런 마마보이에게 히 12:5-7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셨으니 너희가 참음으로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시지 않은 아들이 있으리요" 잘못이 있을때 시련이 올 때 그 잘못을 깨달읍십시요. 그러나 시련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3'기쁘게 여기라. 시련을 닥치면 슬프게 여기는 것이 상식적인 처사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역설적인 반응을 이야기합니다. 성경에 보면 역설적인 반응에 대하여 많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른 뺨을 맞기 위해 왼뺨을 돌려대라는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하면 짜증이 나야하지요. 그러나 성경은 역설적으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성경의 이 역설적인 사실을 증거하기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벧전1:7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너의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 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시련을 통하여 금보다 귀한 믿음으로 연단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시련이 닥치면 이것 쯤이야 하고 정면으로 대결하십시오. 피하면 비겁해지고 더 큰 시련을 당하게 됩니다. 이왕지사 당한 시련이라면 이 시련을 통하여 마귀가 빼앗으려는 것이 무엇인가 살피고 시련이 닥칠수록 믿음으로 기쁨을 지킵십시오. 감사를 지킵십시오. 기도를 빠뜨리지 마십시오.
2.시련의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결국은 부족함이 없게 하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3절과4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하려 함이라"
1'인내를 만들어 냅니다. 인내가 부족한 우리에게 시련은 인내를 만들어 냅니다. 지금 저들은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박대를 견디다 못해서 고향 떠나온 사람들입니다. 또 시련을 견디지 못하고 또 적응하지 못하고 이민을 떠날 그런 가능성이 많습니다. 시련을 견디지 못하면 인내를 만들어 낼 수도 없고 믿음의 기초를 닦을 수 없습니다. 믿음은 더 이상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포기하고 싶은 유혹이 있습니까 지금까지의 믿음이 다 허사입니다. 기다려야 기대하는 열매를 딸 수가 있습니다. 포기하고 싶은 유혹이 많은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에게 아니 오늘 견디기가 어려워서 포기하려고 망설이리는 여러분을 향하여 성령님은 이렇게 격려합니다. 약5:7,11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 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니.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도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농부와 욥이라는 인물을 통하여 인내를 배우라는 권면입니다. 아무리 성급해도 제철을 기다린 농산물이 뭐가 달라도 다릅니다. 속성 재배해서 출하된 채소는 오래 기다려서 제철에 먹는 채소와는 다릅니다. 욥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시련이 그렇게 엄습해 오면 한번쯤 하나님을 원망할 법합니다. 그러나 욥은 끝까지 시련을 견디고 입술로 하나님께 범죄 하지 않았습니다. 당사자의 고통도 고통이지만 곁에서 간병하던 아내가 견디다 못해 말을 합니다. 욥의 아내를 악처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충분히 이해가 가는 대목입니다.
욥2:9-10을 읽어보겠습니다. "그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겠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에 하나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치 아니하니라" 자식 다 잃고 재산 다 잃은 후 몸에 악창이 나서 기왓장으로 긁어면서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기다린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앞이 캄캄하고 아무런 조짐이 없습니다. 그러나 말씀의 능력을 의지하고 포기하지 아니하는 신앙, 존귀한 믿음입니다. 무엇인가 잘 될 때에 조짐이 좋을 때 믿는 것, 그것은 쉽습니다. 재앙 속에서 역경 속에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기다린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습니다.
2'갖추어야 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 구비라는 말뜻은 "호로케로이" 성숙을 위하여 한몫 한몫 갖춘다는 뜻입니다. 다른 항목은 다갖추었더라도 하나님보시기에 미흡한 점을 갖추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늙은 신 부모님이 집을 나서는 자식에게 "길 조심해라" 늙으신 부모가 더 걱정입니다. 보모의 눈에는 아무리 장성하고 성숙한 자녀라도 부족함이 보이듯이, 하나님아버지의 눈에는 우리가 늘 불안 한 것입니다. 한몫을 채우는데 인내라는 것이 필요해서 성숙하게 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3'부족함이 없게 만드십니다. 온 지구를 다 준다고 해도 부족함이 있을 것입니다 시련을 통하여 욕심이 점점 줄어 들것입니다. 시련은 귀찮은 존재이지만 시련을 통해서 얻는 것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병만 해도 그렇습니다. 한자에 병이라는 것은 병자있고 이외도 많습니다. 병, 병, 병. 등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건강을 유리병처럼 조심하지 않으면 건강도 조심하지 않으면 병을 얻게 되고 건강은 병하고 나란히 있어야 건강의 귀중함을 알고, 군사가 나라를 지키듯이 병이 건강을 지킨다는 뜻이라는 말입니다. 시편119:71절 말씀에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지금여러분 하나님의 구비 과정 중에 있습니까 기쁘게 여기십시오. 고난과 시련 중이라면 이 때가 바로 하나님의 정비중이라고 생각하십시오.
3.구하라는 것입니다.
1'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꾸중을 하지 않습니다. 왜 이렇게 늦었느냐. 바보스럽게 지냈느냐. 꾸짖지 않습니다. 5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사람의 지혜도 귀히 여겨서 재물보다 지혜를 넘겨주려고 하거든 하나님의 지혜는 손에 만져지지 않는 보물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성경에서 솔로몬입니다. 솔로몬이 기브온에서 일천 번제를 드리고 밤에 여호와께서 꿈에나타나셔서 내가 네게 무엇을 하여줄꼬 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솔로몬의 간구와 응답이 열왕기상3:9-12가지를 읽어보겠습니다.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 할 수 있사오리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맞은지라 이에 하나님이 저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수도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은즉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너의 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거니와 너의 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지금 무엇이 문제입니까 생명 연장입니까 부귀 영화입니까 그보다도 하나님의 지혜가 부족하지 않습니까 시련을 하나님의 지혜로 슬기롭게 견디게 하소서가 저와 여러분의 기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2'의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의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6-7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예수님께서 바다에서 걸어 오실 때 이 놀라운 기적 앞에 많은 제자들이 놀랐습니다. 베드로가 용감하게 주의 명령대로 바다위로 걸어갔습니다. 그러나 몇 발자국 가지 못해서 바다에 도로 빠졌습니다. 바다에 빠진 베드로를 건져 주시고 예수님께서 충고하신 말씀이 마14:31절 하반 절에 있습니다. 오늘 이 아침에 우리를 향하신 주의 말씀으로 받읍시다.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믿음과 의심은 반비례합니다. 큰 믿음에는 의심이 비좁고 들어갈 틈새가 없습니다. 믿음이 혼탁해지면 의심을 비롯한 온갖 불순물이 섞기게 마련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한가지 마음으로 꽉 차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믿음에 마음에 다른 마음 곧 의심하는 두 마음을 품지 말라는 것입니다.
7절과8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믿고 나아가는데 의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닥친다고 할지라도 믿기만 하는 것이 참믿음인 것입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생명이 위독합니다 응급조치를 해야합니다. 그날 따라 더더디게 되었습니다. 12년간 혈루병 앓은 여인 의심없이 예수의 옷가를 만지고 나옴을 입었습니다. 야이로에게는 아까운 시간 낭비 였습니다. 그 사이 아니나 다를까 회당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방금 죽었으니까 선생을 더이상 괴롭게 말라는 전갈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곁에서 이 두렵고 의심케하는 소리를 듣고 막5:36에말씀하시기를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하셨습니다.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을 애로와 시련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러나 야고보 선생은 믿음으로 저들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당장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지금의 야고보 편지를 받는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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