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믿음 (약2:14-26)
본문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요 그 믿음을 받았다는 증가가 행위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죽은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전한 믿음을 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행위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데 구원 얻을만한 행위를 요구하지 않고 구원 받은 사람의 행위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엡4: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
1.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본문 “(약2: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많다고 믿고 신이라고 명칭만 붙어 있으면 심기려고 하는 것은 유일 신이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신은 오직 한 분이신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뿐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온전한 믿음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불교처럼 신이 있는 것이 아니고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믿는 범신론(일체 만유가 신이며 신은 일체 만유라고 하는 종교관)을 주장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한분 이십니다.
2. 믿음과 행위가 병행하는 것입니다. 본문 “(약2: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약2:23) 이에 경에 이른바 이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약2: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 (약2:25)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약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하였습니다. 이는 행함으로도 구원 얻는다는 말이 아니고 이론으로만 믿음을 부르짖으면서 행위는 무시하고 믿음의 행위를 부정하는 자들을 반박하는 내용의 말씀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행위로는 구원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다면 그 믿음이 있다는 증거를 행위로써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온전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한 분이신 줄 아는 것은 귀신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앎이나 의식적인 신앙 고백 자체가 믿음일 수는 없습니다. 앎이 행함이라는 옷을 입을 때 비로소 그 믿음에 온전케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에도 언제나 행함이 따랐으며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으며,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게 되었다. 기생 라합은 믿음으로 정탐꾼을 영접하였습니다. 기생 라합은 정탐꾼과의 약속을 믿음과 행함으로 지켰기 때문에 의롭다는 인정을 받은 것일입니다. 기생 라함이 정탐꾼을 살려 보낸 것은 믿음있는 행함이었기 때문에 그의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입은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야고보서가 가르쳐 주는 것은 믿음이란 생각과 마음에서만 이루어질 것이 아니라 생활에서까지 믿음있는 행함이 이루어져야만 그 믿음의 의가 입증되고 산 믿음이 있다는 증거가 나타나는 것임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3. 선한 일에는 적극적인 것입니다. 본문 “(약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약2: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약2: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 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약2: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약2:18) 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하였습니다. 이는 자칭 믿음이 있노라 하고 스스로 위로를 받으면서 믿음이 있는 행위는 전혀 없으니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전한 믿음은 긍정적이고 적극적입니다. 선한 일을 보면 적극적으로 참예하여 실행에 옮기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믿음이 있는 증거를 확실하게 보여 주는 것입니다. 죽었다는 것은 활동의 정지와 함께 능력의 완전한 상실을 의미합니다. 믿음이 좋다고 칭찬받는 사람도 죽은 믿음을 붙들고 있다면 그 믿음은 아무 효력이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행동하는 믿음이여야 합니다. 행동하는 믿음이 산 믿음이요, 능력이 역사합니다. 이같은 믿음의 삶을 영위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은 죽은 양심, 죽은 신앙으로 인한 손실이 없도록 믿음을 굳세게 해야 하겠습니다. 온전한 믿음은 말로만 믿는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실제 믿는 표시가 나도록 믿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 증거로 유일하신 하나님 한분만 믿고 선한 일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
1.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본문 “(약2: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많다고 믿고 신이라고 명칭만 붙어 있으면 심기려고 하는 것은 유일 신이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신은 오직 한 분이신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뿐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온전한 믿음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불교처럼 신이 있는 것이 아니고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믿는 범신론(일체 만유가 신이며 신은 일체 만유라고 하는 종교관)을 주장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한분 이십니다.
2. 믿음과 행위가 병행하는 것입니다. 본문 “(약2: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약2:23) 이에 경에 이른바 이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약2: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 (약2:25)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약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하였습니다. 이는 행함으로도 구원 얻는다는 말이 아니고 이론으로만 믿음을 부르짖으면서 행위는 무시하고 믿음의 행위를 부정하는 자들을 반박하는 내용의 말씀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행위로는 구원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다면 그 믿음이 있다는 증거를 행위로써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온전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한 분이신 줄 아는 것은 귀신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앎이나 의식적인 신앙 고백 자체가 믿음일 수는 없습니다. 앎이 행함이라는 옷을 입을 때 비로소 그 믿음에 온전케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에도 언제나 행함이 따랐으며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으며,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게 되었다. 기생 라합은 믿음으로 정탐꾼을 영접하였습니다. 기생 라합은 정탐꾼과의 약속을 믿음과 행함으로 지켰기 때문에 의롭다는 인정을 받은 것일입니다. 기생 라함이 정탐꾼을 살려 보낸 것은 믿음있는 행함이었기 때문에 그의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입은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야고보서가 가르쳐 주는 것은 믿음이란 생각과 마음에서만 이루어질 것이 아니라 생활에서까지 믿음있는 행함이 이루어져야만 그 믿음의 의가 입증되고 산 믿음이 있다는 증거가 나타나는 것임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3. 선한 일에는 적극적인 것입니다. 본문 “(약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약2: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약2: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 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약2: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약2:18) 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하였습니다. 이는 자칭 믿음이 있노라 하고 스스로 위로를 받으면서 믿음이 있는 행위는 전혀 없으니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전한 믿음은 긍정적이고 적극적입니다. 선한 일을 보면 적극적으로 참예하여 실행에 옮기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믿음이 있는 증거를 확실하게 보여 주는 것입니다. 죽었다는 것은 활동의 정지와 함께 능력의 완전한 상실을 의미합니다. 믿음이 좋다고 칭찬받는 사람도 죽은 믿음을 붙들고 있다면 그 믿음은 아무 효력이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행동하는 믿음이여야 합니다. 행동하는 믿음이 산 믿음이요, 능력이 역사합니다. 이같은 믿음의 삶을 영위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은 죽은 양심, 죽은 신앙으로 인한 손실이 없도록 믿음을 굳세게 해야 하겠습니다. 온전한 믿음은 말로만 믿는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실제 믿는 표시가 나도록 믿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 증거로 유일하신 하나님 한분만 믿고 선한 일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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