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신앙 생활에의 경고 (히3:12-4:1)

본문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오늘 본문 중에서 12절 13절 말씀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몇가지 주의해야 할 사항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경고는 위기에 직면 할 가능성을 내다 보면서 미리 신호를 보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고를 받을 때, 다가오는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것을 연구하고 대책을 세워 그 위기를 잘 극복하면 그만인 것입니다. 그러나 경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아무런 관심이 없이 그냥 지낸다고 할 것이면 그 마지막에는 처참한 비극을 초래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히브리서에서 신앙 생활을 하는데 도움을 주는 경고를 발견하게 됩니다.
1. 히브리서 2:3에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 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 니 하였습니다. 우리가 이 큰 구원을 등한히 하면 주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게 된다는 경고입니다. 여기 등한히 한다는 말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말입니다. 관심을 별로 가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사실 우리가 이 큰 구원을 맘 음에 두지 않고 등한히 하는 것처럼 무서운 잘못은 없는 것입니다. 여기 구원을 등한히 여긴다는 말은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을 두고 하신 말씀 은 아닙니다. 이 경고는 우리 믿는 사람들을 향해서 하시는 경고입니다. 아마 우리 믿는 사람들이 가장 범하기 쉬운 잘못이 여기에 있기 때문에 우리를 향하여 경고한 것 같습니다. 가령 우리가 주일이 되서 교회에 나오는 것이 어떻습니까 부지런히 힘쓰 고 주의하지 아니하면 형식적으로 교회에 나오고, 예배도 형식적으로 드리기 쉽 습니다. 아무런 구원에 대한 감격도 없이 그저 교회에 나옵니다. 그러니까 흥 이 없고, 맥이 빠집니다. 어떤 분은 이웃의 권면에 의해서 나오기는 하는데 예 배당에 나와 앉기만 하면 졸립니다. 옆에 같이 오신 분이 민망해서 옆구리를 쿡쿡 찌르면 그 순간은 눈을 뜨는 것 같지만 조금 있으면 또 눈을 감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관심이 없어서 그럽니다. 관심이 있으면 웬만해서는 졸지 아 니합니다. 시장에서 장사 하시는 분이 물건을 파는데 좀 피곤하다고 해서 손님 이 와서 물건을 사려고 이 것 저 것 고르는데 건들건들 졸고 이겠습니까 값이 얼마냐고 묻는 데 의자에 앉아서 자고 있겠습니까 환자가 와서 진찰하는데 의 사 선생님이 피곤하다고 청진기를 끼고 잠을 잘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구원을 등한히 하기가 쉽습니까 이 구원이란 오늘을 사는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구원 받은 사람이나 구원 받지 못한 사람이나 비슷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구원 문제에 대해서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아니합니다. 구원보다는 내 직업이 더 중요하고, 출세하는데 더 관심이 있고, 자녀들의 진로가 더 긴급하고, 시간이 있으면 육신적인 즐거움을 찾기가 오히려 더 바쁩니다. 서양에서는 예수 믿는 사람 중에 소위 Season Christian(절기 교인)이 있다 고 합니다. 이 사람들은 무슨 절기 때나 되어야 교회에 나옵니다. 신년 예배 때는 새해니까 하나님께 세배 드리는 마음으로, 복을 비는 마음으로 나옵니다. 그 외에 Christmas, 부활절 같은 절기에만 살짝 얼굴을 비칠 뿐입니다. 그리고 Weather Christian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 말로 번역하면 날씨 교인이라고나 할까요 날씨가 좋으면 낚시질, 등산 아니면 골프하러 가고 비가 와서 다른데 갈 곳이 없으면 교회에나 가자하고 옵니다. 어떤 분은 비가 오면 구질구질하게 비 맞으면서 교회에 갈 것 뭐 있나 하면서 비오는 날은 집에서 장기나 바둑을 두고 TV나 보자 하고, 날씨가 개어야 교회에 나옵니다. 날씨가 너무 추워도 더 워도 교회에 안 나오고 기분이 좋아야만 교회에 나옵니다. 왜 그렇습니까 구원에 대해서 관심이 없어서 그럽니다. 그러니까 구원을 등한히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경고합니다. 우리가 이 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주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을 줄 아느냐 2:1절에 보면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찌니 혹 흘러 떠내려 갈까 염려하노라 했습니다. 이 모든 들은 것을 삼갈찌니 한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 받게 된 이 기쁜 소식, 복음을 우리가 들었으니 이 구원에 대한 말씀을 간절히 삼가서 흘러 떠 내려가지 않도록 하자는 말씀입니다. 나룻배가 떠 내려가지 않기 위해서는 뿌리가 튼튼한 나무나, 움직이지 아니 하는 큰 바위에, 그렇지 않으면 닻을 단단히 땅에다 박아 놓습니다. 마찬가지 로 이 구원에 대한 복음을 단단히 비끌어 매어서, 소홀히 여겨 떠내려가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단단히 매어 놓지 아니하면 물결이 출렁 출렁하면서 밧줄을 잡아 다녔다 놓았다 하는 동안 슬슬 풀어져서 저녁에 잡아 매놓고 집에 들어가 잠자고 아침에 나와 보니 배가 떠내려 가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낭패입니다. 그러니까 오늘까지 예수를 믿기는 믿는다고 했는데, 주일마다 교회에 나온 다고 했는데, 설교도 듣고 감동도 됐는데, 신앙 생활을 한다고 했는데, 구원에 대한 확신도 없고, 감격도 없고, 열심도 없고, 그저 바람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 로 신앙 생활하면 안되겠다는 경고입니다.
그러므로, 흘러 떠내려 가지 아니하 도록 주의하라, 조심하라는 말씀입니다. 가령, 세례문답을 할 때 보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서 상당한 지위에 계 신 분들에게 예수를 왜 믿습니까 하고 물으면 이런 분들은 바쁜 생활을 하다 가 성경 읽을 시간도 별로 없고 세례 문답 공부에도 잘 참석하지 못하고 왔다가 얼른 대답한다는 것이 흔히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식의 답변을 합니다. 사람이 일생을 살아 가노라면 종교가 필요하고 신앙이라는 것이 있어야 하지 않겠 습니까 그러니까 기독교는 윤리적인 면이나 도덕적인 면에서도 훌륭하고 고달 픈 세상에서 수양으로도 좋고해서---라고 하면서 우물쭈물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수양 삼아 믿는다면 꼭 예수를 믿지 않고 유교 나 불교를 따라가도 됩니다. 기독교는 수양의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한 마디로 구원의 종교입니다. 왜 이 바쁜 세상에 차라리 주일에 집에서 쉬는 것 이 낫지 교회에 나옵니까 구원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을 등한히 해서는 안됩니다.
2. 오늘


본문:12에 보면,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믿지 아 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하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하라. 떨어진다는 말은 타락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너희는 타락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혹 어떤 분은 이 말씀을 들으시면서 뭐, 그것이 경고까지 될 수 있습니까 그 문제 만은 내게 해당되 지 않습니다. 저는 목사의 아들입니다. 제 아버님이 평생 교회를 섬기신 장로 님이십니다. 저는 권사의 아들입니다. 처음 믿을 때는 모르겠습니다마는 제가 이제 예수 믿은지 10년이 넘었습니다. 이젠 그럴 단계는 지났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제 뭐 타락하겠습니까 라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그렇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타락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 첫번째는 교회 생활에서 떠나는 타락이고 다른 하나는 신앙 생활에서 떠 나는 타락이 있습니다.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엄격히 말해서 교회에 다니는 사람을 두 가지로 말하면 교회에 그저 다니는, 교회에 등록된 교인이 있 고, 구원을 체험한 신자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교인과 신자는 다릅니다. 예수님께서도 구원에 대해서 비유로 말씀하실 때 두 여인이 맷돌질 하는데 하나는 데려가도 다른 하나는 놔 둔다고 했습니다. 같은 맷돌질 하는 사람 가운데도 하나는 구원받고 다른 한 사람은 구원 받지 못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예배당 안에서 함께 예배드립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이 오신다고 하면 우리 가운데 어떤 분은 데려가고 어떤 분은 데려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입니까 저분이야 의례히 데려 가시겠지 하 고 생각했던 분이 그만 떨어지고, 저 사람이 교회에 다니기는 하지만 구원을 받 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던 분을 예수님이 데려가시는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스스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교인인가, 신자인가 우리가 교회 문 밖에 나가서 타락하지 아니한다고 해도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얼마든지 타락할 수 있습니다. 조심하고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타락하기 쉽습니까 결단성이 부족하면 타락하기 쉽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한 발은 교회안에 다른 한 발은 세상에 놓고 교회 쪽으로 기울어졌다 사회 쪽으로 기울 어졌다 하면서 믿었다 안 믿었다 하는 사람 타락하기 쉽습니다. 교만한 사람도 타락하기 쉽습니다. 예수 믿어 봐야 별 것 없드만, 목사도 그렇고, 장로도 그렇구, 오래 믿었다고 하는 사감들을 봐야 나보다 나은게 없던 데, 자기의 의를 높이 평가하는 사람 타락하기 쉽습니다. 반면에 잘못되게 겸 손한 사람도 타락하기 쉽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어떻게 예수를 믿을 수 있 습니까---이렇게 지나치게 겸손한 사람도 타락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 무엇이 타락입니까 무엇이 떨어지는 것입니까 믿 기는 한다고 하면서도 간절한 마음이 없는 것이 타락입니다. 주님을 간절히 사 모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우리의 심령과 생활에 변화가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여전히 혈기 부리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분쟁하고, 속이고 한 다고 할 것이면 예수 믿는다는 표가 무엇입니까 아무런 변화가 없는 사람, 이 런 사람은 예수를 믿으면서도 믿음에서 타락한 사람입니다. 좋은 나무가 되었다면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할 터인데 아무런 열매가 없습니다. 사랑의 열매를 맺어야 할 터인데 여전히 미워합니다. 기쁨의 열매를 맺어 야 할 터인데 기쁨이 전혀 없습니다. 평화의 열매를 맺어야 하겠는데 그 마음 은 여전히 불안과 초조 가운데서 지내고 있습니다. 열매를 보아 그 나무를 압니다. 열매 없는 무화과를 예수님께서는 저주하셔서 말라 버리게 했습니다. 무서운 일입니다. 신앙 생활한다고 하면서 타락한 것처럼 비극적인 것이 없읍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오직 이날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라 고 했습니다. 왜요 마귀는 언제나 무슨 일이나 내일로 미루게 합니다. 오늘만 날이냐 내일도 있고 모레도 있는데 뭐 그렇게 서두를 필요가 있나 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항상 오늘 하라고 독촉하십니다. 내일부터 잘 믿지 다음부터 열심을 내지 하는 것은 분명히 타락한 현상입니다. 신앙이 게으른 자는 내 일로 미루고, 순종하는 자는 오늘을 중요히 생각하고 일합니다. 오늘 정신 차 리고, 오늘 기도하고, 오늘 성령님의 은사를 받지 않으면 믿으면서도 타락합니다. 끝으로, 히브리서 5:12에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 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라고 했습니다. 젖이나 먹는 것은 어린 아이입니다.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어야 할 터인데, 무슨 때가 오랬습니까 예수 믿는 때가 오래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제는 너희가 선생이 되어라 하는 말씀입니다. 이제 이 만큼 오래 믿 으면서 신앙 생활을 했으면 남을 가르치고 전도해야겠는데 왜 아직 못하느냐 자라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새 생명이 얼마나 귀합니까 한 심령이 하나님께 돌아오면 하늘에서도 기뻐서 잔치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 가정에서도 어린 아이를 낳으면 얼마나 기뻐합니까
그런데 이 아이는 매일 매일 자라나야 합니다. 뒤집을 때 뒤집고, 배밀이 할 때 배밀이 하고, 길 때 기고, 앉을 때 앉 고, 설 때 서고, 걸을 때 걷고, 뛸 때 뛰고, 말할 때는 말하고, 키도 1년 되면 돐이 된 아이만큼 자라야 하고, 일곱살이 되면 국민학교 1학년 아이 만큼 자라 야 하고, 20년쯤 되면 건장한 청년으로 자라서 자기 마음대로 일하게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1년이 되어도 5년이 되어도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아이가 있다면 얼마나 가정에 걱정이 되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심령은 어떤 상태입니까 예수 믿은지 5년 이 되고 10년이 되었어도 아직 혼자 서지도 걷지도 못하고 젖이나 먹는 상태는 아닙니까 칭찬해야 좋아하고 바로 되라고 책망하면 이것을 소화시키지 못해서 나온다 안나온다 하면서 야단하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심령이 자라나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나야 합니다. 왜 우리가 자라나지 못합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게을러서 그렇습니다. 성경 공부하는 일에 게을러서 예수 믿은지 10년이 되어서도 성경책 하나 제대로 찾지를 못합니다. 기도하기를 게을러서 교회의 직분까지 맡았는데도 기도하나 제대로 하지 못해 기도 시킬까봐 눈치보고, 시키면 쩔쩔 맵니다. 게으르다 보 니까 벌써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아직도 어린 아이가 되어서 젖이나 먹고 단단 한 식물을 먹지 못해 교역자 속 썩이고 하나님 마음 상하게 하는 분은 안계십니 까 마틴 루터의 작품 중에 이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마귀 다섯이 있는데 졸병 넷이 세상에 나가서 일하고 와서 대장 마귀에게 보고를 합니다.
첫째 마귀가 저는 저 사막의 맹수들을 풀어 놓아 그리스도인 들을 다 잡아 먹게해서 지금 사막에는 뼈만 딩굴고 있습니다 . 마귀 대장하는 말이 그것 쓸떼 없다. 예수쟁이들은 짐승한테 잡아 먹히면 그 영혼은 구원 받 어 .
둘째 마귀 저는 지중해에서 예수쟁이들이 타고 가는 배를 파선하게 해서 그놈들이 전부 고기밥이 되게 하였습니다 . 마귀 대장하는 말이 그것도 쓸데 없어. 그것들이 고기밥이 되었어도 영혼은 구원 받지 않았니 세째 마귀도 열심히 보고합니다. 대장님, 저는 유사 이래 독재 군주들과 유물주의자들과 폭군들을 동원 전멸시켰습니다 . 대장 마귀가 듣고 있다가 수 고는 했지만 그것도 소용이 없어. 예수쟁이들은 감옥에 갇혀도, 매를 맞아 죽어 도 그 놈들의 영혼은 구원받는데 무슨 상관이냐 이 때 네번째 마귀는 미안한 듯이 대장의 눈치를 살피며, 저는 뭐 특별한 거 한 것이 없습니다. 저는 한 여자 교인 뒤를 10년을 쫓아 다녔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 교인이 얼마나 열심 히 믿는지요. 10년을 쫓아 다니면서 어떤 때는 고통을 주고 어떤 때는 평안하고 형통하게 하는 동안에 성경도 별로 안보게 되고 기도도 별로 안하고 주일도 한 주일 두 주일 빠지게 되더니 이 부 인이 그만 맥을 못추고 그만 둡디다 . 이 보고를 듣고 있던 마귀 대장이 무릎 을 치면서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 가 큰 상을 주마 했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사탄은 오늘도 우리를 찾아와서 다른데 관심을 쏠리게 하고 믿음에 대하여 무관심하게 하려고 합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이 큰 구원을 등한히 하지 맙시다.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 합시다. 우리의 심령이 자라지 못하고 그 자리에 있지는 아니합니까 부지런 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어 주를 섬겨 하나님이 원하시는 많은 열매 맺기 를 바랍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673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