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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신앙 (히4:12-13)

본문

12월둘째 주일은 성서주일입니다. 오늘은 성경을 생각해 보는 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성경을 주신 것은 굉장한 축복입니다. 이 성경은 보물 중의 보물입니다. 성경 속에는 이 세상의 모든 비밀과 지식과 이치가 다 들어 있습니다. 우주 만물의 신비스런 비밀에서부터 우리 인간의 죽음 문제, 부활 문제가 들어 있고 더 나아가서 우리의 운명과 미래가 다 여기에 들어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 성경은 모든 문제의 해답서입니다. 그래서 삶에 관심이 있고 지작이 있는 사람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지침서입니다. 그렇지만 삶의 좀더 깊은 문제에 대하여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이 책은 아무런 유익이 없는 책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이 책은 재미도 없고 흥미도 없고 의미도 없는 그래서 읽으면 골치만 아프고 금방 잠이 오는 그런 책입니다. 참 불행한 일입니다.
1. 그럼에도 금년에 와서 성경을 한 번씩 읽으신 분들이 있습니까 성경책을 한 번 다 읽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 성경책은 자그마치 1,754페이지나 됩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으려면 특별한 인내가 필요합니다. 창세기나 출애굽기 그기고 신약성경은 좀 읽기가 쉬운데 그 밖의 책들은 읽기도 어렵고 재미도 없습니다. 특별한 인내의 마음이 없으면 읽기가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다 읽으신 분들은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무엇인가 새로운 깨달음이 있을 것입니다. 교회의 지시에 따라서 1년에 한 번씩은 꼭 읽으시기 바랍니다. 다 읽으신 후에는 책머리에 몇 년 몇 월 며칠 몇 시에 다 읽었다고 기록해 놓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해서 일생 동안 몇 십번씩 읽으시면 세월이 흐른 후에 생각해 보면 그것은 굉장히 좋은 자산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을 읽기도 어려운 일인데 이 성경을 일일이 손으로 한 자 한 자 다 기록한 분들도 있습니다. 이것은 위대한 역사입니다. 이것은 평생에 자랑거리가 될 것입니다. 구약성경은 모두 39권 929장 23,214절,
2,728,110자입니다. 신약성경은 27권 260장 7,959절 838,380자입니다. 숫자를 세기도 어려운데 이 글귀들을 모두 손으로 쓴 것입니다. 얼마나 위대한 역사입니까 아마도 평생에 자랑거리가 될 것입니다. 성경을 이렇게 읽고 손으로 쓰다 보면 주어지는 축복이 몇 가지 있습니다.
1. 하나는 눈이 열리는 축복입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눈이 열립니다. 어떤 분은 글을 모르는 문맹인이었는데 성경을 읽다 보니 글을 읽을 수 있도록 눈이 열린 분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이것은 성경을 읽음으로써 주어진 축복입니다. 그런가 하면 영의 눈도 열립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영적인 눈이 열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세계에 대해서 견해가 달라지고 시야가 달라집니다. 이것도 성경을 가까이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축복입니다. 책을 읽지 않는 분은 지성의 문이 열리지 않는 것처럼 성경책을 읽지 않으면 영적인 눈이 열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멀리하는 분들은 10년을 믿었어도 영적으로는 문맹인 셈입니다. 이 성경은 영감으로 쓰여진 책이기 때문에 읽는 사람만이 영적으로 깨달음이 주어지고 영적인 시야가 넓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가까이하고 자꾸만 읽으라고 권고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물론이고 믿지 않는 사람들도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성경을 읽어야 영적인 시야가 넓어집니다. 성경을 읽음으로써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뜻, 성령님의 역사, 그리고 하나님의 예언죈 장래의 일들을 머리 속에 그리게 됩니다. 그러면 그 그림은 그림으로 끝나지 않고 현재의 삶에 그대로 영향을 미치게 되고 마음에 영적인 어떤 환상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마샬 맥루안이라는 분은 “책은 현실을 상징으로 바꾸어 놓는다”고 했습니다. 이를테면 어린 아이들 책을 보면 그런 이야기를 써 놓았습니다. “영이와 철수가 그네를 탔다”라고 하면 눈으로는 글씨를 보고 있지만 머리로는 현실감 있게 상상하고 생각하고 두뇌는 열심히 그네를 타는 그림을 그립니다. 그래서 사람이 책을 읽으면 눈과 두뇌가 함께 열심히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그림이 마음속에 그대로 각인이 됩니다. 그래서 책을 많이 읽으면 두뇌의 활동이 풍부해져서 인성이 발달되고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어 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책을 읽지 않고 TV를 많이 보면 바보가 된다고 합니다. 사람이 TV를 보면 눈으로는 보는데 상상력이나 두뇌의 움직임은 순간적으로 멈추어 버린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야기와 화면이 그대로 함께 나와 버려서 생각하고 상상할 일들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TV를 볼 때 입을 벌리고 보는데 그것은 두뇌의 활동이 멈춰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긴장이 풀리면 입이 벌어지게 되고 그래서 침을 흘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때 뭔든지 넣으면 그대로 머리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TV를 바보 상자라고 합니다. 욥기 4:12를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조용히 귀에 속삭인다고 했습니다. “(욥4:12) 무슨 말씀이 내게 가만히 임하고 그 가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렸었나니” 하였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어 골수를 찔러 쪼갠다고 했습니다. 시편 “(시107:20)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경에서 건지시는도다” 하였습니다. 매 맞는 자리를 싸매고 고쳐 준다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벧전1:23)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때묻은 영혼을 씻어서 거듭나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 성경입니다. 존 웨슬리가 이 같은 영향을 받아서 영국 사회에 영적인 혁명을 일으켜 새롭게 변화하게 하는 일대 혁명을 일으켰다고 하지 않습니까 성경은 이렇게 사람들로 하여금 눈이 열리게 해줍니다.
2. 그런가 하면 성경을 읽으면 “인간의 운명”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 속에는 인간이 가야 할 길이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책 속에는 나의 갈길이 예언되어 있고 나의 운명과 나의 죽음의 문제와 죽음 후의 스케줄까지 다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성경책만 자세하게 읽어 보면 인간의 갈 길에 대해서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성경책을 모르면 앞일을 알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살면서 애매한 태도를 나타내는 것은 모두 이 성경책을 읽지 못해서입니다. 어떤 시집을 보니까 그런 시가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왔노라 어디서 온지도 모르면서, 나는 있노라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나는 가노라 어디인지도 모르면서, 나는 죽노라 죽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얼마나 애매모호한 시입니까 사람이 성경을 모르니까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요즘 창조론과 진화론이 흥미거리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창조론은 교회에서나 말하는 정도였는데 이제는 학교의 교과서에서 진화론을 빼고 창조론을 넣자는 단계까지 왔습니다. 많은 발전을 가져 왔습니다. 왜 진화론이 생겨났느냐 하면 성경에 대한 지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자연스럽게 연구되기 이전에 이 진화론이 나왔습니다. 인간의 생성 과정을 잘 모르니까 진화론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에 성경 외에 인간의 생성 과정을 말한 책이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성경책은 모든 문제의 해답서입니다. 성경 속에는 인간의 운명과 갈 길이 기록되어 있고 이 세상의 미래가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죽음을 대비하고 부활을 대비하고 심판을 대비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우리의 운명과 미래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성경은 우리 인간의 “존재 의미”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왜 태어났는가, 인간으로 태어나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인간은 무슨 의미로 살아야 하는가, 그것을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먹고 사는 것만으로 끝나는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의 존재 의미는 반드시 구원받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바라시는 참 인간은 그 입에서 구원의 찬송이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구원의 기쁨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성경이 말하고 하나님이 바라시는 인간의 삶의 의미입니다. 사람이 태어나 살아가면서 불평이나 하고 탄식이나 하고 원망과 시비나 하다가 죽는다면 그것은 인간으로 태어난 의미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밀턴의 “실락원”을 보면 구원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은혜로움과 고의로우심을 찬양하면서 천국으로 올라갑니다. 얼마나 멋진 장면입니까 사람이 사람으로 태어나서 보람 있는 모습으로 살아가다가 마지막 갈 때는 그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가는 모습, 그 모습이 얼마나 멋진 모습입니까 그것이 인간의 가치입니다.
그런데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면서 지옥으로 떨어집니다. 불평 때문에 지옥을 가면서도 또 불평을 하면서 갑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구원받고 은혜를 입고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이렇게 중요한 일입니다. 인간은 이렇게 인간으로서 살아가야 하는 모습이 있고 길이 있고 방법이 있는 것입니다. 실낙원 지옥편을 보면 그곳에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이 득실거리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 영혼들이 지옥이 너무 뜨거워서 견디기가 힘드니까 탄식합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예수나 믿을 걸”하면서 탄식을 합니다. 그때 곁에 있던 마귀가 지껄입니다. “이 놈들아, 이를 갈아라, 네가 피눈물을 흘리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다.” 마귀는 지옥에서도 하나님을 향해서 빈정됩니다. 우리들이 하나님 안에서 살면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게 됩니다. 이것이 인간의 가치이고 구원받은 축복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밖으로 떨어지게 되면 하나님을 욕하고 불평하는 사람이 됩니다. 이것을 보면 사람이 구원을 받고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삶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사람으로서 의미를 알고 산다는 것이 이렇게 중요한 일입니다. 이 의미를 모르면 원망에 빠지고 불평에 빠지고 허무에 빠지게 됩니다. 헤밍웨이는 소설가로서 인기를 누렸던 사람이지만 명예와 부귀가 그에게 참된 삶의 의미를 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그는 “이 세상은 허무뿐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총구를 입에 물고 방아쇠를 당겨 자살해서 죽고 말았습니다. 명예와 돈과 인기가 그에게 아무런 힘이 되어주지 못했습니다. 사람이 성경을 모르면 이렇게 허무를 좇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의 영과 혼과 관절을 찌르고 쪼개는 역사를 한다고 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강력한 능력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오는 데도 그것을 모르니까 그힘이 내게 미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부터 아는 것이 힘이라고 했습니다. 모르면 할 수 없습니다. 또 성경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있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볼 수는 없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볼 수 있다면 그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신은 인간에게 보여지고 나타나고 만져지는 그런 물질이 아닙니다. 신은 인간과 다르고 물질과 다르기 때문에 신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지만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지신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만일 오늘 예수님이 남기고 가신 물건이 하나라도 있어 보십시오.
그렇다면 사람들이 속성상 사람들은 그 물질을 예수보다 더 귀하게 섬길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이 땅에서 사라지면서 실오라기 하나, 신발짝 하나 남긴 것 없이 사라지셨습니다. 적어도 이 땅에는 하나님에 대한 흔적이라든가 예수님에 대한 흔적은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보고 만져서 알 수 있는 물질은 한 점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성경 때문입니다. 이 책을 펴면 이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 하나님은 이 책 속에서 영감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고 우리를 만나시고 우리에게 감화하십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사람만이 영감으로 그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책의 가치이고 의미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성경을 “아기 예수가 누워 계신 요람”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나시기 위해서 아기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는데 우리는 이 성경을 통해서 그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책을 읽다가 보면 예수님의 교훈을 닮아가게 되고 예수님의 수준으로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하나의 기준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그 기준에 자기를 맞추게 되고 그 기준을 향해서 노력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그렇게 살다 보면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는 그 기준에 가까이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사람은 살아가는 데 하나의 기준이 필요합니다. 하나의 모델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모델에 자기를 맞추는 것입니다. 그 모델이 뭐냐면 성경입니다. 성경 속에서 우리는 예수라는 인물을 만나게 되고 그의 가르침이나 삶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의 모델로 만나게 됩니다. 신앙인은 성경을 가까이하고 살아갈 때 그 속에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인격을 닮고 가르침의 정신을 따라서 세상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이 성경을 주신 것은 축복 중의 축복입니다. 그런가 하면 성경을 읽으면 “역사 체험”을 하게 됩니다. 신앙인들에게는 이것이 참 중요한 경험입니다. 성경을 많이 읽는 것이 능사는 아닙니다. 아무리 많이 읽어도 역사 체험을 하지 못하면 큰 힘이 되지 못합니다. 성경을 보면 서기관들이 나오고 바리새인들이 나옵니다. 이들은 성경을 쓰는 필사 자격증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서기관들은 평생을 성경을 쓰고 필사하는 일으 직업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평생 성경을 얼마나 많이 읽고 쓰고 했겠습니까 또 바리새인들은 평생 성경을 외우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매일같이 성경을 곁에 두고 외우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지만 불행하게도 그들은 성경을 읽고 쓰면서도 역사 체험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성경을 읽으면서 그토록 기다리던 예수님이 오셨는데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 앞장을 섰습니다. 얼마나 역설적인 이야기입니까 성경의 가치는 쓰고 읽고 외우는 일이 다가 아닙니다. 역사 체험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곳에서 맛을 알고 깊이를 알고 능력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주는 축복입니다. 성경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그 말씀이 주는 뜻과 의미와 교훈이 없으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소설책은 재미나 있지 성경책은 무슨 재미가 있습니까 이 말씀이 영적으로 체험되고 역사되지 않는 사람에게는 이 책은 아무런 힘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본문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어서 좌우에 날선 검보다도 더 예리하여 사람의 영과 혼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말씀의 역사 체험입니다. 이런 체험이 있는 사람이 이 책을 읽을 때 잠을 자고 한눈을 팔겠습니까 그래서 시편 “(시119:103)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말과 꿀보다 더 하니이다”고 했습니다. 바로 말씀으로부터 역사 체험을 했다는 말입니다. 성서주일을 맞이해서 이 같은 축복이 있으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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