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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세 가지 눈물 (히5: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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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한 평생을 살아가노라면 많은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슬픔에도, 기쁨에도 외로움에도 억울함에도 안타까워서 흘리는 눈물이 있으며 그리고 동 정의 눈물과 답답함의 눈물도 있을 것입니다. 아마 눈물 없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과학적으로 눈물을 분석하면 눈물샘에서 분비되는 약한 알칼리성의 액체인 물방울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이 눈물속에는 과학으로 발견할 수 없는 수 많은 종류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버리우즈라고 하는 사람은 눈물은 강철을 녹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 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알칼리성분의 액체에 지나지 않지만 무쇠 같은 마음 을 움직이고 녹이는 데는 이 눈물을 능가할 힘이 별로 없는 것같습니다. 테니슨은 '신부'라는 그의 저서에서 그대의 숨길 수 없는 눈물 때문에 그 대를 사랑했노라고 했습니다. 이는 눈물이 에로스적인 애정의 의미를 담앗 을 때에는 무한한 애정의 웅변이 되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렇듯 눈물은 인 류역사 속에서 불완전한 인간의 각종 감정을 표현하는 가장 강한 것으로 이 용되어 불완전하지 않은 분이 있다면 단연 예수님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완전하신 분이였던 예수님도 눈물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과연 예수님께서도 눈물을 흘리셨을 까요 흘리셨다면 몇 번이나 흘리셨을까요 흘 리셨다면 몇 번이나 흘리셨을까요 그것에 대한 해답은 그분의 일생을 따라 다녀보지 않고서는 말할 수가 없겠습니다만 예수님의 생애가 기록된 복음 서를 통해서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복음서를 통해서는 예수님께서 일생을 사시는 동안에 세번 우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 첫번째는 요한복음 11장 35절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사랑했던 나사로의 죽음을 보고 우신 것입니다. 이것은 연민의 정에서 나오는 동정의 눈물입니다. 두번째는 누가복음 19장 14절에 있는데 죄의 값으로 멸망당해야 할 예 루살렘을 보고 우셨습니다. 이것은 자기민족을 향한 동족애의 눈물이었습니다. 그리고 세번째는 오늘 본문의 히브리서 5장 7절에 나오는 대로 겟세마네 에서의 고난 앞에서의 눈물이었습니다. 이 눈물은 인류 구원을 위한 사명의 눈물이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예수님은 일생을 통하여 세번의 눈물을 보이셨는데
그렇다면 성도 된 우리의 삶 속에는 어떤 눈물이 있어야 할까요 성도이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눈물을 쏟을 수는 없습니다. 흘려야 할 눈물 이 분명히 따로 있습니다.
1. 참회의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시편 6장6절에 다윗의 참회가 눈물 속에는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밤마다 눈물로 침상을 띠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이 눈물은 다윗이 아차 실수로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난 뒤 선지자를 통하여 자신의 죄를 발견하고난 뒤 하나님께 통회하며 자복하는 참회의 눈물을 이야기합니다. 밤마다 침상을 띠우며 요를 적셔내니 얼마나 많은 눈물이 흘렀겠습니까 이 참회의 눈물이 있었기에 하나님의 용서하심이 있어 그의 왕위가 더욱 견고 해졌고 가문은 빛날 수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있으면서도 그들이 흘린 참회의 눈물이 있었기에 그들은 귀환할 수가 있었습니다. 베드로 역시 주님을 부인한 자신의 모습에 대해 참회의 눈물이 있었기에 강력한 복음의 전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들도 순간순간 짓는 죄에 대해 참회하는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때로는 한 밤중의 침상에서 때로는 기도하는 골방에서, 때로는 새벽의 성전에서 라도 이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영국의 시인인 무어의 작품 '낙원'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선녀가 낙원의 문을 통과하기 위해 땅위에서 가장 용감하고 유명했던 한 애국전사의 마지막 피 한방울을 가지고 갑니다. 그러나 낙원의 입구에 서 그것으로는 안된다고 거절당합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기구한 운명으로 생애를 마치는 한 여인의 마지막 한 숨을 가지고 갑니다. 그러나 역시 거절 당하고 맙니다. 선녀는 마지막으로 한 노인의 참회의 회개의 눈물을 가지고 갑니다. 이때 비로소 낙원의 문은 열렸습니다. 나라를 위한 피흘림이나 이 웃의 동정이나 희생으로 열 수 없었떤 낙원의 문이 참회의 눈물로 인해 열 렸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유명한 스펄전 목사는 마른 눈으로 천국에 갈 수 없다(No comming to heaven with dry eyes) 라고 하였다. 로마서 3장 10절에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라고 하며 인간의 죄를 열거해 놓았습니다.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혀는 속이믈 베풀고,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며, 발은 피흘리는데 빠르고,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다라고 합니다. 우리의 삶이 무엇하나 죄에 연계 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삶이 무엇하나 죄에 연계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참으로 이 죄의 자리에서 벗어나려면 참회의 눈물의 신앙이 있어 야 합니다. 하나님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면서 자신의 삶과 온몸으로 지어 버린 죄에 대하여 참회개의 눈물을 흘려 보지도 못한 채 오늘까지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해오시고 있다면 그것 자체가 기적입니다. 믿음의 맛으 모르고 기독교를 가진 것이며 천국의 기쁨없이 천국의 길에 서 있는 것이며 주님의 고난을 이해하지 못한 채 십자가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2. 감사의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103편에서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니 "라고 성도가 길이 기억하여야 할 은혜가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누가복음 7장 36절 이하에 옥합향유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시몬이라고 하는 한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자기집에 초대합니다. 그때 같은 마을에 사는 한 여인이 흐르는 눈물과 자신의 고귀한 머리칼로 먼 길을 걸어오신 예수님 의 발을 씻기고 그렇게 아끼던 향유가 든 옥합을 깨어 예수님께 부어 드립니다. 주변의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으나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을 칭찬하 셨습니다. 이 여인에게는 자신의 삶에 구원이라는 생기를 불어넣어 주신 예수님께서 대한 뜨거운 감사가 있었기에 눈물이 있었으며, 헌신이 있을 수가 있었으며 귀한 물질이라도 아낌없이 주님께 드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성도에겐 감사의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감사의 눈물은 아무에게나 있지는 않습니다. 적어도 다음의 두가지 사실을 감격의 은헤로 가진 자만 이 감사의 눈물을 가질 수 있으니 그 첫째는 그리스도를 알기 전의 나의 모 습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죄인이요, 멸망과 저주를 지고 살며 영벌 과 지옥의 길에 있던 나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그리스도를 만나 후의 나를 알아야 합니다. 죄의 사람이 구원의 사람으로 되었으며 멸 망과 지옥의 사람이 영생과 천국의 사람이 되었으며 썩어질 몸이 부활의 권세를 입으며 말세심판에 따라 환란의 고통에 가야 할 내가 공중에서 주님과 혼인잔치를 치루는 신부가 되었으며 천하디 천한 내가 가장 존귀한 하나님 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실패와 고통이 나날들이 눈동자 같이 지키시는 하나님의 성품에서 성공과 평강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무 엇을 보셨을까요무엇이관대 나를 사랑하셔서 이런 축복을 주시는지 감격하 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라도 단 한번 사람을 통하여 입은 은혜일망정 은혜를 잊는 사람처럼 못된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 으로부터 만가지 은혜를 받았으면서도 받은 은혜가 없는 것처럼 사는 우리는 아니었습니까 감사는 모든 축복과 은혜의 근본입니다. 감사라는 말은 헬라어로 '유카라 스테오'라고 하는데 이 말 안에는 축복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으니 참 축복은 감사에서 비롯된다는 것이요, 기쁨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니 감사하는 신앙에 이를 때 참 기쁨을 누리는 것이며 은혜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으 니 감사는 은헤가 임할 때 생긴다는 것입니다. 이 감사가 넘치면 하염없는 눈물이 나도 모르는 새에 흐르는 것입니다.이 맛을 모르고는 주를 위해 충 성도 이웃을 위해 봉사도 할 수 없습니다. 감사의 눈물이 마르지를 마시기 바랍니다.
3. 동정의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11장에서는 나사로의 죽음과 소생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나사로가 죽어 장사된 자리에서 주님은 함께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이 눈 물은 참으로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애도하는 눈물이요 사랑하는 가족의 슬 픔을 함께 나누는 동정의 눈물이었던 것입니다. 세상의 사람들도 이웃의 슬 픔에 함께 슬퍼할 줄 아는데 하물며 한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신앙생활하는 성도들에게 있어서 이 동정의 눈물은 필수의 눈물입니다. 현재의 눈물을 함 께 나누어 흘릴 수 있어야 합니다. 외면해서는 안됩니다. 헤디슨 테일러는 영혼을 사랑할 수록 눈물이 많아지고 누물이 강물되어 흐 를때 하나님의 응답은 속히 실현된다고 눈물의 위력을 이야기합니다. 시편 126편에는 울며 씨를 뿌린지가 기쁨으로 단을 거둔다고 합니다. 이웃 의 영혼을 위해 복음을 전하며 흘리는 눈물을 반드시 하나님께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에는 말세의 현상을 이야기합니다. 말세에는 사람들이 자기 를 사랑하고 이웃에 무정하며 감사도 없고 교만하여 원한을 품지 않는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정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눈물이, 동정의 눈물 이 메마른 시대입니다.사랑하는 사람들의 영혼이 저주와 멸망에 있어도 눈 물을 흘릴 줄 모릅니다. 그 육체의 삶에 곤고를 당해도 자비의 눈물조차 말 라버렸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 속에 그들을 바라보며 뜨거운 눈물 흘림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눈물이 말라버린 세대를 따라 살지 말고 참회의 눈물로 구원의 반열에 굳 게 서서 하루하루의 생활에 감사하며 감격의 눈물로 찬송하며 형제를 사랑 하며 이웃의 고난을 나의 고난으로 나누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동정의 눈물 을 가지고 천국의 기쁨이 충만한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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