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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눈물 (히5:7)

본문

사람은 대단히 슬프거나 굉장히 기쁠 때도 눈물을 흘립니다.거짓된 눈 물도 있지만 그러나 대개의 경우 눈물은 우리의 마음속 진실에서 우러나 오는 것입니다.예수님은 공생애 기감 동안 '웃으셨었다'는 말은 한 곳에 서도 나오질 않습니다.그러나 예수님께서 우셨다는 기록은 세번이나 나타 나고 있습니다. 죄악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버림받고 절망가운데 허덕이는 인류를 주님 께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서 사역하시면서 남모르게 수없이 눈물을 흘리셨을 것입니다.
1. 나사로의 무덤으로 가시면서 우신 예수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오시면 베다니에 들렀는데 그곳에 갈 때마다 언 제나 마리아와 마르다와 나사로의 집에서 유하셨습니다.저들은 조실부모 하고 외롭게 살고 있었는데 주님께서 그들에게 마치 부모와 같이 대해주 고 형제와 같이 대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저 요단강 멀리 계실 때 나사로가 병들어서 죽게 됨에 마르다 와 마리아가 급히 사람을 보내어서 예수님을 청했으나 예수님이 나흘만에 왔었을 때는 이미 나사로는 죽어서 무덤에 들어가 있었습니다.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마르다가 뛰어나와서 슬피 울며 말하기를 "주께서 여 기게셨더라면 재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줄을 아나이다" (요한복음 11:21-22)라고 간구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오한복음 11:23)고 대답 하셨습니다.마르다는 오라비가 부활의 날에 다시 살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그때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 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 느냐" (요한복음 11;25-26)라고 마르다에게 반문했습니다. 여기에서 예수님과 마르다의 대답은 영원과 삼차원 세계의 대화인 것입니다.예수님은 나사로를 살리겠다고 하는데 마르다는 예수님이 죽기 전에 오셨으면 오라비 나사로가 살았겠다고 과거의 예수님을 인정했고 예수님 께서는 지금 살아날 것이라고 하자 그것을 감당하지 못해 미래에 부활할 것을 믿을 뿐이었습니다. 인간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냄새맡고 맛보고 손으로 만지는 체험의 세계 속에 살기 때문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분명히 분리됩니다.그러나 우리 주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인 것입니다.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도 없고 오늘로 없고 내일도 없이 영원히 동일하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우리 사람들은 언제나 하나님을 과거로 밀쳐 버리고 혹은 미래로 밀쳐 버리고 현재 우리 가운데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와 계시는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발버둥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성경은 말씀하기 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타복음 28:20)고 기록하고 있습니다.과거의 예수님,미래의 예수님,현재의 예수님 과 다르지가 않습니다.
그러므로 과거의 죄를 용서하신 그 예수님은 지금도 죄를 용서하시고 과거의 병을 고친 그 예수님은 지금도 귀신을 쫓아내시고 과거의 파도를 잠잠케 해주시는 것입니다.예수님은 이 시간에도 살아서 우리가운데 이 자리에 와 계신 것입니다. 마리아도 예수님이 계신 곳에 와서 보이고 그 발아래 엎드려서 "주께서 여기 계셨다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요한복음 11:32)라고 부르짖었습니다.역시 마리아도 마르다와 똑같이 과거의 예수님만을 인정 하고 현재의 살아서 와 계신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예수님께서 따라가시면서 마리아와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통분히 여기 시고 민망히 여기셨습니다. 세상에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이 그들을 도와주려고 왔는데 예수님이 계신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 하고 예수님께 의지하지 아 니하고 절망만 행각하고 울고 몸부림치는 것을 보고 주님께서 그들을 너 무나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무덤 앞에 선 예수님게서 "돌을 옮겨 놓으라"(요한복음 11:39)고 명하 셨습니다.그러나 마르다는 "주여 죽은 자가 나흘이나 되었으매 벌써 냄새 가 나나이다"(요한복음 11:39)라고 예수님께 말씀드렸습니다.예수님께서는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요 한복음 11;40)라고 마리아를 권면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원토록 동일하지만은 우리가 믿지 아니하면 주님은 우리의 믿음을 통해서 역사하시길 원하십니다.오늘도 주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찾고 계신 것입니다.우리의 믿음만 있으면 주님은 과거도 현재도 미 래도 없이 똑같이 역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여서 믿기만 하면은 예수 그리스도는 믿음 을 통하여 오늘날도 우리 가운데서 그 위대한 기적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인 것입니다.믿음이란 언제나 행함으로 증 명되고 행함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믿음이 있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무덤의 돌을 돎겨 놓아야 되는 것입니다.그들이 돌을 몰 겨 놓았을 때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의 발판에 서서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요한복음 11;43)고 외치셨습니다.즉시로 나사로는 수족을 동인 채 살아서 나온 것입니다. 주님이 우신 것은 주가 살아계셔서 우리 가운데서 기사와 이적을 행하 실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걸 믿지 못하고 "과거의 예수는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미래에는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지금은 안돼요"라고 말하며 믿지 아니하는 우리를 보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고민하는 모 습을 보고 주님은 민망히 여기사 우신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믿는 자들과 교회가 믿지 아니함으로 하나님의 영광과 능 력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주님께서 통분히 여기시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예수님께서 우리의 마음문 밖에서 문을 두드리면서 눈물을 흘 시고 계시지 않는지 점검해 봐야 합니다.
2. 예수살렘 성에 마지막 입성하시며 우신 예수님 누가복음 19장 41절로 44절에는 "가까이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가라 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었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서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믿는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 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주님께서 눈물을 흘리실까요이스라엘 백성의 멸망을 막기 위해 삼 년여 동안 혼신의 힘을 다해서 복음을 전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과 함께힘을 합쳐서 예수님을 죽이려 했던 것입니다.그 리고는 곧장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아서 이방인에게 내어주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만든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 말씀하신 대로 40년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로마에 항거하 여 반역을 일르켰습니다.예루살렘성을 공격해서 3년만에 주후70년 함락되 고 그들이 60만 유대민족을 죽엿습니다.열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던지 피 가 강물같이 흘러 예루살림의 집에 불이 피로써 꺼졌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그리고 성전이 회파되었습니다.성전안을 금으로 장식햇는데 성전이 불에 타자 금이 다 녹아서 돌사이로 흘러 들어갔고 로마군인들이 금을 캔 다고 돌하나도 돌위에 남지 않게 다 무너뜨리고 회파시켰습니다.이래서 예수님게서 예루살렘에 멸망을 보시고 그는 통곡을 하고 우셨습니다.오늘 날도 주님은 이 세상의 멸망을 보시고 보좌에서 눈물흘리고 계십니다.성경 다니엘서 9장 27절은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 언약을 궂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 며 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이미 물건이 날 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 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종말의 사람들은적 그리스도에게 짖밟혀서 숨소리도 내지 못하고 처참함 죽임을 당합니다.그것 을 보고 주님게서는 이미 그것이 이루어질 것을 환히 아시고 보좌에서 눈 물을 흘리실 것입니다.이와같은 비극이 오늘 미래의 세게에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루살렘성의 멸망을 바라보고 눈물을 흘리며 우신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이 세상에 종말과 거기에 다가올 처참한 환란을 바 라보고 우십니다.주께서 "내가 너를 암탉의 병아리를 날개 밑에 품을려고 애를 쓴 것같이 땅끝까지 전도하며 품을려고 애를 썼는데 너희는 나를 배 반하였도다 보라 이제 너희와 너희 자녀들이 처참한 고난을 당할 것이요 죽음이 온 땅을 휩씁려고 할 때 너희들은 그 고통속에 빠지겠구나"라고 이 땅을 바라보고 통곡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열심히 전도하는 것은 마지막 때에 당할 그 처참 한 고통에 가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가 열심히 전도하는 것이요, 그 이후로 주를 배반하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지옥에 떨어져서 세세 무궁 토록 고초당할 것을 우리가 바라보고 그들을 고난에서 건지기 위해서 열심히 전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믿지 않고 자꾸 거역하며 죽음을 자초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십니다.예루살렘 조그마한 성의 멸망을 향해서 도 눈물을 흘리신 예수님께서 세계의 멸망을 향해서 어찌 피눈물을 흘리 지 않겠습니까 주님은 살아계시기 때문에 고난당하는 사람들,멸망당하는 사람들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3. 겟세마네 동산에서 눈물 흘리신 예수님 주님이 통곡하며 우실 때 얼마나 간절했던지 그 피하의 모세 혈관이 터 져서 땀이 핏방울이 되어서 그 몸을 젓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왜 겟세 마네 동산에서 우셨습니까 사람이 다 떠나가 버리고 오직 혼자 남아서 고난을 당할때 그 외로움 속에 사람은 울게 되는 것입니다.외로움이란 무 서운 것입니다.성경은 그렇게 말합니다."그는 별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싣 어버린 바 되었느며 간고를 많이 겼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 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 도 그를 귀히 여가지 아니하였도다"(이사야 53:3)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이와같이 예수님께서는 완전히 버림받아 겟세마네 동산에서 통곡을 하 고 울었습니다.고독은 하나님아들조차도 울게 만들었습니다.그리고 예수님께서 우신 것은 대속의 잔을 마시기가 너무 괴로웠기 때문입니다.예수님께서는 할 수만 있으면 그 잔을 옮겨 달라고 간구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마시라고 내놓은 잔을 보니 창세이후로 인간이 지은 모든 더러 운 죄악이 다 담겨 있었습니다.우리의 모든 지옥 죄악이 주님께서 마실 잔에 다 담아 있었습니다.우리가 받을 저주를 다 담아놓고,우리의 질병을 다 담아놓고,우리의 죽음을 다 담아놓고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마시라 네 가 대신마시라 네가 이 잔을 마시면 세상사람들을 구원할 길이 열린다"라 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하나님의 아들만이 그 잔을 마시고 죽었다가 살 아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이 잔을 마시라고 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 잔을 볼때 너무나 고틔스러우셨을 것입니다.마가복음 14장 33절로 36절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 때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말씀하시되 네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 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있으라 하시고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려 될 수 있는데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가라사대 아바아버지 여 아버지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그러나 나의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하시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예수님은 그 고통의 잔 앞에서 통곡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주가 받으신 잔이 얼마나 쓰디쓴 잔이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됩니다.하나님의 아들이 그 잔을 들고 통곡을 하고 울 었다는 것은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볼 일인 것입니다.성경은 "그가 찔림은 우리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 죄악을 인함이라 그자 징계를 받 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짹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 도다 우리는 다 양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길로 갔거늘 야웨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히키셨도다"(이사야53:5-6)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우리의 모든 것은 주님이 대신 마셨습니다.어느 종교 지도자가 인류룰 대신해서 그들의 모든 잘못을 대신 책임지는 종교주의자가 있습니 까 이 세상에는 훌륭한 종교지도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석가모니도 훌 륭한 종교적인 철학을 주었습니다.공자도 맹자도 훌륭한 윤리와 도덕을 주었습니다.그러나 인류를 위해서 그들의 모든 반역의 죄를 대신 마시고 걸머져서 청산해 주는 자는 우리주 얘수 그리스도밖에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또한 하나님께로부터 분리당할것을 생각하고 두려워서 떨며 울었습니다.창세후로 한번도 하나님과 나누어 진 적이 없는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죄때문에 그 잔을 마시고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았습니다.그래서 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던 예수님은 십자가에선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고 하나님이라고 브르셧습니다.하나님이 부자비하게 심판하셧습니다. 이것을 생각하고 그는 몸부림치며 울었습니다. 이러므로 예수님은 당신 고난을 당하고 눈물을 흘미며 몸부림쳐 봤기 때문에 고난당하는 사람의 심정을 알고 그 형편을 알고 계십니다.히브리 서 2장 17저로18절은"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 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잘들 을 능히도우시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주님께서 직접시험을 당하시 고 직접 고난당하시고 눈물을 흘리셨기 때문에 오늘날 시험을 당하고 고난을 당하여 눈물 흘린자의 심정을 주님은 너무나 장알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눈물흘린자 곁에 있어서 주님은 오늘날 우리를 도와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힘을 주시고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이러기 때문에 이러 한 주를 우리가 가졌으니 이 어지 감사하지 않습니까우리를 위해서 울어 주시는 우리구주,눈믈을 흘려주시는 우리 구주,그 눈물속에 나타난 그 큰 사랑과 자비를 우리는 가슴깊이 느끼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의 눈물로 태어난 자녀들인 것입니다.오늘도 예수님은 우리들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계십니다.우리는 예수님의 눈물을 닦아드리 고 예수님의 마음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녀가 되기 위해서 혼신의 노력을 다해야 될 것입니다.그리스도 피속에는 주님의 눈물이 있습니다.깨어진 몸속에 주님의 눈물이 있고 흘리신 그 피의 잔에 그리스도의 애타는 눈물 이 있습니다.우린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깨어진 몸을 먹고 흘리신 피를 마 실때 그리스도의 통곡을 기억하고 그리스도의 눈물을 기억하고 우리의 죄 를 회개하고 우리의 반역적인 행동을 회개하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 고 정성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리주 예수님을 사랑하고 주님께 충성 하여 여생을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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