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믿음의 삶을 위하여(4) (히6:1-2)
본문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히6:2)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 나아갈지니라” 오늘도 우리는 계속하여 성숙한 믿음의 삶을 위한 가장 초보적이며 기초적 진리를 듣고자 합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엔 세례와 안수에 대해 들었습니다. 세례는 죄사함을 받은 표입니다. 그리고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새사람으로 다시 사는 표입니다. 또한 세례는 교회 안에 공식적으로 들어오는 거룩한 예식임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던 사람이 이제 세례를 통해 하나님의 교회에 정식 회원이 되는 것입니다. 단 하나 뿐인 우주적인 교회에 들어와 정식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안수는 교회의 직무를 구별하여 맡기는 의식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간구할 때 손을 얹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례와 안수는 기독교의 외적인 의식입니다. 오늘 우리는 또다른 기독교의 진리를 듣고자 합니다. 우리가 기독교의 터와 기초가 되는 교리를 확고히 아는 것은 우리 신앙의 굳건한 토대가 됩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성도로 발돋음 하기 위해서는 이 기본적인 교리들을 익히 알고 확신해야 합니다. 그럼 우리가 성숙하고 온전한 성도가 되기 위해 믿어야 할 기초적인 교리의 또 다른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리입니다. 오늘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히6:2)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 나아갈지니라”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기초가 되는 또 다른 교리를 부활과 영원한 심판의 교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오늘이 부활과 심판의 교리도 서로 짝을 이루고 있습니다. 부활이 있고 심판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최후의 심판은 부활 이후에 곧 이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활과 심판은 서로 연관된 중요한 교리입니다. 그럼 먼저 부활을 생각해 봅시다. 부활이란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은 육체가 죽은 후에 그 몸이 새로운 몸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부활에 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고전15:42)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고전15: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고전15: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그런데 이 부활은 두가지 종류의 부활이 있습니다. 하나는 영생을 얻기 위한 생명의 부활이요 또 다른 하나는 영원한 심판을 받기 위한 심판의 부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요5:28-29). (요5:28)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요5: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예수님께서는 먼저 “이 일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고 그 서두를 꺼내십니다. 사실 죽은 자가 다시 산다는 것은 기이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부활도 모든 인류가 다시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역사 이래 죽었던 모든 인류가 다시 산다는 것입니다. 선한 일은 한 사람이나 악한 일을 한 사람이나 전부 다 부활한다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이한 일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못믿을 기이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일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고 하십니다. 분명히 일어날 일이며 하나님의 권능에 의해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부활은 두가지 목적을 위해 일어 날 것이라고 하십니다. 영생을 위한 부활과 지옥의 심판이 그것입니다. “(요5: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여기 “생명의 부활”은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그리고 “심판의 부활”은 부활하여 지옥의 형벌을 받는 것입니다. 이렇게 분명히 부활은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일어날 것입니다. 이렇게 부활은 모든 인류의 부활이 될 것입니다. 믿는자들이 부활 할 것입니다. 불신자들도 부활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최종적인 운명은 하늘과 땅 차이 일 것입니다. 믿는 자들은 영생을 얻어 새하늘과 새 땅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들은 영원한 지옥의 불 못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시9:17) 악인이 음부로 돌아감이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열방이 그리하리로다 이렇게 부활은 심판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부활과 함께 심판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활과 심판은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는 교리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부활에 대한 믿음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따라서 몸의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은 기독교 신자가 아닙니다. 기독교 신자는 부활을 믿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부활에 대한 신앙이 있었기에 로마 황제들의 모진 핍박과 살해에도 믿음을 버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순교자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부활 신앙은 기독교의 심장이요 능력입니다. 이 부활은 예수님께서 명백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5:28-29)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요11:25-2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렇게 부활은 예수님께서 명백히 말씀하신 진리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친히 죽었다가 사셨습니다. 장사된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셨습니다. 부활하신 저녁엔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의심했던 도마는 예수님을 만지기 까지 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음식을 드셨습니다. 그리고 이 땅 위에서 무려 40일간이나 친히 부활을 증거하시며 사셨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부활은 부활의 실존을 보여주시는 역사적 증거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부활한다는 확실한 증거이기도 합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습니까 그리고 여러분 자신이 죽어도 다시 산다는 것을 믿습니까 부활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결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한 종교를 가진 사람은 되어도 크리스챤은 아닙니다. 크리스챤은 기독교의 기초적이며 터가 되는 기독교 교리를 확고히 믿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구도 부활을 부인하는 자는 결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가 목사요 신학 교수라도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직업적 종교인은 될 수 있어도, 성도요 하나님의 백성은 아닙니다. 부활에 대한 신앙은 기독교 신앙의 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부활의 신앙은 성도의 삶을 소망있게 합니다. 현재의 고난이 매우 커도 장차 나타날 영광을 생각하며 이기게 하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롬8: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장로교회의 창시자라 일컬어 지는 칼빈 선생도 이 말씀을 즐겨 암송했습니다. 그가 55세의 일기로 숨을 거둘 때 이 말씀을 반복하였다고 합니다. “(롬8: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또한 부활의 신앙은 성도의 삶을 거룩하게 합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증거합니다(고전15:31-3
4). “(고전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전15:32) 내가 범인처럼 에베소에서 맹수로 더불어 싸웠으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느뇨 죽은 자가 다시 살지 못할 것이면 내일 죽을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고전15:33)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고전15:34)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이렇게 부활에 대한 신앙은 선한 삶의 원동력입니다. “내일 죽을터이니 먹고 마시자”란 유혹을 이기게 합니다. 성도의 삶을 거룩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부활 신앙은 성도의 삶을 거룩하고 성결하게 이끕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부활에 대한 믿음이 있습니까 여러분 자신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 것을 믿습니까 우리의 육체가 썩어져 진토가 되었어도 하나님이 다시 살리실 것을 믿습니까 바로 여러분 자신이 부활한다는 그 사실을 확신합니까 오늘 여러분 모두가 확고한 부활의 신앙으로 어떤 고난도 이겨 나가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선한 일에 열심하는 참된 신앙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음으로 성숙한 성도의 믿음을 위한 기초적인 교리는 심판에 대한 교리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히6:2)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 나아갈지니라”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심판을 “영원한 심판”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심판은 최종적이며 최후의 심판이기 때문입니다. 이 심판의 판결에 의해 영원한 운명이 결정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영원한 심판”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심판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요5: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여기 “생명의 부활”은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그리고 “심판의 부활”은 부활하여 지옥의 형벌을 받는 것입니다. 이렇게 분명히 심판은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히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누구나 한번은 죽습니다. 그러나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이 아닙니다. 또다른 삶의 시작일 뿐입니다. 영원한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는 삶이 있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심판을 받아 지옥의 불못에서 고통 당하는 삶이 있습니다. 이 두가지 중의 하나가 사람의 죽음과 함께 올 것입니다. 그럼 어떤 사람이 이 영원한 지옥의 심판을 받습니까 요한 계시록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계21:8)…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 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여기 “두려워하는 자들”이란 비겁한 자들을 의미합니다. 비겁하게 믿음의 자리에서 물러선 자들입니다. 자기에게 손해가 되고 고통과 환난이 올 때 믿음을 포기하고 세상을 택한 자들을 뜻합니다. 이런 자들을 비겁한 자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기록된 사람들을 보면, 우리가 보아도 흉악한 죄를 저지른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마당히 지옥에 가야 한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이 그들입니다. 오늘날 지존파라 칭하는 무리들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유흥비 마련을 위해 자기 조카를 유괴하여 살해한 여자와 같은 사람입니다. 한강 다리가 무너져 수십명이 졸지에 죽도록 방치하고 거짓으로 일관하던 관리들과 같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런 흉악한 자들과 행음자들 그리고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던 자들은 마땅히 지옥에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경도 이런 자들은 지옥에 갈 것이라 말씀합니다.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이 불못에 던지우리라 그러나 우리가 별로 큰 죄가 아닌 것 같이 생각하던 일들을 행한 자도 지옥에 갑니다.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이 그러합니다. 여기 술객들이란 “점치며 술수를 부리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길일과 흉일을 점치고 점쟁이의 말끝에 따라 춤추는 죄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길(吉) 흉(凶)을 점치는 일, 무당을 불러 굿하는 일들을 별로 큰 죄로 여기지 않습니다. 온갖 미신적인 행위를 하면서도 죄로 여기지 않습니다.그러면서도 교회에 나오기 까지 합니다. 그리고 조상을 섬기는 우상숭배가 있습니다. “조상숭배”가 그것입니다. 제사를 지내고 조상을 통해 복을 누리려는 행위입니다.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조상이 좌우한다고 생각하는 죄악입니다. 그래서 죽은 조상이 무슨 힘께나 쓰는 줄 알고 정성으로 모시고 절하고 섬기는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일을 큰 죄로 여기지 않으려 합니다. 한국의 고유한 풍습이라고 억지를 부립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상숭배입니다. 그리고 또한 세련된 우상숭배도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우상에 절하지도 않습니다. 점치거나 미신 행위도 않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보다 세상의 것을 더 중히 여깁니다. 바로 이것이 세련된 우상숭배입니다. 세상에 대한 탐심으로 가득찬 것입니다. 학문에 대한 탐심이 있습니다. 건강에 대한 탐심이 있습니다. 명예에 대한 탐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건강 지위 명예를 지키기 위해 신앙을 묵살하는 죄입니다. 믿음을 지키기 보다 자기의 욕심을 지키는 죄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일보다 세상의 것을 위해 더 힘쓰는 죄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일을 죄로 여기지 않습니다. 우상숭배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이것을 우상숭배의 죄라고 단언합니다. (골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골3:6)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그리고 오늘 성경은 이런 우상숭배의 죄들이 흉악한 자들이나 살인자들과 같은 형벌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계21:8)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 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그러므로 우상숭배하는 일을 그쳐야 합니다. 조상숭배도 그쳐야 합니다.길흉을 점치고 굿하며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일도 그쳐야 합니다. 탐심과 그 밖의 세련된 우상숭배도 버려야 합니다. 이 모든 일이 영원한 심판을 받아 불못에 들어가게 되는 죄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더욱 놀라운 것은 “믿지 않는 자들”도 지옥에 간다는 말씀입니다. (계21:8).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 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이들은 단지 안믿었기 때문에 지옥에 갑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은 것이 지옥에 갈 큰 죄였다는 말씀입니다. 이들의 삶이 얼마나 고상했던지, 선을 행하고 베풀었던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직 믿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지옥의 불못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믿음없이 산 것이 이들의 영혼을 지옥의 불꽃 가운데로 보내게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에, 죄에 대해 말씀하신 적이 있으십니다. 죄의 여러 목록을 열거하시기도 하셨습니다(마7:20-23). “(막7:20) 또 가라사대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막7:21)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막7:22)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막7:23)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이렇게 죄를 열거하시며 사람이 이 죄로 더러워진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믿지 않는 것도 죄임”을 명백히 가르치셨습니다. (요16:8-9)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16: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요16:9)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이 말씀이 배경은 이러합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성령님이 오실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세상을 책망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 죄에 대한 책망도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죄에 대한 책망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죄에 대한 것입니다. (요16:9)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이 믿지 않는 죄가 살인과 흉악한 죄를 지은 사람과 동일한 죄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받는 똑같은 처벌을 받습니다. (계21:8).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 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큰 죄입니다. 믿지 않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믿어야 삽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삽니다. 예수님을 믿으십시요! 아직도 의심하고 확실히 못믿겠습니까 하나님께 구하십시요. “주여 저를 믿게 해 주시옵소서! 믿음을 주옵소서!” 그리할때 영생을 얻는 믿음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엔 나오지만 아직도 예수님을 마음 중심에 모시지 못한 분들이 계시다면 오늘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한 믿음을 가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기독교 교리의 터가 되는 말씀들을 들었습니다. 죽은 자들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이 그것입니다. 이 두 교리는 서로 연결된 교리입니다. 부활이 있고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교리를 믿어야 합니다. 이 기본적이고 터가 되는 교리를 믿어야 합니다. 이 믿음이 여러분은 참 성도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믿는 사람들은 믿음으로 자기의 죄를 버려야 합니다.탐심을 버려야 합니다. 온갖 우상숭배와 미신 그리고 불신앙적 행동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하여 더 경건하고 보다 더 성숙한 신앙의 자리에 이르러야 합니다. 오늘 우리 모든 성도들이 기독교의 터가 되는 진리를 더 깊이 배우고 깨닫기를 힘써 성숙한 성도로 자라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성도로 발돋음 하기 위해서는 이 기본적인 교리들을 익히 알고 확신해야 합니다. 그럼 우리가 성숙하고 온전한 성도가 되기 위해 믿어야 할 기초적인 교리의 또 다른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리입니다. 오늘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히6:2)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 나아갈지니라”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기초가 되는 또 다른 교리를 부활과 영원한 심판의 교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오늘이 부활과 심판의 교리도 서로 짝을 이루고 있습니다. 부활이 있고 심판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최후의 심판은 부활 이후에 곧 이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활과 심판은 서로 연관된 중요한 교리입니다. 그럼 먼저 부활을 생각해 봅시다. 부활이란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은 육체가 죽은 후에 그 몸이 새로운 몸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부활에 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고전15:42)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고전15: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고전15: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그런데 이 부활은 두가지 종류의 부활이 있습니다. 하나는 영생을 얻기 위한 생명의 부활이요 또 다른 하나는 영원한 심판을 받기 위한 심판의 부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요5:28-29). (요5:28)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요5: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예수님께서는 먼저 “이 일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고 그 서두를 꺼내십니다. 사실 죽은 자가 다시 산다는 것은 기이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부활도 모든 인류가 다시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역사 이래 죽었던 모든 인류가 다시 산다는 것입니다. 선한 일은 한 사람이나 악한 일을 한 사람이나 전부 다 부활한다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이한 일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못믿을 기이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일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고 하십니다. 분명히 일어날 일이며 하나님의 권능에 의해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부활은 두가지 목적을 위해 일어 날 것이라고 하십니다. 영생을 위한 부활과 지옥의 심판이 그것입니다. “(요5: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여기 “생명의 부활”은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그리고 “심판의 부활”은 부활하여 지옥의 형벌을 받는 것입니다. 이렇게 분명히 부활은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일어날 것입니다. 이렇게 부활은 모든 인류의 부활이 될 것입니다. 믿는자들이 부활 할 것입니다. 불신자들도 부활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최종적인 운명은 하늘과 땅 차이 일 것입니다. 믿는 자들은 영생을 얻어 새하늘과 새 땅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들은 영원한 지옥의 불 못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시9:17) 악인이 음부로 돌아감이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열방이 그리하리로다 이렇게 부활은 심판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부활과 함께 심판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활과 심판은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는 교리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부활에 대한 믿음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따라서 몸의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은 기독교 신자가 아닙니다. 기독교 신자는 부활을 믿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부활에 대한 신앙이 있었기에 로마 황제들의 모진 핍박과 살해에도 믿음을 버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순교자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부활 신앙은 기독교의 심장이요 능력입니다. 이 부활은 예수님께서 명백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5:28-29)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요11:25-2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렇게 부활은 예수님께서 명백히 말씀하신 진리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친히 죽었다가 사셨습니다. 장사된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셨습니다. 부활하신 저녁엔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의심했던 도마는 예수님을 만지기 까지 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음식을 드셨습니다. 그리고 이 땅 위에서 무려 40일간이나 친히 부활을 증거하시며 사셨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부활은 부활의 실존을 보여주시는 역사적 증거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부활한다는 확실한 증거이기도 합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습니까 그리고 여러분 자신이 죽어도 다시 산다는 것을 믿습니까 부활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결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한 종교를 가진 사람은 되어도 크리스챤은 아닙니다. 크리스챤은 기독교의 기초적이며 터가 되는 기독교 교리를 확고히 믿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구도 부활을 부인하는 자는 결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가 목사요 신학 교수라도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직업적 종교인은 될 수 있어도, 성도요 하나님의 백성은 아닙니다. 부활에 대한 신앙은 기독교 신앙의 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부활의 신앙은 성도의 삶을 소망있게 합니다. 현재의 고난이 매우 커도 장차 나타날 영광을 생각하며 이기게 하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롬8: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장로교회의 창시자라 일컬어 지는 칼빈 선생도 이 말씀을 즐겨 암송했습니다. 그가 55세의 일기로 숨을 거둘 때 이 말씀을 반복하였다고 합니다. “(롬8: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또한 부활의 신앙은 성도의 삶을 거룩하게 합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증거합니다(고전15:31-3
4). “(고전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전15:32) 내가 범인처럼 에베소에서 맹수로 더불어 싸웠으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느뇨 죽은 자가 다시 살지 못할 것이면 내일 죽을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고전15:33)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고전15:34)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이렇게 부활에 대한 신앙은 선한 삶의 원동력입니다. “내일 죽을터이니 먹고 마시자”란 유혹을 이기게 합니다. 성도의 삶을 거룩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부활 신앙은 성도의 삶을 거룩하고 성결하게 이끕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부활에 대한 믿음이 있습니까 여러분 자신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 것을 믿습니까 우리의 육체가 썩어져 진토가 되었어도 하나님이 다시 살리실 것을 믿습니까 바로 여러분 자신이 부활한다는 그 사실을 확신합니까 오늘 여러분 모두가 확고한 부활의 신앙으로 어떤 고난도 이겨 나가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선한 일에 열심하는 참된 신앙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음으로 성숙한 성도의 믿음을 위한 기초적인 교리는 심판에 대한 교리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히6:2)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 나아갈지니라”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심판을 “영원한 심판”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심판은 최종적이며 최후의 심판이기 때문입니다. 이 심판의 판결에 의해 영원한 운명이 결정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영원한 심판”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심판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요5: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여기 “생명의 부활”은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그리고 “심판의 부활”은 부활하여 지옥의 형벌을 받는 것입니다. 이렇게 분명히 심판은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히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누구나 한번은 죽습니다. 그러나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이 아닙니다. 또다른 삶의 시작일 뿐입니다. 영원한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는 삶이 있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심판을 받아 지옥의 불못에서 고통 당하는 삶이 있습니다. 이 두가지 중의 하나가 사람의 죽음과 함께 올 것입니다. 그럼 어떤 사람이 이 영원한 지옥의 심판을 받습니까 요한 계시록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계21:8)…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 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여기 “두려워하는 자들”이란 비겁한 자들을 의미합니다. 비겁하게 믿음의 자리에서 물러선 자들입니다. 자기에게 손해가 되고 고통과 환난이 올 때 믿음을 포기하고 세상을 택한 자들을 뜻합니다. 이런 자들을 비겁한 자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기록된 사람들을 보면, 우리가 보아도 흉악한 죄를 저지른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마당히 지옥에 가야 한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이 그들입니다. 오늘날 지존파라 칭하는 무리들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유흥비 마련을 위해 자기 조카를 유괴하여 살해한 여자와 같은 사람입니다. 한강 다리가 무너져 수십명이 졸지에 죽도록 방치하고 거짓으로 일관하던 관리들과 같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런 흉악한 자들과 행음자들 그리고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던 자들은 마땅히 지옥에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경도 이런 자들은 지옥에 갈 것이라 말씀합니다.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이 불못에 던지우리라 그러나 우리가 별로 큰 죄가 아닌 것 같이 생각하던 일들을 행한 자도 지옥에 갑니다.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이 그러합니다. 여기 술객들이란 “점치며 술수를 부리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길일과 흉일을 점치고 점쟁이의 말끝에 따라 춤추는 죄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길(吉) 흉(凶)을 점치는 일, 무당을 불러 굿하는 일들을 별로 큰 죄로 여기지 않습니다. 온갖 미신적인 행위를 하면서도 죄로 여기지 않습니다.그러면서도 교회에 나오기 까지 합니다. 그리고 조상을 섬기는 우상숭배가 있습니다. “조상숭배”가 그것입니다. 제사를 지내고 조상을 통해 복을 누리려는 행위입니다.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조상이 좌우한다고 생각하는 죄악입니다. 그래서 죽은 조상이 무슨 힘께나 쓰는 줄 알고 정성으로 모시고 절하고 섬기는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일을 큰 죄로 여기지 않으려 합니다. 한국의 고유한 풍습이라고 억지를 부립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상숭배입니다. 그리고 또한 세련된 우상숭배도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우상에 절하지도 않습니다. 점치거나 미신 행위도 않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보다 세상의 것을 더 중히 여깁니다. 바로 이것이 세련된 우상숭배입니다. 세상에 대한 탐심으로 가득찬 것입니다. 학문에 대한 탐심이 있습니다. 건강에 대한 탐심이 있습니다. 명예에 대한 탐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건강 지위 명예를 지키기 위해 신앙을 묵살하는 죄입니다. 믿음을 지키기 보다 자기의 욕심을 지키는 죄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일보다 세상의 것을 위해 더 힘쓰는 죄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일을 죄로 여기지 않습니다. 우상숭배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이것을 우상숭배의 죄라고 단언합니다. (골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골3:6)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그리고 오늘 성경은 이런 우상숭배의 죄들이 흉악한 자들이나 살인자들과 같은 형벌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계21:8)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 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그러므로 우상숭배하는 일을 그쳐야 합니다. 조상숭배도 그쳐야 합니다.길흉을 점치고 굿하며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일도 그쳐야 합니다. 탐심과 그 밖의 세련된 우상숭배도 버려야 합니다. 이 모든 일이 영원한 심판을 받아 불못에 들어가게 되는 죄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더욱 놀라운 것은 “믿지 않는 자들”도 지옥에 간다는 말씀입니다. (계21:8).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 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이들은 단지 안믿었기 때문에 지옥에 갑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은 것이 지옥에 갈 큰 죄였다는 말씀입니다. 이들의 삶이 얼마나 고상했던지, 선을 행하고 베풀었던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직 믿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지옥의 불못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믿음없이 산 것이 이들의 영혼을 지옥의 불꽃 가운데로 보내게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에, 죄에 대해 말씀하신 적이 있으십니다. 죄의 여러 목록을 열거하시기도 하셨습니다(마7:20-23). “(막7:20) 또 가라사대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막7:21)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막7:22)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막7:23)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이렇게 죄를 열거하시며 사람이 이 죄로 더러워진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믿지 않는 것도 죄임”을 명백히 가르치셨습니다. (요16:8-9)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16: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요16:9)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이 말씀이 배경은 이러합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성령님이 오실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세상을 책망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 죄에 대한 책망도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죄에 대한 책망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죄에 대한 것입니다. (요16:9)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이 믿지 않는 죄가 살인과 흉악한 죄를 지은 사람과 동일한 죄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받는 똑같은 처벌을 받습니다. (계21:8).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 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큰 죄입니다. 믿지 않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믿어야 삽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삽니다. 예수님을 믿으십시요! 아직도 의심하고 확실히 못믿겠습니까 하나님께 구하십시요. “주여 저를 믿게 해 주시옵소서! 믿음을 주옵소서!” 그리할때 영생을 얻는 믿음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엔 나오지만 아직도 예수님을 마음 중심에 모시지 못한 분들이 계시다면 오늘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한 믿음을 가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기독교 교리의 터가 되는 말씀들을 들었습니다. 죽은 자들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이 그것입니다. 이 두 교리는 서로 연결된 교리입니다. 부활이 있고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교리를 믿어야 합니다. 이 기본적이고 터가 되는 교리를 믿어야 합니다. 이 믿음이 여러분은 참 성도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믿는 사람들은 믿음으로 자기의 죄를 버려야 합니다.탐심을 버려야 합니다. 온갖 우상숭배와 미신 그리고 불신앙적 행동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하여 더 경건하고 보다 더 성숙한 신앙의 자리에 이르러야 합니다. 오늘 우리 모든 성도들이 기독교의 터가 되는 진리를 더 깊이 배우고 깨닫기를 힘써 성숙한 성도로 자라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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