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의 원리 (히4:12-13)
본문
1. 문민정부가 들어서서 사정의 칼을 뽑아 소위 문민 개혁을 단 행하여 정치, 사법, 경제 분야는 접어두고 군부의 떨어진 별만도 42 개였습니다. 이러한 문민 개혁은 그 초기에 개혁을 '혁명'이라고까 지 불렀습니다. 군사통치 30년의 고질화된 윗물의 비리뿐만 아니라 해방 후 이승만 정권 이래 이런 '혁명적 개혁'은 한차례도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우리는 조선 중종기의 조 광조의 예를 돌이켜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진사류로 그의 칼날 같은 개혁정치가 큰 호응을 얻었지만 끝내 경륜 많고 교활한 수구 세력에 밀려 기묘사화 때 사사(賜死)되었습니다. 역사는 반복되는가 를 의심하게 할 만하게도 문민 정부의 말기 현상은 조선 중종기와 비슷하게 대통령 아들의 구속을 뒷전으로 '혁명같은 개혁'은 이제 물건너가고 있습니다. 수구세력은 여전히 고개를 들고 구속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석방을 주장하고 있고, 경제는 물거품이 된채, 정치 판은 여전히 3김 정치로 흙탕물이 된채, 사회는 각종 범죄 소굴화 되어진 채로 문민 시대는 종막을 고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문민 개혁은 허탈하게도 실패로 끝이 나고 있습니다. 인간적인 혁명이나 개혁은 과연 성공할 수 없는 것인가
2. 고리키는 세계를 뒤흔든 사회주의 혁명가 레닌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구원을 받으려면 누구나 고통을 참을 수 밖에 없다고 만 역설되는 나라 러시아에서, 아니 이 세상 전체에서 레닌만큼 심 각하고 강하게 불행과 슬픔을 미워하고 경멸하고 저주한 사람을 나는 보지 못했다. 고통은 인생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니라 민중 의 힘으로 물리쳐야 하고 또 물리칠 수 있는 악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가 특히 위대한 인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고리키가 평가한대로 레닌은 그가 주도한 사회주의 혁명 으로 러시아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었습니까 사회주의 혁명 으로 공산주의가 지배했던 지난 80여년의 구 소련은 엄청난 죽음과 고통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그의 사회주의 혁명으로 인한 고통은 오늘날 러시아에게 까지도 말할 수 없는 혼란과 고통을 안겨 주었 습니다. 그 결과 발트 3국의 하나였던 에스토니아에서 시작된 레닌 동상 제거작업은 소련 각국으로 퍼져 나가 이제 그의 동상은 형체 를 찾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레닌의 혁명은 역사에서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레닌은 자신이 죽기 2년 전 "레닌 사상의 가 장 탁월한 계승자로" 판단하여 당 서기장으로 스탈린을 임명했습니다. 스탈린은 성직자가 되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뜻을 따라 들어갔 던 츠빌리시 신학교를 5년만에 그만두었습니다. 그리고 츠빌리시 철도 노동자들로 구성된 한 학습 모임을 지도하는 것을 시작으로 직업혁명가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스탈린이 당 서기장에 올라서 1934년부터 시작된 대숙청은 당과 군의 최고위 지도자들이 다수 처 형된 것을 비롯하여 수천만 명이 체포되고 피의 숙청을 당했습니다. 이 숙청의 피냄새가 채 가시기 전에 터진 2차 대전을 통해서 소련 국민 2천만 - 3천만 명이 희생당했습니다. 인간적인 사상이나 정치, 경제의 혁명의 결과는 이처럼 엄청난 인류의 고통과 죽음을 초래했습니다.
3. 오늘날 개혁을 수 없이 부르짖지만 개혁이 되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종교개혁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교회의 개혁을 소리 높여 외쳤습니다. 그 중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에라스무스였습니다. 그가 당시에 기록한 <우신예찬>을 보면 지금 우리 나라에서 개 혁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지적하는 것과 거의 비슷한 내용들입니다. 교회 내에서 자행되는 불의, 부정, 믿는 자들의 미신과 부도덕, 그 리고 성직자들의 사치와 방탕 등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잘못을 그 만 두고 서로 사랑하며 도덕적인 삶을 살기를 강력히 외치는 점도 비슷합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은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 의해 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에라스무스 자신도 교회에서 처 벌하려는 눈치를 보이자 자신의 주장을 모두 철회하고 말았습니다. 그가 지적한 잘못들은 인간의 기준으로 본 것들이었습니다. 인간의 이성으로 볼 때 그리고 도덕으로 볼 때 중세말의 교회나 신자들이 나 성직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잘못되어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성과 도덕이란 기준에 의해서 그런 부도덕들은 시정이 되어야 만 했습니다. 그러나 루터의 개혁은 에라스무스와는 근본적으로 개 혁의 기준과 방법이 달랐습니다. 비록 같은 잘못을 지적해도 두 사람의 입장은 달랐습니다. 에라스무스의 기준은 이성과 도덕이었습니다만 루터는
그런데 관심이 없었습니다. 루터는 신앙적인 관점에 서, 성경적인 관점에서 당시 교회의 잘못된 점을 지적했습니다. 그 러기에 에라스무스가 위협에 눌려 잠잠해져도 루터는 그럴 수가 없 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은 생사의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루터는 죽음을 무릎쓰고 개혁에 끝까지 참여했습니다. 루터의 개혁의 원리는 무엇인가 그것은 모든 것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으로 교회(성전)가 바로 서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이룩할 때 참 된 개혁은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삶의 기준이 될 때 사회 전반에 개혁이 이루어집니다. 위대한 성직자의 말이나 기도원 원장 의 말이나 교회의 전통이나 사회의 풍습이나 과학자 또는 최고 지 성인의 말은 상대적인 기준만 될 뿐이지 성경말씀처럼 절대적인 권 위는 가질 수 없었습니다. 루터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것을 존재하게 했고 모든 것을 운행하며 모든 것을 파괴할 것이었습니다. 이 하나님 말씀 앞엣 겸손히 서게 되면 인간은 자신의 죄악을 보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돌아오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 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히4:13)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 하시는 자의 눈 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개혁은 말이나 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개혁은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 능력은 모두 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하셨는지, 그래서 지금 내가 어떤 상태로 바뀌었으며 장차 무엇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 명백히 보여주 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개혁의 기준은 물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이요 개혁의 원동력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개혁을 추구하려는 사람들은 외형적인 변화보다는 복음이 바로 전파되게 하는 것을
첫째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종교개혁 당시 에라스무스를 비롯한 인문주의자들은 누구보다도 교회의 잘못을 신랄하게 비판했지만 그 잘못을 시정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루터는 교회가 바른 신앙에 서기를 요구하였고 개혁 을 수행할 능력을 가졌었습니다. 교회가 바른 신앙에 서게 되자 다 른 개혁은 모두 다 자동적으로 뒤따라왔습니다.
4. 그래서 구약 시대 개혁자 요시야는 종교 개혁을 단행하는 단 호한 결단을 통해 나라의 운명을 일신(一新)하였습니다. 요시야는 먼저 성전을 성결케하는 일을 통하여 신앙 생활에 생기를 불어 넣 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곳으로 축복의 통로와 같은 것입니다. 외형적인 성전 복구 수리를 통하여 백성들의 형식적이고 외식적(外飾的)인 신앙을 새롭게 한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항상 성결케 보존코자 하는 사람은 그 신 앙이 날로 새로와지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님의 전(殿)이되는 자기 몸 을 날마다 성결케함으로 자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을 할 수 있게 됩니다(고전3:16,17). 하나님과 하나님의 교회를 가까이 하면 할수록 그 사람은 더욱 더 성결해지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성결의 능력을 얻게 됩니다. 성결할 때 거룩한 하나님의 영, 성령님은 역사(役事)하십니다. 나라의 개혁 정책이 하나님께 합의한 개혁 운동이 되어 나라가 새롭게 되기위해서는 먼저 성결 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켜 나가야 합니다. 성결운동은 오직 성령님의 역사 (役事)를 통해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인간의 죄를 근본적으로 소멸 시키는 성령님의 불을 이 땅위의 모든 심령들에게 던집시다. 죄악이 일소되지않은 개혁 운동은 악령(惡靈)만 역사(役事)할 뿐입니다. 민족의 신앙을 새롭게하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성전을 새롭게 하는데 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 나라 민족의 진정한 개혁, 하나님께서 기 뻐하시는 개혁을 위해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 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하는 하나님 말씀과 이 땅의 죄악을 불태우는 거룩한 성령님이 누구보 다 성도 여러분에게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요시야는 더 나아가 철저하게 우상을 제거함으로 그 땅을 정결 케 하였습니다(대하 34:3-8절). 나라 민족이 개혁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성전, 교회가 성결해져야 함은 물론 땅이 성결해져야만 합니다. 그래서 요시야 왕은 우상을 제거하되 그것들을 찍고 가루로 만 들어 우상숭배의 제사장 무덤에 뿌리는 등 철저하게 개혁을 단행하 였습니다. 요시야는 선왕(先王) 므낫세가 그 우상들을 파괴하지 않 고 그냥 내어버리기만 하여 그 아들 아몬이 다시 그 버린 우상을 가져와 섬겼던 사실을 교훈으로 삼아 그 우상들을 찍어 가루로 만 들어 날려 버렸던 것입니다(역대하33:22). 이처럼 우리도 옛 삶을 청산하되 죄지은 손을 잘라내듯 하고, 죄지은 눈을 빼어버리듯 하는(마18:8,9) 단호한 의지와 결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에야 비로소 새로운 삶이 가능하고 진정한 개혁이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이 나라에 요시야 왕같이 우상의 단(壇)과 우상 숭배를 철저히 분쇄(粉碎)시킬 수 있는 강하고 담대한 지도자가 필요한 것 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러한 지도자와 함께 하십니다. 멸망의 가 증스런 우상 숭배의 죄를 짓는 손과 발을 잘라내고, 그 눈을 빼어 버리듯하는 완전 타파할 때 이 땅이 정결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을 우상으로 숭배하는 북한 땅이 거룩한 하나님의 땅이 되 기 위해, 우상의 단(壇)들과 우상의 문화, 그리고 우상 숭배의 세력 들이 민족 문화를 빙자하여 악성 암세포(惡性 癌細胞)처럼 번지고 있는 이 남한 땅이 성결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하나님 말씀에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오직 그 명령에 순종하며, 백성 들 앞에 강하고 담대한 요시야와 여호수아같은 지도자가 요청되는 시대입니다.
5. 루터가 <95개조 논제>를 공표하기 전 어느 날, 설교사 한 사람이 붉은 색을 칠한 십자가와 교황을 상징하는 깃발을 세워 놓고 면죄부를 팔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돈이 이 상자 속에 들어가 땡그랑 하고 소리를 내는 바로 그 순간, 여러분의 영혼은 구원을 받게 됩니다. 몇푼 안 되는 면죄부로 천당에 가는 길을 예약해 두지 않으시렵니까 날이면 날 마다 오는 것이 아닙니다. 기회는 딱 한 번, 지금 안 사면 후회하게 됩니다." 루터는 야바위꾼 같은 설교사를 향해 침이라도 ㅂ어 주고 싶었 으나, 꾹 참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정말 구제 불능이군." 루터의 말마따나 당시의 교회는 정말 한심했습니다. 교황을 포함 하여 성직자들 중에는 몰래 자식을 낳은 사람들이 부지기수였습니다. 게다가 주교나 수도원장 같은 자리를 둘러싸고 공공연한 뇌물 수수행위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교회는 영주와 마찬가지로 광대한 토지와 수많은 농노들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교구나 수도원 책 임자는 농노들의 토지 경작으로부터 생겨나는 수입의 상당 부분을 착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뿐인가 주민들이 납부하는 십일조라든가 그 밖의 교회에서 무슨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 주민들로부터 거두 어들이는 돈까지 계산하면 교회의 수입은 실로 막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1514년 마인츠 지방의 대주교가 된 알브레히트는 당시 관례에 따라 처음 일년간의 수입을 교황에게 바칠 돈을 마련하기 위해 고리대금업으로 막대한 재산을 긁어모은 푸거 가문으로부터 돈을 빌려 교황에게 바쳤습니다. 당시 교황은 레오 10세였습니다. 그의 전임 교황이었던 율리우스 2세는 재임기간 중에 로마에 성 베 드로 성당을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의 우두머리로서의 위엄도 과시할 겸 유럽인들의 정신을 지배하는 기독교의 위세도 과시할 겸 율리우스 2세가 세우려 했던 웅장하고 거대한 베드로 성당은 레오 10세가 교황에 취임한 이후에도 완성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 출신이었던 레오 10세는 도박과 사냥과 파티 를 좋아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런 주제에 욕심은 있어서 성당을 하루라도 빨리 완성시키려고 안달복달했습니다. 이를 위해 그는 새로 운 돈벌이를 구상했습니다. 한편 알브레히트에게 거액을 빌려준 푸 거 가문은 어떻게 빨리 정확하게 돈을 회수할 수 있을까 하고 머리 를 굴리기 시작했습니다. 교황에게 거액을 차용해 바친 알브레히트 와 과시욕에 빠신 교황 레오 10세, 그리고 고리대금업자 푸거 가문, 이렇게 세 주인공이 대동단결하여 꾸며 낸 것이 바로 면죄부 판매 습니다. 교황은 면죄부라는 상품을 만들어 알브레히트에게 독점판 매권을 주는 대신 판매액의 절반을 갖기로 합니다. 알브레히트는 푸거 가문에게 진 빚을 상환하기 위해 푸거 가문의 사람들과 함께 면죄부 장사를 합니다. 그래서 판매액의 절반을 푸거 가문에게 진 빚을 갚기로 합니다. 당시 독일의 시인이었던 후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로마에는 세 가지가 팔리고 있다. 그 세 가지란 예수, 성직자의 자리, 여자이다. 로마에서는 세 가지가 미움을 받고 있다. 즉 교회 에 대한 의심, 교회의 개혁, 독일인의 각성이다. 나는 로마를 위해 세 가지를 기원한다. 그 세 가지란 페스트, 기근, 전쟁이다." 당시 교황과 성직자들의 횡포에 대한 적개심은 신분을 막론하고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습니다. 루터가 1520년에 저술한 종교개혁 3대문서인 <독일 민족의 귀족 에게 드리는 호소>는 독일에서의 로마 교황과 교회의 횡포를 열거 한 후 독일의 귀족들이 독일 민족의 이익을 위해 교회와 싸울 것을 호소한 내용입니다. 또 하나의 문서는 <교회의 바빌론 유폐(幽閉) 에 관하여>입니다. 이 책에서 루터는 교회에서 행해지는 여러 의식 들이 대부분이 성경에 근거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세례와 성찬 두 가지만 두고 다른 의식들은 모두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 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문서는 <기독교인의 자유에 대하여>인데 이 책에서 루터는 기독교인은 하나님 앞에서 누구나 평등하다는 것 을 주장합니다. 그는 그 책에서 절대적인 신앙의 자유와 하나님 말씀에 따르는 신앙인으로서의 책임을 함께 강조했습니다. 루터는 성직자들의 부패를 비판하면서, 진정한 신앙심은 하나님 말씀에 충실히 따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구원받는 길은 성경을 열심히 읽고 거기에 씌여져 있는 대로 실천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도대체 독일인 중에서 성경을 끝까지 읽어 본 사람, 아니 성경을 제대로 읽을 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 까 독일 글자도 모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라틴어로 씌여진 성경을 어떻게 읽을 수 있다는 말인가 목사가 목소리를 깔고 잔뜩 엄숙한 표정을 지으면서 성경을 한 구절을 읽으면, 신자들은 저 목사가 지금 자신들이 세수를 안 하고 왔다고 욕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예배 가 끝나면 남으라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를 이용 해서 성직자들이 온갖 부패와 타락을 일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를 보다못해 루터는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누구나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되면 성직자들의 말과 행동이 하나님의 말씀과 결코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해서 독일어 성경은 루터에 의해 완성되었고 글을 읽을 수 있는 독일인이라면 누구나 성경에 무슨 말이 씌여져 있는지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태까지 귀족들과 성직자들의 손에만 쥐어져 있던 성경이 마침내 독일인의 품 안에도 안기게 된 것입니다. 이제 루터는 더욱 더 강하게 주장합니다. "교회에 가 보라. 거기엔 사방에 갖가지 조각과 장식들이 현란하 게 걸려 있다. 도대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데에 성모 마리아 상이 왜 필요한가 이것들은 공연히 사람들의 감정을 주눅들게 할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 우상들 아래에 무릎꿇고 앉아 억지로 기도 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곳에서도 변치 않아야 할 진정한 믿음을 갖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짓 신앙을 강요하는 저 우상들을 교회에 서 추방해야 한다." 우상 숭배의 결과는 허무와 수치밖에 남을 것이 없기 때문에, 진 정한 개혁을 위해서는 반드시 이를 척결해야만 합니다. 시편 97:7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조각 신상을 섬기며 허무한 것으로 자긍하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6. 성전을 성결케 하고 나라의 모든 우상을 척결할 때, 요시아 왕은 성전에서 하나님의 말씀, 율법책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요시 아 왕은 여선지자 <훌다>에게 나라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선지자는 왕의 사자(使者)들에게 조금도 하나님의 말씀 을 왜곡시키거나 미화시키지 않고 나라가 멸망할 것이라는 엄청난 심판의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사실 그러한 심판이 직접적으로 요 시야 왕의 범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율법의 말씀을 완곡하게 전할 수도 있었고, 또 회개하여 그 심판을 면하라고 충고 해 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선지자 <훌다>는 냉엄하게 그 말씀을 있는 그대로 선포했던 것입니다. 그녀가 그렇게 했던 이유는 돌이킬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의 엄격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말씀 의 선포는 권력이나 지위 고하를 불문하고 공명 정대하게 전해야 하는 선지자적 사명에 투철했기 때문입니다. 위기에 처해 있는 나라 민족이 개혁을 통해 역사가 단절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바로 전하며 듣는 자는 그 말씀을 바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에 의해서 참 선 지자된 오늘날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축복 뿐만 아니라 말씀을 거역 할 때 내려지는 저주와 심판 또한 주저함 없이 선포해야 하는 것입니다. 요시야 왕은 율법책의 내용을 바로 듣고 읽었기 때문에 하나님 의 뜻을 발견하고 개혁의 의지를 불태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 럼 하나님 말씀은 복음에 대한 열정을 일깨워 주고, 인간의 삶과 나라의 운명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주는 능력입니다. 더 나아가 복음은 그리스도 중심의 인생관과 세계관을 형성케하여 사회적 국 가적인 죄들에 대해 참다운 개혁을 이루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어 느 시대이든 하나님의 말씀은 개혁 운동의 지표요 추진력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연구되어지고 읽혀지게 될 때 진정한 회개를 이루고, 옷을 찢고 마음을 찢는 회개 운동이 일어날 때 하나님께 합의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공적인 개혁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 후서 3:15-17에서 말합니다. "성경에는 두 가지 위대한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는 인간을 구원하는 능력입니다. 다른 하나는 인간으로 하여금 의롭게 살아가도 록 완성시키는 능력입니다." 성경을 바르게 읽고 영접하는 사람들은 구원에 대한 확증을 가 지게 됩니다. 성경을 바르게 읽고 영접하는 사람들은 세상을 바르게 살아 갈 능력과 지혜를 얻게 됩니다. 성경을 바르게 읽고 영접하는 지도자들은 나라와 민족을 바르게 영도할 능력과 권능과 지혜를 가지게 됩니다. 성경을 바르게 읽고 영접하는 사람들은 가정과 사회를 개혁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성경이 가는 곳에 그 사회의 도덕이 향상됩니다. 이렇게 성경은 국가 사회 도덕의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영국의 국왕 윌리엄 4세가 죽던 날 밤, 궁중에서는 한 처녀가 여 왕으로 추대되었습니다. 그녀가 바로 빅토리아 여왕입니다. 그녀는 64년 동안 왕위에 있었습니다. 영국의 번영은 이 빅토리아 여왕 때 성취된 것입니다. 영국의 국기인 유니온 잭 아래 해가 지지 않던 때도 빅토리아 여왕 시절이었습니다. 일찌기 인류 역사상 빅토리아 여왕만큼 위대한 왕도 드물 것입니다.
그런데 그녀는 자신이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즉시로 무릎을 꿇고 성경을 폈습니다. 잠시도 자신의 품에서 잠시도 떠나지 않았던 성경을 놓고 기도를 했습니다. "주여, 내가 여왕이 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치를 하게 해주십 시오." 빅토리아 여왕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해결했고 기도로 정치를 했습니다. 하루는 인도의 왕자 한 사람이 빅토리아 여 왕을 찾아와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렇게 정치를 잘하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빅토리아 여왕은 성경을 펴들고 힘 주어 말했습니다. "바로 이것 뿐입니다." 우리 나라에도 일찍이 이와같은 선각자가 있었습니다. 일제 시대 의 뛰어난 기독교 사상가 가운데 한 사람인 김교신은 인간 개인의 삶이나 민족과 인류의 역사적 삶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손길에 의 해 움직인다는 섭리적 신앙을 소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기본적 으로 민족의 흥망성쇠는 다른 무엇이 아닌 한 민족의 신앙에 달려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김교신은 구약 성서를 해석하면서 느헤미야 가 가진 망국민의 애국심을 논의한 후 그가 예루살렘성의 황폐화 소식을 듣고 동포들의 무능을 탓하거나, 이웃의 적대국들을 원망하 며, 어떤 정치적인 책략을 짜기 전에 먼저 회개하였음을 강조했습니다. 즉 "나라의 흥망성쇠가 그 나라의 병거(兵車)의 수의 다소와 외교 책략의 우열에 있지 아니함을 알기 때문에 저는 근본 문제에 착안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애국은 진정한 애국이었습니다." 그 에 의하면 국가나 민족 문제의 근본은 정치경제적인 어떤 요소가 아니라 신앙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는 또한 사회와 국가의 융성 은 모두 건전한 도덕 생활의 기초 위에서 가능한 것이며 건실한 도 덕만 확립되면 난마와 같은 민족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도덕이란 한 두 가지 행위의 과오 실책의 문제가 아 니라 "생활의 근본 방침에 있어서 하나님께 대한 태도, 곧 신앙이 도덕입니다. <.>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이것이 도덕의 총화요, 갱생 융성의 원동력"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정도로 신앙과 민족애 가 결합된 투철한 의식을 지닌 김교신은 그의 <성서 조선의 해 (解)>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자에게 주고 싶은 것은 한 두 가지에 그치지 않는다. 하늘의 별이라도 따주고 싶으나 인력에는 스스로 한계가 있다. 혹 자는 음악을 조선에 주며, 혹자는 문학을 주며, 혹자는 예술을 주어 조선에 꽃을 피우며, 옷을 입히며, 관을 씌울 것이나, 오직 우리는 조선에 성서를 주어 그 골근을 세우며, 그 혈액을 만들고자 한다. <.> 과학 지식의 토대 위에 새 조선을 건설하려는 과학 조선의 운동이 시대에 적절하지 않음이요, 그 인구의 팔 할 이상을 차지한 농민으로 하여금 덴마아크식 농업 조선을 중흥하려는 기도가 시의 에 부합함이 아니며, 기타 신흥 도시를 위주한 상공(商工) 조선이나 사조에 파도치는 공산(共産) 조선 등이 다 그 진심 성의로만 나온 것일진대 해로울 것도 없겠지만 이를테면 이런 것들은 모두 풀의 꽃과 같고 아침 이슬과 같아서 오늘 있었으나 내일에는 그 자취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며 모래 위의 건축이라 풍우를 당하여 파괴됨 이 심하지 아니치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구형적(具形的) 조 선 밑에 영구한 기반을 넣어야 할 것이니 그 지하의 기초공사가 곧 성서적 진리를 이 백성에게 소유시키는 일이다. 넓게 깊게 조선을 연구하여 영원한 새로운 조선을 성서 위에 세우라.
그러므로 조선 을 성서 위에." 여러분의 신앙과 이 나라 민족을 성서 위에 세우므로 참된 개혁 과 반석 위에 세워지는 튼튼하고 건강하며 부강한 나라 민족이 되 기를 기원합니다. 7. 미국 라이프지가 선정한, 지난 1천년을 만든 20대 사건 가운 데 제 1위는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발명이었습니다. 예수탄생 이 후 두 번째 맞는 천년의 최대 사건은 1455년 독일 대장장이 구텐베 르크가 금속활자로 성경을 인쇄한 사건이었습니다. 귀족과 성직자 의 전유물이던 성경은 그의 인쇄기를 통해 일반에 퍼져나갔고, 이 후 르네상스와, 문예부흥과 16세기 종교개혁, 18세기 산업혁명의 도 화선이 되었습니다. 다시말해 그간 1천년이 넘게 귀족들과 성직자 의 손에 갇혀있었던 성경, 즉 하나님의 말씀이 금속활자 발명으로 말미암아 일반 평민들게 확산되므로 세계 문화 문명사 일대 변화를 가져온 것입니다. 더 나아가 암흑기의 중세 교회를 개혁하고 혁명 하는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일어나게 했습니다. 확산되기 시작한 하나님의 말씀은 여기서 그치지 아니하고 18세기 산업혁명을 가져 와 세계 인류의 삶의 패턴을 새롭게 변화시켰습니다. 이처럼 기독교는 하나님 말씀, 복음 전파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명과 하나님의 능력을 부여받은 것이지 세상 정치 권력이나 물질 장악, 성 공 등을 퉁해 세상을 점령하라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교회의 가장 강력한 행동은 진리를 바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비록 그것이 핍박을 초래할지라도 진리를 사수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선포해야 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교회 교회답게 바 로 서서 하나님 말씀을 바로 선포할 때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 동력이 있어 나라 민족을 근본적으로 개혁하여 제2의 르네상스를 이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류사에 중세가 암흑기가 된 이유는 교회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파하는 교회로, 진리를 사수하 며 진리 가운데 서 있지 못하고 세상 권력에 미혹당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받은 권력(능력)은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가 아니라 복음 을 증거하는 복음전파의 능력(권력)입니다. 복음 전파의 영적인 능 력은 세상에서 말하는 권세나 권력과는 무관한 권력, 능력을 말합니다. 마태 복음 28장 18절에서 예수께서 "약속하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는 복음 전파를 위한 영적인 권세를 말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 만나 예수님께 던진 제자들의 질문은 "(행1:6)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였습니다. 제자들은 회복된 나라에서 얼마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그런 나라를 원 했습니다. "우리가 왕국을 회복하여 권위와 지위를 가지고 로마인 들에게 권력이 무엇인지를 보여 줄 수 있는 때가 지금입니까" 그러나 그런 나라에 관한 것은 알 바가 아니고 대신에 그는 능력을 주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 전파의 영적인 능력 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바로 이 복음 전파의 영적 능력을 상 실하고 권력 탐욕에 빠져 중세는 암흑기를 맞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한국 교회와 성도들은 더 이상 정치 권력에 미혹당하거나 교회를 더럽히지 말고 하나님 말씀 앞에 자신을 쪼개여 회개하며 이 시대에 들려주시는 나라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 어야 합니다. 요시아 왕이 율법책을 통해 나라의 운명이 멸망 직전 에 처해있음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겸비하여 옷을 찢고 통곡하므 로" 나라 민족에게 내리는 모든 재앙을 눈으로 보지 않게 되었던 것처럼,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는 살았 고 운동력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라 민족이 거듭나기를 축원합니다.
8. 1895년에 일어난 민비 살해 사건(을미사변)의 발단은 이렇습니다.(프레데릭 맥켄지가 쓴 <대한제국의 비극>에서) 미우라 코로오는 직업 청부 깡패 둘을 은밀히 불러 거사를 설명 했습니다. 이번 거사를 위하여 벌써 군과 경찰도 동원 계획을 세운 터였습니다. 두 깡패 아다찌 겐조와 구리토모 시게아리카는 불량배 24명을 모아 행동대를 조직했습니다. 살해 특공대였습니다. 미우라 코로오는 약 한 달전에 조선의 공사로 부임한 자며 구리토모 시게 아리카는 황성신문사 주필이었습니다. 일등 서기관 스기무라 후카 시가 코로오 공사와 대원군 사이에 다리를 놓았습니다. 이리하여 조선에서 기울어가는 일본의 영향력를 회복하려는 코로오와 민비를 꺾고 집권하려는 대원군이 손을 잡았습니다. 1895년 10월 8일 새벽 3시쯤 대원군의 집이 있던 시골, 오늘의 마포 공덕동에서 대원군과 일본인들이 출발했습니다. 행동대는 그날 새벽에 쉽게 왕궁으로 들 어갔습니다. 일본군이 궁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그건 아무 일도 아니었습니다. 일본 정규군은 궁을 차단하여 지켰습니다. 살해조 깡 패들이 왕의 침소가 있는 곳의 담을 넘었습니다. 곧 소동이 일어났 습니다. 약간의 조선인 수비대는 사살됨으로써 곧 무력하게 되었습니다. 깡패들 일부는 고종의 침소로 들이닥쳐 고종을 위협했습니다. 민비와 이혼하겠다는 문서에 서명하라고 강요했습니다. 민비 살해 조는 왕비의 침소로 뛰어들었습니다. 깡패들은 도망치는 궁녀들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두들겨 패면서 왕비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모르겠다고 말하며 애원하는 궁녀들의 머리채를 잡아 끌고 옆 방으로 가던 살해조는 방 구석에 숨어 있는 작은 여인을 발견했습니다. 살해조 조장인 일본군 고문 오카모도 류노스케가 그 여인의 머리채를 잡아 뒤로 제끼면서 왕비가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여인은 이를 부인하면서 몸을 홱 뿌리치며 비명을 지르며 낭하로 도망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세자가 애타게 자신의 이름을 세 번 부는 모 후의 목소리를 들은 것이 전부였습니다. 살해조가 민비를 덮쳤습니다.
여러 명이 쓰러진 작은 여인을 난자했습니다. 칼에 피가 튀었습니다. 모든 일은 계획대로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살해조는 아직 죽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왕비를 이불에 둘둘 말아 멀지 않은 정원 마당으로 옮겨 던졌습니다. 그 위에 석유를 붓고 준비한 나무를 주 위에 쌓았습니다. 타오르는 불에 계속 석유를 부어댔습니다. "모든 것이 다 타고, 그리고는 몇 조각의 뼈만 남았다." 기울어 가는 나라, 그 슬픈 나라의 '국모'는 이렇게 죽었습니다. 민비가 살해되는 그 급박한 상황에서 고종은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밖에 기독교인 누구 없느냐!" 기독교는 그 때 그 가련한 왕이 도움을 바랄 수 있는 유일한 대 상이었습니다. 그 무서운 위기의 때에 왕은 기독교가 필요했습니다. 고종의 외침은 1800년대의 마지막 15년 동안에 한국 사람이 기독교를 어떻게 보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입니다. 당시에 아시 아의 다른 나라들은 기독교를 제국주의 앞잡이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참 다행스럽게도 우리 나라는 기독교를 그렇게 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벌써 제국주의의 침략을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대표 적인 침략국이 일본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통하여 나라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많은 민족주의자들이 교회로 들어왔는데, 그 까닭은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이들도 기독교를 '어렵고 위험한 때에 나라를 구할 수 있는 종교'로 보았던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많은 어려움을 안고 있습니다. 삼류 정치, 정권의 비호 아래 커왔고 아직도 정치와 밀착해 있는 경제, 경제 규모가 커지기는 했어도 아직 그렇게까지 흥청망청 쓸 때가 아닌데 도 돈을 물쓰듯하는 부자들, 이것을 부추기는 소비지향적 문화와 향락주의, 그리고 이런 가운데 밀려난 가난한 사람들과 힘없는 사람들의 절망감, 여러 종교들이 나름대로 진리를 외치기는 하지만 그렇게 큰 영향은 없는 듯한 상황, 아니 진리를 말한다고 하는 종 교들도 '성장 경쟁식 사고'를 더 부추기고 있는 상황 이런 전반 적인 문제점은 결코 우리들에게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윤리 도덕적 타락과 가치관이 뒤집힌 상 황을 교회가 과연 해결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는가 아니 교회는 도 덕 윤리적으로 바르다고 볼 수 있는가 경제의 부조리를 보면서, 그래도 예수 믿는 경제인들이 부정 부패에서 깨끗하다고 평가할 수 있는가 그 지긋지긋한 도당 정치 현상을 보면서, 그래도 기독교인 정치가들이 바른 정치 철학과 믿는 사람다운 정치 도의를 지녔다고 인정할 수 있는가 과연 이 사회가 교회를 필요없는 존재라고 생각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러나 교회는 타락과 부패와 혼돈의 역사 속에서 언제나 구원 의 복음을 선포해왔습니다. 복음이 들어간 곳에는 또 언제나 윤리 도덕의 차원이 높아졌습니다. 바른 가치관과 건전한 문화와 문명의 꽃이 피었습니다. 시대가 어두워지고 도덕 가치가 땅에 떨어질 때, 사람들의 눈에 먼저 띄는 것은 교회가 지닌 높은 도덕 윤리적 가치입니다. 사람들 은 교회 안에서 그 사회를 구원할 희망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여전히 이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세우신 유일한 기관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 자신이 타락할 때는 이런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버림받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 주어진 사명을 망각하고 사명을 다하지 못했을 때 회개하고 갱신하므로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 시대에 "밖에 누구 사명자 없느냐"는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마르탱은 루터의 얼굴이 그려진 네 장의 그림을 보고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수도원에서 공부하던 시절에 그려진 루터의 얼굴은 깡마르긴 했으나 정결하고 엄숙했다. 그러나 그 후에 그려진 루터의 얼굴에는 투지는 있으나 겸손함이 사라져 버렸다. 제일 나중에 그려진 그 림의 루터는 살이 잔뜩 찐 얼굴에 속물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다." 자신과 교회, 그리고 나라 민족의 참된 개혁을 위해 끝까지 성결 보존하시고, 개혁의지를 끝까지 불태우는 하나님의 능력이 머물수 있도록 십자가에 죽기까지 겸손하여 섬기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남아 있는 교회와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500여 명이 모인 어떤 모임에서 목사가 청중들에게 말했습니다. "솔직히 말해주십시오. 여러분들의 느끼는 기독교에 대해서 말 입니다. 모든 의심이나 반감을 허심 탄회하게 말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맨 앞에 앉아 있던 젊은이가 벌떡 일어서더니 "그리스도들은 모순된 생활을 합니다. 한마디로 위선자입니다. 말과 행동이 다르니까요." 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말했습니다. "목사들은 그들의 받은 바 소명대로 행하지 않으며 사욕을 채우는 자들입니다." 뒷줄 문 옆에 앉아 있던 중년의 남자는 말했습니다. "교회 안 에 악한 자가 훨씬 많소." 여기저기서 많은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 습니다. 모두 스물 여덟 가지의 반론이 제시되었습니다. 그때 목사 가 조용히 그러나 힘있게 대답했습니다. "여러분이 말씀하신 것 모 두가 맞습니다. 교회 안에도 위선자가 있으며 목사 중에서는 사심 을 가지고 목회하는 이들이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가 여러분의 말을 들으며 한 가지 느낀 것이 있습니다. 다름 아니라 여러분 모 두가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정작 교회 안에서 발견되어야 할 것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 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신앙 공동체를 와해시키는 쓴 뿌리가 우 후죽순처럼 자라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개혁의 원리 와 원동력이 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독생자의 영광과 은 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나라 민족의 개혁을 기 원하시는 여러분에게 항상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 고리키는 세계를 뒤흔든 사회주의 혁명가 레닌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구원을 받으려면 누구나 고통을 참을 수 밖에 없다고 만 역설되는 나라 러시아에서, 아니 이 세상 전체에서 레닌만큼 심 각하고 강하게 불행과 슬픔을 미워하고 경멸하고 저주한 사람을 나는 보지 못했다. 고통은 인생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니라 민중 의 힘으로 물리쳐야 하고 또 물리칠 수 있는 악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가 특히 위대한 인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고리키가 평가한대로 레닌은 그가 주도한 사회주의 혁명 으로 러시아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었습니까 사회주의 혁명 으로 공산주의가 지배했던 지난 80여년의 구 소련은 엄청난 죽음과 고통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그의 사회주의 혁명으로 인한 고통은 오늘날 러시아에게 까지도 말할 수 없는 혼란과 고통을 안겨 주었 습니다. 그 결과 발트 3국의 하나였던 에스토니아에서 시작된 레닌 동상 제거작업은 소련 각국으로 퍼져 나가 이제 그의 동상은 형체 를 찾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레닌의 혁명은 역사에서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레닌은 자신이 죽기 2년 전 "레닌 사상의 가 장 탁월한 계승자로" 판단하여 당 서기장으로 스탈린을 임명했습니다. 스탈린은 성직자가 되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뜻을 따라 들어갔 던 츠빌리시 신학교를 5년만에 그만두었습니다. 그리고 츠빌리시 철도 노동자들로 구성된 한 학습 모임을 지도하는 것을 시작으로 직업혁명가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스탈린이 당 서기장에 올라서 1934년부터 시작된 대숙청은 당과 군의 최고위 지도자들이 다수 처 형된 것을 비롯하여 수천만 명이 체포되고 피의 숙청을 당했습니다. 이 숙청의 피냄새가 채 가시기 전에 터진 2차 대전을 통해서 소련 국민 2천만 - 3천만 명이 희생당했습니다. 인간적인 사상이나 정치, 경제의 혁명의 결과는 이처럼 엄청난 인류의 고통과 죽음을 초래했습니다.
3. 오늘날 개혁을 수 없이 부르짖지만 개혁이 되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종교개혁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교회의 개혁을 소리 높여 외쳤습니다. 그 중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에라스무스였습니다. 그가 당시에 기록한 <우신예찬>을 보면 지금 우리 나라에서 개 혁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지적하는 것과 거의 비슷한 내용들입니다. 교회 내에서 자행되는 불의, 부정, 믿는 자들의 미신과 부도덕, 그 리고 성직자들의 사치와 방탕 등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잘못을 그 만 두고 서로 사랑하며 도덕적인 삶을 살기를 강력히 외치는 점도 비슷합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은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 의해 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에라스무스 자신도 교회에서 처 벌하려는 눈치를 보이자 자신의 주장을 모두 철회하고 말았습니다. 그가 지적한 잘못들은 인간의 기준으로 본 것들이었습니다. 인간의 이성으로 볼 때 그리고 도덕으로 볼 때 중세말의 교회나 신자들이 나 성직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잘못되어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성과 도덕이란 기준에 의해서 그런 부도덕들은 시정이 되어야 만 했습니다. 그러나 루터의 개혁은 에라스무스와는 근본적으로 개 혁의 기준과 방법이 달랐습니다. 비록 같은 잘못을 지적해도 두 사람의 입장은 달랐습니다. 에라스무스의 기준은 이성과 도덕이었습니다만 루터는
그런데 관심이 없었습니다. 루터는 신앙적인 관점에 서, 성경적인 관점에서 당시 교회의 잘못된 점을 지적했습니다. 그 러기에 에라스무스가 위협에 눌려 잠잠해져도 루터는 그럴 수가 없 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은 생사의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루터는 죽음을 무릎쓰고 개혁에 끝까지 참여했습니다. 루터의 개혁의 원리는 무엇인가 그것은 모든 것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으로 교회(성전)가 바로 서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이룩할 때 참 된 개혁은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삶의 기준이 될 때 사회 전반에 개혁이 이루어집니다. 위대한 성직자의 말이나 기도원 원장 의 말이나 교회의 전통이나 사회의 풍습이나 과학자 또는 최고 지 성인의 말은 상대적인 기준만 될 뿐이지 성경말씀처럼 절대적인 권 위는 가질 수 없었습니다. 루터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것을 존재하게 했고 모든 것을 운행하며 모든 것을 파괴할 것이었습니다. 이 하나님 말씀 앞엣 겸손히 서게 되면 인간은 자신의 죄악을 보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돌아오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 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히4:13)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 하시는 자의 눈 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개혁은 말이나 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개혁은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 능력은 모두 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하셨는지, 그래서 지금 내가 어떤 상태로 바뀌었으며 장차 무엇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 명백히 보여주 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개혁의 기준은 물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이요 개혁의 원동력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개혁을 추구하려는 사람들은 외형적인 변화보다는 복음이 바로 전파되게 하는 것을
첫째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종교개혁 당시 에라스무스를 비롯한 인문주의자들은 누구보다도 교회의 잘못을 신랄하게 비판했지만 그 잘못을 시정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루터는 교회가 바른 신앙에 서기를 요구하였고 개혁 을 수행할 능력을 가졌었습니다. 교회가 바른 신앙에 서게 되자 다 른 개혁은 모두 다 자동적으로 뒤따라왔습니다.
4. 그래서 구약 시대 개혁자 요시야는 종교 개혁을 단행하는 단 호한 결단을 통해 나라의 운명을 일신(一新)하였습니다. 요시야는 먼저 성전을 성결케하는 일을 통하여 신앙 생활에 생기를 불어 넣 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곳으로 축복의 통로와 같은 것입니다. 외형적인 성전 복구 수리를 통하여 백성들의 형식적이고 외식적(外飾的)인 신앙을 새롭게 한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항상 성결케 보존코자 하는 사람은 그 신 앙이 날로 새로와지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님의 전(殿)이되는 자기 몸 을 날마다 성결케함으로 자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을 할 수 있게 됩니다(고전3:16,17). 하나님과 하나님의 교회를 가까이 하면 할수록 그 사람은 더욱 더 성결해지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성결의 능력을 얻게 됩니다. 성결할 때 거룩한 하나님의 영, 성령님은 역사(役事)하십니다. 나라의 개혁 정책이 하나님께 합의한 개혁 운동이 되어 나라가 새롭게 되기위해서는 먼저 성결 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켜 나가야 합니다. 성결운동은 오직 성령님의 역사 (役事)를 통해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인간의 죄를 근본적으로 소멸 시키는 성령님의 불을 이 땅위의 모든 심령들에게 던집시다. 죄악이 일소되지않은 개혁 운동은 악령(惡靈)만 역사(役事)할 뿐입니다. 민족의 신앙을 새롭게하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성전을 새롭게 하는데 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 나라 민족의 진정한 개혁, 하나님께서 기 뻐하시는 개혁을 위해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 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하는 하나님 말씀과 이 땅의 죄악을 불태우는 거룩한 성령님이 누구보 다 성도 여러분에게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요시야는 더 나아가 철저하게 우상을 제거함으로 그 땅을 정결 케 하였습니다(대하 34:3-8절). 나라 민족이 개혁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성전, 교회가 성결해져야 함은 물론 땅이 성결해져야만 합니다. 그래서 요시야 왕은 우상을 제거하되 그것들을 찍고 가루로 만 들어 우상숭배의 제사장 무덤에 뿌리는 등 철저하게 개혁을 단행하 였습니다. 요시야는 선왕(先王) 므낫세가 그 우상들을 파괴하지 않 고 그냥 내어버리기만 하여 그 아들 아몬이 다시 그 버린 우상을 가져와 섬겼던 사실을 교훈으로 삼아 그 우상들을 찍어 가루로 만 들어 날려 버렸던 것입니다(역대하33:22). 이처럼 우리도 옛 삶을 청산하되 죄지은 손을 잘라내듯 하고, 죄지은 눈을 빼어버리듯 하는(마18:8,9) 단호한 의지와 결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에야 비로소 새로운 삶이 가능하고 진정한 개혁이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이 나라에 요시야 왕같이 우상의 단(壇)과 우상 숭배를 철저히 분쇄(粉碎)시킬 수 있는 강하고 담대한 지도자가 필요한 것 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러한 지도자와 함께 하십니다. 멸망의 가 증스런 우상 숭배의 죄를 짓는 손과 발을 잘라내고, 그 눈을 빼어 버리듯하는 완전 타파할 때 이 땅이 정결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을 우상으로 숭배하는 북한 땅이 거룩한 하나님의 땅이 되 기 위해, 우상의 단(壇)들과 우상의 문화, 그리고 우상 숭배의 세력 들이 민족 문화를 빙자하여 악성 암세포(惡性 癌細胞)처럼 번지고 있는 이 남한 땅이 성결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하나님 말씀에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오직 그 명령에 순종하며, 백성 들 앞에 강하고 담대한 요시야와 여호수아같은 지도자가 요청되는 시대입니다.
5. 루터가 <95개조 논제>를 공표하기 전 어느 날, 설교사 한 사람이 붉은 색을 칠한 십자가와 교황을 상징하는 깃발을 세워 놓고 면죄부를 팔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돈이 이 상자 속에 들어가 땡그랑 하고 소리를 내는 바로 그 순간, 여러분의 영혼은 구원을 받게 됩니다. 몇푼 안 되는 면죄부로 천당에 가는 길을 예약해 두지 않으시렵니까 날이면 날 마다 오는 것이 아닙니다. 기회는 딱 한 번, 지금 안 사면 후회하게 됩니다." 루터는 야바위꾼 같은 설교사를 향해 침이라도 ㅂ어 주고 싶었 으나, 꾹 참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정말 구제 불능이군." 루터의 말마따나 당시의 교회는 정말 한심했습니다. 교황을 포함 하여 성직자들 중에는 몰래 자식을 낳은 사람들이 부지기수였습니다. 게다가 주교나 수도원장 같은 자리를 둘러싸고 공공연한 뇌물 수수행위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교회는 영주와 마찬가지로 광대한 토지와 수많은 농노들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교구나 수도원 책 임자는 농노들의 토지 경작으로부터 생겨나는 수입의 상당 부분을 착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뿐인가 주민들이 납부하는 십일조라든가 그 밖의 교회에서 무슨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 주민들로부터 거두 어들이는 돈까지 계산하면 교회의 수입은 실로 막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1514년 마인츠 지방의 대주교가 된 알브레히트는 당시 관례에 따라 처음 일년간의 수입을 교황에게 바칠 돈을 마련하기 위해 고리대금업으로 막대한 재산을 긁어모은 푸거 가문으로부터 돈을 빌려 교황에게 바쳤습니다. 당시 교황은 레오 10세였습니다. 그의 전임 교황이었던 율리우스 2세는 재임기간 중에 로마에 성 베 드로 성당을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의 우두머리로서의 위엄도 과시할 겸 유럽인들의 정신을 지배하는 기독교의 위세도 과시할 겸 율리우스 2세가 세우려 했던 웅장하고 거대한 베드로 성당은 레오 10세가 교황에 취임한 이후에도 완성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 출신이었던 레오 10세는 도박과 사냥과 파티 를 좋아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런 주제에 욕심은 있어서 성당을 하루라도 빨리 완성시키려고 안달복달했습니다. 이를 위해 그는 새로 운 돈벌이를 구상했습니다. 한편 알브레히트에게 거액을 빌려준 푸 거 가문은 어떻게 빨리 정확하게 돈을 회수할 수 있을까 하고 머리 를 굴리기 시작했습니다. 교황에게 거액을 차용해 바친 알브레히트 와 과시욕에 빠신 교황 레오 10세, 그리고 고리대금업자 푸거 가문, 이렇게 세 주인공이 대동단결하여 꾸며 낸 것이 바로 면죄부 판매 습니다. 교황은 면죄부라는 상품을 만들어 알브레히트에게 독점판 매권을 주는 대신 판매액의 절반을 갖기로 합니다. 알브레히트는 푸거 가문에게 진 빚을 상환하기 위해 푸거 가문의 사람들과 함께 면죄부 장사를 합니다. 그래서 판매액의 절반을 푸거 가문에게 진 빚을 갚기로 합니다. 당시 독일의 시인이었던 후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로마에는 세 가지가 팔리고 있다. 그 세 가지란 예수, 성직자의 자리, 여자이다. 로마에서는 세 가지가 미움을 받고 있다. 즉 교회 에 대한 의심, 교회의 개혁, 독일인의 각성이다. 나는 로마를 위해 세 가지를 기원한다. 그 세 가지란 페스트, 기근, 전쟁이다." 당시 교황과 성직자들의 횡포에 대한 적개심은 신분을 막론하고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습니다. 루터가 1520년에 저술한 종교개혁 3대문서인 <독일 민족의 귀족 에게 드리는 호소>는 독일에서의 로마 교황과 교회의 횡포를 열거 한 후 독일의 귀족들이 독일 민족의 이익을 위해 교회와 싸울 것을 호소한 내용입니다. 또 하나의 문서는 <교회의 바빌론 유폐(幽閉) 에 관하여>입니다. 이 책에서 루터는 교회에서 행해지는 여러 의식 들이 대부분이 성경에 근거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세례와 성찬 두 가지만 두고 다른 의식들은 모두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 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문서는 <기독교인의 자유에 대하여>인데 이 책에서 루터는 기독교인은 하나님 앞에서 누구나 평등하다는 것 을 주장합니다. 그는 그 책에서 절대적인 신앙의 자유와 하나님 말씀에 따르는 신앙인으로서의 책임을 함께 강조했습니다. 루터는 성직자들의 부패를 비판하면서, 진정한 신앙심은 하나님 말씀에 충실히 따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구원받는 길은 성경을 열심히 읽고 거기에 씌여져 있는 대로 실천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도대체 독일인 중에서 성경을 끝까지 읽어 본 사람, 아니 성경을 제대로 읽을 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 까 독일 글자도 모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라틴어로 씌여진 성경을 어떻게 읽을 수 있다는 말인가 목사가 목소리를 깔고 잔뜩 엄숙한 표정을 지으면서 성경을 한 구절을 읽으면, 신자들은 저 목사가 지금 자신들이 세수를 안 하고 왔다고 욕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예배 가 끝나면 남으라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를 이용 해서 성직자들이 온갖 부패와 타락을 일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를 보다못해 루터는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누구나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되면 성직자들의 말과 행동이 하나님의 말씀과 결코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해서 독일어 성경은 루터에 의해 완성되었고 글을 읽을 수 있는 독일인이라면 누구나 성경에 무슨 말이 씌여져 있는지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태까지 귀족들과 성직자들의 손에만 쥐어져 있던 성경이 마침내 독일인의 품 안에도 안기게 된 것입니다. 이제 루터는 더욱 더 강하게 주장합니다. "교회에 가 보라. 거기엔 사방에 갖가지 조각과 장식들이 현란하 게 걸려 있다. 도대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데에 성모 마리아 상이 왜 필요한가 이것들은 공연히 사람들의 감정을 주눅들게 할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 우상들 아래에 무릎꿇고 앉아 억지로 기도 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곳에서도 변치 않아야 할 진정한 믿음을 갖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짓 신앙을 강요하는 저 우상들을 교회에 서 추방해야 한다." 우상 숭배의 결과는 허무와 수치밖에 남을 것이 없기 때문에, 진 정한 개혁을 위해서는 반드시 이를 척결해야만 합니다. 시편 97:7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조각 신상을 섬기며 허무한 것으로 자긍하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6. 성전을 성결케 하고 나라의 모든 우상을 척결할 때, 요시아 왕은 성전에서 하나님의 말씀, 율법책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요시 아 왕은 여선지자 <훌다>에게 나라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선지자는 왕의 사자(使者)들에게 조금도 하나님의 말씀 을 왜곡시키거나 미화시키지 않고 나라가 멸망할 것이라는 엄청난 심판의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사실 그러한 심판이 직접적으로 요 시야 왕의 범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율법의 말씀을 완곡하게 전할 수도 있었고, 또 회개하여 그 심판을 면하라고 충고 해 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선지자 <훌다>는 냉엄하게 그 말씀을 있는 그대로 선포했던 것입니다. 그녀가 그렇게 했던 이유는 돌이킬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의 엄격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말씀 의 선포는 권력이나 지위 고하를 불문하고 공명 정대하게 전해야 하는 선지자적 사명에 투철했기 때문입니다. 위기에 처해 있는 나라 민족이 개혁을 통해 역사가 단절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바로 전하며 듣는 자는 그 말씀을 바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에 의해서 참 선 지자된 오늘날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축복 뿐만 아니라 말씀을 거역 할 때 내려지는 저주와 심판 또한 주저함 없이 선포해야 하는 것입니다. 요시야 왕은 율법책의 내용을 바로 듣고 읽었기 때문에 하나님 의 뜻을 발견하고 개혁의 의지를 불태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 럼 하나님 말씀은 복음에 대한 열정을 일깨워 주고, 인간의 삶과 나라의 운명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주는 능력입니다. 더 나아가 복음은 그리스도 중심의 인생관과 세계관을 형성케하여 사회적 국 가적인 죄들에 대해 참다운 개혁을 이루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어 느 시대이든 하나님의 말씀은 개혁 운동의 지표요 추진력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연구되어지고 읽혀지게 될 때 진정한 회개를 이루고, 옷을 찢고 마음을 찢는 회개 운동이 일어날 때 하나님께 합의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공적인 개혁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 후서 3:15-17에서 말합니다. "성경에는 두 가지 위대한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는 인간을 구원하는 능력입니다. 다른 하나는 인간으로 하여금 의롭게 살아가도 록 완성시키는 능력입니다." 성경을 바르게 읽고 영접하는 사람들은 구원에 대한 확증을 가 지게 됩니다. 성경을 바르게 읽고 영접하는 사람들은 세상을 바르게 살아 갈 능력과 지혜를 얻게 됩니다. 성경을 바르게 읽고 영접하는 지도자들은 나라와 민족을 바르게 영도할 능력과 권능과 지혜를 가지게 됩니다. 성경을 바르게 읽고 영접하는 사람들은 가정과 사회를 개혁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성경이 가는 곳에 그 사회의 도덕이 향상됩니다. 이렇게 성경은 국가 사회 도덕의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영국의 국왕 윌리엄 4세가 죽던 날 밤, 궁중에서는 한 처녀가 여 왕으로 추대되었습니다. 그녀가 바로 빅토리아 여왕입니다. 그녀는 64년 동안 왕위에 있었습니다. 영국의 번영은 이 빅토리아 여왕 때 성취된 것입니다. 영국의 국기인 유니온 잭 아래 해가 지지 않던 때도 빅토리아 여왕 시절이었습니다. 일찌기 인류 역사상 빅토리아 여왕만큼 위대한 왕도 드물 것입니다.
그런데 그녀는 자신이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즉시로 무릎을 꿇고 성경을 폈습니다. 잠시도 자신의 품에서 잠시도 떠나지 않았던 성경을 놓고 기도를 했습니다. "주여, 내가 여왕이 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치를 하게 해주십 시오." 빅토리아 여왕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해결했고 기도로 정치를 했습니다. 하루는 인도의 왕자 한 사람이 빅토리아 여 왕을 찾아와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렇게 정치를 잘하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빅토리아 여왕은 성경을 펴들고 힘 주어 말했습니다. "바로 이것 뿐입니다." 우리 나라에도 일찍이 이와같은 선각자가 있었습니다. 일제 시대 의 뛰어난 기독교 사상가 가운데 한 사람인 김교신은 인간 개인의 삶이나 민족과 인류의 역사적 삶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손길에 의 해 움직인다는 섭리적 신앙을 소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기본적 으로 민족의 흥망성쇠는 다른 무엇이 아닌 한 민족의 신앙에 달려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김교신은 구약 성서를 해석하면서 느헤미야 가 가진 망국민의 애국심을 논의한 후 그가 예루살렘성의 황폐화 소식을 듣고 동포들의 무능을 탓하거나, 이웃의 적대국들을 원망하 며, 어떤 정치적인 책략을 짜기 전에 먼저 회개하였음을 강조했습니다. 즉 "나라의 흥망성쇠가 그 나라의 병거(兵車)의 수의 다소와 외교 책략의 우열에 있지 아니함을 알기 때문에 저는 근본 문제에 착안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애국은 진정한 애국이었습니다." 그 에 의하면 국가나 민족 문제의 근본은 정치경제적인 어떤 요소가 아니라 신앙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는 또한 사회와 국가의 융성 은 모두 건전한 도덕 생활의 기초 위에서 가능한 것이며 건실한 도 덕만 확립되면 난마와 같은 민족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도덕이란 한 두 가지 행위의 과오 실책의 문제가 아 니라 "생활의 근본 방침에 있어서 하나님께 대한 태도, 곧 신앙이 도덕입니다. <.>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이것이 도덕의 총화요, 갱생 융성의 원동력"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정도로 신앙과 민족애 가 결합된 투철한 의식을 지닌 김교신은 그의 <성서 조선의 해 (解)>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자에게 주고 싶은 것은 한 두 가지에 그치지 않는다. 하늘의 별이라도 따주고 싶으나 인력에는 스스로 한계가 있다. 혹 자는 음악을 조선에 주며, 혹자는 문학을 주며, 혹자는 예술을 주어 조선에 꽃을 피우며, 옷을 입히며, 관을 씌울 것이나, 오직 우리는 조선에 성서를 주어 그 골근을 세우며, 그 혈액을 만들고자 한다. <.> 과학 지식의 토대 위에 새 조선을 건설하려는 과학 조선의 운동이 시대에 적절하지 않음이요, 그 인구의 팔 할 이상을 차지한 농민으로 하여금 덴마아크식 농업 조선을 중흥하려는 기도가 시의 에 부합함이 아니며, 기타 신흥 도시를 위주한 상공(商工) 조선이나 사조에 파도치는 공산(共産) 조선 등이 다 그 진심 성의로만 나온 것일진대 해로울 것도 없겠지만 이를테면 이런 것들은 모두 풀의 꽃과 같고 아침 이슬과 같아서 오늘 있었으나 내일에는 그 자취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며 모래 위의 건축이라 풍우를 당하여 파괴됨 이 심하지 아니치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구형적(具形的) 조 선 밑에 영구한 기반을 넣어야 할 것이니 그 지하의 기초공사가 곧 성서적 진리를 이 백성에게 소유시키는 일이다. 넓게 깊게 조선을 연구하여 영원한 새로운 조선을 성서 위에 세우라.
그러므로 조선 을 성서 위에." 여러분의 신앙과 이 나라 민족을 성서 위에 세우므로 참된 개혁 과 반석 위에 세워지는 튼튼하고 건강하며 부강한 나라 민족이 되 기를 기원합니다. 7. 미국 라이프지가 선정한, 지난 1천년을 만든 20대 사건 가운 데 제 1위는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발명이었습니다. 예수탄생 이 후 두 번째 맞는 천년의 최대 사건은 1455년 독일 대장장이 구텐베 르크가 금속활자로 성경을 인쇄한 사건이었습니다. 귀족과 성직자 의 전유물이던 성경은 그의 인쇄기를 통해 일반에 퍼져나갔고, 이 후 르네상스와, 문예부흥과 16세기 종교개혁, 18세기 산업혁명의 도 화선이 되었습니다. 다시말해 그간 1천년이 넘게 귀족들과 성직자 의 손에 갇혀있었던 성경, 즉 하나님의 말씀이 금속활자 발명으로 말미암아 일반 평민들게 확산되므로 세계 문화 문명사 일대 변화를 가져온 것입니다. 더 나아가 암흑기의 중세 교회를 개혁하고 혁명 하는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일어나게 했습니다. 확산되기 시작한 하나님의 말씀은 여기서 그치지 아니하고 18세기 산업혁명을 가져 와 세계 인류의 삶의 패턴을 새롭게 변화시켰습니다. 이처럼 기독교는 하나님 말씀, 복음 전파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명과 하나님의 능력을 부여받은 것이지 세상 정치 권력이나 물질 장악, 성 공 등을 퉁해 세상을 점령하라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교회의 가장 강력한 행동은 진리를 바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비록 그것이 핍박을 초래할지라도 진리를 사수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선포해야 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교회 교회답게 바 로 서서 하나님 말씀을 바로 선포할 때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 동력이 있어 나라 민족을 근본적으로 개혁하여 제2의 르네상스를 이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류사에 중세가 암흑기가 된 이유는 교회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파하는 교회로, 진리를 사수하 며 진리 가운데 서 있지 못하고 세상 권력에 미혹당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받은 권력(능력)은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가 아니라 복음 을 증거하는 복음전파의 능력(권력)입니다. 복음 전파의 영적인 능 력은 세상에서 말하는 권세나 권력과는 무관한 권력, 능력을 말합니다. 마태 복음 28장 18절에서 예수께서 "약속하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는 복음 전파를 위한 영적인 권세를 말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 만나 예수님께 던진 제자들의 질문은 "(행1:6)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였습니다. 제자들은 회복된 나라에서 얼마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그런 나라를 원 했습니다. "우리가 왕국을 회복하여 권위와 지위를 가지고 로마인 들에게 권력이 무엇인지를 보여 줄 수 있는 때가 지금입니까" 그러나 그런 나라에 관한 것은 알 바가 아니고 대신에 그는 능력을 주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 전파의 영적인 능력 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바로 이 복음 전파의 영적 능력을 상 실하고 권력 탐욕에 빠져 중세는 암흑기를 맞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한국 교회와 성도들은 더 이상 정치 권력에 미혹당하거나 교회를 더럽히지 말고 하나님 말씀 앞에 자신을 쪼개여 회개하며 이 시대에 들려주시는 나라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 어야 합니다. 요시아 왕이 율법책을 통해 나라의 운명이 멸망 직전 에 처해있음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겸비하여 옷을 찢고 통곡하므 로" 나라 민족에게 내리는 모든 재앙을 눈으로 보지 않게 되었던 것처럼,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는 살았 고 운동력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라 민족이 거듭나기를 축원합니다.
8. 1895년에 일어난 민비 살해 사건(을미사변)의 발단은 이렇습니다.(프레데릭 맥켄지가 쓴 <대한제국의 비극>에서) 미우라 코로오는 직업 청부 깡패 둘을 은밀히 불러 거사를 설명 했습니다. 이번 거사를 위하여 벌써 군과 경찰도 동원 계획을 세운 터였습니다. 두 깡패 아다찌 겐조와 구리토모 시게아리카는 불량배 24명을 모아 행동대를 조직했습니다. 살해 특공대였습니다. 미우라 코로오는 약 한 달전에 조선의 공사로 부임한 자며 구리토모 시게 아리카는 황성신문사 주필이었습니다. 일등 서기관 스기무라 후카 시가 코로오 공사와 대원군 사이에 다리를 놓았습니다. 이리하여 조선에서 기울어가는 일본의 영향력를 회복하려는 코로오와 민비를 꺾고 집권하려는 대원군이 손을 잡았습니다. 1895년 10월 8일 새벽 3시쯤 대원군의 집이 있던 시골, 오늘의 마포 공덕동에서 대원군과 일본인들이 출발했습니다. 행동대는 그날 새벽에 쉽게 왕궁으로 들 어갔습니다. 일본군이 궁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그건 아무 일도 아니었습니다. 일본 정규군은 궁을 차단하여 지켰습니다. 살해조 깡 패들이 왕의 침소가 있는 곳의 담을 넘었습니다. 곧 소동이 일어났 습니다. 약간의 조선인 수비대는 사살됨으로써 곧 무력하게 되었습니다. 깡패들 일부는 고종의 침소로 들이닥쳐 고종을 위협했습니다. 민비와 이혼하겠다는 문서에 서명하라고 강요했습니다. 민비 살해 조는 왕비의 침소로 뛰어들었습니다. 깡패들은 도망치는 궁녀들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두들겨 패면서 왕비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모르겠다고 말하며 애원하는 궁녀들의 머리채를 잡아 끌고 옆 방으로 가던 살해조는 방 구석에 숨어 있는 작은 여인을 발견했습니다. 살해조 조장인 일본군 고문 오카모도 류노스케가 그 여인의 머리채를 잡아 뒤로 제끼면서 왕비가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여인은 이를 부인하면서 몸을 홱 뿌리치며 비명을 지르며 낭하로 도망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세자가 애타게 자신의 이름을 세 번 부는 모 후의 목소리를 들은 것이 전부였습니다. 살해조가 민비를 덮쳤습니다.
여러 명이 쓰러진 작은 여인을 난자했습니다. 칼에 피가 튀었습니다. 모든 일은 계획대로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살해조는 아직 죽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왕비를 이불에 둘둘 말아 멀지 않은 정원 마당으로 옮겨 던졌습니다. 그 위에 석유를 붓고 준비한 나무를 주 위에 쌓았습니다. 타오르는 불에 계속 석유를 부어댔습니다. "모든 것이 다 타고, 그리고는 몇 조각의 뼈만 남았다." 기울어 가는 나라, 그 슬픈 나라의 '국모'는 이렇게 죽었습니다. 민비가 살해되는 그 급박한 상황에서 고종은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밖에 기독교인 누구 없느냐!" 기독교는 그 때 그 가련한 왕이 도움을 바랄 수 있는 유일한 대 상이었습니다. 그 무서운 위기의 때에 왕은 기독교가 필요했습니다. 고종의 외침은 1800년대의 마지막 15년 동안에 한국 사람이 기독교를 어떻게 보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입니다. 당시에 아시 아의 다른 나라들은 기독교를 제국주의 앞잡이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참 다행스럽게도 우리 나라는 기독교를 그렇게 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벌써 제국주의의 침략을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대표 적인 침략국이 일본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통하여 나라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많은 민족주의자들이 교회로 들어왔는데, 그 까닭은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이들도 기독교를 '어렵고 위험한 때에 나라를 구할 수 있는 종교'로 보았던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많은 어려움을 안고 있습니다. 삼류 정치, 정권의 비호 아래 커왔고 아직도 정치와 밀착해 있는 경제, 경제 규모가 커지기는 했어도 아직 그렇게까지 흥청망청 쓸 때가 아닌데 도 돈을 물쓰듯하는 부자들, 이것을 부추기는 소비지향적 문화와 향락주의, 그리고 이런 가운데 밀려난 가난한 사람들과 힘없는 사람들의 절망감, 여러 종교들이 나름대로 진리를 외치기는 하지만 그렇게 큰 영향은 없는 듯한 상황, 아니 진리를 말한다고 하는 종 교들도 '성장 경쟁식 사고'를 더 부추기고 있는 상황 이런 전반 적인 문제점은 결코 우리들에게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윤리 도덕적 타락과 가치관이 뒤집힌 상 황을 교회가 과연 해결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는가 아니 교회는 도 덕 윤리적으로 바르다고 볼 수 있는가 경제의 부조리를 보면서, 그래도 예수 믿는 경제인들이 부정 부패에서 깨끗하다고 평가할 수 있는가 그 지긋지긋한 도당 정치 현상을 보면서, 그래도 기독교인 정치가들이 바른 정치 철학과 믿는 사람다운 정치 도의를 지녔다고 인정할 수 있는가 과연 이 사회가 교회를 필요없는 존재라고 생각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러나 교회는 타락과 부패와 혼돈의 역사 속에서 언제나 구원 의 복음을 선포해왔습니다. 복음이 들어간 곳에는 또 언제나 윤리 도덕의 차원이 높아졌습니다. 바른 가치관과 건전한 문화와 문명의 꽃이 피었습니다. 시대가 어두워지고 도덕 가치가 땅에 떨어질 때, 사람들의 눈에 먼저 띄는 것은 교회가 지닌 높은 도덕 윤리적 가치입니다. 사람들 은 교회 안에서 그 사회를 구원할 희망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여전히 이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세우신 유일한 기관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 자신이 타락할 때는 이런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버림받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 주어진 사명을 망각하고 사명을 다하지 못했을 때 회개하고 갱신하므로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 시대에 "밖에 누구 사명자 없느냐"는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마르탱은 루터의 얼굴이 그려진 네 장의 그림을 보고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수도원에서 공부하던 시절에 그려진 루터의 얼굴은 깡마르긴 했으나 정결하고 엄숙했다. 그러나 그 후에 그려진 루터의 얼굴에는 투지는 있으나 겸손함이 사라져 버렸다. 제일 나중에 그려진 그 림의 루터는 살이 잔뜩 찐 얼굴에 속물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다." 자신과 교회, 그리고 나라 민족의 참된 개혁을 위해 끝까지 성결 보존하시고, 개혁의지를 끝까지 불태우는 하나님의 능력이 머물수 있도록 십자가에 죽기까지 겸손하여 섬기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남아 있는 교회와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500여 명이 모인 어떤 모임에서 목사가 청중들에게 말했습니다. "솔직히 말해주십시오. 여러분들의 느끼는 기독교에 대해서 말 입니다. 모든 의심이나 반감을 허심 탄회하게 말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맨 앞에 앉아 있던 젊은이가 벌떡 일어서더니 "그리스도들은 모순된 생활을 합니다. 한마디로 위선자입니다. 말과 행동이 다르니까요." 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말했습니다. "목사들은 그들의 받은 바 소명대로 행하지 않으며 사욕을 채우는 자들입니다." 뒷줄 문 옆에 앉아 있던 중년의 남자는 말했습니다. "교회 안 에 악한 자가 훨씬 많소." 여기저기서 많은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 습니다. 모두 스물 여덟 가지의 반론이 제시되었습니다. 그때 목사 가 조용히 그러나 힘있게 대답했습니다. "여러분이 말씀하신 것 모 두가 맞습니다. 교회 안에도 위선자가 있으며 목사 중에서는 사심 을 가지고 목회하는 이들이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가 여러분의 말을 들으며 한 가지 느낀 것이 있습니다. 다름 아니라 여러분 모 두가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정작 교회 안에서 발견되어야 할 것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 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신앙 공동체를 와해시키는 쓴 뿌리가 우 후죽순처럼 자라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개혁의 원리 와 원동력이 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독생자의 영광과 은 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나라 민족의 개혁을 기 원하시는 여러분에게 항상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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