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에 동참하자 (히5:7-10)
본문
1. 편안하고 안락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고난이란 어쩌면 생소하고 듣기 싫은 말 같습니다. 몇 개월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는 힘들고 더러운 일은 하지 않으려는 풍조가 만연했었고 경제적으로 심히 어려운 지금을 살아가는 지금에도 여전히 기피 대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고난주일이라고는 하지만 웬지 낯선 느낌마저 든다. 텔레비젼이 안방을 차지한지 오래 전이고 세탁기에 냉장고 그리고 컴퓨터가 어렵고 힘든 작업을 쉽고 빠르고 편하게 대신하고 있는 시대이고 보면 고난이란 시대에 맞지않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지금이 바로 고난이라는 체험이 무엇보다도 절실한 시기인 것이다. 원양어선에서 물고기를 산 채로 육지로 옮기기 위해서는 그 수족관 안에 그 물고기들을 잡아먹는 다른 물고기를 넣어두면 된다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부모의 밑에서 편하고 안이하게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을 봅시다. 그들이 과연 우리 부모들의 어려웠던 생활을 감당해낼 수 있을까요 나약하기만한 우리 아이들이 신앙의 기초를 견고히 놓을 수 있을까요 고난을 통해오는 그 많은 유익들을 바로 지금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 고난은 바로 우리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놀라운 구원의 완성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 복음을 지켰고 바로 그러한 피흘린 교회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성장해 왔던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 속에서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을 되새기며 그 고난에 동참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는 신앙생활을 이루도록 해야겠습니다.
2. 본론 오늘 본문을 보면 두가지 고난과 두가지 영광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두 가지 고난은 기도의 고난과 순종의 고난이며 두 가지 영광은 구원과 대제사장의 영광이 그것입니다.
(1) 기도의 고난에 동참하자 눅 22:41-44을 보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사복음서에 없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바로 ‘통곡과 눈물’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던 모습은 바로 고난 그 자체였습니다. 고난이란 히브리어의 ‘아말’이라는 동사에서 온 것인데 “지치도록 일하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아니 오히려 힘에 지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그래서 천사가 와서 기도하시는데 힘을 도왔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기도의 고난이 있습니까 아니면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하는 모습이 있습니까 단지 몇 분의 기도로 우리의 생활이 바뀌기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기도는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지는 기도입니다. 힘쓰고 애써서 자신을 하나님게 올리는 것입니다. 야곱처럼 밤새도록 자신이 이길 수 없는 상대였지만 그 어려움을 마다하지 않고 그는 처절하게 매달렸습니다. 이 얼마나 고난입니까 자신의 힘으로 이길 수 없을 때 우리는 포기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처절한 고난의 기도를 이룸으로써 이스라엘이라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기도의 고난을 잃어버렸습니다. 60,70년대만 하더라도 우리 한국교회는 무섭게 기도했습니다. 철야기도에 작정기도에 물불안가리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배가 불러서인지 기도의 시간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1912년 4월 어느 주일날 밤에 미국의 한 부인은 밤 늦도록 불안과 두려움에 잠들 수 없었습니다. 그 시간에 그녀의 남편은 타이타닉호를 타고 대서양을 건어 귀국하고 있던 길이었습니다. 두 세 시간 기도했지만 그녀의 마음은 편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계속해서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새벽 5시가 되서야 그녀는 마음에 평안을 찾고 잠들 수 있었습니다. 기녀가 기도하는 바로 그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습니까 바로 그 거대한 타이타닉호가 침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남편은 자신의 죽음을 무릅쓰고 다른 사람들을 구조한 후 배와 함께 소용돌이에 휩쓸려 바닷속으로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돌연 그의 몸이 물 위로 솟아나왔고 구조될 수 있었습니다. 그가 구조되던 그 시간이 바로 새벽 5시였던 것입니다. 만일 그녀가 기도의 고난을 이기지 못했더라면 아마도 남편을 다시는 만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지치도록 기도합시다. 예수님의 고난의 기도에 동참하여 힘에 지나도록 기도하는 기도의 용사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순종의 고난에 동참하자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감당하시기 위해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의 고난을 이겨내셨습니다. 예수님의 순종의 고난은 바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길고 긴 고통의 연속이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순간적으로 총을 맞아서 죽는 것은 쉽습니다. 간단한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으심은 그런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먼저 예수님은 조롱과 핍박과 멸시와 천대를 받으셨습니다. 그것도 아주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견딜 수 없는 방법으로 말입니다. 만왕의 왕이 하찮은 사람들에게 침뱉음을 당하고 채찍에 맞으시고 갖가지 조롱을 당하셨다는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조급하고 참지 못한다는 경향이 많은데 아마도 우리가 그런 조롱을 당했다면 열받아서 견딜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고난을 묵묵히 감당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지칠대로 지치신 몸으로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언덕길을 오르셨고 살이 찢기고 뼈가 부러지는 고통을 당하시며 6시간동안을 십자가 위에서 달려계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불구하고 이런 처절한 고통을 받으셨는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물론 예수님의 고통을 오늘날의 우리가 당할 수는 없습니다.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너무도 쉬운 것들입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회피한다면 우리는 너무도 사치스럽고 호사스런 영적 삶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가정에서 순종의 고난을 이루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이루어야 합니다. 그리고 직장에서 이루어야 합니다. 가정에서는 남편이요, 아내요, 자녀들입니다. 사랑과 우애로 순종하십시오. 교회에서는 직분자들입니다. 직분에 충성하시고 성경과 기도와 전도와 예배참석에 순종하십시오. 직장에서는 부하요 상사입니다. 책임감과 성실로 선을 행하며 덕을 끼치십시오. 예수님의 처절한 고난과 비교한다면 얼마나 쉽습니까 너무도 쉽습니다.
(3) 구원의 영광 고난에 동참하는 자들에게는 구원의 영광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그 영광은 우리가 당하는 고난과는 족히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십니다. 우리가 노동의 대가로 임금을 받는 것처럼 고난의 대가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누릴 수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의 소망을 두어야겠습니다. 다른 곳에 저축을 생각하지말고 고난에 저축을 해야겠습니다. 이보다 더 높은 이자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고난에의 동참으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제사장의 권리를 더 확실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3. 결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기도의 고난 순종의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하물며 우리들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그리고 고난은 이 악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려면 필연적으로 당해야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 합당한 깨끗한 영혼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전적 신뢰를 이룰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고난에 빠졌다고 실망하지 맙시다. 오히려 고난을 찾아갑시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는 고난주간 도안 예수님의고난을 마음 깊이 새겨 보다 나은 신앙의 씨앗을 심어야겠습니다.
2. 본론 오늘 본문을 보면 두가지 고난과 두가지 영광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두 가지 고난은 기도의 고난과 순종의 고난이며 두 가지 영광은 구원과 대제사장의 영광이 그것입니다.
(1) 기도의 고난에 동참하자 눅 22:41-44을 보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사복음서에 없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바로 ‘통곡과 눈물’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던 모습은 바로 고난 그 자체였습니다. 고난이란 히브리어의 ‘아말’이라는 동사에서 온 것인데 “지치도록 일하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아니 오히려 힘에 지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그래서 천사가 와서 기도하시는데 힘을 도왔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기도의 고난이 있습니까 아니면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하는 모습이 있습니까 단지 몇 분의 기도로 우리의 생활이 바뀌기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기도는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지는 기도입니다. 힘쓰고 애써서 자신을 하나님게 올리는 것입니다. 야곱처럼 밤새도록 자신이 이길 수 없는 상대였지만 그 어려움을 마다하지 않고 그는 처절하게 매달렸습니다. 이 얼마나 고난입니까 자신의 힘으로 이길 수 없을 때 우리는 포기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처절한 고난의 기도를 이룸으로써 이스라엘이라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기도의 고난을 잃어버렸습니다. 60,70년대만 하더라도 우리 한국교회는 무섭게 기도했습니다. 철야기도에 작정기도에 물불안가리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배가 불러서인지 기도의 시간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1912년 4월 어느 주일날 밤에 미국의 한 부인은 밤 늦도록 불안과 두려움에 잠들 수 없었습니다. 그 시간에 그녀의 남편은 타이타닉호를 타고 대서양을 건어 귀국하고 있던 길이었습니다. 두 세 시간 기도했지만 그녀의 마음은 편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계속해서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새벽 5시가 되서야 그녀는 마음에 평안을 찾고 잠들 수 있었습니다. 기녀가 기도하는 바로 그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습니까 바로 그 거대한 타이타닉호가 침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남편은 자신의 죽음을 무릅쓰고 다른 사람들을 구조한 후 배와 함께 소용돌이에 휩쓸려 바닷속으로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돌연 그의 몸이 물 위로 솟아나왔고 구조될 수 있었습니다. 그가 구조되던 그 시간이 바로 새벽 5시였던 것입니다. 만일 그녀가 기도의 고난을 이기지 못했더라면 아마도 남편을 다시는 만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지치도록 기도합시다. 예수님의 고난의 기도에 동참하여 힘에 지나도록 기도하는 기도의 용사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순종의 고난에 동참하자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감당하시기 위해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의 고난을 이겨내셨습니다. 예수님의 순종의 고난은 바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길고 긴 고통의 연속이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순간적으로 총을 맞아서 죽는 것은 쉽습니다. 간단한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으심은 그런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먼저 예수님은 조롱과 핍박과 멸시와 천대를 받으셨습니다. 그것도 아주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견딜 수 없는 방법으로 말입니다. 만왕의 왕이 하찮은 사람들에게 침뱉음을 당하고 채찍에 맞으시고 갖가지 조롱을 당하셨다는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조급하고 참지 못한다는 경향이 많은데 아마도 우리가 그런 조롱을 당했다면 열받아서 견딜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고난을 묵묵히 감당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지칠대로 지치신 몸으로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언덕길을 오르셨고 살이 찢기고 뼈가 부러지는 고통을 당하시며 6시간동안을 십자가 위에서 달려계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불구하고 이런 처절한 고통을 받으셨는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물론 예수님의 고통을 오늘날의 우리가 당할 수는 없습니다.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너무도 쉬운 것들입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회피한다면 우리는 너무도 사치스럽고 호사스런 영적 삶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가정에서 순종의 고난을 이루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이루어야 합니다. 그리고 직장에서 이루어야 합니다. 가정에서는 남편이요, 아내요, 자녀들입니다. 사랑과 우애로 순종하십시오. 교회에서는 직분자들입니다. 직분에 충성하시고 성경과 기도와 전도와 예배참석에 순종하십시오. 직장에서는 부하요 상사입니다. 책임감과 성실로 선을 행하며 덕을 끼치십시오. 예수님의 처절한 고난과 비교한다면 얼마나 쉽습니까 너무도 쉽습니다.
(3) 구원의 영광 고난에 동참하는 자들에게는 구원의 영광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그 영광은 우리가 당하는 고난과는 족히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십니다. 우리가 노동의 대가로 임금을 받는 것처럼 고난의 대가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누릴 수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의 소망을 두어야겠습니다. 다른 곳에 저축을 생각하지말고 고난에 저축을 해야겠습니다. 이보다 더 높은 이자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고난에의 동참으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제사장의 권리를 더 확실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3. 결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기도의 고난 순종의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하물며 우리들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그리고 고난은 이 악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려면 필연적으로 당해야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 합당한 깨끗한 영혼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전적 신뢰를 이룰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고난에 빠졌다고 실망하지 맙시다. 오히려 고난을 찾아갑시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는 고난주간 도안 예수님의고난을 마음 깊이 새겨 보다 나은 신앙의 씨앗을 심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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