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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본받음 (히6: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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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인가 배우려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학교도 중요하고 재능도 머리도 중요하다. 학비를 낼 수 있는 재력도 중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선생이다. 예능 과정에서 선생의 중요성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지식뿐이 아니라 인격과 삶의 방법도 배 우는 것인데 선생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로 다할 수 없다. 과거를 돌이켜 볼 때마다 나는 선생의 감사함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신앙으로 새생명을 얻게 하신 목사님, 복음을 깨닫게 해 준 목사님, 학문의 눈을 열어준 지도 교수님, 학문과 신앙이 하나가 되도록 만들어준 목사님은 특히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스승들이었다. 만약에 이 분들을 만나지 못했다 면 내 삶은 지금보다 훨씬 못한 어두움 속에 헤매고 있을 것이다. 대학원에 들어갔다. 도저히 따라갈만한 실력도 훈련도 되어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때의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내 지도교수는 엄하기 로 유명한 분이어서 거의 포기하고 싶었다. 그러나 너무도 자상한 교수의 지 도에 감화를 따라 참고서 시키는데로 하다 보니 학문의 세계의 문안에 들어설 수 있게 되었다. 그분은 되지도 않은 영어와 논문을 일일이 읽고 고쳐주었다. 공부를 마친지 십년이 되었지만 지금도 문득문득 만나고 싶어진다. 학위 를 마치면서 나는 뜨거운 감정으로 지도 교수님께 편지를 올렸다. 그리고 마 지막에 덧붙였다. "내 소원은 그저 교수님과 똑같은 선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 후에 그 분이 말했다. 자기도 지도교수에게 같은 말을 했었다고. 아! 우리 가 누구에게인가 스승이 되는 실력과 인격으로 삶을 살 수 있다면! 그래서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진실된 마음으로 "나도 당신처럼 되고 싶습니다"고 말한다면 우리의 삶은 보람이 있는 것이 된다. 아니 어느 한 부분만 이라도 그런 말을 듣는다면 감사한 일이다. "나도 당신과 같은 작품을 만들고 싶습니다.나도 당신과 같은 삶을 살고 싶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나도 당신과 같은 신앙의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고 듣는다면! 얼마 전에 교우 한 분이 말했다. 자기는 그저 듣고 싶은 말이 한 마디뿐 이라고. "저 사람은 참된 그리스도인이었다." 유명한 작가가 아니고 실력자나 권세자가 아니었다. 그저 그리스도의 훌륭한 노예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부르면서 그 주인의 마음을 가지고 꿈꾸며 주인의 사랑과 평안을 누리며 주인의 일을 주인의 힘으로 해 나가는 종말이다.
어린 시절 나는 주위에 훌륭한 선생을 가지지 못했다. 고등학교 시절에 가장 멋지게 본 사람은 친구였다. 그는 주먹의 왕이었다. 어려서부터 싸움으 로 자라난 그는 싸움만 하면 신이 났다. 너무도 멋지게 싸우는 것을 보고는 그를 존경했다. 그가 하는 말과 행동을 흉내내었다. 나도 그가 하는 운동을 하게 되었고 점점 내 모습은 거칠어지고 성격은 난폭해졌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비슷한 모습으로 삶은 진행되었다. 들어가서 시작한 것은 술과 잡기였다. 도대체 술많이 먹는게 왜 그리 자랑스러웠던지! 그러나 차츰 그것이 얼마나 미련하고 못된 일인지 깨닫게 된다. 대학은 내 시야를 넓 혀 주었다. 잘난척이 유치한 짓인줄 알게 되었다.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누가 존경을 받는지도 보게 되었다. 참된 인격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다가 한 친구에게 관심을 쏟게 되었다. 그는 여러 면에서 나와 반대 였다. 나는 너무 조급하고 화를 잘 냈다. 매사에 잘난 척을 하고 앞에 나서려 고 하였다. 나는 너무도 쉽게 낙심을 하고 비관을 했다. 그러나 그는 한 번도 화를 내지 않았다. 그는 절대로 뒤에서 남의 비판을 하지 않았다. 그는 언제 나 긍정적이었다. 외모도 불품이 없었고 힘도 없었지만 그는 지도자였다. 나는 그의 앞에만 가면 부끄러웠다. 나는 그를 모방하기 시작했다. 말투 까지도 그를 흉내내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을 해도 그처럼 잘 되지 않았다. 늘 조급하고 안달하고 불안했다. 마음이 절대로 그처럼 느긋할 수 없었다. 결 국 나는 그의 신앙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오랜 갈등 끝에 어느날 나는 신앙 의 세계에 들어가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마음에 참된 평안을 얻게 되었다. 이미 20대 중반에 들어가면서 조금 철이 든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성경 을 읽으며 신앙의 선배들을 살펴 보았다. 아브라함처럼 순종하려고 했다. 그 리고 다윗처럼 용맹하고 솔로몬처럼 지혜롭고 싶었다. 세례 요한처럼 의를 위해 용감하고 싶었고 바울처럼 참을성이 많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위대한 삶을 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처럼 천국의 확실한 자리를 차지하고 싶었고 엘리야처 럼 불전차를 타고 하늘을 날고 싶었다. 에녹처럼 여호와 하나님과 동행하고 다윗처럼 천하를 지배하기를 원했다. 모세처럼 바다를 가르고 베드로처럼 교회의 토대 를 세우고 싶었던 것이다. 정말로 그들의 위대한 삶을 살기를 원했다. 그것이 오로지 능력을 많이 받고 은사를 받아야만 되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산을 찾아서 기도하고 수년간을 기도원에서 금식하며 보냈다. 산 꼭대기에서 밤을 새워 기도하기를 얼마나 많이 했던가! 아무리 몸이 피곤해도 새벽예배를 참석했고 순례의 길을 다녔다. 길에서 전도하고 공원에서 외치고 버스에서 복음을 전했다.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힘입기를 원했다.
예언을 하고 죄를 꿰뚫어보고 귀신을 잡고 미래를 내다보기 원했다. 그러나 이제 알게 된 것이 무엇인가 진짜로 모방할 것은 그들의 행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정말로 사람을 변화시키고 여러 면에서 위대한 삶을 살게 하는 것은 외형이 아니라 그들 속에 있는 그 무엇이었던 것이다. 그들의 행위가 있도록 한 근원적인 힘은 그들 안에 있는 신앙이었다. 신앙은 위대한 행동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훌륭한 행동 자체가 곧 신앙은 아니었다. 신앙은 사람들의 근본을 바꾸어 놓는다. 종교적인 행위들도 많은 깨달음 과 성장을 주었다. 그러나 정말로 사람을 바꾸고 위대한 능력을 공급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그에 대한 깨달음이다. 즉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행한 일들에 대한 지식이요 그 지식에 대한 확신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어떤 존재 로 바뀌었는지 어떤 능력도 가졌는지 어떤 삶이 가능한지도 알게 된다. 여기서부터 삶은 방향은 달라진다. 노예를 훈련하면 교양있고 유능한 노 예를 만들 수 있다. 칭찬을 듣고 쓸모가 있는 노예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노예일뿐이다. 더 발전한 노예이다. 아무리 훌륭해도 노예는 여전 히 노예일뿐이다. 주인에 따라서 운명도 완전히 바뀌고 말 것이다. 노예에게 스스로 원하는대로 살아갈 능력은 전혀 없다. 남의 법에 복종할뿐이다. 그러나 아예 왕을 만들어 버리면 그래서 자기에게 주어진 삶의 질을 깨닫 게 한다면 이제는 전혀 다른 삶을 만들게 할 수 있다. 스스로 자기가 원하는 삶을 만들어 거기에 맞추어서 법을 만든다. 즉 자기가 말하는 것이 법이 되고 자기의 행동이 곧 기준이 될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원하는 방법대로 위대한 삶을 개척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왕의 긍지 속에 살고 죽을 것이다.
신앙인의 외형만을 모방하는 것은 노예와 같다. 겉으로는 그 사람과 같지 만 내면이 같은 것은 아니다. 진짜로 그 사람의 경지에 도달하려면 그 사람의 속을 모방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나 자신도 그처럼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모셔들어 다시 한번 태어난다. 아예 새로운 인종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날 자신이 왕의 아들로 다시 태어났음을 깨닫고 대각하는 것이다. 왕이 자기의 갈 길을 깨닫고 왕의 삶을 살듯, 신자는 신자의 삶을 살아간다. 왕이 자기의 소명을 깊이 깨달을수록 더 위대한 왕이 되듯, 신자도 깨달 음에 따라 삶을 살게 된다. 믿음을 따라서 하는 모든 것은 옳은 것이요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바가 된다. 반면에 믿음을 따라서 하지 않는 모든 일이 하나님을 대항하는 것이요 죄가 된다. 믿음이 있는 자는 그 믿음으로 산다. 그 믿음으로 자신을 새롭게 정의한다. 모든 기준은 나로부터 그리스도로 바뀐다. 내가 얼마나 훌륭하냐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게 주신 복이 무엇이냐 에서 출발한다. 우선 하나님 앞에 서는 기준이 분명하다. 의가 절대로 내 자 신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리스도가 주신 의의 완전함이 나를 하나님 앞에 당 당하게 서게 한다. 그리고 그 의는 실제로 삶 속에 능력으로 나타난다.
능력도 그러하다. 내가 가진실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분 명히 약속하신 그 말씀에 근거한다. "믿는자에게 이러한 표적이 따른다." 바 로 이 약속이다. 그가 천지를 호령하고 그가 귀신을 제어한다. 그가 하나님의 지혜를 가졌고 그가 모세처럼 하나님의 지팡이를 가졌다. 보라 모세가 가졌던 지팡이를. 그 지팡이가 특제가 아니라 모세의 신앙이 특별한 것이었다. 이제 이러한 사람은 신앙 안의 새로운 새계 곧 복음의 세계 안에 있는 복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입장, 자신의 마음, 자신의 미래, 자신의 모든 이해를 그 세계에 맞추어서 한다. 그 세계는 성경을 통해서 그리고 성경 속에서도 복음적인 눈을 통해서 본다. 그 세계가 자신에게 대하여 보 여주는대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여기서 하나님은 나의 확실한 동반자다. 하나님은 나를 승리자로, 능력자로 운명과 세계를 지배하는 이로 대하신다. 그동안 이 세계를 보기 위해서 눈을 감으라고 나는 말해왔다. 육신의 눈 을 감고 영혼의 눈을 뜨라는 것이다. 그러나 훈련만 되면 얼마든지 눈을 뜨고 도 이 세계를 보게 될 것이다. 이것은 그 깊이와 신비함이 무궁무진한 놀라운 세계이다. 여기에서의 한 날은 다른 곳의 천날보다 귀하다. 이미 많은 분들이 복음의 맛을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이 세계의 삶을 조 금씩 맛보게 되었다. 금년 한 해는 이 복음의 힘이 삶의 모든 분야에 펼쳐져 야 한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가 성도를 섬기고 하나님을 위해서 일한 것들에 대하여 잊어버리지 아니하신다고 한다.
그것이 제대로 된 것이건 안된 것이건 그리스도를 믿고 섬긴 그 모든 일에 대해 보상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계속 같은 열성으로 아니 그 이상의 뜨거운 사랑과 봉사를 계속하 라고 하신다. 그러려면 더욱 더 복음의 세계에서 이해를 넓혀야 한다. 그래서 믿음으로 약속하신 복을 향해 나아간다. 참된 믿음은 오래참고 심지가 견고하 게 만들어준다. 그리하여 그 결국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위대한 세계의 모든 위대한 약속을 실제로 누리게 되는 것이다. 유명한 퀘이커교의 학자 루퍼스 존즈가 있었다. 그가 강연을 마친 뒤 한 여인이 찾아왔다. 그의 모습은 믿기 어려울 만큼 못생겼다. 그녀가 말했다. 당신도 자신처럼 추한 외모를 가졌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것이다. 죤즈는 말 했다. "나도 외모 때문에 고민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내가 깨달은 것은 내면 에서부터 삶을 밝힌다면 어떤 모습이라도 충분히 아름다울 것입니다." 정말로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래서 그가 믿는 것으로 삶을 밝히는 사람이라면 모습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워진다. 예수의 모습은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는 분(사 53:2)이었다. 그러나 우리 모두 그처 럼 아름다운 분을 알지 못한다. 그는 세상에 존재한 인간중에 가장 아름다웠 던 분이요 삶도 그러하였다. 모든 것이 그에게는 아름다웠다. 우리가 경험한 것도 그렇다. 아름다운 인상은 반드시 아름다운 마음에서 나온다.
어떤 음악가가 말했다. "나 이제 찬란하게 아름다운 50대가 되었다." 내면의 세계가 과거 어느 때 보다도 더 빛나고 있다는 말이다. 하나님에 대한 더 많은 이해와 인생에 대한 더 밝고 능력있는 세계가 펼쳐진다는 말이다. 움 직이는대로 삶 전체에서 작품이 쏟아지고 잠언의 말씀이 흘러나온다. 자 이제 우리는 배움의 목표를 확실히 하자. 칼빈은 우리 인생과 세상 전 체가 위대한 학교라고 했다. 이제 우리가 무엇을 본받을 것인가 선배들의 신 앙이요 그 신앙의 중심인 예수가 아니던가! 복음의 새로운 세계에서의 새로운 사고와 행동이 아니던가. 그리하여 하나님이 약속하신 하늘의 기업을 누리는 것이 아니던가. 이보다 더 신나고 더 행복한 삶이 어디 있던가. 자 이제 아름다운 세계의 아름다운 영혼들이여! 아름다운 꿈을 가지라. 복음의 세계를 믿음의 눈으로 보라. 하나님과 함께 사랑하고 하나님과 함께 승리하라. 거기에 맞는 생각을 하라. 거기에 맞는 언어와 행동을 하라. 지금 까지 옛세상에서 옛사람이 하던 방법을 하나 둘 버리자. 아니, 새 마음으로 일어서서 사랑하기 시작하자. 사랑은 새로운 삶의 기준을 세워준다. 우리 속의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비쳐나올 때 우리는 듣게 될 것이다. "나도 당신처럼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어요.나도 꼭 당신만큼만 아름답 게 살고 싶습니다.당신처럼 위대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당신은 신비한 분입니다.나는 당신에게서 하나님의 위대함을 확실히 보고 있습니다.당신은 나의 마음 속의 영원한 스승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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