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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은 영혼의 닻 (시42:1-5,히6:13-20)

본문

오늘부터 대강절이 시작됩니다. 대강절은 성탄 전 4주부터 시작이 됩니다. 성탄을 준비하면서 회개와 절제의 삶을 이루는 기간이며, 예수님의 재 림을 기다리며 경건한 삶을 다지는 기간입니다. 대강절을 통해서 우리의 소망은 이 땅에서 우리의 욕망을 성취시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선포 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그 나라를 향하여 나가는 것이 우리의 소망 이며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임을 다시 한 번 분명하게 하는 기간입니다. 그래서 오늘 대강절 첫 주일에 히브리서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소망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의 약속과 맹세에 근거한다. 소망이란 현재의 것이 아닌 미래의 것을 바라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미래의 것이 확실한 것일 수도 있고, 불확실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불확실한 것에 대한 기대는 쉽게 흔들리게 되지만, 확실한 것에 대한 기대는 우리의 삶을 강하게 하며 인내로 모든 고난을 헤쳐나갈 수 있게 만 들어 준다. 따라서 확실한 미래에 대한 소망이야말로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주는 대단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런 소망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크 게 그 삶에 있어 차이가 나게 됩니다. 오늘 히브리서 6장 본문에 보면,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당신보다 더 큰 분이 계시지 않으므로, 당신 스스로를 두고서 맹세하여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을 주고, 너를 번성하게 하겠다'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오 래 참은 끝에 그 약속을 받은 것입니다."
 히 6:13-14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을 주고, 너를 번성하 게 하겠다"는 약속을 주셨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바라보며 오래 참고 기다린 끝에 그 약속의 성취인 아들 이삭을 얻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으면서 가진 소망은 오직 그 약속이 성취 되기만을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 소망 때문에 사실상 이 땅의 다 른 모든 기대를 버렸습니다. 풍요로운 땅이며 정들어 살던 고향을 떠나 정 처 없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나갔고, 가나안에 들어와서도 한곳에 정착 하여 안정된 삶을 이루는 대신에 천막에 살면서 이리 저리 옮겨 다녔던 것 입니다. 그가 한곳에 정착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약속에 충실하기 위하여 서입니다. 만약 그가 정착하여 집을 짓고 농사를 하면서 살았다면 이 땅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일에 그의 정력을 쏟았을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함께 동행하였던 조카 롯은 소돔과 고모라 지역에 들어가 정 착하므로 사실상 아브라함이 가졌던 소망에 동참하는 것을 포기하였던 것입니다. 롯은 그 풍요로운 땅에 정착하여 안정된 삶을 이룩하는 것 같았으나 오히려 그들이 가진 풍요로움이 그 도시를 타락하게 만들어 결국 하늘에서 쏟아진 유황불로 지상에서 사라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롯이 가졌던 소망은 확실한 데 반하여 아브라함의 소망은 오히려 불확실 하고 막연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롯의 소망은 빨리 성취되기는 하였지 만, 그것은 곧 파멸로 연결되어 허무하게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아브 라함의 소망은 더디고 불확실한 것이었지만, 참고 기다린 끝에 아들 이삭을 낳았고, 그 후손에서 메시야가 오셨으며, 그 메시야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성취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런 미래를 다 내다 본 것은 아 닙니다. 다만 하나님이 약속하셨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믿었고, 그 약속을 기다렸을 뿐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소망은 결국 하나님의 약속이며, 그 약속의 성취인 하나님의 나라에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소망은 우리가 이 땅에서 성공하고 행복하게 사는 모든 소망과는 확실하게 구별되는 것입니다. "그대는 이 세상의 부자들에게 명령하여, 교만하지도 말고, 덧없는 재물 에 소망을 두지도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풍성히 주셔서 즐기 게 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하십시오." 딤전 6:17 "덧없는 재물에 대한 소망"이 아닌 "하나님께 대한 소망"이 바로 우리가 지녀야 할 참 소망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재물에 대한 소망이 덧없음을 알 면서도 그 소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 가운데도 하나님께 소망을 두기보다는 재물에 대한 소망을 이루려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믿음의 목표는 "이 땅에 대한 소망"과 "하나님께 대한 소망" 사이에서 갈등하면서 마침내는 "이 땅의 소망" 을 포기하고 "하나님께 대한 소망"을 지니는 데 있습니다. 보다 근원적이고 큰 것을 바라는 소망 산기슭에 자리한 어떤 인디언 부족의 추장이 임종을 맞게 되었습니다. 추장은 세 아들을 불러 놓고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제 나는 떠나가니 너희 셋 중의 하나가 내 뒤를 이어 이 부족의 추장 이 되어야 한다. 너희 모두 저 거룩한 산에 올라가서 뭔가 아름다운 것을 가져오너라. 가장 훌륭한 선물을 가져오는 자가 나의 후계자가 될 것이다." 며칠이 지나자 세 아들이 돌아왔습니다.
첫째 아들은 산 정상에서 자라 고 있는 아주 희귀하고 아름다운 꽃을 선물로 바쳤습니다. 둘째 아들은 비 바람에 닳아져 매끄럽고 둥근, 아름다운 색깔의 돌을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셋째 아들은 빈손으로 돌아와서는 아버지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저는 아버지께 보여드릴 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저는 저 거룩 한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보았습니다. 그 너머에는 아름다운 땅이 펼쳐져 있 었는데, 푸른 초장과 수정 같은 호수가 있었습니다. 저는 장차 우리 부족이 보다 나은 생활을 하기 위해 나아가야 할 곳에 대한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제가 본 것이 너무 감동적이어서 아버지께 다른 것을 가져올 생각을 못 하였습니다." 이에 추장이 대답하였습니다. "너를 우리 부족의 새 추장으로 삼겠다. 너는 가장 값진 것, 즉 보다 나 은 미래에 대한 소망을 선물했기 때문이다." 소망은 당장 눈에 보기에 좋은 것, 짧은 생각으로 볼 때 좋아 보이는 것 에 대한 것이 아니라, 보다 멀리 보고 보다 크게 생각해야 하며, 보다 근원 적인 것을 찾을 줄 아는 분별력을 통하여 발견한 것에 대한 것입니다. 로 마서 8장 24절에 "눈에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바라겠습니까"라고 한 대로 우리가 바라는 소망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에게 확실하게 약속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 소망을 지니려면 큰 믿음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스스로 맹세하시면 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에 대한 소망을 가지려면, 절대자이신 하나님께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보이는 것에 매이고 거기에 익숙해져 있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그 세계에 대하여 믿음을 갖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결 국 성령님께서 우리 속에 이런 능력을 주시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갖기 어렵습니다. 또 이런 믿음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 믿음을 점점 자 라게 하며 분명하게 하는 일은 대단히 큰 인내를 필요로 하며 끈질긴 노력 이 요청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을 자라게 하기 위하여 많은 기도를 하여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하게 이해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보이는 것에 대한 우리의 관념과 집착을 벗어버리고 보 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깊은 명상과 사색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너무 도시 생활에 젖었고 기계문명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의 영성을 누르고 있으며,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우리의 열망을 잠재우고 있는 것 입니다. 결국 도시문명은 우리의 소망을 현실적인 것에 두게 하며, 영원과 미래에 대한 소망을 잊어버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참된 소망을 갖기 위하여서는 이 거짓된 물질문명에 대 한 소망을 포기하고 거기에 대하여 절망을 맛본 후에라야 비로소 가능한 것 입니다. 탕자가 먼 나라로 나가서 그의 재산을 다 탕진하고서야 비로소 아 버지 집을 생각했던 것처럼, 우리도 이 땅의 문명에 대하여 절망을 맛볼 때 비로소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앞에 절실하게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나라는 점점 더 어려운 지경에 몰려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 에게 주신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누렸던 이 땅의 풍요로움이 얼마나 짧은 것이며, 잘못된 것이며, 허무한 것인가를 깨닫게 하는 기회입니다. 우리가 이를 깨닫고 이제 방만하였던 우리의 삶을 정리하고 천막에 사는 것처 럼 미래 지향적인 삶으로 돌이키는 기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 동안 너무 많은 것을 가지려 했고, 너무 많은 것을 낭비하여 왔습니다. 우리의 욕심을 위해서 하나님의 피조세계를 너무 많이 파괴하였습니다. 이제 정신을 차리고 절제하며 절약하는 가난한 삶으로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관심을 이 땅의 삶의 '지속적인 발전'에 둘 것이 아니라, 점점 더 분 명하게 다가오는 하나님의 나라에 두어야 할 때입니다. 지금은 그린벨트를 점점 축소시켜가야 할 때가 아니라 점점 더 늘려가야 할 때입니다. 도시확장을 위하여 막대한 예산을 퍼부을 때가 아니라 농어촌 을 되살리기 위하여 더 많은 예산을 써야 할 때입니다. 화려하고 견고한 성과 같은 집을 지을 때가 아니라 다시 흙집을 짓고 초가를 얹은 자그마한 시 골집들을 늘려야 할 때입니다. 자동차 산업을 더욱 육성할 때가 아니라 점 차 축소시켜서 우리 사회의 발전속도를 늦추고, 오염된 대기를 회복시켜가 야 할 때입니다. 따라서 소망을 향한 우리의 믿음의 행진은 모든 물질문명에 거슬러 가는 일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이 땅을 파괴하는 개발을 반대하고, 물질문명과 더불어 타락해 가는 인류의 도덕 불감증에 반대하며, 기술문명을 토대로 이 룩되는 유토피아의 꿈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이 모든 것 대 신 하나님께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통치가 이 땅에 실현되도 록 그 일에 협력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받아드려 고르게 덜 쓰고 덜 먹으면서 다같이 사는 세계를 향해 가자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는 이런 소망의 의미를 잘못 이해하고 현실을 도피하여 미래의 약속만을 바라보고 나갔기 때문에, 우리의 소망과 실제의 삶을 이원화시켰 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며 그 소망 가운데 산다고 하 면서 실제의 삶은 소망 없는 사람들과 똑같이 달콤한 물질문명의 삶을 좇아 살았던 것입니다. 우리도 똑같이 이 땅에서 잘 살기를 원했고, 다른 사람들 처럼 낭비하며 방만한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소망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우리는 그 소망을 향해 나가기 위한 천막에서 산 것이 아니라 이 땅에 든든 한 집을 짓고 전혀 그 소망을 향해 나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한국 교회가 말하는 소망은 실제로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 소망의 실현은 바로 여기에 큰 교회를 이루는 일에 불과하였던 것입니다. 큰 교회 를 이루는 것이 곧 하나님의 나라의 실현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우리 사 회가 개발과 발전을 지향할 때 한국 교회는 거기에 제동을 거는 대신 그것 을 찬양하고 거기에 편승하여 그 열매를 함께 나누기에 급급하였던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결코 현실을 외면해 가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현실을 바 로 잡아서 여기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믿음과 소망을 더욱 분명히 함으로 이 역사에 대한 분별력을 키 워서 오늘 이 물질문명이 안고 있는 악마성과 그 죄악을 확실하게 분별하여 거기에 제동을 걸고, 우리의 몸으로 소망의 삶을 실현해 가야할 것입니다. 소망은 결코 막연한 것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우리의 삶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면서 절제하며 겸손하게 사는 청빈 의 삶으로 나가며, 더불어 사는 사랑을 실천해 가는 것이 바로 참 소망을 가진 자의 삶입니다. 청빈의 삶을 고집하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이 물질문 명에 저항하는 것이며, 크고 많은 것을 추구하는 모든 발전 논리에 항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참 소망을 가지게 될 때 그것은 우리의 영혼의 닻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닻은 배를 떠내려가지 않게 하는 도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그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지게 되면, 우리의 삶은 결코 표류(漂流)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의 물질문명을 반대하여 청빈한 삶을 추구한다 면, 우리가 이 땅에서 낙담하며 절망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이 세상이 아 무리 요동을 하여도 우리는 거기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질 때 그가 흔들리지 않으시는 우리의 생명의 근원이시기에 거기에 닻을 내린 우리의 삶도 결코 요동치 않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난은 우리로 하나님께 더욱 확실하게 소망을 두게 하는 동기가 되기에 오히려 그 고난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이 소망이 있으니 그것은 안전하고 확실한 영혼의 닻과 같 아서, 휘장 안에까지 들어가게 해줍니다." 우리의 소망은 우리를 인생의 항로에서 우리를 흔들리지 않게 할 뿐 아 니라 우리를 성소의 휘장 안 즉 지성소에 이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지성소는 성소의 가장 깊은 곳으로 오직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 번 어린양의 피를 가지고 들어가는 곳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아주 거룩한 곳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리스도께서 우리들보다 앞서 여기에 들어가시므로 그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대제사장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그 지성소에 들어가 하나님을 뵈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약속의 성취이며, 우리 구원의 완성입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로부터 떨어졌던 우리가 다시 하나님께로 나갈 수 있게 된 것 이것이 구원의 완 성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바로 이 놀라운 은총을 바라보는 것이며, 흔들리 지 않고 이 소망을 따라 인내로 기다리면 마침내 우리는 하나님 보좌 앞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대강절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다시 한번 우리가 가진 소망의 성격을 분명하게 하여야 하겠습니다. 아직도 이 땅에 대 한 소망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우리의 삶을 돌아 보면서 점점 더 그 절망의 끝이 보이는 이 땅의 문명에 대하여 미련을 둘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확실하게 보여주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확고히 하여야 하겠습니다. 이 대강절은 우리의 소망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다시 말해서 흐 트러졌던 우리의 정신과 마음을 모아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기다리면서 청빈하고 겸손한 삶을 이루어가기를 다짐 하는 기간입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낙심하며, 어찌하여 그렇게 괴로워하 느냐 너는 하나님을 기다려라. 이제 내가, 나의 구원자, 나의 하나님 을 또다시 찬양하련다." 시 42:5 이제 시편 기자처럼 이 땅의 삶에 소망을 두었다가 낙심하면서 한숨 지 을 것이 아니라 변치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그로부터 오는 소망 을 굳게 붙잡아 흔들리지 않는 삶으로 승리하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 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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