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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대제사장 (히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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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엘리자베스 로스라는 심리학자는 임종이 가까운 사람 6백 명을 대상으로 연구 조사하여 "죽음과 죽는 법"이란 책을 펴냈습니다. 로스는 이 책에서 환자들이 곧 죽게 될 것이라는 통보를 받게 됐을 때 어떤 과정을 거쳐서 죽음을 받아들이는가 그 과정을 설명해 줍니다. 대개 다음의 다섯 단계를 거쳐서 죽음을 받아들인답니다.
첫째 단계에서는 우선 부정한답니다. 내가 이렇게 건강한데 죽기는 왜 죽어. 의사가 오진을 했겠지. 부인한답니다.
둘째 단계에서는 분노한답니다. 왜 하필이면 내가 죽어야 하는가 아직 할 일도 많고, 해 보고 싶은 것도 많은데 억울해 하면서 화를 낸답니다.
셋째 단계에서는 타협한답니다. 아무리 몸부림쳐봐도 바뀔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한 발 물러선답니다.
그렇다면 죽은 뒤에 나는 어떻게 되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한답니다.
넷째 단계에서는 낙심한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보람있게 인생을 살 것을, 예수를 더 잘 믿을 것을, 후회하고 안타까워한답니다. 그리고 다섯째 단계에서는 받아들인답니다. 모든 것이 끝난 것을 어쩔 것인가. 체념하면서 죽음을 받아들인답니다. 그러나 이제 죽음을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그 뒤가 문제입니다. 죽음을 받아들인 뒤에 보이는 태도도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이것을 크게 두 종류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평안하게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죽음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을 압니다. 그리고 그 일을 기대하면서 기다립니다. 이 사람은 죽을 준비가 끝난 사람입니다. 다른 하나는 절망과 두려움으로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죽음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날 지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죽을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사람입니다. 이 두 사람의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있느냐 아니냐 입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은 죽음을 평안하게 기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지 못한 사람은 절망과 두려움으로 죽음을 맞습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맺는 일이 필요합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우리 인간과의 관계가 어떤지를 말씀해 줍니다.
약 4:4에 보면,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롬 8:7에서는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말씀했습니다. 또한 골 1:21에는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이라고 말씀했습니다. 한 마디로 요약해 보면 하나님과 우리 인간과의 사이는 원수 관계입니다. 본래 하나님과 인간 사이는 좋아하고 사랑하던 좋은 관계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 앞에 타락하여 죄를 범했기 때문에 이 관계가 깨졌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말씀을 따르지 않고,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렸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 대해 진노하게 되셨습니다. 결국 좋은 관계가 깨지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는 원수 관계가 되었습니다. 옛 말에 가화만사성이란 것이 있습니다. 가정이 화목해야 만사가 형통하게 잘 풀린다는 것입니다. 옳은 말입니다. 부부가 별거를 하니, 이혼을 하니 하면서 관계가 좋지 못하게 되면 모든 일이 엉망이 됩니다. 남편이 밖에서 사업을 잘 할 수 없습니다. 아내가 집안에서 가사 일을 잘 돌볼 수가 없습니다. 자녀들이 학교에서 공부 잘할 수 없습니다. 모든 일이 뒤죽박죽입니다. 뭐하나 잘 되는 것이 없습니다. 일이 이리 꼬이고 저리 꼬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면 그 사람이 잘 될 수 없습니다. 더욱 하나님과 원수지간이면 그 영혼이 죽어 가고, 그 정신이 병들고, 하는 모든 일이 정상일 수 없습니다. 죄를 짓게 되고 죄책감에 시달리게 됩니다. 이것이 성경이 진단하는 우리 인간의 본 모습입니다. 그러니까 인간 본 모습의 내막에는 하나님과의 원수 관계가 암세포처럼 자리하고 있습니다. 결국 인간의 모든 문제를 풀기 위해서 가장 시급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과 원수된 관계를 풀고 해결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과 화해하는 것이 인간이 해결해야 할 가장 핵심적인 인생 문제라는 말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백성들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원만해야 합니다. 그래야 평안을 누릴 수 있고, 늘 풍성한 은혜도 받게 되고, 이 땅에서도 모든 일이 잘됩니다. 요한 3서 2절 말씀처럼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해 집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화해하시기 바랍니다. 이것보다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는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화해는 우리 생각대로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잘못해서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마음에 드실만한 길을 찾아야 합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 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대로만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납하시고 우리와 화해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과 화해를 이룰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본문을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이 되셔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화해를 이루셨다는 말씀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해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우리 주님께서 마련해 놓으신 그 길을 따라 순종하며 나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이 말씀의 의미를 보다 깊이 성찰해 보기 위해서 이 말씀의 배경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과 화해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바로 제사 제도입니다. 레위기에 보면 다섯 가지 제사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입니다. 이 제사들은 제사 시기, 제물, 제사법 등에서 각기 서로 달랐습니다. 그러나 목적은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과 화해를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달래드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는 일입니다. 그런데 레위기에 보면 이 다섯 가지 제사와 다른 특별한 제사를 규정해 놓고 있습니다.
바로 대 속죄일 제사입니다. 이 제사는 일년에 한번 7월 10일 속죄일에 드려졌습니다. 이 제사가 다른 점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일반 제사장이 아닌 대제사장만이 드릴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다른 모든 제사는 제사장들이 나누어 분담하여 거행했습니다. 그러나 이 제사만큼은 대제사장이 직접 거행했습니다. 둘째는 지성소에 들어가야 했다는 점입니다. 출애굽 당시 제사드리던 성막은 법궤가 안치되었던 지성소, 진설병상, 등대, 그리고 분향단이 있었던 성소, 그리고 제물이 태워지던 제단이 있는 뜰로 구성되었습니다. 일반 다른 제사들은 뜰에서 제물들이 태워지고 성소에서 떡이 진설되고 향이 태워지며 진행됐습니다. 그러나 대속죄일 제사는 대제사장이 지성소에까지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셋째는 이스라엘 전체의 죄를 속죄했다는 점입니다. 다른 모든 제사들은 하나님과 제사드린 당사자 사이의 화해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이 대 속죄일 제사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죄를 속죄해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전체 사이의 화해를 이루었습니다. 특히 부지불식간에 지은 죄, 심지어 지성소 자체의 죄까지도 속죄해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화해를 온전히 이루고자 했습니다. 이런 배경을 생각하면서 오늘 본문 말씀을 보다 깊이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본문 말씀의 요지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합당한 대제사장이라는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예수가 합당한 대제사장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로 제사장 자격 면에서 합당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화해를 이루기 위해 제사를 집전했던 제사장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자격이 있습니다. 바로 자신이 먼저 하나님과 화해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면서 남들을 하나님과 화해시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사장들이 제사를 집전하기 전에 했던 일은 자신을 위해 속죄제를 지내는 것입니다. 자기의 죄를 씻고 하나님과 화해를 이루고 나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 제사를 집전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대속죄일 때 대제사장이 자기를 위해 속죄제를 드리고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속죄하기 위해 지성소에 들어갈 때 그 몸에 끈을 묶고 들어갔습니다. 만일 지성소 안에 들어갔는데 자신을 위한 속죄가 충분치 않아서 하나님의 진노로 지성소 안에서 죽게 될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입니다. 지성소 안에는 대제사장 외에는 그것도 일년에 한번 외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만의 하나 대제사장이 지성소 안에서 죽었을 때 그 시신을 지성소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서 끈을 묶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합니까 인간 제사장들은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도 자신의 죄 때문에 하나님과 원수된 사람이기 때문에 남들을 하나님과 화해시키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적으로 그들을 믿고 따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온전한 화해의 보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다릅니다. 그분은 믿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온전한 화해를 이루어 주실 수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본문에서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으시다"고 했습니다. 즉 예수는 전혀 죄가 없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기만 하면, 예수를 따르기만 하면 하나님과 화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로 충분합니다. 예수로 부족함이 없습니다.
둘째로 제사 방법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드릴 때 그 번거로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제사 때마다 제물을 죽여야 했습니다. 제물로는 소, 양, 비둘기 같은 짐승들이 쓰였습니다. 한 사람이 속죄하기 위해서 반드시 한 마리의 짐승이 죽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반복해서 죄를 지으면 그 죄 지은 수대로 제물이 필요했습니다. 이 제사 때문에 실제로 성전에서 수십만 마리의 제물들이 죽어갔습니다. 성전 주변에는 늘 피가 흘러 넘쳤고, 피비린내와 제물을 태우는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제사장들은 제물을 죽이고, 각을 뜨고, 태우는 고된 제사 일로 지칠 대로 지쳐있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제사를 드려야 했던 것은 제물이 단 하나의 생명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죄를 그것도 한번의 죄를 대신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오늘날도 같은 제사 법으로 하나님과 화해를 이루어야 한다면 가축들이 남아나지도 않았을 것이고, 교회는 도살장을 방불케 됐을 것입니다. 이렇듯이 구약의 제사 법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이 되셔서 드리신 제사에는 다른 제물을 쓰지 않으셨습니다. 주님 당신께서 친히 제물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의 생명이 제물로 바쳐졌습니다. 이 생명은 너무도 귀하기 때문에 이 세상 그 모든 사람의 죄를 다 담당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요즈음 금 모으기 운동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가에 헌납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순금만 받습니다. 14K, 18K 합금은 받지 않습니다. 더더욱 도금한 것은 받지 않습니다. 비유컨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린 제물의 생명은 합금이나 도금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예수의 생명은 순금과 같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죄를 지을 때마다 제물을 들고 성전을 찾을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다만 믿음으로 회개하기만 하면,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만 하면 됩니다. 이 얼마나 큰 축복이고 은혜인지 모릅니다.
셋째로 제사의 결과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린 제사는 죄를 지을 때마다 다시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마치 우리가 자판기에서 차를 뽑아 마실 때 한번 쓰자고 일회용 종이컵을 쓰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그 제사는 일회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사장도 일정 기간만 봉사하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제사는 그 결과가 영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다릅니다. 히7:27을 보면 "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 말씀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집전하신 제사는 그 결과가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한번 제사 드리심으로 또 다시 제사드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마 27:51을 보면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지어져 둘이 되고"라고 말씀했습니다. 성소와 지성소 사이의 휘장이 찢어졌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성소와 지성소 사이의 구분이 없어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대 속죄일 제사를 다시는 드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해를 단번에 십자가상의 제사로 완성하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제 우리가 예수를 믿고, 예수 이름으로 회개하고, 예수 안에 살면 하나님과 온전한 화해를 이룰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바로 예수가 영원한 대제사장이시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안에서 하나님과 화해를 이루시고 참된 평안을 누리시기를, 그리고 범사가 잘되는 축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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