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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히2:14-3:1)

본문

영국의 청교도로서 요한 번연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그의 신앙을 지키다가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번연은 무척이나 정열적이고 활동적인 사람이었으므로 그에게 감옥은 너무도 참기 힘든 답답한 공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날이면 날마다 창살을 붙잡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제발 나에게 자유를 주소서, 제발 자유를 주셔서 하나님의 일을 자유롭게 하게 해 주소서.” 그러던 어느 날 창살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있는데 “번연아,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하고 세 번씩이나 똑같은 음성이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번연은 그 때 그 소리가 하나님의 소리임을 깨닫고서 즉시로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렇구나, 내가 비록 감옥에 있을지라도 주님께서 내게 족한 은혜를 주시는구나” 그는 주님을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 기쁨이 생겼습니다. 그는 주님의 은혜가 너무도 감사하고 귀한 것이기에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하고 주님께로 가야 된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졌습니다. 그는 거기서 어떻게 사람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것인가를 성경을 바탕으로 해서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유명한 천로역정이 된 것입니다. 표면에는 감옥 속이요, 불평스러운 환경이었지만 주님을 깊이 묵상하는 중에 그는 삶의 깊은 체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바다를 보면 그 표면은 온도에 의해, 바람에 의해 조금도 쉬지를 않고 흔들리고 요동을 칩니다. 그러나 깊은 곳은 조용한 바다의 신비가 있습니다. 우리는 표면을 바다의 모든 것이라고 해서는 안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엄청난 것들이 그 속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남극이나 북극에는 엄청난 빙산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것보다 아홉 배가되는 분량이 바다 속에 있습니다. 우리는 삶이 너무나 천박한 가운데 깊이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너무나도 가볍게들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어지기도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만 너무 집착하지는 않는가 반성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평과 짜증이 생기고 불안과 초조한 가운데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하게 만듭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너무나 표면적인 것에만 얽매여서 깊은 충만한 은혜를 잊고 살지는 않는지 생각이 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주인이 되시는 예수님과 깊은 사귐이 있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주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감격이 날마다 더해 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 분께서 나의 삶을 지도하시고 이끌어 주시기 때문에 너무나도 감사가 감격이 넘치는 삶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런데 그런 신앙의 중심은 없고 다른 사람과 비교나 하고, 남의 허물이나 찾고, 모든 것을 거래를 하는 것처럼 손익 계산을 하고 있다면 참 신앙과는 거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몇 달 다녔는데 별로 신통한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지 않으니까, 이젠 그만 믿어야 될 모양이라고 하고, 또는 누구누구의 허물만 자꾸 보여서 이것이 신앙생활이냐 하는 회의가 생기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5년 동안 예수를 믿었는데 염소 몇 마리 갑자기 죽었다고 예수 믿으면 안될 모양이라고 그만 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들의 신앙이 주님과의 깊은 만남이 없이 지극히 지엽적인 것에서 떠돌게 되면 도저히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신앙을 지탱해 나갈 수가 없게 됩니다. 니를 교회로 묶어 놓은 것들이 없어지면 금방 실망하고 돌아서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친구가 없어지면 교회도 나오지 않습니다. 사명이 없어지면 교회에 나오지 않습니다. 학교를 졸업하면 교회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참된 성도는 이런 것들에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 것들이 떨어져 나갈수록 더욱 주님께 밀접하게 나아갑니다. (시108:1)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 내가 노래하며 내 심령으로 찬양하리로다 (시46:1)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시46:2)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시46:3)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셀라) 이런 성도의 확고한 신앙의 고백이 우리에게 있기 위해서는 주님을 깊이 알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또한 깊이 알기 위해서 깊이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사순절 기간입니다. 이번 기회를 통하여서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아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알게 해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님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고전2:10) 오직 하나님이 성령님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님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여기서 생각한다는 말은 “주목하여 보다” “자세히 보다”의 뜻을 가지고 있는 말로서 시각의 현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각성을 촉구할 때 쓰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깊이 묵상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본문은 예수님에 대한 두 가지를 말씀하시면서 우리가 그를 깊이 생각해야 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가 되시고 대제사장이 되신다는 말씀입니다. 사도라고 하는 말은 보냄을 받는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내시어 예수님을 증거하라고 하셨는데 예수님을 증가하라고 보내심을 받았다는 의미에서 사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도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셔서 하나님을 드러내 보이신 것을 뜻하여 하는 말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본 자는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예수님에게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긍휼 하심이 충만하심이 있습니다. 그는 이 땅에 계시면서 목자 잃은 양처럼 방황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었고, 육신의 병으로 말미암아 시달리는 자들에게 치료의 손길을 주셨으며 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서 삶의 보람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기쁨과 소망을 주신 분이십니다. (마8:16)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 (마8: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마12:18 '보라, 나의 종, 내가 택한 자, 그는 내가 사랑하는 자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부어 주리니 그가 나라들을 심판하리라. 마12:19 그는 다투지도 않고 잘난 체하지도 않으며 길거리에서 그의 소리를 들을 자가 없으리라. 마12:20 그는 약한 자를 짓누르지 않으며 가장 작은 자의 희망도 억누르지 않으리라. 그는 모든 싸움을 마지막 승리로 끌어가리니 마12:21 그의 이름이 온 세계의 희망이 되리라.' (마12:18) 보라 나의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나의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성령님을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마12:19)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마12:20)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마12:21) 또한 이방들이 그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마12:22) 그 때에 귀신들려 눈멀고 벙어리 된 자를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 그 벙어리가 말하며 보게 된지라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지극히 사랑하시고 아끼시고 모든 것을 온전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우리에게 그대로 보여주고 계십니다. 이 모든 일은 바로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히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문둥병자를 만지신 것은 곧 나를 만지심이요. 세리 마태를 부르심은 곧 죄인된 나를 부르심이요, 삭개오에게 웃음을 주심은 나에게 웃음을 주심입니다. 나사로를 살리심은 곧 나를 죽음에서 살리심입니다. 그는 우리를 너무나도 잘 아십니다. (히2:14)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히2: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히2:16) 이는 실로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똑 같은 몸을 가지셨습니다. 그는 아픔을 느끼셨고, 감정이 북받혀 울기도 하셨고, 고민도 하셨고, 배도 고프셨습니다. 그렇게 하신 것은 모두 다 우리를 붙들어 주시기 위해서라고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타락과 고통, 사망의 무서움········· 이 모든 것 배후에 으르렁거리고 있는 사탄의 세력 그러나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둘 째 아담이 되셔서 하나님께 순종하심으로 마귀의 세력을 없이 하셨습니다. (창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마귀가 우리를 주장할 수가 없습니다. 마귀의 힘인 사망의 권세도 더 이상 우리에게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자녀의 권세를 주심으로 마귀를 대적하면 마귀가 도망가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하심은 우리를 붙들어주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면 바로 이런 예수님을 통한 놀라우신 하나님의 손길을 우리가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 예수님 때문에 능력 있는 사람이 된 사람의 예 1850년 1월 6일, 영국의 콜체스터 시는 심한 눈보라로 도시 전체가 마비되어 버렸다. 그리하여 한 십대 소년은 그가 늘 다니던 교회에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가까이에 있는 교회에 들어가 예배에 참석하였다. 그 교회에서는 출타한 목사님을 대신하여 한 평신도가 서툴게 설교를 하였다. 그가 설교한 본문은 이사야 45장 22절의 말씀이었다.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여러 달 동안 이 소년은 마음의 곤고함과 죄에 대한 괴로움에 빠져 있었다. 비록 교회에서 자랐다 할지라도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목사였다), 그는 구원의 확신을 갖고 있지 못했었다. 그 서툴게 준비한 대리 설교자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은 채, 다만 본문을 반복해 외칠 뿐이었다. "사람은 바라보는 것을 배우고자 대학에 갈 필요가 없습니다. 누구든지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어린아이라도 볼 수 있습니다." 그 설교자는 이렇게 열변을 토했다. 그리고 그때, 이 설교자는 한쪽 구석에 앉아 있는 새 방문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그 방문자를 쳐다보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젊은이, 자네는 아주 피곤해 뵈는군.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그때 그 젊은 청년은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바라보았는데, 이것이 바로 위대한 설교가 스펄젼의 회심의 경험이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십니다. 제사장은 죄인과 하나님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하는 사람을 말하였습니다. 죄인은 하나님께로 그냥 갈 수가 없습니다. 도저히 설 수도 없습니다. 다만 죄없는 제물을 가지고 제사장이 제사라고 하는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법칙대로 제사를 드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제사장도 사람인지라 죄를 지을 수도 있고 모든 것을 정확하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기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흠없고 점 없는 어린 양이 되시고 또 제사장이 되셔서 단번에 하나님께 드려지게 된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던 날 성전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까지 찢어져 갈라짐으로 하나님께로 향하는 대로가 뚫려지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누구나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의 제단을 쌓을 수가 있고 하나님께 응답 받고 자녀의 권세를 가질 수 있도록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것이 없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할 용기가 솟아나는 것입니다. 이 기도가 하나님께 응답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예수님을 주목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는 우리의 믿음의 주인이 되십니다. 또 우리를 온전케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이 예수를 바라보자고 외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바라볼 때 희망이 생길 것입니다. 용기가 생길 것입니다. 위로가 넘치게 될 것입니다.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예수님을 통하여서 삶의 충만한 은혜가 넘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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